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백운순의 시 세계
정적 언어와 관조의 미학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1. ‘나’를 응시하는 그 행간에서 현대시 읽기에서 우선적으로 살피는 것은 그 시인의 정감적 언어에서 사물을 어떻게 응시하고 있는가. 그 사물에 부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중점을 두는 예가 많다. 이는 그 시인이 향기로 띄어 보내는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전달될 때 매개체인 언어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 백운순 시인이 상재하는 제3시집『비어 있는 들판』을 대하면서 이처럼 사물을 응시하는 그 행간에서 그의 정적인 언어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잔잔한 시어나 보이지 않는 화자(話者)의 어조(語調)는 그가 일상적인 삶에서도 순정적인 성품과도 상관성이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정신이다. 한 시인의 순박한 성정(性情)에서 유발하는 시적 동기나 발상 자체는 그 작품 속에 침잠(沈潛)된 주제의식이 정적(靜的)인 언어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백운순 시인은 대체로 ‘나’(자아)를 향한 자문(自問)에서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경향으로 나아가다가 친 자연적 소재에서 다시 인간의 모든 상황(현실적 상황)과 교감하려는 시법이 조용하게 한 줄기의 선율로 흐르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가 의문형 시법으로 자아를 인식하거나 성찰하려는 어조는 다음「가슴에 피는 꽃」과 같이 형상화하고 있다.
눈 덮인 숲속에 바람꽃을 본적 있나요
바람 부는 숲길에 새소리 본적 있나요
바람에 흔들리고 눈비에 젖어도
뜨거운 눈빛으로 피어오른 꽃봉오리,
가슴에 피는 사랑 꽃, 본적 있나요.
이것이 그가 자아를 응시하는 과정에서 ‘본적 있나요’라는 자문이다. 스스로 ‘가슴에 피는 꽃’이라고 명명하는 것도 백운순 시인의 무한한 상상세계에서 탐구하는 이상향이다. 일찍이 셰익스피어가 말한 바와 같이 시인의 상상은 미지의 사물의 형체를 구체화시켜, 시인은 그것들에게 어떤 형태를 부여해 주며 형상 없는 것에 장소와 명칭을 부여해 주는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 그렇다면, 백운순 시인이 갈구하는 이상세계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에게 내재된 자아의 인식과정에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관의 정립은 바로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 작품「비어 있는 들판」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비어있는 것은 들판만이 아니다 분주한 시간 멈춰 흔들리는 세상 내려놓는 것 또한 그렇다.
척박한 모래땅에 온 힘 다하여 뒤섞이는 외로움이거나
새롭게 깨어나기 원하는 자연의 축대를 세워 숨결 가다듬어 풋풋한 향내 쏟아 내는 것도 그렇다
모호한 환상이 껍질을 벗고 나부끼는 빈 들판, 자유롭게 쪼아대는 것 또한 그렇다.
보라. 백운순 시인의 사유 중심축에는 ‘비어 있’음에서 ‘새롭게 깨어나기 원하는’ 시적 진실이 숙성되고 있다. 그가 ‘흔들리는 세상 내려놓는 것’과 ‘모호한 환상의 껍질을 벗’는 것 등이 빈 들판만큼 그에게는 소중하다. 그것은 그가 지향하는 존재의 이유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지만, 현실과 조화에 상당한 갈등이 내재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그는 「빈 뜰」에서도 ‘다시 화음이 되는 / 이 쓸쓸한 기류 / 허연 깃 곧게 세워 / 가파른 추위를 가른다’는 어조가 그의 공허의식 즉 ‘비움’에서 찾게 되는 관조(觀照)의 진실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적 정황이나 언술들은 모두가 백운순 시인이 자신을 돌아보는 하나의 행간으로서 자아의 인식과 성찰을 위한 여과장치이며 시를 통해서 투영하는 진솔한 시정신임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는 작품「마음」과「내 마음의 숲」에서 ‘고독 한 웅큼 집어 / 가슴 삭히면 / 햇살 끄트머리에도 빛이 걸린다’거나 ‘떨어지는 잎새마다 / 물방울 돋아나 / 솔바람 풍경 얹어 / 옛 자취를 더듬는’ 일들이 그에게서 찾아보는 인식의 한 단면으로서 그의 시학에 축을 이루는 순박한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시공(時空)을 유영(遊泳)하는 이상향 그의 시학은 이상향을 지향하면서 정서의 향방이 시공을 유영하고 있다. 그는 해, 달, 별, 바람 등이 작품의 이미지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매체가 되고 있어서 그는 인식된 자아를 더욱 심도 있는 세계의 몰입이 시도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흔적으로 머문 자리 바람 쓸어 너울댔다.
산허리 돌았던가 혼신으로 뿜는 저 빛,
낙혼의 줄기 태워 바다 건너는 불빛여. -- 「석양」전문
달빛 지는 소리 호수에 담기면 아침이 오는 소리 풀잎에 아롱지네. -- 「소리」중에서
새벽 별 쪼아낸 사념 섬으로 떠돌다가 마른 입술로 낡은 책 더듬는다.
어제의 고랑에 채운 웅크린 그늘, 쪽문으로도 빠져 나갔을까
시공 가로질러 나지막이 소리 뱉어내면 촉수 낮은 전등만 자유롭게 누워있다. -- 「별빛 사이로」전문
이렇게 허공에 떠있는 천체에 까지 그의 정서가 투영됨으로써 그가 지향하는 이상향의 범주(範疇)는 확대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하게 쳐다본 감성이 아니라 해와 달과 별이 내리는 빛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암묵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흔적으로 머물던 자리’이며 ‘풀잎에 아롱지’는 ‘달빛 지는 소리’이며 ‘아침이 오는 소리’이다. 이들은 모두 ‘시공 가로질러’ 인간들에게 전하는 소리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추출은 만유(萬有)의 사물들을 백운순 시인의 시적 상황에서 포용하면서 새로운 메시지를 창출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가 ‘어제의 고랑에 채운 / 웅크린 그늘’에서 들리는 ‘은은한 물결소리 / 낙엽 밟는 소리 / 계절의 숨결소리’가 그에게서는 ‘향기로 다가오’는 이상향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형이상적(形而上的)인 정서의 발원에서 생성한다. 우주뿐만 아니라, 영혼의 세계까지 교감하려는 고차원의 시법으로서 그에게서 진정한 이상향의 창조에 접근하는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또 다른 매체인 ‘바람’이 등장하게 되는데 ‘아직도 거센 바람 / 바뀌지 않았는데(「신호등 앞에서」중에서)’라거나 ‘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쉼터」중에서)’라는 현재의 허탈을 실상으로 적시하면서 상관관계를 연결하여 궁극적인 시의 생명으로 승화하고 있어서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3. 사계(四季)에서 교감한 시간성 백운순 시인은 다시 시간성에 민감하다. 이는 우리의 삶이 시간과 결부되어 있다는 보편적인 논리를 초월해서 사계절과 교감함으로써 실재(實在)의 나와 시적인 자아를 분명하게 탐색하는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그는 대체로 계절적 이미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 아지랑이 핀 / 언덕에서 / 깨달음 오는 날 // 표정 없는 얼굴위에 / 햇살도 실어 // 먼저 가버린 것이 / 아픔도 다듬어 / 새롭게 다가오는 / 빛깔로 채운다 // 너그러운 담장되어 / 가슴도 지폈다.(「봄자락에서」전문) - 안개비 속으로 / 무엇이 사근거리며 가는가 / 허덕이는 바람 곁으로 / 투명한 아침이 올 것인가(「여름, 산에 오르며」중에서) - 무슨 인연의 소리였을까. // 영창 타고 / 흐르는 선율은 / 쉴 새 없이 / 거침없이 날아오 는데 // 마른 가슴 기울여 / 귀의하는 흔적, // 이제라도 그 흔적 / 퍼 올릴까.(「가을 소 리」전문) - 하늘가 모서리에 / 물빛 그리움 // 얼룩진 눈물자국 / 강심(江心)에 재우면 // 그늘진 등 뒤로 / 옛이야기 / 홀로 떠돌아 // 꿈결인 듯 부르는 소리 / 빈 배만 출렁인다.(「겨울바 다」전문)
보라. 백운순 시인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정경(情景)이 달라지면서 동시에 이미지의 적출이 다양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봄에서는 ‘아품도 다듬’는 ‘깨달음’이거나 ‘너그러움’이지만, 여름과 가을에서는 ‘가는가’, ‘올 것인가’, ‘소리였을까’, ‘퍼 올릴까’ 등의 의문형 어조로 자문하고 있는 특징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겨울에서는 ‘얼룩진 눈물자국’과 ‘빈 배’ 등으로 ‘그리움’을 적시하고 있는데 이는 계절적 특성보다는 보편적 심리현상이 시간성과 결합하면서 자연스럽게 생성한 관조의 의미가 더욱 진하게 투영되고 있다. 한편 백운순 시인은 소리를 듣는 청각이미지를 자주 활용하고 있다. 이 청각을 통한 작품의 구성이나 언어의 조화는 시적 효과분만 아니라, 작품 전체의 유연한 흐름을 유도하여 그 맛과 멋을 구비하는데 좋은 여건을 조성하게 된다. 우리는 앞에서 보아온 ‘달빛 지는 소리’나 ‘아침이 오는 소리’, ‘가을 소리’, ‘꿈결인 듯 부르는 소리’ 등의 소리가 전해주는 정감에서 시인의 숨결을 직접 경청하는 듯한 순정성에 흡인(吸引)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가을 문턱에서」도 동일한 소리의 정감에 매료되고 있다.
무명천에 수놓은 햇살 사르면 뜨거운 숨결 끝자락에 하늘 어우르는 소리
꽃물 드는 소리 바람 타는 소리 주춤 빗소리에 서성이면
꽃망울 개울가에 앉아 달빛을 마신다.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꽃물 드는 소리’, ‘하늘 어우르는 소리’는 ‘달빛 지는 소리’와 함께 절묘한 언어 구사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실제의 소리가 없는 무성(無聲)의 사물이 그 행위에서 시인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통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바람 타는 소리’나 ‘빗소리’와는 전혀 다른 함축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달빛을 마신다’는 어조도 시어로서만이 성공할 수 있는 언어임을 잘 응용하고 있어서 독자들과의 교감을 더욱 차원 높게 유도하는데 익숙해 잇음을 알 수 있다. 백운순 시인은 계절 중에서도 가을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시적 소재에서만 보아도 ‘가을 단상’, ‘가을 문턱에서’, ‘가을비’, ‘가을 소리’, ‘단풍’, ‘코스모스’ 등 가을과 상관된 작품을 많이 대할 수 있다. 가을에 관한 이미지나 상징은 통식적으로 풍요를 나타내지만, 세분화하면 다양한 이미지로 변신한다. 예컨대 오곡백과 무르익은 가을은 풍요와 성숙이지만, 낙엽이나 ‘가을비’ 하나 달랑 남은 까치밥 등에서는 또 다른 이미지가 창출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인들의 심경 변화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그는 「가을 단상」에서 ‘그리운 것을 그리워하자’라고 그리움을, 「가을 비」에서는 ‘영혼의 뜰’에서 ‘마르지 않는 인연’을, 「가을 소리」에서는 ‘마른 가슴 기울여 / 귀의하는 흔적’을, 「단풍」에서는 ‘고운 꿈을 갈망’하고 ‘사랑에 취해 있’음을, 그리고 「코스모스」에서는 ‘아릿한 그리움으로 / 눈물자국 발갛게 차올라 / 천상 헤매며 흔들거렸다’는 그리움과 흔들림으로 분화(分化)하여 가을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겨울 산길’, ‘겨울바다’, ‘눈꽃’, ‘초겨울 풍경’ 등 겨울에 관한 사물의 변화에도 독특한 어조로 표징하고 있는데 다음「눈꽃」에서 그의 진실을 찾아보자.
싸한 바람과 시린 별빛과 오래된 풍경 속에 채워지는 그리움과 같이
야윈 가지는 두 팔 벌려 반짝 날아오르고
오솔길에 기댄 산 그림자 생기로 넘쳐 눈부시게 온다.
백운순 시인의 언어는 간결하고 명료하다. 셸 리가 말한대로 시는 시인이 최상의 행복과 최선의 정신, 최고의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우선 시는 간명한 함축성을 요구하게 된다. 그가 마지막 연에서 ‘오솔길에 기댄 / 산 그림자 / 생기로 넘쳐 / 눈부시게 온다’는 ‘눈꽃’에 대한 절묘한 언어는 바로 ‘눈꽃’에 대한 결론이며 주제로 압축되어 있다. ‘눈꽃’이 ‘생기로 넘’치는 아이러니도 현대시 작법의 한 단면이라고 이해한다면 무한의 사유를 요구하는 이미지로 승화할 수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는 대체적으로 ‘겨울’ 이미지를 그리움으로 형상화하지만, 겨울은 기다림이나 인내 등의 이미지도 함축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4. 자연 서정과 ‘하얀 침묵’ 백운순 시인은 서정성을 배제하고는 시를 창작할 수 없다. 이미 그는 체질화한 서정적 감성에서 시적 발상은 물론 주제의 탐색도 지속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그의 지적 혜안(慧眼)으로 숙성된 삶의 방식이나 사유의 척도가 친 자연적 습성에서 이탈할 수가 없다. 이러한 그의 순박한 심성이 시적 원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탐구하려는 시적 진실은 자연 서정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서문’에서 적은 대로 ‘<자연은 인간에게 있어 위대한 스승과 같다>는 말을 깊이 생각하며 시와 교감하’려는 그의 간절한 심성의 발현이 성취되고 있는 듯하다.
가시덤불 헤치면 쏟아진 별무리
피안의 넝쿨에 수줍게 입 맞추면
저 세월 나직한 숨결 하얀 침묵으로 곱구나. --「찔레꽃」전문
댓바람에 사각거린 낯선 영혼처럼 설움에 몰린 빛
황폐한 침묵이다.
허공 자락에 모인 어둠이 빚은 굴레,
흩어진 텃밭에 덩그러니 앉아있다. -- 「자연 재해」전문
우선 이 두 편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점은 서정적 언어의 광채이다. 그는 ‘찔레꽃’이라는 단순 사물에서 ‘쏟아지는 별무리’와 ‘피안’과 ‘세월의 나직한 숨결’을 발견하게 되고 소박한 민초들의 정서와 ‘하얀 침묵’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낯선 영혼처럼 / 설움에 몰린 빛’은 바로 ‘황폐한 침묵’의 ‘자연 재해’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이다. 지금처럼 문명시대에서 황폐화하는 자연 생태계의 파괴는 우리 시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의 대명제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러하듯이 백운순 시인은 자연 친화를 통해서 인간의 현실적인 고뇌와 갈등을 정감 있게 형상화해서 자연과 인간의 상호 화해를 시법으로 전개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자연의 문제가 곧 인간의 문제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면서 인본주의의 구현이라든가, 존재문제의 근원적인 인식을 절립하는 시의 위의(威儀)나 시의 본령을 구축하려는 노력의 일단으로 이해하게 된다. 백운순 시집『비어 있는 들판』에서는 대체로 사물을 관조하면서 그 특유의 정적인 언어로 잔잔하게 그의 시학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시는 영혼의 음악이면서 영혼까지도 울릴 수 있어야 한다는 누구의 말처럼 현대인들이 고뇌하고 번민하는 존재의 성찰문제를 더욱 심도 있게 주제로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현대시는 인간(혹은 인류)에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패턴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우리 시인들의 숙명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