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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수련의기본5
선생님 : 오늘 읽은 부분은 내가 어제 읽어봤는데, 맨날 하던 말, 그런 것 같아. 그지? 맞아. 그래. 많이 듣던 얘기고, 뭐 우리 명상할 때 하는 그런 얘기네. 맞아. 뻔히 아는데도 넘어간단 말이야. 내 후배 중에 유도하는 후배 있어. 유도를 학교 때 유도를 꽤 했는데, 그 친구 말이 지금도 기억나. 딱 붙어서 몇 번 해보면, 상대방이 나보다 좀 실력이 못하다. 이렇게 어느 정도 감은 하는데, 나보다 세구나, 이렇게 몇 번 수 써보면 안 돼. 근데, 왜 끝까지 하느냐, 내가 지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런데, 그 유도하면서 제일 기분 나쁜 게, 하수한테 질 때래.
자극도 안 돼. 근데, 아무리 하수라 하더라도 딱 내가 그 빈틈을 내주면 세상 없이 넘어간대.
글쎄, 순간적으로 넘어가는구나. 그걸 넘어갈 때 아주 약이 오른대. 그런 얘기 하더라. 오 넘어가네. 그러면서 넘어가는 거지. 자기도 모르게 확 넘어간 게 아니라, 자기가 아는 거야. 근데, 방어할 방법이 없어. 잡혔기 때문에. 그래서 이거 이렇게 잡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네.
이렇게 우리 잡잖아. 이렇게 잡잖아, 잡혔다 하면은 아무리 저 상수라도 일단 잡혔어. 그러고 넘어간대. 그럴 때가 제일 기분 나쁘대. 유도하는 친구가 그래. 근데, 내가 얘기 들어봐도 그럴 것 같아.
누구네 집에 갔는데, 큰 유화가 걸려 있어. 석양의 햇빛이 호수에 반사되는 그런 그림을 그렸어. 호수에 햇빛을 쫙 받아서 그렸는데, 내가 그 그림 보고 그 친구한테 그림이 이렇게 이렇게 있잖아. 이렇게 있으면, 이 그림은 여기 서서 보면 안 되고, 여기 서서 봐야 돼. 그랬어. 여기 서서 이 그림 봐야 되는 게 여기서 보면 안 돼. 여기서 봐야 돼. 왜 그러는거냐. 하여튼 여기서 봐. 여기서 보면 이 그림이 안 돼. 여기서 봐야 그림이 돼. 왜 그래? 얘기 안 했어. 얘기하면 그냥 기분 나쁠 것 같아. 근데, 비싸게 돈 주고 샀대. 왜 그래? 그랬더니 햇빛이 쫙 비치잖아. 호수에. 근데, 노을이 반짝반짝하는 게 이렇게 돼 있어요. 노을이 비치잖아. 비치는데 이렇게 돼 있어. 그럼, 여기서 봐야 돼. 이 화가는 그림을 어떻게 여기서 그렸을까? 그거 참 묘하더라
학생 : 그랬을 것 같아요. 제 경우를 비추어 봤을 때 그 현장에서 그리지 않은 그림이에요.
선생님 : 그래. 사진을 보고, 그래도 사진도 그렇게 안 찍히는데 왜 그렇게 그릴까? 그렇잖아. 놀이 이렇게 비쳐야 돼. 어떻게 이렇게 비치냐 (그건 그 작가가 만들어낸 노을이에요.)
오늘은 188페이지. 마음 모으기라고 내가 번역을 했는데, 영어 원문 보면, 대개 영어는 다 통일돼 있어. 나는 마음 모으기 그러는데, 또 불교 쪽에서는 마음 챙김 했는데, 영어로는 마인드 풀, 마인드 풀, 마인드라고 얘기할 때는 이제 보통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면, 생각하고 연결되는 거로 보면 좋아. 생각, 머리, 하트라고 하는 말도 나오는데, 영어로는 그것도 마음인데, 하트도 마음, 우리 사전 찾아보면 다 마음이야. 마인드, 하트. 그런데, 얘들은 그걸 달러가 달라서 참 좋아. 그냥 마음 그러는데, 그들은 마인드 하면 머리고, 하트하면 가슴이고. 글쎄, 역시 생각하고 일치되는 걸로 보면 좋을 거야. 마인드 여기서 생각이 많잖아. 머리가 하는 일이 생각하는 거.
금강경이라는 책 보면, 그것도 이제 금강경 머리말을 보면, 부처님께서 때가 돼서 바리떼를 들고 사위성 거리로 가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탁발을 해서 그 빌어온 음식을 다 드시고, 깨끗하게 설거지 해서 놓고, 그리고 자리에 앉으셨다. 이렇게 되거든. 그런데, 이제 그때 수벌이라고 하는 제자가 나와서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까? 이제 그렇게 질문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제 쭉 문답이 왔다 갔다 하는 게 금강경이거든. 부처님이 때가 돼서 밥그릇을 가지고 거리에 나가서 집집마다 밥을 빌어서 와서, 그걸 잘 잡으시고, 설거지하고, 또 하여튼 그리고, 이제 자리에 앉으셨다. 이 자리에 앉았다가, 한 바퀴 딱 돌고 다시 자리에 앉았단 말이야. 어떤 사람은 그래, 부처님 말씀하신 거 다 했다. 그걸로. 근데, 어리석은 제자들이 못 알아듣고, 또 뭐라고 여쭈니까, 할수 없이 말로 대답을 했다. 그래. 누가 어떤 사람이 깨달았다는 사람한테 가서, 그 깨달음을 얻은 다음 뭐가 어떻게 사십니까?
그러니까, 난 밥 먹을 때 밥 먹고, 졸려올 때 자,고 그런다 그랬더니, 누구 안 그러나요? 다 그러죠. 근데, 난 밥 먹을 때 내가 밥 먹는 줄 알고, 걸어갈 때 내가 걸어가는 줄 알고, 그런다. 그 차이랑 뭘 해도 좋아. 그걸 내가 그걸 하고 있다는 걸 내가 알고 있다면. 왜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알고 있다면, 그게 마음을 다스리는 방편이다.
아까 별량식당에서 우리 네 사람이 무슨 사건이 일어난 거야? 거기서? 무슨 사건이 일어났냐 말이지? 얘기해 봐. (밥 먹었는데요.) (밥을 비벼 먹었는데요.) 맞아. 밥은 먹었지. 그래. 아까 우리가 먹은 게 꼴뚜기야? (웃음) (낙지하고 쭈꾸미예요.) 주꾸미, 그건 주꾸미라 하자. 우리가 주꾸미 먹었지. 그지 맞아. 근데, 그 사건은 이쪽에서 보면 사람이 주꾸미를 먹은 거지만, 주꾸미를 보면 사람한테 먹힌 거지. 사람한테 먹힌 거야. 사람한테 먹힌 거야? 그게? 걔들 지금 어디 갔어? 사람이 됐지. 주꾸미가 사람으로 몸을 바꾼 거라.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거야.
마음을 모아서 살자. 됐지. (웃음) 몸은 항상 지금 여기 있어. 몸은 지금 여기를 떠날 수가 없어. 그지? 생각은 돌아다닌단 말이야. 얘는 경계가 없어. 과거로 가기도 하고, 미래로 가기도 하고, 공간도 막 넘어가는 거. 근데, 과거, 미래, 또 저기, 뭐 이렇게 얘기는 하지만, 실제로 있는 건 아니거든. 정말 있는 거는 지금 여기밖에 없잖아. 나머지 다 그냥 생각 속에 있는 거지. 그지 지난날에 내 과거의 상처 지금 나를 괴롭히던 어떤 사람, 나를 때리던 사람, 지금은 없는데, 지금 얻어맞는 건 아닌데, 아프단 말이야. 맞아. 참. 그것이. 그래서, 몸은 지금 여기를 벗어나지 못해. 그러니까, 마음을 몸하고 일치시켜라. 그렇게 몸이 마음하고 일치시키는 건 불가능해. 그렇지? 몸이 마음으로 와서 하나가 돼야지. 그게 참 사는 거란 말이야. 몸은 이걸 하는데, 생각은 딴 데 가 있어. 그럼 이거 하는 게 아니라고. 많은 인생의 많은 시간을 잠자는 시간 빼고,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 거의 다를 또 그렇게 보내는 거야. 심리학에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그랬다며? 아마 그럴 거야. (심리학에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게 불가능하다.) 심리학쪽에서는 결론을 내리기를,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랬대. 그런데, 종교는 마음을 다스려라. 얘기하거든. 다스릴 수 있고, 또 다스리는 사람이 있다고 그러고. 근데, 그거는 이제 우리가 평상시에 생각 따로, 몸 따로, 그렇게 살아가는 게 하도 오랫동안 연습을 했기 때문에, 저절로 되지. 근데, 그걸 이렇게 한 데 모으는 거는 수련을 해야 된다. 그런 결론이지. 수련해야 한다. 말로 봐야 되는 건 아니고, 진짜 그렇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일단 시간을 정해서, 마음 모으는 걸 연습해야 된다.
그럼 제일 마음 모으는데, 효과적인 거로 알려진 게 호흡이다. 그런 얘기 같아. 내 호흡에 마음을 모으는 거. 호흡은 몸이니까. 그러면, 그 시간은 이제 마음과 몸이 통일되는 것이다.
그런 아까 읽어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이거 뻔히 좋지 않은 생각이고, 이 생각을 하는 게 나한테 아무 이득이 되지 않고, 하면 할수록 좀 화만 나고, 성가시고, 뻔히 아는데 왜 자꾸 그 생각을 하게 되지? (시험에 들어서요.) 시험에 들어왔으면 나오면 될 거 아니야? (시험에 들면 못 나와요.) 나올 수 있지. 그건 시험인데.
학생 : 선생님은 그러신 적 없으셨어요? 어떻게 나오셨어요?
선생님 ; 아니야. 나왔다고 말할 수 없어. 지금도 그래. 그런데, 그런 개떡을 생각을 내가 해봤자, 아무 이익이 없어. 나한테, 나뿐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무 도움이 안 돼.
그런데도 그런 생각이 자꾸 나온단 말이야. 내가 그 생각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 생각이 들어온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아. 왜냐하면, 내 생각을 내가 그걸 이렇게 계속 그 생각을 만든 게 아니라, 들어온단 말이야. 가만히 있어 봐. 그건 별수 없어. 얼른 알아차려야지. (알아차리고 그다음에?) 그러면, 그 생각을 이제 안 하는 거지. 방법은 그냥 뭘 하면 돼. 빨리. 멍청하게 있지 말고. 그 예수님 비유에 그런 게 있어. 어떤 사람은 귀신이 들렸어. 근데, 귀신을 어디 쫓아냈단 말이야. 귀신이 밖에 나가서 막 돌아다니다 보니까, 어디 있을 데가 없어. 다시 와봤더니, 아주 깨끗하게 이렇게 비어 있어. 야 여기 좋더라. 이 7마리를 더 데리고 들어갔대. 그 뭔 얘기야? 여기 귀신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 나왔어. 내가 막 돌아다니다 보니까, 있을 데가 없어. 그래서 와보니까, 여기가 너무 좋아. 텅 비어 있단 말이야. 텅 비어 있어. 그러니까 저보다 센 놈은 다섯인가 몇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게 예수님 비유에 나오지. (마음 수련을 하면 할수록 그러면 더 데리고 들어와요?) (웃음)
마음을 비우는 게 무주 공산이 아니라고. 임자가 없으니까 아무나 들어오지. (그냥 그러면 멍청하게 비는 건 아니네요.) 그거 멍 때리는 거지. 그건 아니고. 좋지 않은 귀신이 있다가 나갔어. 여기를 뭔가 채워야지. 주인이 없으니 일곱 마리가 들어오지. 무주공산인데 뭐 아무나 들어가도 되지. 난 그래 봐. 나 여기를 뭐가 채우고 있느냐. 내 머리를. 그럼 우리가 불러올 수 있다고. 좋은 생각을. 그렇지?
학생 : 선생님. 근데 요 책에서는 보면, 책 내용에 보면 고요하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함으로 인해서 그 근원과 만난다. 그 힘을 너가 그렇게 하시는데, 만약에 이렇게 텅 비어서 마무리 지어서 무주공산이 된 것과 본래 성령이 나오시는 것과 좀 차이가 있잖아요.
선생님 : 그러니까 텅 비는 게 왜 고요해? 고요한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야. 고요해라. 그리고 근원과, 그것이 바로 근원과 하나가 되는 길이다. 그런 얘기거든. 우리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그러려면 고요해야 한단 말이야. 유명한 시편 있잖아? 작은 책 나왔지? 가만히 있어라. 그리고 알아라. 내가 하나님이라는 걸. 이거야.
그래서, 그 내 고요한 마음, 그것 고요하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을 모실 수가 없어. 그러니, 고요해. 그래, 거기서 내가 하나님이 내 안에 중심이 되면, 그건 마귀가 못 들어온다는 얘기지. 그래서, 이제 나도 가면 멍청하게 있는데, 그런 생각이 쑥 들어와. 그럼 금방 알아차리지. 아이고, 또 이 자식이 또 들어왔네. 그리고, 내가 걔한테 걔를 없애려고, 욕을 하거나, 억누르거나, 막 그렇게 하잖아? 그건 걔한테 휘말려 들어가는 거야. 내가 왜 이렇게 또 이 생각을 또 하지? 왜 이렇게 생각해 또 생각 그러지 않고 내버려 둬. 그리고 빨리 뭘 해.
학생 : 선생님 새벽녘에, 만약에 그런 생각이 들면 새벽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왜 아무것도 못해? 얼마든지 하지. 일어나 앉는 것도 못 해?) 이제 앉았어요. 앉았는데, 또 생각이 들어와. 그러면 서요. 그러면, 또 생각이 들어와. 또 그러면은 움직이면은 이게 고요해야 되는데, 이 새벽에 나갈 수도 나가죠. 이제 나가는데, 그것도 하기 싫어요.
선생님 : 그러니까 생각을 계속해서 잡고 있고, 몸만 움직이는 거지. 그냥 그래서. 이 사람이 얘기하는 게 설거지할 때는 설거지만 하라. 그릇들을 닦고. 샤워할 때는 물이 몸에 맞는 거 거기에 집중하라는 거야. 그러면,아까 들어왔던 생각은 사라져 가는 거지. 나로서는 그것밖에 없어. 방법이. 그래서, 어떤 산책을 하거나 산책할 때 생각을 계속 갖고 산책하니까, 몸만 고단하지. 그래. 그래서, 아까 내가 얘기한 것처럼, 내 주문을 외거나, 하나님께서 기도하거나, 찬송, 난 찬송을 부르면 좋더라. 내가 좋아하는 찬송을 불러. 그럼 그런 쓸데없는 생각 뭐 안 좋은 생각이라는 게, 슬그머니 사라진다고. 나는 참 아름다워라. 그 노래가 참 좋아. 그게 참 좋아. 그거는 기독교 냄새가 안 나. 거기에 십자가, 뭐 구속, 이런 게 없어 도그마가 없어. 그냥 그야말로 자연 세계와 그것이 하늘 조물주의 솜씨를 노래하는, 그게 좋고.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위해서 인도하시니. 그것도 참 좋아. 그런 거 내가 1 2 3절 내가 다 왼다고. 산책할 때도 그 노래 막 부르면 참 좋아.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신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노래 막 불러. 그렇게 저러다 보면 아까 들어왔던 잡된 생각은 어느새 가버리고. 그렇게. 몰라. 난 그래. 몸을 가지고 사는 한,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안 한다는 거는 나로서는 참 상상 안 가. 몰라. 예수님도 마지막 순간까지 유혹을 받으셨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유혹을 받으셨어. 막 십자가 못 박아놓고 네가 그렇게 하나님 아들이면, 그러면 내려와 봐라. 막 그랬어. 그런데 나 같은 놈이 뭐, 안 그러겠니? 그러니까, 당연히 이제 그렇게 오는데, 문제는 내가 거기 안 속아 넘어가는 거지.
이게 195페이지. 그래서 이제 마음을 자기가 완전히 정복해서 내가 생각을, 내 생각을 내가 컨트롤 완전 정복해서, 안 좋은 생각은 내가 하지 않고, 좋은 생각만 골라하고, 그럴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마음을 길들이는 걸로 해봐라. 길들여. 야생마 같이 막 지 맘대로 뛰어다니는 이놈을, 저 이렇게 잘 내가 길들여서, 바람직한 쪽으로 생각을 하게 할 수 있겠느냐. 거기 195페이지가 괜찮은 것 같아. 거기 한번 처음부터 읽어봐봐.
길들여진 마음이 주는 혜택. 사람 마음에는 제가 주목하는 것을 거울로 비추고 그 기질을 담는 능력이 있다. 성난 사람이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보고 들을 때 우리 마음은 분노로 끓기 시작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마음도 사랑으로 가득 찬다. 일단 이 사실을 인정하면 두 가지 결론에 쉽게 도달한다. 1.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랑과 기쁨 같은 바람직한 성품을 기르기 위해 특별한 인물과 기억에 마음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2. 입으로 먹는 음식이 중요한 것처럼 마음으로 먹는 음식도 중요하다. 마음의 식단이 마음의 건강을 좌우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슬기롭지 못한 마음먹기를 수련하여 폭력, 탐욕, 두려움이 난무하는 불건전한 텔레비전 프로를 마구 삼킨다면 같은 성품이 우리 안에서 자라게 마련이다. 심리학적 조사 연구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많이 볼수록 텔레비전을 보면서 폭력 장면을 보지 않을 수 없기에 그만큼 더 공격적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슬기로운 마음먹기를 수련하여 건전한 텔레비전 프로 체액 친구를 조심스럽게 골라 섭취하면 건강한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준 성바울로는 훌륭한 종교인이면서 훌륭한 심리학자였다고 하겠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명예스러운 것과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들을 마음속에 품으십시오. 우리가 무엇에 마음을 모으느냐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결정한다. 일단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며 우리 자기가 바라는 것에 마음을 모을 수 있다. 여기에서 엄청난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
좋은,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의 사진을 벽에다 걸어놓거나, 불교신자 같은 불상이라든가, 뭐 십자가상이라든가, 이런 게 그게 참 좋은 거야. 라떼네 집에 있는 그 밀레 만종, 참 좋은 그림이야. 아주 좋은 그림. 그런 그림을 걸어놓고, 그 그림 앞에 이렇게 서서, 그러면 그 그림이 주는 좋은 건강한 에너지를 내가 받게 되는 거야.
학생 ; 선생님 여기 197페이지에요. 맨 밑에 그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라고 말을 했어요. 샹카라 얘기를 하면서 근데 전 요 글귀가 조금 멈춰지는 게, 마음을 지속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그러면서 이건 오히려 놓아버리거나, 내맡기거나, 아니면 마음의 실체를 좀 이렇게 탐색해서 공부하거나, 아니면은 하여튼 그래서, 마음에 의해서 사라지는 게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본래의 내 참나 그것이 그래 그래서 마음을 지속적으로 통제한다는 게 좀 약간 정확하지 않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좀 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 : 그렇게 보면 그렇지. 근데 여기서 산카라가 마음을 다 통제한다는 게 진짜 뭘 가지고 그런 마음을 통제하는 거라고 얘기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그렇잖아. 내 마음, 내 생각을 내가 자유자재로 부린다? 그게 생각을 통제하는 거 아니야? 내가 내 마음대로 부린다 말이야. 그게 제일 어렵더라. 쌍칼라는 이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지. 제일 어려운 내 마음을 순간적으로 통제하는 건 가능한데, 지속적으로, 빈틈없이, 항상 통제하는 게 어렵더라. 그런 얘기를 한 것 같아. 통제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잖아.
학생 : 그러니까, 여기서 마음이라고 했을 때 이 마음은 생각으로도 바꿔 표현할 수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오히려 더 정확할지 몰라.) 그러니깐요. 생각을 부리는 거잖아.
선생님 : 생각을 내가 부리는 거야. 내가 내 생각을 내가 부리는 거야. 생각에 따라서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고, 내가 내 생각을 부린다. (그래서, 통제라는 의미로 그렇게 해석이 돼요.)
그렇지. 자기 생각이 하자는 대로 하면, 내가 통제 당하는 거지. 생각한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이렇게 휘둘리지 않아? (아빌라 테레사는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내 마음을 고칠 수 없어. 가끔은 죽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라고 표현을 했더라고요.)
선생님 : 내가 죽으면 이놈은 생각이 안 날려나? (웃음) 그래 이게 테레사 같은 성녀도 그랬다. (그게 고뇌가 더 깊어질수록, 자기 배움이 더 깊어질수록 이게 헤어나올 수 없는 그런 게 있대요. 근데 이 괴로움이 그거 아니에요?) 이 테레사 수녀의 전기를 읽어보면 양반 참 탁월한 탁월한 그런 지도자야. 그 수도회를, 수녀원을 엄청 많이 세웠다고. 그 당시에 상당히 영향력을 끼친 그런 사람인데, 천주교 법에 의하면 신부의 지시를 받아야 돼. 수녀이기 때문에. 자기보다 아주 생각이 모자란 녀석이 신부라 와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한단 말이야.
이게 제일 이 사람이 제일 힘들었던 거 같아. (나중에는 그걸 넘어서셨어요?) 몰라. 잘 모르겠어. 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죽고 싶었는지 모르겠는데, 심정은 이해가. (예수님도 세 번 유혹 받아가지고) 근데 ,그래 여기 넘어가지 않았지 ?넘어가지 않았어, 아마 이 양반도 거기에 그게 넘어가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하여튼 법적으로 신부의 지시를 받아야 되니까, 이제 뭐 그렇게 어려움이 있었겠지? 자세히 모르지만. 그래도 이 양반이 그래서 뭐 그 시험에 넘어가서 엉뚱한 짓을 하거나, 막 그랬으면, 성녀가 못 됐겠지.
여기 보니까, 마음을 길들이는 일은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속도가 매우 더디다는 데 더 큰 어려움이 있대. 그것은 시간과 함께 명상, 묵상, 요가, 노래, 끊임없는 기도 등 특별한 방법들이 요구되는 과정이다. 우리가 마음을 하나 모으고, 모은다는 얘기는 뭐야? 마음을 지금 여기에 집중시키고, 있지도 않은 과거 나와 있지도 않은 거 생각 가지고 번잡하게 그렇게 살지 말자는 게 이제 목표라면, 그렇게 하려면, 이제 그게 몸에 배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게 몸에 배려면 여기 말한 대로 명상, 묵상, 찬송 뭐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그런 얘기같아.
학생 : 여기 보면 목사님 199쪽에요. 두 번째 단락에 현대인의 급하게 쫓기는 삶은 그의 내면에 도사린 아마도 가장 보편적인 폭력의 한 표출이라고 그랬어요. 급한 삶이 폭력의 표출이라고 그렇게 표현을 했어요. 근데, 그 단락에서 활동가라는 표현이 나오거든요. 밑에 가서 보면 그래서 어떤 평화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 대상으로 얘기한 내용 같아요. 이게. 근데, 갑자기 앞에서 시작은 현대인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표현을 한 것으로 이렇게 읽어가다가, 뒤에 가면은 평화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 속에 조차도 그 분노가 있기 때문에, 평화를 이루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큼에도 무효가 된다라고 하는 그렇게 또 읽히거든요.
선생님 ; 아마 이거는 토마스 모튼 신부가 자기가 몸으로 경험하면서 아 이렇구나 하는 거 알았을 것 같아. 평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평화롭지 않거든.
학생 ;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전제로 하고 얘기한 것 같아요. 읽으면서 현경 있잖아요. 현경 교수 저번에 목사님 전시회 왔던 현경 교수가 쓴 책을 보면 이제 세계에 그런 전쟁이 있는 그런 나라에 다니면서 평화 운동을 막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는데 자기가 호텔방에서 감금당해갖고 성폭행을 당했다고 얘기한 게 있거든요. 평화주의자, 평화운동을 하는 남자한테 남자 그것도 호텔 방에서 강제로 그렇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기록을 했더라고요. 그 사람 책에 보면, 그 사람이 그 여자 그렇게 똑똑하고 내놓으라 하는 사람인데 이거를 입을 열지 못했던 이유가 그동안에 자기들이 쌓아놓은 그 평화적인 그런 것들이 다 무산이 될까 봐 그거를 이렇게 참고, 그거를 밖으로 폭로를 못했대요. 자기가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막 열심히 평화의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 그런 폭력들이 있어요.
선생님 : 폭력이라고 하는 말은 억지를 쓰는 거지? 강요하고 억지로 하고. 모자라는 인간들, 모자라는 인간들이 모여서 뭘 하니까 완벽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건데.
학생 : 평화학교 처음에 초창기에 정말 잘 모였어요. 이제 초창기에. 대안을 꿈꾸고. 우리는 이렇게 안 해봤기 때문에, 우리 자식은 이런 교육을 하고 싶다. 근데, 결국은 대판 싸우고 헤어졌거든요.
선생님 ; 그렇지. 대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가 뭐야? (자기 주장, 고집) 그것이 바로, 그거지. 뭐 내 생각이잖아. 주장이라는 게 생각이다. 어떤 생각, 생각 관철을 해야지만 자기가 산다고 생각하는 거지. 저 사람하고 내가 생각이 달라. 둘 다 자기 생각을 관철야 돼. 그러면 싸울 수밖에 없어. 다르게 뭐 방법이 없잖아. 힘센 사람이 이기겠지. 평화 운동하면서 끼리 맨날 논쟁하고 다투고 그런단 말이야. 평화롭지가 않어
학생 : 우리 안에 정말 그게 우리 안에 그 평화가 없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각자 사람들 안에 평화가 없으면.
선생님 : 그리고 그 평화는 내 안에 있는 평화는 외부의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 아무 구애받지 않는 평화라야 돼. 조건이 붙어 있는 평화는 그건 아니야. 조건 없는 평화. 그래서, 그걸 이제 그거는 내가 그 평화를 만들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지. 그래서, 기독교 신자들은 그리스도가 내가 내 평화를 너에게 준다. 그래서, 내 그 평안을 내가 받을 수 있지. 그 그리스도의 평화가 뭐야? 죽음 앞에서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단 말이야. 누구 미워하거나 그러지 않는다고. 자기 길을 그냥 가지. 그게 진짜 평화라고. 그런데, 그런 평화를 가진 사람하고 어떤 사람이 불화할 수가 없어. 그렇겠지? 싸움은 최소한도 둘이 있어야 되지만, 평화는 한 사람만 있어도 돼. 이루어져.
학생 : 저는 제가 최근에 직면한 일, 그러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거는요. 이제 바람이 이렇게 불잖아요. 그러면 뭔가 벽 같은 거는 바람을 이렇게 걷어내지만, 어떤 그물이랄지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들이 있으면, 그그대로 그냥 바람을 통하게 하는데, 내 안이 그런 사람이어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제 근,데 이제 막상 제가 친정에 갔는데 ,그런 이론적으로는 그런 마음을 갖고 있어요. 생각으로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되겠다. 그런 생각은 갖고 있는데. 이제 어머니 때문에 친정을 갈 일들이 생기잖아요.
근데, 아침 식사하는 시간에 이제 제가 일이 있어서 갔어요. 근데, 올케가 이제 어머니랑 식사하는 게 불편한지 자기는 거실 테이블에다가 식사를 이렇게 먹고, 어머니하고 이제 오빠하고는 따로 이렇게 식탁에서 먹고 그러더라고요. 이제 어머니가 옳게 그런 얘기를 이제 부정적인 얘기를 하면, 저도 되게 듣기 싫고 불편하니까, 제 감정이 불편해져요. 올케에 대해서도 별로 좋게 생각 안 들고, 막 그런 상황들이 너무 막 싫은 거예요. 어머니는 제가 이제 가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얘기를 하고, 올케는 또 올케대로 저한테 또 어머니의 불편함을 얘기하고, 이제 그게 막 어쩔 때는 막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웃음) 근데 이제 그날도 이게 상을 따로 먹는 것까지는 이제 괜찮은데, 식탁을 보니까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 본인 식탁은 뭔가 하여튼 막 그득 차려가지고, 그러고 어머니하고 거기는 하여튼 뭔가 너무 이렇게 비교되게 보여. (웃음) 올케의 성격을 제가 알고, 그 사람은 이제 되게 뭐라 그럴까 하여튼 너무 직선적이고 달라요. 성격이 근데 많이 감안을 하고, 이제 또 저도 시부모랑 같이 사는 불편함을 제가 많이 겪어봤기 때문에, 많이 이해를 하고, 들어가는데도 어쩔 때는 안 보면 편한데 보고 오면, 이제 제 안에 그런 막 그런 저런 불편함, 그것들이 이제 지금은 조금 더 그런 것들로 제가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이 조금 더 짧아지긴 했어요.
덜 괴롭긴 해요. 지금은. 근데도 이제 이런 공부가 도움이 되긴 하는데도 그런데도 아직 힘들더라고요.
선생님 : 걸린다는 게 뭐냐 하면, 저 사람이 저런 게 저러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을 내가 하는 거야. 이래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제 틀이 거기다 맞추려고 하니까.) 바로 내 생각, 그게 정말 없다면. 만약 내가 나라는 게 없다면, 내 생각, 내 판단, 이런 게 전혀 없다면, 안 걸리겠지. 그러니까, 결국은 어떤 올케나 그분들의 그 행동, 그것이 나를 불쾌,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 분들을 보는 나의 생각, 내 판단 그게 이제 나를 힘들게 하는 거야. 그래서 그걸 아니까, 희망이 있어. 저분들이 날 불편하게 하는 거라면 그분들이 살아있는 한, 난 불편해야 돼. 근데, 그분들에 대한 내 생각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거라면, 답이 있을 수 있지.
내 생각을 내가 컨트롤하면 되니까. 다음에 갈 때는 그런 생각을 한번 해봐. 나는 내가 나 가끔 그래. 내가 하는 방법인데, 어떤 사람이 좀 살다가 잘못해가지고 화상을 입었어. 그래 손이 이렇게 오그라졌어. 불에 타가지고. 그래서, 이 사람이 이걸로 젓가락질 하니까 잘 되지도 않고. 이걸로 일단 생활하니까 불편한 거야. 근데 그 사람 보고 내가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아. 그지? 오히려 안 됐지. 에이 저게 저 손가락이 저래가지고. 이렇게 내가 생각하지 않아. 사람이 정상적이면, 그렇게 생각 안 하지. 참 어쩌다가 저렇게 됐나, 참 안 됐다. 그러면 그거 이 사람의 이런 억울한 손이 나를 불쾌하게 하지 않는 거야. 왜? 그걸 내가 100% 받아들인 거야. 그렇지 뭐. 안 됐다. 올케나 어머니 소위 생각, 정신, 마음, 몸이 아니라 마음이 불구야. (그거를 이제 차츰차츰 더 이제 조금 그분 올케가 살아온 과정들을 이제 얘기를 들으면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이제 이해가 좀 돼요.)
선생님 : 팃낙한스님이 가장 강조하는 게 그거야. 상대방을 이해하라. 저럴 수밖에 없어. 나도 저런 상황에서 살았으면, 나도 저래 똑같을 거야. 그걸 생각하면 이제 그냥 봐주는 거지. 우리나라 말이 참 재밌어 봐주더라. 그걸 가지고 문제 삼지 않는 거야. 육체에 불구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너그러운데, 왜 정신의 불구엔 그렇게 너그럽지 못 한가. 난 좀 그렇게 생각해. 그것도 불구인데. (정신의 불구는 안 나타나니까.) 뭐 나타나지. (아니, 그거를 본인이 못 느끼잖아요. 이렇게 이제 보여지는 거는 자기 본인이 느껴야 되는데.)
선생님 : 본인은 모르지. 그니까 본인은 모르니까 거지. (이렇게 갈 때 어쩔 때 보면 되게 민망할 때가 많아요.) 그렇지. 자기가 뭐 하는 짓을 하는지 몰라. 모르니까 그게 정신이 불구지. (그래도 많이 아프고 나서는 그래도 되게 많이 좋아진 편이에요. 자기를 좀 되돌아보고. 그래 많이 아프고 나서는 좀 나아졌는데도)
선생님 : 이제 그 사실은 불구자라고 할 때, 우리가 불구 몸이 이렇게 된 거, 이것만 본다고 왜 그래? 이거 안 보면 멀쩡한 부분 많잖아? 그 정신적인 것도 마찬가지지 뭐. 그래서 봐주지 못해서 그래서 힘든 거야. 봤어. 자기가 가져버려. 대개 이제 사람이 불편하거나 할 때 잘 들여다보면, 내 안에 그 생각이 있어요. 이건 이러면 안 돼. 저건 저래야 돼. 이런 게 있다고. 그 생각이 내가 그걸 생각을 고집하니까. 그러니까, 부딪히는 거지. (그러니까 빨리 갔다가 빨리 와요. 될 수 있으면)
선생님 : 편법이지. 편법. (웃음) 좋은 방법이야. 자기를 위해서.
학생 : 어떻게 하면, 목사님 판단을 멈추게 하는 좋은 방법이 어떤 게 있어요?
선생님 ; 판단이라는 것이 뭐는 이렇다 얘기하는 것이 판단이 되는 거잖아? 이건 이거다. 이렇게 딱 얘기하는 그게 판단인데, 그게 판단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 터무니 없는 거라. 가만보면 생각해서 나온다고. 이게 대추차다. 이거 같은 똑같은 대추차인데, 어떤 사람이 볼 때, 그것도 대추로 만들었냐? 이렇게 얘기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참 잘 만들었다.
이럴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잖아. 그래 판단의 결과지. 얘는 변함 없어. 그냥 얘지. 그 사람은 착한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야. 그냥 사람이지. 근데 보는 사람이 저는 아주 고약한 놈이다. 저놈 좀 괜찮다. 라고 보는 거지. 근데 그게 내가 저 사람을 알기 때문에 판단한다고 생각하잖아. 정말 알아? 그 속속들이 아냐고. 몰라. 내가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가 없다고. 나 자식도 내가 잘 몰라. 맞아요. 그치? 그 모르는 그 생각 가지고, 기준이 될지 판단한다는 게 그 판단 자체가 사실 근거가 없는 거지. 자기 생각일 뿐이지. 그래서, 불경 같은 데서 이제 판단 자체를 하지 마라.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판단을 하지 마. (판단이 곧 이 비판이 되는 거죠. 예수님도 그런 말씀하셨죠.) 판단하지 말라고 그러지.
학생 : 왜 판단을 했을 때 좋은 영향을 끼치면 판단을 해도 되는데, 이게 시비가 붙거나 비판이 돼버리면, 그것도 제 선택 아닌, 목사님 우리가 살면서 판단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선생님 ; 하긴 하는데, 자기 판단을 이것은 그냥 내 생각이다. 할 정도로 알고,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을 수 있지. 판단 자체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직 우리한테는 좀 너무 무거운 숙제고. 그러나, 내 판단에 내가 갇혀 있거나, 거기에 묶여서 그걸 자기한테도 고집하고, 남한테도 강요하고, 그러지 않을 수 있지. 그것까지는 안 할 수 있지. 그거 말해도 어디냐
무위당 선생님이 나 만나서 2년째 되던 해인가. 그러니까, 77년 8년 그 무렵에 어느 날, 갔더니 이 목사는 이름이 한문으로 어떻게 쓰셔? 그래 물어봐. 그래서 어질현에 두루주입니다. 그랬더니, 아 그렇구나. 후배가 나오면서 이제 형도 선생님한테 글자 한 장 받겠다. 그래서, 내 한문 이름을 물어보셨으니까. 그래, 그다음에 갔더니, 진짜 써서 주셨어.
나한테 그게 유수식견 넉자를 썼다고. 신신명이라는 그런 불경에 나오는 말이라고. 유수식견 그 앞에 넉자가 또 있는데, 그래서 한 줄인데, 선생님이 앞에 거는 넉자는 생략하고. 뒤에 결론만 쓰신 거야. 그 앞에 거 뭐냐 하면, 불용 구진 유수 식견 이게 한 마디야. 근데, 이제 앞에 거는 이제 자르고 제가 말하는데, 불용구진이라는 게 말야. 아니 불자에 쓸 용자 구와 구할 구자 참 진짜, 진실, 참 뭘 구할 필요 없다. 불용이야. 따로 그걸 진리가 무엇이냐. 참이 무엇이냐. 그런 걸 막 찾아 헤매지 마라. 그럴 필요 없다. 유수 식견이 유수라고 하는 거 영어로 말하면 헤브투 머스트, 반드시 이렇게 해라. 하는 게 식견이 이제 가장 중요한 단어야. 식은 숨쉰다 할 때, 휴식할 때 식자야. 쉬어라, 멈추어라, 견을 멈춰라. 견을 볼 겨자 견을 멈추어라. 의견, 견해 이런 거야. 그걸 멈추라. 그것만 하면 따로 참을 구할 필요 없다.
뭐 이런 얘기야. 이것을 나한테 써서 주셨어. 그때 그게 뭔 말인지 몰랐지 뭐. 경전에 있는 말인지도 모르고, 우선 그 말 자체도 뭔 말인지 몰라. 이제 그래도 내 나름대로 이게 내가 너무 아는 척하고 까불고 다니니까 나 좀 그만해. 이런 식으로 얘기하셨는가 보다 하고 이렇게 넘어갔지. 가만히 보니까, 나한테 처음 주신 문장인데, 아마 이게 그런 의미였던 것 같아. 말년에 가만히 보니까, 그래 맞아. 그것만 하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게 뭐가 있냐면, 바로 내 견해야. 세상에 대한 나의 생각, 그게 날 힘들게 하는 거야. 그거만 지워라. 그러면 보는 것마다, 보이는 것마다 참이다. 보이는 것마다 아름답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학생 : 여기에도 선생님 이 내용에도 보면은 여기에 이제 뭐 붓다라든가 아니면은 여러 성인들의 말을 인용을 해서 몇 가지씩 이렇게 넣어놨잖아요. 그럼 여기에도 어떤 말씀이 있냐면 붓다 말씀인데 선정에 들면 여실하게 보게 된다. 라는.
선생님 : 내 견해라든가, 내 생각이라든가, 이런 것이 싹 맑아지고, 비워지고, 그러면 있는 그대로가 다 제대로 보인다는 내가 해석한 모양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인다는 얘기지.
(그게 반야예요? 선생님) 그렇겠지 뭐.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정말 아름다워. 너무 아름답게 보이는 거야. 왜? 그게 한 부분이야.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러나, 정말 내가 그 부분을 통해서 거기에 속해 있는 전체를 보는 거야. 아름답지 않은 게 없어. 왜? 전체가 아름다우니까. 그 안에 있는 거 다 아름다운 거야. 그 부분을 따고 보면, 그 안에는 아주 다툼이 있고, 시기가 있고, 일그러진 모습이 있고 그렇겠지. 그것들이 다 합해서 전체의 아름다움을 만든 말이 전체의 아름다움을 본 눈, 그게 부분을 보면 다 아름답게 보이는 거야.
시어머니의 그 모습 그 모습만 보는데, 시어머니의 모습이 그 집이 전체 전체가 아름다운 우주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걸 통해서 전체를 보는 거야. 마지막 그림을 다 본 사람의 눈에는 아름답지 않은 게 없단 말이지. 왜? 전체 봤더니 너무 아름다워. 그게 저 노르체 쥴리안이라는 여자가 바로 그걸 봤어. 자기가 봤더니, 전체 그림을 보니까 너무너무 아름다운 거야. 예수의 십자가라고 하는 게 아주 비탐하고 고통스러운 거잖아. 근데, 그게 바로 영광이더란 말이지. 그 자체가. 그걸 자기가 봤대. 그래서 올 윌비 웰이란 말은 이게 아직은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다 까고 보면 다 좋은 거다.
춘향전은 우리가 왜 돈 내고 보냐. 춘향이하고 이몽룡만 나오면 그거 재미없어. 변학도가 있어야지. 변학도 없으면, 춘향전, 그거 아무도 안 봐. 그러면, 변학도는 아름다운 이야기 스토리에 한 부분이다. 이렇게 볼 수 있지.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세상을.
학생 : 그니까 바이세로제를 히틀러가 없었다면, 바이세로제가 없었던 것처럼. 그러면은 이게 지나간 역사는 그렇게 있지만 지금 순간 딱 여기 있어 가지고, 날 괴롭히는 것 때문에 내가 이렇게 딱 이게 이렇게 어떻게 이렇게 될까요? 그거는 이렇게 지나간 역사 속에서 그래도 확고해진 거고 지금 딱 여기.
선생님 : 어쨌든 간에 내가 살면서 경험하면서 누군가를 험담하거나, 못되게 얘기하거나, 누구를 비판해서 그러지 않을 수 있잖아. (하지 않을 수 있죠.) 내가 안 할 수 있잖아. (이건 내 생각이니까.) 누구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하거나, 누굴 비판하거나, 욕하거나, 그런 걸 안 할 수 있잖아. 내가. 그게 안 좋은 생각이 들어왔을 때 내가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야. 그지? 걔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지. 그럼 됐지 뭐. 뭐가 문제야? (웃음) 문제없잖아.
학생 : 동의한다는 게 문제죠. 지나보면 동의하고 있어요. 생각은 그렇고.
선생님 : 왜 그러냐면, 너무 오랫동안 그런 훈련을 했기 때문에, 그래 근데, 그런 그 버릇이니까, 이 버릇 정말로 내가 고쳐야지. 딱 마음 먹으면 버릇이기 때문에 고칠 수 있어. 고칠 수 있어. 버릇이야. 그래봤자. 버릇이야. 천성이 아니야. 버릇이야. 그냥 고칠 수 있어.
학생 : 이 책을 보면 선생님, 그 방법으로 이런 방법으로 한 번에 한 가지도 하고, 일상생활을 성내전으로 하기도 하고, 예식 재래로 하기도 하고, 성가시게 되는 일을 일깨우는 소리로 하기도 하고, 하면서 또 성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놓으셨잖아요. 정말 절실하게, 한순간도 하나님께 바치는 시간으로 그 정성을 드렸던 그 분들이. 우리도 그래야되나봐요.
선생님 : 그게 그야말로 수련이야. 연습, 되풀이야. 스트라빈스키인가 피아노 내가 60년대 서울에 있을 때 학생회 때 그 양반이 왔어. 난 그때 뭐 그런 사람이 그 대단한 몰랐지. 몰랐는데, 이제 포스터 보고 그러니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고 그래서 왔다고, 한국 공연을 하러 왔대. 그거 뭐 나하고 세계가 다르니까. 그런데 하여튼 근데, 그 양반이 어디 신문인가 어디 인터뷰에서 기사를 읽었어.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야. 근데, 하루에 여섯 시간을 연습한대. 아 깜짝 놀랐어. 여섯 시간을 연습을 한 대. 연습 안 해도 될 것 같아도 6시간. 하여튼 그러면 내가 그 기사를 읽고 야 그렇구나. 그런데, 하물며 마음이 그렇게 원숭이처럼 왔다 갔다 하던 마음을 한 군데로 모은다는 것이, 그게 하루 아침에 있지 여기도 그랬다. 하루 아침에 안 된다고. 그러니까, 되거나 말거나 내가 평생 성공하든, 실패하든 관계없이 난 그걸 시도했다. 그것만 가지고도 보람 있는 거잖아. 난 내 마음을 다스리려고 하는 그런 시도를 했다.
학생 : 그래도 이 책을 보면서 되게 희망이 생기는 게 어쨌든 너무 구체적으로 친절하게 잘 이렇게 우리가 할 수 있게 실천할 수 있게끔 방법을 알려줘서 일단 너무 고맙고. (그래 맞아.)
선생님 : 이 친구가 해보라는 대로 한번 해보는 거야.
참 좋아.
학생 : 어젯밤에 이걸 읽고 아침에 시도를 해봤거든요. 가만히 앉아서 그 명상을 하는 거 자체가 훈련이 안 됐기 때문에 저는 되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근데, 아침에 이제 그 명상을 흉내낸 거죠. (좋아.) 이제 하여튼 짧게 시간을 길게 안 갖고 10분도 너무 길더라고요. 처음이라 10분 길어 알람 맞춰놨는데 10분도 되게 긴 거 있죠. 근데 심장 소리인지, 뭐 뛰는 내 몸속에서 그 소리를 들었어요. 집중을 하니까 들리더라고요. (리듬이지.) 이 뛰는 소리를 제대로 들었어요. 신기했어요. 고요해지니. 그리고, 이제 하나에 뭔가 집중을 하니까 이렇게 팔을 쓸 때도 파 동글동글 썰면 그 안에 단면들을 되게 요즘 좀 집중을 하니까 뭐가 안 보이는 것들이 구체적으로 좀 보이더라고요. (아주 명상 잘했다.)
선생님 : 평소에 이제 평소에 뭘 해도 하잖아. 그때 그때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집중하는 그런 걸 우리가 연습을 하면 참 좋다. 지난번 내가 얘기했잖아 그 뭐야 커피 내는 바리스타, 그 짧은 시간에 보니까 저 인간에게는 저것밖에 없어. 집중하더라고. 그 한잔 내리는 그게 보였어. 저 성공하겠다. 성공하지.
학생 : 선생님 제 경험인데 다른 엄마들도 그랬을 것 같아요. 엄마가 좀 가장 미칠 것 같은 순간이 뭐냐면 집중하고 싶은데 애가 옆에서 계속 미쳐요. 선생님. 그런데 이제 이거를 애한테 화를 내면은 이건 지혜롭지가 않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이제 엄마로서 이렇게 고민을 하고 하고 하는 게 그럼, 어쩔 수 없으니까, 이 상황은 아이가 나한테 말하는 건 어쩔 수가 없으니까, 그냥 이 상황을 그럼 내가 마음 공부로 삼자. 라고 이게 이제 마지막 수단인 거예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이걸 바꿀 수 없으니까, 선생님 그거 아세요? 진짜 엄마 선생님 경험해 보셨죠? 집중을 하고 있는데, 근데 여기에 그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성가시게 방해되는 일을 일깨우는 소리로 바꾸기. 그래서 저는 여기에 어머니들의 위대함을 봐요.
일상의 위대함.
선생님 : 이제 그럴 때 나 호흡에 이제 집중한다. 예를 들어서 수 이 자식이 뭐라 그러냐 말이야. 그것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집중이라고 하는 거 자체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러면 꼭 호흡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법이 없잖아.
그지? 그 아이가 칭얼거려. 그럼 아이한테 집중할 수도 있겠지. 그럼 집중을 놓치는 건 아니지?
학생 : 저는 그때 정말 집중하고 싶은데, 그래서, 여자들 중에 리더가, 영성의 리더라든가, 이런 게 뛰어나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좀 했어요. 남성분들은 그래도 이제 집중해서 이렇게 해서 뭔가를 활동할 수 있는데, 이제 그런 이제 곁가지 생각을 해봤고, 그 상황에서 보니까, 제가 아무리 좋고, 그게 완전히 옳은 길이라 하더라도 내가 명상을 해서 집중을 해서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어요. 근데, 이제 아이가 나한테 와서 뭔가를 해. 나는 얘를 잡고 싶은 나의 욕망이 있더라고요. 여기에 집착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호킨스의 놓아 버림이 좀 도움이 되더라고요.
선생님 : 집착하지말자고 공부하는 건데. 무집착에 집착하는 인간들이 있어. (맞아요. 선생님 깨달음에 집착하고.) 그래, 그런 거야.
학생 : 저는 아침에도 읽어보니까 로렌스 형제라는 분이 평생 부엌지기하신 분이잖아요. 되게 사람들이 되게 우습게 알았던 그런 사람인데, 그렇게 일상 삶에서 그렇게 수련을 모든 걸 다 하나님하고 그렇게 맞춰서 그렇게 하면서,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됐다고. 거기에 조금 더, 그러니까 꼭 이렇게 앉아서만 뭐 이렇게 명상을 하고 그게 아니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내가 뭔 일을 하면서 그럴 수 있다는데, 또 다른 위안도 되더라고요.
선생님 : 그게 진짜 명상이야. 그게 생활의 명상의 생활화라고 볼 수 있지. (그러니까 이제 스님들처럼 속세를 떠나가지고 확 집중해서 그런 거는 되게 어려워요.) 그거는 내 생각엔 그거는 하나의 방편으로 임시로 그렇게 할 필요는 있다고 봐. 외부의 어떤 간섭이 될 수 있으면 차단하고, 그리고 이 고요한 상태에서 수련한다. 그거는 이제 근데 그건 임시 방편이고.
학생 : 근데 이제 저도 이제 이렇게 제가 그런 데 좀 이렇게 집중을 해보려고 하니까 제가 이렇게 자주 만났던 사람이 했던 말이나 막 그런 것들이 많이 막 떠올라가지고 이게 막 방해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이렇게 좀 차단을 하는 게 그래서 도움이 되나 보다.
스님들이 맞아 그런 생각들을 했어요.
선생님 : 그러나, 그게 외부에서 시끄러움을 배제해서 고요함을 지킨다는 건 한계가 있지.
바깥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내가 고요해야 그게 진짜 고요하지. 시장통에서 고요한 거야. 전쟁터에서 내가 평화로운 거야. 그게 진짜지.
학생 : 간혹 가다가 이제 공부하시는 분들을 뵈면 또 그런 말씀을 하세요. 산에 들어가 있으면 어떡해 시장 통해서 해야지 제대로지 하면서 이런 이제 약간 또 이게 잘 활용이 되면 좋은데 한마디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뗏목으로서의 어떤 역할을 할 때가 있잖아요.
근데 그 뗏목을 또 부정해버리는 것도 약간 그런 경우도 있어 종종 봐요.
선생님 ; 그것도 생각이지. 하안거, 동안거라는 게 있잖아. 그 사람들 고 석 달 동안은 밖에 안 나가고. 딱 시켜서 명상하고 하는 그거 필요해. 그게 필요해. 수련할 때, 수련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그런 어떤 일정 기간이 있어. 수련 기라는 게 있잖아. 그다음 일상생활에서 그런 깨어있기, 이건 수련이라고 안 그래. 수행이라고 그러지. 수행은 평생 가는 거야. 그건 수행기란 말은 없어. 몇 달 동안, 그건 아니야. 수행은 잘 죽을 때까지 얘기해도 되는 거고, 수행 생활이 목표지. 수련은 그걸 돕기 위해서, 학교 가서 한 3년 공부하는 것처럼, 3년 졸업하면 공부 안 하냐? 그게 문제란 말이야. 그런 거지. 수련기가 필요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어. 그러나, 그거 다 필요 없다. 이것도 내 생각이고.
학생 : 그런 측면에서 여기서 문 열고, 닫을 때, 알아차린 거. 아주 구체적인 정말 일상에서 하나의 수행으로서 내가 가져가야 될 거다. 저는 그 생각을 했었거든요.
선생님 : 팃낙한 스님 책 보면 자기가 젊었을 때, 어떤 스님한테 갔다가 자기도 모르게 문을 꽝 닫고 나왔대. 다시 들어오라고 지적을 당한 거야. 그 뒤로는 자기가 문을 꽝꽝 안 닫는대. 그런 거. 아주 사소한 일인데, 이렇게 되면 설거지할 때 딴 생각 안 하고 그냥 그 설거지 하는 거 거기만 집중해서 하는 거야.
학생 : 저도 그런 부분들을 읽으면서 내가 저렇게 훈련이 되면 참 아름답겠다. 사람 존재가 참 아름다울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터치 어얼쓰 할 때 선생님하고 저희가 동천을 걸었어요. 그때 그 백로가, 그 아이가 가만히 서 가지고 이렇게 가만히 있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그걸 유심히 계속 보셨거든요. 동천에 흐르는 강물 위에 있는 학을 유심히 보셨어요. 그래서, 이제 저도 이렇게 유심히 보면서, 그때 딱, 지금 이 순간 현존하는 아름다움이 저거구나. 딱 이러고 있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그때 좀 그런 감동을 받았어요.
선생님 : 그 순간에 눈이 좀 떼인 거지. 그래서, 그게 아름답게 보인 거지. 아름답다는 거 따로 있는 건 아니야. 내가 오늘 새벽에 꾼 꿈 얘기할 때 저 탐라라는 섬이야. 제주도, 옛날 거기서 사는데, 어머니가 어디서 황새를 한 마리 가져오셨어. 어머니가 가서 황새가 비실비실해. 그게 왜 그러냐? 그랬더니 소화가 잘 안 된대. 소화가 잘 안 된다면, 그래서 내가 어머니한테 아우 쟤 저거 저 제가 저기 속이 소화가 안 돼가지고 저게 불편한 모양인데 저거 어떻게 하면 좋죠? 내가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어머니가 애 괜찮아, 괜찮아. 저 뒷산에 건강한 황새가 많이 살아. 그래서, 걔들 똥을 좀 주어 먹으면 더 나을 거야. 그래, 진짜 얼마 지나다 보니까, 그냥 이놈이 건강하게 딱 돌아다닌다 말이야. 비실비실거리던 황새가 그래서 너 어떻게 그렇게 너 똥 먹었냐? 내가 그렇게 물었어. 건강한 황새의 똥을 먹으면 나은다니까. 그래서 너 똥 먹었냐? 그랬더니, 아니? 그럼, 뭘 먹었어? 효소를 먹었대. 맞아, 똥이나 효소나. 맞아, 이렇게 보면 똥이고, 이렇게 보면 효소지. 그런 꿈을 꿨어. 너 저 사람이 아름답다. 그건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보는 사람이지. 판단이라는 게 그렇잖아. 이 물건이 그걸 그거를 어떻다 저렇다 결정하는 건 아니야. 그냥 얘는 얘지. 이걸 보는 내가 아름답다, 추하다. 라고 보는 거야.
학생 : 선생님, 아까 총체적으로 볼 때 다 아름답지 않은 게 없다고 했잖아요. 근데, 우리 눈이 되게 이 시야가 좁아서 말하자면 총체적인 거를 보기가 참 쉽지 않잖아요. 그렇게 보려고 훈련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선생님 : 어떻게 해야 되냐? 나는 그 방법은 모르겠어.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고 싶거든.
그래서, 내 나름대로 찾는 방식은 기도하자. 그리스도 예수에게 난 나의 선생님이 그분이니까, 선생님, 선생님이 제 눈으로 봐주세요. 이렇게. 그럼 예수님이 보는 것처럼 내가 사람을 보면 내가 보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눈으로 내가 사물을 보면 좀 다르게 보일 것 같다. 그러면서 얘기했어. 그 기도는 해. 당신의 눈으로 제가 세상을 보게 해 주십시오.
학생 : 제가 옛날에 그 경험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그렇게 하나님이 저한테 휩싸여서 계실 때, 똑같은 상황인데, 전혀 사람이 밉지 않고, 그런데, 그전에는 그 똑같은 상황에서 정말 할켜버리고 싶을 만큼 화나고 그런 순간들이 있는 거 너무 이렇게 다르게 같은 사람인데.
선생님 ; 그거 한번 경험해 봤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것이 일상적인 나의 경험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당신이 당신 실력으로 그 눈을 갖출 수 없어. 저분이 그렇게 해 주셔야 되는 거지. 그래서, 주님 당신의 눈으로 제가 사랑을 보게 해주세요.
학생 : 총체적으로 전체를 본다는 것. 그렇다면은 그 전체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 지상에서.
선생님 : 노자가 그런 말하잖아. 부물운운 각복귀기근이라 .그런 유명한 말을 하는데, 모든 사물들이 각양각색으로 제 멋대로 돌아다니고, 자기 일을 하지만, 다 저마다 각 복귀 기근이라. 각자 저마다 자기 뿌리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간다. 그게 그렇게 얘기했어. 자기가 뿌리로 돌아간다는 얘기는 내가 어디서 나왔는데, 그리 간단 말이야. 여기서 내가 나와서, 다시 여기로 돌아가. 여러 가지 모양을 다 갖고, 이름과 이렇게 하는 놈 많지만, 결국은 지뿌리로 간다. 그런 과정을 보는 거야. 그러면 이제 소위, 그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집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놈 있잖아. 집을 떠나. 떠날 때는 자기 아버지를 등진다고. 등지고, 자기 길 가지. 그랬다가 돌아가셔서 자기 아버지를 향해서 온단 말이야. 노자가 볼 때는 집 떠나는 놈도, 돌아오는 눈으로 보는 거야. 결국은 돌아온다. 그렇게 보면 모든 것들이 돌아오고 있다. 지금 떠나는 놈도 사실 떠나기 때문에 돌아오는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보면 아까 얘기한 아름답지 않은 놈이 없다.
그렇게 얘기할 수가 있겠지.
중국 속담에 모든 물은 동쪽으로 간다. 그런 속담이 있대. 모든 물은 동쪽으로 간다. 중국이나 대륙이 저쪽은 저 우랄산맥이 있어서 그저 물이 못 가. 그 넓은 대륙에 물이 뭐 사방으로 흐를 거 아니야? 북쪽으로 흐르거나 그 남쪽으로 흐르는 거나 그래봤자, 우리가 말하는 서해바다 걔들이 말하는 동해 바다 그리 가 강물이 이렇게 흘러가고 저렇게 흘러가고 관계없이 모든 물은 동해 바다로 간다. 모든 물이 동쪽으로 간다.
학생 : 일전에 마음 공부에서 두더지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가 마음 공부를 하는데 잘 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를 좀 척도가 내가 사랑이 사랑과 연민이 깊어지는지 그거를 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좀 하신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냥 바로 나와버려요. 바로 내가 얼마나 내 남편한테 친절하게 하느냐 제 마음공부의 수준이에요. 늘 그래서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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