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날개 단 Story, 무한 진화의 가능성을 보다
글 | 심재추(국문 78)
디지털 시대 문학에 대한 우려와 부정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활자 형태에 머물렀던 Story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다원화된 가치관과 발전하는 미디어의 옷을 입고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발휘하며 변형, 조합, 재탄생함으로써 문학은 더 훌륭한 진화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인간의 모든 사고와 인식이 집약되어 있는 문학은 종이책의 근대성을 벗어던지고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해 더욱 다원화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문학의 외형적 변형만을 우려하기보다는 근대성을 벗어버린 디지털 문학이 가진 가능성을 볼 때이다.
문학은 이야기 곧 Story를 기반으로 한다. 소설은 물론 시나 수필, 희곡과 시나리오를 망라하여 모든 문학작품의 중심에는 Story가 존재한다. 과거 근대 문학은 Realism을 근간으로 해왔다. 문학은 인간이 언어를 통해 현실의 사상과 사건, 삶의 진실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이처럼 문학이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 특히 어두운 현실을 사실적으로 조망한다는 것은 문학이 우리 사회 속에서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문학이 변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문학의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근대 문학이 텍스트 중심의 문학이라면 디지털 문학은 다양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자유분방하고 새롭게 변형, 통합되면서 재탄생하고 있다. 이 글은 Realism에서 벗어나 표현 매체부터 주제, 구조, 주체 등 문학이 가진 모든 요소를 디지털화하고 있는 이 시대 문학의 현재 위상을 점검함으로써 미래 가능성을 조망하고자 한다.
표현매체 : 문자(글)에서 영상매체으로의 전환
근대 문학의 텍스트가 화자의 말하는 방식을 통해 많은 것을 표현한다면 디지털 문학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시청각 매체를 통해 상황과 감정을 전달하는 독특한 문체를 형성한다. 즉 문학의 문체가 과거 구어체에서 문어체로, 그리고 이제는 다양한 매체를 기반으로 하는 영상, 음향, 그래픽,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디지털 문체로 점점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근대 문학의 경우 작가가 개입하여 직접 설명하거나 주관적 판단이 우세한 반면 디지털 문학은 구체적 설명 대신 텍스트의 세밀한 묘사, 섬세한 영상의 변화, 적절한 음악 등을 통해 상황을 설명해 나간다.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철저하게 읽고 보고 듣는 이로 하여금 판단하도록 한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인해 단순히 어투로 나타나던 문체가 소리와 영상을 입고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느낌의 표현방식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의 성공에 뒤따르는 OST의 성공은 디지털 문체의 영향력을 증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미디어 환경이 다양해지고 그 기술 수준이 발전하면서 가장 눈에 띠는 문학의 변화는 문학 텍스트의 시청각화, 즉 음악, 음성, 그래픽과 일러스트 등을 혼합한 Story의 영상화이다. 영화, TV드라마, 애니메이션, 컴퓨터 게임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디지털 기술에 의한 이 같은 Story의 형질 변화는 또한 하나의 순서나 흐름이 사라지고 책에서 영화로, 애니메이션에서 영화로, 그리고 다시 책으로 무한 재생산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문학을 이제 단순히 책이 아닌 다양한 영상매체를 통해 일상적으로 향유하고 있다.
디지털 문학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인터넷 문학이다. 출판 문학에서 벗어나 블로거들은 누구에게나 열린 인터넷을 통해 소설을 쓰고 독자들과 쌍방향 소통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귀여니의 로맨스 소설들이다. ‘그놈은 멋있었다’ 같은 귀여니의 소설들은 인터넷에서의 성공을 토대로 출판, 영화화되었다.
이렇게 인터넷이 책으로, 책이 영화로, 드라마로 변형되고 재생산되는 것이 바로 디지털 문학이다. 실례로 과거 ‘소나기’나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비롯해 최인호의 소설 ‘해신’, 황석영의 ‘장길산’, 박경리의 ‘토지’, 노승일의 ‘올인’,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와 김탁환의 소설 ‘불멸’ 등은 TV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암울했던 80년대, 운동권 학생의 고뇌와 사랑을 그린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을 비롯해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등은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러면서 소설이 다시 많은 관심을 얻게 된 사례로 꼽힌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종종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식객’과 ‘친구’이다. 두 작품은 모두 영화로 만들어진 뒤 다시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각 매체에 적절한 Story로 변형되었다. 해외의 사례이지만 단순한 게임 시나리오가 탄탄한 Story를 통해 영화화된 경우도 있다. ‘툼레이더’, ‘레지턴트 이블’, ‘사일런트 힐’ 등이 그렇다.
디지털 구조 : Reality의 세계에서 가상현실(Virtual Reality)로
근대 문학의 배경은 바로 작가로 대변되는 주인공 ‘나’가 존재하는 공간, 즉 ‘지금, 여기’이다. 철저한 Realism을 바탕으로 한 근대 문학의 시공간 역시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시공간 개념의 중요성이 다소 상실된 디지털 문학의 경우 그 배경은 국경은 물론 우주를 넘어서 공간 개차원, 현재와 과거, 미래를 오가고 심지어 상상할 수디지털 문학라면 어떤 문학든 Story의 배경으로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실존 인물과 가상현실을 접목한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국민적 희망을 드러내며 폭발 적 지지를 얻기도 하였다.
역사 속 신라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미실’과 드라마 ‘선덕여왕’, 수퍼컴퓨터가 지배하는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 ‘매트릭스’, 우주와 신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신’, 우주 어느 행성으로 추측될만한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스타크래프트 게임 시나리오까지 디지털 문학의 배경은 차원을 넘나든다. 이는 로맨스, 역사, 추리, 무협, SF 등 문학의 장르와 소재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디지털 문학 속에 현실처럼 지각 가능한 환상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까닭이이기도 하다.
이와 아울러 근대 문학이 평면적이고 단일한 구성을 보이는 반면 디지털 문학은 다양한 인물이 다양한 사건을 만들어나가는 만큼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구성을 보인다. 특히 영상물의 경우 이 같은 복잡성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는 디지털 문학의 주제나 소재가 단순하지 않고 다원화된 사고방식이 지배적인 까닭이다.
여기에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디지털 문학은 기존의 선형적 구조를 벗어난 비선형적 구조를 나타내게 된다. 즉 스토리가 원래 가진 플롯을 벗어나거나 수용자로 하여금 결말을 상상하게 하는 열린 결말을 취하는 등 수용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비선형성이 두드러진다.
텍스트의 형식을 취하는 근대 문학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표현할 충분한 공간의 여유를 갖는 반면 영상화된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디지털 문학의 경우 그 모든 사건, 장면, 심리 등 모든 것이 단순한 몇 개의 이미지로 압축된다. 따라서 디지털 문학에서 Story는 구구절절한 설명이 이어지는 선형적 구성이 아닌 집약된 영상과 음향이 잘 짜여진 플롯 속에 구조화된다.
주체 : 현실 속의 ‘나’에서 주체적인 ‘나’로
근대 문학의 생산 주체와 소비 주체가 확연히 구분되는 반면 디지털 문학의 경우 생산과 소비 주체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는 추세다. 인터넷의 발달로 사이버 공간에서 누구나 Story를 만들어 공개할 수 있다. 또한 양방향성이 가능해지면서 하나의 Story에 수많은 주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TV드라마나 연재소설의 Story가 시청자와 독자들의 댓글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설가 이외수가 인터넷 채팅을 통해 독자들과 양방향 소통을 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작가로서 더욱 확고한 자리매김을 한 것 역시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디지털 문학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Stroy의 주체도 달라졌다. 박태원의 ‘구보씨의 하루’, 이상의 ‘날개’ 등 근대문학 속에 등장하는 주체, 즉 주인공 ‘나’는 현실 속의 작가 자신이다. 반면 디지털 문학은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특별한 삶을 사는 주인공을 주체로 삶고 있다. 역사극에 판타지적 요소와 고도의 컴퓨터 그래픽을 가미한 드라마 ‘태왕사신기’ 속의 광개토대왕, 기존 역사물과 달리 왕의 시각에서 벗어나 광대 혹은 내시가 주체적인 ‘나’로 등장하는 영화 ‘왕의 남자’와 드라마 ‘왕과 나’ 역시 다양성을 추구하는 디지털 문학의 면모를 보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표현의 자유가 비교적 큰 애니메이션의 경우 '아기공룡 둘리’처럼 주체 선정에 있어 한 차원 높은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 이 같은 훌륭한 상상력의 산물은 2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주제 : ‘행복하기’ 위한 욕구에서 ‘즐기기’ 위해
근대 문학이 개화를 촉구하는 계몽사상, 일제로 인한 국권 상실과 가난에 대한 인식, 저항의식, 비판적 사실주의, 현실에 대한 병적인 종말론, 범죄나 인간소외 등 사실주의적 시대상황을 극복하고 그 속에서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구를 주제의식으로 가지고 있다. 반면 디지털 문학은 행복지려는 욕구를 표현하기 보다는 삶과 문학 자체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력히 표현된다.
2000년대 들어서 디지털 문학은 환타지, 연애, 무협, 과학 등 더욱 다양한 상상력으로 무장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궁’과 ‘다모’이다. 왕권이 그대로 계승된 한국 사회를 상상한 ‘궁’은 식민통치하에서 왕권이 소멸된 우리나라의 현실에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무거운 주제의식을 바닥에 감추고 주인공 10대들의 로맨스와 화려한 볼거리로 치장한 신세대 스타일의 Story를 완성하였다. 또 ‘다모’는 천민 신분이면서 직업적인 여형사 격인 조선시대 다모의 삶을 가상의 역사 속 인물과 사건 속에서 그려냄으로써 여성의 삶과 사고방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등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여성’에 대해 의미 있게 조명하는 한편 문학의 저변에 존재하던 ‘무협’을 당당한 하나의 문학 장르로 선보이기도 하였다. 디지털 문학은 이렇게 권선징악이나 현실고발과 같은 근대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문학 자체, 삶 자체를 즐기는 것을 주제의식 속에 담고 있다. 결국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면모 속에서 주체적으로 ‘삶을 즐기는 것’ 이 디지털 시대 문학이 추구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 문학에 대한 우려와 부정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활자 형태에 머물렀던 Story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다원화된 가치관과 발전하는 미디어의 옷을 입고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발휘하며 변형, 조합, 재탄생함으로써 문학은 더 훌륭한 진화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인간의 확장』에서 ‘매체는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 감각의 확장으로서, 인간의 지각 방식과 사고방식과 같은 세계 인식의 방식을 변화 시킨다’고 하였다.
인간의 모든 사고와 인식이 집약되어 있는 문학은 종이책의 근대성을 벗어던지고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해 더욱 다원화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문학의 외형적 변형만을 우려하기보다는 근대성을 벗어버린 디지털 문학이 가진 가능성을 볼 때이다.
(발문)
근대 문학의 텍스트가 화자의 말하는 방식을 통해 많은 것을 표현한다면 디지털 문학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시청각 매체를 통해 상황과 감정을 전달하는 독특한 문체를 형성한다. 즉 문학의 문체가 과거 구어체에서 문어체로, 그리고 이제는 다양한 매체를 기반으로 하는 영상, 음향, 그래픽,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디지털 문체로 점점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근대 문학의 배경은 바로 작가로 대변되는 주인공 ‘나’가 존재하는 공간, 즉 ‘지금, 여기’이다. 철저한 Realism을 바탕으로 한 근대 문학의 시공간 역시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시공간 개념의 중요성이 다소 상실된 디지털 문학의 경우 그 배경은 국경은 물론 우주를 넘어서 새로운 차원, 현재와 과거, 미래를 오가고 심지어 상상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Story의 배경으로 가능해진다.
근대 문학이 개화를 촉구하는 계몽사상, 일제로 인한 국권 상실과 가난에 대한 인식, 저항의식, 비판적 사실주의, 현실에 대한 병적인 종말론, 범죄나 인간소외 등 사실주의적 시대상황을 극복하고 그 속에서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구를 주제의식으로 가지고 있다. 반면 디지털 문학은 행복지려는 욕구를 표현하기 보다는 삶과 문학 자체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력히 표현된다.
(사진설명)
1. 디지털 문학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인터넷 문학이다. 출판 문학에서 벗어나 블로거들은 누구에게나 열린 인터넷을 통해 소설을 쓰고 독자들과 쌍방향 소통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귀여니의 로맨스 소설들이다. ‘그놈은 멋있었다’ 같은 귀여니의 소설들은 인터넷에서의 성공을 토대로 출판, 영화화되었다.
2. TV드라마나 연재소설의 Story가 시청자와 독자들의 댓글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설가 이외수가 인터넷 채팅을 통해 독자들과 양방향 소통을 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작가로서 더욱 확고한 자리매김을 한 것 역시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디지털 문학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3. Stroy의 주체도 달라졌다. 근대 문학의 Story 속 대표적인 주인공이 현실을 사는 나였다면 디지털 문학 속 주체는 당양한 가상현실 속의 주체적인 ‘나’이다. 광개토대왕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극에 판타지적 요소와 고도의 컴퓨터 그래픽을 가미한 드라마 ‘태왕사신기’는 역사와는 무관한 비현실적인 인물과 상황 설정에도 시청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심재추(필자소개)
심재추 님는 건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한국문학의 근대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 서울 및 충주캠퍼스에서 현대문학과 영상문학 등을 강의했으며, <한국 근대문학사 서술방법론 연구> <동서양 근대문학사 비교연구> 등 다수 논문이 있다. 현재 디지털에 관한 전문기획사인 ㈜디플랜네트워크를 설립, 간행물 발간 및 디지털콘텐츠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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