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개들은 자색 옷을 입은 부자에게서 먹을 양식이 나오므로 그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
2) 나사로의 죽음은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돌아감(속사람)이다.
3) 인간의 지식이나 종교적인 거룩함으로 하나님을 만나려는 것이 간음이며 살인행위라 한다.
4)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직접 스스로 깨닫고 경험해서 확증해야 한다.
나. 본론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2).”
1) 개들은 자색 옷을 입은 부자에게서 먹을 양식이 나오므로 그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
개들은 자색 옷을 입은 그 부자를 섬기는 것이 속성이며 그의 행위들이다. 개들은 자색 옷을 입은 부자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 그에게서 자신들의 먹을 양식이 나오기 때문이다. 부자의 양식을 먹는 개들이 나사로의 그 상처를 핥으면 상처가 더 심해진다.
2) 나사로의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돌아감(속사람)이다.
결국 부자는 가난한 나사로를 개보다 못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 개들은 나사로의 배를 채워줄 수 없는 것은 개들이 하나님 나라로 이끌 수 없는 겉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가 더욱 심하여 결국 나사로가 죽음(아포드네스코)을 맞이한다. 아버지에게 돌아감이다. 나사로의 이 죽음(아포드네스코)은 겉 사람인 부자와 그 개들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부자가 더 이상 자신의 종교성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행위를 통해 안위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려주신다. 육체적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전환점은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이루어진다. 인간의 지식이나 종교적인 거룩함이나 도덕적인 깨끗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더욱 멀어질 뿐이다.
3) 인간의 지식이나 종교적인 거룩함으로 하나님을 만나려는 것이 간음이며 살인행위다.
성경말씀은 인간의 지식이나 종교적인 거룩함 또는 도덕적인 깨끗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려하는 것이 간음이며 살인행위다.
이래서 마음 안에서 올라오는 의도를 자세히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의도(의도적 행위 : 상카라)에서 알음알이(아는 마음)가 일어나며, 이에서 정신(마음)과 물질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가감 없이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유명한 사람이 말했다고 해서 따르면 큰일이다. 자신 안에서 직접 확증해야 하는 것이다.
4)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직접 스스로 깨닫고 경험해서 확증해야 한다.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 왔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해서, 경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유명한 사람이 말했다고 해서, 스승이 말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라서는 안 될 것이다.
스스로 깨닫고 알게 되면 그때에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직접 경험해서 확증해야 한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