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위치: 유럽남부, 지중해연안 이탈리아반도
인구: 60,234,809명 (2023년 추계)
수도: 로마
면적: 301,336㎢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이탈리아 공화국 (The Italian Republic)
기후: 지중해성기후
민족 구성: 이탈리아인
언어: 이탈리아어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 양원제
종교: 로마가톨릭(90%)
화폐: 유로 (€) 환율계산기
국화: 데이지
대륙: 유럽
국가번호: 39
GDP: USD 2,181,970,000,000
인구밀도: 200.7명/㎢
전압: 230V / 50Hz
도메인: .it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관계
▶ 외교
▶ 경제·통상·주요 협정
▶ 문화교류·교민 현황
요약
유럽의 국가. 수도는 로마, 공식어는 이탈리아어다. 국민은 이탈리아계이며 주로 로마 카톨릭교를 믿는다. 화폐 단위는 유로다. 양원제를 가진 공화국이다.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 등과 이웃하고 있는 지중해의 장화 모양의 반도와 많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 예술 발전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현재는 크게 발달된 서비스업과 제조업이 경제의 근간을 이룬다.
자연환경
산지가 많은 편이어서 700m 이상의 산지가 35%를 차지하며 구릉지대가 42%, 나머지 23% 정도가 평지이다.
북쪽 국경 지역의 알프스 산맥과 이탈리아 반도 전체와 시칠리아 섬의 골격을 이루는 아펜니노 산맥이 주요 산계를 이루며, 반도의 서쪽에 있는 사르데냐 섬과 프랑스령 코르시카 섬 역시 또 다른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알프스 산맥이 제노바 만의 사보나 부근 카디보나 고개에서 시작해 아드리아 해의 트리에스테 북쪽까지 동서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서부 알프스, 중부 알프스, 동부 알프스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
가장 높은 지대는 석탄기에서 페름기(2억 2,500만∼3억 4,500만 년 전)에 이르는 풍화된 헤르니시아계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900m 이상의 험준한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제4기(160만 년 전)에 빙하의 침식을 크게 받은 골짜기에는 아직도 1,000여 개의 빙하가 남아 있으나 최근 50년 동안 100개 이상이 사라지는 등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빙하작용). 높은 산지와 포 강 유역 사이의 2,500m 미만의 알프스 산맥 사면 지역은 주로 석회암과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하동굴과 복류천 등의 카르스트 지형이 나타난다.
아펜니노 산맥은 카디보나 고개에서 시칠리아 섬까지 1,192km에 걸쳐 있으며 끝의 너비는 32km, 중심부의 너비는 192km이다. 북부는 사암과 석회암토, 중부는 석회암과 돌로마이트, 그리고 남부는 석회암과 헤르시니아계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의 화산활동은 플라이오세와 제4기에 시작된 것으로 나폴리 근처의 캄피플레그레이, 베수비오 산, 에올리에 제도, 시칠리아 섬의 에트나 산 등이 대표적이다. 콜리에우가네이의 온천과 비테르보의 진흙온천, 포추올리의 가스 분출 등도 화산활동의 영향이다. 지진 등의 지각활동은 알프스 산맥과 포 강 유역에서는 드물고, 아펜니노 산맥의 구릉지역과 시칠리아 섬에서 간혹 강하게 나타난다. 포 강 유역과 풀리아 평야는 오래 전 바닷가에 형성되었던 만에 충적토가 쌓여 이루어진 것이며 레체 평야는 해수침식에 의해서 평평하게 된 지역이 융기한 것이다.
키아나 계곡 평야는 구조분지에 충적토가 쌓여서 형성되었다. 규모가 가장 큰 포 강 평야는 4만 3,520㎢를 차지하며 대부분 해발고도 100m 미만으로서 포 강과 그 지류인 레노·아디제·피아베·탈리아멘토 강을 따라 펼쳐져 있다. 그밖에 알프스 산지의 산록지역은 적색양토가 주종을 이루고, 계단경작을 하고 있으나 농업생산성은 좋지 않은 편이다. 이러한 구릉지 아래쪽의 평지는 집약적 경작지나 동계 목축지로 쓰일 수 있는 비옥한 땅으로서 하천으로부터 농업용수 공급이 가능하다.
다른 평야지대로는 토스카나와 라치오의 간척지, 아그로폰티노, 캄파니아·풀리야 평야 등이 있고, 시칠리아 섬의 카타니아 평야에서는 레몬 재배가 활발하다. 토스카나에서 캄파니아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서 사구와 모래해변이 길게 분포하며, 리미니에서 몬팔코네로 이어지는 포 강 삼각주에는 석호가 많이 나타난다. 그외의 지역에는 암석해안이 발달되어 있다.
국민
인종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데 19세기 후반부터 국내에서의 이주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 북부에서 남부로 갈수록 두골(頭骨)의 비율이 줄어들어서 포 강과 알프스 지역에는 단두형(短頭形)이, 남쪽에서는 장두형(長頭形)이 많고 신장은 북부에서 남부로 갈수록 작아지는 경향을 보여 사회적·경제적 환경이 반영되고 있다. 이탈리아어가 보편적으로 쓰이나 남티롤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볼차노·피에몬테·롬바르디아·베네치아에서는 부분적으로 독일어와 라딘어를 사용하며, 트리에스테에는 슬로베니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탈리아의 인구밀도는 1km2당 196명으로 면적 10,000km2 이상 국가 중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 소수집단도 있는데 가장 큰 소수집단은 남티롤의 독일어 사용 인구(1991년 통계: 28만 7503명이 독일어 사용, 11만 6914명이 이탈리아어 사용)와 트리에스테와 그 근교의 슬로베니아어 사용 인구이다.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2012년 현재 (세계은행 추정) 1.40명이다. 합계 출산율은 1995년 1.18로 바닥을 친 이래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2020년 기준, 인구는 약 6100만 명이다.
실질적인 가톨릭교도의 수는 줄고 있으나 국민의 90% 이상이 자신을 로마 가톨릭교도라고 밝힌다. 나머지 대부분은 종교가 없거나 개신교도이다. 이밖에 유대교와 동방정교회가 소수를 차지하며, 최근 제3세계에서 온 이민자중에는 이슬람교도가 가장 많다.
언어
발레다오스타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소수언어집단을 이루는 프리울리어와 사르데냐어는 1992년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1929년 라테란 조약에 따라 로마 가톨릭교를 국교로 삼았으나, 1984년 국교로서의 지위가 종결되면서 공립학교에서의 의무적 종교교육이 폐지되고 교회에 대한 국가의 재정적 지원도 감소했다. 이탈리아는 언어와 종교 면에서는 동질적인데 비해 문화·경제·정치 면에서는 다양하다.
문화예술
중앙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일 후에도 문화적·사회적인 지역주의가 뚜렷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풍요로운 북부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남부를 멸시하는 등 제2차 세계대전 후 산업개발, 외국과의 교류강화, 텔레비전 등 언론매체에 의한 자극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로마 가톨릭의 권위가 떨어져 관심이 약화되고 있고 전통적인 문화보다는 전위적인 예술이 성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중세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발전의 전진기지였다.
문학의 위대성은 14세기의 단테·페트라르카·보카치오를 통해 꽃피었고, 아리오스토와 타소 이후에 형식주의를 거쳐 비토리오 알피에리, 우고 포스콜로, 알레산드로 만초니, 자코모 레오파르디 등을 통해 낭만주의가 발전했다. 20세기에는 이탈로 스비보 등을 위시로 현실주의를 추구하여 정치적·사회적 분위기를 문학에 표현하고자 했다(→ 이탈리아 문학). 시각예술에서는 조토,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티치아노, 베르니니, 티에폴로 등의 위대한 예술가와 건축가가 두각을 나타냈다.
주요학술원으로는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린체이 국립학술원, 크루스카 학술원 등이 유명하다. 이탈리아 노스트라 협회는 전통적인 건축물과 경관을 보존하는 데 주력하는 사회단체이다. 지역마다 건축유물이 풍부하고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다.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박물관, 피렌체의 우피치·팔라초피티 미술관, 페루자의 움브리아 국립미술관과 시에나 미술관, 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 카피톨리노 박물관, 바티칸·라테라노 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미술품과 유적들이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다.
역사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구석기시대에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BC 2000년경에 시작된 인도유럽인의 이주물결은 BC 1000년까지 이어졌다. BC 900년경부터는 그리스-동양의 큰 영향하에 아르노 강과 테베레 강 사이에서 에트루리아 문명이 꽃피었다. BC 6세기경 로마인들이 에트루리아인들을 몰아내고 로마 공화정을 세웠다.
BC 264년에는 갈리아키살피나 남부의 모든 이탈리아 땅이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계속해서 영토를 확장시켜나갔으며, BC 44년에 로마 공화정이 몰락하고 180년에 로마 제국이 탄생할 때까지 브리타니아로부터 아프리카와 유프라테스 강까지 지배권을 세웠다. 로마의 문명이 서구에 남긴 발자취는 선명하여 20세기의 문자·법률·도로·예술 등에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4, 5세기에 있었던 이민족의 침략은 마침내 서로마 제국을 붕괴시키고 말았다. 이탈리아의 일부는 비잔틴 제국이 되었으나 그 나머지는 롬바르드족·프랑크족·사라센족·게르만족에게 차례로 약탈당했다. 교황이 한동안 로마의 실질적이고 유일한 권력자였으며, 곧 교황령으로 알려진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다. 11세기에 이탈리아 남부를 침입한 노르만족은 그곳에 왕국을 세웠다. 북부에는 도시국가들이 출현하여 정치적·상업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비록 이탈리아는 수세기 동안 정치적으로 분열된 상태였지만 13∼16세기에 서구의 문화적 중심지였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예술적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15세기말에 프랑스의 침입을 받은 후 1550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에 의해 나라의 대부분이 점령당했다. 카를의 손을 거쳐 이탈리아를 차지하게 된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가 18세기초에 이탈리아 북부를 거의 장악하게 될 때까지 지배했다. 그러나 특정 지역은 이 시기에도 자치권을 유지했다. 1796년에 시작된 나폴레옹의 점령이 1815년에 종말을 맞으면서 이탈리아는 또다시 군소국가들로 분열되었다.
19세기에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군주인 사보이 가문의 노력으로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이탈리아 통합운동)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리소르지멘토).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피에몬테인들은 1861년에 그들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통치 아래 이탈리아 대부분의 영토를 통합하는 데 성공했으며, 1866년에는 베네치아, 1870년에는 로마 교황령이 합병되면서 하나의 국가가 탄생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니토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으면서 파시즘이 발전했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하고 1936년에 로마-베를린 동맹을 맺었다. 연합군이 1943년에 이탈리아로 들어오자 무솔리니는 탈출했고, 항복한 이탈리아는 연합군에 합류하여 독일군과 싸웠다. 1946년에 공화국이 선포되고 연립정부는 전후복구에 힘썼다. 경제발전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EC와 NATO의 주요회원국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제27대 총리.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을 창설하고, 최초의 파시스트당을 조직했다. 1921년11월 파시스트당의 당수가 된 후, 1922년 10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강력한 독재 정권을 실시했다. 1939년 독일과 군사 동맹을 체결하고 독일·일본과 함께 국제 파시즘 진영을 구성하였다. 1940년 독일·일본과 삼국 동맹을 결성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나 패했다.
1970년대에 좌익계인 붉은여단의 테러 활동이 고개를 들었으나 1980년대초에 이 조직은 경찰에 진압되었다. 1990년대초 이탈리아 정부는 일련의 정치적 시련을 겪었으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 온 정당체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대부분이 우파인 새 정당들이 생겨나 정치적 공백상태를 매웠으나,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은 계속되었다(→ 이탈리아사).
종교
옛 로마 제국 때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가톨릭이 국교로 정해지게 된 까닭에 수도인 로마 시를 중심으로 서방교회가 오랜 역사를 거치는 동안 압도적인 강세에 있으며, 이탈리아의 역사 자체도 가톨릭과 거의 맥을 같이 해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탈리아 통일 이후에도 1929년부터 1978년까지 가톨릭이 공식적인 국교였으며, 현재에도 국민 상당수가 가톨릭 신자이다. 현재는 국교가 없고, 신앙의 자유를 존중하므로 이외의 종교를 믿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개신교도 존재한다. 또한 이민자들에 의하여 이슬람교, 힌두교의 종교도 존재한다.
2017년 기준으로 이탈리아인들의 75%가 자신이 천주교인이라고 답했다. 다만 이탈리아는 1985년 이후 가톨릭을 공식 국교에서 해제하였다. 가톨릭의 최고 중추인 교황좌와 교황령이 바로 로마에 자리하고 있으며, 교황은 바티칸의 최고 수반으로 이탈리아와는 별개의 주권 국가를 다스리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성좌 자체를 ‘바티칸’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성좌는 1929년에서야 건국된 바티칸 시국과는 다른 개념이다. 2011년에 동방 정교와 같은 기독교 소수 분파들이 대략 전체 인구의 5%, 150만 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여호와의 증인이 대략 251,192명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들 중 하나가 바로 유대교인데, 유대교는 고대 로마 이래 끈질기게 로마에서 명맥을 유지해왔다. 이탈리아는 스페인 등 유럽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을 상대적으로 관용적으로 받아들였는데, 허나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중에 이탈리아 유대인의 20%를 죽이는 대참사를 저지르기도 하였다. 이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이탈리아에서 도망쳐 아메리카 등으로 도망쳤기에, 이탈리아에는 28,400명의 유대인들 밖에 남지 않았다. 점차 종교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무신론이 득세하며 기독교 외의 종교들이 점차 세를 얻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인도에서 전래된 시크교 신자가 7만 명 정도 있으며, 그 외의 인도계 종교를 믿는 신도들이 80만 명에 달한다고 전한다. 이탈리아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그 대신에 0.8% 정도의 종교세를 부과하여 오직 공식적으로 인정된 종교 단체들만이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한다. 개신교, 유대교, 불교, 힌두교 단체들은 기부와 세가 허가되나, 아직까지 무슬림 종교단체는 공인된 바가 없기에 공식적인 종교 활동을 하기에 제약이 있다. 종교에 돈을 기부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국가복지세를 대신 낸다.
1929년 라테란 조약에 따라 로마 가톨릭교를 국교로 삼았으나, 1984년 국교로서의 지위가 종결되면서 공립학교에서의 의무적 종교교육이 폐지되고 교회에 대한 국가의 재정적 지원도 감소했다.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한국은 일찍이 마르코 폴로에 의해 고려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교류를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이며, 1884년 6월 26일에 우호·통상·항해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1905년에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당하면서 이탈리아와의 관계도 끊어졌다.
이탈리아는 한국전쟁 때 유엔회원국이 아니었으므로 정규군을 파견하지는 못했지만 전후 유엔한국부흥위원단을 통하여 200만 5000달러를 기증하기도 했다. 두 나라가 수교를 맺은 것은 1956년 11월 24일이며 한국은 1957년 9월에 주 이탈리아 대사관을 개설했으며, 이탈리아는 1957년 12월에 주 대한민국 대사관을 개설했다.
2000년대에는 2000년 3월에 김대중 대통령의 이탈리아 방문을 시작으로, 2007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의 이탈리아 방문, 2007년 4월에 프로디 총리의 방한, 2009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의 이탈리아 방문, 2009년 9월에 나폴리타노 대통령의 방한, 2012년 3월에 몬티 총리의 방한, 2014년 10월에 박근혜 대통령의 이탈리아 방문, 2018년 10월과 2021년 10월에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 등 정상급 교류가 이어졌다.
한편 이탈리아는 북한과 2000년 1월에 수교했으며, 북한은 2000년 7월에 주 이탈리아 북한 대사관을 개설했고 이탈리아는 주 대한민국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겸임한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이탈리아는 유럽국가 중 우리의 중요한 교역상대국이다. 한국의 주요 대이탈리아 수출품은 승용차, 합성수지, 열연강판, 냉연강판 등이며, 수입품은 가방, 신발, 승용차, 직물제 의류 등이다. 한국의 대이탈리아 수출액은 2018년 기준 38억 달러이며, 수입액은 64억 달러이다. 한국은 이탈리아에 2017년 기준 누계로 8.68억 달러, 이탈리아는 한국에 6.65억 달러를 투자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한국 기업의 진출 및 상담을 돕기 위해 밀라노무역관을 설치했고, 한국에는 주한 이탈리아 상공회의소가 있다.
2007년 5월에 협상 개시된 한국과 이탈리아와의 자유무역협정(FTA)(한국-EUFTA)은 총 8차례의 협상을 거쳐 2011년 7월에 정식 발효되었다. 이 밖에도 특허권·상표권 보호에 관한 각서교환(1961년 3월), 무역·문화협정(1965년 3월), 사증(비자) 및 사증(비자)수수료 면제에 관한 각서 교환(1975년), 경제협력협정(1982년 5월), 과학 및 기술협력협정(1984년 2월), 투자증진 및 상호보호 협정과 이중과세 및 탈세방지 협약(1989년 1월), 관광협력협정(2000년 3월), 사회보장협력협정(2005년 3월) 등이 체결되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양국 간 민간 차원의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부 차원으로는 2016년 10월에 이탈리아 로마에 한국문화원이 개원해 이탈리아 현지에서 한국문화를 알리고 양국 예술인의 인적교류를 활성화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는 이탈리아문화원이 개원되어 있어 이탈리아 문화의 문화·예술 홍보 및 교류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탈리아에 한글학교 3개가 설립되어 있어 교민과 이탈리아인의 한글교육에 기여하고 있으며, 1968년에 창립된 한인회는 한인사회의 발전과 권익보호를 도모하고 한국의 우수한 문화, 예술 소개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이탈리아에는 4,624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라치오 주와 롬바르디아 주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18년 12월 기준 737명의 이탈리이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