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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장 일곱 대접 재앙의 실시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넓게는 현 우주와 역사의 결정적 종말이 최종 도래하기 직전의 말세에 있을 상당 기간의 범우주적 대환난(大患難)에 대한 일련의 묵시들의 연속 부분이다. 즉 상호 점진적으로 강도를 더해가면서 연속되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 등 일련의 삼대 7중 재앙의 묵시(黙示)를 보도하는 제 4-18장까지의 일련 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또한 본장은 좁게는 제 15-16장에 걸쳐 이어지는, 삼대 7중 재앙 중 마지막 7중 재앙인 일곱 대접(bowl) 재앙을 보도하는 일련 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이런 문맥하의 본장은 이 일곱 대접 재앙도 하늘의 하나님에 의하여 주도되는 재앙으로서 마침내 현 세상의 최종 파국에 직결되는 마지막 재앙임이 선포되고 또 그 개시를 위한 준비가 최종 종료된 상황을 보도한 앞의 제 15장에 이어, 그 일곱 대접의 재앙이 첫째에서 일곱째 대접 재앙까지 실제로 집행되는 장면을 보도한다. 이러한 본장은 본장에 이어서 일곱 대접 재앙으로 일단 도래된 현 세상 문명의 파국을 다시 집중적으로 보여 주는 묵시 곧 큰 음녀 바벨론의 멸망의 묵시를 삽경(播景)으로 보여 주는 제 17-15장과 연속되기표 한다.
이러한 본장의 내용은 각 대접의 재앙별로 그 문단을 자연스럽게 구분할 수 있다. 또한 본장의 내용은 이제 서로 강도를 더해가며 점층적으로 연속된 삼대 7중 재앙을 보도한 일련 기사 중에서도 가장 최후의 그리고 가장 강력한 재앙들로서 마침내 현 세상 문명의 파국에까지 직결되는 최후의 대재앙에 대한 기사라는 특성도 있으나 그 역시 본장 전체는 물론 각 문단별로도 개별적 의의를 갖고 있기 보다는 모두가 함께 삼대 7중 재앙을 구성하는 일부로서의 의의가 더욱 크다 하겠다. 따라서 세부 문단 구분과 각 문단별 의의는 해당 강해 주석을 참조하기로 하고, 본 개관에서는 이 최후의 일곱 대접 재앙이 여타 일곱 인 및 일곱 나팔 재앙과 함께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구속사적 의의만 개략하면 다음과 같다.
세상 끝 날이 최종적으로 도래하기 직전의 소위 말세(末世)에 상당 기간의 범우주적 대환난이 있을 것임을 보여 주는 일련의 묵시 전반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이들은 결국 성도에게 죄로 오염되어 필연적으로 종말을 맞을 현 우주와 역사의 종말과 심판 과정에는 실로 각 인생이 혼자 힘으로는 감당키 어려울 정도의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는 엄정한 사실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성도로 하여금 그 대환난 자체에 대해서는 물론 대환난 전․후의 전 구속사적 지평에 대하여 확고한 종말론적 인식과 각성을 가질 것을 경고함과 아울러 촉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겠다.
이런 말씀 앞에서 일차적으로 우리 성도 각자는 세상 끝날 직전의 대환난의 도래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여 평소 경건한 삶을 사는 동시에 신앙의 능력과 용기를 연단하는데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결단하게 된다(딛 2:12; 히 12:28; 벧후 3:11,12). 또한 그러한 대환난이 실제 닥칠 때 대환난의 겉모습만 보고 절망하지 말고 그 대환난의 이면 곧 이는 단순한 파멸과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현 역사를 종결시키시고 나아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도래시키기 위한 과정에 불과함을 확신하고, 성도에게 감당할 힘 이상의 시험을 허락지 않으시며 또 시험 당할 때 힘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추호의 흔들림 없이 끝까지 인내하여야 할 것을 각오하게 된다(고전 10:13; 히 3:14).
한편 궁극적으로는 이처럼 말세의 대환난과 죄로 오염된 현 역사의 최종적 종말을 분명히 선포하고 있는 성경 말씀 앞에서 우리는 태초 첫 사람 아담(Adam)의 선악과 범죄(창 3:1-7) 이후부터 겉잡을 수 없이 증폭되어온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과 공의성을, 그리고 그 절대성을 새삼 생생하게 각성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처한 오늘날의 세상이 그토록 엄청난 모순과 질고에 휩싸인 원인도 인간의 범죄에 있으며, 그 결과는 대종말의 심판임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태초에서 종말에 이르는 도도한 구속사(救贖史)의 도정에서 각자 처한 삶의 자리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의 확장을 위하여 이 세상 속에서, 그리고 이 세상 속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본향은 새로이 도래하고 있는 새 천국임을 늘 기억하여 천국을 지향하는 역동적 삶을 살 것을 거듭 결단하게 된다.
본문 & 자료노트
도표-16:1-21 애굽의 10대 재앙과 공통된 본서의 재앙
애굽의 10대 재앙: 본서에 기록된 재앙
1. 물이 피로 변함(출 7:14-25: 바닷물이 피로 변함(8:8,9; 16:3)
2. 개구리가 애굽 온 땅을 덮음(출 8:5,6): 개구리 같은 귀신의 영이 되롭힘(16:13,14)
3. 땅의 티끌이 모두 이가 됨(출 8:16-19): 언급 없음
4. 애굽 온 땅이 파리떼로 가득해짐(출 8:20-24): 언급 없음
5. 생축에 악질이 생김(출 9:1-6): 언급 없음
6. 사람과 짐승에게 독종이 발함(출 9:8-11): 헌데와 아픈 종기가 생김(16:2,10,11)
7. 불과 우박이 쏟아짐(출 9:23-25): 불과 피 섞인 우박이 쏟아짐(8:7)
8. 메뚜기로 인해 기근이 생김(출 10:1-19): 큰 기근이 닥침(6:5,6)
9. 애굽 온 땅이 어둡게 됨(출 10:21,22): 해, 달, 별이 빛을 읽어 어두워 짐(8:13)
10. 애굽의 모든 장자 및 초태생이 사망함(출 12:29):
악한 자들이 유황불에 던져짐(20:15)
원어연구-16:15, 복이 있도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마카리오스'( )로서 '복되다고 선언하다'라는 뜻의 동사 '마카리조'( )에서 '복있는', '복된', '행복한'이라는 뜻의 형용사이다. 헬라어 문법에서 형용사가 다른 명사를 수식하지 않고 독립으로 쓰일 때는 서술 형태로 해석된다. 때문에 본문에서도 '마카리오스'는 독립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복이 있도다'로 해석된다.
한편 '마카리오스'는 본래 일반 헬라어 문헌에서 신들이 누리는 행복을 가리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점차 부자들이 물질의 풍요로 인하여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게 되는 상태를 가리키게 되었다. 그리고 또 이 용어는 일종의 기원의 형태로 어떤 사람에게 복을 빌매, 또는 이미 복된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축하하고 칭송하는 말로서 사용되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서 이 용어는 대부분 인간이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모든 가치있는 것들보다 귀어난 보다 궁극적인 가치를 지닌 것들, 곧 구원, 영생,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에 참여하는 상태를 가리켜 사용되었다(마 5:3-12).
한편 성경은 그러한 복에 참여하는 자들은 세속 가치를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친국 복음을 듣는 자(마 13:16),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눅 12:37), 시험을 참는 자(약 1:12) 등이라고 말한다. 본문에서도 주께서 도적같이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의 옷을 입음으로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성결한 성도들을 가리켜 '복이 있도다'라고 선언하였다.
도표-16:1-21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의 전개 순서
본문에 기록된 일곱 대접 재앙은 구체적으로 짐승을 경배하고 우상을 섬기는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인 반면 8:7-11:19에 기록된 일곱 나팔 재앙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과 죄악된 세상 전체에 대한 심판이라는 점에서 뚜렷이 구별된다. 그러나 재앙이 각각에게 임하는 순서에 있어서는 서로 공통되는바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땅(8:7; 16:2)
2. 바다(8:8,9; 16:3)
3. 강, 생물(8:10,11; 16:4-7)
4. 천체(8:12,13; 16:8,9)
5. 불신자들(9:1-11; 16:12)
6. 큰 강 유프라데(9:13-21; 16:12)
7. 우주 공간(11:19; 16:17-21)
주요주제-16:1-21 계시록의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
계 6장 연구자료 참조
신학용어-16:5-7 하나님의 정치적 공의: 출 9장 자료노트 참조
지도-10:16 아마겟돈의 위치
신학용어-16:14,16 아마겟돈
계 19장 자료노트 참조
16:1-11 첫째에서 다섯째까지의 대접 재앙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으로 최종 도래할 대종말 직전에 이 세상에 내려질 인(印) ․ 나팔 ․ 대접 재앙이라는 삼대 칠중 재앙 가운데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칠중 재앙인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재앙은 6:1-14:20 사이에서 언급되었고, 제 15장에서는 세번째 칠중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의 개시를 위 한 준비가 최종 종료된 상황을 보도한 다음, 이제 본장에서는 그 일곱 대접 재앙이 집행되어지는 상황이 묘사된다.
이러한 본장은 다음과 같이 세 단락으로 나누인다. 먼저 1-11절에서는 첫째에서 다섯째까지의 대접 재앙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12-16절에서는 여섯째 대접 재앙으로 귀신의 영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그의 세력들을 모으는 내용을 담고 있고, 17-21절에서는 일곱째 대접 재앙으로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맥락하에 본단락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모두 세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는 본장의 첫째 단락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첫째부터 다섯개 대접 재앙의 내용, 곧 악의 세력과 하나님의 세력이 대결전을 벌이기 전까지 불신자들과 이 세상이 어떠한 재앙을 받게 되는가를 예언해 주고 있다. 마지막 결전의 날이 이르기 전까지 욜신자들은 먼저 독중으로 고통을 받게 되며(2절), 자연은 큰 해를 입어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그 가운데 거 하는 자들의 목숨을 앗아간다(3-9절). 그리고 사탄의 권세를 받아 세계를 다스리는 권좌에 앉은 짐승(13:1-10)도 그 권좌를 잃게 되어 짐승과 사람들은 큰 고통을 겪게 된다(10절). 결국 본단락은 사탄의 제일 하수인인 짐승에게나, 그 짐숭을 경배하는 자나, 이 세상의 자연계에나 다 하나님의 심판의 고통이 임하게 됨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욕하면서 회개하지 아니한다(11절).
한편 일곱 대접 재앙의 내용을 일곱 나를 재앙의 내용과 비교해 보면 양자는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팔 재앙과 대접 재앙이 동일한 사건에 대한 상이한 표현은 아니다. 이는 나팔과 대접 재앙 시리즈는 물른 그 이전의 인(印) 재앙 시리즈까지 포함시켜 블 때 그 재앙의 범위가 사분의 일에서 삼분의 일로, 삼분의 일에서 전체로 점점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어쨌든 이제 그 내용이 비교적 다른 일곱 인의 재앙은 제외하고 그 내용면에서 유사성이 강한 일곱 나팔과 대접 재앙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는 본장 1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우리는 본문 속에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최후의 극렬한 재앙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 을 모독하고 선한 것을 더욱 미워 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위 말세의 때에 그와 같이 마음을 강팍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멸망할 심판의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저항하려는 것이다(마 24:9-12). 그러므로 이 세상이 노골적인 불경과 메마른 마음의 강퍅함을 보일 때에 성도된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감지하고 더욱 자신을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고(고전 9:27) 세상 풍조를 좇지 아니하도록 경건의 연습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딤전 4:7). 또한 우리는 사탄이 어느 때 어떤 방법을 통해 우리를 자기에게 굴복시키려고 최후의 술수를 부리거나 발악할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며, 주깨서도 언제 오실는지 알지 뭇하지만 항상 깨어 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마 24:44; 벧전 5:8).
16: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말하되‥‥가서‥‥땅에 쏟으라. -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처소이다. 따라서 그곳에서 큰 음성이 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한편 본절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집행자가 보냄을 받은 다음 그 집행자에 의해 하나님의 명령대로 심판이 실행되는 전개 과정을 보여 준다(14:15,18). 그리고 이것은 심판이 한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시행됨을 증거해 준다.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 - 어떤 학자는 본장의 일곱 대접 재앙이 내용적으로 일곱 나팔 재앙(8,9,11장)과 비슷하므로 일곱 대접 재앙을 일곱 나팔 재앙에 대한 반복 기록으로 본다(Moeatt). 물론 양자를 비교해 보면 그 내용면에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일곱 대접 재앙은 삼대 칠중 재앙 중 세 번째 칠중 재앙에 해당하는 재앙으로서(11:14) 두 번째 칠중 재앙인 일곱 나를 재앙들과는 구분된다. 왜냐하면 일곱 대접 재앙은 그 대상을 온 세상과 그 거민들로 삼고 있어 그 대상을 온 세상의 삼분의 일로 삼고 있는 일곱 나팔 재앙(8:7-12; 9:15,18)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즉 일곱 나팔 재앙과 일곱 대접 재앙은 그 내용상 상호 유사성이 있긴 하지만 그 대상의 범위와 강도에 있어서는 상호 다른 두 개의 재앙 시리즈들인 것이다(Plummier. Walvoo런). 즉 일곱 대접 재앙은 일곱 나팔 재앙에 비해 그 강도가 훨씬 세고 전우주적이다. 참고로 일곱 나팔 재앙과 일곱 대접 재앙을 도표상으로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 상 | 일곱 재앙 | 일곱 나팔 | |
1 | 땅 | 피썩인 우박과 불로 인해 땅 수목, 각종 풀의 삼분의 일이 불탐(8:7) |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헌데가 남(16:2) |
2 | 바다 | 불붙는 큰 산 같은 것이 바다에 떨어지자 바다 생물과 배 삼분의 일이 파멸됨(8:8,9) | 바다가 피같이 변해 바다 가운데 있는 모든 생물이 죽음(16:3) |
3 | 강과 샘 | 큰 별이 강과 물샘에 떨어져 물의 삼분의 일이 쓰게 되므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8:10,11) | 강과 물의 근원이 피로 변하므로 불신잗들이 피를 마시게 됨(16:4-7) |
4 | 천 체 | 해와 달, 별들의 삼분의 일이 빛을 잃음(8:12) | 해가 불신자들을 태워 죽게 함(16:8,9) |
5 | 불신자들 | 황충이 불신자들을 다섯달 동안 괴롭힘(9:1-11) | 불신자들이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회방함 |
6 | 큰강 유프라테 | 마병대가 사람들 삼분의 일을 죽임(9:13-21) | 귀신의 영들이 전쟁을 위해 그의 세력들을 모음(16:12-16) |
7 | 하늘 | 하늘로서 큰 음성이 나고 일곱 대접 재앙이 연속 개시됨(11:15-19) |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무너짐(16:17-21) |
16:2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며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 하나님의 보냄 받은 천사가 대접에 담긴 재앙을 땅에 쏟아 붓는 것을 가리킨다. 이로써 최후 대종말 직전에 이 세상에 내려질 삼대 칠중 재앙 가운데 마지막 칠중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15:1)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자들에게 나더라. - '헌데'란 일종의 종기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저지하려든 애굽의 바로와 그 신민들에게 내린 여섯 번째 재앙과 같은 것이다(출 9:10). 성경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은 종종 이러한 질병으로 악한 자들을 효과적으로 징치하셨음을 알 수 있다. 신약 시대 당시의 악한 왕 헤롯도 하나님께서 징치하시자 그 몸에 충이 먹어 죽었었다(행 12:23). 그런데 이 헌데가 '악하고 독하다'는 말은 '악성 종기'를 뜻하는 것으로 이 재앙이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임을 시사해 준다. 한편 이 악성 피부 질환이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에게 발생했다는 것은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이 주로 불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재앙이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 몰론 이 시기에도 성도들이 이 땅에 있다면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으나 본문은 일곱 대접 재앙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주된 대상은 불신자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따라서 만에 하나 우리 세대에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는 우리는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참고로 '짐승의 표'에 관해서는 계 13:16-18주석에서 상세히 다루었으니 그곳의 주석을 참조하라.
16:3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 애굽에 내린 첫 재앙(출 7:17-21) 및 둘째 나팔 재앙(8:8,9)처럼 둘째 대접 재앙도 바다에 가해져 바다 생물을 죽게 만든다. 그리고 바다는 그 생물들의 피로 붉게 된다. 그러나 본 재앙이 나팔 재앙 때와 다른 점은 생물의 삼분의 일이 아니라 모든 생물이 죽는다는 점이다. 이제 하나님의 재앙은 제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상에 그 심판이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바다는 문자 그대로의 바다일 수도 있고 상징적인 의미에서 열국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에 관해서는 계 8:8,9 주석을 참조하라.
16:4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 이 셋째 대접 재앙의 대상이 강과 불의 근원이란 점에서는 셋째 나팔 재앙 때와 같다(8:10,11). 그러나 다른 점은 셋째 나팔 재앙 때와 달리 물이 쓰게 되지 않고 피가 되었다는 점과 대상과 범위가 제한적 이지 않고 전체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본 재앙이 나팔 재앙에 비해 재앙의 정도가 월등히 심각함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또한 최후 대종말이 가까웁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게 될 것인가를 심도 있게 보여 준다.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은 곡식을 재배할 물도 없어 곡식도 없다는 것을 추론케 하며, 따라서 전 세계에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다는 것은 육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더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다 줄 것을 시사한다.
16: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물을 차지한 천사. -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도록 보냄 받은 천사들이 각기 개별적으로 자연계의 일부를 관장한다. 즉 어떤 천사는 바람을 다스리고(7:1) 어떤 천사는 불을 다스리며(14:18) 또 어떤 천사는 본 구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물을 다스린다.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 - 영원하신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1:8에는 이에 덧붙여 '장차 오실 이'란 언급이 있으나 11:17과 본절에서는 '장차 오실 이'란 언급이 생략되어 있다. 그 이유는 1:8의 때와는 달리 이제는 주께서 강림하사 이 세상을 선악 간에 심판하실 최후 심판의 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에 와있기 때문이다. 계 11:17 주석 참조.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 하나님께서 대접 재앙으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이 그 누구도 항의할 수 없는 정당한 행위임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한 이유는 6절에서 소상히 언급되고 있다.
16:6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저희가‥‥피를 흘렀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강과 물의 근원'을 피로 만드시고(4절) 그 물을 마시게 하셨다는 뜻으로 이는 '저희로 죽임을 당하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본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인간 행위에 따른 정당한 보응의 법칙대로 시행되었는바 지극히 정당한 것임을 보여 준다. 즉 본문은 악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의하게 죽였으므로 그들을 동일한 죽음의 형벌에 처하신 하나님의 보응의 심판은 의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악인의 죄에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보응은 마지막 때에야 비로소 결정적으로 실행된다는 점이다. 세상에서는 반드시 의인이 흥하고 악인이 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 실제적으로 성취되는 때는 마지막 심판이 임했을 때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악인이 잘된다고 흥분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그들은 그에 대한 보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또한 물질을 중요시 여기지 않기 때문에 물질적 잘됨이 결코 참된 잘됨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악인의 죄에 대해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에는 일정 기간이 있어 이 기간이 종료하면 반드시 무서운 보웅의 심판이 있다는 점이다. 본절에서도 악인들이 그 행위대로 보응을 받는 것은 그들이 정해진 기간 동안에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6: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하더라. - 순교자들이 번제단 아래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간구하였으며(6:9,10) 또한 성도들의 기도가 향단 위에 드려진 사실(8: 3,4)에 비추어 볼 때 '제단이 말했다'는 것은 성도들과 순교자들이 천사의 말(5,6절)에 응답하는 것을 상징화한 것임이 분명하다. 즉 핍박당한 성도와 순교자들은 일찍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신원하여 주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이제 그에 따른 심판이 집행되자 그 심판의 정의로움을 천사의 말에 대한 화답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Ladd).
16:8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해에 쏟으매. - 이 네 번째 대접 재앙은 네 번째 나팔 재앙(8:12)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네 번째 나팔 재앙에서는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졌었다. 즉 그 재앙 때에는 해와 달과 별이 직접적으로 재앙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본문의 네 번째 대접 재앙에서는 달과 별은 제외되고 해만이 그 대상이 되며, 또한 해 자체가 재앙을 받아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해가 뜨거워져 그 뜨거워진 해가 사람을 태워 화상을 입힌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 볼 때 일곱 대접 재앙은 일곱 나팔 재앙과는 상이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양자는 다른 독립된 두 종류의 재앙임을 알 수 있다. 1절 주석 참조.
해가‥‥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 '해'는 평상시 신자와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인류에게 빛과 열을 제공하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적 도구이다(마 5:45). 그러나 그러한 유익한 자연물도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로 사용될 경우에는 오히려 인간을 상해하는 심판의 도구가 된다. 이는 실로 자신의 창조물을 자신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을 여실히 보여 주는 일례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본절의 '사람들' 앞에는 관사가 있어 앞에서 언급된 사람들, 곧 2절의 '짐승에게 표를 받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일곱 대접 재앙은 철저하게 불의한 자들을 징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16: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 현대인의 성경은 본절을 '뜨거운 열기에 화상을 입게 되자'로 번역하고 있다. 네번째 대접 재앙이 집행되면 태양이 뜨거워짐으로 사람들은 그 열에 의해 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 본절로 보아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당한 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으로 인식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훼방했다는 내용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도 짐승을 따르는 길을 택한 그들(13:14-18)의 마음은 너무도 완악하고 강팍하여서 하나님께 무릎 꿇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한다. 한편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하나님의 신성과 권능을 공개적으로 부인하여 고의적으로 모독하는 것을 뜻한다. 계 13:6주석 참조.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그들의 양심이 화인 맞아서 자신들의 죄 때문에 심판이 임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최후의 심판 또한 집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6: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 '짐승의 보좌'는 붉은 용으로 묘사된 사탄이 짐승으로 묘사된 적그리스도에게 준 것으로(13:2) 우상 숭배와 세상 권력의 중심지를 상징한다(Hendriksen, Plummer). 2:13에서는 버가모를 '사탄의 위(位)가 있는 데'로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짐승의 보좌는 그것보다 더 포괄적인 사탄의 권세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세상 종말에 사탄에게서 권세를 받은 짐승은 전 세계에 걸쳐 조직적인 지배를 꾀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13장).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 여기서 '그 나라'는 사탄의 지배 아래에 예속된 세상 나라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어두움'은 고통을 상징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문다는 것은 다섯 번째 대접 재앙으로 인해 세상에 심각한 고통이 가해졌음과 사람들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려 했음을 시사한다.
16:11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아픈 것과 종기. - 공동번역은 본절을 '고통과 쓰라림'으로 번역하고 있다. 10절에서 사람들이 '아파하는 것'을 심적 고통으로 이해한다면 공동번역의 표현이 보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 '하늘의 하나님'이란 본서에서 11:13과 여기서만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지고하신 위엄과 영광, 권능 등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한편 악인들이 하나님을 훼방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것에 대해서는 9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16:12-16 여섯째 대접 재앙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으로 최종 도래할 대종말 직전에 이 세상에는 삼대 칠중 재앙이 임할 것인데 7중 세 번째 칠중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을 설명하는 부분인 본장 안에서 두 번째 단락을 형성하고 있는 본문은 여섯 번째 대접 재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여섯째 대접 재앙은 그 자체로 어떠한 재앙의 구체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단지 최후의 멸망을 위하여 지도자급인 악의 세력들이 모여 자신들의 모든 세력들을 총규합하는 내용만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언뜻 보면 과연 이것이 재앙의 유형에 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나 이것은 분명히 재앙으로 취급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저주에 의해 악의 세력들은 하나님과 대적하여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어리석게도 일으켜 자신들의 최후를 독촉하고 있기 때문이다(겔 38:3-9). 이처럼 다른 재앙들과는 달리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재앙을 간접적으로 우회해서 보여 주고 있는 본문은 먼저 전쟁으로 인한 재앙을 상징하는 유브라데 강(9:14) 이 말라 동방의 군대가 올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12절). 그리고 자기 세력을 총규합시킬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되자 사탄과 그의 두 하수인인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마치 하나님이 삼위 하나님으로 일하시듯 그것을 흉내 내어 셋이 똘똘 뭉쳐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세력과 수단을 동원하여(13,14절) 하나님과 대적할 군대를 자신들이 멸망할 전쟁터를 상징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에 모은다(16절). 한편 저자는 이 예언의 말씀을 말하면서 이러한 때에도 신앙을 끝까지 지켜 자기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어떠한 고난이 성도에게 닥쳐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악에게 굴복하는 시대적 조류가 밀려와도 거기에 굴복하지 말라고 권면한다(15절).
한편 본문을 통해 우리는 악의 세력은 마지막 때까지도 하나님께 굴복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대적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힘을 결집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의 결집을 위해 악의 세력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도록 발악할 것이라는 것도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의 속성은 불순종과 패역과 불경이라는 것을 명심하여 악이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직접 유혹하고 협박할지라도.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악의 세력에 굴복하는 풍조를 따르고 굴복한 가운데서 어떠한 핍박과 압력과 제재를 우리에게 가할지라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은 그 은혜를 저버리지 말고 끝까지 신앙을 지켜 천국의 복을 누리는 승리자가 되도록 하자(고후 11:3; 살후 2:9,10).
16: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 '큰 강 유브라데'는 여섯째 나팔 재앙에서와 마찬가지로 본절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처소로 언급되고 있다. 계 9:14 주석 참조. 그러나 여섯째 나팔 재앙 때에는 사람의 삼분의 일이 재앙을 입었으나 이 여섯째 대접 재앙에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재앙을 입을 것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여섯째 나팔 재앙에서는 네 천사에 의해 세상 군대가 동원되어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사람들이 죽게 되는 반면, 이 여섯째 대접 재앙에서는 용 자신이 세상의 모든 군대를 동원해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하는 하나님의 군대와 일으킨 최후의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게 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강물이 말라서. - 강물이 마르는 것을 문자적 으로 본다면 자연적인 장애가 없어져 대규모의 군대가 용이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됨을 뜻한다. 그러나 이 말은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동방의 왕들이 오지 못하도록 가로 막고 있던 세력이 쇠망한다든가 아니면 어느 한 지역의 지배권이 동방의 왕들의 수중에 들어간다는 의미 등이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 - 이 왕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신학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지 못하다. 일부 주석 가들은 죽지 않고 동방으로 피신한 네로(계 13:3 주석 참조)의 지휘 하에 로마를 침공하기 위해 진격해 오는 파르티아인(Parthian)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한다(Charles, Weiss). 그러나 동방에서 오는 왕들이 온 천하에서 모인 왕들과 연합하는 것으로 보아(14,16절) 파르티아인을 가리킨다는 견해는 타당성이 없다. 더군다나 본절 이하의 상황은 종말에 있을 세계적인 최후의 대전쟁을 예고하는 것이지 과거의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인들간의 전쟁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동방은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여겨져 왔다(사 46:11). 그러므로 여기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이란 아마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치기 위해 원방에서 오는 모든 세력을 통칭하는 상징적인 말일 것으로 보인다(Ladd).
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 - '개구리'는 성경에서 비늘이 없는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는 생물이다(레 11:10), 고대 애굽인들은 이러한 개구리를 거룩한 동물로 여겨 신으로 숭배하였다. 출 8:1-6주석 참조. 본절에서 이 개구리 모습에 비유된 세 더러운 영은 우두머리 되는 악의 세력의 연합체를 가리킨다. 한편 이 세 더러운 영을 개구리 모습에 비유한 것은 그들의 부정함을 묘사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을 순결한 비둘기의 모습에 비유한 것(마 3:16)과 대조된다(Plummier).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 '거짓 선지자'가 용과 짐승과 함께 나란히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 '거짓 선지자'는 13:11-18에서 두번째 짐승으로 묘사된 것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이 거짓 선지자와 짐숭, 용이 함께 역사함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동사(同事) 하심을 모방한 것으로서 이것 역시 사탄이 하나님을 사칭하는 기만적인 술책의 일환이다.
16: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귀신의 영. - '거룩한 하나님의 영' 즉 '성령'과 반대되는 '악한 영', 또는 '마귀의 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호칭은 이들이 사탄에게 속한 존재들로서 사탄을 중심으로 모인 세력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귀신의 영이 용과 두 짐승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13절)은 귀신의 영이 주로 미혹하는 말로써 세상의 왕들을 충동질하여 하나님의 군대와 일전을 벌이도록 간계를 부릴 것임을 시사해 준다(Lenski).
이적을 행하여. - 13:13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귀신의 영들은 기만적인 사술로 세상의 권세자들을 속여 그들로 하여 금 자기 손아귀 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그들을 모으더라. -'온 천하 임금'은 사탄에게 속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며 성도들을 핍박하기를 서슴지 않는 이 세상의 모든 세력가들을 지칭한다. 여기에는 '동방에서 오는 왕들'(12절)도 포함될 것이다. 한편 귀신의 영이 이 모든 세력을 규합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군대에 맞서 최후 결전을 치루기 위함이다.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 성경에서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은 대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 날'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울은 이 날을 '예수 그리스도의 날' 즉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로도 표현하였다(고전 5:5; 빌 1:6). 결국 짐승은 이제 재림하시는 주님과 한판 겨루기 위해 어리석게도 세상의 힘을 결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 전쟁으로 완전히 패망하게 되고 만다(19:17-21).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복이 있도다. - 본절은 일견 전후 문맥과 연결되지 않는 엉뚱한 삽입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본절은 14절에서 언급한 '전능하신 이의 큰 날'과 관련하여 성도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어 준비하는 가운데 그 날을 맞이해야 할 것임을 교훈하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내가 도적같이 오리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은밀성과 긴박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한 채 기다리지 않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돌발적으로 일어날 것임을 경고하는 말이다(살전 5:3). 이러한 그리스도의 재림 예고는 앞서 사데 교회에게도 주어진 바 있다(3:3). 다음으로 '자기 옷'은 3:4에서 '흰 옷'으로 언급된 것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얻게 되는 칭의(稱義)와 그에 걸맞는 성결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한다'는 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를 덧입어 영적으로 벌거벗은 수치 곧 죄악을 그대로 드러내 놓지 않는 것을 뜻하는 동시에 또한 그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옷을 입은 자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영적 정결을 수호하는 것을 뜻한다. 계 3:18 주석 참조. 한편 본서에는 '복이 있다'는 기록이 전부 일곱 차례 나온다(1:3; 14:13; 16:15; 19:9; 20:6; 22:7; 22:14). 본절의 '복이 있도다'는 그 중 세 번째 언급되는 것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옷을 입는 자가 복 있는 이유는 장차 그리스도 재림시에 영원한 형벌에 처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요 3:16).
16:16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 '세 영'은 용과 첫째 짐승과 둘째 짐승에게서 나온 '세 더러운 영'이다(13절). 이들 사탄의 세력은 세상을 파괴하기 위하여 동방의 왕들과 모든 세상의 임금들을 모으는데(14절) 그 모으는 장소가 바로 아마겟돈(Armageddon)이다. '아마겟돈'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르마게돈'( )은 히브리어 '하르 므깃도'( ), 즉 '므깃도 산'이란 지명을 음역한 것이다. 므깃도(Megiddo)는 샤론 평야와 이스르엘 골짜기 사이에 위치한 므깃도 평원에 있는 마을로서 고대의 중요한 두 무역로의 교차 지점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전략상 요충지였다. 이곳은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를 물리친 후에 부른 노래에 나오며(삿 5:19), 아하시야가 예후의 화살에 의해 죽은 곳이기도 하다(왕상 9:27). 또한 바로느고가 유대 왕 요시야를 죽인 곳이기도 하다(왕상 23:29; 대하 35:22), 삿 5장 자료노트, '므깃도' 참조. 한 마디로 이 마을은 그 만큼 수많은 전쟁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므깃도는 전쟁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고(Swete) 그러한 배경에서 이곳은 최후의 큰 전쟁이 있을 곳이라고 여겨져 왔다(Jerome). 한편 본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므깃도가 실제로는 산이 아니라 산골짜기 자락에 형성된 평지인데 이를 '므깃도 산'이란 뜻의 '아마겟돈'으로 칭하고 있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산을 므깃도 인근의 갈멜 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가 하면(Plummer), '산'은 '고을'이라는 말의 와전이라고(Hilgenfeld)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종말의 최후의 큰 전쟁이 문자적으로 므깃도에서 일어난다는 전제하에서 행해진 것이다. 만일 문자적인 의미로서의 므깃도에서 종말의 큰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러한 해석을 시도할 필요가 없다(Johnson). 즉 므깃도가 종말의 큰 전쟁이 일어날 곳을 상징적으로 언급한 것이라면 므깃도가 실상은 평지라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구약 성경에서 '산'은 종종 하나님의 군대와 그 적대 세력 간의 최후의 결전이 벌어질 장소로 묘사되고 있다(사 14:13; 겔 39:2). 그렇다면 '므깃도 산'은 역사상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난 므깃도와 최후의 결전의 장소로 묘사된 산이 결합되어 종말의 최후의 큰 전쟁터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Ladd).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본서 19장 자료노트, '아마겟돈 전쟁'을 참조하라.
10:17-21 일곱재 대접 재앙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으로 최종 도래할 대종말 직전에 이 세상에는 삼대 칠중 재앙이 임할 것인데 그 중 세 번째 칠중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을 설명하는 부분인 본장 안에서 세 번째 단락을 형성하고 있는 본문은 마지막 일곱 번째 대접 재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일곱번째 대접 재앙은 지상에서 일어날 모든 재앙 가운데 마지막 재앙으로서 이 재앙을 언급하고 있는 본문은 전무후무하게 가공할 만한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먼저 일곱째 대접이 부어지는 곳은 사탄의 권세가 있는 영역인 공중이다(17절). 공중에 대접이 부어지자 온 세계는 완전한 파괴를 당하게 되며(18,20절), 특히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들이 산산히 부서지고, 세계의 도시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고 악을 행하도록 조장한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진다(19절). 한마디로 일곱째 대접 재앙으로 이 세계의 문명은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번째 재앙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치명적인 재앙을 입고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모독한다(21절).
이러한 본문은 독자들에게 명백한 두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인간 생활의 터전과 및 문명은 그것이 아무리 번영되고 풍요한 곳이라도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붕괴될 것이라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아 결국은 최후의 심판(20:11-15)을 인간들 스스로가 자초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본문을 통해 깨달은 우리는 ① 징계를 받을 때에 불평함으로 하나님을 저버리고 욕되게 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지 말고 오히려 징계를 받을 때에 자신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여 심판을 면제받고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는 자가 되도록 하며(히 12:5-13). ②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은 결국은 파괴되어 없어질 것들임을 직시하여 이 땅에 있는 것들을 지나치게 탐하거나, 그것에 얽매여 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마 16:23; 막 8:33; 롬 8:5; 12:3; 골 3:2).
10:17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공기 가운데 쏟으매. - '공기 가운데'란 대기권, 곧 '공중'을 가리키는 말로, 사탄이 권세를 잡고 있는 영역을 의미한다(엡 2:2). 그러므로 이제 마지막 최후의 일곱째 대접 재앙은 사탄이 권세 잡고 있는 핵심부에 쏟아짐을 알 수 있다. 이제 때는 바야흐로 모든 악의 근원이 멸망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한편 본절을 이처럼 상징적으로 해 석하는 동시에 문자 그대로 하늘에 큰 재앙이 있을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현 세계의 문명이 멸망당하는 날에는 실제로 이 세상에는 상상하지 못할 자연계의 파괴가 있을 것이기 때뭍이다(벧후 3:112).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 이 음성은 1절에 언급된 '큰 음성' 곧 하나님의 음성과 동일한 것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음성은 하늘 성전과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난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되었다'는 말 '게 고넨'( )은 과거 완료형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훼파하시고 자기 백성의 구원을 완전히 성취하시는 것은 이제 목전에 이르른 일이긴 하나 아직 이루어진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처럼 과거 완료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이제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을 집행하시고 계시며 조만간에
악인에 대한 심판과 의인에 대한 영생의 구원을 이루시게 될 것이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하여 완료형을 사용한 것이다.
16:18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 본서에서 이것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뜻하는 상징들로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4:5; 8:5; 11:19). 계 4:5; 6:12 주석 참조. 그러나 본절에서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이것들에 의해 이 세계가 멸망하는 직접적인 하나님의 심판이다.
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큰 성. - 본서 내의 다른 여러 구절들에 비추어 볼 때 이 성이 바벨론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11:8; 14:8; 17:18; 18:10,16). 신약 시대 당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바벨론'은 당시의 로마 제국을 지칭하던 은어였다(벧전 5:13). 그러나 본서에서는 로마와 바벨론을 동일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사탄의 미혹이 있는 곳에서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바벨론이 발견되기 때문이며 미래에 관한 예언인 본서의 말씀을 과거의 어느 한 도시에 국한시키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바벨론'이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풍조와 비윤리적 사조를 조장하는 각 시대의 영향력 있는 도시들과 세속 문명의 총체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즉 이 바벨론은 과거의 소돔과 고모라, 애굽, 바벨론, 두로와 니느웨, 로마를 지칭하는 동시에 또한 오늘에도 있고 미래에도 나타나 세상을 미혹할 영향력 있고 악한 세속 도시를 지칭하는 동시에 그러한 세속 도시를 중심으로한 세속 문명 을 총칭한다(Lohmeyer).
세 갈래로 갈라지고. - '세 갈래'란 완전히 찢어짐을 의미한다. 짐승의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의 도시들을 타락케 만든 세속 도시의 여왕, 바벨론은 이렇게 철저하게 멸망당하고 마는 것이다. 한편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 관해서는 17,18장에서 상세히 언급되어 있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 '만국의 성'은 세속 도시의 중심지로 상징되는 바벨론에 속한 세상의 모든 도시들을 지칭한다. 중심되는 큰 성이 멸망하므로 아울러 그에 속한 성들도 같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더욱이 세상 모든 도시의 거민들이 바벨론에 미혹당해 바벨론의 죄악에 동참하고만 이상 그들 역시 바벨론이 당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전노의 심판을 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17;2; 18:3). 한편 세속 문명을 주도하는 중심 도시요, 그 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세속 문명을 상징하는 바벨론과 그에 속한 도시들이 멸망한다는 본문의 표현은 일곱째 대접 재앙으로 이 세상의 모든 문명이 파괴되어 멸망할 것을 상징적으로 예고해 준다.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 '바벨론이 하나님께 기억하신 바 되었다'는 것은 바벨론이 행한 죄악을 하나님께서 잊지 않고 기억하셨다는 말이다. 바벨론은 모든 도시들로 하여금 자기가 행하는 각종 죄악을 따라 하도록 미혹하고 강요하였으니(14:8) 하나님은 그 죄악을 기억하시고 이제 작정한 때가 되매 '진노의 포도주', 곧 심판의 잔(14:10)을 내리신 것이다. 여기서 '맹렬한 진노'란 그 누구도 감히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불 같은 진노를 의미한다(15:8).
10: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 이 현상은 18절의 지진의 결과이다. 지진은 큰 성 바벨론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뜨렸으며 더 나아가 이처럼 섬과 산들도 삼켜 버렸다. 여섯째 인을 뗄 때에도 이러한 현상이 있었으나(6:14) 그때에는 산과 섬들이 제자리에서 옮겨지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최후 심판만을 남겨둔 시점에서는 아예 산들과 섬들이 훼파되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실로 맹렬함을 분명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한편 이렇게 강력한 지진은 현 우주가 붕괴될 것을 예고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장치 새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기에 앞서 지금의 하늘과 땅은 없어지고 말게 되기 때문이다(20:11).
10:21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 - '중수'(重數)란 '무게'라는 말이다. 한 달란트(talent)는 약 34kg에 해당되는 무게이다. 따라서 본문을 다른 말로 하면 '무게가 약 34kg이나 되는 큰 우박'이다. 한편 우박은 애굽에 내린 7번째 재앙이기도 하다(출 9:23). 하나님께서는 자연적인 재해를 끼치는 것 중 하나인 이 우박을 악인에 대한 징벌의 도구로 자주 사용하셨다(수 10:11; 시 78:47; 사 28:2; 30:30; 겔 13:11; 38:2; 학 2:17). 그래서 일단의 학자들은 본문의 재앙을 문자적인 것으로 취급한다(Bengel. Glasgow 등). 그런데 어떤 이는 무게가 34kg이나 나가는 우박덩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이를 상징적으로 보아 하늘에서 극심한 재앙이 초자연적으로 임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Ebrard). 그리고 또 다른 이는 이 우박을 현대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폭탄이나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한다(Plummer).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 땅에서 지진이 있어 모든 성들과 섬과 산들이 무너지고 사라지고, 하늘에서는 큰 우박이 무수히 떨어져 사람들이 엄청난 재난 속에 처하게 된 것은 사람들의 죄의 결과였다(14:9-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에 화인 맞은 죄악된 인간들은 하나님께 회개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들이 고통받는 것을 하나님께 전가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이들에게 최후의 심판이 내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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