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수업 7 저승사자를 만나면? 안심염불!
죽음의 과정이 정상적인 자연사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승사자를 만납니다.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는 모두에게 다르지만. 삶을 잘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 순간 양심이 빛을 발합니다. 편안합니다. 저승사자와 함께 동행하는 것이 안심이 될 지도 모릅니다. 반면 삶을 비양심적으로 살아온 이들은 이 순간부터 벌벌 떨기 시작합니다. 정말로 죽음이 실감이 나며 두려워지거든요.
염라대왕은 죽음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런 신호를 보냅니다.
"하루살이 같은 인간아! 영원히 살 것 처럼 굴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세상의 끝없는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할 때 우리는 이 신호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하지만 얼빠져서 살아가느라 눈 앞에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집중을 하지 않는 시대이기에 신호는 무시되기 일쑤입니다. 그렇기에 염라왕은 머리를 써서 다섯 부류의 저승사자를 우리에게 보낸다는 것을 앞서 소개한 <저승사자경>에서 말했습니다.
저승사자를 만날 때마다 우리는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선인선과 악인악과라는 이 우주 법계의 원칙을 이해하고, 나를 내가 구해야 합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선하게 살면 됩니다. 거창한 선을 추구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냥 신호를 볼 때마다 안심하고 염불하면 됩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물론 익숙해진다면 점점 더 수승한 선으로 발전하는 시작이기도 합니다.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과 괴롭힘은 지옥을 흉내낸 것입니다.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흉내 냈을까요? 발뺌해봐야 소용 없습니다. 우리 모두 지옥 출신입니다. 다 경험하고 왔는데, 모른 척 해봐야 소용 없습니다. 반대로 인간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쾌락 등의 영광은 천상을 흉내낸 것입니다. 범부들의 윤회는 물론 대부분 지옥과 아귀 그리고 축생 등의 악처에서 보내지만 종종 천상에 태어나기도 합니다. 그 때 경험했던 영광들을 그대로 흉내낸 것이 바로 부자들이 누리는 쾌락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람들은 부자들의 삶을 보면 부러워하는 것은 참 잘 합니다. 나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잘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잘못하는 것은 다음 발걸음입니다. 천상의 씨앗인 공덕은 심지 않고, 그저 천상의 영광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인과에 무지한 탐욕을 일으키고는 하니까요. 그게 아니라 부러움을 원동력으로 지혜롭게 욕구를 일으켜 열심히 영광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문제는 천상의 신호가 아니라 지옥의 신호입니다. 마치 죽음이라는 단어를 말하거나 생각하면 죽을 것처럼 착각하듯이, 저승사자를 만나면 외면하고 도망갑니다. 신호를 보내면 좀 봐야지요. 염라대왕의 카톡을 그렇게 안 읽으면 염라왕이 짜증이 많이 납니다. '잘 좀 살아라!'라고 메세지를 계속 보내주는데, 안 읽고 계속 지옥의 악업만 짓는데 얼마나 안타까운 동시에 화가 날까요?
생로병사와 다양한 괴롭힘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하는 순간, 우리는 저승사자를 만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원동력으로 지옥을 피하기를 희망해야 합니다. 희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옥이라는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원인을 축적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탐무진무치의 길인 수행입니다. 저승사자를 만난다면? 당연히 수행해야죠!
안심이 근본입니다. 이 기반 위에 염불을 하세요. 그럼 그곳이 바로 극락입니다. 지금 극락을 살면 당연히 이후의 삶에는 극락이 상응합니다. 내면의 극락과 외부세계로써의 극락의 환경이 서로 자석처럼 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극락으로 살다가 극락에 태어나는 안심염불입니다. 저승사자를 만날 때마다! 죽음명상을 할 때마다! 매일 밤에 안심염불을 연습해야 합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시간이 없을 때는 짧게 '나무아미타불' 열번 하는 연습이 기본입니다. 여유가 있을 때 고요하게 앉아서 정행염불을 할 수 있다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순간에 한 번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되내이면 됩니다. 이것을 세 번, 열 번, 5분, 15분, 30분, 1시간... 시간이 허락하는만큼 하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안심이 면전에 현존하게 됩니다. 경험 그 자체에 기꺼이 몰입하는 안락행이 면전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안심염불입니다.
죽음의 입장에서 삶이란 단순합니다. 중간 과정에서 어디를 지나오든, 무엇을 경험하든, 어떤 소유물을 모아서 집착하든 전부 똑같이 평등합니다. 그저 죽음으로 다가오고 있는 존재들일 뿐입니다. 삶이란 죽음을 향한 마라톤이죠.
생존본능은 이 죽음을 끔찍하게 여기지만, 죽음이란 삶의 완성입니다. 목적지인 결승점입니다. 이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니, 또 태어나서 달리고, 또 태어나서 달리며 끝 없는 죽음의 경험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번 생에는 시간이 허락하는만큼 죽음을 준비해야죠. 염라대왕의 카톡 읽씹은 그만하고, 저승사자를 만날 때마다 안심염불을 해보세요. 극락을 가든, 열반을 하든. 이제 결판을 내야죠.
언제까지 윤회의 감옥에 갇혀 살고 죽고를 반복할건가요? 죽는 것이 뭐가 유쾌하다고, 하찮은 소유물과 쾌락에 정신이 팔려서 죽음을 계속 반복할건가요? 참... 안타까운 삶입니다. 기억해두세요. 안심염불이 죽음을 마치는 극락의 길입니다. 안심염불을 하는 그 자리가 바로 극락입니다.
붓다스쿨 입학 신청하기 https://www.buddhaschool.co.kr/register
첫댓글 감사합니다.스님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