잠비아
위치: 아프리카동남부
인구: 20,569,737명 (2023년 추계)
수도: 루사카
면적: 752,618.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잠비아 공화국 (Republic of Zambia)
기후: 아열대성기후
민족 구성: 아프리카인(99%), 유럽인(1%)
언어: 영어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 다당제&양원제
종교: 그리스도교(50%), 힌두교, 이슬람교
화폐: 잠비아 카와차 (ZMW)
대륙: 아프리카
국가번호: 260
GDP: USD 26,228,000,000
인구밀도: 24명/㎢
전압: 220V / 50Hz
도메인: .zm
잠비아와 한국과의 관계
▶ 외교
▶ 경제·통상·주요 협정
▶ 문화교류·교민 현황
요약
아프리카 남부의 내륙국. 옛 이름은 북로디지아(Northern Rhodesia,1911∼64)이다. 수도는 루사카이며 화폐는 잠비아 카와차이다.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병존하는 혼합경제체제로 구리의 생산과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전문 의료진 및 보건시설이 부족한 편이며 초등과 중등 수준의 교육 확대율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수도는 루사카이다. 남북 최장길이는 약 821km이고, 동서 최장길이는 1,385km이다.
서쪽은 앙골라, 북서쪽은 콩고 민주공화국, 북동쪽은 탄자니아, 동쪽은 말라위, 남동쪽은 모잠비크, 남쪽은 짐바브웨와 보츠와나, 남서쪽은 나미비아(남서아프리카)와 경계가 맞닿아 있다. 잠베지 강이 짐바브웨와의 국경을 이룬다.
자연환경
주로 해발 1,000∼1,500m의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표는 구릉과 능선이 넓은 간격을 두고 간간이 나타날 뿐 거의 균일하다. 콩고 강과 잠베지 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북부의 무칭가 산맥에 이 나라의 최고봉(2,200m)이 있다. 그밖의 고지대는 북부의 음발라 고원(1,500∼1,800m)과 북동부의 무핑가 구릉지(2,100m)이다.
잠비아 내에 몇 개의 지구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560km 길이의 루앙과 강 하곡이다. 북동부에 있는 방궤울루 소택지는 세계 최대의 내륙습지의 하나로 면적이 1만 400㎢에 달한다. 잠베지 강은 광대한 유역을 가진 제일의 강이지만 급류와 폭포들 때문에 수운에는 한계가 있으며, 최대의 폭포는 빅토리아 폭포이다. 므웨루 호, 방궤울루 호, 탕가니카 호 및 낙차가 220m로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칼람보 폭포가 북부에 있으며, 인공호인 카리바 호(440㎢)는 남부에 있다.
기후는 세 계절이 뚜렷한 아적도기후로, 8∼10월은 매우 덥고 건조하며, 11∼4월은 따뜻하고 습하며, 5∼7월은 건조하고 서늘하다. 최난월(10월)의 평균 낮 최고기온은 남서부 발로발레의 39℃에서 북부 음발라의 31℃ 사이이며, 최한월(6월)은 남부 루사카의 26℃에서 음발라의 31℃ 사이이다. 비는 대부분 열대성 폭우로 내리는데, 남부 하곡들에서 600∼800㎜, 중부와 동부의 고원에서 800∼1,000㎜, 북동부의 산지에서 1,000∼1,380㎜의 강우량을 기록한다.
다년생의 키큰 풀과 키작은 나무들이 자라는 입목 사바나가 대부분의 지역을 덮고 있다. 남서부에는 값비싼 로디지아 티크나무의 숲들이 있고, 호수 연변지역에서는 파피루스가 무성하게 자란다. 초원에서는 가축(육우와 젖소)이 풀을 뜯지만, 코끼리·사향고양이류·하이에나·표범·얼룩말·기린·영양·비비·원숭이 등 야생동물도 서식한다. 여러 종류의 체체파리가 널리 퍼져 있다. 루사카에서 서쪽으로 240km의 거리에 있는 카푸에 국립공원은 잠비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수렵조수보호구역이다.
잠비아 중부에 있는 길이 110km, 너비 50km의 구리대(Copperbelt)는 1930년대에 개발된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광산지대이다. 사암과 셰일과 돌로마이트가 교대로 겹쳐 이루어진 이 구리대의 구리 매장량은 채광 가능한 세계의 구리 총매장량의 약 1/8에 달한다. 잠베지 강 하곡의 탄전과 카브웨(브로컨힐)의 납·아연 광상도 중요하다. 그밖의 광물로는 바나듐·망간·코발트·귀석(에메랄드와 자수정)·석회석 등이 있다.
국민
잠비아의 연간 인구성장률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데, 그것은 주로 출생률이 아주 높은 반면 국외 이민은 거의 없고 사망률이 비교적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아사망률이 세계 수준에 비하면 높지만 주위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하면 상당히 낮다.
인구밀도와 성장률이 높은 지역들은 코퍼벨트 주와 중부 지역에 모여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취업과 주택 구입의 꿈을 안고 이 지역들로 이주하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인구수는 2,056만 9,737명이고 인구밀도는 27명/㎢이다. 15세 이하가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며 인구의 39%가 도시에 거주한다.
잠비아의 인종 구성은 산족(부시먼족)의 2, 3개 집단을 제외하고는 트와족(피그미족)을 포함하여 거의 전적으로 반투어족의 아프리카인으로 되어 있다. 유럽인과 아시아인(주로 인도인)도 소수 거주하는데, 인도인은 대부분 이민이 자유로웠던 1945∼54년에 이곳으로 들어왔다.
언어
공용어는 영어이며, 다양한 토속언어들이 사용된다. 지방어와 방언이 있다. 반투어족의 언어 가운데 많이 쓰이는 것은 멤바어(語)· 니안자어· 바로체어· 맘브웨어· 툼부카어· 스와힐리어 등이다. 종교는 개신교가 전체 인구의 3/4을 차지하고 로마가톨릭이 1/5, 그 외에 이슬람교와 불교, 토착 종교 등으로 구성된다.
문화예술
잠비아의 전통미술은 주로 목각, 도기제조, 바구니 세공, 담벼락 그림으로 되어 있다. 음악과 춤과 노래는 부족 의식에서 북, 활시위, 플루트, 뿔피리·파이프, 종, 딸랑이, 산사('아프리카 피아노')의 반주에 맞추어 행해진다. 도회의 공연에서는 전통음악이 서양악기에 맞추어 수정되는 경우가 흔하며, 리빙스턴 야외음악당에서는 지방의 무용수들이 정기적으로 공연을 갖는다. 리빙스턴에는 국립박물관이 있고, 구리대에 있는 작은 박물관에는 아프리카 중부의 역사시대와 선사시대의 인공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
지금까지 발굴된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100만∼200만 년에 현재의 잠비아 지역을 원시인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석기시대의 유적과 인공물 또한 많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약 2,000년 전에는 초기 철기시대의 종족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다. 현대의 통가족의 선조들은 약 2,000년 전에 이 지역에 당도했지만, 다른 현대 종족들은 17,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콩고 민주공화국과 앙골라로부터 이곳으로 들어왔다.
1798년 므웨루 호(湖) 부근에 포르투갈의 교역소가 설치된 데 이어 1835년에는 반투어족에 속하는 응고니족이 니아사 호와 루앙과 강이 분기하는 지점에 정착했으며, 수토족과 콜롤로족(마콜롤로족)은 잠베지 강 상류를 건너 바로첼란드를 점거했다.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1851년 잠베지 강 상류에 도달했고, 1855년에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했으며, 이어 잠베지 강 유역 전체와 탕가니카 호 이남의 고원을 탐험했다. 세실 로즈와 영국령 남아프리카회사의 사자(使者)들은 1890년대에 잠비아의 추장들 대부분과 조약을 맺었다(대영제국). 영국령 남아프리카회사는 이 지역을 1924년 영국의 보호령이 될 때까지 관리했다.
1911년에 이 영토는 북(北)로디지아로 알려졌으며, 당시 약 1,500명의 유럽인이 정착하고 있었다.
광업 개발은 20세기초에 시작되었다. 구리대가 개발되기 시작한 1924년까지 북로디지아에는 약 4,000명의 유럽인이 있었다. 영국 남아프리카회사는 1924∼ 60년에 채광권을 보유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1935년 수도가 리빙스턴에서 루사카로 이전되었다.
20세기초에는 아프리카인이 정치권력구조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지만, 1930년 이후에는 사정이 바뀌기 시작하여 그들의 정권 참여가 확대되었다. 1950년대초에는 UNIP와 아프리카 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ANC)에 의해 민족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1952년까지는 유럽인의 인구가 약 4만 3,000명으로 불어났으며, 그들은 대부분 코퍼벨트 주에 거주했다.
1953년 북로디지아는 내부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니아살란드(말라위) 및 남로디지아와 연합하여 중앙 아프리카, 로디지아, 니아살란드 연방을 결성했다.
이 연방은 1963년에 해체되고 이듬해에 이 나라는 영연방 내의 잠비아 공화국으로 독립을 획득했으며, UNIP가 집권당이 되고 케네스 카운다가 대통령이 되었다. 카운다는 1980년대까지 잠비아의 정치를 좌우하는 인물로 군림했다. 1969년에 그는 상공업의 국유화 정책에 착수했는데, 이 정책은 구리 산업으로 시작하여 토지 소유, 영화, 신문, 연초공장과 임대주택에까지 확대되었다.
그는 또한 1973년 새 헌법으로 UNIP의 일당 지배를 굳건히 했으며, 로디지아의 다수결 원리와 더불어 앙골라와 모잠비크의 독립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여 이 나라의 외교정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잠비아의 경제는 1965년 인접국 로디지아에 대한 제재가 시작되면서 타격을 받기 시작했으며, 세계의 구리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구리 수출에 더욱 의존함으로써 1970년대 내내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옥수수와 그밖의 곡물생산도 1970, 1980년대초에 감소했으며, 그 감소의 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많은 농부가 이 나라를 떠난 후에 특히 커졌다.
1970년대 내내 잠비아는 앙골라, 모잠비크,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게릴라들의 도피처가 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제외한 이들 나라에서의 독립과 다수결 원리가 1980년대초에 이 문제를 완화시켰다.
종교
종교는 기독교(주로 가톨릭) 비율이 반 이상이고, 그 외에 이슬람교, 힌두교, 전통 종교 등이 있다. 국민의 약 2/3가 기독교도이지만 대부분이 전통적인 애니미즘과 결합되어 있다.
잠비아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잠비아와 한국은 1990년 9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이듬해 3월 상주공관을 설치했다. 1998년 8월, 상주대사관을 철수했고 지금은 주 짐바브웨 대사가 외교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잠비아는 2014년 6월에 한국 주재 대사관을 개설했다.
잠비아는 1992년 5월에 외교장관, 2004년 1월에 부통령이 세계평화대회 참가 차 방한한 이후 장관급 고위인사의 방한이 계속되었다. 한국은 1991년 5월에 UN 가입 지지 확인차 정원식 특사, 1994년 10월에 WTO 사무총장 입후보 지지 교섭차 홍순영 특사가 방문한 이후 고위급 인사가 여러 차례 방문했으며, 2017년 5월에는 김창종 헌법재판관이 잠비아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를 방문하여 양국 사법부간 교류·협력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반면 잠비아는 북한과 오랫동안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는데, 1969년 4월에 수교했으며 1970년 1월에 상주공관을 개설했다가 1998년 2월에 철수하고 주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가 겸임하고 있다. 잠비아는 주 중국 대사가 북한 외교를 겸임하고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은 1991년부터 2016년까지 잠비아에 정부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로 451만 달러를 무상으로 지원해온 바 있다. 2020년 기준 잠비아의 대한국 수출액은 900만 달러, 수입액은 2,2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동 제품, 기타금속광물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말라리아 진단키트, 면역물품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의료협정(1992녀 10월 체결), 경제기술협력협정(2014년 4월 발효),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협정(2016년 6월)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20년 기준 잠비아에는 140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잠비아의 수도인 루사카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18년 12월 기준 89명의 잠비아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