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15(화) :
계속 어떤 혼돈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우선은 몸이 개운칠 못한 게 그 주된 원인이다. 미열, 한기 이외는 특별한 증세는 없다. 어제오늘 그냥 누워서 보냈다. 약은 어제까지 5일간 끊었었다. 너무 단위가 높은 듯도 하고 한 주일 이상 계속하지 말라는 Agent 녀석의 말이 생각난 탓이다.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좋아져 가는 것은 분명하다. 그냥 물컹한 소설 속에 내 자신을 잊어본다. 어제 읽은 백우암의 ‘유배당한 사람들’ 오늘의 ‘신예성서’ ‘에뜨랑제의 그대 고향은?’ 등. 그런대로 몰두할 수 있게 해서 좋았다. 특히 ‘유배- ’속에서의 구수한 상소리와 진실과 사랑이 인상적이었다. 운명이나 팔자니 하는 말은 결국 그러한 불합리한 것을 억지로 설명하고 덮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말들이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수가 없지 않을까?
어제는 Delivery Survey를 위해 두 녀석이 왔다 가더니 오늘은 Oil Pollution Inspect를 한다며 한 녀석이 다녀갔다. 매일 한 Team씩 제멋대로다. 내일은 또 어떤 놈이 오려나? 아마도 술(Whisky)이 생각나면 오는 모양이다. 가져가지는 못 하고 뱃속에 넣어 가는 것이다. 그리스의 고려정 구 사장이 주고간 熊膽(?)인가 뭔가가 맛이 쓰긴 하다만 오늘부터 조금씩 떼어 먹어본다. 덜 말라서 그런지 꿈꿈하게 역한 냄새가 나서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짜증이 섞이긴 하지만 글씨는 재개를 했으나 Jogging은 아직 허리의 후유증으로 10여일 이상을 중단한 상태다. 조금만 더 풀리면 계속해야지.
Sep/16(수) :
조석으로 지나가는 바람에 찬기가 느껴진다. 그렇군 여긴 제법 북쪽인데다 벌써 9월도 중순을 넘고 있지 않은가. 나흘째 꼼짝을 않는다. 허리의 통증이 가라앉았는데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영영 이렇게 굳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Port control과 Agent에 전화했으나 Fix되지 않았다는 짧막한 한마디 대답뿐이다. 기다려 보자.
어제밤 11:30 느닷없이 Pilot가 승선. Shifting 한댔다. 결국 자정 바로 전에 No.2 Quay에 접안했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단다. 그렇게 Order가 나와 있기에 자기는 옮기기만 하면 된다나. 그러고는 또 감감 소식이 없다. 아직 Delivery Certificate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05:30시 또 뭔가 실은 트럭이 두어대 오더니 싣잖다. 꼭 60년대 우리의 사과상자 보다 못한 헐렁한 나무상자에 넣은 흙이 묻은 사과다. 그것도 오후 3시까지 두어 트럭하다가 만다. 엉망이고 망망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도 안 간다.
NYK의 Telex는 더욱 답답하다. ‘Cuflet’란 Charterer도 결국 같은 사회주의인 큐바의 국영 회사일테고 그들의 Agent도 한패거리 일테니 그저 그렇게 내버려 두는가 보다. 제 것 손해 날리 없고 전부가 국가의 것이니 알 바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유럽의 영향을 받아서 좀 다르려니 했던 기대도 한꺼번에 무너진다. ETD도 모르겠단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이래서는 언제 끝날 것인지 조차 짐작이 가질 않는다. 한국엔 여전히 시끄러운 모양이다. 이 놈의 나라 TV에까지 뜨는 걸 보면-. 뭣 하나 속 시원한 게 없다.
Sep/19(토) :
토요일. 좃 빠지게 기다려도 Agent 자슥은 코끝도 안 보인다. 내일까지 연휴라더니-. 본선용 Meat Chamber의 Trouble이 또 다른 골치거리로 등장한다. 이런 곳에서는 수리도 어려운데-. 다시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마음 편히 갖자. 씹헐 것!
오후 시내를 둘러 보았다. 궁상스럽고 활기가, 생동감이 없다. 죽은 사회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득바득 핏대 세우며 고함지르고 생존을 위한 오기가 곳곳에서 처절하게 벌어져도 그 번뜩이는 활기가 있는 곳이 좋다. 자유경쟁이나 자신의 독특한 능력에 의한 자기 삶의 영위방식, 그것이 곧 인간 생활 발전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임을 절감한다. 그러나 마을 주위에 만든 자그만 공원의 설비나 산책길 등은 조용하지만 깔끔하다. 연일 Radio에서 울려 나오는 감미로운 음악 역시 그렇다. 아마도 싱싱한 생존을 위한 강렬한 열망을 그러한 방법으로 달래고 어루만지는 모양이다.
연3일째 계속하는 작하작업이 다소 전진이 있어 보인다. Inspector로 왔던 두 명의 Cuban들은 멍청하게도 시내에서 서성이다 만났다. ‘여기서 뭘하냐? 배에도 오지 않고-’ 우물쭈물이다. 그렇겠지. 제것인가? 적당히 시간 보내고 제 실속 챙기다 가면 그만이지.
연일 어정쩡한 기분으로 시간을 죽인다. 도시 마음의 안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모든 일이 그냥 각각으로 돌아간다. 아직 주고받아야 할 Document도 있는데도 한 놈 관심 갖는 일이 없다. 불안을 털어내지 못한다. 과연 이 일이 끝날 수 있을 것인가? 24-25일이면 된다고 오늘 낮에 시내에서 만난 큐바놈들은 말했지만 실상을 아무래도 그렇질 못할 형편이다. 아내, 얘들, 집안 별일들 없이 잘 돌아가는지? 하자면 끝도 없고 안 하재도 정영 그럴 수 없는 끈끈한 염려와 그리움이 묻어 나온다. 너무 소홀히 하고 있음이 밀물처럼 가슴을 덮친다. 그냥 믿자. 그 이상 뭘 더 바랄 것인가? 펄벅 여사의 ‘숨은 꽃’을 읽다
Sep/20(일) 1987 :
오랜만에 해안길을 따라 만든 산책로를 두어시간 걸었다. 근 보름만이다. 완전하지는 못하나 허리가 거의 풀린듯도 하다. 상업이 죽은 거리는 마치 불꺼진 항구 같다만 우거진 가로수 특히 낙엽들이 물들기 시작한 푸라타나스의 무성함이 어디가나 인상적이다.
Seaman's Club의 TV에서 새로운 체조게임을 보다. 체조라기 보다 발레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 중공. 일본 선수들의 수준이 놀랍다.
Sep/21(월) :
다행히 본선용 Meat Chamber가 수리된다. Agent의 Mr. Mihailow가 11시경 왔다. 그저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이 온 몸에 질질 흐른다. 의례적으로 얼굴만 내밀면 끝난다는 눈치다. 입으로는 온갖 소릴 지껄인다만 역시 흰소리 같다. Cuba의 Havan Agent의 Full Add.를 받고 Tonichi에 연락해 주다.
Carring Temperature는 내가 직접 Cuflet에 Telex하란다. ‘그건 너희가 할 일 아닌가?’ 고개만 절래절래 흔든다. 쌍말로 뭣 같은 놈이다. 서로 연락도 잘 안 되는 모양이다. Bulgaria Fruit Export에서 나온 젊은 친구는 또 전날과 다른 소릴 지꺼린다. 갈피를 못 잡는다. 아직도 10여일은 더 걸린다는 것이 비공식적인 소식이다. 밤톨만한 사과, 흙덩이가 덕지덕지 묻기도 한 것을 들었다 놓기만 해도 부서질 엉성한 상자에 담아 수출이라고 한다. 50년대 내 손으로 만들어 넣던 사과 상자보다 못하다. 역시 같은 사회주의 나라끼리 求償貿易品인 모양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선박만 불러들이는 것을 보면 사는 쪽이나 파는 쪽이나 피장파장이다. 결국 선박을 빌려준 일본놈들만 손 안 데고 코푸는 격이다. 그들이야 시간만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 사이에서 땀 흘리며 재주만 넘는 것이 바로 내가 아닌가 싶다. 오후부터 바람이 거세진다. 방파제를 뛰어 넘어 물보라가 휘날려 온다. 대륙으로 둘러 쌓인 Black Sea도 역시 거대한 바다임에 틀림없다. 성큼성큼 낮의 길이가 짧아져 온다. 하루 만보 걷기를 재개함으로 생활의 리듬에 생기와 Tone를 붙여 나가본다. 내일은 다시 해가 뜰테니까.
Sep/22(화) :
어제에 이어 계속 바람에 날씨마져 쌀쌀해진다. 북녘의 겨울은 이렇게 해서 후딱 닥아오는가 보다. 운송 온도에 대한 답신이 왔다. 섭씨 0-2도랜다. Burgas 이후 두 번째 양하를 위해서 같은 발칸반도에 있는 Albania의 Durres로 가랬다. 참 제기랄이다. 갈수록 태산이군. 거기서 900톤의 사과를 싣는다나. NYK에 연락, Tonichi에도 알려달라고 했다. 대아나 집에서는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만약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있는 곳이나 알고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럼에도 이곳에선 ETD를 아는 놈이 없다. 할 수없이 Cuflet Varna에 직접 문의하기로 했다.
그저께 어제 연이틀 걸은 탓인가 허리가 다시 아프다. 아직도 움직이면 안 된다는 말인가? 참 죽을 맛이군. 어쩌면 9-10월이 내게는 잔인한 달인지도 모르겠다. 걷기와 글씨는 내게 더없이 좋은 정신건강 慰安劑인데-. 그 한 길이 막힌 것이 더욱 생활을 짜증스럽고 고통스럽게 한다. 이놈의 9월이 언제 가려나?
토스토에프스키의 아내 안나도스토에프스키가 쓴 ‘더 높은 곳을 향하여’를 읽다. 한 여자의 힘이 얼마큼 위대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녀가 없었드라면 그 불후의 명작을 남긴 작가는 도중에서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과 인내, 희생이 감동스럽다. 진정 내 아내도 내가 먼저 진실로 사랑하고 아껴줌으로 올바르고 참된 사랑을 되돌려 받게 되는 것이다.
Sep/23(수) :
추분이다. 티 한 점 없이 청명한 날씨가 날카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다. 오늘이 지나면 밤이 술렁술렁 길어지겠군. Agent 사무실을 방문해 보았다. 황량하다. 기대해 볼 건덕지도 없다. 다시 두문불출. 이젠 허리가 완전해질 때까지 쉬어야겠다. 진짜 꿀 2병을 사다. 이곳의 유일한 특산품이랬다.
Sep/25(금) :
그제 어제 이틀 직접 Agent 사무실에 갔다. 설렁한 분위기는 여전하다. Mr. Mihailov 녀석은 코끝도 안 보인다만 Telex는 순조롭게 간다. ETD가 26-27일로 거의 정해져 가는 모양이다. Istanbul Agent와의 연락도 직접 하라니 참 기막힌 곳이다. 그래도 Agent Charge는 모두 받아 챙길 것 아닌가. 물론 그게 개인이나 회사의 수입이 아니고 국가의 몫이긴 해도-. 넉살좋게 걱정 말라며 녀석들이 얘기하지만 도통 믿음이 가지 않는다.
2/O와 OS-2가 부탁한 약은 부득이 Telex로 Istanbul 대리점에 수배해야겠다만 역시 불확실하다. Albania의 국기와 B.A Chart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여기보다야 형편이 나을테지. 계속 꼼짝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기분 나쁘리만큼 더디게 풀린다. 이 놈의 허리가-. 그것 하나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앗기고 생활이 어긋나고 있다. 역시 사람의 中樞가 중요함을 절감한다. 어제부터 All Night 한다더니만 오늘은 또 Cargo가 없단다. 결국 27일로 미루질 공산이 크다만 어서 뜨고 싶다. 우선 정신적인 긴장에서 벗어나고 싶다. 편지도 보내야 할 텐데-.
Sep/27(일) :
어제 오후부터 갈팡질팡이다. 화물이 있다 없다, 출항이 오늘이다 내일이다 통 종잡을 수가 없더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오늘 밤중에 떠나란다. 설마를 믿지 않고 선원들의 상륙을 금지하고 잡아 둔 것이 천만다행. 자정에 떴다. 우선 속부터 시원하다.
아침나절에 Bosporus 해협을, 오후에 Daradanills Strait를 항과했다. 도중에 방선한 Agent에게 해도와 Flag는 받았으나 선원들의 약은 끝내 받지 못했다. 속박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출항시 왔던 4명의 관리들이 끝내 질질 끌더니 담배를 가져간다. 그래도 낮짝이 있어서 그런지 고맙다는 말한 마디 없이 오히려 목에 힘을 주며 당연한 일처럼 구는 꼴이 더욱 가증스럽다만 없으니 도리없지 않은가. 내가 이해하자.
Albania는 또 어떨는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의 하나라고 알고 있다. 온통 먼지와 때가 온 배에 덕지덕지 묻었다. 내일쯤 확 씻어 내자. 특수지역이고 나발이고 이래서야 될 일이 아니다. POB 2개월분을 지급하다. 할 때마다 치솟는 분노와 모멸감, 알 수 없는 心源에서 생겨나는 듯하다. 좀 더 넉넉한 환경과 처지는 언제 오려나?
Sep/29(화) :
07:30 Durres Road 도착. 투묘했다. 열 두어척이 기다린다. 오후에 Agent와 Boarding Officer들이 승선. 역시 별로 까다롭지는 않다만 어딘가 가식적인 체면 같은 것이 있다. 얘기로 봐서는 생각보다 일찍 끝날 것도 같다만 -. 앉은자리에서 줄담배로 4-5개비 피우고 주는 것은 죄다 먹고 간다. 가지고 가지는 못하는 모양? 궁상스러움이 질질 흐른다. 그러나 어딘가 사람들은 순진해 보이기도 한다.
Tally를 본선에서 하란다. 그것도 Letter로서 보고 하라니 이색적이다. 전체 인구 300만에 가장 큰 항구인 이곳 Durres가 약 18,000 정도라니 Mini country란 감이 든다. 내일 접안이랬다. 잘 되야 할텐데.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도 생활도 멈추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집에 전화한지 겨우 20여일인데 무척도 오래된 기분이다. 아직도 한 달은 더 있어야 다시 할 수 있을 텐데. 염려가 따른다.
Oct/01(목) :
10월! 날씨가 쌀쌀해져간다. Deck에서 귀뚜라미 우는소리가 들린다. 이놈의 벌레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지 소리가 똑같군. 어제는 종일 비가 뿌리더니 오늘은 청명한 상현달이 두둥실 떠오른다. 추석이 한 주일 가량 남았군. 3일째 Waiting이다. 여전히 접안 계획이 없댄다. 입항 당일 Agent가 말한 ‘내일 접안’은 그냥 해본 소린 모양이다. 지중해로 들어온지 한 달이 넘었군. 너무 오래 걸린다. 왼쪽 허리가 계속 결린다. 이틀간 좀 무리한 듯 했는데 -. 미치겠다. 어찌 이래 오래가는가. 건강을 유지하는데도 정신적인 피로를 느낀다. 아마도 이번 항차 마칠 때까지는 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겠다. 아무튼 속히 속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식량 재고도 문제가 되어온다. 겹친 휴일, 행사, 입시, 관광철 등 무척 바쁠거야, Wife도-. 몸과 마음이 바쁜 가운데서도 건강하고 밝아야 하는데-. 보고 싶다. 무척이나. 또 물밑의 고기들만 죽사발 나다. 모처럼 싱싱한 회를 먹는 것도 별미다. 할 일은 없고 유일한 소일거리가 낚시다.
Oct/02 (금) :
Cuflet에서 Canada 행을 위한 Data를 요구하는 Telex가 있었다. Seed Potato(씨감자)를 St. Jhon에서 싣는다면 얼마나 실을 수 있냐는 내용이다. 약 1000톤의 Free Space가 있다고 답신을 했지만 새끼들 좀 더 일찍 알려주질 않고-. 오후 늦게는 Yusentrjjj에서 다시 USD2000을 수배했다는 Telex도 있었다. 원참 도시 어떻게 돌아가는지 저들이나 나나 깜깜한 형편이긴 마찬가지다.
Owner측 Tonichi에서 Complain이 있더니 그게 그거로군. 생각해주는 것은 고맙다만-. 내일 아니면 모래쯤 접안 예정이라지만 잘 될란지?
Canada행이 중간에 끼이면 우선 숨통은 다소 트이겠다. 주부식도 그렇고 선원들의 상륙으로 위로를 받을 수도, 편지도 전화 등등이 그렇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만 실현성 여부가 문제다. 사전계획이 없이 그저 임시방편적이다. 불시에 바뀌고 정해지고 가라마라 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늘 비상출동 기다리는 소방수처럼 오줌 눌 시간이 없다. NYK에 Chart 2장을 의뢰했다만 잘 될는지-. 좀 더 차분하자. Telex 한 뒤에 Mistaken한 것을 발견하는 수가 있지 않은가. 적하가 시작되고서도 한 주일은 걸린다니 아득하군.
Oct/05(월) :
7일째 Waiting이다. ‘내일’이 결국 이렇게 됐다. 기다리다 지친 ‘동백아가씨’다. 여전히 소식조차 감감한 체. 햇살이 도타워지고 하늘이 높아가니 완연한 가을이다. 단풍을 본지 오래다. Deck 위에서 요란스레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가 더 한층 처량스레 들린다. 모레가 추석인데 식량(특히 채소)도 식수도 차츰 줄어져 간다. 사람 사는 곳에 먹을 것이 없겠냐마는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며 있어도 정해진 한도를 넘을 수 없는 제약이 가로놓여 있다. 속히 Canada라도 갔으면 좋으련만-. 900톤의 사과를 싣기 위해 15일을 허비한다면 밥 팔아 똥 사먹는 장사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한 것이 사회주의 사회가 아닌가. Agent도 오도가도 않는다. Bond도 Open 해야 하는데-. 그냥 매일의 날들이 죽어가는 느낌이다. 마치 정글속의 깊은 늪에 빠진 체 헤어나지 못하는 짐승처럼. 자신도 세상의 모든 움직임도 잃어가고 있다. 바로 절해의 고도 그것이다. 이럴 때 가장 정신이 메마르고 머리가 텅텅 비어져 간다. 바보가 돼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孤立. 삭막, 孤寂 이것들을 이겨내는 것은 자신의 의지뿐이리라.
Oct/06(화) :
09:00에 온다던 Pilot가 10:20시나 되어서야 나타난다. 11:20시에 접안. 그러나 광석전용부두다. 석탄 때문에 온통 바닥이 검다. 비가 오지 않으면 보나마나 검은 석탄가루와 먼지에 모든 것이 함몰되어 버릴 것만 같다. 당초 900톤보다 많은 1125톤 예정에 약 8일 잡는다. Manbi Cu.에서는 Canada의 St. Jhon행이 Fix.됐다고 했다. 그러면 Free Space가 800여톤 뿐임을 Tlx했다. 나중에 또 무슨 소릴 할는지 미리 입막음해 주는 것이다. NYK에게는 그쪽 Agent의 Full Style까지 곁들여서 보냈다. 필요한 Chart는 Gibraltar에서 Supply하도록 수배했다고 한다. 잘 된 일이다. 여러 놈이 다녀갔다. 그저 입만 가져 다닌다. 담배, 맥주, 쥬스 주는대로 걸신들린 것처럼 빨고 털어 넣는다. 사람들의 차림새에서 가난이 덕지덕지 묻었음을 알 수 있다. 코렐라 예방주사. 세관, 청수보급 등 수배하는 되로 잘 해주긴는 한다만 바로 그 자리에서 Voucher를 그것도 USD로 가격이 명시된 것을 만들로고 Sign를 요구한다. Dollar가 부족한 사회주의 나라들의 공통된 것 중의 하나, 즉 달러를 받을 수 있을 때 사정없이 받아내게 하는 것이다. 불가리아의 사과보다 낫다고 했으나 내가 보긴 그게 그거다. 아직 하역설비도 능률도 요령도 까마득하다. 4종류를 분류해서 적하한다면서 뒤죽박죽으로 섞여서 올라온다. 아무래도 한 열흘은 잡아야 할 것 같다. 우선은 시작했으니 끝장이 있겠지. 그저 세월이 시간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Oct/07(수) :
추석이다. 아침부터 꽉 끼인 짙은 구름. 오늘 보름달 보긴 튼 듯. 이제 겨우 129톤 했단다. 10시부터 재개한다는 작업이 종일 한 트럭밖에 못했다. 200km 떨어진 곳에서 기차로 운반해 오는데 12시간 이상 걸린단다. ‘걸어오냐?’. Shipchandler가 왔다. 아무래도 야채는 조금이나마 보충해야할 것 같아서다. Cuba 대사관 직원 2명 그리고 Burgas에서도 왔던 검둥이 Surveyor란 녀석도 왔다. 작업이 늦어진 이유를 나한테 캐묻는다. 저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가? “내가 알 수가 있나 그걸. 너희들 Agent아니냐. 직접 물어보시오”. 80년도 이락의 Basra에서의 악몽이 되살아 난다만 사회주의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기에 늘 묵은 때처럼 지워지지 않고 남은 앙금이다. Mami Cu.에서 다시 연락. 결국 Canada행은 취소한다는 것이다. 바로 어제 Fix 했었는데-. 먹는 것에 대한 염려가 다시 일어난다. 과연 Cuba의 Havana에서 마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Canada 기항이 유일한 희망이고 숨통이었는데 그것이 단숨에 끊긴 것이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개 보름 쉬듯 넘기는 추석이다. 좃도 씨팔놈의 것. 욕이 저절로 난다. 추석이라고 몇 가지의 별미가 상위에 올랐으나 맛도 없고 입맛도 당기지 않는다. 생각 외로 저녁에 구름사이를 비집고 나온 둥글고 훤한 보름달이 마음을 더욱 처량하고 쓸쓸하게 한다. 이미 내 고향을 비취 주고 여기 왔으리다. 그 속에서 아내와 얘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찾고 비춰본다. 몇 해째 걸러고 있는지 헤아림조차 모르겠다. 3-4년은 족히 됐을 것이다. 인간의 삶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에 갇힌 들짐승처럼 서성이고 답답해하는 선원들도 안스럽다. 상륙이라도 할 수 있으면 이 상한 객고가 다소남아 풀어질 수 있을 것인데 어떻게 된 셈인지 이놈의 나라는 철조망 안에 있는 Seaman's Club 이외는 외국인으로서는 상육이 금지된단다. 그 나마 Club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선・기관장을 포함한 Saloon Class로 제한한다. 땅을 곁에 두고도 밟지 못하는 이 서글픈 현실이 더욱 난감한 명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야! 이 친구들아 마음을 다스려라. 우선은 그 길이 최선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겐-” 마치 道 닦는 지체 높은 스님 같은 말이 귀에 들어 갈것인가? 억지로라도 공자 같은 성인은 못 되도 쬐금이라도 닮지 않으면 미쳐버린다.
‘호즈미 다카노부’씨의 저서인 ‘철없는 내 딸’을 읽다. 발간 7개월만에 265판을 기록했을 만한 책이다. 요즘 같은 일본사회에서-. 그러나 그러한 노력과 과정에는 올바른 사회기능, 상식이 통하는 사회 분위기 등의 여건이 형성되어야만 한다.
‘부모란 자기 멋데로다. 아플 때는 오직 몸만 건강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건강하면 또 그 보다 더 한 것을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의 욕심이다. 순수한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은 건강하게만 있어주면- 하는 자세로 일관한다는 것’
‘어쨌든 가정을 만들어 주세요. 필요한 가정을 -’
‘아이들의 문제는 어머니의 문제이고 어머니의 문제는 아버지의 문제이다, 아버지의 자세가 중요하다.’
결국 문제아의 원인은 문제의 부모에게 있으므로 그 치료를 아이한테 두는 것이 아니고 부모들의 자세(마음의 자세)에다 두고 행해야 한다는 심리감별기사 ‘다께에’씨의 이론에 공감을 갖는다. 어머니의 문제는 곧 아버지 때문이라면 나는 빵점이다. 참으로 죽을 쑤는군. 원서를 구해 읽었으면 좋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