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뿌리
땅 위로 솟아 나온 소나무 뿌리
구불구불 길바닥에 퍼져있는 모양이
인체의 혈관 같다
밟으면 밟힐수록 더욱 강해지고
힘차게 뻗어가는 의지와 욕망
삶의 시간과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삶에 지친 어머니 손등 같다
튼튼한 혈관으로 쭉 쭉 빨아올리는
어머니의 젖줄이다
물안개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물안개 저편으로
아련히 떠오르는 당신의 모습
편찮은 몸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여
외동딸 결혼식장 가 볼 엄두도 못 내고
대청마루 대들보 붙잡고 서서
한쪽 팔 들어 올려 어서 가 어이 가
기쁨과 허전함에 말을 잇지 못하고
기쁜 날에 눈물 보이지 않으시려고
손사래로 재촉하며 어서 가 어이 가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후
백마강에 물안개 솔 솔 피어오르던 날
영영 떠나신 우리 어머니
강산이 변하고 내 머리 반백이 되었어도
사랑하는 딸 시집가는 날
당신이 해줄 수 있었던 마지막 그 말
어서 가 어이가
너무 그립습니다
뿌리 공원
대한민국 250여 개의 성씨별
시조들이 한데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
잔잔한 호숫가 강물 흐르고
봄에는 산수유 개나리 영산홍
여름이면 능소화
줄줄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동산
집집마다 새겨놓은 번지수와 유례비에
어떤 집은 왕의 자손이요
어떤 집은 영의정을 했고
또 어떤 집은 무슨 벼슬을 했노라고
시조들의 내력을 새겨놓고
집 모양은 세손들의 취향에 따라
건축 미술 조각가들의 조형물로
아름다운 전시장에 온 듯하네
지위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차별 없이
똑같은 평수로 분양받아 지은
오순도순 정다운 선조들 마을
사계절 자손들 줄줄이 찾아와
뿌리 찾고 얼을 느끼며 효를 배우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랑스러운 내 고장의 뿌리 공원
청보리밭
끝없이 펼쳐진 청보리밭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푸근하다
어릴 적 배고픔을 채워주었던 보리밥
풋고추 뚝뚝 잘라 넣고 담은 열무김치
찹쌀고추장에 쓱쓱 비벼 먹으면
꿀맛 같았던
바람에 출렁이는 밭이랑에 들어서니
초록이 안겨주는 비릿한 풋 냄새
아! 이거,
어릴 적 고향의 향기다
석양의 노을 진 풍경 너머로
아련한 보릿고개의 추억이
아롱아롱 서려온다.
소망 우체통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동해바닷가 간절곶
우뚝 서 있는 파란 소망 우체통은
울컥 그리운 사람 생각나게 하고
눈과 가슴을 촉촉이 적셔 주었습니다
수백 통의 편지 써 놓고도
부치지 못한 편지가 생각났습니다
제게는 단 한 번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하늘나라에 보낼 비밀편지가 있거든요
당신의 개망나니인 오라버니 새총에
한쪽 눈 잃으시고
평생을 고통으로 지내셨던 어머니
철부지인 딸은 그런 어머니의 눈이 부끄러워
친구들 볼까 봐 마음 졸였던
세월 지나고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뒤늦은 후회로 많이 울었습니다
견딜 수 없어 용서의 편지 썼습니다
그 편지를 부치려고 했지만 부칠 곳이 없어
수십 년 가슴에 품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오늘 만났습니다
하늘과 땅 바다가 만난 이곳
여기서 부치면 곧장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주소 없는 편지
깊은 가슴속에서 하나둘 꺼내어
파란 우체통에 차곡차곡 넣고 기도했습니다
무사히 전달되기를
입춘날 아침
지난해 얻어온
노란 산철쭉
꽃봉오리 맺는가 싶더니
메말라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혹시 죽었는지
꺾어볼까
중얼대며 손으로 만지자
노란 실눈 뜨고 깜짝 놀란 몸짓
기특한 거
넓은 세상에 살다 울안에 갇혀
얼마나 답답했으면
훌훌 옷을 다 벗어 던졌을까
허물을 딛고 출렁이는
파란 희망
아찔했던 입춘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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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6편 보냅니다. 바쁘셔도 잘 읽어 보시고
여기서 제일 못난 거 1편 빼고 올려 주세요.
교정도 잘 부탁합니다.
시집 사진은 3년이 넘었으니 아주 빼면 어떨까요.
사장님께 말씀드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