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행운이 발에 채길 바라요
『걱정 마, 오리 인쇄소』
카테리나 사드 글 그림, 키다리, 2021년
어려움은 우연히 오나니
주황색 주둥이를 내민 채 놀란 표정을 한 오리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무슨 회의라도 하는 걸까? 이들은 남겨진 오리들이다. 무슨 연유인지 농장 주인은 오리마저 남겨 두고 농장을 떠났다.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지, 도시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는지, 가족 중 누군가 아파서 큰 병원을 가게 됐는지 알 수 없다. 키우던 오리마저 거두지 못하고 급히 떠난 농부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음이 틀림없다. 곧 겨울이 올 텐데 오리들은 별다른 대책이 없다.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된 오리들은 풀 위에 누워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한숨만 쉰다. 하지만 아홉 마리 오리는 생각을 모은다. 우리는 실오라기 같은 아이디어도 모으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걸 본 적이 있지 않은가?
한 쪽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나니
오리들은 의기투합해 결정을 내린다. 자신들을 돌봐 줄 사람을 구하는 구인 광고를 내기로 한다. 하지만 오리들은 글씨 쓰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글씨 쓰기는 처음부터 마음대로 되지 않고 붓을 발로 잡아야 할지 날개로 잡을지조차 모른다. 심지어 붓이 뭔지도 모르는 오리도 있다. 기어이 오리들은 블루베리를 으깨 만든 물감을 엎지른다. 하물며 오리들은 좀처럼 가만히 있진 못하고 발길에 차이는 것들을 죄다 밟고 다닌다. 주위는 엉망이 된다. 혼돈과 무질서는 새로운 걸 잉태하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 생긴다. 삶의 여정에서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거처럼 우연히 오는 행운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작은 시도를 해야 기회의 문이 열린다고 말하는 듯하다. 블루베리 물감처럼 깜깜할 것 같은 앞날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려는 순간, 문이 열린다.
무언가를 하는 동안 귀인은 오나니
행운의 문은 ‘지나가던’ 고슴도치 아저씨가 ‘우연히’ 담요를 발견하게 되면서 열린다. 정신없이 물감을 밟고 다니던 오리가 남긴 우연의 미학, 오리 발자국이 찍힌 담요이다. 고슴도치 아저씨는 예쁜 것을 알아보는 미의식으로 충만한 발견자였다. 담요는 블루베리 물감을 재료로 한 친환경 판화 작품인 동시에 발자국 몇 개로 마무리한 모던함까지 갖추고 있다. 절대 미감의 소유자 고슴도치 아저씨를 만남으로써 오리 인쇄소의 운명은 달라진다. 고슴도치 아저씨는 가시 사이에 넣고 다니던 사과와 담요를 물물교환한다. 첫 작품이 우연의 산물이었다면 이제 오리들은 진정한 작품을 만들고 물물교환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까지 하게 된다. 고슴도치 아저씨는 작품을 홍보하는 역할도 했으니 오리들은 이제 살았다. 드디어 날았다.
판화 예술 공방이여, 윌리엄 모리스처럼
오리 인쇄소는 보다 적확하게 표현하면 판화 공방쯤일 것이다. 이 판화 공방이 잘 되는 이유는 우선 유일무이한 독보적인 작품에 있다. 오리들이 직접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일찍이 윌리엄 모리스가 주창한 ‘미적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게 아닐는지. 윌리엄 모리스는 예술이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미적 즐거움을 제공하며, 삶을 더 나아지게 한다고 했는데 오리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리들은 어느새 ‘예술 생산자’가 된다. 여기에 예술품의 가치를 알리는 고슴도치 아저씨가 있으니 오리들은 날개를 더한 격이다. ‘세상에 하나뿐인’이라는 문구에 힘입어 인쇄소는 잘될 수밖에 없다. 이제 오리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지속 가능한 예술 생산자의 삶을 위하여
예술 작업의 지속가능성은 경제적 자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림책 『프레드릭』에서는 다른 생쥐들이 옥수수와 밀을 구하며 일할 때 프레드릭은 이야기를 모으고 색깔을 모은다. 동료들은 프레드릭에게 ‘너 지금 뭐 하고 있어’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다른 생쥐들이 하는 일은 확연하게 결과가 보이지만 프레드릭이 하는 일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결과물이 없을 때는. 예술계는 실상 몇몇 이름이 알려진 예술가를 제외하고는 경제적으로 빈곤하다. 인생의 추운 겨울을 헤치고 나갈 힘을 가진 가치 있는 일이란 걸 인정받았음에도 정부의 예산 편성에 있어서 후순위로 밀리고, 일 순위로 예산 삭감되는 경우를 본다. 예술이 더욱 풍요로운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림책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본다. 오리들의 예술 생산 품목이 더 다양해졌을까? 오리들 개개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혹시 개인 공방을 열거나 이름있는 판화가가 되어 전시회를 연 오리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농장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서로 도우며 살지도 모른다.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 알이 되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지는 일은 흔히 일어난다. 그만큼 사회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말일 테니까. 어쩌면 고슴도치 아저씨처럼 눈 밝은 사람을 못 만날 수도 뜻밖의 행운이 안 올 수도 있다. 그래도 오리들이 그랬던 거처럼 머리를 모으고 사부작거려야 하지 않을까? ‘완벽하게’라는 것은 바라지도 않으며 꾸준하게 말이다.
#그림책 #걱정마오리인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