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 바르게 하기』 박두진의 「청산도」. 지도/황봉학 시인
청산도(靑山道) / 박두진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 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 골 골짜기서 울어 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릴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틔어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 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 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한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넘어, 골 넘어,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출처 : 책 『교과서 시 정본 해설』(Human & Book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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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제발 이렇게 배열하지 마라.
인터넷에 올라온 시가 90퍼센트 이렇게 되어 있다.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 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 골 골짜기서 울어 오는 뻐꾸기……
[짧은 핵심 강의]
주어는 끊어 읽는다. 나는/ 그는/ 그대는/ 그녀는.
중간어미는 말의 끝을 올리고. 종결어미는 말의 끝을 내린다.
고유명사는 글자 그대로 발음하라. 박목월 = 박, 목, 월. (방모궐로 발음하면 안된다) (선릉 = 선릉(또는선능).(설릉)으로 발음하지 마라)
발음법상으로는 '방모궐'과 '설릉' 맞지만 박목월 선생님을 '박' 씨가 아닌 '방' 씨로 오인하게 하거나, '선릉'은 국립국어연구원에서 4대째 서울에 살고 있는 서울 토박이 3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대상자 30명 전원이 지하철 2호선 '선릉'의 안내방송 '설릉'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경향신문과 한겨레 신문에서 인용).
가장 혼동을 주는 것이 외국인이 '설릉'으로 알려주면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 많은 논란이 있는 발음이니 낭송자가 잘 파악하고 선택하기 바란다.
제목과 시인명과 본문의 톤을 다르게 낭송하라.
형용사는 감정을 안 주어도 잘 전달되기 때문에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아나운서 교육과정에서 많이 적용하고 실제 아나운서들이 방송에서 많이 활용한다.)
시낭송가가 낭송을 제대로 배우고자 하면 이 시 ‘청산도’를 연습하여야 한다. 또한 시낭송가의 자질을 알고 싶을 때는 이 시를 낭송시켜보면 된다.
박두진 시인은 우리나라 시인 중에서 가장 리듬감이 있는 시를 쓴 분이다. 그래서 많은 낭송가가 박두진 시인의 시를 낭송하기를 좋아한다.
이 시는 리듬감이 있는 시이기 때문에 율동감 있게 춤을 추듯이 낭송하여야 한다. 파도에 일렁이는 돛단배처럼 율동이 따라야 하고 ‘연음’을 사용하여 배가 파도에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바다를 가르는 것처럼 시구가 이어져 나가야 한다.
이 시가 산문 형태로 기술되어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반복법이나 자운으로 이루어진 대율이 곳곳마다 깔려 있다.
4연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각 연을 산문처럼 시행을 배열했지만 율행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쉼표를 찍어 두었다. 그래서 시를 옮겨 적는 분들이 쉼표대로 율행 처리를 하여 시를 책에 싣거나 낭송교본으로 쓰는데 이는 잘못된 방식이다.
시를 낭송하여 보면 ‘무성히 무성히’ ‘골 넘어 골 넘어’ 같은 단순반복법이나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같은 간격반복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반복법’이란 = 중간에 다른 단어가 없이 같은 단어로 반복하여 이어진 것.
‘간격반복법’이란 = 똑같이 반복된 단어 사이에 다른 단어가 들어가 있는 반복법.
산아, ( )산아, ( )산아,
( )가슴이 울어라, ( )가슴이 울어라
( )그리워라, ( )그리워라
( )세상에도, ( )세상에도
( )볼이 고운 나의 사람, ( )볼이 고운 나의 사람
(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 )그리노라, ( )그리노라, ( )그리노라
이런 간격반복법이 많이 나오는 까닭에 시어를 똑같이 낭송하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변화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반복감을 충분히 살려서 낭송하여야 한다.
어떤 낭송가가 단순반복법인 ‘무성히 무성히’를 ‘숱한 나무들, 무성히 /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로 낭송을 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들었다. ‘무성히 무성히’와 ‘골 넘어 골 넘어’ 같은 단순반복법을 따로 끊어 읽으면 안 된다. 시낭송에서 ‘띄어 읽기는 생명’이다.
[인터넷을 부끄럽게 한 잘못된 발음들]
짙푸른 산아 = 짇푸른 사나(○). 찌푸른(×). 찓푸른(×).
풀밭에 엎드리면 = 풀바테 업뜨리면(○). 업디리면(×). 엎드리면(×).
눈물 어릴 볼이 고운 = 눈물 어릴 보리 고운(○). 눈물 어린 뽀리 고운(×).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이 부분은 ‘도, 고, 고’ 즉 ‘ㅗ(오)’가 운이 되고)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이 부분은 ‘은, 은, 운’ 즉 ‘ㄴ’이 운이 되고)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이 부분은 ‘고, 고, 고,’ 즉 ‘고’가 운이 된다.)
이렇게 운이 있는 부분은 같은 어조와 같은 속도로 낭송하여 그 운을 강조해 주어야 한다.
이때 이 음운은 ‘연음↝’으로 연결해서 낭송하여야 파도가 넘실거리듯 리듬감이 생긴다.
하지만 끝음은 연음으로 처리하지 말고 딱 끊어서 낭송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시는 시조처럼 글자 수가 같은 대율이 많아 리듬감이 살아 있는 시이다.
사슴도 안 오고 / 바람도 안 불고 (6 ․ 6)
너멋 골 골짜기서 / 울어 오는 뻐꾸기 (7 ․ 7)
아득히 가버린 것 / 잊어버린 하늘과 (7 ․ 7)
총총총 달려도 와 줄 / 볼이 고운 나의 사람 (8 ․ 8)
이런 대율 부분은 음률이 서로 대응되도록 낭송하여야 한다.
이 시의 포인트는 3연의 끝부분과 4연의 첫 부분이다.
(3연 끝부분)
향기로운 이슬 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 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 이 부분은 빠르게 어조를 조금 고조시키며 낭송하고(음악의 알레그로),
(4연 첫부분)
푸른 산↝ 한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넘어,↝ 골 넘어,↝ 뻐꾸기는↝ 우는데,
- 이 부분을 3 ․ 3 ․ 3 ․ 3의 리듬으로 천천히 낮추어 낭송하여 3연의 끝부분과 대조를 주어야 한다.(음악의 안단테)
[팁]
시낭송을 잘 하시고 싶은 분은 이 시를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된다. 리듬 감각을 기르고 싶으면 이 시를 하루 10번씩 2주간만 연습해 보시라.
발음의 분명함을 배우게 되고 탄력성 있는 목소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마치 무희가 무대에서 춤을 추듯 율동감 있게 고저장단을 나름 구사해 보라.
특히 ‘연음’의 연습에 많은 비중을 두고 단어가 토막 나는 일이 없도록 연습하라.
인터넷에 떠도는 수십 편의 낭송을 들어보니 이 시의 음률을 이해하고 완벽한 낭송을 하는 분을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어떠한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도전해 보는 것이.
[연음] ☜ : 이 단어 참 중요한 단어다.(모르면 묻고 또 물어라.)
- 황봉학 시인, 시낭송 교육자.(010-8852-6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