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城 本 三國時 唐城郡地 卽 今之京畿華城郡西新面尙安里
九峰山城也 岸於海如華蓋浦서環之外狹內闊水入浦口唯一港而其
內枝港甚衆潮汐半漲之時 其形如本之 一本萬條而 其色如沃랍故
名其浦銀樹
당성(唐城)은 본래 삼국시대 당성군(唐城郡)의 땅으로서 바로 오늘의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九峰山)이다.
해안에 자리하고 있는 모양이,마치 화개(華蓋)와 같고,갯뻘이 외우고
있어 포구(浦口)는 좁고 내항(內港)은 넓어 물이 들어오는 포구는 한
개의 항이지만 지항(枝港)이 매우 많아서 밀물이나 썰물이 반쯤 찰
때에는 마치 한 나무에 수많은 가지가 있는 모습이고 그 색은 옥랍
같아 은수포(銀樹浦)라 불렀다.
城周二千四百一五尺 高十尺 新羅文武王 爲學士所築 李文靖
牧隱先生 東國名賢 麗朝烈士 其所著唐城引尙在先生詩藁十五卷
二十七板中 望海樓記 在文集 六卷十二板中最可信 南陽舊老
宋俊 趙仲旻所編稽古要覽在於 景泰乙亥 去古稍近其所以
채府籍而拾鄕諺實有可據謹按
성의 둘레는 2,415척이며 높이는 10척으로 신라의 문무왕이
당학사(唐學士)를 위하여 쌓은 것이다.
이문정공(李文靖公) 목은선생(牧隱先生)은 우리 나라의 명현(名賢)
으로서 고려조의 열사(烈士)이시다.
그분이 지으신 당성인(唐城引)이 지금도 선생의 시고(詩藁) 15권
27판에 실려 있고 망해루기(望海樓記)가 문집 6권 12판에
실려 있는데 이것이 가장 믿을만한 근거가 되고 남양(南陽)의 구로
(舊老)인 송준(宋俊)과 조중민(趙仲旻)이 경태,을해(景泰; 세종원년,
1455)년에 펴낸 계고요람(稽古要覽)은 성을 쌓은 때로부터 그리
먼 시대의 일이 아니라서 그들이 채록하고 수집한 관부의 문적과
향언(鄕諺)은 실로 의거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貞觀年間 高句麗榮留王請唐學士唐遣八人其一洪也 以白帽往參
猶嫌鶴野之俗近於羊犬訪海外三仙山 浮鯨浪而東停驃下岸定居
時人名其地曰唐串 號其城曰 唐城郡之得名蓋亦以此也
정관년간 17년,계묘(癸卯;643)년에 고구려,영류왕이 당에 학사를
청하였는데 당에서는 8명의 학사(學士)를 보내었으니 그 중에 한,
분이 홍학사(洪學士)이시다.
백모(白帽; 흰두건)차림으로 처음 오셨으니 선경의 풍속을 혐오하여
차라리 미개한 땅에 가까이 하고자 함과 같음이라, 해외의 삼선산
(三仙山)을 찾아 황해의 경랑(鯨浪)을 타고 동으로 달려 당성해안에
내리시어 정착하시니 이때의 사람들이 그곳을 일러 당곶(唐串)이라
하였고 그 성을 일러 당성(唐城)이라 하였으니 당성군(唐城郡)의,
이름이 얻어진 유래는 대개 이와같은 뜻이 있는 것이다.
日左東方敎詩書禮樂掃去妖분 紀綱乃振其功烈 雖千萬선何可
忘也 然而此一區遺城墟已久矣 松柏影疎花石香冷何幸 檀紀
四千三百四年辛亥自文公部指定文化財第二百十七號欲補修城之
荒廢 并重建望海樓以壯觀瞻於乎國家保管之力其將大矣
날마다 나라를,도와 백성들에게,시서예악(詩書禮樂)을,가르쳐,요망한
풍속을 쓸어 없애고 기강(紀綱)이 다시 떨치게 하였으니 그 공열
(功烈)은 비록 천만세가 지난들 어찌 잊을 수가 있으리요 ?
이와 같이 한 구역에 남기신 성터는 이미 오래되어 송백(松柏)의
그늘이 성기고 화석(花石)의 향기가 냉냉하더니,다행이도 단기(檀紀)
4304(서기 1971), 신해(辛亥)년에 문공부로부터 문화재 제,
217호로 지정(指定)되어 국가에서 황폐(荒廢)한 성을 보수(補修)
하고 아울러 망해루(望海樓)를 복원하고자 하고 있으니 참으로 그,
모습이 장대할,것이며 앞으로,국가에서 관리하는 힘이,지대할,것이다
丁卯春自海峰派宗會 협謀於大宗中力擔而立事蹟碑于城南門外
高十五尺要余記其陰余在者륭 不能相是役而玆 又何敢辭也
故先書城故 後錄學士東來之由 以告來者 凡我唐城氏 各視祖先
之崇德廣業益勉之哉
戊辰 月 日
唐城 洪 鍾 凡 記
唐城 洪 淳 湧 書
서기 1987, 정묘(丁卯)년 봄에 남양홍씨 해봉공(海峰公) 종회가
대종중(大宗中)과 협의하고 자력으로 부담하여 성의 남문밖에,높이
15척이나 되는 사적비(事蹟碑)를 세우려고 나에게 기문(記文)을
요구하니 나는 늙은 몸이라 이 역사를 도울 수 없는 마당에 어찌
이것마저 또 감히 사절하겠는가 ?
이어 먼저,당성(唐城)의 고사(故事)를,적은 다음,당학사(唐學士)께서
우리 나라에 오시게 된 유래를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고하는 바이니
우리 모든 당성홍씨(唐城洪氏)들은 각기 선조의 높고 넓은 덕업을
살펴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서기 1988년 10월 30일
당성(唐城) 홍 종 범 짓고
당성(唐城) 홍 순 용 쓰다
자료제공 ; 남양홍씨 문정공파 문헌록
근 역 ; 문정공파중앙종회 부회장 홍 석 환
작 성 ; 양천서원 보존회 전 총무부장 홍 현 표 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