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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스크랩 2011 신춘문예당선작 (시조)
이보영 추천 0 조회 290 18.05.07 11: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울신문  

 

(당선작) 

 

추사 유배지를 가다  

                                        /성국희

 

 

 

유년으로 가는 길은 안으로만 열려있다

 

 

지나온 시간만큼 덧칠당한 흙먼지 길,

 

 

낮아진 돌담 사이로 먹물 자국 보인다

 

 

푸르게 날 선 침묵, 떨려오는 숨결이여

 

 

긴 밤을 파고드는 뼈가 시린 그리움은

 

 

한 떨기 묵란墨蘭에 스며 향기로 깊어졌나

 

 

허기진 어제의 꿈 은밀하게 달래가며

 

 

빗장 풀어 발 들이는 적막의 뒤란에는

 

 

낮달에 비친 발자국, 추사체로 다가선다

 

 

 

 

(당선소감)

 

 

-유년의 꿈, 그 아름다운 가슴앓이-

 

새들이 일제히 저녁놀을 끌고 떠난 만큼 되돌아오는 시간입니다. 나 또한 어김없이

서창을 열고 유년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습니다. 어린 두 눈에 찰랑찰랑 채워지던

그 저녁답의 가슴앓이, 오늘은 그 시절의 나를 찾아가 따뜻하게 안아 주었습니다.

한순간도 놓지 못한 간절한 바람이 가져다 준 커다란 선물은 아마도 서투른 내 삶의

편지를 읽어 줄 민병도 선생님과의 만남일 것입니다. 매서운 채찍질과 정성 가득한

말씀들을 이끼 앉지 않도록 닦아가며 뿌리 깊이 채우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가슴깊이 감사드리며, 바른 길을 따르는 제자가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또 귀한 인연으로 가족이 된 한결 동인 선배님들, 기쁘게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누구보다도 더 기뻐하실 아버지, 어머니 제 행복을 다 드려도 부족할 듯합니다.

텅 빈 가슴을 채워 줄 한줄기 햇살이라도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또한 글에 대한 나의

마음에 격려와 박수를 아끼지 않고 지켜봐 주는 남편과 범주, 승주에게 고맙다는 말도

함께 전합니다. 부족한 글에 담긴 불씨를 살려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서울신문사에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우리 민족 문학의 귀한 자산인 ‘시조’, 그 정돈된 깊은 뿌리에서

삶의 자세를 배우고 있습니다. 시조의 품격에 자부심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에 정성을 다하는 시조시인이 되리라 다짐해 봅니다.

 

 

약력

-1977년 경북 김천 출생

-한결 시조 동인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중

-제6회 백수 정완영 전국 시조 백일장 장원

 

(심사평)

 

-역사적 글감에 현대정서 더한 수작-
 
신춘문예 등단 신인들의 새뜻한 작품을 읽으며 새해 아침을 여는 마음은 늘 새롭다.

그들의 힘찬 날갯짓은 희망과 꿈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금년에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아 심사과정에서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결과 성국희씨의 ‘추사 유배지를 가다’를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작품은

역사적 글감에 현대적 감성과 정서를 배합하여 시대를 넘어선 시조 가락으로 알맞게

뽑아냈으며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형상화하여 현대적 어법으로 살려낸

점이 우수했다. 최종심사에 오른 진수씨의 ‘지상의 방에 들어’는 뛰어난 착상으로

시조가 낡은 테마라는 인식을 벗어나게 한 작품이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 겹겹이

고인 삶의 진실한 단면을 유창하게 이끌어간 표현이 돋보였으나 당선에는 밀렸다.

고은희씨의 ‘색소폰 부는 난설헌’은 역사적 숨결의 속 울림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이었음에도 주제의식이 약해 보였다.

장윤혁씨의 ‘서울 타클라마칸 사막’은 탄탄한 구성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소재 선택에서

망설이게 했다. 송필국씨의 ‘사리 기어가다’는 섬세한 묘사와 유연한 가락으로 이미지를

잘 살려낸 작품이었음에도 강하게 끌어당기는 뒷심이 부족하게 여겨져 아쉬움을 남겼다.

- 이근배·한분순 -

 

 

경상일보
(당선작) 

 

그 자리

                                         /김진수

 

우리 그날 마주보며 깊도록 껴안을 때
정겨운 너의 손이 깍지 끼던 그 자리
내 손은 닿지를 않아 그만큼이 늘 가렵다

 
찌르르, 앙가슴에 불현듯 전해오는
무자맥질 심장소리에 사과 빛 물든 등 뒤
네 손길 지나간 자리 바람이 와 기웃댄다
 

그 여름 지나느라 소낙비 지쳐 울고
푸르던 내 생각도 발그레 단풍졌다
아직도 남은 온기가 강추위를 견딘다

 

 

(당선소감)

 

 

 

남녘바다 草島(초도)의 작은 풀씨에게 섬과 섬을 돌아 환청의 거리로 달려온 목소리,

‘축하합니다’ “뼈속까지 내려가 보라”던 나탈리 골드버그의 목소리가 뒤따라 들려왔습니다.

온 세상의 소리란 소리, 생각이란 생각들이 일순간에 멈춰 합성되는 듯한, 당선을

알리고 확인하는 몇 마디도 아득한 저쪽의 소리였습니다. 문득 나의 이름과 나이,

오랜 날을 끌고 온 시심까지 한순간에 아득히 지워졌습니다. 불혹의 나이에 ‘건넌다’

는 것이 참으로 아찔한 모험과 긴장이였지만, 어쩌면 지치고 무너지려는 나를 떠받쳐

지탱해주는 힘이기도 했습니다. 할 수 있다는, 질긴 동아줄 같은 믿음이었습니다.

비바람과 풍랑이 시시때때로 휘몰아쳐도 금세 서로를 끌어안아주던 수평선. 이념과

사상, 빈부와 계층 간의 분열과 갈등을 한없이 보듬어준 것이 내 고향 푸른 바다였습니다.

그 깊은 가르침을 새해 첫 마음으로 올립니다. 손 내밀면 언제나 따뜻한 ‘그, 자리’ 에서

마음을 이어주는 벗이 되고 위로가 되고, 더불어 가는 꿈이 되고 싶습니다.

부끄럽기 그지없는 작품을 더 큰 의미로 보듬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변함없는 믿음으로 힘을 주신 스승님과 아내, 어머니와 아이들의 얼굴이 맑게 얼비칩니다.

진정으로 다가서기위해 한걸음 물러서서 견뎌온 나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고요해집니다.

 

1959년 여수에서 태어나서 자람

 

 

(심사평)

 

-주제의식·참신성 돋보이는 수작 -

 

신춘문예 당선 작품은 기성시인을 뛰어넘는 새롭고 신선한 것이어야 신인으로서의 조건을

갖춘 것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예선을 거쳐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 16편을 읽은 후 8편을 골라내었다. 이들

작품을 다시 반복해 읽은 다음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그, 자리’ 를 선택했다.

작품 ‘그, 자리’ 는 깔끔한 시어 선택에, 짜임새 있는 구성, 강한 주제 의식으로 작품의 참신

성을 획득한 수작(秀作)이다.

이외 최종심에 오른 ‘비’는 섬세한 묘사에 시적 서정을 담아냈으며 작품의 균형 감각을 이뤄

낸 점이 돋보였으나 기성세대에서 흔히 다뤄졌던 소재여서 망설이게 했다.

‘휴대폰’은 우리 생활 속에서 일상화된 소지품을 시적 대상으로 삼아 현대적 감각으로 이끌

어간 점이 우수했고, ‘조간신문을 읽다’는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을 대상으로 시상을 유연

하게 풀어나간 솜씨가 뛰어났으나 당선에는 미치지 못했다.

‘섬에서 온 편지’ ‘파씨’ 등도 저마다의 개성과 특색 있는 소재를 선택하여 글감을 다루는 솜

씨가 세련되었으나 한 편만을 당선작으로 뽑아야 하는 고충이 따랐다. 더욱 분발하여 앞으로

좋은 기회를 맞이하기 바란다.

-한분순-

 

 

제주 영주일보

 

(당선작)

 

제비집  

                                   /임 태 진

 

 

푸른 오월 하늘에 제비 한 쌍 날아와서
한 올 한 올 물어온 흙더미와 지푸라기
이 세상 가장 튼튼한 집 한 채를 지었다

 

사글세로 떠돈 세월 돌아보니 아득한데
앞만 보고 달려온 날들의 보상인 듯
한 생애 빛나는 훈장 처마에 걸리었다

 

집이래야 단칸방 남루한 살림살이
굳이 인가에 와 터를 잡는 이유는
질기디 질긴 인연을 내려놓지 못함이다

 

결국 산다는 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강남으로 돌아갈 날 죽지로 헤아리며
해마다 삶의 이력에 둥지를 틀고 산다

 

(당선소감)

 

 

 

‘언 가슴에 온기를 전할 수 있는 글 쓰고 싶어’

 

당선 소식을 접하고 나서 한 동안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찰나에 시와 함께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고교시절 윤동주, 한용운님의 시를 유독 좋아했었던 기억,

90년도에 방송통신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여 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시와 인연을 맺었던 기억, 그 후 6년 동안 열정적으로 글을 쓰다가

시대 변화와 생활고 때문에 한동안 시 가슴을 닫았던 기억까지,

그렇게 10여년이 흐른 2008년에 정드리문학회에 가입하여 다시 시

가슴을 열고 지금까지 글을 써왔습니다.

한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보냈던 무수한 시간들, 힘든 싸움이었지만

정드리문학회라는 기댈 언덕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카페의

작품토론방과 오프라인을 통한 합평회를 하면서 쓰고 지우고를 수없이

반복해 왔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말로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 어쩌면 저도 오랫동안 오늘을 꿈꾸어

왔기 이러한 영광이 찾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주신춘문예 당선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잘 압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제주의 아픔과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고 언 가슴에

온기를 전할 수 있는 따뜻한 작품 한편 쓸 수 있는 그날 까지 끄덕끄덕

걸어가겠습니다.

설익은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신춘문예의 장을 마련해주신

뉴스제주신문사 관계자께 머리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구좌119센터 직원들과도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조금이나마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앞으로는 모든 걸 작품으로 말하겠습니다.

 

(심사평)

 

2011년 뉴스제주 ‘영주일보 신춘문예’는 전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작품을 보내왔다.

심사위원들은 267편에 이르는 응모작을 윤독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우리의 민족문학인

시조에 대한 열정이, 바다 건너 탐라까지 불꽃처럼 타올랐기 때문이다.

제주지역 신춘문예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응모하신 많은 분들이 제주의 정서를

작품에 펼쳐 보였다. ‘해녀, 용두암, 오름, 서귀포, 우도’ 등이다. 작품을 무리하게

이끌고 가느라 그러한 시적 주제들이 큰 결실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생활 속에서

발견한 소재들을 긴강감 있게 끌고 가는 응모작들이 눈에 띄었다. 감상을 진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치밀한 묘사와 관찰로 새로운 감흥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최종심에 오른 임태진의 「제비집」, 이창선의 「섶섬」, 오창래의 「우도 생각」,

문제완의 「石衣, 바위가 옷을 입다」, 백점례의 「물의 길은 희다」가 올라왔다.

 

「우도 생각」은 우도를 어머니와 아버지의 절규로 중첩시키면서 시적 발상을 전환

하였으나, 언어를 함축시키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石衣, 바위가 옷을 입다」는 4수로

이끌면서 시적 전개는 무리가 없었으나 부분 부분을 설명으로 처리해 전달의 힘이

약했다.「물의 길은 희다」는 시조를 다루는 부드러움의 힘은 앞섰으나 주제를 살리지

못해 난해한 면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임태진의 「제비집」과 이창선의 「섶섬」으로 압축되었다. 이창선의「

섶섬」은 나뭇잎 섬으로 귀결하면서 그 풍경을 서귀포와 연결, 전개한 사유의 힘이 있었다.

예컨대 임태진이 다른 작품 「화재주의보」연작에서 보여준 삶의 비명과 탄식처럼.

그러나 「제비집」에서 사글세의 남루한 살림과 삶의 여정을 이입해 특히 “해마다

삶의 이력에 둥지를 틀고 산다”에서 볼 수 있듯이 춥고 가난한 우리 생의 아름다운

풍경과 서정의 밀도를 더 높이 평가했다.

 

심사 결과, 당선작으로 임태진의 「제비집」을 뽑았다. 앞으로 더 깊은 사유와 서정을

펼쳐 시조문학의 재목이 되기를 바란다. 끝까지 남으신 분들의 작품에도 깊은 애정을

금할 길이 없다. 이번 계기로 도약의 시간을 갖도록 부탁드린다. 

-이승은 · 박현덕-

 

 

 


경남신문

 

(당선작)

 

커피포트  

                             /김 종 영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비등점의 포말들

 

 

음이탈 모르는 척 파열음 쏟아낸다

 

 

적막을 들었다 놓았다

 

 

하오가 일렁인다


선잠을 걷어내어 베란다에 내다건다

 

 

구절초 활짝 핀 손때 묻은 찻잔 곁에

 

 

식었던 무딘 내 서정

 

 

여치처럼 머리 든다

 

 

설핏한 햇살마저 다시 올려 끓이면

 

 

단풍물 젖고 있는 시린 이마 위에도

 

 

따가운 볕살이 내려

 

 

끓는점에 이를까

 

 

 

(당선소감)

 

-마흔 넘어 얻은 소중한 친구-


마흔 넘어 새 친구를 얻었다. 그는 남의 말을 들어주기를 좋아한다. 어설픔과 쉬

흔들리는 변덕, 거친 호흡과 설익은 말도 그를 통하면 편안한 언어가 되었다. 내상을

치유한 감정은 자유를 갈망하며 길을 나서고 앞서간 임들의 땀방울을 통해 그의 마음

을 전해들은 날, 나목의 시린 발을 덮어주는 낙엽처럼 믿음이 쌓여 마침내 서로에 대한

의지가 깊어진 것일까? 시조, 그 친구는 나를 신춘문예 당선으로 이끌었다. 기쁨에

떨려 며칠 밤을 잠 못 이루게 하는….
청춘의 사랑 그 불꽃처럼 나에게도 아직 무엇을 태울 여력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나이

오십이 되어도 난 아직 천명은 알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시조의 혜안을 빌려 예순

칠순이 되어도 계속 앞으로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처음 차를 몰고 먼 직장에 도착했던 날.

뿌듯함보다 더 두려웠던 그 초보자의 심정으로 열심히 정진하여 나를 지켜 준 모두에게

시조의 향기로 보답하고 싶다.

문득 그리워진다. 맑게 얼음 언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오래된’ 친구들이.

그리고 늘 먼저 읽고 새로움을 일깨워준 아내, 기쁨으로 외워준 아들 딸, ‘아이들에게

시조를 짓게 하자’며 묵묵히 시조지도에 애써 온 우리 경남동시조연구회 회원님들, 해마다

신춘문예의 장을 마련해주시는 경남신문사와 졸작을 어여삐 여겨 뽑아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김종영씨 약력

◇1963년 창녕 출생

◇진주교육대학교, 창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경남초등교사 예능연구대회 시조백일장부문 장원(2008)

◇경남초등시조백일장 개최(2008~2010)

◇현 김해부곡초등학교 근무


(심사평)

다양한 매스미디어의 활성화에 반해 문학의 침체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기라도 하듯이 신춘문예 심사장의 분위기가

뜨거웠다. 예년에 비해 응모자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실험적인 작품도 눈에 띄었으며,

무엇보다 응모작품의 질적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는 ‘경남신문 신춘문예’가

지역의 한계를 넘어 전국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응모작품 가운데는 시조의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치열한 에스프리

로써 시적 성취를 보이는 작품도 있었지만,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를 드러내는 작품도

있었다. 또한, 시조의 기본인 음보에 대한 이해 부족과 가장 우리말에 대한 신뢰를 보

내야 할 장르에서 모국어에 대한 아쉬운 정성도 지적되었다.

 

언어의 절제와 응축의 미학을 추구하며 선명한 이미지를 구축한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마지막까지 끌었던 올해의 작품은 ‘오징어 일어서다’, ‘모래산에서 쓰는 편지’,

‘커피포트’ 등 3편이었다.

 

‘오징어 일어서다’는 오징어에도 뼈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작품으로 세속적 풍자성은

평가되지만, 시적 구성의 치밀성과 깊이가 지적되었다. ‘모래산에서 쓰는 편지’는 비교적

시적 완성도가 높으며 상당한 수련을 쌓은 응모자의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관념의 구체적 이미지화에 아쉬움을 남겼다. 2수 종장의 음보 문제도 논의점이 되었다.

 

언급한 2편의 작품에 비해 ‘커피포트’는 신춘 도전자들의 심경을 정갈한 시조의 형식에

잘 다듬어 갈무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는 시어의 처리가 돋보였다.

‘적막을 들었다 놓았다’라든지 ‘식었던 무딘 서정이/ 여치처럼 머리 든다’라는 첫수와

둘째 수 종장의 산뜻한 비유가 격조를 더하고 있어 후한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울림의 진폭이 좀 더 컸으면 하는 여운이 남지만,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할 수 있는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관점에서 심사위원들은 김종영씨의 ‘커피포트’를 당선작품

으로 선정하였다. 오늘의 영광이 대성의 길로 이어지길 기대하며 다시 한번 축하를 드린다.    

-이우걸·김연동-.

 

조선일보

 

(당선작)

 

신 한림별곡<新翰林別曲>


                                       /김영란


전갱이 잔뼈 같은 어젯밤 하얀 꿈도
북제주 수평선도 가로눕다 잠기는
은갈치 말간 비린내 눈이 부신 이 아침

바람소리 첫음절이 귤빛으로 물이 들고
닻들도 기도하듯 조용히 기대 누운
기우뚱 포구에 내린 오십견의 저 바다

우리가 불빛들을 희망이라 말할 때
행성처럼 떠도는 비양도 어깨 위에
등 뒤로 가만히 가서 손 한 번 얹고 싶다

 

(당선 소감)

 

 

-개미 가는 길에 이정표 세워줘서 감사-

베란다 창을 기어오르던 나팔꽃이 '무의미 연명치료'를 받던

어머니처럼 핏기 없는 알몸으로 겨울을 견디고 있다. 세상과

하직을 하기 위해 몸에서 하나씩 떼어내던 호스들이 마지막

잎새처럼 떨어져 나갔다.

그 아래로 전설 속 아픈 사연의 백일홍, 눈물로 피는 꽃이라는 듯

석 달 열흘 울다 닦은 얼굴이 부옇다. 바로 옆에 있는 샐비어.

혈색소 미달인 꽃잎마저다 떠났는데 유독 줄기 하나에 남아 있는

진주황 꽃잎. 그 꽃잎을 따라 개미가 길을 가고 있다.

길…. 이 세상 어디에나 길은 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든 길짐승

날짐승이 사는 세상이든 개미와 같은 곤충이 살아가는 세상이든.

수많은 길 중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은 것 같지만 또

그리 많지 않다. 그 길에서도 삶은 늘 우리에게 어느 길로 갈 거냐고

선택을 강요한다. 중요한 시점에서 길은 언제나 여러 갈래로 나 있기

때문이다. 개미는 샐비어를 택했다. 개미의 길은 샐비어 줄기인 것이다.

샐비어도 누군가의 길이 되고 있는데 나는 누군가의 길이 되어주고

있는가? 개미의 길을 보며 내가 가고 있는 길을 돌아보는 오후다.

내가 가는 길에 이정표를 곱게 새겨서 세워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우선 깊이 감사드린다. '독자로 남는 게 어떠냐' 타박은 하면서도 시가

 나와 있는 신문은 죄다 스크랩해줬던 평생지기 남편에게도 고맙단 말을

해야겠다. 주변에서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다. 마음

깊은 곳에서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응모 마감일에 꿈속에

찾아오셔서 귀띔을 해주신 시아버님과 아버님께서 사랑하시는 어머님.

두 분 영전에 영광의 꽃다발을 올린다.

▲1965년 제주 출생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신인 이지만 시상 전개 솜씨 빼어나-

신인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기성 작가를 뛰어넘는 참신성이다.

이번에 응모된 작품들의 특징은 고른 수준을 유지하면서 개성 있고

언어 감각이 뛰어났으며 대상을 장악하는 능력이 기성에 못지않았

다는 점이다.

당선작 김영란의 '신 한림별곡(新翰林別曲)'은 신인다운 신선함이

묻어나면서도 시상을 전개해 나가는 솜씨가 빼어났다. 반짝 낚아

채는 묘미, 강한 주제 의식 등이 언어 수련 과정을 상당히 거친 것

같아 믿음이 간다.

이외 최종심에 오른 성국희의 '시간의 길-천전리 암각화'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매우 세련되었고 구성의 완결성도 돋보여 당선작과

겨룬 우수작이었다. 진수의 '공작도시'는 개성 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으나 신인에게 필요한 참신성이 다소 약했다. 서덕의 '컴퓨터

대화법'은 소재 선택에서 오는 신선감은 충족시켰으나 작품 속에

흐르는 어둡고 침울함이 새해 분위기와는 거리를 느끼게 했다.

고은희의 '쉿!' 은 시상의 발상이 독특하고 응모 작품 모두가 고른 수준을

유지했음에도 기교적인 면이 지나쳐 밀려났다. 장윤서의 '봉숭아꽃

누이-디도스 바이러스'는 소재 선택, 구성력이나 글감을 다루는 솜씨가

나무랄 데 없었으나 내용에서 병적 우울함이 비쳐져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송필국의 '일어서는 빛-해송 현애(懸崖)'는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당선의 벽을 넘기에는 미진했다.

당선작은 한 편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최종심에 오른 우수한

작품들의 탈락이 아쉬웠다.

-시조시인 한분순-

 

동아일보

 

(당선작)


 쉿! 
                                      /고은희


아득한 하늘을

 

날아온 새 한 마리


감나무 놀랠까봐 사뿐하게 내려앉자


노을이 하루의 끝을 말아 쥐고 번져간다


욕망이 부풀수록 생은 더욱 무거워져


한 알 홍시 붉디붉게 울음을 터트릴 듯


한 쪽 눈 질끈 감고서 가지 끝에 떨리고


쉬잇! 쉬 잠 못 드는 바람을 잠재우려


오래 전 친구처럼 깃털 펼쳐 허공 감싼다


무너져 내리고 싶은


맨발이 울컥,


따뜻하다
 

 


 

(당선소감)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실개천이 게으름을 부리며 저수지로 흘러드는 곳이다.

그 길 따라 개암나무와 인동덩굴이 뒤엉켜 산다. 이곳에서 나는 불교의 연기

법칙을 생각했다. ‘존재를 믿는 사람은 소처럼 어리석다. 그러나 존재를 믿지

않는 삶은 이보다 더 어리석다.’ 이것은 곧, 자아는 우주 속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 시는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자연과의

따뜻한 접목을 시도하고 싶은 내 바람에 다름 아니다. “움직이는 물은 그 물

속에 꽃의 두근거림을 지니고 있다”고 바슐라르는 말했다. 꽃 한 송이가 피어

나는 것만으로도 냇물 전체가 술렁거리는 관계를 통한 근원의 관점으로, 세계

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언어로 말하며 새로운 표현에의 열정으로 늘

젊어지고 싶다.

  부족한 작품을 응원해주신 동아일보사와 심사위원들께 더디더라도 젊은 열

정으로 쓰겠다는 다짐을 하며 감사드린다. 처음으로 시조를 쓰게 했던 윤금초

박영우 이지엽 교수님, 이밖에도 경기대 문예창작과와 국문과 교수님들, 친구

들에게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 가슴 아린 사람들! 딸의 늦은 공부 뒷바라지

로 손목 힘줄이 툭, 붉어져 나온 어머니, 묵묵히 응원해주는 남편과 아들 딸

재진 지혜에게 무엇보다 사랑을, 사랑을 보낸다.

 

  고은희
*1961년 경북 군위 출생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예정)

 

 


 (심사평)


 글감 찾기에서 틀 만들기까지 오늘의 시조는 잰 발걸음을 하고 있다. 신춘문예에

이르러서 그 촉각은 더욱 날을 세워 밀어내기를 하고 있음을 읽는 즐거움이 크다.

예년에 비해 응모작도 늘었거니와 기성시단의 눈금과 맞서거나 넘어서는 잘 구워

진 작품들의 숫자도 불어나서 왜 시조인가에 대한 명료한 답을 듣기도 한다.

 송필국 씨의 ‘노래하는 돌’, 양해열 씨의 ‘사흘칠산’, 진수 씨의 ‘남해를 품다’, 하양

수 씨의 ‘세한’, 송영일 씨의 ‘막사발 날개를 달다’, 고은희 씨의 ‘쉿!’을 당선권에 올

려놓고 거듭 읽은 끝에 고은희 씨의 ‘쉿!’을 기릴 수 있었다. 위에 내놓은 작품들은

이미 시조의 익숙한 가락과 높은 시적 완성도를 보이고 있었으나 오래된 글감의 재

구성, 혹은 사물의 일상성이나 시대성의 노출 등이 신선감을 떨어뜨렸다.

  당선작 ‘쉿!’은 언어와 사물을 포착하는 감각부터가 산뜻하다. 감나무에 내려앉는

새 한 마리의 동작과 시간성이 살아 움직이고 ‘욕망이 부풀수록 생은 더욱 무거워’

같은 에피그램도 ‘한 알 홍시’에 얹혀 단맛을 낸다. 시조의 형식을 어김없이 지키면서

자유시의 그것보다 더 자유롭게 시를 끌어올리는 힘이 앞으로 큰 몫을 해낼 수 있으

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이근배-

 

 

 

 

 

부산일보

 

(당선작)

 

의자의 얼굴

                                /고은희

 

땡볕이 그늘을 끌고 모퉁이 돌아간 곳

누군가 내다버린 꽃무늬 애기 의자에

가난을 두르고 앉아

졸고 있는 할아버지

 

무거운 세월 이고 허리 펴는 외로움이

털어도 끈끈이처럼 온 몸에 달라붙어

허기진 세상은 온통

말줄임표로 갇혀 있다

 

살다 떠난 얼룩만이 가슴깊이 내려앉은

폐기물 딱지조차 못 붙이는 그 몸피여!

사는 건 먼지 수북한

그리움 또

견디는 것

 

오늘도 먼 길 돌아 헤살 떠는 한줄기 바람

먼저 간 할머니 손길 덤으로 묻어온 듯

그 옆에 폐타이어도

슬그머니 이웃이 된다

 

 

 

 

(당선소감)

 

 

 

도서관, 낯설면서도 낯익은 방식으로 책들은 낙담 속에서도 웃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는

마음에 이르러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어느새 당선통보를 받는 날이

4학년 2학기 마지막 기말시험 공부를 하던 도서관. 전화기를 든 채

허둥지둥, 공회전하는 자동차 타이어처럼 귓속이 붕붕거리고 가슴이

멍했습니다. 늦게 출발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까지

달리는 것이 진정 소중한 삶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빠른 삶도,

느린 삶도 아닌, '자신만의 속도감'을 체득하고 그 속도를 차분하게

지켜나가는 삶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과 사물을 사랑하며 따뜻하고도 낯선 시선으로 삶을 포착해나갈

것을 허락해주신 부산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꾸준하게 오래도록

쓰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야생마

같은 저에게 시조라는 틀을 잡아주시고 이끌어주신 윤금초 교수님,

늦은 나이에 진학한 학생을 열심히 지도해주신 박영우 이지엽 황인원

교수님, 외에도 경기대 문창과·국문과 교수님들 고맙습니다. 딸의 늦은

공부 뒷바라지로 손목 힘줄이 툭 붉어져 나온 어머니, 묵묵히 나를

지켜 준 남편, 그리고 아들 딸, 재진·지혜에게 무엇보다 사랑을.

 

고은희 / 1961년생. 2010중앙시조백일장 1월 차상. 2011년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예정)

 

 

(심사평)

 

-노인문제 따뜻한 시선으로 형상화-

 

많은 응모작 가운데 값싼 온정주의, 식상한 고전적 사고의 답습,

낡은 생활 서정, 필요 이상의 민족적 혈기 등이 1차에서 제외되었다.

시는 말이 아니라 언어의 이미지 형상화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춘문예는 역량 있는 신인의 새로운 감성을 찾아내는 일이지

결코 낡은 서정의 윤곽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윤송헌의 '생레미 몽유도'는 한때 유행했던 소재의 선택이,

이태호의 '분청사기상감연당초문병' 역시 빼어난 표현임에도

고전적 소재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신선하지 못했다.

김희동의 '겨울 소리를 보다'는 정갈하나 단조로운 내용이,

김다영의 '악수'는 압축과 절제미의 부족이, 이윤훈의 '폭설'은

패기를 앞세운 나머지 섬세한 표현들을 놓쳤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남은 작품은 김범열의 '을숙도 노랑부리저어새'와 고은희의

'의자의 얼굴'이었다. 앞의 작품은 부분 부분 모호한 표현들이

결정적인 흠이 되었다. '의자의 얼굴'은 시적 완성도 면에서

훨씬 앞서 있었고, 요즘 중요한 사회 문제로 등장한 노인 문제를

소재로 선택한 점 역시 주목할 만했다.

노인이라는 소재를 낡은 의자에 비유해 이만큼 따뜻한 시선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거듭

당선자의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을 평가하며, 앞으로 더 노력한다면

현대 시조의 부족한 정서적 공간의 확대에 크게 기여하리라는

높은 신뢰감을 갖게 된다.

-시조시인 유재영-

 

 

 

국제신문

 

(당선작)

 

독도

                                        /김덕남

 

한 방울 핏물 튕겨 뿌리박은 그대 모습

격랑激浪을 가로 막고 응시하는 눈빛이여

붉은 해 홰치는 자리

팔을 걷고 섰는가


열원熱願은 바위 녹여 바닷물도 식혀내고

동백꽃 봄불 태워 소지燒紙하는 기도 앞에

내 조국 아리는 사랑

그 소리를 듣는다

 

 

(당선소감)

 

 

-조국의 수호신 독도가 만들어준 언어의 성찬-

 

건국 60주년을 기념해 한국해양대와 동북아역사재단이 공동주관하여

독도를 탐방한 적이 있습니다. 어둑 새벽 수평선 너머로 붉은 기운이

독도 사이로 뻗쳐올 때 합장한 손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실습선인

한바다호가 독도를 수차례 선회하는 동안 산모가 용트림 끝에 아기를

분만하듯이 하늘과 바다가 서로 부비면서 놀라운 힘으로 장관을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부서져 흩어지는 석류알처럼, 선계의 조명을 받은 보석왕관처럼

독도는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독도와 내가 마주하는 순간,

바위 속으로부터 한국인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환영(幻影)이

어른거렸습니다. 격랑의 세월 속에 우뚝 서 있는 저 의연한 모습,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 앞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그때부터 독도는 제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독도 사랑이 이런 좋은 결과를 예비한 것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직 덜 익은 작품을 응모하여 두려움이 앞섰는데 당선의

소식을 받고 보니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낍니다.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며, 더욱 정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항상

지금과 같은 초심으로 자신을 담금질하겠습니다.

제게 문학의 마중물 되어주신 부산대 평생교육원 이광수 교수님,

현재를 뛰어넘도록 지도를 아끼지 않으시는 전일희 회장님, 부산대

글벗들, 수정시조동인들과도 기쁨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질곡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그 한 권의 책을

함축하여 한 편의 시로, 그 한 편의 시에 다시 가락을 얹고 절제와

여백을 더하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촌철살인의 기가 느껴지고 단칼에 벨 수 있는 한 수의

격을 가진 율을 지으면서 그리움을 뿜어내고 싶습니다.

 

〈당선자 약력〉 ▷1950년 경북 경주 출생 ▷제13회 공무원 문예대전 입상(2010)

             ▷전 부산대·한국해양대 서기관

 

(심사평)

 

-민족의 아픔을 함축미와 언어감각으로 잘 표현-

 

시조를 업(業)으로 삼을 이를 가려 뽑아야 하는 게 신춘문예다. 한 작품이

두드러졌다 해서 역량이 탁월하다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여러 편을 제출하게

한 것이리라.

일단 3편 이상 투고한 작품들의 수준이 고른가에 따라 선별 원칙을 정했다.

1차 마중물(필명) 김덕남 이영혜 이영신 김범열 송영일 김희동 제 씨의 작품

들이 우선 손에 잡혔다. 다시, 이들의 작품 중에 수작을 가리는 일도 결코 쉽지

않았다. 신춘을 알리는 신호음처럼 언어감각이 새로운 것에 관심을 두고 2차

선별작업에 들어갔다.

'봄의 역사' '감자꽃' '희망' '깃 펴는 백목련' '그 여자의 강' '독도' '꿈꾸는

겨울나무' 7편을 선택하였다. 다음으로 언어의 함축미에 무게를 두기로 하였다.

언어의 함축미는 시조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긴 시조들은 언어의 함축미라는 점에서 약점을 갖게 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도'를 누를 작품이 없었다. 이 작품은 독도를 통해 민족의 시대적 아픔이

잘 묻어나도록 했다.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함축미와 언어감각 또한 참신함을

보여주었다. 당선자는 분발하여 훌륭한 시조시인이 되시기를 빈다.

 

본심 심사위원 시조시인 전치탁 임종찬

 

대구 매일신문

 

(당선작)

 

버선 한 척, 문지방에 닿다

                                       / 백점례


참 고단한 항해였다

 

거친 저 난바다 속

 

풍랑을 맨손으로 돌리고 쳐내면서

 

한 생애, 다 삭은 뒤에 가까스로 내게 왔다

 

그 무슨 불빛 있어

 

예까지 내달려 왔나

 

가랑잎 배 버선 한 척 나침반도 동력도 없이

 

올올이 힘줄을 풀어 비바람을 묶어낸 날

 

모지라진 이물 쪽에 얼룩덜룩 번진 설움

 

다잡아 꿰맨 구멍은 지난 날 내 죄였다

 

자꾸만 비워낸 속이 껍질만 남아 있다

 

꽃무늬 번 솔기 하나 머뭇대다 접어놓고

 

주름살 잔물결이 문지방에 잦아든다

 

어머니, 바람 든 뼈를

 

꿈꾸듯이 말고 있다

 

 

(당선 소감)

 

 

 

 

-아픈 마음 어루만져주는 시조-

세상에 태어나서 늘 나에게 기쁨만을 안겨준 아들이 큰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날이었다. 이틀째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걱정을 하고 있는 나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신춘문예 공모에 작품을 보낸 것마저 깜빡 잊고 있었는데

당선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움켜쥐고

있었던 문학, 내가 모든 힘든 상황들을 참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문학의

힘이었다. 마침내 그 문학이 내게 이렇게 큰 위로와 기쁨을 안겨 주는 순간이었다.

막연하게 문학의 세상을 그리워 해온 나에게 적극적으로 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10년 동안 마음 써 주시며 격려해 주신 경주문예대학 이근식 원장님. 그리고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한 채 통신으로 귀한 시조 공부를 하게 해 주시고 자상하게

챙겨 주신 민족시사관학교 윤금초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또한

시조 쓰기를 권유하셨던 정혜숙 시인께도 이 기회를 빌려 인사를 드리고 싶다.

매일신문사와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보답할

수 있도록 좋은 시조, 아픈 마음들을 어루만져 주는 시조를 쓰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당선자 백점례

◆약력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경주문예대학수료·, 민족시사관학교 수업중


(심사평)

 

곡식을 되로 될 때 반듯하게 깎아서 정량만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덤으로 한 줌 더 얹어 주기도 한다. 그 한 줌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은 인심이 후하

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응모작들은 저마다 되로 담기에는 모자라지 않았지만,

흑백 속에 숨어 있는 긁힌 상처의 흔적을 읽어내는 일에 다소간 편차를 보였다.

인심이 후하다는 말을 들을 길은 없는 선자(選者)는 여러 작품들 중에 단 한 편만

으뜸의 자리에 앉힌다.

당선작 백점례 씨의 '버선 한 척, 문지방에 닿다'의 시적 배경이나 제재는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생을 "항해"로 본 것이 그것이고, 몇 군데 낯익은 표현이

드러나고 있는 점도 그렇다. 그러나 제목에서 보듯 참신한 착상과 네 수 한 편이

일정한 톤을 유지하며 주제 구현을 향한 강한 응집력을 보이고 있는 점에서 다른

응모작들을 뒤로 제쳐놓게 하였다. 특히 “어머니의 버선”으로 은유된 “배”의 항해

를 육화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풍랑을 맨손으로 돌리고 쳐내면서”와 “올올이 힘

줄을 풀어 비바람을 묶어낸 날” 등과 같은 대목은 인생과 세계에 대한 개성적인

재해석과 리얼리티를 내장하고 있다. 함께 보낸 작품들도 고른 형상 능력을 보이

고 있어 신뢰를 준다. 그동안의 담금질을 바탕으로 기량을 잘 살린다면 오늘의

영광에 값하는 단단하고 옹골찬 작업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끝까지 남은 작품들은 고은희 씨의 '입, 혹은 구두', 김석이 씨의 '아우라지',

이한 씨의 '과일가게 앞에서'이다. 깊이 있는 육화 과정과 새로운 감각이 돋보였지만,

마무리가 미흡하거나 호흡이 짧아 아쉬운 점 등이 당선작에 못 미쳤다. 에오라지

시조 하나만 끌어안고 일평생을 천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회는 올 것이다.

신묘년 새해에도 시조의 밝은 미래를 보여준 모든 응모자들의 건승과 건필을 빈다.

심사위원 이정환(시조 시인)

 

 

 

 

중앙일보

 

 

(당선작)

 

겨울, 바람의 칸타타

 

                              /김 성 현


 

 


 

오래된 LP판이 하나씩 읽고 있는

스산한 풍경 위로 바람이 불어간다

노래가 다 그런 것처럼 스타카토 눈빛으로


산까치 몇 마리가 앉았다가 떠나버린

잎 다 진 가로수들 우듬지 그 사이로

흰 구름 붉은 마음은 서쪽으로 흐르고


음역(音域)의 강을 건넌 짧아진 하루해를

빠르게 궁굴리며 다시 불어온 바람

아무리 되짚어 봐도 길은 너무 아득하다


누구나 한두 번쯤 절망 끝에 섰겠지만

지워진 음표만큼 눈은 더욱 깊어져서

LP판 둥근 세상으로 봄날은 또 오겠지

 

 

(당선소감)

 

 

 

어디를 스치느냐에 따라 바람의 지문은 달라집니다.

초원에서 부는 바람, 숲을 지나는 바람, 빌딩을 휘감는 바람은 저마다의

소리가 있습니다. 언어 또한 그러합니다. 소설가 최명희는 ‘언어는 정신적

지문’이라고 했습니다. 저 멋있는 말을 나보다 먼저 한 최명희 작가를 질투

하며 3장 6구 그 아름다운 시조의 틀 속에 생각의 지문을 하나씩 찍었습니다.

한 줄을 퇴고하기 위해서 며칠을 고민하고, 한 자를 탈고하기 위해 자다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준 중앙일보에 감사

드립니다.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이 길로 인도해준 벗 이병철 선생님,

시조의 길을 함께 걷는 유선철·김석인·곽길선 선생님, 무엇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가르침을 준 이교상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보다 완성된 작품을 쓰라는 격려라

생각하며, 시조의 과학화와 세계화를 위해 주춧돌 하나를 놓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약력=1959년 경북 김천 출생, 계명대 심리학과 졸, 김천고 상담교사.

열린시조학회 대구경북 사무국장.

 

(심사평)

 -자연스러운 시상, 긍정의 사유 빛나-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은 국내 최고의 시조

등용문이다. 자신의 절실한 뜻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잘 표현한 김성현씨가

마지막 문을 통과했다.

 당선작에서는 사물을 통해서 새로움을 읽을 줄 아는 역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단순 서정에서 한 발짝 전진하여 인생의 의미를 찾아낸 점은 질량감

을 느끼게도 했다. 오래된 LP판을 통해 사념을 독특한 질서로 정리한 점도

그렇지만 그것을 음을 읽듯 깊은 사유로 확장시키는 힘은 세심한 관찰과 일상

의 성찰이 가져온 소산으로 보였다. 특히 아무리 칼바람이 불어도, ‘되짚어’

보는 ‘길’이 ‘아득’해도, ‘둥근’ 이 ‘세상으로 봄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 긍정의

사유는 힘든 세상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진술과 묘사의 적절한

활용, 자연스러운 시상도 눈길을 끌었지만, 이렇듯 시의 사회적 기능에 그 역할

을 다 하고 있어 한층 믿음이 갔다. 이제 시조 세계에 한 점을 더하기를 바라며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까지 당선자와 함께 겨룬 이는 김영란·김경숙 씨였다. 김영란씨의

‘마음의 벼랑’은 그 시조보법이 매우 안정적이고 단아한 수준작이었다. 그러나

내용이 다소 추상적이라 견고하지 못하였다. 김경숙씨의 ‘환지통’도 밀도 있는

전개가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소재의 상투성이 문제로 지적됐다.

심사위원=정수자·오종문·이종문·강현덕(대표집필 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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