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발표문) > 홍완기 시인의 인생과 시 세계 >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 1. 홍완기 시인과의 대화 >홍완기 시인과 필자와의 대화는 1980년대 초 심상해변시인학교에서 시작된다. 그는 훤칠한 키에 중후한 인상으로 참가 시인들과 독자들의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시 창작 지도는 물론이지만, 임해수련 때에는 언제나 수영지도 시인이어서 해변에서 벌어지는 파도와의 교감으로 인기가 높았다. 홍완기 시인은 본관이 남양으로 1932년 12월 20일, 충남 보령군 대천읍 궁촌리 109번지에서 태어나서 성남으로 이주해서 살다가 2004년 7월 7일 자택에서 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천초등학교(단기 4279년 7월 1일)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나뭇꾼, 엿장수, 뱃사공, 철도국 임시직원, 지방신문 견습기자, 승려, 성문각 출판사 교정원,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하며 시작(詩作)에 정진하였다. 그는 1959년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지인『사상계』에 작품「초토(焦土)의 장(章)」, 「선(線)」 등이 박목월, 박남수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시집으로는『술을 마시고 바위를 보면』『얼굴』『남한산 광대놀이』『시퍼런 생각』(‘96 영하)『추락하는 비상』『뜰과 의자』『이미지로 있는 형상』등 7권을 상재하고 이상화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이상화시인상(’97-12회)과 순수문학 대상(‘98) 등을 수상하였다. 홍완기 시인의 시적 특징은 초기에는 고독과 갈등, 고뇌와 한(恨), 암흑과 죽음의 세계 등 유랑시절의 암담한 생활과 밀착되어 표현하였으나 만년(晩年)에는 인생과 사회에 대한 보편적인 문제를 추구에 노력하는 경향으로 바뀌었다. 홍완기 시인과는 해변시인학교 이후에도 서울 인사동 술집 ‘시인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낭송회에 초대 시인으로 참석하여 낭송 작품을 강평하거나 독자들의 질의에 자상하게 설명하면서 작품을 첨삭하고 지도를 해주었다. 행사가 끝나면 준비된 술상을 마주하고 밤늦도록 문학적 담론이 끝날 줄을 몰랐다. 어느 날 홍완기 시인이 필자의 대학로 사무실(당시 필자는 한국예총에서 월간『예술세계』편집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로 찾아왔다. 시집을 상재하고자 준비중인데 그 시집 해설을 부탁한다는 내용에 깜짝 놀랐다. 당시의 필자는 문단 말석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처지여서 좀더 고명한 분에게 부탁하라는 말로 사양했다. 그러나 그는 문학잡지에 발표되는 필자의 글을 모두 읽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 필력이면 좋은 평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원고를 그냥 책상 위에 얹어놓고 2주일 후에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이렇게 해서 할 수 없이 모자라는 지식으로 겨우 독후감 정도의 해설을 써서 시집이 발간되었다. 그는 새 시집『시퍼런 생각』을 가방에 넣고 다시 대학로로 찾아와서 선술집에 앉아 대폿잔을 나누면서 어린애처럼 좋아하던 모습이 선할 뿐이다. 더구나 이 시집 『시퍼런 생각』으로 제12회 상화시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되어 필자도 등달아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구 상, 황금찬, 이 석, 홍윤숙 시인들은 ‘존재의 허망을 넉넉하고 유유자적한 바람 또는 물로 비유하면서 비극적 삶을 담담한 사유로 술회하며 수용해가는 폭넓은 시인의 신에 공감하여 상화시인상에 적합한 작품이라 생각되어 추천합니다.’라는 의견의 심사평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시 세계는 확고한 경지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는 성과에 대한 칭송과 칭송이 보내는 박수이고, 하나는 기왕의 성과에 대한 그것보다는 앞으로의 성과에 무게를 실어 기대를 거는 격려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 제게 주어지는 이 상의 의미가 저는 후자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시가 명리(名利)의 수단일 수는 없으며 수단이어서도 안됩니다. 인간 이상화. 그는 조국 상실의 이제 암흑기를 살면서 시인으로 몸을 일으켰으나 누구라고 거명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바 적지 않은 시인이 일제에 굴신(屈身)한 것과는 달리 명리(名利)를 버리는 일관된 지조(志操)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면서 겨레의 얼을 담은 격조 높은 시를 마치 붉은 피를 방울방울 짜내듯 온 몸으로 빚어냈습니다. 사실 그의 주옥같은 시엔 선혈(鮮血)이 배어 있으니 마음의 저울에 올리면 그의 시는 천근의 무게를 갖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시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쁩니다. > 홍완기 시인은 위와 같이 수상 소감을 써서 화답하였다. 이제 그의 이러한 업적을 칭송하면서 무창포 바닷길이 갈라지는 석대도 초입(初入)에 시비를 건립,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잇기 위해 파도치는 무창포에 문단의 고향후배들이 세워 그를 기리고자 한다는 취지로 이곳 보령의 문인들이 힘을 모아 그의 시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 물이 흘러 물길을 이루니 그 물길따라 배가 드나들고 그 물길 배가 드나드는 길 내 따라 바다가 드나드나니 그 바다가 드나드는 목의 첫머리가 포구이니 무창포는 그 포구가 있어 펄펄 끓는다. 산자수명함이 있어 조용한 듯하나 겉으로의 그것과는 달리 역사가 단선적으로 펼쳐지지 않는다. 기실은 추동과 길항의 착잡한 역학관계를 감추며 움직인다. 먼 바다가 온몸으로 달려와서 육지를 물어뜯고 요동치며 육지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육지와 바다는 마침내 약속이나 한 듯 한 몸을 이룬다. 그로써 물산이 들어오고 나가고 나가고 들어오는 물산을 따른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교류와 접합이 마음의 끈끈한 유대와 결속을 가져오는 것이 분명해 무창포의 사랑은 다홍색 펄펄 끓는 뜨거운 뜨거운 사랑이다. >
그의 비문에는 작품「무창포의 사랑」이 각자(刻字) 되었다. 그의 고향 사랑을 엿보게 하는 명작이다. 이 시비 제막식에는 필자도 참석해서 축사를 한 바 있다. 이 어려운 일은 평소에 그를 존경하고 애향심에서 우러난 진정한 문학 사랑이 결실을 맺었는데 이곳에 살고 있는 박용서 시인이 앞장 서서 모든 업무를 추진하는 공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시비 건립을 추진할 당시 박용서 시인은 홍완기 시인의 인생과 문학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한국문인협회와 한국펜본부 등 단체와 각 잡지사에 방문하거나 직접 통화를 해서 자로를 많이 수합한 것도 박용서 시인의 노고이다. > 홍완기 시인은 전생을 통해 올바른 시인의 자세로 詩作에 충실하고 교분관계도 원만하였으며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의 시집 『시퍼런 생각』을 받아 읽고는 전화를 걸어 그 책에 담긴 고통 등의 문학적 심각성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으며 그 후 『죽순문학』의 대상을 받을 땐 그의 請을 들어 시상식장에 나가 축사를 하였지요. 수년 후 새 시집의 준비를 완료한 홍완기 시인은 그 원고를 우송해주면서 간곡하게 출판사 추천을 부탁하기에 김종철 시인이 사장으로 있는 ‘문학수첩’서에 천거하여 출판되었습니다. 중환으로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단계라는 전화를 끝으로 소식을 못들었던 중 作故의 悲報를 듣고 애통의 심정을 누를 수 없었는데 오늘 그의 詩碑가 세워질 준비단계라니 반갑고 감사하기 이르데 없습니다. 2011. 11. 13. 김남조 > 이렇게 감남조 시인은 친필로 홍완기 시인을 회상하는 글을 써주었다는 것도 훗날 큰 자료로서의 가치가 인정될 것이다. 이 밖에도 문덕수 시인과 황금찬, 김광림, 범대순, 이형기, 이건청, 김송배, 박영하 시인 등에게서 그에 관한 자료가 답지(遝至)한 것으로 알고 있다. 모두가 감사한 일이다. > 2. 홍완기 시인의 시 세계 홍완시 시인의 시 세계를 전부 말한다는 것은 시간이나 지면상 어렵고 필자가 직접 해설을 썼던 시집 『시퍼런 생각』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피력하고자 한다. 이 시집 ‘자서(自序)’에서 분명하게 밝힌 바와 같이 ‘시인은 언제 어디서나 깨어있는 의식으로 존재하고 노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 바로 시인으로서의 내가 그러겠다는 것을 스스로 다짐하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 아래 ‘부지런한 시인으로 변신하여 의욕적으로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다’는 열정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는 이러한 열정과 의욕이 넘치지만, 냉철한 시정신의 줄기에서 시와 함께 살아온 삶의 노정에서 획득한 가장 순수한 고뇌가 투명하게 반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그의 시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유추하게 된다. > -詩가 똥되면 이 세상 끝이다(「장대비」중에서) -나의 가난 / 오늘의 나의 詩 / 오늘 깊은 沈潛(「暝目」중에서) -그렇게 화장되는 내가 부끄러웠지만 /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 나는 詩人, 나는 觀照者이므로(「헛기침」중에서) -한 편의 詩를, 이루기까지는 / 나는 한참을 더 서성여야 한다 / 아프게 울어야 한다(「밤 하늘」중에서) -저는 詩를 써아 합니다 / 시는 당신의 뜻을 받든 제 업입니다 /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느님」중에서) > 홍완기 시인은 시와의 필연성은 ‘고뇌’나 ‘가난’이라는 주제뿐만 아니라, 형이상학(形而上學)의 인간성의 탐미적 근원에서 그의 진정한 목소리를 감청(敢請)해야 진실의 접근이 용이해 진다. 그것이 홍완기 시학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이든 삶이든 시인의 영혼과 비젼이 동시에 충족되어지는 묘미(妙味)가 거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구가(謳歌)하는 결론적인 시의 모습은 이러한 평범 속에서 섬광으로 빛나는 시정(詩情)이 맛깔스럽게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써 그가 일생을 통해여 추적하고 탐색하는 ‘순수’에의 그 귀결점을 안착시키고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한 편의 시라는 극명한 진실 앞에서 신앙과도 같은 지향적인 시혼(詩魂)의 발현은 이미 체질화(體質化)했거나 생활화(生活化) 되어버려서 어쩔 수 없는 시인의 광기(狂氣)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 기러기 끼럭끼럭 울며 떠나간 후 불현듯 생각이라도 난 듯이 그 울음의 시린 바다 한공중을 무자맥질하며 흐르는 달아 오늘응 도 무슨 일이 터졌던가 오 안다 오 순수의 처형!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자유로 다만 하나의 봄을 노래했을 뿐이지만 지례 질겁을 하고 공연히 그것을 시기하는 어둠의 자식의 검은 손이 노래 너머 지금도 언뜻 보이나니 그 낮으로부터의 긴 여로를 꽃잎 하나 나비처럼 날아 타듯이 흐르다가 곤두박혀 떨어지고 드디어 하늘 혼자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구나 어쩌면 무덤보다도 더 적막한 깊은 밤의 이 땅이 그대로 파도 속에 잠기는구나 나도 함께 파도 속에 잠기는구나 > 이 작품「기러기 울며 떠나간 후」전문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순수’에 대한 집념과 시정신의 치열성이 명징(明澄)하게 현현되고 있다. 이는 홍완기 시인의 인생 철학이나 존재 인식에 대한 절대 가치관으로 승화된 순정으로써 시적 면모의 탐색으로 유추할 수도 있겠으나 그의 심연(深淵)에 뿌리 내린 달관(達觀)의 의식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홍완기 시인이 시와 삶과의 병존(竝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체질화한 시혼의 극치는 현실적 절망이나 모순 등에 대한 심적 정화라는 몇 단계의 여과(濾過)를 통한 진실의 추출로 그 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시풍(詩風)은 1950년대 우리 사회상이나 삶의 질 그리고 모든 여건들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현상으로 겼었던 빈자(貧者)의 고뇌는 시인의 광대한 사유(思惟)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발양하는 아픔이며 절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작품 「조응(照應)」에서 ‘그 피 이제 날 아프도록 태워오는 / 뜨거운 고뇌의 열량 / 뜨거운 고뇌의 밀도....’라거나 「판교들에서」중에서는 ‘오늘의 질과 무게가 요구하는 / 오늘의 사유 그 사유가 부른 고뇌 / 하나의 사랑을 위한 혹독한 고뇌다’, 「통곡」중에서 ‘그것은 한 굴절된 시대를 살아온 고독한 인간의 고뇌에 찬 모습이 투영된 한 편의 엄숙한시가 되겠지만’ 그리고「목숨 소고(小考)」중에서도 ‘꽃이 뭐냐고 묻느뇨? // 목숨의 가장 통렬한 아픔 / 절망, 고독,’ 등등의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고독과 고뇌는 영원한 시의 모티브가 되기 우한 혹독한 ‘뜨거움’으로 여과시켜서 그의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시학으로 정립하고 있다. 또한 그는 가난이나 고독이라는 실제의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것도 그의 관념 속에 내재한 불멸의 영혼이 실재(實在)의 나와 오묘한 심적 해탈(解脫)의 지향적인 어조가 강렬하게 흡인(吸引)되고 있음은 그의 삶의 궤적(軌跡)에서 투영된 시적 진실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작품 「이슬」전문을 음미(吟味)하면서 소론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깊은 밤의 두꺼운 어둠을 뚫고 이름도 없는 한낱 작은 풀잎 끝에 하늘과 함께 내려와 앉은 한 방울의 맑은 이슬이 이 아침 나도 모르게 내 허리를 구부리게 하여 가는 바람결에도 흔들리는 그의 작은 풀잎처럼 나를 울리고 이어 내 눈물로 땅에 떨어져 오늘을 만들어 어렵게 걸어가야 할 내 발을 축축히 적시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