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장
제 10 장 구원
(대 지)
一. 이스라엘의 열심(1-3)
二. 믿음으로 의와 구원을 얻음(4-12)
三. 구원에 이르는 순서(13-15)
四.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구원이 이방에 나감(16-21)
(본문강해)
一. 이스라엘의 열심(1-3)
. 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바울이 마음에 간절히 원하며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구원받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동족애 때문이 아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 기관이요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9:1-3해석 참조).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였으나 먼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갈망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6)"고 하셨다. 바울은 언제나 이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힘을 썼다(행 18:5,28:17- 28 참조)
.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있어서 구약의 의식과 규례와 율법의 세칙까지 지키며(마23:23 참조), 조상들의 유전까지 지키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막 7:3-5 참조). 그러나 그 열심은 바른 지식을 쫓아 한 것이 아니었다.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바로 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께 바로 하는 길(바른 지식)은 율법의 의식과 규례의 실체인 그리스도(골 2:16-17)를 믿는 것이다.
.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자기 힘으로 율법을 지켜서 의인이 되려고 열심을 내었다. 그러므로 도리어 하나님의 의를 더욱 복종치 않는 결과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의를 세우려는 열심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의 의에서 점점 멀리 떠나게 된 것이다. 바울도 믿기 전에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특심하여 성도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열심히 도리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열심이 도리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이 없는 열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큰 손해를 주고 자신도 손해를 보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믿는 자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많으나 바른 진리의 지식을 따르지 않고 신신학과 신비주의(감정주의)와 인본주의와 사업주의로 나가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잘못된 일에 열심을 내므로 점점 더 바른 진리에서 떠나게 되고, 또 다른 진리로 나가는 자들을 비방하고 핍박하게 된다. 신비주의자들은 열심으로 기도를 많이 하나 주관적 감정에서 나온 느낌이나 방언, 환상, 꿈, 자기 스스로 본 계시(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 겔 13:2, 17)를 성경처럼 귀히 여기고 따라간다. 그들은 또 그것들을 받기 위해서 열심으로 소란을 피워 사회에 많은 부덕을 끼치기도 한다. 신신학자들은 성경보다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을 더 중히 여기고 따라가는 일에 열심이다. 그리하여 사회 구원이나 사회 해방 운동을 하나님의 구원 운동인양 착각하고 그 일에 열심을 내어 폭동과 투쟁도 서슴치 않으므로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그런 일을 하고 있으나, 사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참진리를 거스리며, 참된 구원운동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먼저 바른 진리를 배워서 바른 진리의 지식을 따라가도록 열심을 내어야 한다.
二. 믿음으로 의와 구원을 얻음(4-12)
.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
바른 진리 지식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주기 위하여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주시고, 신구약 성경을 다 행하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어 주신 것을 마음으로 받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나가는 것이다.
율법의 마침 율법은 몽학 선생으로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갈 3:23-25). 그러므로 율법의 마침은 그리스도이다. "마침"이란 종국, 성취의 뜻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다 성취하셨다.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 율법의 본래의 사명이다.
. 10: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본 에서 10절까지는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얻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대조하여 논술한 것이다.
모세가 기록하되 레위기 18:5의 인용으로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 율법을 행함으로써 산다는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행하여 의를 이루어 그것으로 살려고 열심 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셨다. 왜냐하면 율법을 다 행한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2:10-11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했다.
. 10: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본 절과 7절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자기 의를 세우려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은 "의"이다.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신명기 30:12절의 인용으로서 구원의 도를 얻기 위하여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셔서 구원을 완성해 놓았으므로 그것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모셔다가 구원의 도를 받겠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셔서 우리 구속을 완성해 주셨으므로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늘에 올라가서 구원의 도(道)를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을 성취하여 주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니 옳치 않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어 놓으신 그 구속을 믿기만 하면 된다.
. 10: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구원의 도를 가져오려고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음부의 권세를 다 이기고 부활하여 우리 구원을 완성해 놓았으므로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구원의 도를 가져오려고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여 우리 구속을 완성하신 것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다시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이제는 누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기만 하면 의를 얻고 구원을 얻는다. 다시 말하면 자기 의를 세우려고 갈팡질팡(하늘에 올라가겠느냐 음부에 내려가겠느냐)하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믿기만 하면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 10: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의를 완성해 주셨고 또 부활로 음부의 권세를 다 이겨 주신 사실을 믿음으로 얻는 의를 말한다.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는 이 진리의 말씀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고 네가 이미 들은 것이요,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고 구원을 받게 되는 복음의 말씀을 가리킨다.
.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시며 이것은 신앙 고백(信仰告白)을 가리킨다. 예수를 입으로 증거하는 믿음이 산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생활을 할 때에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10절 참조).
.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는 것이다.
입으로 시인하여 신앙고백을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입으로 증거하는 것은 행위의 첫 걸음이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시인하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아서 곧 말라죽고 만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고백은 마음으로 믿는 그 믿음의 역사에서 나오는 시인(是認) 즉, 증거 생활을 가리킨다. 이런 성도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된다는 뜻이다. 마음으로 믿어서 그 말씀이 자기에게 의가 되었고 그 말씀을 증거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게 되면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이다.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성도가 죄악에서 점점 벗어져 나오고, 영이 점점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 인격에 점점 이루어져서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갈4:19, 롬13:14, 8:23). 성도가 이 세상에서 구원을 잘 이루어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가 처음 믿을 때는 신앙도 어리고, 영도 어려서 어린아이와 같다가 점점 자라나서 장성한 자와 같이 된다.
히브리서 5:13-14에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다. 에베소서 4:15에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했다. 마태복음 5:19에 말씀을 행하지 못하고 믿는 자는 천국에서 작은 자라 했고 말씀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라고 했다. 성도가 이 세상의 여러 가지 환난 속에서 말씀을 지키며 연단을 받아야 구원이 이루어지고 영이 자라난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진리에서 떠나 말씀을 지키지 못한 성도는 자라나지 못하여 어린아이와 같다. 일생 동안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 천국에 간 사도바울과 일생 동안 죄만 짓다가 죽을 때에 겨우 회개하고 믿고 천국에 간 사람과 같을 리가 없다. 만일 같다고 하면 세상에서 힘을 다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가고 믿음을 지킬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하늘 나라에 가면 세상에서 많이 자라나서 간 성도와 자라나지 못하고 간 성도 사이에 차이가 있고(마 5:19) 상급도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전심전력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기 사명을 다하고, 말씀을 지켜서 자라도록 힘써야 한다.
. 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것은 이사야 28:16절의 인용이며 로마서 9:33에서도 인용한 바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가 있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성도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절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한다.
.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하나님 앞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은 물론 어떤 민족도 차별이 없으며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는다.
三. 구원에 이르는 순서(13-15)
.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본절 에서부터 택자가 구원받는 방편과 순서를 언급하셨다. 하나님께서 택자가 구원받도록 택할 때에 그 방편까지 예정한 것이다. 그 구원의 첫째 방편은 그 사람이 주의 이름을 부르므로 구원을 얻게 예정하신 것이다.
.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구원 예정의 둘째 방편은 택한 백성에게 믿음을 주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그리고 셋째 방편은 택한 백성에게 복음을 듣게 예정하셨고 넷째 방편은 그 사람이 복음 전함을 받도록 예정하신 것이다.
.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구원의 다섯째 방편은 복음 전파하는 자를 그 사람에게 보내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이사야 52:7에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하신 말씀이 증거하고 있다. 이 좋은 소식은 복음을 가리킨다. 이상 언급한 택자의 구원 방편에 대하여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택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함에 있어서 그 택자에게 ① 전도자를 보내고 ② 전도자가 그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고 ③ 그 택자는 복음을 듣고 ④ 믿게 하여 ⑤ 그가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받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자는 구원받도록 예정했으니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것이고, 불택자는 복음을 아무리 들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므로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잘못된 말을 하는 자가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택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할 때에 구원의 방편으로 전도하는 것까지 예정하신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9:16에도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 했다. 불택자에게 전도하는 것은 심판 날에 증거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듣든지 아니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기를 항상 힘써야 한다(딤후 4:2). 성도는 누구나 전도의 사명을 다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이를 위하여 오셨다고 했다(막 1:38-39). 전도는 성도에게 주신 주님의 지상명령이요(마 28:19-20), 신자의 책임이다(롬 1:14). 전도하는 것은 전도하는 자 자신의 영적 성장의 비결이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의 실천이다. 이렇게 복음 운동에 참예하는 사람은 아주 아름다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며 그의 발걸음은 아름다운 발걸음이 된다.
四.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구원이 이방에 나감(16-21)
. 10:16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순종치 않고 거역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대로 되었다.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이것은 이사야 53:1의 인용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전하는 복음을 이스라엘이 순종치 않을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 예언대로 그 당시에도 믿지 않았고 예수님 당시나 그 후에도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반대하고 믿지 않았다.
.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난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은 곧 믿음을 받는 것이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있어도 바른 믿음이 되지 못한다. 말씀을 받아 마음으로 믿고 그 다음에는 그 말씀을 순종하여야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믿고, 그 말씀을 순종해야 온전한 믿음이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었으나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받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잘못된 길로 가게 된 것이다(2절). 신자에게 열심히 있다고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슨 선행을 하거나 교회 봉사를 잘한다고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바른 진리의 말씀을 받지 않고 열광적으로 떠들거나 예언하는 것은 일종의 샤머니즘(무당과 같음)이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오직 바른 진리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한 복음 진리의 말씀을 가리킨다. 신약 성경 전체가 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한 진리의 말씀이요 또 구약에도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진리가 중추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성경 안에는 무궁무진한 진리가 감추어져 있다(요 21:25, 마 13:52 참조).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많이 연구하고 배워서 진리를 많이 깨달아 진리(말씀)에 입각한 신앙을 가져야 된다. 성도가 진리의 말씀을 많이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고 했다(딤후 3:14). 어떤 사람은 "다 행하지도 못하는데 진리를 배우기만 하면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진리를 마음으로 받아 믿는 것이 "의"이기 때문에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믿은 것은 이미 그에게 의가 되어 있다. 또한 그 진리를 받은 사람이 그대로 행하지 못할 때에 항상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성령께서 그대로 행하도록 감동하며 인도하시기 때문에 나중에는 회개에 이르게 될 것이다. 배우지 못한 자는 행하지 못해도 양심에 가책이 없고 그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는 성령의 인도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령은 대언자요(요 14:16), 진리 가운데로 역사하는 영이기 때문이다(요 16:13 참조). 그러므로 진리를 받지 못한 자는 그만큼 회개하지 못하고 바로 설 수도 없다. 호세아 4: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라고 했다.
. 10: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앞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셨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믿지 않은 것은 듣지 못한 때문인가?"하는 질문을 하고 거기에 대한 답변은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다음에 언급한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렀도다 이 말씀은 시편 19:4의 인용인데 자연계가 무언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널리 전파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여러 선지자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을 듣게 하였고 사도들과 전도자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까지 복음의 말씀을 전파했다.
. 10: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 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앞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온 땅에 펴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도 그 말씀을 들었고 알고 있으나 그 말씀과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신명기 32:21의 인용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공경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보고 시기 나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다(11:11-14 참조). 이것은 마치 어떤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불순종할 때 남의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면 자기 아이가 시기 나서 돌아오게 하는 것과 같다.
. 10:20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이 말씀은 이사야 65:1절의 인용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났으므로 본래부터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찾지 않던 이방 사람에게 구원의 복음이 나가게 될 것을 가리킨다. "구하지 아니하는 자,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는 이방사람들을 가리킨다. 신약 시대에 그 말씀이 이루어져서 구원이 이방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 10:21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치 않고 거스려 말하셨다. 그러나 이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는 이사야 65:2절의 인용인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고 하신 말씀이 증거한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불순종하고 거스려 말하고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아오라고 종일 팔을 벌리고 권면하면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불신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