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臥龍)
□ 마을유래
마을 뒤편에 삼봉산이 솟아있고 땅 모양새를 보고 용강(龍崗)이라 하다가 와룡 선생이 시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300여 년 전 인천채씨(仁川蔡氏)가 마을을 열었다고 한다. 쌍봉초등학교가 1956년부터 1996년까지 자리하였다.
□ 마을의 문화자원
◦ 가수정(假睡亭) : 와룡 마을 동쪽 500m 지점 길가에 있는 큰 느티나무 정자다.
1794년 수암(睡菴) 변사은이 대를 쌓고 만년을 소요하며 낮잠을 즐기던 곳이라 하여 가수정이라 하는데, 건물은 없고 나무 그늘 아래 석대가 있으며, 밑으로 시원한 냇물이 흘러 피서지로 적격이다. 느티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일대를 숲으로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최근에 군에서 이곳에 육모정을 세워 무더운 여름철에 시원한 피서지가 되도록 배려를 하였다.
<가수정 원운(假睡亭原韻)>은 대를 이룬 바위 앞면에 새겨두었으나 마모되어 알아보기가 힘들다. <가수정기(假睡亭記)>는 1974년 간행된 변사은의『가수정시집(假睡亭詩集)』에 원운과 함께 수록되어있다.
◦ 동원정(同源亭) : 와룡 마을 동쪽 길 위에 가수정 건너편에 있는 바위와 느티나무 정자다. 느티나무 숲속 바위에는 기해년(1959)년 봄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고 기록되어 있고, 가수정을 축조한 밀양인 변사은(卞師殷)의 현손 균석(均錫)이 광복 후에 수음정으로 조성했다. 기문과 시는 없으며, 관리하는 후손이 와룡에 살고 있다.
◦ 호설비(號設碑) : 봉산리 수음정 길 위에 있다. 1995년 10월 석운(石雲) 거창인 신홍구(愼洪九)의 호설(號設)을 비로 세웠다. ‘밀양 박씨 호열비(密陽 朴氏 號閱碑)와 같이 있다.
□ 마을신앙
◦ 마을 서북쪽 1km 지점 골짜기에 호박돌처럼 움푹 패인 곳을 상당으로 하고 그 바로 아래 연이어서 중당과 하당이 있고, 마을 입구에 돌로 쌓은 조산을 당산으로 하여 초 하룻날에 당산제를 올렸으나 50년 전부터 당산제를 지내지 않고 있다.
제관은 한달 전에 선정했고, 제기는 마을 공용을 사용했으며, 제물은 제관이 마련했는데 백시루, 조곽, 건어물을 올렸으나 돼지고기는 쓰지 않았다.
섣달 그믐날 낮에 우물을 청소하고 금구줄을 치는데, 제관은 밤에 상당에 올라 소반에 쌀을 부어놓고 한 알 한 알을 정성스럽게 주워담아 맑은 계곡의 물에 씻어 밥을 지어서 올렸는데, 자정 즉, 초하루가 되면 상당, 중당, 하당에 연이어 제를 올리고 나서 마을로 내려와 조산에 제를 올렸다. 제가 끝나면 날이 새도록 멈추지 않고 풍물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