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얽힌 추억
유해용
봄! 봄이 왔다. 산에도 들에도 내 마음에도….
일찍이 신석정 시인은 시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우수도/경칩도/머언 날씨에/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기에/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라고 시를 읊었다.
일제강점기 시절도 지나갔고 코로나 19가 맹위를 떨치는 춤고 황량한 겨울 시기는 어서 지나가고 마스크가 필요없는 계절 바로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듯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 터다.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찾아오는 봄! 봄이 오는 3월과 4월은 참 반갑고 기다려지는 일이다. 언제나 4월에 온 산을 빠알갛게 물들이며 찾아오는 봄의 화신 진달래와 이어 피어나는 철쭉 또 학교 밖 가로수 길에 하얗게 피어나는 흐드러진 벚꽃처럼 아름다운 꽃이, 그리고 교정에 피어나는 화사한 목련잎을 보라. 이처럼 봄을 상징하는 꽃들이 또 있을까.
특히 유년기의 추억이 깃들어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진달래꽃. 오늘은 온 산을 빨갛게 물들이며 불타오르는 진달래꽃(참꽃)과 철쭉에 대해 글을 써 보련다.
우선 참꽃의 뜻을 알고 싶어 사전을 찾아보았다. 진달래(명)는 철쭉과에 딸린 갈잎 떨기나무이다. 키는 30cm-3m. 작은 가지가 많이 갈려 나와 벋으며 가지와 잎에는 가느다란 털이 났다. 잎은 길둥글거나 또는 거꾸로 된 버들잎 모양인데, 톱니가 없고, 양면에 혹 모양의 비늘조각이 흩어져 있으며 잎에 앞서, 4월에 연분홍색 꽃이 3-5 개씩 가지 끝에 피는데 매우 아름답다. 꽃부리는 깔때기 모양이며 끝이 다섯 갈래로 얕게 째진다. 열매는 삭과(朔果)로 산간 양지에 나는데, 우리 나라 각지 및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정원수. 관상용이며, 꽃은 ‘참꽃’ ‘진달래꽃’이라 하여 아이들이 따 먹기도 했다고 한다.다른 말로 두견(杜鵑). 두견화(杜鵑花). 산척촉(山擲躅 )이라고도 불린다.
이번엔 참꽃의 뜻을 신기철. 신용철의 <새 우리말 큰사전>에서 찾아보았는데, 참꽃(명사) 은 먹는 꽃이라는 뜻으로 ‘진달래’를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었다.
학교 교정에는 강렬한 햇볕을 받아 진달래는 벌써 지고 철쭉이 피어났다.
꽃과 여인은 서로가 잘 어울리는 대상 같다. 그러기에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에게 한 아름의 진달래꽃을 꺾어 바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시 ‘진달래꽃’에서 시적 화자는 자기를 버리고 갈 자신이 있을 정도의 님이라면 발 밑에 가득 뿌린 진달래꽃을 짓밟으며 가보라고 한다. 이는 절망의 극한에 이른 여인의 저항 정신이 깔려있는 마음을 시의 형식을 빌려 가장 한국적으로 잘 표현한 서정시의 한 본령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때는 신라 시대 성덕왕(702~737) 재임 시대였다. 왕의 명을 받아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과 그의 아내로 수로(水路)부인이 있었다. 가마를 타고 가는 길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고잠시 쉬어가는 도중이었다. 아름다웠던 수로부인의 눈엔 천 길이나 되는 높은 절벽 위에 핀 예쁜 철쭉 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에 가마를 메고 따르는 아랫사람에게 저 꽃을 꺾어 달라고 하자, 모두들 벼랑이 가팔라서 올라갈 수가 없다고 했다. 수로부인이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자 이에 맞은편에서 암소를 몰고 오는 한 멋쟁이 노인이 출현한다. 수로부인의 이 말을 들은 노옹(老翁)은 ‘제가 꽃을 꺾어다 드리지요.’ 하더니 가볍게 벼랑을 올라가서 철쭉꽃을 뚜욱 뚝 꺾어 내려와 수로부인에게 바치며 부른 노래가 바로 4구체 향가인 ‘헌화가’이다.
자줏빛 바위 끝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견우노옹의 獻花歌(헌화가)에서-
헌화가에서의 ‘수로부인’은 자기처럼 아름다운 꽃을 꺾을 용기가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즉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알고 그 미에 취하여 프러포즈를 해 올 남자를 기다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고향인 단양 대강 당동리에 살 때, 나는 산에 가서 참꽃을 꺾어오기는 했으나 먹어 본 기억은 없다. 참꽃은 먹어도 된다고 가르쳐 준 어른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엔 참 가난했고 먹고 살기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는데도 그 꽃으로 꽃지짐을 해 먹는 집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내 생각건대 비유하면 여성은 아름다운 꽃이요. 진달래는 아름다운 꽃이니 여성을 아끼고 위하듯 꽃을 함부로 대하지 말고 사랑하고 아껴주라는 뭇어른들의 보이지 않는 여성보호사상이 숨어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어린 나는 큰 앞 개울을 건너 채석장하다 그만 둔 양지 바른 서산에 참꽃을 따러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곤 했다. 참꽃 가지가지 분지르며 꺾다가 같이 간 옆에 있는 친구는 “무서운 문둥이가 나타나면 즉시 도망가야 한 대” “문둥이는 참꽃을 먹고 산다는데 우리가 나타난 걸 알면 우리도 잡아먹힐 수 있데” 라는 말을 듣곤 몇 송이 꺾다 두리번, 또 두 세 송이 꺾다 두리번 가슴을 두근두근 거리며 조마조마하게 참꽃을 꺾어서 산을 도망치듯 내려오곤 했었다.
친구나 동생과 함께 꺾어온 참꽃은 긴 암술이나 수술을 뽑아 끊기 싸움도 했다. 그리고 빈 병이나 빈 깡통에 담아 둔 적도 있었지만 뒷집 건너 뒷집에 살았던 순이를 조용히 불러내어 꽃을 건네준 적도 있었다. 순이는 초등 2학년 때 전학 온 반 친구였다. 참꽃과 순이는 너무 잘 어울렸다. 그러던 순이는 내가 4학년쯤 서울로 다시 이사를 갔다. 그래서 참꽃이 피어나는 4월이 오면 나는 서울 어디쯤으로 전학간 순이에의 그리움으로 내 가슴은 빠알갛게 물들곤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