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국립공원 내장산(763m)
(전라북도 정읍시) 1999년 1월 23일(토) 비
(대전 학원연합회 산악회 안내 산행)
깊고 오묘한 산속이 화려한 풍광을 뽐낸다.
예로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 꼽힌 내장산은 1971년 11월 17일 산악 국립공원으론 6번째로 내장산과 백암산과 입암산을 합쳐서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산의 이름은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내장산으로 불리는데 원래 이름은 백제 무왕 37년(636년) 영은조사가 창건한 영은사의 이름을 따서 영은(靈隱) 산이었다고 한다.
호남의 5대 명산인 내장산은 가을이면 산홍(山紅), 수홍(水紅), 인홍(人紅)을 이룬다는 남한 제일의 단풍 명산으로 널리 알려졌다. 도시의 세련된 미인처럼 완벽하게 붉은 단풍의 길을 이루는 단풍 터널뿐만이 아니라 산자락 곳곳에 다른 산과는 한눈에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는 단풍나무 군락지가 있고 노란색이나 주황색으로 물드는 각양각색의 활엽수림이 밀집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내장산은 겨울 설경도 으뜸이다. 매년 1m가 넘는 적설량을 보여 설경도 압권이다.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 채 한겨울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는 내장산의 하얀 능선에 서면 신비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고 가슴이 탁 트이며 마음에는 호연지기가 길러진다. 내장산의 눈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풍경을 바라보면 세속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원히 이곳에 있고 싶을 정도로 환상적인 풍광을 나타낸다.
내장산 산세는 내장사를 중심으로 신선봉을 비롯한 9개의 봉우리가 타원형을 이루면서 내장사를 감싸고 동쪽으로만 길을 내주고 있다. 준족의 산객이라면 내장 9봉을 답사하는 원점회귀 종주 산행이 가능하다. 특히 내장산은 우리나라 13 정맥의 하나인 호남정맥의 산이다. 내장산에서 호남정맥이 지나가는 구간은 추령부터 장군봉을 거쳐 정상인 신선봉을 거쳐 백암산으로 뻗어 나간다. 호남정맥의 기를 받으며 호남정맥을 걷게 되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부동심이 생기기도 한다.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산에 오르는 걸 청승맞다 하겠지만 산을 좋아해서 자주 산에 가는 나에게는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깊은 산 속에서 비를 맞으며 산에 오를 때는 나뭇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만이 온산에 가득하고 오직 산과 나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도 그 산의 한 부분으로 산과 한 덩어리가 되어버려 산과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된다.
부처님의 너그러움이 느껴지는 내장사 대웅전
대전 학원연합회 산악대원들과 대전에서 출발할 때 비는 오지 않았는데 내장산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어 내장사를 에워싸고 있는 9개의 봉우리를 볼 수 없어 서운했다. 내장사 주차장에서 비를 맞으며 산행이 시작된다(10:15). 내장사를 향해 조금 걸어가니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 오른편 길로 가면 서래봉(622m)을 오를 수 있지만, 내장산 정상인 신선봉으로 가기 위해 내장사로 향한다.
반짝이는 눈꽃 숲으로 빠젼든다.
내장사 절 문에 들어서지 않고 절 왼쪽에 흐르는 금선 계곡을 따라 길을 재촉한다. 잠시 후 갈림길에서 연자봉 쪽으로 방향을 잡아 왼편 작은 능선으로 산에 올라간다. 눈이 쌓여 미끄러운 얼음길이라 조심조심하여 진행한다. 계단처럼 급하게 위로 뻗쳐만 있는 자갈길을 올라가 전망대 정자에 닿는다(12:45).
가파른 오르막길로 산에 올라간다
비는 내리고 있지만, 건너편 북쪽의 바위 봉우리인 서래봉이 설악산의 울산바위같이 조망돼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서래봉에서 불출봉으로 가는 길은 약 1Km의 아기자기한 바위 능선 길이 이어지고 뛰어난 조망과 함께 단풍 숲 지대가 조화된 전형적인 능선길이라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환상의 코스이다.
전망대 정자를 뒤로하고(12:50) 잠시 평평한 길을 가다가 철 계단에 올라서니 여러 명의 여학생이 무척 힘들어하며 간신히 산에서 내려오고 있다. 경사 급한 눈길을 거침없이 올라가 연자봉(673m)에 도착했지만(13:15), 비가 내려 조망은 되지 않아 서운하다.
연자봉부터 까치봉까지는 호남정맥 산줄기라 악천후지만 호남정맥의 기를 받으며 기분 좋게 진행한다. 낭떠러지를 이룬 암반인 금선대를 지나 내장산 정상인 신선봉에 올랐지만(13:40), 날씨 때문에 전망이 없어 안타깝다.
신선봉을 뒤로하고(13:45) 다음 목표지점인 까치봉을 향해 서북쪽으로 뾰족뾰족한 암릉을 타고 조금 내려서니 가파른 흙길로 이어진다. 곧이어 오르막길로 올라서니 큰 철망으로 내장사 쪽을 막아 등산로가 아니라는 표시를 해놓았다. 얼마 후 산줄기가 갈리는 분기점 봉우리에 닿는다. 이 봉우리까지가 호남정맥 산줄기고 호남정맥은 순창새재를 지나 백양사가 있는 백암산 상왕봉으로 향한다.
분기점 봉우리에서 칼날처럼 날카로운 암릉을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섰다가 곧바로 올라채 내장산을 조망하는데 가장 좋은 봉우리인 까치봉(717m)에 올라선다(14:20). 오른편에 신선봉, 연자봉, 장군봉의 거한을 늘어세우고 왼편에 연지봉, 망해봉, 불출봉, 서래봉, 월영봉의 신하가 입시한 자리에서 영취봉의 배례를 받는 형국 같다는 까치봉이지만 오늘은 비가 오기 때문에 신선봉만 간혹 보였을 뿐 전망이 없어 섭섭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날씨만 좋으면 서래봉까지 진행해서 하산하려고 계획을 했는데 미끄러운 눈길에다 등산화와 옷이 흠뻑 젖어 하산을 준비하고 있는데 신선봉에서 하산할 줄 알았던 대원들의 음성이 들려 대원들을 기다리느라고 30분간 머무른다.
산행을 재개하여(14:50) 까치봉에서 15분 만에 연지봉(671m)에 오른 후 망해봉을 200m 남겨둔 지점에서 먹뱀이 골로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한다. 미끄러운 길을 한동안 내려오니 너덜지대가 계속돼 진행이 쉽지 않다. 얼음이 언 미끄러운 길을 비를 흠뻑 맞으며 약 10.5km 산행으로 내장 9봉 중 5개 봉을 종주하고 즐겁고 보람 있는 산행을 마친다(16:30).
주차장을 향해 걷는다.
옷이 모두 젖었기 때문에 식당에서 속옷 차림으로 술도 마시면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옷은 모두 탈수하여 따뜻한 방바닥에 말리니 식사가 끝났을 땐 옷이 모두 말려 졌다.
오늘로써 내장산 7번째 산행을 했지만, 오늘 내장산 겨울 산행의 추억은 내장산의 빼어난 경관과 함께 오랫동안 나의 머릿속에 간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