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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장 바울이 유대인 앞에서 행한 복음 및 자신의 선교 사역체 대한 변론과 유대 군중들의 소요 및 공회의 소집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넓게는 21:17-28:31에 이르는 일련기사 곧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당시 제국의 수도 로마(Rome)에 이르게 되는 소위 바울의 로마 여행 과정을 기록한 일련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또한 좁게는 바울이 소위 유대교(Judaism)의 오류에 빠진 광신적 유대인들과의 갈등으로 무고히 체포된 때부터 마침내 가이사(Caesar)에게 직접 판결받기 위하여 미결수(未決囚)의 신분으로 로마 여행을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B.C. 58-60년까지의 대략 2년간의 과정을 기록한 21:17-26:32의 일련 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즉 본의 아니게 예루살렘에서 유대주의자들과 충돌하여 소요를 일으켜서 유대 율법 모독 및 사회 소요죄로 기소된 바울이 체포 직후부터 유대 군중 전체와 유대 공회 및 당시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유대 땅을 대리 통치하던 헤롯 가문의 분봉왕(分封王)과 로마 총독들 앞에서 수차 여수의 복음과 이를 전하는 자신의 사역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변론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가진 로마 시민권(Roman Citizenship)의 특권의 하나인 가이사 곧 로마 황제에게 직소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 결과 미결수의 신분으로 로마 여행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일련 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이 21:17-26:32까지의 일련 기사는 사소한 세부 내용의 차이는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유대교의 오류에 빠져 주의 복음과 이를 전하는 초대 교회를 곡해한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율법모독자 및 로마 식민 사회의 파괴자로 무고히 기소당한 바울이 수차에 걸쳐 주의 복음과 자신의 사역을 변론하다가 마침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결과 로마로 이송되게 되는 과정을 묘사했다는 점에서는 그 전체적 맥을 같이 한다. 이에 본고(本藺)에서는 먼저 이 일련기사의 전반적 내용 전개를 요약하고 그 전체적 배경과 전반적인 구속사적 의의만 요약하기로 한다. 따라서 본장 자체의 내용과 그 세부적 의의에 대해서는 본장의 해당 강해주석을 보라.
이제 21:17-26:32까지의 내용 전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21:17-40은 이제 마지막 선교 여행이었던 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귀환한 바울이 본의 아니게 소동에 휘말렸던 사실을 보도한다. 즉 바울은 우리 주 예수 안에서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 시대에서 신약 시대로 바뀐 상황에서 구약을 성취 장한 신약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자신의 사역을 구약의 일부 내용에 인본주의적 전숭(tradition)까지 가미하여 유대인들만의 지상 구원을 주장혔던 유대교의 오류에 빠져 곡해한 나머지 하나님과 구약 율법을 모독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핍박하고자 하는 일부 광신적 유대인들의 오해를 구약 율법에 규정된 결례(潔禮)를 행함으로 무마하려고 하였다. 본문은 바로 그런 결케의 과정중애 여루살렘 성전에서 바울이 이방인을 성전 경내로 끌어들여 성전을 모독한 것으로 속단한 유대 군중들에 의하여 큰 소요(騷麗)에 휩싸임으로해서 본의 아니게 소요의 주역으로 로마 천부장애 의하여 체포된 과정을 보여 준다.
그리고 22:1-21은 바울이 체포 직후 유대 군중들 앞에서 행한 변론을 보도한다. 다음 22:22-23:11까지는 군중들이 계속 소요하자 바울의 문제를 유대 민족내의 종교 문제로 파악한 천부장이 유대 공회(Sanhedrin)의 소집을 요청하여 일단 바울을 유대 공회 앞에 세우자 이에 바울이 다시 한번 공회 앞에서 변론하는 중에 특히 당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리적 견해 차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신앙 곧 복음의 도를 교묘히 변론하고 나아가 유대주의자들의 견해 차이를 더욱 노출시킨 사실이 보도된다. 다음 23: 12-35은 일부 광신적 유대인이 바울 살해를 결심하자 로마 천부장이 일단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울을 당시 관할 총독이 거주하던 가이사랴(Caesarea)로 이송한 과정을 보도한다. 그리고 23:1-21은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당시 유대 총독 벨릭스 앞에서 벌어진 변사(辯士) 더둘로의 바울 고소와 이에 대한 바울의 변론을 소개한다. 다음 24: 22-27은 일단 바울에 대한 선고가 유예되고 마침 이때에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이 교체되었음을 보도한다. 다음 25:1-12은 바울이 재차 신임총독 베스도 앞에서 자신을 거듭 고소하는 유대인들에 대항하여 변론을 행하였음을 보도한다. 25:13-26:29까지는 신임 총독 베스도가 헤롯 가문의 잔존 분봉왕으로 당시 갈릴리 북부 지방을 다스리던 헤롯 아그립바 2세(Herod Agriba Ⅱ, A.D. 48-70)에게 바울 사건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 결과 다시 바울이 아그립바 앞에서 길게 예수의 도(道)와 자신의 사역이 종교적으로도 순수하며 더욱이 정치적으로도 로마 식민 정부에 대항하려는 것이 아님을 변론하였던 사실을 보도한다. 끝으로 26:30-32은 베스도 총독과 헤롯 아그립바가 바울의 무죄를 판정하였으나 바울이 기왕에 자신의 로마 시민권상의 특권을 이용하여 가이사에게 직접 상소(上訴)하였고 또한 바울을 석방하는 것보다는 로마로 이송하는 것이 당시 바울을 강력히 고소하는 유대주의자들과의 충돌을 피하는 길도 될 수 있을 것이어서 바울의 로마 이송을 최종 결정하였음을 보도한다.
이상의 문맥으로 전개되는 이 21:17-26:32까지의 일련 기사의 배경 또는 그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막 구속사(救贖史)의 시대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된 과도기적 상황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 구약을 은전히 계숭한 초대 교회 기독교와 당시 선민(選民) 유대인의 종교였으면서도 구약의 일부 내용에 인본주의적 요소까지 가미하여 정통 구약 신앙을 변질시킨 유대교(Judaism)와의 갈등을 이해하여야 한다. 물론 본문을 보면 바울을 직접 체포한 것은 로마군이었으나 이는 그 당시 유대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바울을 유대 율법의 모독자로 규정함으로써 유대 땅을 소란케 한 바울은 로마 정부의적이기도 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또한 정황상으로도 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지만 바울은 분명히 정치범으로 보다는 종교범으로 기소(起訴)되었었다. 사실 바울의 경우는 오히려 종교범인 동시에 정치범으로 처형된 예수의 경우보다 더 종교범의 비중이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사도행전 전체의 과정에서 볼 때에 다른 사도들보다도 더욱 이방선교에 힘썼던 바울(롬 11:13; 갈 2:8; 딤전 2:7)의 체포는 초대 교회와 유대교 간의 갈등의 일환이요 그 결정적 사건으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바울의 체포 사건 전 ․ 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히 초대 교회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을 이해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제 21장 구속사적 개관에 약술(略述)하였는바 이를 꼭 참조하라.
한편 우리는 이상의 바울의 체포 이후 로마 이송까지의 기사를 전반적으로 고찰할 때 다음 두 가지의 구속사적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예수의 복음(福音)과 이방 선교 사역으로 인하여 대략 2년여에 걸친 투윽생촬중에 수차의 심문을 당하였지만 바울은 내내 추호의 흔들림없는 확신을 피력하며 오히려 그런 기회를 복음 증거의 기회로 삼았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행 16:25-34; 26:27-29; 28:23-31). 이 짧지 않은 기간 중에 바울은 수차 생명의 위혈을 당해야만 하였었다. 더욱이 그 자신이 유대인이기도 하였던 바울은 선민의 후손인 유대인으로서 유대인 사회로부터 축출되는 것이 곧 최고의 영원한 저주라고 생각되었던 그 시기에 전유대인들로부터 격렬한 규탄을 당해야만 하였었다. 그러나 바울은 나사렛 예수와의 만남 이후 성령의 인도로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구속사의 섭리를 웅축(難縮)한 복음의 절대성과 진정성을 확신하였는바 인간이 가하는 그 어떠한 육체적 사회적 핍박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천국 구원이라는 절대 영원의 진리와 은혜를 확신한 자는 잠시동안 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동요됨 없이 천국(天國)을 향하여 매진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롬 8:31-39).
둘째, 사도 바울이 이처럼 복음을 곡해 내지 핍박하는 유대주의자들에 의하여 무고히 갇혀 고통받은 것은 이 당시만으로는 다만 패배와 굴욕으로만 보였을 것이 다. 그러나 사도행전 전체와 나아가 초대 교회 역사 전체와 비교해 볼 때 이러한 바울의 고난은 먼저는 초대 교회 복음의 정당성을 전교회를 대표하여 변증하는 기회가 되었다. 나아가 바울이 미결수 신분으로나마 당시 제국의 수도었던 로마에 이르게 된 것은 궁극적으로 로마 교회(Church of Rome)의 기틀이 공고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우릭에게 위기를 통하여 오히려 구속사를 더욱 확장케 하는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함을 깨닫게 해 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복음과 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속사는 세상의 핍박을 능히 이기고 극복할 힘이 있다는 구속사의 생명력을 실증해 준다. 실로 바을 사건 이후에도 더욱 격화되어 갔던 전로마 제국의 엄청난 박해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관점에서는 비천하고 유약한 무리에 불과하였던 자들이 나사렛 예수를 믿었던 신앙 곧 기독교(Christianty)는 단순히 살아남은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로마 제국 전체를 복음화 시킴으로써 결국 박해를 이겨내었었다. 이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은 그저 단순한 신앙의 힘이니 기적이니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만다. 그러나 바로 그처럼 엄청난 핍박을 이겨낸 믿음의 선진들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성도가 된 우리에게 이는 그 이면(裏面)에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곧 구속사의 실체를 확립시켜 주는 산 중거인 것이다.
외울 말씀
14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애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행 22:14,15)
바울의 자기 변론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2 ○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예수의 도와 이방인 사역에 대한 변증
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유대 군중들의 소요
22 이 말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바울의 로마 시민권 주장
25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29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공회 앞에 선 바울
30 ○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본문 & 자료노트
도표-22:1-21 사도 바울의 전 6차에 걸친 변론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고소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정치적인 이유로서 바을이 예수의 추종자로서 백성들을 선동하여 소요를 일으키려 했다는 것이고(24:5), 다른 하나는 종교적인 이유로서 바울이 성전에 이방인들을 들임으로 결례를 범했으며 구약 율법과 배치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친다는 것이다(21:28; 24:5,
6). 이에 대한 바울의 변론을 모아보자.
대 상 내 용
1. 예루살렘 군중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경위 설명을 통해 기독교의 참됨 변증(22:1-21)
2. 산헤드린 공회: 부활 증거로 고소당함을 주장,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부활 논쟁 야기(23:1-10)
3. 벨릭스 총독: 죽은 자의 부활 등 그리스도의 교훈이 구약과 베치되지 않으며 성전 결례를 범치 않았음을 변론함(24:10-7)
4. 베스도 총독: 자신은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 결례나 가이사에게나 범죄한 적이 없음을 변론함(25:8-12)
5. 아그립바 왕: 기독교 개증 결위와 자신의 선교 활동에 관한 설명을 통해 기독교의 참됨과 자신의 무죄를 변론함(36:1-32)
6. 로마 거주 유대인 고관들: 죄인처럼 로마로 호송되어 온 경위와 자신이 가이사에게 호소코자 하는 이유를 변론함(28:16-22)
원어연구-22:10 정한 바․․․․행할 것
여기에 쓰인 헬라어 원문은 '테타크 타이‥‥포이에사이'이다.
'포이에사이'는 '행하다'라는 뜻의 '포이에오'의 부정사로서 '행하는 것'이란 뜻이다. '테타크타이'는 '탓소'의 수동태 완료형이다. '탓소'는 일차적으로 '자리에 놓다' 또는 '배치하다'라는 의미이다. 고전 헬라어에서 흔하게 나오는 이 단어는 원래 군사적인 용어로서 '(군대나 전함들을 전투대형으로) 정렬시키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런 의미애서 이 동사는 어떤 사람어게 어떤 임무를 '지시하다'(마 28:16). 또는 '임명하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고. 또한 불명료하고 불확실한 것들이나 계획들을 정리하고 정돈시킨다는 뜻이 되었다. 따라서 '탓소'의 수동태 완료형인 '태타크타이'는 '임명된 것', '정리된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께서 바울의 행할 임무를 미리 구체적으로 계획해 두셨다가 그것을 지시하신다는 뜻이다. 이 지시는 원어의 뜻을 생각할 때 군사적인 명령자 같이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탓소'가 과거 완료에 쓰인 것은 중요한 교리적 의미를 갖는다. 헬라어얘서 과거완료는 일반적으로 문맥 속에서 암시되는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 행위가 완결된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가 다메섹에서 들이킬 때 그의 행할 임무를 정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그전에 작정케 두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성경 여러 곳에서 그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롬 1:1; 고전 1:1; 엡 1:1). 비록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과 그의 성도들을 핍박하고 다녔으나 하나님은 그의 정하신 계획대로 바울을 부르시고 그가 행할 임무를 지시하셨다.
인물연구-22:3-21, 바울
롬 1장 연구자료 참조
난제해설-22:4-21 바울의 세 회심 기사의 차이
행 26장 자료노트 참조
역사배경-22:25-29 로마 시민권
사도 바울은 분명히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본문에서 보듯이, 자신을 채찍질 한 로마 군병들 앞에서 자신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로마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나면서부터 로마 사람이었다는 그의 말에 천부장도 놀라며 바울을 결박함으로 인해 두려워 하였다고 한다. 이 짧은 본문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 의문점들 즉. 유대인인 바을이 어떻게 로마 시민권을 지닐 수 있었는지 그리고 로마 시민권의 혜택이 무엇이길래 '로마 사람'이라는 말 한 마디에 천부장조차 그렇게 두려워 하는지 등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로마 시민권'에 대한 전반적인 사실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로마 시민권의 역사적 배경
초대 교회 당시 로마는 지중해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대제국이었다. 그 통치 영역 은 북으로는 고올(프랑스)과 독일,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 및 이집트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로마는 어느 지역을 정복하든지 간에 그 지역에 좋은 도로들을 건설하고. 공공 사업을 벌였으며, 행정 관리들을 임명했다. 그리고 때때로 정복 지역의 유지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피정복인들의 반발심을 무마시켜서 로마의 지배에 순순히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나아가서는 로마 제국 전체 시민들의 화합을 도모하키 위해서 였다.
2. 로마 시민킨의 취득 방법 및 특권
로마 시민권은 로마인은 물론이고 로마인이 아니더라도 국가 유공자에게 주어졌으며, 금전으로 살 수도 있었고 또한 세습되기도 하였다. 본문에서 천부장은 돈을 주고 산 경우이고 바울은 세습받은 경우이다. 바울이 나면서부터 로마 사람이었다는 말은 곧 바울의 아버지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바울의 가문이 어떻게 로마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얼으나. 대강 세 가지의 추측이 가능하다.
① 다소가 B.C. 171년경에 로마의 시(市)로 편입되면서 일부 지식인들이 로마 시민으로 인정되었는데, 이때 바울의 가문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② 바울의 선조가 돈으로 시민권을 취득혔으리라는 것이다. ③ 바울의 선조 중 누군가가 로마 행정관이나 장군에게 큰 공헌을 한 대가로 로마 시민권을 얻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한편 로마 시민권을 지닌 사람들은 투표권을 가질 뿐만 아니라 시민권이 부여한 모든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로마 시민은 재판 없이는 구금이나 투옥될 수 없으며, 죄수의 고백을 강요하는 일반적인 고문 방법인 채찍질도 당하지 않았다. 만약 어떤 시민권자가 지방 통치자에게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고 생각되면 그는 로마 황제에게 상소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당시 세계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로마 제국의 시민권을 갖는다는 것은 그 막강한 혜택 때문으로도 큰 영광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3. 바울과 로마 시민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때나 그것을 내새우지 앓았다. 그는 다만 복음 전파시 위기에 몰렸을 때 자신의 안전만이 아닌, 복음의 확장을 위해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그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내보임으로써 채찍질을 면하고 안전하게 그 위기어서 벗어난 경우는 빌립보에서와 지금 본문의 예루살렘에서, 두 번이다. 또한 그는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로마에 있는 2년동안 자유롭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승에 따르면, 그는 참수당해 죽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지독한 고통이 따르는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모면하는 로마 시민권의 최후의 특권을 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바울은 이러한 로마 시민권자의 막강한 특권을 염두어 두고 당시의 사람들에게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성도의 권리를 천국 시민권으로 비유하여 설득력 있게 가르친 적도 있다(빌 3:27).
역사배경-22:4,5 초대교회 박해사
행 12장 연구자료 참조
역사배경-22:24-30 신약에 반영된 로마법
행 27장 자료노트 참조
22:1-21 유대 군중 앞에서 행한 바울의 변론
전장 마지막 단락(행 21:37-40)에서 우리는 바울이 천부장으로부터 자신을 변른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사실을 보았다. 이어 본문에는 바울이 흥분한 유대 군중들 앞에서 이방인 선교의 당위성과 이방인의 사도된 행동의 정당성을 변론하는 장면이 소개된다. 특히 바을 자신골 유대인의 입장애 서서 복음을 배척하고 성도들을 핍박혔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신학적 지식이나 논리보다 자신의 기적적인 계험을 간증함으로썩 호소력 있는 변론을 한다.
먼적 바울은 변론을 시작하면서 유대인들의 호응을 얻기 위하여 자신과의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였다(1-4절). 즉 ① 유대인들에게 친숙한 히브리 방언으로 증거하였으며(2절). ② 또 자신에 대해 소개하면서는 자기도 유대인의 혈통애서 태어난 자이고 어려서부터 정통 유대교에서 교육받은 자임을 확인시킨다(3절). ③ 그러고 자신이 유대교에 대한 열심으로 인해 복음을 핍박하던 자임을 강조한다(4절). 이어 바울은 이렇게 유대교에 철저하던 자신이 변화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였다. 첫째는 다메섹 도상의 체험에 대한 증거이다(5-11절).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변화한다는 극적인 반전을 간증하여 자신의 영적 변화를 더욱 크개 부각시키고 있다. 둘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던 체험을 간증한다(12-21절). 바울은 여기서 이방인 선교에 대한 사명이 자신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이루어졌음을 역설한다.
이로써 바울은 이방 선교의 당위성과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하나님의 뜻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자신의 회심 사건을 간증하면서 은연 중에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여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방인 선교에 동참할 것을 강조한다. 바울의 이런 간중은 처음에 호소력을 가지고 유대인들의 마음얘 파고 들었다. 하지만 이방인 선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민족적 편견에 사로잡혀 완악한 유대인들은 결국 바울의 간증죄 호소를 배척하게 된다(22,23절).
한편 이 변른외 내용은 행 9:1-19의 기사와 거의 같은 반복이고 아그립바 왕 앞에서 행한 변증(헹 26:1-23)과도 거의 유사하다. 물론 변론의 대상이나 상황에 따라 문채와 구조에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내용의 헥심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 이것은 배드로가 채험했던 환상과 고넬료의 성령 체험 사건이 반복하여 기륵된 것과도 유사하다(행 10:9-48; 11:5-18). 즉 이방인 선교의 시작을 위해 고넬료 사건이 중요하였던 것처럼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과 이방인 선교의 사명자로 부름받은 사실은 이방 선교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기사는 유대인 앞에서와 이방인 앞에서 계속 반복해서 언급되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의 본문에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나 성도는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철저한 믿음과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함을 교훈받게 된다.
22:1 부형들아. - 이 말은 스데반이 산헤드린에서 연설 중에 사용했던 호칭과 동일한 것으로서(행 7:2) 매우 공손하고 예의를 갖출 말이다(Toussaint). 그래서 공동 번역은 이를 '형제들과 선배 여러분'으로 번역하고 있다. 또한 이 호칭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의인'(14절) 등과 함깨 유대적 풍취를 강하게 나타내는 말이다(Longeneker). 이처럼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무리들 앞에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최선의 예절을 지키는 여유를 보여 주는데, 이것은 자신이 무작정 이스라엘의 전통을 훼방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과 아울러 이 자리에 모인 유대인들과의 동질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더욱이 이곳에는 제사장과 장로들도 함께 있었으므로 바울은 유대인들 모두를 향해 최대한의 경어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변명.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로기아'는 '~로서'의 뜻인 '아포'와 '말'을 뜻하는 '로기아'의 합성어로서 '말로 방어하는 것'이란 뜻이다. 이 낱말에서 현대의 '변증학'(apologetics)이라는 학술어가 생겨났다. 본서에는 이 말이 25:16에 다시 한번 나타난다. 한편 바울이 진술하려고 하는 바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유대인인 바울이 어떻게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다(2-5절). 둘째,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된 자신의 회심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6-16절), 셋째,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사실에 대한 설명이다(17-21절). 이처럼 바울은 복잡한 진술로써 청중을 회유하거나 혹은 그들의 환심을 얻으려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았고 또한 있는 사실을 감추지도 않았다. 단지 그는 자신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는지를 사실 그대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22:2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종용한지라. - 여기서 '히브리 방언'이란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람어화된 히브리어를 가리킨다. 행 21:40 주석 참조. 이처럼 유대인 바울은 무리들을 향하여 자신의 변명을 히브리 방언으로 하였는데. 이는 의외의 효과를 나타내며 무리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만일 바울이 당시의 세계 공용어인 렐라어로 이야기했어도 많은 사람은 바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Bruce).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히브리 방언으로 말한 것은 듣는 사람이 대부분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바을 자신과 민족적 동질성을 확인시켜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즉 당시 유대인들은 바울을 민족과 하나님을 배반한 배교자로 생각하고 분노하여 죽이려 했었는 바 바울은 유대인들의 상용어인 히브리 방언을 사용함으로써 바울 자신과 유대인들이 같은 유대인임을 공감케 하고 그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려 그의 말에 청종케 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 바울의 이러한 의도는 그대로 적중되어 유대인들은 웅성거림을 멈추고 바울이 무슨 말을 하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한편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 유대인들은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공용하였다. 그러다가 점차 히브리어는 사어(死語)가 되어 일부 문헌에서나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B.C. 2세기경부터는 아람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람어화된 히브리어가 일반인들의 구어(ㅁ語)가 되었다. 때문에 예수 당시에 생존했던 유명한 유대인 학자인 필로(Philo of Alexandria, B.C.20? -A.D.45?)조차 히브리어로 기록된 모세 오경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22:3 나는‥‥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 바울의 집 안에 대하여는 성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단지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유대 전승에 의하면 바울의 부모는 원래 갈릴리 지방의 조그마한 마을인 기살라(Gischala)에서 살았었는데 B.C. 1세기경 로마가 팔레스틴을 페허로 만들 즈음에 다소(Tarsus)로 피신했다고 한다(Jerome). 그런데 바울이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25-29절; 행 16:37,38) 그의 집안이 상당한 재물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그가 태어난 다소는 소아시아 남동쪽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는 길리기아 지방의 한 도시로 당시에는 정치, 경제, 사회, 학문적으로 왜 융성한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직물과 천막 제조로도 유명하였는데 아마도 바울의 직업인 천막 제조업도 이와 관련이 있은 듯싶다(행 18:3). 행 9:11 주석 참조.
가말리엘의 문하에서‥‥열심하는 자라. - 바울의 스승 가말리엘(Gamaliel)은 바리새파 중에서도 진보주의파로 통하는 힐렐(Millet) 학파의 대표자인 힐렐의 손자이다. 그는 '랍비'(나의 선생)보다 더 높은 칭호인 '라반'(우리의 선생)이라는 칭호를 받을만큼 덕망 높은 율법 학자였다. 행 5:34주석 참조. 그리하여 그의 교훈들은 람비들의 율법 해설서 미쉬나(Mishnah)에도 인용되어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 문하에서 율법을 배웠다는 것은 누구보다 율법에 정통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부인할 수 없는 유대인이자 율법에 정통한 자임을 주장함으로써 자신이 자기 앞에 모여 있는 무리 중 누구보다도 더 신실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음을 강조한다(고후 11:22-29; 갈 1:14; 빌 3:4-6).
22:4 이 도를 핍박하여. - 여기서 '도'란 기독교 신앙을 의미한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이 도를 신봉하 않았을 때에는 기독교를 핍박하여 예수 맏는 사람들을 죽이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이 도를 알지 못해 도리어 핍박한 자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무리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것보다 훨씬 더 열심이었음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은 바울의 고백 내용은 스데반을 죽이고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진멸할 때 각 집에 들어가 예수 믿는 자들을 끌어다가 옥에 넣었던 그의 이전의 행동에 잘 나타나 있다(행 7:58-8:3).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에 괴수'(딤전 1:15)라고 한 것은 이전에 자신이 한 이러한 행동에 대한 죄책감도 작용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22:5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 바울은 자신이 무리들에게 행한 고백 내용에 권위를 더하기 위하여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내세웠다. 사실 유대인 사회에서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이들보다 더 권위를 지닌 증인들을 생각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실제로 바울은 산헤드린 대표인 대제사장의 공문서를 가지고 다메섹으로 향했었다(행 9:2). 그런데 바로 그때 노상에서 예수를 만남으로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행 9:4-6). 한편 행 9:2에는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본절에는 장로들까지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바울이 받은 공문서가 대제사장 개인 명의로 받은 것이 아니라 산헤드린을 전체 대표하여 받은 것을 의미한다. 다만 대제사장은 산헤드린의 의장으로서 공회원들을 대표하여 책임지고 서명했을 것이다.
다메섹 형제들에게. - '다메섹 형제'란 다메섹에 살고 있던 유대인 동족들을 가리킨다. 한편 다메섹(Damascus)은 헤르몬산 남서쪽에 위치한 해발 671m의 높은 평지에 있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존속된 도시로 아브라함 때부터(창 14:15; 15:2) 성경 역사에 언급되고 있다. 아람인들의 도시였던 이곳은 다윗(삼하 8:6) 때에 이스라엘의 조공국이었다가 솔로몬 시대에 독립을 하였다(왕상 11:24,25). 그 후 한 때는 북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조공을 받았으나(왕하 10:32) 여로보암 2세(B.C. 793-753)에 의하여 점령당하였다(왕하 14:28). 그 후로는 앗수르와 바벨론, 바사에 의하여 점령되었고 폼페이우스(B.C. 105-48) 시대부터 로마에 귀속될 때까지 잠시 독립을 누렸었다. A.D. 1세기경에 이곳에는 약 30~40개의 유대인 회당이 있었고 4만 정도의 유대인이 정착해 있었다고 한다. 다메섹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에 대하여서는 행 9:2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공문. - 여기에서 '공문'이란 기독교인들을 색출해서 예루살렘으로 호송할 권리를 바울, 즉 이전의 사울에게 위임한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의 위임장을 가리킨다. 이처럼 과거에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그에게 기독교 박해의 공적인 권리를 부여한 것을 볼 때 바울이 기독교를 박해하는 데 얼마나 열성적인 인물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그가 누구보다도 예수를 사랑하는 인물로 변모케 되었고 또 지금 수많은 유대인들과 로마 군병들 앞에서 예수를 증거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놀라웁기 그지 없다(롬 11:33).
거기 있는 자들. - 이들은 스데반의 순교 후 몰아친 핍박 때문에 각지로 흩어진 예루살렘 성도들(행 8:1) 중 다메섹으로 피난하여 모여있던 자들을 가리킨다(Bruce).
형벌받게 하려고. - 여기서 형벌이란 채찍질일 수도 있고 투옥이나 사형일 수도 있으나 정확히 어느 것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 이 말은 신약에 두 번 밖에 나타나지 않지만(행 26:11) 70인역(LXX)과 고전의 문헌에서 흔히 사용되었다(Heryey). 아무튼 이 '형벌'이란 개념에는 이 모든 것이 포함됨을 유념하여야 한다. 실제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신앙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갖은 고초를 당하였다(히 11:36-38).
22:6 오정쯤 되어 홀연히 큰 빛이. - 바울이 다메섹 도상(道上)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장면에 대한 회상이다(행 9:3). 그러나 그때의 시각이 오정쯤이었다는 것과 자기에게 비친 빛이 매우 강하였다는 사실은 본절에만 언급되어 있다. 사실 그 빛은 태양 광선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빛나고 강렬했기 때문에 그 빛에 비춰 바울은 사흘 동안 눈이 먼 상태로 지내야만 했었다(행 9:8,9).
22: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 공동번역서는 '땅에 엎드러져'를 '땅에 거꾸러져'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에게 비쳤던 빛이 단순히 빛나고 강렬한 것만 아니라 강한 힘으로 바울을 꼼짝 못하게 무력화시켰음을 강조해 준다.
사울아 사울아. - 사울(Saul)은 바울의 히브리식 이름이고, 바울(Paul)은 사울의 로마식이름이다. 이 중 '사울'은 '(하나님께) 간구하다'란 뜻이며 '바울'은 '작은 자'란 뜻이다. 행 13:9 주석 참조. 한편 이같은 예수의 부름은 자신을 핍박하는 자에 대하여 분노하시므로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너무도 사랑하시므로 그 영혼을 위해 부르시는 간절한 외침이다. 이와 비슷한 하나님의 모습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창 22:11)와 사무엘을 부르실 때(삼상 3:10)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22:8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 - 행 9:5의 표현과 동일한 묘사이나 여기서는 예수라는 이름 앞에 '나사렛'이라는 지명이 첨가된 것이 독특하다. 이는 아마도 당시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상당히 흔하였으므로 바울에게 나타난 예수는 나사렛 출신 예수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이러한 '나사렛 예수'라는 명칭이 지니는 의미에 대하여서는 요 1:45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22:9 빛은 보면서도…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 본절은 일견 행 9:7과 상반된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라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모순이라기보다는 보완적 관계로 이해함이 옳다. 즉바울 주위의 사람들은 빛을 보기도 하였고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것이 예수의 계시인 줄 알지 못하였고 들리는 소리의 구체적인 의미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바울은 예수를 보고 그 하신 소리를 들은 것이다. 행 9:7 주석 참조. 실로 이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뵙고 그분의 음성을 들은 것은 오직 사도 바울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Hervey).
22:10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 본문의 기록은 행 9:6의 경우보다 더 상세하다. 즉 행 9:6에는 바울로 하여금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한 명령만이 언급되어 있는데 반해 본절에는 바울의 질문이 언급되어 있어 그가 개심한 과정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즉 바울의 물음은 일전에 베드로의 설교에 마음의 가책을 느낀 유대인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뉘우친 것과 유사하다(행 2:37). 한편 바울의 물음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하나는 유대인으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일에 동참한 죄를 뉘우치는말이란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의 제자들을 핍박한 죄를 뉘우치는 말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과거를 뉘우치는 동시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묻는 물음으로서 진정한 회개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누가 이르리라. - 바울의 회개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시사해 주는 구절이다. 즉 지금까지 바울을 지켜보신 예수께서는 때가 되므로 그를 부르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바울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과 만날 사람까지도 구체적으로 일러주신 것에서 잘 알수 있다.
22:11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 행 9:8,9에서 볼 수 있듯이 바울에게 집중적으로 비췬 빛은 너무나도 강렬하여 그의 눈을 사흘이나 멀게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 빛이 단순한 태양빛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빛이었음을 증거해 준다. 아마도 그러한 초자연적 현상은 바울의 완고한 심성을 완전히 깨뜨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22: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 - 아나니아 역시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까지는 정통 유대교도였음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즉 아나니아는 율법의 규정들을 비교적 성실히 준수하므로 유대인들의 칭찬을 들었던 것이다.
아나니아. - '아나니아'(Ananias)는 히브리어 '하나냐'(Hananiah)의 헬라어 음력으로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행 9:10 주석 참조. 그런데 바울이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아도 흠없고 온전한 자인 아나니아와 자신의 개심을 관련시키고 있는 것은 자신의 개심이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라고 추측된다
22:13 형제 사울아…쳐다 보았노라. - 이 구절은 바울이 자기 앞에 모여 있는 유대인 무리들에게 다메섹 도상의 일로 인해 눈멀어 있던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온 사람이 누구인가를 주의깊게 알리려는 대목이다. 즉 아나니아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울이 이방인을 위해 택함 받은 당신의 그릇이라는 말씀을 듣고서는 자신의 그릇된 선입관을 버리고 사울에게 찾아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시력을 회복하게 해준 사실은 행 9:10-18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한편 여기서 '그를 쳐다 보았노라'는 말은 '나는 시력을 회복하여 그를 쳐다보았다'(I received my sight and saw him, RSV)는 뜻인데(Robertson) 이것은 잃었던 시력의 회복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바울의 거듭남, 즉 중생까지도 의미한다. 실로 바울은 시력을 회복한 후 이전과는 다르게 사물을 바라보게 되었고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대하는 새 사람이 된 것이다.
22:14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 행 9:17에서 바울은 단지 세례만 받았다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당시 상황을 보다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즉 이때 바울은 세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후의 자신의 진로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들었던 것이다. 한편 바울이 자신의 회심 과정에 대하여 유대인들에게 설명함에 있어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매우 고심한 흔적은 본절에서도 나타난다. 즉 처음에 그는 의도적으로 히브리 방언을 사용하여 그들을 놀라게 하였고(2절), 또 자신을 정통 유대인이자 율법에 대하여 잘 아는 자로 소개하였다(3절). 그리고 자신의 회심과 관련된 인물인 아나니아에 대하여는 유대인들도 칭찬하는 자임을 강조했다(12절). 그런데 이제는 아나니아의 말을 빌어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란 말을 함으로써 그들과 자신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섬기는 같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또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너를 택하여. - 여기서 '택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케이리조'는 '무엇을 미리 준비시켜 놓다', '미리 선정해 두다', '쓸 수 있게 준비해 두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로서 신약에서는 여기와 행 3:20, 그리고 행 26: 16에서만 사용되었다. 이것은 바울의 소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정에 의한 것임을 강조해준다.
알게 하시며…보게 하시고…듣게 하셨으니. - 하나님은 바울을 부르신 후 이처럼 그에게 세 가지 일을 체험하게 하셨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하신 점이다. 즉 바울은 이제까지 자신의 주관적 선입견에 따라 생각해 왔던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된 것이다. 둘째는 '의인'을 보게 하신 점이다. 공동 번역은 '의인'을 '죄 없으신 분'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즉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체험함으로 인해 확실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셋째는 부활하신 예수를 보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말씀을 듣게 하신 점이다(7-10절). 이리하여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대로 좇아 사는 그리스도의 일꾼, 즉 '사도'가 된 것이다(15절).
22:15 모든 사람 앞에서… 증인이 되리라. - 하나님이 바울을 택하여 그의 뜻을 알게 하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의 음성을 듣게 하신 목적은 이처럼 오로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당신의 증인으로 삼고자 하는 바로 이 한 가지 목적 때문이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의 자손들'(행 9:15)을 가리키는데, 이는 복음이 계급과 신분, 혈통과 성별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되어야 하는 것임을 시사해 준다. 한편 본절은 바울의 사명이 어디까지나 그의 보고 들은 바 예수에 관한 사실을 가감없이 증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준다. 따라서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복음을 전함에 있어선 자신의 사상이나 개인의 신념을 설파할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 가르쳐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증거해야할 것이다(갈 1:9).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 이 말은 문자적으로 '왜 이제 머뭇거리느냐'의 뜻이다. 즉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신앙의 결단을 촉구한 것이다. 사실 주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현존(現存)을 체험한 바울이 이제 그분과의 연합된 새로운 삶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데에는 전혀 머뭇거리거나 꺼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기에 아나니아는 그러한 신앙 고백적 의식인 세례를 받으라고 권면한 것이다.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 행 2:38에서와 같이 세례와 죄 씻음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 세례 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세례는 구원의 관문이 아니라 죄 씻음의 외적 표식인 것이다. 즉 예수 믿고 회개한 자가 자신의 믿음을 공식적으로 표하는 의식이 바로 이 세례인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행 8장 연구자료, '세례의 이해'를 보다 참조하라.
22: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 이때가 그의 첫 번째 방문, 즉 다메섹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 회심을 한 후 아라비아에서 3년을 보낸 다음 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한 때(행 9:26; 갈 1:17-19; Longeneker, Toussaint, Bruce)인지 아니면 안디옥 교회의 대표로 이방 교회의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때인 두번째 방문(행 11:30, Ramsay) 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전자의 견해가 유력하다.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 바울은 환상의 사람이었다. 즉 그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은 항상 환상을 통하여 이루어 졌는데(행 16:9; 18:9) 여기서 기도할 때에 또 하나의 환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환상은 성전에서 이루어졌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즉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였던 까닭에 유대인들은바울이 성전에서 환상을 통해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을 때 그 누구도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바울이 환상을 경험했을 때의 심리 상태를 묘사해 주는 말인 '비몽사몽간'에 대하여서는 행 10:10 주석을 참조하라.
22:18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 행 9:29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의 헬라파 유대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바울을 반역자, 변절자로 여기며 죽이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바울은계속 머물기를 원하였지만(19,20절) 그때 예수께서는 그의 증거가 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므로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게 된 것은 단순히 생명의 안전 도모만을 위한행동은 아니었다. 즉 예수께서는 바울을 이방인의 그릇으로 택하셨으니(행 9:15) 이제 그를 이방 땅으로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한편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론을좋아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헬라 문화의 중심지에서자란 바울의 학문과 그의 변론을 이길 수가 없었으므로그를 죽이려고 계획하였던 것이다.
22:19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때리고. - 바울 자신도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에는 자신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처럼 예수믿는 자들을 핍박하였다는 거듭된 고백이다. 4절 주석 참조. 각 회당에서. 마 10:17에 의하면 유대교에서 이탈한 자들은 회당에서 매를 맞았던 것같다. 이것이 회당장의 명령에 따라 행해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회심하기 전의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각 회당에서 찾아내기 위해서 자신이 그곳들을 방문했다거나 아니면 사람을 보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Hervey).
22:20 주의 증인. - '증인'에 해당하는 '마르튀스'( )는 오늘날 '순교자'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실제로 A.D.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되기 전까지는 로마 치하에서 복음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곧 순교를 각오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스데반 역시 광포한 유대인들에 의해 결국 순교당하였으니 바울이 스데반을 가리켜 '증인'(martyr. KJV, NIV)이라 언급한 것은 자연스럽다.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 아나이다. - 행 7:57-60에 의하면 바울은 직접 돌을 들어 스데반을 쳐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행 8:1에 의하면 바울이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한 것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바울은 스데반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스데반을 죽이는 데 찬성하였으며 저들의 옷까지 지키었으니 그 책임은 스데반을 직접 죽인 것 못지 않게 컸던 것이다. 행 7:58 주석 참조. 한편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주의 계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바울이 이같은 사실을 언급한 것은 그같은 행동을 한 자신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용납하리라고 생각한 것과 저가 어떻게든 예루살렘에 남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려 했음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 전도에 나서는 것이었다(21절).
22:21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 예수께서 재차 바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에게 이방 선교의 중대한 사역을 맡기기 위함이라는 사실이 본절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이방에 대한 복음의 전파가 그의 사명임을 분명히 확인받는 계기가 되었다. 여하튼 지금까지의 연설을 통하여 바울이 무리들에게 말하고자 한 바는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뜨겁고 열심 있는 광신적 유대교도였냐는 것과 아울러 지금 그 앞에 있는 유대인들처럼 기독교도에 대하여 핍박자였던 바로 그 때에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의 소명을 받았다는 점이다.
22:22-30 유대 군중의 소요와 바울의 로마 시민권 주장
본문은 채찍으로 맞을 위기에 처한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내세워 위기에서 벗어나는 장면이다. 바울은 앞단락(1-21절)에서 변론을 통해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며 이방인 선교의 당위성과 이방인의 사도된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역설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바울의 말에 경청하는듯했으나 완악했던 유대인들은 다시 소동을 일으키게 된다(22,23절). 즉 유대인들은 민족적 편견과 선민 의식에 찌든 편협한 신앙 때문에 이방인도 하나님을 그들과 동등하게 믿고구원받을 수 있다는 바울의 변론을 신성 모독과 유대 민족에대한 모욕으로 생각하여 바울을 죽이자고 부르짖은 것이다. 이에 히브리 방언을 모르므로 무리들이 소동을 일으킨 자초지종을 알 수 없었던 로마의 천부장 루시아는 유대 군중을 일단 무마하는 동시에 사태의 실상을 알고자하여 바울을 채찍질 하고자 하였다(24절). 그러나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임을 내세워 채찍 맞을 위기를 모면하고(25-29절) 이튿날 산헤드린 공회에서 정식으로 자신을 변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게 된 것이다(30절).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노예나 비로마인이 죄인으로 잡힐 경우에는 쇠조각이나 뼈조각이 달린 가죽 채찍으로 채찍질당하며 심문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비록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 죄의 형벌이 확정되기까지는 어떠한 가혹 행위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었다. 그리고 만일 이 법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그는 중벌을 면치 못했다. 본문에서 천부장 루시아가 바울을 결박한 이유로 두려워한 것도 바로 이러한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
하여튼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적절하게 활용함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바울이 단순히 육체적 고통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육체적 고난도 마다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유대인들에 의해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고후 11:24,25), 로마 치안관에 의해서도 매를 맞은 적이 있다(행 16:22-24). 결국 여기서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사용하여 위기를 모면한 것도 복음을 위한 것이었다. 즉 그는 무모하고 이유없는 채찍질을 모면하여 육체를 보존함으로써 장차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그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 전도자는 물러설 때와 나설 때를 잘 판단할 줄 알아야 하며 모든 일과 행동이 복음에 유익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2:22 이 말하는 것까지…살려 둘 자가 아니라. - 지금까지 바울의 연설을 조용히 듣고 있던 유대인들은 바울이 이방 선교에 대한 사명감과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얘기하자 다시 소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소동의 근본적 이유는 이방인 선교에 관한 바울의 말이 유대교 신봉자들인 유대인들에게는 완전히 배교적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Longeneker). 즉 바울의 말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는 것으로서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동일한 차원에서 다룬 것이다. 이는 사실 자신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선민(選民)으로, 메시야 왕국을 자신들의 독점물로 생각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자존심을 심하게 건드린 것이었다. 이것은 바울의 열성과 조리를 다한 변명도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음과 아울러 배타적이며 완고한 선민 의식과 이방인에 대한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상민이다. 한편 예수께서도 나사렛 회당에서 이와 유사한 말씀을 하시다가 유대인들에게 내어 쫓김을 당한 적이 있으셨다(눅 4:25-29).
22: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 이와 같은 행동은 '그를 세상에서 없이 하자'(22절)는 그들의 의사를 기필코 이루겠다는 표시이다(Lenski). 특히 옷을 찢거나, 벗는 것 또는 티끌이나 재를 덮어쓰거나 일으키는 따위의 행동은 극한 감정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구약에서는 대개 '수치'나 '비통', '울분', '애통함' 등을 나타내는 행동으로 자주 나타난다(창 37:29; 수 7:6; 삼하 16:13; 욥 2:12; 겔 27:30; 계 18:19). 혹자는 유대인의 이런 행동을 바울의 언사(言辭)를 신성 모독적 행위로 간주, 그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한다. 그 가운데서도 '티끌을 공중에 날린 것'은 바울을 향해 던질 돌이 부근에 없었기 때문에 그 대신에 바울이 있는 쪽으로 티끌을 일으킨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Preuschen).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바울 주위에 로마 병사들이 지켜서 있기 때문에 설사 돌이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다만 어떻게 할 수 없어 이를 가는 분노의 표현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처럼 그릇된 편견에 빠져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신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한 자들은 진리를 외치는 자를 마치 진리를 왜곡하는 자로 간주하는 큰 오류를 범하였다. 또한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범하는 오류를 진리를 지키는 최선의 행위로 오인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에게 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 영안이 없었기 때문이다(행 7:51-6).
22:24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 헬라어 밖에 모르는 천부장은 바울의 히브리 방언(2절)을 이해하지 못하여 무리들의 떠드는 모양만을 보고 바울이 무슨 중죄인인 줄로 단정한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바울을 빨리 군영으로 연행하여 고문을 가해 죄를 자백시키려 했을 것이다(Longeneker). 여기서 채찍은 가죽 끈에다 쇠조각이나 뼈를 매단 것으로 심하게 맞을 경우 불구자가 되거나 죽기까지 하였다(Toussaint). 한편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범죄자의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즉 노예들과 비로마인이 범죄했을 경우엔 가죽 끈에다 쇠조각이나 뼈를 매단 채찍으로 채찍질당하며 심문당하였다. 그러나 로마 시민권을 지닌 자가 범죄했을 경우에는 비록 그가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 죄의 형벌이 확정되기까지는 어떠한 가혹 행위도 금지되었다. 따라서 천부장이 바울에게 채찍질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은 아직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25점). 또한 당시 태형 판정을 받은 사람은 옷을 벗기운채(행 16:22) 두 손은 가족 판으로 기둥에 묶여졌다. 이와 같은 혹독한 태형은 플라겔룸(flagellum)이라고 불리워졌는데 마 27:26과 요 2:15에서도 이같은 말이 나타난다(Hervey, Bruce). 훗날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선교 활동 중 매를 맞는 고난을 많이 당했음을 알 수 있는데,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당했으며 세 번은 태장으로 맞고 한 번은 돌로 맞았다고 하였다(고후 11:24,25).
22:25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 등에 채찍질을 하기 편하게끔 기둥에 몸을 묶고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려 앞으로 굽히게 하고 두 발도 묶은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로마인들이 죄수를 고문하여 자백을 얻어낼 때 즐겨 사용하던 방법 중의 하나였다(Robertson). 로마 사람된 자를 채찍질할 수 있느냐. - 당시 로마 시민은 정당한 사유없이 고문당하는 것을 면제받았다. 이것은 아구스도 칙령(Edicts of Augustus)에 의해 확정되었다. 그리고 이후 보다 발전된 발레리안과 포르시안법(Laws of Valerian and Porcian)에는 로마 시민의 소송에 있어서는 고소가 우선 상정되어야 하고 그 후에 형벌을 가할 수 있도록 명시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만일 이 법을 어기고 함부로 채찍질을 가할 때는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또한 일단 정식으로 고소가 상정되면 로마 행정관과 그의 고문단 앞에서 공청회를 갖도록 줄리안법은(Lex Julian) 규정하고 있다(Longeneker). 그러므로 병사들이 자신을 채찍질하려고 가죽 끈으로 맸을 때 평상시 이같은 법을 잘 알고 있던 바울은 병사들을 통솔하는 백부장에게 로마 시민인 자신이 정당한 재판도 받기 전에 이렇게 대우받는 것이 합법적인가를 물었던 것이다. 이처럼 바울이 부당한 대우를 받기 앞서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힌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아마도 바울은 내심 로마 황제에게 소송을 제기하고(행 26:21) 그로 인해 로마로 가고자 마음 먹은 것 같다(행 19:21; 23:11).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로마의 시민권자임을 미리 밝혀 둘 필요을 느꼈을 것이다.
22:26 천부장에게 전하여...어찌하려 하느뇨. - 바울이 로마 시민임을 안 백부장은 매우 놀라 천부장에게 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무고한 로마 시민을 결박하여 채찍질을 가하는 것이 현행법을 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명백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어찌하려 하느뇨'라는 말에서 백부장이 얼마나 놀라고 당황해 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그는 자신들의 행위가 문제될 소지가 다분함을 염려하여 천부장에게 대책을 물은 것이다.
22:27 천부장이 와서…네가 로마 사람이냐. - 천부장의 위치에서 피의자(者)에게 무엇을 물어볼 일이 있을 경우에는 사람을 보내어 피의자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백부장의 보고는 너무나 중대하였기에 천부장은 바울을 자기에게로 데리고 오도록 명령할 경황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친히 바울에게로 달려가 그가 정말 로마 시민인지의 여부를 물었다. 당시 로마의 시민권자임을 가칭하는 경우 그 사실이 탄로되면 사형에 처해졌다. 여기서 천부장이 바울에게 물은 '네가 로마 사람이냐'(쉬로마이오스 에이)에서 '네가'(쉬)의 위치가 강조적인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천부장은 매우 놀라고 당황해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천부장의 질문에 대해 바울은 황급히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 보이는 대신 그냥 매우 간단 명료하게 '그러하다'라고 답하였다. 이것은 천부장으로 하여금 바울로부터 어떤 증명서나 그밖의 것을 확인할 생각조차 미처 들지 못하게끔 위압감과 중압감을 주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한편 당시 로마 사람들은 '토가'(toga)라는 긴 옷을 입음으로 자신들의 신분을 나타내었다(Longeneker). 그러나 이 옷은 평상시 입기에는 너무 불편하므로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만 착용하였다. 더군다나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또한 자신의 신분을 자랑하기보다는 복음 전파에 여념이 없었으니 거추장스런 의복보다는 평상복을 착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천부장이나 백부장이 바울의 겉모습만 보고서 그가 로마 시민임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22:28 돈을 많이 들여...시민권을 얻었노라. - 당시 로마 시민권은 로마 사람이 아니고서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중요한 특권이었다. 즉 이 시민권은 로마를 위해 훌륭한 업적을 쌓는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주어지던 것으로서 이것을 소지한 사람은 상당한 명예와 부를 누렸었다(Longeneker).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이 시민권은 뇌물에 의해 사고 파는 경우가 있었는데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가 통치하면서 이같은 기회가 더욱 확산되었다. 그 이유는 글라우디오 황제의 황후 메살리나(Messalina)와 황제의 장관들이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시민권을 고가로 팔았기 때문이다(Robertson). 본장 자료노트, '로마 시민권' 참조. 한편 천부장의 이름은 글라우디오 루시아(Claudius Lysias)인데(행 23:26) 그의 씨족명이 글라우디오인 것으로 보아 글라우디오 황제(A.D. 41-54) 당시에 시민권을 샀던 것으로 여겨진다(Bruce). 또한 그의 이름이 헬라 이름인 루시아인 것으로 보아 그가 헬라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천부장은 많은 돈을 들여 시민권을 샀는데 군중들에게 잡혀 고초당하고 있던 바울 역시 로마 시민권자임을 알고서는 매우 놀라고 당황해 하고 있다.
나면서부터로라. - 이 말은 바울의 아버지가 로마 시민권을 지닌 자였기 때문에 바울 자신은 생득적(生得的)으로 시민권을 취득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가문이 언제 어떻게 시민권을 소유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단지 람세이 (Ramsay)에 의하면 바울의 출신지인 다소(Tarsus, 행 21:39)가 헬라의 시(市)로서 로마의 행정에 편입되고 다소와 길리기아 지방의 엘리트 중 다수가 로마 시민으로 인정되었던 B.C. 171년에 바울의 가족도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의 조상 중 한 명이 북부 팔레스틴의 기살라(Gischala) 지역(3절 주석 참조)이나 다소에서 귀중한 공헌을 함으로써 그 대가로 로마 시민권을 수여받았으리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Longeneker).
22:29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 바울의 신분이 밝혀지자 그를 신문(訊問)하려던 자들은 물론 최고 명령권자인 천부장도 매우 두려워하였다. 왜냐하면 정식 재판에 회부하여 판결을 받지 않고서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을 결박하고 매질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었다. 25절 주석 참조. 그래서 천부장은 자기들에게 닥칠 상부의 문책을 피하기 위하여 후에 허위 보고서를 총독에게 보내게 된다(행 23:26-30).
22:30 온 공회를 모으고. - 천부장은 바울의 결박을 풀어 주기는 하였으나 밤중 동안에 그를 안토니아 요새 안에 감금하였을 것이다(Hervey). 이것은 다음날 공회를 열어 바울을 심판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공회'란 산헤드린 공회를 가리키는데 천부장의 조심스런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즉 일개 로마군의 천부장으로 그는 유대인들의 자치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의 심의 과정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본서 14권 신약 총론, 신약 시대의 사회 · 문화적 배경, '산헤드린 공회'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토록 청원한 이유는 첫째, 로마의 관원으로서 예루살렘 성읍의 치안 유지에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Longeneker). 둘째, 이 사건을 종교적인 문제로 생각하여 이 사건의 진상은 유대교의 최고 사법 기관에서 밝혀야 할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Toussaint). 아무튼 천부장의 조치에 의해 바울은 공회 앞에서 변명할 기회를 얻었지만은 산헤드린의 구성원은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었다. 따라서 산헤드린은 반기독교 집단이었고 그곳의 심리가 바울에게 불리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천부장은 미처 그것까지 생각하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한편 예수께서도 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신문받으셨고(마 27:1), 베드로나(행 4:5), 스데반도(행 6:12) 공회에서 신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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