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서 살아남기
- 구운중학교 영어교사 김지연
A교사는 당황했다.
첫째, 5월이 다 되어서 등교한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의 모습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초딩'스러웠기 때문에.
둘째, 중학교 1과 문법이 'be동사'이었기에.
셋째, 처음 들어본 '자유학년제' 업무를 덜컥 맡아버렸기 때문에.
A교사는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이내 한숨.
"아, 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 * * * *
눈치채셨겠지만 위의 짧은 글에 등장하는 A교사는 바로 접니다.
2020년, 학교를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습니다. 초임 교에서 3년만 근무하고 개인 사정으로 청간내신을 써서 수원으로 근무지를 변경했습니다. 전임 교에서 마지막으로 고3 담임을 했는데, 이 학교에서는 중1 담임을 맡게 되다니, 'gap'이 너무 크다고 느껴져서 그랬을까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게다가,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나 이리되었소, 도와주소'라고 하니 하나같이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탄식을 시작으로 '요즘 중1들은 초7이다.' '말이 잘 안 통한다.' '기선제압이 중요하다.' '중1은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한다.' 등등의 말들을 이어가는데 큰일 났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3월이 되기도 전에 '중학교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주변 사람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연신 물으며 지냈습니다. '살아남는다'라는 표현은 보통 치열한 현장에서 버티고 끝까지 견디어내 생존한 경우에 쓰이는 거라지만 저에게는 이 말이 가장 제 상황과 어울린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체력도 약한 편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ISFP형 인간인데 어째 사는 건 또 대충 못사는 피곤한 스타일이라 중학교에서의 교직 생활이 순탄치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죠.
코로나 상황으로 혼란스러운 현장 속에서 중학교 1학년 담임인 제가 하는 일은 너무 많았습니다. 32명의 학생들에게 모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새 학기 준비에 대해 안내해야 했고, 5월에 가까스로 등교한 아이들에게는 등교 첫날 7장의 가정통신문을 나누어주며 꼭 내일까지 보호자 사인을 받아서 가져오라고 신신당부해야 했습니다. 세상에. 중학교 1학년이니만큼 이것저것 검사하라는 것도 많아서 아이들에게 안내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등교 기간 안에 반드시 하라고 당부하고 일일이 확인 검사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바쁜 제 속을 어찌나 몰라주는지 하필 등교할 때마다 갈등을 일으켜 담임교사인 저를 당황 + 분노하게 했죠. SNS로 서로를 뒷담화하고 헛소문을 퍼트려 싸우는 경우가 허다했고, 남학생들의 경우 교실에서 실컷 육탄전을 벌여놓고 나중에는 양쪽이 꺼이꺼이 대성통곡하는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또, 초등학교에서 하던 철없는 말과 행동을 중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또는 업그레이드하여) 하는 '무늬만 중1' 학생들도 마주했습니다.
'아이고 머리(頭)야.'
언제부턴가 '학급긍정훈육법' 책을 교무실 자리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꽂아놓게 되더라고요. 그 책에는 필기한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붙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속을 정말 꾸준히 뒤집어 놓는 학생을 상담하기 전, 오은영 박사님의 '훈육법'까지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참을 인 忍을 세 번 쓰고 심호흡을 깊게 들이쉰 다음, 아이들을 마주할 때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내가 못산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서 지내며 나의 중학교에서 살아남기 목표는 벌써 실패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이 한마디, '올해 말에 부적응 내신을 써, 말아?'
눈빛만으로도 제 뜻이 단번에 전달되었던, 또는 '말로 하면' 이해했던 고등학생들과 달리 '일일이 챙기고', '가르쳐주고', '여러 번 설명해야 하는' 중학생들과의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어느 날 담임하는 반 한 아이가 "선생님은 왜 화를 안 내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물었고 저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하게 항변했죠.
"어? 아닌데? 선생님 화냈는데? 화낸 적 있거든??? 샘 저번에 화냈거든???“
아이의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에서 의문의 1패.
* * * * *
이렇게, 아이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지지고 볶아가며 중학교 '담임'교사 생활에 나름 적응해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담임교사로는 이제 좀 '살만한지'(아닙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니었어요. 안 살만했어요) 그동안 내버려 뒀던 수업에 대한 고민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돌봄 및 교육 공백기 속에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초등학생에서 학업이 멈춘 듯한 느낌을 물씬 풍겼습니다. 학업결손이 눈에 띄게 보였습니다. 학교를 옮기기 전부터 중학교에서의 수업은 고등학교에서보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워 교사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주어져 있다고 들었고, 이 이야기를 듣고 실컷 들떴던 제 마음과 원대한 계획은 코로나로 인해 모래성처럼 사르르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떤 학생 중심 수업을 할까?'라는 고민에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영어를 어려워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영어를 하나라도 더 알게 하지?'라는 고민으로 이동했을 때.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은 바로 '내가 못산다.'였습니다. 생존 실패. 나름 잘해보려고 노력하고 아등바등 애쓰고 있는데 문제가 하나씩 해결된다는 느낌보다는 또 다른 벽이 나타난 것 같았습니다. 죽어도 카메라를 켜지 않는 아이들과 여러 번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사라져버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들은 교사로서의 제 자존감에 큰 상처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못 살겠다.’, ‘못 해 먹겠다.’라고 생각했을 때 저에게 다시 힘을 준 건 다름 아닌, ‘학생들’이었습니다. 신파처럼 느껴지셨나요? 저도 글을 쓰면서 조금은 낯간지럽다고 생각하는데요. 꾸며낸 게 아니고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인 저에게 조건 없는 무한한 신뢰를 주는 학생들. 정말 제 속을 썩이고 지나가는 선생님들께 야무지게 구박만 받던 담임 반 학생이 ‘그래도 샘은 제 편이잖아요.’라고 이야기해주었을 때, 영어 수업에서 어설픈 발음이지만 꿋꿋이 대답하던 학생들. 저는 제 어려움을 저 혼자 처절하게 헤쳐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학급에서 일어난 문제를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예상치 못하게 문제를 해결할 때도 있었고, 영어 수업에서는 학생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조금씩 수업내용을 재구성해나갔습니다. 고민의 언저리에는 항상 학생들이 있었고, 그 고민 끝에도 역시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 * * * *
시선이 자꾸 학생들에게 갑니다. 어려운 상황 속의 학생들과 그리고 어려운 나. 부끄럽지만 동병상련이랄까요. 담임교사로서 또는 영어교사로서 자꾸만 아이들을 들여다보고, 아이들의 처지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는 걸, 중학교에서의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실감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잘 살아남는게 목표였으며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외로웠는데, 어느 순간 그 목표가 '나 혼자 살아남기'가 아닌 '아이들과 함께 잘 살아남기'로 은근하게 바뀌어있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 물어보고 싶은 마음, ‘아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학생을 이해하는 마음. 비록 내가 참을 인忍을 쓰더라도 미워하지 않는 마음. 위로하고 싶은 마음. 어쩌면 새로운 환경에 너무 힘들었던 제가 받고 싶었던 위로,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들을,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아이들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오지랖에. 제 시선, 그리고 제 마음이 조금씩 더 학생들을 향해가는 그런 신기한 경험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아 물론, 당장 내일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중학교지만
잘~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바라보기 위해서 저는 출근합니다.
끝.
첫댓글 재미있게..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찡~하면서 읽었어요. 곧 우리집 아이도 중학생이 될 테고... 저 역시 중학교에서 근무할 날도 있을텐데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할지 상상해보게 되네요. 좋은 글 고마워요 지연샘~ 그리고 오늘 하루도 힘내욧! ♥
제가 2019년에 마이크를 샀더니, 학미샘이 그러더군요;;
“자기 좋은 학교에만 근무했었구나!”
고등학교 아이들은 말을 하면 그래도 듣는 귀가 있습니다;;
중학교 아이들은 귀가 없습니다ㅠㅜ
입만 몇 개 되는 것 같아요...
지연샘, 넘 고생 많으세요ㅠㅜ
하지만 곧 이 위기도 잘 넘기시고,
좋은 동료 만나셔서
경쟁과 변별이 없는 시스템 속에,
다양한 교육적 상상력을 펼쳐내시리라 믿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 ‘주간 일체화’를 빛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샘...생생한 살아내기에 아침부터 찡한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제목에서 강하게 끌어당긴 샘의 좌충우돌기....속으로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지...이건 문장이 너무 매끄럽잖아....이런 생각이 먼저...그 다음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짧은 기간이지만 변하는 모습이 느껴졌고요......샘이 말씀하신 '그래도 학생이 희망'이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쌤!!!! 화이팅입니다^^ 이런 평범한 말 말고 좀 뭔가 강한 단어로 힘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그 이상을 하고 계시기에...
잘 읽었습니다. 샘 글을 읽으면서 참 배울게 많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전 배울게 많은 분들에게 '존경'한다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존경합니다.~^^! 기회 만들어서 직접 이야기 듣고 싶어요...
학생을 마음 가운데에 두시는 지연샘의 ‘학생 중심 수업’. 수업에서 교사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지연샘 많이 힘들었군요.ㅜㅜ. 그 때 학생에게서 찐애, 찐 위로를 받은 신 귀한 경험 절절이 마음에 와 닿네요. 학생을 중심에 두는 마음을 담은 수업 멋져요.!!
나혼자 살아남기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남기- 넘 멋진 결론 감사합니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요. 귀만 열개인 외고에서 근무하다, 입1개, 두 2개인 일반고로 옮기게 되었을 때 충격이 되었었죠. 첫날부터 31-36번 남학생 6명이 제가 누구인지도 모를텐데, 담임 길들이기로 작정하고 점심 때 등교하더라구요. 첫 조례시간, 4분단 끝에 한꺼번에 비워진 6자리가 부분적으로 빠져버린 머리 두상처럼 휑했었죠. 체육 수업 안가고, 데리러 온 반장에게 결과 처리하라고 해 말하곤 또 잠들어 버린 아이들...... 그때 수업 교사도 아닌데 담임으로서 책임감 가지고 교실로 가서 잠자는 녀석을 위해 학교 전체를 울리는 고음으로 불같이 화냈었답니다. 녀석들도 짐짓 놀라 깨어 나더라구요.
지각도 수시로 밥먹듯이 하고... 그래도 포기치 않고 1:1로 불러다 놓으면 죄송합니다. 새로운 모습 보여드릴께요. 말하더구요. 다음날 또 지각할지라도...
지내놓고 보니 추억이네요.
그중 두녀석이, 작년 어느밤, 연락도없이 해병대 간다며 샘이 보고 싶어서 왔다고 오글거리는 말을 하며 찾아왔답니다 ~한시절 질풍노도를 지나 이젠 사회 적응을 잘하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합니다.
지연샘 많이 힘들었군요.ㅜㅜ. 그 때 학생에게서 찐애, 찐 위로를 받은 신 귀한 경험 절절이 마음에 와 닿네요. 학생을 중심에 두는 마음을 담은 수업 멋져요.!!
교장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글이 쏙쏙 읽혀요...^^ 문득 오래전 중학교에 근무했던 경험이 떠오르고 자유학기제, 자유학년제 등 이제는 많이 바뀐 중학교의 상황에 저라면... 지연샘처럼(잉? 나? ㅎㅎ)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싶네요. 선생님과 아이들을 사랑하고 노력하는 선생님의 마음을 항상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