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다
집에서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대신 성당에서 미사로 대신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주일미사보다 인원이 더 많다
유교의 본산인 안동 종가에서도 제사는 2대까지만, 기제사는 남편 기일로 몰아서, 제사 시간도 오후 7시로.....
시대의 변화를 담지 못하는 것들은 결국 소멸하고 만다
선산보다 공항이 더 붐비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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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뼈
이장을 하다 본다 아버지의 등뼈가 사라진 것을 염을 했던 형은 그럴 리 없다며 맨손으로 허겁지겁 파내다 공터로 변한 발가락뼈 자리에 무릎을 쏟아 놓는다
누구는 땅속에서 삭았다 하고
누구는 살아서 이미 없어졌다 하고
뼛속 깊이 밀려드는 풍경들을 넋 놓고 더듬다 다들 사라진 등뼈의 행방을 말없이 일치시킨다
식민지 소년이 끌려가 쇠사슬로 얻어맞고 구정물 통 뒤져 허기를 메꾸던 규슈 탄광서 총탄이 빗발치던 평안도 개천지구와 가칠봉 1122고지서
하루하루 뜯겨나갔던 살과 핏덩이
선산은 휘청대고 하늘은 엇나가고
산판길 우악스레 휘감다 저 멀리 가버리는 벼락바람
그것을 기른 젖에 대해 그것의 몸통에 대해 그것의 쓸모에 대해 박박 지우고 다시 쓴다
없다고 빌붙지도 있는 것을 지키려 친일파도 앞잡이도 되지 않았던 이름 없는 뼛속들을 들여다본다
유골마저 창백하다
마사토 넌지시 기다리던 새 자리에 정강이뼈 발목뼈 무릎뼈 허리뼈 가슴뼈 머리뼈
참 말이 없던 당신 울고 웃던 모습들 챙겨 맞추다 띄엄띄엄 달랑 남은 어금니 몇 개
고기 한 점 요리 한 번 맘대로 얹어놓지 않은 사투 사투
세월 지나서야 내 몸에서 빠직거리는 진땀은
당신 보내고 홀로 훔치던 엄마의 눈물에 범벅돼 흐르고
여기 이 밥과 이 마른자리들 저기 저 웃음과 저 환호들의 뒤편을
떠받치다 녹은 뼈들이 사라져간 곳을 올려다본다
이 악물고 두 손 모은 채 땅과 하늘 사이에 진을 치고
죽으나 사나 늘 그 자리 그 자태 그 행색
신도 걱정할 만큼 서슬 퍼런 아버지의 규칙
노동하고 기도하고
남기고 간 평화를 이제 겨우 들춘다
이제서야 탯줄을 자른다
이 씨이지만 조 씨인 여인
1.
나도 조 씨를 좋아합니다 내 이름도 병암리 조 세완이 지었습니다 돈을 겁나게 벌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는데
어느 날이었지요 아마도 이마에 피가 말랐다고 여긴 모양입니다 잠시 내 눈치를 보더니 뜬금없이 당신은 이 씨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 성을 갈 일이 없어서였을까요 그저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돌림병이었습니다 재수 없는 총독부놈들에게 화를 돌렸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저 멀리 남녘으로 떠밀어내야 했습니다 너라도 목숨을 건져라 그렇게 열 몇 살 조 씨는 평안남도 순천을 빠져나왔습니다
그 조 씨가 윤 씨의 두 번째 남편이 됩니다 춘향골 갑부 딸이었던 윤 씨가 여종 앞세우고 말 타고 시집왔던 무너미 마을 이 씨는 마름을 다섯까지 둔 조선 개국 공신의 17대손이었습니다
딸 둘을 둔 이 씨는 병에 걸려 세상을 일찍 떠났습니다 남녘으로 가다 섬진강변을 떠돌며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던 조 씨를 윤 씨가 두 번째 남편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즉시 윤 씨는 이 씨 가문에서 내쫓깁니다 열녀가 되지 못한 죄 때문입니다
호적에도 오르지 못한 조 씨도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병에 걸려 죽습니다 윤 씨도 늑막염에 걸려 죽습니다 일본 순사에게 고춧가루 물고문을 당한 탓입니다 몇 날 며칠 관촌 지서 지하실에서 고문에 시달려도 행방을 불지 않은 탓입니다 윤 씨가 토로하지 않은 사람들은 독립군이었습니다 남몰래 돈과 재물을 퍼주고 정보를 나르고 항일투사들을 숨겨주던 윤 씨는 ‘오원천 호랑이’였습니다
윤 씨와 조 씨 사이에 태어난 딸과 아들과 윤 씨와 이 씨가 낳은 두 딸은 고아가 되었습니다 독립군을 후원한 죄로 가산은 몰수되고 불순분자의 자식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아버지가 다른 네 사람은 똘똘 뭉치는 식민지 백성이 됩니다 칼 차고 다니는 학교장 곤도의 아들에게 지기 싫어 악착같이 공부합니다 반장 선거에도 나가 맞붙습니다 역시 피는 못 속입니다 조 씨이지만 이 씨인 그녀는 그렇게 8. 15를 맞습니다 신작로 돌멩이가 하늘로 날아갈 만큼 비바람이 미친년 치맛바람처럼 날뛰던 날이었습니다
전쟁이 해를 넘기고 또 해를 넘기고 해를 넘긴 봄날 웃시암내서 혼인 잔치가 벌어집니다 조 씨의 딸 이 씨가 도망친 장남 대신 일본 규슈 탄광으로 강제징용되어 끌려갔다 온 후 6. 25 전쟁에 나가 싸우다 김일성 고지에서 심장을 빗겨 가는 총탄을 맞고 대전 임시 군사병원에서 명예제대한 김 씨와 백년가약을 맺습니다 다섯 남매의 부모가 됩니다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가 태어난 것입니다
2.
성당 교적 속에 그토록 숨겨 놓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뿌리였을까? 그리움이었을까? 호적이나 등본에 이름 한 자 올리지 못한 이북 출신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세례성사 증명서를 떼다 조 씨로 등록된 엄마를 꼼짝 못 하고 만난다
이 씨 쪽에선 여전히 고관대작이 나오고 숨겨진 수십만 평 땅을 찾아 나서고 이 씨 할아버지를 모신 선산에 윤 씨 할머니는 얼씬 못하고 파묘 당해 오원천에 뿌려진 조 씨 할아버지는 기일조차 남기지 못했고
위령미사를 넣는다 조대순 밑에 조태완 처음으로 이 씨 대신 조 씨로 엄마 성을 적는다 빈곤이 죄를 부르고 가난이 죄가 되어갈 때 죄 없이도 단단해진 여인을 본다 없어도 없는 자에게 귀와 눈을 막지 않았던 보릿고개 들짐승의 먹이를 놓아주던 손길을 더듬으며 빈손으로 돌아가는 문둥이에게 쌀 한 되 들고 뛰던 발길을 따라가며 조 씨라고 꾹꾹 누른다
무덤에 묻고 오던 날 용희 신부님 따라 하늘길 가다 말고 자꾸자꾸 뒤돌아서다 수의를 벗어젖히던 꿈속의 여인은 누구의 딸입니까? 이 씨이자 조 씨가 지은 잘못은 저들처럼 죄와 악을 저지르지 않은 것 자식을 위해 머저리가 되어 영혼마저 갈아 넣고 산 것 그때나 지금이나 늘 깨지다 팽개쳐지고 마는 지지리도 못난 나자렛 청년을 따라 산 것 그 사내가 왜 패배했는지를 알아챈 후에도 이리저리 나자빠지면서도 끝끝내 졸졸 따라간 것
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그 사내가 왜 신이 되었는지 자백하는 시간입니다 종의 모습을 취하여 살다 김 씨 이 씨 박 씨…… 기어이 죽음을 맞아들이고 윤 씨 조 씨 서 씨 오 씨…… 바람으로 비로 태양으로 말로 글로 영으로 떠돌며 백 가지 성의 살과 피가 되어 먹여 살리려 죽고 또 죽고 기쁘게 죽는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 계시는 예언이 아니라 내가 치러야 할 몫이라고 온몸으로 보여주는
고조 할머니는 증조 할머니 속에 증조 할머니는 할머니 속에 할머니는 엄마 속에 엄마는 내 속에 나는 내 딸 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나는 마침내 엄마가 되고 기어이 신과 포개져 신의 존재 방식을 신의 거처를 신의 행방을 찾지 않게 된다고
낮술에 깜박 졸다 엄마 조 씨를 보았습니다 규슈 탄광서 얻어맞다 다친 등뼈와 평안남도 개천지구 전투에서 차량 전복으로 다친 척추 후유증과 말단 공무원 노동으로 끝내 온몸이 굳어 일어나지도 못하던 아버지 김 씨에게 새벽녘 꿈인 듯 생시인 듯 나타나 오른손 내밀어 씻은 듯이 일으켜 세웠던 태양을 입은 여인 곁으로 어서 가시라고 잠덧을 하다 깼습니다 아이를 밴 채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검정 치마 흰 저고리 여인은 누가 점지하여 내린 딸이냐고 숨결 젖은 채 신에게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이제야 이 씨였지만 조 씨인 엄마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