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돌 풍경
첫 돌, 책만들기 프로그램을 배우는 김에 아이 사진과 우리의 기록을 정리해서 책자로 묶었다. 1부는 보관을 위해, 1부는 열람을 위해, 1부는 우리를 위해, 나머지 책들은 양가 부모님께 전해드렸다. 돌잔치는 가게에서 출판기념회처럼 진행했다. 양가 부모님, 처형네와 함께하는 돌잔치. 아내는 자투리 천을 오려 자음과 모음을 만들었고, 소창수건에 바느질해 ‘첫 돌’이란 단어를 새겼다. 평소 바느질과 거리가 먼 아내였기에, 아이를 생각하는 살뜰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쓰레기 적게 나오고 싶은 마음에 공감하셨는지 부모님은 꽃다발을 사러 나가셨다가 포장을 최소한으로 하는 곳을 찾고자 시내를 한참 헤매고 오셨다. 지난 1년의 사진을 정리한 영상을 보고, 책 속의 한 구절을 읽고, 돌잡이를 했다. 아이는 떡을 잡았다. 우리는 떡을 올릴 때 ‘선린(善隣)의 복’이란 의미를 담았다. 좋은날 기쁨을 나누는 떡처럼, 좋은 이웃이 아이의 삶에 가까이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양껏 맞춘 떡은 동네에 인사드리며 두루 나누었다. 많은 분들이 아이의 삶을 축복해주셨다.
두 돌, 두어 달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에서 케이크를 전해주셨다. 아이 생일이 일요일이었고, 마침 격주 일요일마다 있는 가게대관 날이었다. 우리가 다 먹기엔 양이 많아 대관 손님들께 케이크를 간식으로 내어드렸다. “무슨 케이크에요?” 라는 질문에 부담을 느끼실까 싶어 “그냥 준비했어요.”라 말끝을 흐렸다. 저녁 8시, 손님들이 가시고 남은 케이크를 상자에 잘 담았다. 추위와 어둠이 깊어지기 시작한 11월 중순의 밤이었지만,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남은 케이크를 들고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4분의 1쯤 남은 뭉개진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불렀다. 찬바람 맞으며 남은 케이크를 알뜰히 나누어 먹었다. 아직도 그때 찍은, 어리둥절한 아이의 눈으로 촛불이 떠오르고, 바람소리가 잔뜩 들어간 동영상을 종종 틀어본다. 소박해서 더없이 충만했던 그 순간을 잘 간직하고 싶다.
세 돌, 기차를 타고 월포역으로 향했다. 월포해수욕장은 청소년과 함께하는 걷기 모임의 12월 여행 종착지이기도 하다. 가족여행 겸, 여행답사 겸 1박 2일로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는 바닷가 민박의 구석진 방. 마침 대학생 열 명 쯤 여행을 와서 왁자지껄하게 지내고 있었다. 평년보다 따스한 날이었지만, 11월의 바닷바람은 세 돌 아이가 맞기엔 거칠었다. 바다를 보며 걷다가 곧 바람을 피해 동네 안으로 피신했다. 마침 작은 초등학교가 있었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그네, 미끄럼틀, 시소를 타며 잘 놀았다. 운동장에 굴러다니는 공으로 아내와 축구를 하는데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과 어울려 실컷 공을 찼다. 여느 초등학교에 굴러다니는 공이 그렇듯, 바람이 조금 빠져있어 발에 착착 감겼다. 그 덕에 축구 잘하는 어른인 ‘척’할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짧은 낮잠을 자고, 근처 슈퍼에서 장을 보고, 저녁상을 차려 조촐한 생일파티를 했다. 기분 좋게 술에 취한 대학생들의 수다가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꼭 슬레이트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같았다. 덕분에 잘 잤다.
네 돌, 넉 달쯤 남은 올해의 생일풍경을 상상해본다. 여느 해처럼 보통의 날이기만 하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첫 돌에 시작한 아이 책만들기는 세 돌까지 이어졌고, 아이의 스무 살까지 총 스무 권의 책으로 이어가는 것이 목표가 됐다. 아이는 제 사진이 들어간 탓인지, 매년 만들어지는 책을 닳도록 보고 있다. 게으른 탓에 책 속에 들어가는 글은 점점 줄고, 사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세 식구 사진으로만 가득하던 책에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선생님, 친구, 동네 이웃, 가게 손님들… 네 번째 책에선 더욱 다채로운 관계를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자리를 넓어진 아이의 세상에 양보한다. 경이로운 시절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