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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 : 스님 평상심(平常心)이란 무엇입니까? 答 : 평상심이라는 것은 일체의 추번뇌·세번뇌(序·細煩惱) 가 항복 받은 상태에서 바로 쓰는 것, 다시 말하면 추 번뇌, 세번뇌의 장애를 받지 않고 직관하는 그곳에서 용심(用心)이 나오는 것, 그것이 참으로〈평상심〉이다. 중 생들의 추번뇌, 세번뇌에서 나오는 것은 망상심에서 나타나는 평상심이니 망식 평상심이고 전자는 순수한 평상심을 말하는 것이다. 問 : 배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자고 목마르면 물 마시는 것이 평상심(平常心)입니까? 答 : 일체 번뇌가 없이 순수하게 추번뇌, 세번뇌의 끄달림 을 받지 않고 용심(用心)을 나타내는 것, 이것을 일러 <평상심이 도(道)>라 한다. 問 : 육도윤회(六道輪廻)는 무엇입니까? 答 : 생각이 자꾸 소용돌이치고 생각이 자주 바뀌는 것이 윤 회다. 부처님께서는 윤회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 것을 정지시킬 때 본연 도리가 나타난다고 말씀하셨고 윤회 가운데도 고와 낙의 상반된 것을 초월해서 사는 방법 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問 : <생사가 둘이 아니다>라는 것은 번뇌가 쉬기만 하면 윤회가 없기 때문에 생사가 없다 하는 것입니까? 答 : 윤회에 끄달리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問 : 깨닫고 나면 생각 작용이 없는 것입니까? 答 : 중생의 망식(妄識)은 티끌도 없는 것이다. 망식 그대로 보리(菩提)가 되는 것이다. 問 : 깨달은 사람의 생각과 깨닫지 못한 사람의 망식으로 뛰는 생각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까? 答 : 말로 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억지로 비유한다면 탁 한 물을 증발시켜서 수증기가 되었다면 탁수하고 수 증기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수증기는 혈관에 넣어도 되고 탁수는 입에만 넣어도 설사가 된다. 엉뚱한 소견 에 떨 어질까 봐 억지로 비유하는 것이지만 그것도 부족 하고 맞지 않는 것이다. 問 : 불교의 삼법인(三法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 입니까? 答 : 다 똑같다. 제법무아, 열반적정, 제행무상은 모두가 다 같은 말이고, 다만 표현만 달리한 것일 뿐이다. 問 : 욕심과 탐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答 :〈욕심〉이라는 것은 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탐심〉 이라는 것은 탁한 경계를 말한 것이다. 욕심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땅에 엎어져있는 사람이 땅을 짚고 일 어서는 것에 쓰는 것이다. 부처님법은 욕심도 붙지 않 는 경계다. 지금의 하고자 하는 번뇌는 모두 항복 받 아야 하니까 탐심이 욕심에 속하지만 탁하고 덜 탁하 고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問 : 소유욕이란 무엇입니까? 答 : 가지고 있는 생각을 소유욕이라 한다. 그래서 수행을 하면 소유욕에서 천천히 멀어지는데, 가지고 있되 가 지고 있다는 집착이 멀어진다. 問 : 소유욕과 탐심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答 : 수행에 따라 다르다. 수행이 깊어지면 탐심이 자꾸 멀어진다. 하고자 하는 욕심까지도 같이 멀어진다. 나 중에 가서는 용심(用心)이 확 변할 때 하고자 하는 그것은 전혀 없고 도(道)의 용심(用心)으로 변한다. 그 러나 겉으로 쓰는 것은 <하고자 하는 작용>으로 보 이지만 전혀 다르다. 問 : 불교를 믿는 입장과는 다르게 기독교에선 자기들이 제 일이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答 : 제일인 까닭과 이유를 제시해야 하는데 분명한 것이 없어서 제시하지 못한다. 어느 외도(外道)든 간에 수승 한 것은 수승한 것인데 제시할 것이 없어 못한다. 問 : 기독교인이〈십일조〉를 바쳐 얻는 복력은 어떠합니까? 答 : 기독교의 칭찬할 점은 십일조를 받쳐서 많은 사람들에 게 이익을 주는 것인데 그만큼 복을 받게 된다. 하느 님을 믿거나 예수님을 믿어서가 아니라 누구든 많은 중 생들에게 이익된 일을 하니 복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 이다 . 불법을 믿거나 어느 것을 믿거나 인과법칙에 의 한 댓가이다. 인간성은 하락하는데 그에 비해서 복력은 증가할 수 있는 현상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뿌리를 흔들리게 하며 예의 도덕이 땅에 떨어지게 하고 있다. 問 : 금강경에 사상(四相)을 버리라 하는데 세속에 살면서 그럴 수가 있습니까? 答 : 정진해서 정(定) 속에서 살면 능히 응용해서 똑바로 지혜를 가지고 앞서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問 : 견성해야만이 사상(四相)을 여의는 것 아닙니까? 答 :그렇지! 견성해야 사상을 여의지. 정진한 지혜의 힘 으로 막 끌고 나갈 수 있는데 왜 못살아, 더 잘 살지, 멋지게 살지! 問 : 아상(我相)의 뜻은 무엇입니까? 答 : 번뇌에 끄달려 사는 것을 아상이라 한다. 問 : 인상(人相)은 무엇입니까? 答 : 인상도 마찬가지다. 아상은 전오식(前五識)이 되고 인상 은 6식(6識)이고 중생상은 칠식(七識)이고 수자상(壽者 相)은 팔식(八識)이다. 問 : 정진할 때 망상을 분석하여 보면 과거 흘러간 망상이 많이 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단속할 수 있겠습니까? 答 : 화두타파 전에는 간간히 화두의정 사이에 끼어 들어오 는 것은 어쩔수 없는 현상이다. 問 : 대신심이란 무엇입니까? 答 : 한번 좌선을 할 때 수미산처럼 움직일 줄 모르고 오직 불조(佛祖)의 정진력을 본받아 정진하는 것이 대신심이 다. 그러나 진정한 대신심은 견성을 해야 대신심이라 할 수 있다. 問 : 대분심이란? 答 : 부모 죽인 원수처럼 분한 마음을 가지고, 영겁의 생사에 윤회하여 왔는데 바른 법, 바른 선지식을 만나고도 허 송세월 한 것을 분하게 마음먹고 불퇴전의 마음으로 정 진하는 것이다. 問 : 대의정이란? 答 : 어두운 땅에 한 조각 밝은 빛을 향하는 것과 같이, 항아 리 가운데 달아나는 자라를 두러워 하지 않는 것과 같 이 망상이 일어나도 그대로 내버려두고 화두만 바르게 참구해 가는 것이다. 問 : 진언(眞言)은 타력이며 가피를 받는다는데……. 答 : 진언이라도 일심으로 열심히 하면 가피를 입게 되는데 하다 중단하기 때문에 별 효험이 없다. 問 : 법문하는 법이 있습니까? 答 : 항상 근본 진리 자리를 먼저 말하고 나중에 사변지(事 辨智)를 말할 것. 問 : 화두가 깊이 안 들어가는 것은? 答 :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問 : 지도층에 있는 40대 이상 수좌스님의 행동은? 答 : 1) 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만큼만 말할 것. 2) 법에 대한 것을 함부로 말을 할 경우, 경계가 드러나 면 중생이 얕볼 수도 있다. 3) 자기 정진만 열심히 하고 모두에게 노력하는 것만 보이면 된다. 4) 막행 막식은 절대 금물. 問 : 선지식이 수좌를 다루는 것이 쉬운가, 아니면 속인 참선 하는 사람을 다루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答 : 수좌는 속인보다 다루기가 어렵다. 그것은 각자 고집이 있어서……. 問 : 남자, 여자의 태어남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答 : 남자, 여자의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 사를 익힌 업에 따라서 여자를 좋아하면 남자로 태어나 고, 남자를 원하면 여자로 태어난다. 어머니를 탐하면 남 자로, 아버지를 탐하면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다. 얼른 되 는 것이 아니라 늘 익혀온 것이라 자기의 관념이 들어야 하고 업도 익혀야 된다. 시험준비도 안 하고 별안간 시 험장에 가서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는가? 問 :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란 무엇입니까? 答 :〈상구보리〉는 자기가 먼저 깨달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고, 그 노력한 만큼 남에게 알려주는 것이〈하화중생〉 이다. 問 : 자기 정진보다 이 시대에는 포교부터 해서 중생구제를 해야 한다는데 옳은 말입니까? 答 : 그것도 치우친 말이다. 자기가 아는 것만큼 남에게 전해 주고 자기도 열심히 정진(精進)해 가면서 교화한다는 그런 사상을 가져야 한다. 問 : 진짜 보리를 구한다면 그것이 바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 인데, 사람이 억지로 치우쳐 중생을 구하려고 하니까 또다른 중생을 교화하려는 목적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答 : 그건 네 말이 옳다. 원칙은 자기가 할 일 하는 것이〈상 구보리 하화중생〉하는 것이지. 그러면 그대로 그 영향 을 미칠 수 있다. 자기가 전단향을 만들면 그만큼 그 향내를 피우게 되는 것과 같이 그것이 참으로 보살행을 하 는 것이다. 問 : 옛날에는 선방 수좌스님이 어느 정도의 수행을 하고 40 세가 넘어서는 인연 따라 포교를 맡는데 요즘에는 20· 30대 혈기가 넘치는 젊은 스님들이 자기 정진할 시간을 빼앗기면서도 포교에 힘을 쓰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 까? 答 : 고래(古來)로 그렇게 해왔지만 요사이 외도들이 범람하 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방어해야 되는데 이 문제가 크 다. 앞으로는 수행에 장애까지 들어오는 시기가 되기 때문에 이것부터 방어하는 것이 급선무다. 적이 쳐들어 왔을 때 서산(西山)스님이 왜적을 방어했듯이 지금 그 런 사태다. 방어해가면서 수행을 열심히 할 분은 하고, 서산스님 당시에도 산중(山中)에서 열심히 수행해가면 서 기도하고 그런 스님 몇을 제외하고 전부 나와서 대 치했는데 지금도 그런 시절이다. 그러니까 젊은 포교사 들이 주장하는 것도 합당한 일이다. 언제든지 시국에 따라서 표현하는 것이 다. 問 : 세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답게 사는 것입니까? 答 : 팔정도를 의지해서 <어떻게 하면 바로 살 것인가>하 고 바른 목표를 세우고 바른 가치관을 세우는 것이다. 바르면 바로 자기 마음과 계합할 것이니까, 바른 데다 가치관을 두고 바른 것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 하는 것이고 그러다가 바른 데 계합하는 것이 도통이 다. 바른 것을 아는 것이 도(道)다. 問 : 참선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수행자 같은 경우엔 선지식의 말씀을 가장 중요시하겠 지만 세속적인 경우엔 어떠합니까? 答 : 계는 지키는 것만큼 이익을 얻는 것이다. 계는 조도품 (助道品)이니까 철저히 지키는 것만큼 수확을 얻는 것 이다. 등한히 하면 그만치 노력의 수확을 덜 얻게 된다.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계를〈사다리〉라고까지 말씀하 셨 다. 問 : 출가자와 재가자의 수행하는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答 : 출가해서 수행하는 것은 일도양단해서 용맹심을 내는 것과 같고 재가자들은 그 다음의 역할로 전방군인과 후 방군인의 비유를 할 수 있다. 전방군인은 조금의 흐트 러짐이 없이 번뇌망상과 화두타파의 승리를 해야하고 후방 군인은 여유가 조금 있다. 부부생활하는 데 있어서 두 내외가 다 신심이 있다면 별문제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정을 이루는 주인들이니까 상대방의 뜻을 맞추는 것 이 불자들의 사명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정불화가 일어나고 가 정불화가 일어나면 이웃에서 그것을 알고 <불법은 그런 것이구나>하고 모두의 복을 감하는 원 인이 된다. 재가 신도는 첫째 부부생활 하는 것이 주 (主)가 되니까 부인의 경우에는, 남편의 뜻이라면 더 받 들고 그 여가에 정진 을 해도 능히 해마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조도품(助道品)이 되는데 남편의 뜻을 거슬리면 그것이 불화가 돼서 공부 에도 장애가 오고 이웃에도 장 애가 되어 불법을 망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가정의 불 화가 절에까지도 영향이 미쳐 서 이웃 사람까지도 불법 을 멀리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박복해지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재가 수행인을 후방군인이 라 한다. ※ 참선법을 만난 젊은 사람들이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자기의 진로 문제인데, 만나기 어려운 참선법을 만나서 출가하면 문제가 안 되는데 재가로 있으면 결혼을 해야하고, 결혼을 하면 어떤 사람과 만나야 하느냐가 근심거리인데 위 말씀으로 답이 되는 줄 알겠습니다. 問 : 스님께선 재가자의 독신(獨身)생활을 어떻게 보고 계십 니까? 答 : <수행을 한다> 하고 재가에서 독신으로 있으려면 출 가를 해야 되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못쓰는 정신이 다. 재가에 있으면 결혼을 하고 부부생활을 잘 해나가 는 것이 재가제자의 사명이다. 問 : 출가하는데 근본적인 연령의 제한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점에 대한 의견은 어떠합니까? 答 : 고래(古來)로 제한은 없었지만 요즘은 제한이 있는 것으 로 안다. 問 : 출가는 인연 따라 찾아가야 합니까, 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겠습니까? 答 : 첫째 해인사, 송광사 같은 총림이나 큰 회중에서 먼저 습의를 익혀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독살이 암자〉 같 은 데서 물이 들면 삿된 데로 빠질 수도 있다. 불법 중 에도 정법(正法)이 있는데 참선하는 수행정법 도량으로 가 서 행자 생활을 여법하게 하는 것이 낫다. 첫 입문(入門)이 중요한 것이다. 問 : 총림이나 큰 사찰이 아니고 인물중심(人物中心)으로 선 지식을 찾아가는 것은 어떠합니까? 答 : 어른이 계시는 곳이면 직접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으니 더 좋은 것이다. 問 : 꿈과 잠의 차이는 어떠합니까? 答 : 꿈이라는 것은 팔식(八識) 작용이 잠재해 있다가 자기 생각이 더해져서 나타나는 것이 꿈이다. 잠이라는 것도 기관이 쉬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問 : 정진을 많이 하면 꿈도 잠도 없어지고 화두만 일여(一 如)하다는데 어떻습니까? 答 : 꿈도 잠도 없어진다는 것은 망상에서 꾸는 꿈이 없 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타나는 첫 경계가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숙면을 취하기 때문에 꿈이 없어지는 것 이고 생각이 쉬어 들어가면 꿈이 없어진다. 問 : 수행자는 잠을 몇 시간 자야 합니까? 答 : 건강에 따라서 자야 한다. 많이 잘 필요는 없고 건강한 사람 기준 하여 6시간을 표준으로, 증감하면 된다. 젊은 출가자는 3∼4시간 자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問 : 잠도 하나의 습관입니까? 答 : 육신이 여우같아서 잠을 자면 자주 더 자고 싶어하니 습관화해야 한다. 問 : 재가자와 출가자가 제일 가려야 할 음식은 무엇입니까? 答 : 담배, 술은 안 하는 것이 좋고, 건강에 따라서 보존하는 것이 좋다. 출가자는 채식만 하는 것이 좋고, 재가자는 음식을 가리면 살기가 불편하고 공기도 나쁘고 하니 까……. 問 : 성욕(性慾)이란 어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答 : 다겁생래 익힌 습관 가운데 제일 깊이 박힌 것이기 때 문에 제일 어려운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그런 경계가 둘만 되어도 성불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다. 問 : 술은 왜 나쁜 것입니까? 答 : 망령된 과실, 과오를 범하는 소재, 즉 모든 불화를 조성 하고 화합하지 않는 요소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 서 술 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생에 멍청이(石頭)가 되어서 나오는 과보를 받는다. 술기운은 깨끗한 정신을 흐 려 놓기 때문에 수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된다. 問 : 이즉돈오 사비돈제(理卽頓悟 事非頓除), <이치로는 몰 록 깨쳤어도 습기(習氣)는 몰록 제(除)하지 못했다> 하 는데 어디까지가〈이즉돈오〉입니까? 答 : 참으로 이치를 깨달았다는 것은 최상승문(最上乘門)에서 는 확철대오를〈이즉돈오〉라 하고〈사비돈제〉는 거기 에 대해서 습을 녹여 가는 것이고, 확철대오를 했으면 최상승 화두법을 익혀 가지고 그 근본을 항상 여의지 않 는 관은 분명하나 아직 그것이 밀밀(密密)하지 않아 서 신통이 나지 않은 경지 즉, 신통이 나게 하는 보림 경지를〈 사비돈제〉라 한다. 최상승선에서〈돈오보림〉 의 경지를 점수(漸修) 라 하기도 하고〈사비돈제〉라 하기도 한다. 問 : 화두의심은 3일 또는 1주일만에 깨달을 수 있다고 하 는데 그것은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까? 단위를 말하는 것입니까? 答 : 시간적으로 1주일 안에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일 주 일을 넘으면 거기서 힘을 얻는 고비다. 사람이 태에 들 어 가서도 1주일만의 변동이 가장 크고 또 수행인이 모두 겪고 느끼는 그 경로와 굴곡에 대한 숫자가 7일이 라는 것이 명확한 것이다. 問 : 낮에는 화두가 잘 잡히는데 몽중(夢中)에는 잘 잡히지 않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答 : 더 열심히 하다보면 꿈 가운데도 잘된다. 아직 덜 익어 서 그렇다. 問 :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수행자는 화두만을 전력으로 들 어 화두정(話頭定)에 들어가야 합니까? 答 : 화두가 두동강 나면 안 되니까〈화두정〉에 무릇 익어 서 들어가는 것을 의심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따로 의 심이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전체가 의심이니까, 따로 의심이라 할 것이 없는 것 ― 그것을〈화두정〉이라 한 다. 問 : 화두에 대한 의심은 수행자들의 생명입니까? 答 : 근본생명이다. 의심이 없으면 안 되는데 그것이 제일 가 까운 표현이다. 問 : 몸의 기(氣)와 혈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答 : 기(氣)란 혈을 돌릴 수 있는 기운을 말하고 신의(神醫) 들은 혈 돌아가는 것을 알고 옛 한의(韓醫)들은 침을 의지하여 기(氣) 돌아가는 것을 안다. 기운은 혈을 돌리 게 하는 힘을 말한다. 問 : 사후(死後)에도 외도(外道)들은 기(氣)만 남는다 하는데 어떻습니까? 答 : 그건 자기들의 이름이지 불가(佛家)에서는 팔식(八識), 잠재해 있는 의식, 버릇만 남는다 한다. 問 : 죽는다는 것은 슬픈 것입니까? 答 : 죽음을 모르니까 슬픈 것이다.(망식으로 미쳐서 슬프게 느끼는 것이다.) 問 : 닦은 것만큼 죽어서도 간직합니까? 答 : 그렇지. 그대로 나타난다. 관상이 초년부터 나타나는 것 이 그것이다. 겉모습이 좋으면 마음도 좋은 것인데 잘 볼 줄 몰라서 그렇다. 고집도 나타나는데 자기 생각으 로 치우쳐 보여서 그렇다. 그것을 아상(我相)이라 한다. 問 : 근기(根機)가 하열한 사람들이 행자 생활이 힘들어 처음 마음먹은 길(도를 이루겠다는 것)을 버리고 하산하려 할 때는 어떻게 지도해야 하겠습니까? 答 :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르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다. 첫째는 그 사람의 근기를 파악하지 못해서 잘못 다뤄서 나가는 것이고, 둘째는 그릇이 모자라고 인내를 못해서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수승한 근기가 들어와서 절집안 돌아가 는 것 을 보고 낙심하고 나가는 수도 있는데 그럴 때 안 타깝다. 問 : 출가를 하고 계를 받게 되면 은사를 정하고 강원으로 가든지 선방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스님은 강원을 원하 십니까, 선방을 원하십니까? 법도대로 어느 단계를 밟 는 것이 좋겠습니까? 答 : 처음 들어와서는 선의 사상을 주입시키고 그 다음에 강 원을 거치는 것이 앞으로는 좋을 것 같다. 선(禪)부터 배운 다음 부처님 교(敎)의 뜻으로 들어가는 것이 흔들 림이 없는 사상이 될 것이다. 問 : 초보자가 입문하여 수행하려 할 때 어떤 경전이나 어록 을 좌우명으로 권하시겠습니까? 答 :《선가귀감(禪家龜鑑)》을 먼저 오십독(五十讀)하고《지 장경》을 읽게 하며 신도들은 반대로《지장경을》먼저 읽게 하고《선가귀감》을 보게 하는데 그 사상의 바탕 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육조단경》을 권하 겠다. 問 : 참선 수행자가 선방을 두루 거쳐 소임을 사는 것과 자 세와 그 역할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答 : 그 문제는 아주 어려운 문제인데 수행한 사람이라야 수 행한 사람의 입장을 알아서 삼직(三職)을 잘 볼 수 있는 데 수행하지 않은 사람이 맡으면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를 모르기 때문에 곤란하다. 그러기 때문에 사무 보 는 일만을 한 사람은 수행한 사람을 시봉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옛부터 사판(事判), 이판(理判)이 벌어지는 것이 다. 수행 한 사람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도저히 맞춰나 갈 도리가 없고 그러므로 스스로 수행해 나가야지만이 삼직을 살아도 맞춰서 잘 살 수 있는 참다운 삼직자가 되는 것이다. 問 : 말세에는 신통력을 갖춘 도인은 왜 없습니까? 答 : 부처님 말귀를 알아듣는 도인은 많으나, 세속 사람들이 원하는 신통을 자유롭게 나타내는 도인이 산중(山中)에 는 숨어 계신지 몰라도 나타나지 않으니까 도인이 없다 하는데, 그것은 부처님 말귀를 알아들은 다음에 그런 신통이 나야 되기 때문이고 또 신통이 나더라도 함부로 써먹는 것이 아니라 외도(外道)를 만났을 때 항복 받으 려고 써먹는 것이다. 問 :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인(道人)이라는 개념은 불가에서 견성(見性)해야 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答 : 견성해야 도인이고 마음 깨달은 것이 도인이다. 問 : 수행(修行)하는데 가장 중요(重要)한 것은 스스로를 의 지해야 된다는데 선지식과 스승의 개념 차이는 어떤 것 입니까? 答 : 통털어 외도도 스승이라고 하고 불가(佛家)에서는 선지 식(善知識)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선지식이나 스승의 근본 뜻은 같다. 問 : 선지식을 만나지 않고는 억겁의 생사윤회를 면치 못한 다는데 선지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십오. 答 : 불가의 선지식이란 뜻은 깊다. 禪이라 하는 것은 생사 (生死)가 없는 경지를 터득한 용(用)을, 다시 말하면 여 래 체에서 나오는 용(用)을 禪이라 한다. 그래서 선지식 이란 말을 외도들이 쓰지도 않거니와 불가의 선지식의 뜻은 이것이 다르다. 그러니까 통털어 스승이란 개념은 같지만 깊이는 다른 뜻이 들어 있다. 問 : 선가귀감(禪家龜鑑)의 사상은 무엇입니까? 答 : 서산 스님의 사상인 동시에 부처님의 사상이다. 問 : 사회의 불신 풍조가 생긴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答 : 첫째로 우리나라의 예(禮)가 땅에 떨어진 데에 기인한 다. 예의가 부족한 탓이고 옛말에 <윗물이 맑아야 아 래 물이 맑다>는 속담과 같이 기성세대에게 큰 원인이 있는 것이다. 問 : 도인(道人)의 정의(正義)를 내리신다면 뭐라고 하시겠습 니까? 答 : 도(道)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바로 알아들을 줄 아는 것이고, 그 실력자를 도인이라 하는 것이다. 부처 님 말씀을 다 알아들을려면 삼처전심(三處傳心)과 팔 만장경의 뜻도 조금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경지가 도 인인 데, 그 뜻에 계합하지 못하고 신통이 나는 것은 요 술(妖術)에 해당하는 것이고 도술(道術)이 아니다. 그러 기 때문 에 기본은 부처님 말씀을 알아듣는 것이 되는 데, 그것은 본심(本心)이기 때문에 그렇다. 부처님 말씀 은 본심을 깨달아서 그 마음을 소개한 말이니까 그것을 못 알아들으면 도인이 아니다. 마음에 대한 소리인데 그 마음에 대한 말씀을 못 알아듣는다면 진리를 모르 는 사람이다. 우선은 부처님 말씀을 알아듣는 분상, 그 것은 사람으로서 사람 의 말귀를 알아듣는 자격이 됐다 는 것이 도인이다. 도인이라는 것은 사람말을 알아들을 줄 아는 힘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걸 못 알아 들으 면 도인이 아니라 요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힘을 알고 신통이 나는 것이 도 술이다. 요술은 요사스 런 생각이 통일되면 나타나는 것이다. 추번뇌를 항복받 아서 나타나는 도술은 소승교(小乘敎 )의 도인이 쓰는 것이고, 추번뇌·세번뇌를 모두 항복 받티?나타나는 도술은 최상승선, <마음을 깨달은 도인> 이 쓰는 것이 라 할 수 있다. ※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도인은 신선도를 닦은 것으로 아는데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問 : 선지식을 찾아 화두(話頭)를 받는 데에 정해진 법도가 있으며, 화두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答 : <화두란 진리를 바로 나툰 것이다.> 이것은 억지로 표현한 것이니 여기에도 떨어지면 아니 된다. 진리란 바로 화두가 되고 자기 본연이 되매, 그 자리를 앞질러서 부처님이라고 하고 그것을 일러 선이 라하고 그 禪의 자리를 모르니까 <참구(參究)한다> 고 해 서 참선이라 한다. 問 : 외도(外道)들이 말하는 진리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答 : 외도들이 말하는 진리는 관념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건 진리일 수가 없다. 외도들은 생각 없는 무념무상 (無念無想)에 조금 잠기면〈열반〉이라고 하고〈증득〉 이라고 하고 그런데에서도 힘이 조금 나오니까 힘이 나 오 는 것을 도술이라 하는데 이것은 요사스런 생각이 묶 여져서 나타나는 힘이며 요술이다. 도술이란 추번뇌· 세번뇌 가 조복되어서 나타나는 이 마음의 묘용(妙用)이 며 부사의(不思意)한 능력인 것이다. 問 : 화두 타는 방법에 있어서 지켜야할 예의는 무엇입니까? 答 :화두라는 것은 기본이 되어 있어야 화두라 하지 기본이 없는 사람이 화두를 타면 되지도 않을 것이고 화두는 화두를 지닐 그릇이 되어야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릇 이 안 되었더라도 애원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은 안위시 키 기 위한 것이지 별 뜻은 없는 것이다.) 問 : 화두 참구하는 방법 중 예를 들어 무자(無字)를 참구하 는데, <저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無〉 이렇게 가르치는 스님도 있고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無〉,<어째서 無라 했는고?> 이렇게 하는 분도 계시고 아니면 <준동함령이 모두 불성이 있다 했는데 어째서 조주스 님은 없다 했는고?> 이렇게 전제를 길게 하다가 <無∼> 하고 넣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答 : 그것은 초학자가 자칫 잘못하면 생각에 끌려 관념을 용 납해 가지고 더디게 잡힐 수가 있으므로 조주 무자(無 字) 같은 경우엔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無∼>, <어째서 無라 했는고?> 이렇게 하는 것이 간단하며 관념을 끌고 다니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준동함령이 모두 불성 이 있다 했는데 조주스님은 어째서 無라 했는고?> 하 면 즉 <부처님은 있다고 했는데 조주스님은 어째서 없 다 했는가> 하는 관념, 부처님과 반대되는 관념을 끌 고 나와서 상대적인 데에 엎어지기 쉬우니까 오히려 빼 는 것이 쉽게 된다. 그것도 오래 오래하면 자리가 잡히 는데 좀 돌아가는 것이 된다. 그러니 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無∼〉해서 의심이 되어 가는 사람은 그렇 게 하면 된다. 이것은 발음에 있지 않고 조주의 뜻을 찾는 자세가 되면 되는 것이다. 問 :『이뭣고』화두는 <이∼만 바르게 의심하면 '뭣고'가 필 요 없다> 하는데 그런 것입니까? 答 :『이뭣고』하는〈이〉는 처음에『마음이 무엇인고?』, 『이 무엇인고?』 두 가지로 하다가 의심이 잡히면 『이 뭣고』로 통일하면 되는 것이다. 의심이 분명해야 되는 것인데『무엇인고?』라는 것은 의심의 표시니까. <이∼> 해서 의심이 생기면 <∼ 뭣고>가 같이 곁들 여 있는 것이므로 말로 표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초 보자가 잘되지 않으니까 <∼ 뭣고>까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심이 희미해지면 안되니까 가끔 '∼ 뭣고'도 넣 어야 된다.『이 뭣고』, <뭣고∼ 하는 그 놈이 무엇 인고?> 반복해서 의심을 잡아나가야 한다. 問 :『이뭣고』에서 <이∼> 하기 이전(以前)을 찾으라는 말은 맞습니까? 答 : 그것은 틀린 말이다. <이∼> 하는 그 놈을 찾으라 했 지, <이∼> 하기 전을 찾으라고 하지는 않았으니. 問 : 큰스님들께 점검을 받는다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어떻 게 해야 하며 한 달에 한 번씩 받는 것입니까? 경계가 날 때마다 찾아와서 묻는 것입니까? 答 : 안 되면 가끔 찾아서 묻는 것도 좋고, 경계가 난 뒤 하 는 것도 좋다. 어느 정도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하는 가 운데서 물어야 하는 것이다. 열심히 안 했으면 또 안 했으니까 야단도 맞을 겸 자주 묻는 것도 괜찮다. 問 : 묻는 것도 허물이 되고 안 묻는 것도 허물이 된다는데 어느 허물이 더 큰 것입니까? 答 : 안 묻는 허물이 더 크다. 물으면 꾸중이라도 해서 바로 잡아 나아가는 것인데 안 묻는 것은 죽은 놈이 되어서 죽은 것으로 치게 되어 묻는 허물이 좀 적은 것이 된다. 問 : 요즈음 일부에서 큰스님들의 깨달았다는 것에 대해 신 비스럽게 해석하는데 깨쳤다는 것은 망상이 쉰 것으로 보아야 합니까?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答 : 신비스러운 것은 요사스러운 술법의 속임수이고 삿된 것이다. 사람으로서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는 법뿐이다. 問 : {업장 소멸(業障消滅)}이란 무엇입니까? 소멸할 수 있 습니까? 答 : 화두를 타파해야 업장소멸이라 할 수 있다. 중생들은 자 기 업을 지어 놓고 부처님께 애원하는 것이, 죽을 죄를 지은 사형수가 교도관에 의해 사형장에 끌려 들어가며 교도관에서 살려 달라고 비는 것과 같다. 빈다고 살려줄 수 있는 것인가? 問 : {업(業)}이란 무엇입니까? 答 : 생각. 問 : {夢中一如}·{寤寐一如}의 경지란 전혀 망상이 들어오 지 못하고 100%로 화두만 지속되는 것을 말합니까? 答 : 화두타파 이전에는 어쩔 수 없이 간간이 망상이 들어온 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問 : 『화두(話頭)』를 받는 법이 있습니까? 答 : 믿음이 가는 선지식 스님을 만나면 바로 화두를 타는 것이 아니고 옛날에는 그 문하에서 3∼5년 이상 시봉도 하고 사찰에서 소임을 살고 하여 어느 날 계기가 되면 화두를 받게 되었다. 예를 들면 임제선사가 황벽회운선 사에 게 신(信)하는 표시로 3∼10년 정도 문하에서 온갖 힘든 일을 다하고서야 화두법의 가르침을 받았다. 問 : 오늘날에도 이런 가풍이 이어지고 있습니까? 答 : 요즈음에도 큰스님들 회상에서는 1∼3년 정도 사찰의 소임을 다해야 화두를 준다. 問 : 화두를 타는 계기가 되면 어떤 의식 절차가 있습니까? 答 : 옛날 가풍은 조실스님의 명에 따라 대중이 큰방에 모인 다음 모인 대중은 가사장삼을 수하고〈화두참구법문〉 을 듣고, 들은 뒤에 화두를 받을 대중은 앞으로 나와 삼 배 절을 하고 물러나 앉아 있으면, 당사자는 그 위 압적 인 분위기와 많은 대중이 증명하는 가운데 평생 잊 지 못할 도업이 한순간 새롭게 이어지는 엄숙한 상황 속에서 화 두를 받는다. 問 : 화두법 이전에는 무슨 수행을 하였습니까? 答 : 그 이전에는 부처님 말씀을 의지하여 수행을 하였다. 問 : 『5宗 7家』의 가풍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答 : 중생의 근기가 시대가 변천하면서 하열(下劣)해지고 알 음알이가 붙어 해석하고 따지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다섯갈래로 길을 제시해 놓은 것이다. 問 : 망상을 분석하여 보면 흘러간 과거의 망상이 더 많이 떠오르며 미래에 대한 망상은 잘 안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答 :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問 : 많이 보고 많이 듣는 것은 업식만 더하는 것입니까? 答 : 그렇다. 問 : 그렇다고 안 보고 안 들어도 과거의 생각이나 미래의 망상이 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答 : 안 보고 안 듣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보고 듣더라도 끄달리지 말아야 하며 끄달리지 않으려면 화두가 익어 야 한다. 그러므로 화두만 하라는 것이 아닌가? 問 : 어떻게 화두를 익혀야 합니까? 答 :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問 : 선지식의 특별한 지도방법은 무엇입니까? 答 : 시대적 환경에 따라서, 개개인의 근기및 직업과 환경에 따라서 근본지혜로써 적소적절(適所適切)하게 지도하는 것을 말한다. 선지식이 수행자를 대(對)함은 마치 부모 가 자식을 키우는 것 같아서 지나치게 넘치는 것은 잡 아 주고 모자라는 것은 조언하여 주며 방일하여졌을 때 는 경책하여 준다. 問 : 3일이나 7일만 화두가 낮과 밤이 없이 이어지면 <타파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시간적으로 짧은 단위를 표현하 는 것인지 아니면 용기와 희망을 주면서 정진하는 습 (習)을 길들여주기 위한 방편인지 알고 싶습니다. 答: 시간적인 일 주일이다. 3일은 안 되고 7일은 되지. 또 짧은 단위가 아니고 시간적인 것으로 화두가 밀밀(密 密)하게 이어지는 7일인데 대부분 7일 안에는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7일을 넘으면서 힘을 얻는 고비가 된다. 問 : 태고보우국사가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들고 37세 가을에 『오매일여(寤寐一如)』경지에 들었는데 7일만에 터지지 않고 90일을 끌고가다 38세 되는 1월 7일에 확철대오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태고보우국사와 같은 대근 기도 오매일여에 90일을 끌고 갔는데 말세(末世)의 하 근기중생이 일주일만에 깨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 니다. 答 : 1주일만 화두가 밀밀(密密)하게 이어지면 의단(疑團) 이 독로(獨露)되어 그 힘으로 90일을 끌기도 하고 1년, 2년을 끌기도 한다. 그러므로 공부가 본 궤도에 오르 는 단계 정도를 1주일로 잡는다. 問 :『오매일여』에 들었을 때는 근본적인 망상인 <밥 먹고 옷 입고 사물을 대하는 망상도 끊어진 상태인가> 알 고 싶습니다. 答 : 아니다. 근본적인 미세망상은 나되 그것이 지배하지는 않으며, 망상이 껍데기만 스쳐 지나갈 뿐 내부로는 침 투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큰 집만한 불에 달아 오른 쇠덩어리가 있는데 빗방울 떨어지는 것에 쇳덩어리가 금방 식지 않는 것과 같다. 問 :『오매일여』의 경지가 참으로 되면 입태(入胎), 주태(住 胎), 출태(出胎) 모두를 마친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答 : 완전한『오매일여』라면 그렇다. 問 : 본능적 생각으로 일어나는 망상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 까? 예를 들면 밥먹는 것, 진급하는 것, 돈버는 것 등 대인 관계 속에서 살아 나가는 속인이 한 생각 일어났 을 때 화두로만 돌이키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나 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答 : 본능적 생각은 어쩔 수 없다. 돈버는 것, 진급하는 것 등을 승화하면 공부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손해 되지 않 는다. 問 : 산중에서 세속의 인연을 끊고 20년, 30년 정진하신 스님 들도 견성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결혼하여 세속 생활을 하는 속인도 화두만 참구한다고 견성할 수 있습니까? 答 : 할 수 있다. 바른 생각 바른 선지식 바른 정진은 바른 깨달음 으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생각이 쌓여 업이 되고 업이 생 사윤회의 근원이 되는데 속인이라도 생각 생각을 간 절히 화두 의심으로만 돌린다면 언젠가는 깨달을 수 있 다. 스 님들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바른 생각, 바른 선지 식, 바른정진을 하지 않았으므로 깨달음이 없는 것이다. 問 : 무심(無心)의 경지와 무아(無我)의 경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答 : 무심이란 견성(見性)을 해야 알고, 무아도 견성을 해야 안다. 問 : 무심의 경지에서 막행, 막식하면 업식(業識)으로 남지 않습니까? 答 : 무심도 무심 나름이기 때문에........ 問 : 화두 공안 가운데 여래 체(體)를 나타낸 것과 용(用)의 자리를 나타낸 것이 있다는데 맞는 말입니까? 答 : 그럴 수도 있다. 問 : 법거량을 할 때 차별지(差別智)를 살피지 못하면 안 되 는 것인데 그 당시 대답을 못하였어도 더 정진하여 답 하는 경우도 인정합니까? 答 : 인정한다. 예를 들면 태고보우국사가『無』자 화두를 크 게 깨치고, 후에 1700 공안을 점검하던 중에 암두밀계 (岩頭密契) 공안(公案)에 막혔는데 태고스님은 3일 정진 후에 답한 적이 있다. 問 :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엇을 가장 큰 고(苦)라고 합니까? 答 : 안 되는 화두를 열심히 하려는 것. 問 : 지금도 외도(外道)들은 명상, 결가부좌, 단식 등으로 극 심한 고행 수도를 하는데 어떻습니까? 答 : 몸에 고통을 주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고 번뇌를 조복받 기 위하여 안 되는 화두를 의심하는 것이 고(苦)이다. 問 : 잠을 자지 않고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答 : 젊은 사람은 4시간 정도만 자면 충분하다. 問 : 몇 년 전에 맛본 경계를 다시 맛보려고 하는데 아무리 정진해도 그 경계를 맛보지 못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 까? 答 : 비유를 들면 우연히 물가에 가서 수영을 하다가 손에 잉어가 걸려 두손으로 잉어를 잡다 놓친 것과 같으니, 옛 경계를 맛보려 하지 말고 화두만 열심히 하라. 問 : 화두도 망상이라는 데 어떻습니까? 答 : 화두는 어떠한 비유, 어떠한 표현으로도 말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의 체(體)의 자리를 가장 가깝게 표현한 것 인데 의심도 하기 전에 상대적인 망상심으로 사량분별 (思量分別)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다. 問 : 애를 쓰고 참선을 하는 수행자가 득도(得道)하지 못 하 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答 : 선지식의 바른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고 본인이 바른 수행법을 택하지 않고 했기 때문이다. 問 : 식(識)이 맑다는 것은 어떤 현상입니까? 答 : 외부 경계에 대하여 번뇌가 쉰만큼 나름대로 지혜가 생 기기 때문에 나름대로 식이 맑다는 것이다. 問 : 화두법에서 식(識)이 맑다는 것과 관법(觀法)에서 식이 맑다는 것은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答 : 관법에서 식이 맑다는 것은 정신통일을 해서 산란심 (散亂心)이 쉬기 때문이나 다시 일용심(日用心)으로 돌아가면 매(昧)해진다. 화두법에서 식이 맑다는 것은 의심으로 들어가기 때 문에 상대적인 망상이 작용하지 못하고 화두의심을 할 때 업이 동시에 깎여 들어간다. 問 : 수행하여 견성하면 경계를 대함에 있어서 심중유망(心 中有妄) 입니까? 심중무망(心中無妄)입니까? 答 : 심중무망이지. 일체번뇌가 마음에 침입을 못하니까. 확 철대오 하면 외부 경계를 대함에 있어 망식이 마음에 쳐들어오지 못해. 問 : 그런데 심중유망(心中有妄)은 무슨 말인가요? 깨달은 후 에도 왜 망상이 있다고 했는지요? 答 : 깨달아도 망상이 있다는 것은 <번뇌 즉 보리 煩惱卽菩 提>라는 뜻이겠지. 내외가 없는 경지로 중심이 딱 서 있으니까 경계에 마음이 침범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러기에 <번뇌 즉 보리>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그 정력 이 밀밀(密密)하지 않은 상태를 가리켜서 <보림한 다> 또는 <닦음 없이 닦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론 을 이렇게 세워야지, 번뇌가 마음 안으로 들어갔다고 보는 것은 잘 못된 것이다. 마치 연꽃잎에는 더러운 물 방울이 묻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問 :『내외명철 內外明徹』이라는 것은 유망이 아니라 무망 으로 봐야겠군요. 答 :『내외명철』이라는 것에도 이변지(理辨智) 내외명철이 있고 이사변지(理事辨智) 내외명철이 있지. 상상근기는 이 둘을 같이 다룰 수 있고, 상근기는 이렇게 나눠서 다루고, 하근기는 더하다. 問 : 게송으로 전법하는 것을 道라 할 수 있습니까? 答 : 이것은 수행인의 눈 밝히는 말이고, 道라 할 수 있지. 게송의 말에 가서 떨어지지 않고 그 뜻을 사무쳐서 보 는 관계로 道라 할 수 있는 것이지. 삽삼조사까지는 여 래선도리(如來禪道里)로 눈을 떴음을 확인하여 전법 했 고, 그 후에는 자꾸 알음알이를 붙여서 <너도 나도 견 성했다>고 하니까, 까다로운 전법을 세워 진실로 눈뜬 이만 통 과시켜 전법하는 것을 조사선(祖師禪)이라 한다. <조사선을 여래선에서 잡아 썼다>는 말은 까다롭게 용법(用法) 을 썼다 그 말이지. 활용을 까다롭게 했다는 말이야. 삽삼 조사(三十三祖師 :가섭 ∼ 혜능)까지는 까 다롭게 안 해 도 눈을 떴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전법한 것이고, 그 후에는 눈 못 뜬 사람도 눈떴다고 하니까 까다롭게 활용해 보면 이 사람은 못 살피거든. 그러니 까 <아니다> 하고 눈떠서 살피는 이만 통과시켰지. 問 : <견성 후에도 유망이다> 하는 부분을 다시 설명해 주 십시오. 答 : 무망의 경지에서 유망이 나온 것은 용(用)이다. <무위심내기비심 無爲心內起悲心>이라, 기비심이 유망 인 즉 무망 가운데서 유망이라 하는 것이다. 무망이 곧 무심이니, 〈최상승무심〉은 추번뇌·세번뇌를 모두 항 복 받은 것이고,〈소승무심〉은 추번뇌만 항복 받은 것 이 니까 무심이라고 분류하면 이렇게 다른 것이지. 問 : 추번뇌만 항복 받은 경지로 게송을 지으면 허물처가 있 지요? 答 : 추번뇌만 쉬어 가지고는 게송을 못 짓는다. 禪門에서는 화두했기 때문에 추번뇌·세번뇌를 항복 받아 지을 수 있지만, 다른 문중에서는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問 : 체·상·용(體·相·用)은 무엇을 가리킨 것인가요? 答 : 체·상·용과 체·용·제시는 같은 말이다. 남전스님이 <부처님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중생들은 <부처님이 천상천하에 제일이다> 하는 생각 을 일으켜 말머리에 떨어져서 소견을 일으키고 있잖아? 그 러면 그 말을 한 남전스님도 망상으로 그런 것이겠 나? 그러니까 격(格)이 천지 차이로 다르거든. 問 : 법거량 하는 것은 이변지입니까? 사변지입니까? 答 : 이변지로 하는 것이지. 이(理)를 논하기 때문에 즉, 이변 으로 다루는 말이기 때문에 이변지로 하는 것이지. 사 변지라는 것은 신통묘용이다. 그러니까 사변지라는 말 은 잘 안 쓴다. <생사거래가 본래 없다. 기용제시(機用提示)하고 살활종 탈(殺活從奪) 한다>는 등의 말은 법담하는 데 쓰는 말 이지, 정진하는 데는 잘 안 쓰는 말이지. 이런 것은 마치 채 자라지도 않은 어린이에게 성교육을 시키는 것과 같 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지. 問 : 마음이 밝아졌다는 경지는 어느 정도의 경지인가요? 答 : 보조스님이 돈오한 다음 망상이 있다는 것은 <나름대 로 깨달은 경지>를 말하는 것이야. 확철대오가 아닌 것이다. 지무생사(知無生死), 체무생사(體無生死), 계무 생사(契無生死)를 지나 용무생사(用無生死) 단계라야 진 정 한 깨달음 즉, 진정한 무망(無妄)이 되는 것이지. 이 때 가서야 미세번뇌까지 끊어지는 것이지. 問 : 현재의 성철 종정스님이 오매일여 경지가 되기 전에는 나에게 와서 물을 필요 없다고 하신 것은 수행지도에 있어서 지나친 것이 아닐까요? 또 종정스님이 현실 사 회 문제에 대해서 종정으로서 한 마디 말도 않고 있는 것은 불교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 아니지 않은 지요? 答 : 그것은 그 스님의 뜻이지. 밑에 사람이 깨달은 사람의 뜻에 점수를 매기려고 하는 것은 안 되는 일이지. 마치 초등학생이 대학원생의 시험점수를 매기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자격미달 아닌가? 問 : 견성이 화두타파입니까? 答 : 견성이 화두타파지. 타파 후에 닦는 것이 보림이라 하는 것이다. 견성하기 전에 닦는 것은 점수(漸修)가 아니다. 보조스님이나 태고스님도 처음엔 스스로가 견성했는 줄 믿었으나 나중에 보니 그것이 속은 경계였다고 한 것처 럼 진정한 견성이 아니지. 화두하는 과정이《수심결》 에 있는 바와 같은 경계의 과정이 있는 것이다. 問 : 그러면 성철스님이 보조스님의 경계를 배척하라는 것은 잘못 아닌 가요. 答 : 그렇지. 화두하는 데 있어서 그런 데 가서 걸린다 이거 지. 스님도 그런 것을 지적한 것 아닌가. 問 : 이(理)와 사(事)를 동시에 닦는 것은 다른 문중에 또 있 습니까? 答 : 참선 문중밖에 없지. 쌍차쌍조(雙遮雙照)라는 것은 동시에 닦는다는 것으로 서 화두 문중에만 있는 것이지. 원돈문(圓頓門)에는 그 런 것이 없다. 問 : 화두를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견성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答 : 화두를 올바로 들기가 힘들겠지. 김이 빠진 것 같아서. 問 :『無자 화두』 드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요? 答 : 처음엔 전제(全提)를 들어서 힘을 얻은 다음에, 단제(單 提) 즉 <조주는 어째서 無라 했는가?> 하고 조주스님 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조주의 뜻을 찾으면 그게 의심 이 되고 그게 바로 본심경계(本心境界)인 것이다. 일체 공안이 다 그렇게 참구하는 것이다. 조주의 뜻을 몰라 뼈에 사무쳐 꿈에서까지 그 뜻을 참구해야 한다. 전제 를 가 지고만 하면 관념이 붙어서 구경까지 갈 수 없으 므로 단제만을 들어야 관념이 못 붙어, 다시 말해서 조 주의 뜻만 바로 찾으면 망식(妄識)이 거기에 붙지를 못 해. 이렇게 관념이 붙지 못 하기 때문에 방편이 아니고 여래의 자리를 바로 제시했다고 하는 것이다. 問 : 현재 한국에서 법을 임의자재로 잡아 쓰는, 확철대오했 다고 믿을 수 있는 스님은 없는 것입니까? 答 : 그렇지. 닦아 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스님들이 있는 것이 지. 問 : 그렇다면 경허스님도 확철대오 못한 것 아닙니까? 答 : 확철대오 못했다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막행 막식(莫行 莫食)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방편력이 부족했다고 봐야지. 그 행(行)을 가지고 평가한다는 것은 어린이가 어른의 뜻을 모르고 겉만 보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問 : 무심(無心) 즉 무념(無念)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答 : 무심에는 소승무심, 대승무심, 최상승무심이 있다.〈소승 무심〉이란 생각을 통일하여 멸진정(滅盡定)에 드는 것 이고,〈대승무심〉이란 대승관법을 하여 닦아 나가는 것이며 대승 방편이라 한다.〈최상승무심〉은 닦아 나 갈 수 없는 것이다.〈화두가 바로 본심자리〉이므로 닦 아 나가는 점차가 있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 방편이 아 니라고 하는 것이다. 問 : 강원교육 받은 사람은 화두타파 하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答 : 꼭 그렇지는 않지. 강사를 잘못 만나는 경우, 스승이 제 자에게 김빠진 맥주를 권하는 격으로서, 실력 없는 강 사의 허물이 커. 問 : 강원을 옛날에는 권하지 않았는데 요즘엔 어째서 강원 을 권합니까? 答 : 그것은 사람에 따라서 권하는 것이다. 참선을 못할 바에 는 강원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는가? 問 : 추번뇌·세번뇌(序煩惱·細煩惱)·겹번뇌란 무엇인지요? 答 : 이 단어는 내 말이 아니라 옛 경전에 다 나와 있는 것 이다. 겹번뇌는 추번뇌, 세번뇌가 같이 있다는 것이다. 수행하여 추번뇌를 조복받고 나면 세번뇌가 뛰는 것이 또 나타난다. 추번뇌의 힘이 제일 세어서 경계에 자꾸 끌려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을 자제하는 경지가〈수다 원〉경지다. 여기서 더 다져지는 수행을 하면〈사다함 〉경지가 되고, 더 위는〈아나함〉, 더 수행하면 추번 뇌를 조복 받는〈아라한〉경지가 된다. 아라한은 생사 를 벗어나는 것 은 알았으나, 생사가 없는 도리는 미세 관념까지 없어야 나타나는 것인데, 아라한은 미세관념 이 남아있는 고로 생 사 없는 도리는 꿈에도 모르는 것 이다. 대승관법은 20%의 관념이 붙어서 미세번뇌와 같 이 합류해서 관(觀)해 나가 는 것이고, 소승관법은 미세 관념이 더 많이 뛰는 상태로 닦아 나가는 것이다. 問 : 능엄경에서 50종류의 마장(魔障)은 어떨 때 나타납니까? 答 : 50마장이 나오는 것은 자기의 미세관념이 뛰면서 닦아 나가는 관계로 자기가 <외부의 마>를 끌어들이는 것 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선문에서는 10가지 병폐 즉 <무자 10종병 無字十種病>만 조심하면 된다. 오직 화 두만 올바로 들고 나가면 이 10가지 병폐도 막을 수 있다. 이것은 올바로 화두를 들고 나가면 미세번뇌까지 붙지 못하 기 때문에 천마외도가 칭찬할 수 없고, 비난 할 수 없는 것이다. 問 : 그러면 화두법이 정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答 : 그렇지. 대승관법은 미세번뇌가 뛰므로 외마(外魔)가 칭 찬할 수 있지만, 화두문에서는 일체의 번뇌가 없이 닦 는 수행법이므로 정법이라 할 수 있다. 問 : 자기 망식 가운데에 자기 근본이 서 있을 때, 망식이라 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答 : 그것은 망식이 아니다. <번뇌 즉 보리 煩惱卽菩提>가 되기 때문에, 화두경지만 보니까 본심이 돼서 망식이 다 쉬게 되지 않겠나! 전에는 망식에 휩쓸려 살던 것이 이제 화두가 근본이 되어 중심이 섰으니까, 그때는 번 뇌 즉 보리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오매일여』경지 이 후를 말하는 것이다. 問 : 심우도(尋牛圖)에서는 인우구망(人牛俱忘) 이후에야 완 전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答 : 그렇지.『인우구망』다음에 일원상(一圓相) 나타나는 것 이 완전하다고 할 수 있지. 8번째 이후에 표현한 것들 은, 세밀히 보이기 위해서『삼처전심』으로, 또『체·용 ·제시』로 표현한 것이다. 問 : 고집이 센 수좌가 한 생각만 돌이키면 밀고 나가는 힘 이 세므로 도통하기가 쉽다고 할 수 있을까요? 答 : 고집보다는 꾸준한 근기라고 해야겠지. 問 : 법에 대해 미세한 참구방법을 모르고서도 견성할 수 있 습니까? 答 : 안 된다. 바르게 참구할 줄 알아야지. <자기의 화두하는 것이 올바르게 하는 것이냐>고 자꾸 물어서 바르게 들고 나가야 한다. 그런데 분별이 많은 사람은 미리 알아서 이것저것 자꾸 따지고 이론적으로 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안 좋은 것이다. 問 : 성성적적(惺惺寂寂)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答 : 화두가 분명한 것으로, 의심이 분명한 것을〈성성하다〉 고 하고 번뇌가 없으니까〈적적하다〉고 한 것이다. 寂 寂한 가운데서 寂寂에 치우치면 무기(無記)에 빠지므로 화두를 들기가 싫어지게 되므로 그래서 다시 寂寂한 가 운데서 惺惺하게 화두를 들어야 하므로 <惺惺寂寂>이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두를 잘 들어서 惺惺하 면서 寂寂해야 하고, 다시 寂寂한 가운데에서 惺惺하 게 들고 나아가야 한다. 寂寂한 것만 지키면서 <내가 깨달았다> 고 생각하는 것은 묵조 사사배(默照 似邪輩) 들이 무사갑(無事甲) 속에 앉아있는 잘못된 것이다. 問 : 화두타파 시에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어떠할 때입니까? 答 : 몸의 상태는 편안하고 정신상태는 맑을 때이다. 이때는 잠이 저절로 달아나 버리게 된다. 이때는 대중처소에 서 예불소리, 종소리 등이 아무리 복잡하게 들려와도 상관없게 되는 때이다. 그런 소리는 그대로 놔두고 화 두가 이어지는 것이며, 이런 경계로써 1주일 정도 끌고 나가야 한다. 이런 화두 상태가 한번 자리 잡혀지면 복잡한 외 부경계에 끄달리지 않게 되어 계속 화두가 들 려져 나가는 지경이 되는 것이다. 외부경계가 복잡하 다 해도 그리 쉽게 이런 경계가 없어지지는 않으며, 잠 이 깜빡 들었어도 금방 화두가 들려져 나가고 만다. 이 럴 때 예불소리, 종소리 등 외부경계에 마음이 쓰여 화 두를 잊는 사람은 시비에 빠져서 공부할 근기가 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진실로 화두를 간절히 든다면 시장바닥에 앉아서 해도 상관이 없지. 問 : 이런 상태로 얼마나 가면 견성할 수 있습니까? 答 : 약 1주일 정도 가야 한다고 봐야지.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 기쁘다는 생각을 내면 안 되지. 이러한 희마(喜魔)가 있으면 사사배(似邪輩)가 되고 마 는 것이다. 이것은 태고스님이 지적한 것처럼 <나름 대로의 견성>이지 <참견성>이 아니다. 이럴 때는 다 시 해야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 경계에서 다시 바르게 참구하면 되는 것이다. 問 : 현실적으로 수행하는데 1단계 힘을 얻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를 말합니까? 答 :『지무생사』정도는 알아야지. 화두가 익어 타성일편(打 成一片) 경지가 돼서 쉬운 법문은 살필 수 있는 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지. 問 :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어떠한지요? 答 :『체무생사』로서 무르익는 경지지. 이것은 나름대로『오매일여』를 지나 터졌다는 경지지. 그러나 선각자가 보면 이것도 완전하다고 볼 수 없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용무생사』가 되는 것이다. 그 러나 소승에서처럼『용무생사』도리만 귀중히 여겨 좌 탈입 망한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엔『용무생사』가 된 것 처럼 보이지만, 이렇게『지무생사』『체무생사』『계무 생사』단 계를 거친 『용무생사』라야 진정한 <생사 없 는 도리를 알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지무생사(知無生死) : 생사 없는 도리를 앎. 체무생사(體無生死) : 생사 없는 도리를 체득함. 계무생사(契無生死) : 생사 없는 도리에 계합함.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도리를 씀. 問 : 토굴과 대중처소에서의 수행은 어떻게 다른 가요? 答 : 토굴에서는 별 진취가 없다. 대중처소에서는 대중이 같 이 정진하고 움직이므로 자기 규칙 지키는 습관만 지키 면 별 어려움이 없지. 불 때주고, 공양 주고, 다 해 주 니까, 불편한 게 없지. 대중처소에서는 자기 소임 하나 만 하면 되니까 그것만 마치고 나면 나머지는 하루종일 자기 시간이지. 그러나 자기 위치 지키기가 그리 쉽지 는 않지 . 도반하고 어울리지 않는 자기를 지키기가 어 렵다. 토굴생활은 전부 자기가 해결해야 하니까, 뺏기는 시간이 많게 된다. 대중처소에서 정진하는데는 해제 때 도 좋다. 공양도 주고 방도 있고 하니까. 問 : 조실스님은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이 육조 이후 마조 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정맥(正脈)이고 하택―규봉―보조 로 내려오는 문중은 문 밖 사람이라 정맥이 아니라고 하 셨는데, 〈돈오돈수〉는 미세망념이 없는 것입니까? 答 : 그렇지. 問 : 성철스님과 여기 조실스님 가풍은 돈오돈수사상이죠? 答 : 그렇지. 육조 문하에 오종(五宗 : 임제·위앙·조동·운 문·법안)이 벌어졌고, 오종은 모두 돈오돈수 사상이지. 問 : 깨친 다음에 인가(印可)를 받습니까? 깨치기 전에도 인 가를 받습니까? 答 : 깨친 다음에 인가를 받는 것이지. 問 : 깨친 후 탁마해서 확실하다고 인가해서 은밀히 전해진 후에도 미혹한 것이 있으면 또다시 점검 받는 경우도 있습니까? 答 :『향상구』가 해결되면 다시 더 닦고 깨달을 것이 없는 것이지.『법신구』나『여래선』갖고 알았다고 하는 것 은 종사(宗師)가 되지 못하는 것이지. 임제·덕산·마조 의 살림살이를 모르는 것이다. 마조스님이『향상구』를 제 창하셨고, 그 문하들이 모두 향상구·향하구(向上句 ·向下句)를 제창한 것이지,『여래선』『법신구』를 제 창한 것 이 아니거든.『향상구』를 모르면 견성이 아니 고, 임제·덕산의〈돈오돈수〉도 모르는 것이다. 근래 우리나라에 이러한 바른 안목이 열리지 못하고 점 수(漸修)의 물이 잔뜩 들어서 큰 병폐가 되는 것이지. 육조스님도 <하택은 지해인(知解人)>이라 하셨고, 오 조 홍인대사는 <신수는 문 밖의 사람>이라고 하셨거 든. 반야다라 존자의 수기를 받으신 마조선사는 선(禪) 에 대해 전무후무한 안목을 지니신 분으로 마조의 가풍 은 독특 한 것이거든. 백장·남전·귀종(歸宗)이 마조의 법을 이어받아 이 법이 중국 천하를 덮게 되었고, 임제 ·덕산도 바 로 이 법을 터득한 것이지. 임제·덕산의 법이 마조의 법인데,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돈오점수 〉를 주장하고, 이 법을 바로 알면 〈돈오돈수〉이고, 이것이 부처님의 바른 수행법이 되는 것이다. 問 : 돈오점수에서는 육조 스님이 16년간 사냥꾼과 지낸 기 간을〈보림〉즉,〈점수〉로 보는데 스님께서는 이 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答 : 돈오 후의 점수기간이 아니라 시절 인연이 있는 것이 지. 오조스님도 육조스님에게 <시절을 기다리라>고 부촉했거든.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법 을 펴는 데도 시절 인연이 있는 것이지. 시절 인연이 도래하 지 않으면 법을 펼 수 없고, 역행하게 되는 것이 거든. 귀종스님은 마조선사의 제자인데, 어느 납자가 <어떤 것이 보림입니까?>라고 물었더니, <한 티가 눈에 가리면 허공꽃이 어지러이 떨어진다>고 하셨단 말이야. 귀종스님이 아니면 이렇게 말을 못하지. 이것 을 바 로 받아들일 줄 알면 모든 종사의 본분사(本分 事)를 다 알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근 래 우리나 라 선지식들에게〈돈오점수〉사상이 있게 된 것이지. <한 티가 눈에 가리면 허공꽃이 떨어진다>고 한 뜻 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종사의 눈을 바로 갖추지 못했 다고 보는 거지. 問 : 돈오돈수 사상은〈이변지〉가 부처님과 똑같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사변지〉는 부처님과 같은 능력 이 나오지를 않으니까,〈사변지〉를 닦기 위해서 닦는 것을〈점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答 : 닦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 즉,〈이변지〉만 바로 보게 되면 자연히 다 갖추게 되는 것이지. 問 :〈이변지〉만 확실히 보고 나면〈사변지〉는 닦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도 신통이 저절로 나오는 것인 가요? 答 : 그럼,〈이변지〉만 지키면 다 되는 것이지. 問 : 소승 사과(小乘四果)인『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 한』에서〈아라한〉도 견성을 못한 것이라고 하는데 아 라한이 견성을 했습니까? 못 했습니까? 答 : 아라한은 성인(聖人)에 들어간 것이지. 부처님께서는 아 라한은 성인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셨고, 하지만 이 달 마의 견성법과는 다른 것이지. 問 : 소승법이기 때문에 다른 것입니까? 答 : 성인에 들어가는 것이고, 견성법과는 차등이 있지. 問 : 확철대오(廓徹大悟) 하면 미세망념(微細妄念)이 없다고 보십니까? 答 : 그렇지. 돈오돈수(頓悟頓修)만 되면 미세망념이 없는 것 이지. 問 : 망상이 있는데 놀아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망상이 아주 없는 것입니까? 答 : 망상이 없는 자체를 그대로 수용하고 깨달은 경계 그대 로가 일상살림이 되는 것이지. 問 :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것이 일반인들은 아뢰야식(阿賴 耶識) 가운데 그대로 훈습이 되는데 확철대오하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훈습이 안됩니까? 答 : 그렇지. 육조스님도 제8식을 넘어서 대원경지(大圓鏡智) 가 되면 종전의 분별작용이 서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구 경에 이르게 되면 이렇게 되는 것이지. 問 : 묘관음사의 비문에 적혀 있는 <운봉선사께 향곡선사가 인가를 받고 난 후에 함께 정진하던 도반(성철 스님)이 물었는데, 향곡 선사께서 답을 못해서 더 정진을 하신 후에 답을 했다> 하는 것은? 答 : 향곡 선사께서는 답을 못하시고는 소낙비가 오는 것도 모를 정도로 탑에 기대어서 삼·칠일 간을 용맹정진을 하셨었지. 이렇게 참구하시다가 깨치셨는데, 깨닫고 보 니까 질문을 한 도반 스님이 확실히 아는 것이 아닌 것 을 보고 도반 스님에게 방망이를 놓고, 이렇게 두 분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힘을 얻게 되고 깨닫게 되었지. 이 두 분 스 님으로부터 다시 한국 선종이 임제·덕산의 가 풍을 재현하게 된 것이지. 그 전에는 모든 한국 선사 스님들이〈돈 오점수사상〉에 침체되어 있었거든. 問 : 여기서『향상구』는『조사선』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 : 아니지, 별개야. 『향상구』를 알아야〈차별삼매〉를 다 알게 되는 거야. 問 : 혜월 스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법맥을 운봉 스님이 향곡 스님에게 전하신 것인데 향곡 스님이 인가를 받은 후, 도반의 물음에 막혀서 삼·칠일 간을 용맹정진을 해서 답을 했다는 것은 미진하기 때문에 더 닦은 것으로 돈 오돈수 의 확철대오가 아닌 돈오점수 아닙니까? 答 : 고인들도 한두 번 늦게 깨달은 경우도 있다. 설봉스님 도 암두스님에게 한두 번 혼이 났었고, 임제스님도 두 번 그런 적이 있고……. 구경각(究境覺) 즉,『향상구』에 이르러야 〈돈오돈수〉 인데 근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선사들의 사상이『향 상구』를 모르고『여래선』만 알았지. 향곡·성철 스님 이『향상구』를 깨달은 이후에 돈오돈수로 변화가 된 것 이지. 問 : 400년 전의 서산 스님까지도〈돈오점수〉로 잘못 아신 것으로 보십니까? 答 : 중년기에는〈돈오점수〉를 주장했다가 노년에는〈돈오 돈수〉를 제창했다. 問 : 그 위의 태고 보우국사, 환암 혼수, 구곡 각운…… 같으 신 분들도? 答 : 태고 보우국사나 나옹, 백운스님 등 서너 분들은 중국에 서 직접 전해 받아 안목이 있었고, 그 후로 실낱같이 내려오게 된 것이지. 問 : 임제·덕산의 살활자재하는 가풍이 향곡·진제 스님으 로부터 재현되었다고 보면 기존적인 운봉·혜월·경허 스님의 맥은 존중하되 거기에 맞추면 이론이나 논리가 맞지 않는 것이죠? 答 : 안 맞지. 우리가 허물은 짚고 넘어가야 돼. 임제골수의 안목을 전수 받지 못하다가 변화가 온 것이지. 問 : 임제종에서 깨닫게 되면 조동종, 위앙종, 운문종, 법안종 과 거량해서 서로 통하고 걸림이 없게 되는 것입니까? 答 : 육조의 자손들도 다 똑같은 것이지. 임제의 가풍은 대기 대용(大機大用)한 것이고……. 모르는 사람이 잘못 알고 이러니 저리니 하는 것이지 알면 다 통하는 것이야. 問 : 법상에 올라가시기 전에 미리 법문을 준비하십니까? 答 : 준비가 좀 되어야지. 아침에 좀 생각하지. 問 : 준비한다는 것은 미진한 것 아닙니까? 전광석화처럼 살 활자재(殺活自在)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答 : 미진한 것이 아니고, 줄거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 가? 부처님 49년 설법도 마찬가지야. 12년 간〈소승법〉을 설하시고, 어느 정도 교육이 된 후에 한 단계씩 올려서〈대승법〉으로, 마지막에는〈최 상승선〉을 설하신 것이지. 주장자만 들면 되는데 중생 들이 이 뜻을 모르니까 말로 하신 것이지. 問 : 법상에 올라가셔서 법문을 하실 때에 주장자를 처음에 는 세 번, 끝날 때에는 한 번 치는 경우가 있고, 처음에 한 번 끝날 때에 세 번 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 엇을 표현하는 것입니까? 答 : 고인들은 세 번 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나는 꼭 한 번 치지. 問 : 제 알음알이 상식으로는 한 번 치는 것은 일구(一句)이 고, 세 번 치는 것은 군더더기로 표현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答 : 그것은 사견이야. 종사는 항시 <본분사 本分事>를 나 투는 법이야. 問 : 조실 스님이 주장자를 한 번 치시는 것은 무슨 도리입 니까? 答 : 심오한 진리가 있지. 問 : 최초로 법상에 오르신 나이와 장소는? 答 : 묘관음사에서 인가를 받고 법상에 올랐는데, 세속 나이 로 33세일 거야. 問 : 외호대중을 만나지 못하면 도통하지 못 한다고 들었는 데요. 예를 들면 석두스님이 효봉스님을 토굴에서 정진 하게 할 때에 음식도 넣어주고 사람도 못 오게 하셨는 데, 마치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고 있는 것처럼 외호를 해 주 었는데, 조실스님도 향곡스님한테 그렇게 외호를 받으셨습니까? 答 : 그냥 대중생활을 했었지. 외호가 필요 없지, 마음의 반 연이 다 끊어졌는데........ 問 : 깨칠 때 7일 혹은 90일간 화두의심이 이어진다고 하는 데, 조실 스님은 얼마나 화두가 이어지셨는지요? 答 : 나는 모든 반연이 끊어져서 결제·해제를 관계하지 않 고 앉으나 서나 화두를 참구했지. 처음 화두 타서 2년 만에 열렸고, 그 뒤 한 5년....... 問 : 그 기간에는 묘관음사 밖에 나가지 않으셨습니까? 答 : 거의 안 나갔지. 問 : 그 때 잠은 몇 시간이나 주무셨습니까? 答 : 잠은 4∼5시간 잤지. 問 : 어느 경계가 지났을 때 조실스님에게 물으셨습니까? 答 : 막힌 것이 있었을 때 묻고 화두가 타파되어야 거량이 되는 것이지. 깨닫고 난 다음에 물으면 서로 여러 가지 문답이 상통되지. 問 : 그럼 며칠에 한 번씩 묻습니까? 答 : 화두가 풀려야 묻게 되지. 問 : 향곡스님께 인가를 받으실 때 전 대중을 모아 놓고 하 셨습니까? 개인적으로 인가를 받으셨습니까? 答 : 단독으로 인가를 받으면서 전법게를 받았다. 問 : 밀전(密傳)이라고 하지만 제3자가 보았을 때 공신력이 덜한 것이 아닙니까? 答 : 단독으로 받았지만 선사께서 대중에게 알려서 대중이 다 알았다. 問 : 여태까지 마음에 드는 수좌가 없다고 하셨는데 인정받 은 사람이 없는 것인 가요? 答 : 없지. 서로 문답이 상통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 問 : 수좌스님들이 평생 목숨을 걸어도 견성하지 못하는 가 장 큰 이유는? 答 : 첫째, 선지식을 믿지 않는 데에 있고 둘째, 바른 지도 를 받지 못하는 데에 있지. 바른 지도를 받고 모든 반 연이 쉬어서 오로지 <견성을 위해서 전 생애를 바쳐야 겠다>는 확고한 신심이 서야지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지. 問 : 사람을 다룬다는 것은 말을 시켜보고 다룬다는 것입니 까? 모습을 보고 다루는 것입니까? 答 : 말을 주고받고 하면 알게 되지. 問 : 정진을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임종할 때 매(昧)하지 않으 려고 하는 것인데 평상시에도 화두가 안 되는데 숨 떨 어질 때 되겠습니까? 答 : 정신을 못 차리는데 주력(呪力)이라고 해서 나을 것이 없지. 그러나 화두 한 생각이 바로 이어지면 모든 산란 심이 없어지고, 어느 것보다도 나은 것이지. 問 : 공안 화두법은 자력(自力)으로 보아야 합니까? 타력(他 力)으로 보아야 합니까? 答 : 절대 자력이지. 問 : 타력적인 기도나 정근을 하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答 : 그것은 할 수 없이 소인배들이 하는 것이지. 問 : <명당이다, 보궁이다> 하는 터에 구애받지 않습니까? 答 : 선지식을 만나야 도를 성취하는 것이지 장소는 상관이 없다. 問 : 복(福)의 정의(개념)? 答 : 복은 마음이 깨끗하고 삿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마음 이 깨끗하고 삿되지 않으면 일거일동이 복이 된다. 問 : 덕(德)은? 答 : 덕도 복과 마찬가지이지. 남을 헐뜯지 않고 항시 본성의 깨끗한 성품을 따라서 평등하고 인아상(人我相), 아만이 없는 마음을 쓸 것 같으면 덕이 되지. 問 : 지혜는? 答 : 마음의 광명이 열려서 본바탕을 보게 되는 것이야. 問 : 중생은 어리석고 무명업식에 있다고 하지만 머리를 써 서 우주를 관찰하고 과학을 창조하는데 이것과 지혜는 틀린 것입니까? 答 : 지혜와 <견문 알음알이>는 틀리지. 지혜는 본바탕을 바로 보아서 체성의 광명을 찾는 것이고, 세상의 지식 은〈알음알이〉분상으로 따지고 셈하는 것으로 과학이 이루어진 것이지. 問 : 묘관음사에서 정진을 하실 적에 해운정사를 지으려고 생각하지 않으셨는지요? 答 : 공부할 때에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問 : 인가를 받고 난 후에 회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하 신 후에 산중불교는 생명력이 없다고 여기시고 장소를 물색하시던 중에 장수산의 맥이 여기 뻗쳐 있는 것을 보시고 해운정사를 지으셨다고 하셨는데, 지금 짓고 계 시는 108평 큰 법당 불사도 그렇게 즉흥적으로 하신 것 입니까? 答 : 3년 전부터 만반준비를 했지. 問 : 중생들이 생각하는 알음알이, 계산, 계획과 조실 스님이 절을 지으시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까? 答 : 물론 차이가 있지. 혜안으로 미래사를 직견하고 바로 하 는 것이지만 장소와 시주자와 여러 가지 조건이 되어야 지....... 問 : 여기 해운정사가 장수산의 정맥으로 조실스님의 인연 도 있는 것이지만 불·보살님의 가피도 입어서 절을 지 으신 것은 아닌가요? 答 : 가피는 생각 않고 그냥 세속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들에 게 법을 펴기 위하여 여기에 자리를 잡은 것이지. 이렇 게 좋은 조건의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은 속세에 많은 사 람과 인연이 있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보 다 도 부처님 법을 바르게 지도하고 바른 안목을 가진 자가 나와야 하는 것이지. 問 :〈업장소멸〉이 된 사람과 〈업장소멸〉이 안 된 사람 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答 : 업장은 과거의 여러 가지 습기인데, 중생은 그 습기가 없어지질 않지. 견성을 해야 없어지는 것이지. 問 : 견성을 해야 업장이 소멸되는 것이라면 조실스님은 업 장이 소멸된 것이네요. 업장이 소멸되지 않은 사람도 각기 업의 가볍고 무거운 차별이 있는 것입니까? 答 : 덜하고 더한 경중이 있지. 問 : 업의 최초의 시작은......? 答 : 본심본성을 한 생각 등지므로 인해서 한 생각을 좇아서 온갖 생각이 점차 일어난 것이지. 모두 자성삼매(自性 三昧)를 수용하면 생각이 붙지를 못하는데, 한 생각 일 어남으로 인해서 퇴보하게 되어 천차만별의 분별이 일 어나 는 것이지. 問 : 깨달으면 과거·현재·미래의〈삼세〉가 하나로 통일되 어서 일념으로 간다고 하는데, 전생·현생·미래를 안 다고 하는 것은 외도입니까? 答 : 그것은 본심으로 돌아가면 알게 되지. 問 : 깨달으면 확연하게 다 알게 됩니까? 答 : 그렇지. 問 : 확연하고 명백하게 아는 것은 확철대오라고 하는 것이 고, 희미하게 아는 것을 그냥 안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 : 구경(究境)에 이르러야 바로 아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지. 問 : 화두를 하면 마음이 편안할 때도 있지만, 괴로울 때도 있는데 이것은 화두를 바르게 참구하지 않기 때문입니 까? 答 : 그렇지. 분별이 꼬리를 물고 따라 다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問 : 조실스님이 보실 때 한국 불교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答 : 모두를 한 군데에 모아놓고 참선을 지도해서 인·아상 을 쉬게 하여 마음광명을 찾음으로 인해서 종단이 화합 하고 온 나라가 불국토가 될 것이다. 껍데기 불교는 소 용이 없는 것이지. 問 :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의 삼현 (三玄)이 임제의 가풍이 아니라고 스님은 그러시는데, 임 제록에는 삼현이 나오는데요? 答 : 그것은 고탑주라는 후손이 자기의 사견으로서 성립시킨 것이지. 임제선사의 삼현 현지(玄旨)와는 거리가 멀다. 問 : 생사를 넷으로 나누어서 지무생사(知無生死)·체무생사 (體無生死)·계무생사(契無生死)·용무생사(用無生死)라 하고 이것을 교가의 이무애(理無碍)·사무애(事無碍)· 이사무애(理事無碍)·사사무애(事事無碍)와 비교하면 서 로 맞는데, 이러한 것들을 후학이 알아야 하는 것인지, 깨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인지.....? 答 : 깨치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인데,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 부러 알려고 할 필요는 없지. 임제와 고인의 살림살이 는 살활종탈(殺活從脫), 기용제시(機用提示) ― 죽이고, 살리고, 주고, 뺏고, 기·용의 자재에 있는 것이지. 그러 니까 바보가 되어서 화두와 씨름을 해서〈일념삼매〉가 되어야 하는 것이야. 問 :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사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答 : 나는 권하지를 않아. 왜냐하면 〈장좌불와〉를 해도 혼 침이나 몸에 끄달리지 않는 상태이면 좋지만 억지로 하 려면 어려운 것이지. 화두가 일념으로 지속되면〈장좌 불와〉가 저절로 되고 혼침도 없어지고 괴로움도 없어 지게 되는데 흉내내서 되는 것이 아니거든. 괜히 시간 낭비이고 몸만 망치게 되어서 실다운 소득이 없게 되 지. 몸은 기계와 같아서 기계에 기름을 치듯이 몇 시간 을 쉬고 맑은 정신에서 혼침과 망상에 끄달리지 않고 정진을 해야 하 는 것이지. 問 : 오후 불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答 : 건강을 유지할 정도로 적당히 먹는 것이 좋지. 問 : 화두만 바로 하면 장좌불와, 묵언, 일종식(一種食) 등은 저절로 되니까 조작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것이 지요? 答 : 그렇지. 화두만 바로 하면 되는 것이지. 問 :향상구(向上句)·일구(一句)·최초구(最初句)·말후구(末後句)·상신실명(喪身失命)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의 체 (體)의 자리로 밥을 먹으나 잠을 자거나 이대로가 일구 (一句)이고 여기서 털끝만큼이라도 표현하고 하면 동념 즉괴(動念卽乖) 즉, 움직이면 어긋난 것이 되어서 따로 법문을 하는 것도 죽은 것인데, 조실 스님은 향상구와 일구 를 다르게 보십니까? 다르다고 전에 하셨는데...? 答 :『향상구』를 알면〈일구〉를 알고,〈일구〉를 알면『향 상구』를 아는 것이지. 향상구와 향하구, 최초구와 말후 구, 일구와 이구가 번복되면 안되는 것으로, 같은 몸이 라도 머리·손·발이 있는 것처럼 각 부분이 있는 것인 데, 미(迷)한 자는 이것을 가리지 못하지. 問 : 초당파 공안 같은 것은 일구소식(一句消息)이 아닙니까? 答 : 모든 공안은 다 다른 것이지. 이 방 안에 책상이 있고 또 꽃도 있고 책, 단주, 안경이 있지만 각 역할이 틀리 듯이 공안도 다른 것이지.『향상구』를 모르면 용도를 나누지 못하는 것이고 이치적으로 서로 맞아야 하는 것 이 지.〈돈오돈수〉가 된 사람이면 이렇게 가릴 줄 알고 시비가 없지. 모르는 사람은『할』이나『방』밖에는 못 하는 것이야. 問 : 평상심(平常心)이란 무엇입니까? 答 : 먹고 자고 하는 일상생활 그대로가 평상심이지. 問 :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목마르면 물 마시는 것이 평상심입니까? 答 : 그렇지. 問 : 도인의 평상심과 속인들의 평상심은 어떻게 다른 가요? 答 :도인과 범부는 다르지. 중생은 모든 생활에 일일이 집착 하는 반면에, 도인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지. 평상심이 라는 것은 도인의 깨달은 경계를 생활화하는 것이지. 問 : <생사가 둘이 아니라는 말>과 <생사가 없다는 것> 은 다릅니까? 答 : 생사가 둘이 아니라는 것은 생(生)하는 이치나 사(死)하 는 이치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시 진리 자체에는 생도 사도 없다. 問 : 깨닫고 나면 작용하는 망상이나 생각이 없습니까? 答 : 그대로 진법(眞法)으로 돌아가는 거지. 問 : 그러니까 망상 그대로가 보리(菩提)가 된다는 것입니까? 答 : 망상이란 자체가 없는 것이지. 問 : 욕심(欲心)과 탐심(貪心)의 차이는 어떠한지요? 答 : 오십보백보지. 問 : 스님들께서는 무심으로 소유욕 없이 살아가라고 하시는 데 중생들이 소유욕 없이 무심으로 살 수 있습니까? 答 : 그럴 수 있지.『참나』를 알면 온 법계를 알고 온 중생 과 한 몸이 되어 절대 평등이 되게 되지. 그렇기 때문 에 모든 사람들이 견성을 하면 지상이 불국토가 되고, 모든 백성이 부모 형제로 한 몸이 되어서 아귀다툼이 없고 항상 평온하고 안락하게 되지. 問 : 바른 선지식을 바르게 믿어야 한다는데 중생은 눈이 없 는데 어떻게 선지식을 바르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答 : 중생은 안목이 없기 때문에 바른 선지식을 가리기가 어 렵지.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스승에게 탁마(琢磨)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거든. 혼자서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바른 것이 아니고 스승에게서 인가를 받은 분을 따르면 백 생애를 닦아야 할 것을 한 생에 바르게 닦아 깨치게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중구난방(衆口難防)으 로 <이 사람도 선지식이고, 저 사람도 선지식>이라고 쫓아다니다 보면 사견에 떨어져서 정진에 진척이 없고 업에다가 업을 더 보태게 되지. 그래서 대도(大道)와는 거리가 멀어져서 깨달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야. 결국 본인이 정진을 해서 닦아야 하는 것이지. 問 : 눈 없는 사람은 선지식을 가리지 못하겠네요? 答 : 그렇지. 안목이 없이는 상대를 바로 볼 수 없지. 問 :《금강경》에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버리라> 고 하는데 중생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버리 고 생활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答 : 중생은 먹고살아야 하니까……. 참으로 올바르고 건 전한 생활은 <내가 없는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이 고, 그래야 복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 問 : 아상이란 무엇입니까? 答 : <내가 제일이다, 내 법이 제일이다, 내가 잘 났다, 내 가 잘 한다, 내가 많이 안다, 내가 많이 가졌다> 하는 것이 다 아상에 속하는 것이다. 진정한 부처님법에는 대오(大悟) 하면 이런 것이 없게 되지. 問 : 재가자(在家者)는 어떻게 해야 참답게 사는 것입니까? 答 :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지해서 자기를 개발하는 수행을 하루하루 쌓아 가는 가운데 직분에 따라 성실하게 사는 길이지. 問 : 수행하는 데 있어서 재가자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 으로 지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答 : 참선을 하는 사람이 혼자서 사는 것은 좋은 것이지. 『참나』를 알기 위해서 그 길을 가는 것이고. 아주 값 진 생활이지. 問 : 출가자와 재가자의 수행에 있어서 그 차이점은 무엇입 니까? 答 : 출가자는 혼자의 몸으로 홀가분하고 재가자는 처자가 있어서 생활을 하니까 번거롭지. 그러나 최상승법에서 는 바른 신심으로 바른 법을 구하는 철두철미한 생각 을 갖고 바른 선지식을 만나서 바른 수행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승속(僧俗)에 관계가 없지. 問 : 총림(叢林)으로 출가를 하는 것이 좋습니까? 答 : 안목이 근본인데 총림의 방장이라도 모두 안목이 투철 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한국 불교의 현실이거든. 절이 크다고 해서 일등 수행인이 사는 곳은 아니야. 問 : 출가하는 사람은 어떠한 곳으로 출가를 하여야 합니까? 答 :『참나』를 발견하는 데는 절대적으로 선지식(善知識) 이 근본이다. 선지식은 부처님의 대행인(代行人)이야. 출가 는 견성대오(見性大悟)를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거든. 問 : 꿈과 잠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答 : 잠으로 인해서 꿈을 꾸는 것이지. 問 : 그럼, 꿈과 잠이 똑같은 것입니까? 答 :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이 없는 법이거든. 망상이 있는 중 생이 망상이 그대로 꿈이 되는 것이지. 問 : 음욕심〔性欲〕은 어떻게 없앨 수 있습니까? 答 :전생의 습기로 축생이나 사람이나 다 익힌 것이지. 다겁 생에 익힌 것으로 아주 예민한데 이것을 없애려면 정진 해서〈일념삼매〉가 되어야 하지. 좋고 나쁜 것이 차 단이 되어서 깨달으면 모든 습기가 일시에 다 제거가 되지. 問 :《선가귀감 禪家龜鑑》에 서산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즉돈오 사비돈제(理卽頓悟 事非頓除), <이치로는 깨 달았어도 습기는 제하지 못했다> 하셨는데요. 答 : 그것은 모순이지. 육조대사도 금을 캐어 녹여서 잡금을 제하면 순금이 된다고 하셨지. 물에 있으나 산에 있으 나 순금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이 견성을 하면 습기와 는 상관이 없는 것이지. 번뇌가 곧 보리, 완전히 진리로 돌아갔는데 번뇌에 놀아나게 되겠는가. 問 : 낮에는 화두가 잘 되는데 꿈속에 화두가 안 되는 이유 는? 答 : 아주 간절하게〈참의심〉이 순일되어야 꿈속에서도 화 두가 이어지게 되지. 問 : 조실스님은 화두가 언제 어디서나 꿈속에서도 이어졌 나요? 答 : 나는 결제, 해제에 관계없이 정진을 했었지. 아주 간절 한 일념이 지속되다가 깨달았지. 問 : 잠깐 사이에 깨치셨습니까? 答 : 잠깐 사이가 아니고 아주 간절하게 일념으로 화두의심 이 지속되다가 깨쳤지. 問 : 시간적으로 얼마나 됩니까? 答 : 모르겠다. 問 : 며칠간은 일념이 지속된 것이지요? 答 : 전 생애를 화두에 걸고 생활을 했었지. 問 : 태고 보우국사는 오매일여가 90일간〔가을∼이듬해봄〕 이어졌다고 하는데요? 答 :〈선정삼매〉에 들면 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고 세월이 가는 것이지. 석가모니 부처님도 삼매에 드셔서 새가 둥지를 트는 것도 모르셨다고 하셨거든. 누구든지 삼매 에 들게 되면 길고 짧은 것을 논하게 되지는 않지. 問 : 외도(外道)들은 <기(氣)가 있어야 한다. 기를 잘 돌려야 한다>고 하는데 기(氣)는 무엇입니까? 答 :견성법은 기(氣)를 논하지 않고 오직 바른 안목을 논하지. 이 몸은 백년 이내에 없어지거든. 수행인은 그런 것 에 집착하지 않아야지. 問 : 죽는다는 것은 슬픈 것입니까? 答 : 가고 오는 것을 모르고,『참나』를 모르니까 적막하고 막막해서 슬프다고 하는 것이지. 問 : 죽은 후에도 자기가 닦은 것은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지 요? 答 : 그렇지. 지혜·복덕·업, 이 세 가지는 가지고 가지. 問 : 참다운 근기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까? 答 : 부처님의 대승법·최상승법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 아 들이는 대기(大機)를 말하는 것이지. 問 : 수좌스님들이 몇 년간 정진을 하다가 강원으로 들어가 는 것은 신심이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까? 答 : 신심이 빈약하고 참다운 발심을 못한 고로 그러한 현 상이 일어난다. 출발 자체도 진정한 신심이 아니고 남 이 하니까 나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하다가 정진이 힘들고 진취도 없으니까 자포자기하고 다른 길로 가는 것이지. 問 : 그러니까 한번 수좌가 되면 끝까지 수좌의 길로 가야 하는 것이지요? 答 : 그렇지. 발심한 사람은 구경에 이를 때까지 불퇴전의 신 심으로 정진을 해야 하지. 問 : 화두가 일념이 되기 전에 다른 길로 가는 것은 신심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 가요? 答 : 그렇지. 정진삼매의 진가(眞價)를 모르니까. 問 : 초보자에게 권하시는 책은? 선가귀감(禪家龜鑑)이나 육 조단경(六祖壇經)? 答 :《육조단경》이 좋지. 심요(心要)의 비결이《육조단경》 에 있지. 問 :《서장 書狀》은 어떻습니까? 答 :《서장》은 화두를 들고 공부하라는 거지. 問 : 조실스님께서도 전에《육조단경》을 많이 보셨습니까? 答 :《육조단경》을 수행의 길잡이로 삼았다. 問 : 결제 기간 중에 원주·다각 등 소임을 맡는 것은 어떻 게 생각하십니까? 答 : 禪은 동정(動靜)가운데서 익히는 것이지. 일거일동, 일상생활 가운데서 화두와 씨름을 하면서 익 혀야 하는 것이지. 問 : 선지식이란 말과 스승이란 말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答 : 스승은 은사·법사 스승 등 많고, 선지식은 부처님의 진 리를 깨달아 안목을 갖춘 분을 말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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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지 부탁올림니다.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