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늘 술에 취해있는 남편을 기도로 고치다.
S동에 사는 K씨는 한 달에 25일 이상을 술에 취해서 온 가족들을 괴롭혔고 자신의 인생도 폐인이 되어가고있었다.
"스님, 정말로 못 살겠어요. 차라리 이혼을 하든 도망을 가든 해야할까봐요."하고 속이 상해서 K씨의 부인은 하소연을했다.
남편은 매일 술에 찌든 채 얼굴이 새까맣게 되고 추해져서 이젠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고하였다. 그렇다고 정신병원에 넣으려고하니 자식들이 있는데 그럴 수도 없고 죽고만 싶다고했다.
허나 한가지 그렇게 인사불성이 되게 술을 많이마시고 술주정을 해도 술이 깨어서 정신이 돌아오면 그렇게 얌전하고 뼈가 저리게 후회를 한다고한다.
"다시는 술을 먹지 않는다."고 맹세를 수없이 한단다. 허나 그 맹세도 잠시뿐 아침부터 시작해서 그 이튿날 또 그 이튿날 아침까지도 손에서 술병을 놓으려하지않고 자연히 남과도 다투게되고 가족들의 불화는 더욱더 악화가되어서 이젠 도저히 어찌해볼 수가 없다고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빠가 늦게 들어오면 또 술에 취해서 괴롭힐까봐 불안에 떨고 잠도 못자는 날이 수없이 많다고하였다. 이제는 아이들도 아빠를 불신하고 피하고있다고 한다.
본인은 며칠씩 술에 취해서 꿈속에서 살지만 가족과 아내는 모든 일들이 마비가 되고 일도 못하고 집안이 엉망이 되었기에 근심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한다고했다.
더구나 이젠 방 한칸도 제대로 지니고 살 수가 없게되었다. 동네사람들에게도 신용을 잃고 구멍가게에도 눈덩이처럼 빚이 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가 없음은 당연하였다. K씨의 아내는 자주는 법회에 못 나오지만 불가의 인연을 맺은 불자였다.
그러나 워낙 생활에 쫓기다보니까 한번도 제대로 나와 상담시간을 만들 수가 없었던 저간의 사정이 있었다.
아니, 창피해서 더 가정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고 나중에 K씨의 부인은 털어놓았다.
자신이 무슨 죄가 이리 많아서 매일 속을 썩어야하는지 한숨과 한탄으로 밤을 지새는 날이 수없이 많았기에 인생에 지친 탓도 있었으리라.
가족들의 얼굴들이 모두가 누렇게 떴다. 술을 먹은 사람은 술을 먹어서 떴고 가족들은 시달림과 지침에서 웃음을 잃게되어서 누렇게 떴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K씨의 부인은 나에게 전화를하여 상담해줄 것을 요청했다. 법회 때는 어떻게 정신없이 왔다가야하고 사람들이 많아서 조용히 의논을 드릴 수가 없기에 그냥 갈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스님, 애들 아빠를 구해주세요. 이제는 도저히 저렇게는 못삽니다. 어떻게 구해주세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건 심상치가 않아요. 뭔가 귀신이라도 붙은 듯이 행동을 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가족 모두가 집단자살이라도 해야할 판이니 제발 스님께서 어떻게 구해주세요."라고 하소연을 하면서 부인은 울었다.
본인도 술이 깨고 나면 다시는 안 먹겠다고 후회하고 제발 어떻게 자신을 해달라고 부인에게 오히려 매달린다고하였다.
이상한 일이라고 수없이 술을 안 먹겠다고 다짐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술을 먹게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의지가 약해서도 아니라고 가족들에게 몇 번인가 하소연도 했다고한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그렇게 술을 먹고 몸을 상하게했으면 지금쯤 간이나 뱃속의 모든 기능이 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어야할 게 아닌가?
그런데, 검사결과 모두가 다 정상이라 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 결과 K씨의 부인에게
"그럽시다. 우리 인력으로 안되는 일이라면 정말로 위대한 힘을 가진 분께 한 번 의지를 해볼 수도 있지요. 또 압니까? 지극한 정성을 다하면 여러 불보살님과 조상님들의 음덕으로 술병을 고칠지....." 혹시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술을 먹는다면 분명히 고칠 수가 있을겁니다."하고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조상천도재를 하기로 하였다.
선망부모, 일가친적이나 무주 유주 고혼들의 왕생극락기도를 해준다면 100분의 1이라도 술병이 고쳐지지 않을까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허나 지장천도재를 하려해도 우선은 물질적인 것이 난관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무척이나 곤란한 문제였다. 나 역시 신도들에게 금전적인 것을 요구할 때는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하기도 했다. 물질적인 것은 참 나의 기도정진과 수행생활에 무척이나 장애이기도 했다.
허나 모든게 금전이 안들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음이 현실세계라 안타까운 일이다. 부처님은 제아무리 돈이나 모든 공양구를 드린다고 하여도 끄덕도 없이 앉아계시건만, 우리 현실은 물질이 있어야만 모든게 움직일 수 있음이 아니던가?
K씨의 경우도 오로지 지장보살님께 매달려서 지옥,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빠져 허덕이는 영가들을 천도하여서 모든 영가들의 맺힌 마음을 풀어주고 밝고 맑은 곳으로 영혼을 인도함으로써 K씨의 정신도 맑게 안락을 찾을 수 있지않을까.
지금껏 수많은 기도를 해보았지만 지금부터는 지장보살시대에 지장천도재가 제일 빠른 지름길이 되게될 것이다.
K씨로 하여금 마음의 안위를 얻게되어 술을 스스로 멀리 할 수 있게끔 영가천도재를 지극히 해볼 것을 권하였다.
정말로 어려운 형편 속에서 조촐하게 음식을 장만하여서 K씨의 조상천도재를 잘 지내주었다. 나 역시 입에서 쓴 내가 나고 배창자가 다 터지는 듯한 힘든 기도이다.
지장천도재를 한번하고 나면 어지러워서 자리에서 일어나기에도 힘겨울 때도 있다. 앉아서 식은 땀이 다 나도록 지장보살님을 찾고 아미타불을 염송하다보면 온몸이 한겨울에도 땀으로 흠뻑 젖는다.
"지장보살님이시여! 여기 가엾은 저를 보아주십시오. 여기 죄많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어 오늘 이 공덕으로 제발 오늘 이 기도를 하는 우리 신도댁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하고 목청껏 염불을 한다.
여기 불쌍한 저로 인하여 감히 부처님을 욕되지않게 하소서. 부처님의 위대하신 원력을 보여주셔서 불법이 널리 펴져서 길이길이 빛나게 하소서.
인연이 있든 없든 스쳐간 영가들이든 오늘 묘한 법을 들으시고 감응하사 K씨를 구렁텅이에서 건져 주시고 이들에게 불법의 위대함을 보여주소서.
사람답게 살다가게 바른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K씨의 전생의 업연을 소멸하고 음주재액을 소멸하소서.
뜬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듯이 K씨의 업연도 모두 말끔히 씻어주소서.
나쁜 인연 다 버리고 나쁜 악업 다 소멸케 하소서.
K씨 부인의 눈물 때문이기도했지만 이들과의 일대사 인연의 고리를 풀기위해서 기도하는 나의 볼에서도 역시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영가들의 천도재를 수없이 하면서 나는 수없이 운다. 왜! 그렇게 슬플까? 알지도 못하는 영가들의 죽음이 슬퍼서는 아닐 것이다.
부처님의 묘한 법문 속에 나 자신도 모르는 눈물이 흘러내림을 어찌할 수 있으랴.
K씨의 아내 역시 절에를 자주 찾는 편은 아니었다. 고된 생활고에 시달리는 몸이기에 절집에 오는날이 많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려운 법문 속에서도 나의 구슬픈 목소리로 하는 염불때문인지 남편의 염려때문인지 기도가 끝날 때까지 마룻바닥에 방석도 없이 기도를 한 탓에 무릎이 시뻘겋게 까졌다. 물론 진심으로 하는 절이었기에 아픔도 잊은 채 절을 했으리라.
하여튼 천도재를 지낸 후 K씨는 정말로 기적처럼 술을 끊게 되었음이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은 열심히 사업도 하고 생활이 윤택하여서 집도 사고 사장님 소리도 듣고 열심히 단란하고 행복하게 살고있다.
먹고 살겠다고 바빠서 자주 절에 못찾아와서 스님께 죄송하고 부처님께 죄송하다고 가끔은 전화를 한다.
K씨의 술버릇역시 보이지않는 조상님들의 업연을 풀어줌으로써 점차로 술을 멀리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지장보살시대임을 절실히 느끼면서, 우리들은 직접 보고 듣지않은 일들은 강넌너 불구경하듯이 남의 일처럼 느끼지를 못하지만, 세상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문명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해도 믿음의 강한 지남철은 기도를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제 아무리 달고 맛이 있어도 그 사랑을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느낄 수 있듯이 기도역시 그렇다.
기도를 해 본 자만이 기도의 영험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원력을.....
출처: 혜강 박영옥저 오! 지장보살님이시여, 나는 언제 지옥문을 두드리나이까? (관음문화사刊)
옮긴이註: 천도재를 정법사찰에서 잘 지내도 좋으나 개인이 바른 방법으로 정성껏 영가천도 100일 기도를 하셔도 좋습니다. 100일 영가천도 기도를 잘 하고 회향일에 재를 올리는 방법도 좋습니다.
42. 글쓴이: 청정화
제가 영명사 주지 스님을 처음 뵌 것은 2003년 음력 정월 초였다.
2003년은 내 개인적으로 지장기도 10년 되던 해였고 2003년이 시작될 무렵에 나는 서울에 사는 언니로부터
광명진언을 21일간 1000독 하면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곧바로 광명진언을 열심히 하루도 빼먹지 않고 21일간 했다.
21일이 끝나자마자 나는 통도사 원주스님으로 계셨던 지범스님을 뵙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범스님이 광명진언 21일간 1000독으로 만나게 된 스승이신 줄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스님으로부터 지장기도 시작하기 전에 광명전에서 26일간의 신장기도와 49일간의 지장기도를 회향하면서
천도재를 지내라고 지침 받았다.
나는 스님을 뵙기 전에는 3일 이상 절에 다닌 적도 없었고 건강상태는 협심증, 부정맥, 갑상선 기능저하 라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스님이 주신 기도량을 소화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하루하루 몸은 굉장히 피곤하고 또한 스님을 거역 할 수는 없고 때로는 너무나 힘들어서
“ 여기는 절이지 학교도 아닌데... 그리고 스님은 호랑이 선생님도 아닌데 꼭 이렇게 해야만 하나 ? 라는
의문이 짙게 들 때도 있었지만 나는 이 기도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해냈다.
기도회향하던 날 얼마나 감개무량했던지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백중 회향 후 스님은 구미 영명사로 소임을 맡아 떠나셨다.
스님께서 영명사로 가신 후 약 2달 후쯤 영명사에서 천도재를 지내기로 했다.
스님께서는 천도재를 지내기 전에는 반드시 천도재를 위한 기도 숙제를 내 주신다.
무상계 33번, 광명진언 600번, 지장정근 5000번 이상 이었다. 기도는 집과 가까운 통도사에서 했다.
어느 날 나는 기도를 마치고 부산 집으로 가기위해 차를 고속도로로 올렸는데 아차! 하는 순간에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대형트럭이 내차를 들이받고, 내차는 튕겨서 앞에 가던 소형트럭을 들이받았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한참 후 주변의 도움으로 차에서 겨우 내려 의식을 차렸는데, 내 차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앞뒤가 심하게 부셔져 있었고 주변에는 경찰차, 응급차, 렉카 등이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와 있었다.
경찰의 질문에 답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감당하기 힘들고 무섭기만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대형 3중 충돌사고가 나서 차량이 앞뒤로 다 부셔졌는데도 몸은 전혀 다치지 않다니...
나는 그저 부처님께 감사드릴 뿐 이었다. 아울러 이렇게 기도를 하게 이끌어 주신 지범 스님께도..
내 일생에 이토록 부처님의 위신력을 실감한 적은 없었다.
사고 다음날도 나는 절에 갔다. 의사는 사고 후유증이 상당할거라 했지만 나는 별 탈 없이 무난히 지냈다. 그리고 천도재도 무사히 지냈다. 천도재를 지낸 후, 스님의 기도소리가 나에게는 많은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 2004년 백중기도 때부터 나는 영명사에 자주 가게 되었다.
영명사는 백중기도를 100일간 모두 16재를 지낸다.
나는 처음에 입재는 했으나 16재를 전부 다닐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입재 후 초재에도 나는 그냥 안가기로 마음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에 어느 무서운 남자 4~5명이
내 방에 들어와 나를 무섭게 내려다 봤다.
나는 무서워서 눈을 떴다. 나는 너무 무서웠고 가만히 누워 있다보니 혹시 그남자들이 신장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영명사로 갔다. 그리고 2재 때도 지난번과 꼭 같은 남자들이 꿈에 나왔다.
하도 이상해서 또 영명사로 갔다. 다음 3재때도 이번에는 설마하면서 안가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번 꿈에는 스님이 화엄경 약찬게를 하시면서 내 머리 위에서 목탁을 치셨다. 나는 하도 신기해서 또 영명사로 갔다.
나는 3재까지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이제는 남은 백중기도를 힘닿는데 까지 열심히 절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5재인지 6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쯤 나는 새벽에 너무 피곤해서 못일어 날 뻔 했는데 또 꿈속에서 갑자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서 놀래 깨어보니 알람은 꺼져있고 시계는 새벽 5시30분 나는 또 서둘러서 구미로 가는 제시간에 차를 탈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부산에서 구미에 있는 영명사까지 백중기도 16제를 빠지지 않고 무사히 회향했다.
나는 이렇게 영명사에서 천도재와 백중기도를 지내면서 어느새 지병으로 앓던 몇 가지 병들이 없어졌다.
첫째는 심장이 아주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뒤로 넘어져서 목 부분을 다쳐서 한 4년 동안 목에서 허리까지 너무 아파 20분 이상 서 있기가 힘들었는데 그것도 이제는 80%이상 거의 다 나았다.
그리고 또 명치부분에 조그만 공이 항상 있는 걸 느꼈다. 열이 조금나면 그 공이 아주 조금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몸살기운과 동시에 소화가 아주 안 되었다. 그런데 그 공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그리고 유년기부터 앓아오던 편두통은 완전히 나았다. 그 외 많은 잔병을 자주 앓곤 했는데
영명사 삼천 지장보궁 지장보살님을 접하고 나서부터는 그러한 아픔들이 감쪽같이 없어지고
지금은 부산에서 구미 영명사까지 먼 거리지만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간다.
2004년 추석을 일주일 앞둔 음력 8월8일경에 영명사 법당에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던 날.
그날 새벽에 친정 어머니가 꿈을 꾸셨다. 영명사 법당에 아주 가느다란 실처럼 생긴 조그마한 꽃이 피었는데 잘 보이지 않아서 애쓰고 있으니 어느 남자가 말하길 “그것은 그렇게 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좀 엎드려서 위를 향하여 보아야지‘’ 라고 말했단다. 그말 그대로다.
우담바라의 위치는 지장보살님 바로 밑 법상에 피었다. 그것도 용과 봉황에 피었다.
친정 엄마는 영명사에 가 보신 후 깜짝 놀라셨다. 꿈에서 보신 그 위치 그대로 였으니.....
우담바라가 핀 후 기도를 하면 그전에 느끼지 못한 그 어느때보다도 기운을 느낀다고 기도하는 불자들마다 한결같은 말이다. 나 역시 집에서 몸이 좀 불편하다가도 절에 다녀오면 오히려 몸이 편안 해지고 마음이 맑아짐을 느낄 수가 있다.
특히 마지막 토요일 철야정진 때는 기도의 묘미 내지는 매력을 느껴 보기도 한다. 철야기도는 사시 기도와는 다른 분위기다. 노천의 거룩하시고 아름다우신 지장왕 보살님, 육지장 보살님, 그리고 사람마다 업이 제각기 이듯, 제 각각의 다른 표정을 짓고 계신 삼천 지장보살님 전이 우아한 가로등빛을 받아 더욱 더 성스럽게 보이고, 지장보살님전에 켜진 수많은 촛불의 빛남은 어둠에 처해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어려운 실정을 밝게 이끌어 주실 것 같고, 우리 모두의 어두운 업을 촛불로 밝혀서 우리들의 업장을 소멸해 주실 것만 같다.
수많은 촛불대 위에 주지스님께서는 이번 을유년 새해의 축원문을 적어 놓으셨다.
“지장보살님! 저희에게 가피를 내리소서.” 나는 이 글귀에 가슴저려오는 감동을 느꼈다.
꼭 우리에게 가피가 내릴 것 같다.
노천에 걸린 이 글귀를 보며 갑신년(음력)을 보내는 마지막 철야기도 속에 주지스님과 함께
지장보살 예찬문 219배후 2시간의 지장정근과 3시간의 지장경 독송을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 했다.
주지 스님의 지도로 이 시간까지 기도해 오면서 기도와 업장 소멸에는 편법이 없고 오로지 순수하게
부처님께 귀의하고 업을 차츰 녹여 가고 조그만 기도의 힘이라도 주변과 함께 나누어 가야겠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꼈다.
처음에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스님께 여쭈었더니
“사람마다 제 각기 인연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기도를 하는게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우리 개인에게 맞는 기도, 그리고 그 때의 상황에 맞는 기도의 지도를 해 주신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힘이 되는지 모른다.
특히, 나 개인적으로는 스님의 정성에 감동을 받는 것은 물론이지만 기도에 대한 힘을 받는다.
예를 들자면 백중기도때 스님께서 직접 제작하신 노천에 휘날리는 “영가님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소서. 수자령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소서.” 라는 번을 보면 영가님들께서 꼭 극락세계로
가실 것 같은 확신감이 든다.
기도를 하면서 스님과 상담한 적이 있었는데 모든 것을 억지로 하려하지 말고 순리대로 하라는 말씀에서 나의 잘못된 부분을 통감하여 고치려고 애쓴다. 두서없이 적은 글이 스님이나 혹은 불자님들께 조금이나마 누가 됐다면 이해를 구할 뿐입니다.
이 글을 마감하면서 영명사 주지스님께서 이번 새해에 쓰신 “ 지장보살님! 저희에게 가피를 내리소서.” 라는 글귀가 여러분 모두에게 회향되어 을유년 한해가 불자님들 모두에게 좋은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불기 2548년 12월 말에 청 정 화
출처: 구미 영명사(www.youngmyungsa.or.kr)
43.
아기를 보내주신 지장보살님
글쓴이: 신공덕행(申功德行)
“엄마, 사랑해.”하며 제 가슴을 꼭 껴안고 유치원에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는 유경이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저는 가슴 벅찬 기쁨을 느낍니다.
제 자식 예쁜 것은 인지상정인데 유별스럽기도 하다며 혹여 흉보는 사람이 있다 해도 저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일곱 살 난 딸의 행동 하나하나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딸만 생각하면 부처님과 지장보살님, 지금 동산사에 계신 주지 법전스님께 고마운 마음이 샘솟듯 용솟음칩니다.
저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지고 지장보살이 절로 나옵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저는 13년 전 남편과 연애결혼을 하고 서울 신림2동의 다세대 주택에 보금자리를 꾸몄습니다.
부부 금슬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좋았는데 이상하게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에는 저와 비슷한 또래로 거의 같은 시기에 신접살림을 차린 이웃이
두 집이나 있었는데 그이들은 결혼 초에 다 아이를 가졌습니다.
배가 남산처럼 부른가싶더니 아기 울음소리가 나고, 하얀 기저귀를 옥상 빨랫줄에 척척 널어 놓은 것을
보노라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이웃에 아기가 있는데다 평소 아기를 예뻐해서 그런지 결혼 후 1년이 지나도 태기가 없자 속상하고
불안했습니다. 유명한 산부인과라고 소문난 큰 병원에 가서 진찰도 받아보고, 아기를 잘 들어서게 해준다는
탕약도 거금을 들여 한 달에 세재나 내리 먹었습니다.
병원에서 주는 대로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 배란조정을 몇 달이나 했는데도 효과가 없어서 나중에는
인공수정까지 했습니다. 남편도 저도 아무 이상이 없는데다 그토록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애써도 안 되자 병원에서 복강경 검사를 해본 후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자고 했는데
갑자기 두렵기도 하고 자포자기의 마음도 생겨 그 뒤부터 병원에 아예 가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지 만 2년이 넘어도 아이가 안 생기자 점차 주변 사람들의 염려도 커졌습니다.
남편이 막내인데다 시부모님께서 이미 돌아가셨는지라 시댁에서는 그렇게 눈치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명절에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찾아뵙는 시백부 백모님의 “왜 아직도 아이가 없느냐?
노력을 더 해보라.”는 걱정어린 말씀에 민망해서 나중에는 고향에 내려가기가 싫었습니다.
아무리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를 하고 마음을 비워 아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해도
아기들만 보면 너무나 예뻐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의 의미를 그 때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혼자 슬퍼하고 눈물지으며 아이 갖기를 갈망했습니다.
아이가 없으니 친척, 친지도 만나기 싫었습니다.
백일이며 돌잔치 집에라도 가는 날이면 아무리 태연자약하려 해도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습니다.
그렇게 아이 때문에 애면글면하고 있는데 어느 날 신문에 끼어 있는 지장사 불교대학 1기생 모집
광고전단을 보고 신림동의 지장사를 찾아갔습니다.
친정과 시댁 집안이 다 불교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불교에는 늘 관심이 있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불교 공부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선뜻 불교대학에 등록을 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마음씨 고운 보살님들도 알게 되어 참 행복하게
절에 다녔습니다. 잠시나마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한 고통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보살님이
“결혼한 지 3년이 되어 가는데 애기가 없어서 어떻게 해요 100일 지장기도를 열심히 하면 성취할 수 있을 텐데.
스님도 이상하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100일기도를 권하시면서 왜 공덕행보살에게는 하라는 말씀이 없으시지.
아마 때가 되어 스님께서 100일기도를 권하실 때 꼭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보살님의 말을 듣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겠노라’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스님께서 1995년 5월 초에 100일 지장기도를 하라고 하셨고 스님 말씀대로 100일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꼭 새벽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잠도 많은데다 그 무렵 남편이 외국 출장 중이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던 터라 사실 새벽기도는 버거웠으나 스님께서 시키는 대로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우리 집과 지장사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는데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절에 가서 예불 드리고,
지장기도를 했습니다.
간혹 술 취한 사람이 따라오는 것 같아서 무섭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지장보살을 염하면 두려움이 스르르 물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출장간 남편이 한 달 만에 돌아온 뒤부터는 남편과 함께 절에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만큼 간절하게 기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원했기에 대원본존 지장보살님께서 아이를 보내주셨을 것입니다.
불가사의한 것은 6년 동안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었는데, 100일기도를 회향한 지 두 달 만에 남편이 꿈을 꾸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더니 찜찜한 얼굴로 안 좋은 꿈을 꿨다고 하면서 얘기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꿈만 꾸면 태몽인가 싶어 꿈 내용에 신경이 곤두서있던 터라 얘기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당신이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뛸 듯이 기뻐하며 병원에 갔지. 병실에 아주 토실토실하고 건강한 아기가 있기에 우리 아긴가 싶어서 안으려 했더니 간호원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른 아기를 가리키더라고. 근데 작고 비리비리하게 생긴 아기를 지장사 주지 스님이 안고 계시다가 우리 아기라며 날 주시더군. 애가 얼마나 약해 빠졌던지 칠삭둥이 같았어.”
남편의 얘기를 들은 뒤 “꿈은 반대라는 말도 있지 않아요? 꿈에서 스님을 뵈면 좋고, 지장보살님은 꿈에서 스님으로 나타나신다네요.”라며 남편에게 위로 섞인 말을 해주면서도 제 마음 또한 그리 편치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 후 생리날짜가 다가왔는데 생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약간 출혈이 있어서 이상히 여기면서 일주일을 버티다가 새벽에 임신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그 때의 그 떨림과 흥분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임신 반응선에 나타난 보라색 선을 보고 또 보고, 혹시라도 지워질까 들락날락하면서 5분 간격으로 그 줄을 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남편에게 잘못 이야기했다가 실망시키면 안 되겠기에 일주일 동안 꾹 참고 있다가 동네의 종합병원에 가서 다시 테스트를 해보니 임신은 맞는데 자궁 입구에 혹이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날 혹을 제거하는 수술인 줄 알고 수술대 위에 누웠었는데 알고 보니 낙태수술이라는 말을 듣고 깜작 놀라 수술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어떻게 가진 아긴데, 말도 안 돼’하는 심정으로 다음에 오겠다고 하자, 담당의사는 “현재 아기 상태도 안 좋다. 다음에 건강한 아기를 가지도록 하라. 내 친동생이라도 나는 수술하라고 권할 것이다‘라고 하며 수술할 것을 종용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바로 그 시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장사 보살님이 잠간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제가 아기를 엎어 놔서 아기가 새파랗게 질려 울고 있는 것을 법전스님께서 소리를 버럭 지르시며 “아기 제대로 누이라.”고 호통 치셔서 아기를 똑바로 누이자 그제야 아기가 숨을 크게 쉬면서 얼굴이 편안해지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제 아이의 태몽을 꿔주시기도 했습니다.
뒷날 그 이야기를 듣고 스님께 여쭙자, 인연이 깊으면 그렇듯 신이한 꿈을 대신 꿔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날 당장 백방으로 수소문 해보고 모 종합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은 결과,
“걱정할 정도로 혹이 큰 것은 아니다. 다만 유산기가 있으니 특히 몸조심하고, 자궁무력증이 있어서
태아가 크면 자연유산할 수 있으니 자궁입구를 묶어주는 수술을 해아 한다.”는 소견을 듣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두 달간 꼼짝도 않고 누워 있고 친정어머니께서 대신 살림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위험하다는 기간을 잘 보냈는데 24주째 정기검진에서 임신중독증 초기 증상이 나타나 입원해서 한 달 후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 임신성당뇨가 와서 또다시 40일 동안 입원하고 있는 중 양수가 터져서 7개월 20일 만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임신중독증인데도 순산을 하고 1.59킬로그램의 작은 아기지만 울음소리도 크고
매우 건강하다며 축하해주었습니다.
남편은 태기가 있기 전에 꾸었던 꿈과 상황이 똑같다며 참으로 신이한 일이라고 거듭 말하면서 지장기도 덕분에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감동적으로 말했습니다.
남편의 신심은 그 때부터 눈에 띄게 깊어져 지장사 부부법회의 총무로 있으면서 전법에도 힘쓰고 절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지금은 동산사에서 법전스님을 모시고 불자로 열심히 신행 활동중)
한편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 이틀 만에 나온 아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만 같은 아기인지라 우리 부부는 한동안 교대로 아기를 보면서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아기가 제대로 숨을 쉬는지 노심초사 관찰하면서 의사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일분일초까지 재어 젖을 먹이며 애지중지 키운 아기는 무럭무럭 잘 자라 백일 무렵에는 우량아가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애를 보며 얼마나 장한 생각이 드는지 백일도 되기 전에 지장사에 데리고 갔는데 스님을 보자마자 아기가 활짝 웃으며 스님께 가려고해서 안겨드리니까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낯을 가리며 엄마 품으로 얼굴을 묻는 아이가 스님께 안기려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지장보살님이 보내주신 아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서울에서 물 흐르는 대로, 즉 진리대로 순리대로 살라고 유경(流京)이라 이름지어주셨고,
아이의 법명은 진불심(眞佛心)이라 지어주셨습니다.
현재 스님의 유발상좌인 유경이는 제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조금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은 천재인 것 같다는 착각 속에 산다는 말도 있지만 저 또한 유경이가 어릴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두 돌이 되기 전에 스스로 숫자개념을 알아차리고, 세 돌도 되기 전에 한글을 깨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찌나 말도 빨리 하고 어휘개념도 풍부한지 주윗분들로부터 “기도해서 낳은 아이라 다르다. 참 똑똑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지적인 측면보다는 유경이의 맑고 밝은 성품, 착한 마음씨를 볼 때 더욱 기쁩니다.
얼마 전 유치원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데, “유경이는 참 보기 드문 아이에요. 똑똑한 것은 물론이고 착하기 그지없는 데다 애가 참 조숙해요. 글쎄 친구들에게 다니면서 ‘너는 이런 면이 좋다. 너는 이것을 잘하는구나. 너는 좋은 친구야.’ 하면서 칭찬을 하고 다니는 겁니다.
아이들끼리 질투하는 것은 봤어도 칭찬하고 다니는 애는 유경이가 처음이에요.
또 심술궂은 아이가 조금 약한 아이를 놀리면 ‘너 그렇게 하면 못써. 너는 착한 아인데 왜 나쁜 짓을 하려고 하니? 친구 놀리지 마.’하는 겁니다. 이다음에 유경이는 훌륭한 인물이 될 겁니다.”라는 말씀을 들으며 또 한 번 유경이를 보내주신 지장보살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저는 진실로 유경이를 갖고 유경이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이 제 힘이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햇빛이 식물을 자라게 하듯 태양 같은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의 가피가 없었다면 저희 가정이 어떻게 이렇듯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제가 유경이를 낳은 지 6년 만에 동생을 갖게 된 것 또한 지장보살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임신 소식을 듣고 “엄마, 스님께 먼저 말씀드려야지.”하면서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사랑스러운 우리 딸 유경이가 돌아올 시간입니다. 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어 제 딸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누구든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전생의 업장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지장보살님께 의지해서 지극하게 기도하면 그 모든 업장을 다 녹여버리고 행복한 인생을 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체험했기에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지금 유경(진불심)이는 초등학교 6학년 동생 유정(보리심)이는 7살이랍니다. 둘다 너무 맑고 천진불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아버지(정담거사) 어머니(공덕행보살) 이렇게 4식구가 행복하게 부처님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실한 기도와 수행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합니다.
성불하십시오.
출처: 지장보살 영험록(김종매외, 불광출판부간), 동산사 홈페이지(www.dongsansa.org)
44. 운호스님의 지장기도
어려서부터 몸이 유난스레 약하였던 운호스님(가명, 비구니스님)은 주위로부터 나이 삼십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자주자주 병원 신세를 지면서 근근히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 적령기에 '영원 생명'을 찾는 공부를 하고 싶어 출가하였다.
출가 후 스님은 대만으로 유학을 가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다시 강원공부를 마쳤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전한 '나'의 것이 되기보다는 겉을 맴돈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공부를 더하고 싶었던 운호스님은 다시 대만으로 갔다. 그러나 약하기 그지없었던 몸은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내가 정녕 출가사문일진대, 내 모습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가 환희심을 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렇게 병약하고 무능한 나를 보고 누가 신심을 낼 것인가? 나는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치는 존재가 아닌가?'
이렇게 슬픈 생각에 잠겨 있던 스님은 때마침 대만에서 유행하고 있던 점찰법(占察法:십악과 십선을 적은 윷 같은 모양의 木輪을 던져 전생의 업을 알아보는 법)을 행하였다.
스님은 ≪점찰선악업보경≫에서 설한대로 지장보살의 명호를 열심히 부른 다음, 목륜(木輪)을 던졌다. 그러자 '살생업'이 많다는 괘가 나왔다.
'아, 살생을 많이 한 자는 몸이 약한 과보를 받는다고 했거늘, 나의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픈 것이 전생의 업보라는 것을 왜 깨닫지를 못하였던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도 죄업을 참회하여 업장을 소멸시키는 일이다.'
출가한 후 10년 동안 제대로 기도 한 번 못하였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스님은 지장기도를 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지장경≫ 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1번 독송을 하고, '나무지장보살'을 천 번 부른 다음, <지장예찬문>을 외우며 158배를 한다. 그리고 <지장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 천 번을 불렀으며, 기간을 21일로 정하였다.
스님의 기도 목적은 업장 참회에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도를 시작하자 원래의 기도 목적과는 달리 집안의 조상들이 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스님은 7일 마다, 한 번씩 간단한 음식을 마련하여 불보살님과 조상님, 그리고 유주무주고혼(有主無主孤魂)들께 시식(施食)공양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러자 첫 7일째, 조상들이 흰 옷을 입고 공양을 받으러 오는 것이었다.
이에 두 번째 7일과 세 번째 7일에는 '변식진언(變食眞言)'을 외우며 영가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관상(觀想)하였다. 음식을 적게 마련하였을지라도 진언을 외우며 관상을 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그 음식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관상을 하여서인지 스님은 공양이 차츰 뷔페식으로 바뀌는 꿈을 꾸었다. 조상님들은 상을 차려 놓은 특별실에서 공양을 들고, 유주무주고혼들은 아주 큰 홀에서 뷔페식으로 공양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7일날에는 모두가 음식을 먹고 천도가 되는 꿈을 꾸었다. 이렇게 스님은 영가천도라는 부수적인 가피를 입은 것이다.
가피를 입어 환희심이 가득하였던 스님은 기도기간을 백일로 늘여 잡고 더욱 마음을 모아 기도하였다. 30일째 되는 날 스님은 또다시 꿈을 꾸었다.스님은 지장보살께서 머물러 계신다는 어느 절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자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긴 마구니, 요상하게 생긴 마구니,
심지어는 외국 비구니의 모습을 띤 마구니까지 입구에 일렬로 늘어서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장삼을 크게 휘둘렀고, 그 순간 모든 마구니들은 땅바닥에 엎드리며 항복을 하였다.
스님이 당당한 걸음으로 절문 안으로 들어서자, 허공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수각(水閣)에서 손을 씻어라."
말씀을 따라 수각에 들어가 손을 씻자, 오른손을 씻은 물은 새까맣게 변하였고 왼손을 씻은 물은 반쯤 까만 회색빛이 되었다.
'아! 몸으로 지은 신업(身業)이 소멸되었구나.'
살생 등의 나쁜 짓을 주로 저지른 것이 오른손이었기에 그 씻은 물이 새까만 색, 왼손은 오른손을 도와 나쁜 업을 짓는 보조역할을 하였기에 그 씻은 물이 회색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손을 씻고 신업의 소멸을 느끼고 나자 스님의 몸은 한없이 가벼워졌고, 꿈속에서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게 되었다.
또 며칠이 지나 35일째 되는 날, 운호스님은 한국의 여러 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고, 65일째 되는 날에는 비구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다.
이것이 자서수계(自誓授戒)이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는 스스로가 지극한 정성으로 참회하고 발원하여 꿈속에서 불보살님으로부터 직접 수계를 받는 자서수계법을 설하고 있는데, 운호스님은 이 법에 의해 수계를 받아 마친 것이다.
그리고 백일 기도를 회향하는 날, 스님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수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다며 노천온천이 있는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스님도 그곳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줄이 너무나 길어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며 서 있었다.
그때 마침 대만에서 함께 공부를 했던 비구니가 앞쪽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 비구니는 스님을 손짓하여 부르더니 자기 앞에 서도록 하였다.마침내 노천온천으로 들어 순서가 되었을 때 대만 비구니는 온천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운호스님은 왠지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는 물 속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스님은 주위를 살피다가 조금 떨어진 반석 위에 까만 옷을 입고 앉아 계시는 아는 처사님을 발견하였다. 처사님은 8년 동안 지장기도를 한 분이었다. 스님은 그분 앞으로 가서 아래의 옷을 모두 벗은 다음 쭈그리고 앉았다. 처사님은 스님의 입 바로 밑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말씀하셨다.
"여기에 악귀가 붙어 있노라."
그리고 여드름을 짜듯 두 손가락으로 입 밑을 누르자, 고름이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것이었다.
"이제 되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되느니라."
운호스님은 그 말씀 끝에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었음을 느꼈다. 또한 '삿된 생각만 조심하라'는 것은 의업(意業)을 조심하면 된다는 깨우침이었다.
환희로움이 온 몸을 감싸고 도는 것을 느끼면서 스님은 벗어 놓은 옷을 입은 다음, 허공을 날아 2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섰다. 그곳에는 스님보다 키가 두 배나 큰 분이 넷이나 있었다. 그때 건물 아래로부터 스님을 찾는 대만 비구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운호스님, 운호스님…."
"저 여기 있어요. 잘 가요."
서로가 인사를 하며 헤어지는 순간 운호스님은 꿈에서 깨어났고, 백일기도 또한 마쳤다.
그런데 참으로 신통한 변화가 일어났다. 기도 전까지는 경전을 보고 있으면 내용이 분명히 다가오지 않았으나, 기도 후부터는 내용이 너무나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기도 후 스님은 아미타불의 정토신앙을 믿기 시작하였는데, ≪아미타경≫ 등을 읽으면 삽화가 그려져 있는 동화책을 보듯이 극락 세계의 여러 모습들이 그대로 펼쳐져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경전의 내용이 저절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총명득력(聰明得力)! 총명의 능력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잔병치레를 많이 하였던 몸도 그 누구보다 건강하여졌다. 이후 스님은 '인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 인도로 떠났고, 그곳에서 도력이 매우 높은 티벳의 고승들을 만나 그 분들의 지도 아래 현재 용맹정진을 하고 계신다.
스님의 원래 목적은 업장소멸에 있었고, 처음에는 21일 동안만 기도를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자 생각지도 않았던 조상들이 나타났고, 이에 스님은 영가천도를 해주고자 하였다.
영가들이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관상(觀想)하면서 시식을 행한 결과, 많은 영가들이 가피를 입어 삼칠일(21일)만에 모두 천도가 되었다.
신심이 크게 일어난 스님은 21일 기도를 백일기도로 연장하여 더욱 열심히 매진한 결과, 꿈에서 사미니계와 비구니계를 받는 자서수계를 성취하였으며, 몸으로 지은 죄업인 신업(身業)이 소멸되는 꿈과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는 가피를 입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된다'는 말씀과 함께…. 이렇게 신업과 구업이 소멸되자 스님에게는 건강과 총명이 가득하여 졌고,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길도 저절로 열렸던 것이다.
곧, 백일지장기도를 통하여 영가천도, 업장소멸, 자서수계, 총명득력, 건강 및 새로운 스승을 만나 향상의 경지로 나아가는 가피까지도 모두 얻은 것이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 김현준저 지장신앙 지장기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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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월간 불광(www.bulkwang.org)
2007년 1월호 우리스님 단양 방곡사 회주 묘허스님편 인터뷰(사기순님 글) 중 일부 전재
묘허스님이 회주로 계신 단양 방곡사, 신탄진 신흥사, 김해 원명사가 다 유명한 지장도량이다.
김해 원명사 지장보살상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눈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이적을 보여 입소문이 자자한데, 방곡사에 모신 거대한 지장보살입상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숙세부터 맺어진 지장보살과의 인연
“은사스님(故 화엄큰스님)은‘아들을 의사로 만들어 독립운동가들을 돕겠다’는 모친의 권유로 오사카 의대를 졸업하셨지요. 이차대전 때 일본군 군의관으로 끌려가자, 모친이 매일 저녁 등을 밝혀 놓고 지장보살님께 기도하였는데, 어느 날 등이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등이 없어졌던 바로 그날 밤 아들은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잠결에 뛰어나와 등불을 따라갔는데, 그때 미군들이 막사를 폭격하여 다 죽고 혼자 살아남아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이적을 체험하시고 일생 동안 지장기도를 하셨고, 은사스님도 어머니의 지장신앙을 이으셨습니다.”
은사스님의 뜻을 받들어 머무는 곳마다 지장도량으로 일구니 보기 드문 효상좌라고 찬탄하니, 불가(佛家)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참으로 지중하다며, 숙세(宿世:전생)부터 인연이란다.
“어머님이 생남불공을 드렸는데, 꿈속에 노스님이 아기를 안고 나타나셔서 키우다가 돌려달라기에 꿈속에서도 자식을 갖고 싶은 마음에 ‘예’ 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경전에 의하면 지장보살은 머리를 깎은 스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어머님은 지장보살님에게 얻은 아들이 결국 출가하고, 지장보살을 받드니 다 인연의 소치라고 하셨지요.”
불교에는 팔만 사천 가지 방편문이 있다.
그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지만,
‘고통에 빠진 중생들을 제도하고 그 모두를 성불시킨 뒤에 스스로 성불하겠다.’는 지장보살의 큰 서원을 현실 속에 구현할 때 고통의 사바세계가 그대로 평화로운 불국토가 될 것이다.
46. 자명성보살의 사돈댁 영가천도
독경천도(讀經薦度)
독경천도는 이름 그대로 영가에게 공덕이 되는 경전을 읽어주면서 행하는 천도법이다.
이렇게 공덕을 심어주는 경전들을 불가에서는 공덕경(功德經)이라고 하는데,
현재 널리 읽혀지고 있는 공덕경으로는 금강경, 아미타경, 지장경, 관음경,
약사경, 법화경 등이 있다.
이들 공덕경 중 어떤 경전을 택하여 읽어도 효과는 같으므로,
형편에 맞게 하나를 택하여 꾸준히 읽어주면 된다.
이제 구체적인 요령을 말하기 전에,
서울 신당동에 살았던 자명성 보살의 독경천도 영험담부터 함께 음미해 보자.
자명성 보살이 불교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50대 초반에 3년 동안 신장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사돈의 권유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다가,
꿈에 흰옷을 입은 할머니로부터 10여 차례 약물을 받아 마시고
완쾌됨으로써 불교를 깊이 믿게 된 것이다.
이 자명성 보살이 2남 2녀의 막내딸을 시집 보낼 즈음, 신랑집에서 예단을 보내왔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예단 한복판에 예물로 보내오지도 않은 족두리가 선명하게 보이면서,
꿈속인데도'무엇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사돈댁의 원귀가 예단에 묻혀 온 것이라 느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돈댁이 손을 대는 사업마다 모두 실패를 하고,
가족들도 이상하리만치 어려운 사정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보살은 꿈에서 깨어나자 곧바로 지장경을 독송하고 기원하였다.
"예단에 싸여 온 영가가 사돈댁과 인연이 있는 영가이든 또 다른 영가이든,
부처님과 지장보살의 공덕을 입어 밝은 길로 나아가지이다."
"예단에 싸여 온 영가들과 사돈댁 집안의 영가들이 극락에 왕생하여지이다."
이러한 축원을 하며 보살은 며칠동안 지장경을 하루에 한 편씩 정성껏 읽어주었다.
그러자 꿈에 옷을 단정히 입은 여자가 기쁨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나타나 공손히 절을 하고 물러갔다.
그런데도 예단에 싸인 족두리는 여전히 보였으므로 계속 지장경을 독송하고 축원하였다.
20일이 지나자꿈에 족두리를 쓴 단정한 젊은 여인이 나타나
정중한 자세로 정성을 다해 절을 하고 사라졌다.
자명성 보살은 사돈댁 영가를 위해 백 일을 기도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계속하였고,
백 일이 다 되었을무렵 노란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손에 흰 수건을 들고 나타나 절을 하고는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사돈댁에 원한이 있는 영가들이 구원을 받을 인연을 찾아왔다가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모두 천도되었음을 보살은 직감하였다.
그 뒤 자명성 보살 사돈 집안의 우환은 저절로 사라졌고,
사업도 잘 풀려 예전처럼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47.
현재 모전문대학의 교수로 있는 정박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유럽에서 박사 학위의 심사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임종의
소식을 듣고도 아내만을 고국으로 보내는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논문심사를 마치고 박사가 되어 귀국한 정박사는 여러 학교를 찾아
교수 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오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던 정박사는 속칭 '보따리 장사'라고 하는
시간강사가 되었고, 아내는 학원강사가 되어 가정을 꾸려갔다.
그러나 돈은 늘 모자랄 뿐이었다.
또한 정박사의 꿈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누더기를 입고 나타나
꾸짖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놈아!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버지의 꿈, 가난한 살림, 몇 년째 시간강사 신세 등으로 정박사의
신경은 갈수록 날카로워졌고, 아내와의 사이도 점점 멀어져만 갔다.
차츰 살아있다는 것까지 구차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충남 천안 광덕사를 찾은 정박사는 한 스님으로부터
영가 천도에 관한 말씀을 듣고, 광덕사 명부전의 지장보살님 앞에서
발원을 하였다.
"지장보살님! 불효자식에 대한 한을 품고 땅에 묻혀 계신 아버님을 위해,
49재를 지내는 마음으로 49일 동안 부모은중경 1부를 사경하고
지장보살본원경을 1백독 하겠나이다. 부디 아버님을 극락왕생케 하소서."
집으로 돌아온 정박사는 그날부터 지장보살님 앞에서 발원한 대로
실천을 하였다. 그러나 한 차례 읽는데 2시간씩 소요되는 지장경을
두번씩 읽고, 한시간 가량씩 부모은중경을 쓰는 것이 여간 힘들지않았다.
강의 등 평소 생활을 그대로 하면서 하루 5시간을 더 노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박사는 적당히 타협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생각을 경책하면서
불효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잠을 줄였고, 버스 속에서도 지장경을 읽어
지장보살님 앞에서 한 약속을 지켰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제사를 지내고 잠이 든
정박사는 꿈에서 다시 아버지를 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전처럼
누더기를 입지않고 아주 좋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운 것은 아니었구나. 네 덕에 이 아버지는
좋은 곳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멀어져가는 아버지를 좇아 달려가다가
정박사는 깨어났다. 그 뒤부터 정박사의 꿈에는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해 가을 전문대학의 교수로 채용되었다.
이 정박사의 경우처럼 영가천도는 당사자가 직접하여야 한다.
굿을 한다고 하여, 부적을 쓴다고 하여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절에서 올리는 천도재만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절에 계신 부처님이나 신장, 그리고 기도를 하는 스님들도
'나'의 정성에 감응하여 움직여주시는 것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이라면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영가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도 '나'요, 천도를 하여 복되게 사는 것도
'나'라는 것을....... 그런데'나'의 문제를 어떻게 남에게
미룰 것인가?
내가 직접 하겠다는 자세와 각오가 없으면 천도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46~47 출처: 도서출판 효림 불교신행총서4 우룡큰스님저 영가천도
48.
불가사의 지장보살마하살
(법연 이광연님의 체험수기)
나는 언제부터인지 산을 좋아했습니다. 피아노를 다루는 사업을 하는
만치 음악에도 깊이 끌렸지만 말없는 자연이 더 마음을 당겼습니다.
산에 가면 대개는 절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산을 다니다 보니 어느덧 산의 핵심이 절 인듯 느껴졌습니다.
절이 없는 산에는 아예 갈 생각을 하지 않게도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절에 가서 염불 수행하는것도 아니고 그저 부처님앞에
가서 합장하고 절을 하고 나서 뜰 앞에 앉아서 멍청히 풍경소리를
듣거나 벽화나 단청한 귀퉁이에 눈길을 던지고 있는 그런 취미일
뿐이었습니다. 서울 근처 산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적으로 절도
어지간히 더듬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절과 친근해지고 스님들과
가까워지고 불법에도 슬그머니 들어와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한걸음 한걸음 산에 오르고 큰 나무 밑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멀리 꾸불꾸불 산길 끝에 펼쳐진 절의 모습 그것은
산의 경치라기보다 제 마음의 고요하고 신선한 구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는동안에 경전을 대하고 염불을 하고 차차 산에 다니는 재미가
깊어 갔습니다. 그래서 몇번 법회에 나가 교리를 배우고 염불 수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10년쯤 전의 일이었던가 싶습니다.
그후 불광법회를 만나 부처님의 크신 은덕속에 내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저의 생활을 믿음의 생활로 차차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독경과 염불, 예불로 시작하여 회사에 가서도
반야심경 1편으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출근하려고 차에 올라서도
먼저 반야심경을 암송하였습니다.불광법회에서 공부하면서 과분하게도
법회의 임원이 되어 여러 불자님들과 함께 믿음을 전법을 위한 정진을
하게 되니 하루하루 기쁨을 나날이 새로울 뿐입니다.
몇번인가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부처님께 감사하면서 그 모든
고비를 넘겼습니다. 이제는 더욱 기도 정진하여 믿음의 힘을 키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데 보탬이 되고자 하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으니 정말 감사한 나날입니다. 그런 중에 근래 기도를 통해서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실을 적어 보고자 합니다.
지장보살이 주신 아기
불광법회를 만나고서 비로소 부처님의 크신 위덕과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상님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조상님께서 극락왕생하시고
저의 누이동생도 보살펴 주시고 형제들을 돌보아 주시기를
기원하고 감사하였습니다.저는 9남매 중에 맏이인데 집안과 형제들에
대한 책임도 컸지만 그무렵 출가한 동생이 소생이 없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아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개울에서 목욕하고 가까이 있는진관사를 찾아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작은 정성이나마 부처님 앞에 공양올리고
지장보살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였습니다.
진관사 부처님은 그전부터 자주 참배한 부처님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기도를 시작하는 날 법당 문앞에 서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쭈뼛쭈뼛해지고 머리카락이 하늘로 올라가는것
같았습니다. 몸은 굳어지고 어떤 전율같은 것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저는 손에 염주를 들고 단단히 마음먹고 법당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법당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 그때의 지장보살님과
시왕님의 무서운 상호를 지금껏 잊을 수 없습니다. 크게 노하신
것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어떤 힘이 저를 법당 밖으로 밀어내는 것같은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 첫날이니까 물러갈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에는
시험도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무서운 때는없었습니다.
저는 눈을 꽉 감고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경드렸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지장보살경 1품 또는 2품을 읽고 지장예찬
문을 읽으며 백 오십 팔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30분간을 일심 염불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쫒기는 듯 법당에서 나오곤 하였는데 이러한
힘든 경계가 1주일 후에야 바뀌었습니다.
차차 그런 경계가 사라져 1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지장보살님이 반겨
주시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은 어찌 장부가
그런 요망한 말을 하느냐고 꾸지람 하시겠지만 저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표정이 나날이 반겨하시고 기뻐하시는
표정으로 바뀌었으며
법당 근처에 오기만 하여도 반겨주시는 것이 가슴으로 와 닿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백일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하였고 그 사이에는
오직 환희심과 감사로 나날이 지나갔습니다. 집안 이야기르 드리자면
제 여동생이 충청도 제천에 사는데 결혼하여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한결같이 후사를 바랐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채 세월이
흐르니 어른들의 불만이 겹쳐서 불화가 빚어지고 마침내는 몇번이나
친가로 쫒겨 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차례 겪고 나니
친정의 큰 오라비라고 하는 책임에서 고민하다가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한 후 세달 가까이 되니 임신 소식이 들려욌습니다.
그동안 하도 걱정했던 일이라 믿기지 않더니 드디어 달이 차 금년
봄에 아들을 순산했습니다.병원에서 의사는 난산을 예고했습니다만
저는 부처님만 믿고 아들 순산을 선언하고 집에 왔더니 과연 꿈만
같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백일 기도를 마친 저는 계속하여 또 백일기도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분은 또 꿈이야기냐 하시겠지만
이 꿈은 정말 꿈같지 않은 꿈이었습니다. 새벽녘인데 꿈 속에 어떤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키는 보통보다 약간 작은편이고 남루한 한복
차림에 아무렇게나 수염이 났으며 머리에는 갓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의 덕을 입어서 내가 좋은
데 간다. 그래서 인사하러 왔느니라.
나는 장호원 할아버지라고 한다." 저는 반문했습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인사 받을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였더니 서울 장위동에 사시는 저의 아저씨를 모시고
왔습니다.그리고서는 "이 사람이 내 손자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역사물 TV에서 보던 포졸형식을 한 두사람이 나타나서
그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금방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
노인은 새옷으로 갈아 입었고 그것은 옛 장군복 같았습니다. 저에게
가까이 와서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포졸 형색을 한 사람도
합장하고 정중히 인사하고 노인을 모시고 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실감있는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이 깨자 저는 이상한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그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진관사에 가서 기도하고 그 길로 사무실로 나가
당숙모댁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당숙모는 올해 83세이신데 16세에 시집오신 저희 집안의 산
역사이십니다. 전화로 "장호원 할아버지가 계셨습니까."하고 물으니
형상을 물으셨습니다. 제가 본 대로 형상을 말씀드리니, "내가
그 할아버지를 뵙지는 못하였지만 그러한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말은 들었다. 그런데 너는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느냐."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조상님을 위한 기도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당숙모는 "참 잘했다. 나는 천주교를 믿고 있지만 조상님을 위해서
그렇게는 해보지 못했다. 너는 참으로 잘했구나"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경전 말씀에 일체중생이
미혹하여 어둠을 방황하고 불보살님이 능히 이를 구원하신다 하였고
일심으로 염불 기도하면 모든것이 이루어진다고 한 것을 생각할 때
신기하기도 하지만은 우리가 알수없는 세계에서 일어난 현실의
한 단면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조상님은 확실히
이름모를 분까지 모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꿈에 본 무주고혼
그런데 저에게는 저의 생친이 계시고 또 큰아버님이신 아버님이
계십니다. 말을 바꾸면 큰아버님 앞으로 몫이 지어진것입니다.
두 어른 모두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신 지 오래입니다.
저는 편모 슬하에서 자란 까닭인지 아버님에 대한 사모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처님 법을 믿으면서부터 제사는 정성드려
올렸지만 그래도 모자라는 듯하여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개울에 가서 냉수욕을 하고 진관사에 참배하고 지장보살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지장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불하며 예배하고
예배하며 염불하는 것으로 정근 일과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도에는 아버님을 위한 기도와 아울러 저의 기도인연
으로 무주고혼들까지도 모두 부처님 은혜를 입기를 기원했었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 일과를 정확히 지켜 나갔습니다.
그런데 100일 기도를 하면서 홀로 정근하고 부처님앞에 약간의
공양을 올렸을 뿐 무주고혼들을 위하여 시식은 8월18일 회향날로
잡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고 진관사 개울에는
빠알간 꽃물이 다 흘러가고 어느덧 여름이 한창인 때였습니다.
그때가 7월말 경이었는가 합니다. 새벽 늦게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낯익은 진관사 일주문 안에 서 있었습니다. 그건데 별안간 수십,
수백명의 낯설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를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진관사를 향하여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저를 둘러 싸며 "배가 고프오, 못살겠소. 어서
먹을 것을 주오."하고 일제히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오는 8월 18일까지 기다려 주시오. 그때는 소참이나마 준비해서
대접하겠오."하였으나 저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배가 고파 못견디겠오. 어서 밥을 주시오." 하고 외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난처해졌는데 순간 저의 곁에 위풍이 당당하고
키가 9척이나 됨직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대대장이오. 이대로 있어서는 아니니오. 우리 병력을
풀어야 하겠오. 객귀들 하나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오."
하더니 금방 일단의 병력이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군모와 군복이 배당되어 곧 입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팔짱을 끼어 스크럼을 짜고 빈틈없이 줄을 서서
전진하였습니다.그런데 여전히 저들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도 20일만 기다리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데
저 대대장이라는 사람을 말하기를
"저들에게 무엇인가 먹여야지 그냥 두면 안된다."하더니 어디서 날라
왔는지 큰 밥통에 밥과 나물이 운반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비빔밥을 만들어 군대용 반합에 담아서 우리 군인들이
숟가락으로 퍼서 저들을 먹였습니다.
수백명의 군인들이 한줄로 서서 그 앞에 밥을 먹겠다고 모여들어
웅성대는 군중들에게 큼지막한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쉴사이 없이
퍼먹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한참동안 그러는 사이에
거기에 모여 있는 모든 객귀들을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앞서의 대대장이라는 9척이나 되는 사람이 앞에 나와
일장연설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좀체 들어보지 못한 훌륭한 법문을
설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마음이 어두워 이런 고생을
한다. 마음을 밝히자면 부처님을 믿어라.
그리고 이제까지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라. 그리고 부처님 믿고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나아가라. 이번에 너희들이 배부르게 먹고
극락세계에 가는 것은 법연거사의 은덕이니 그 은혜를 잊지 말라"
이말을 들은 군중들은 일제히 저를 향하여 절을 하며 감사인사를 하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대대장이라는 사람은 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혹 기독교신지가 있으면 손을 들어라"하니 역시 여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법연거사의 은덕으로 하늘나라보다 더 좋은 극락세계로
가게 된다."
하며 앞서 말을 기독교적 표현으로 바꾸어 되풀이하고 나서
"법연거사에게 감사하라"하였습니다. 역시 그들도 앞으로 나와 저에게
각별한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눈으로 보는듯
생생한 것은 그들의 기쁨에 넘치는 얼굴입니다.
그것은 흡사 법회를 마치고 나오는 저희들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꿈을 꾸고 나서 '객귀'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듣는 말이라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무주고혼'이라는 말씀을 들었을때 저는 비로소 이번 기도의
목표인 선망부모와 무주고혼을 위한 기도가 성취됐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다시 실감합니다.
분명히 인간은 육체나 현실생활이 다가 아니며 사후 영혼의 생활만도
다가 아닌 불멸의 세계가 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도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저와 같은 제가불자의
독경,염불의 공덕이 경전말씀 그대로 불가사의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지장보살은 절에서만 부르는 것이라 하는데 이 말은
정말 잘못된 말입니다 또 한가지는 중생세계에는 무주고혼과 같이
시장(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누가 보살펴 주고 구재하여 밝은 길로 인도하여 주겠습니까?
불법만이 제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진정 우리 부처님만이
모든 생명을 밝히고 구원해 주는 영원한 광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효성을 일으키고 자비심을 일으켜 조상님과 무주고혼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출처: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곳에 (43인의 불교신행수기), 불광출판사
법연 이광연님의 체험수기
.......................................................................................................................
49.
모든 중생의 안락을 기원하는 지장기도
황효주(덕운행) /한약사
자비도량참법을 읽으며 지장기도를 드린 지도 어느덧 7년이 넘었다.
『자비도량참법』은 중국 양나라의 무제가 죽은 애첩 치씨를 천도하기 위해 여러 고승대덕을 불러 모아 만든 경전에서 중요한 부분만 간추린 것이다. 우리가 지은 업이 불러오는 결과와, 우리가 기도한 공덕으로 육취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회향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고인의 천도는 물론, 자신의 업장소멸과 다른 중생의 안락을 기원하고 싶다면 이보다 좋은 경전은 없으리라 본다.
보통 아침 5시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까지 약 1시간 정도 『자비도량참법』을 읽으며 기도를 드린다. 이 책은 권당 90쪽 정도 되는 분량으로 모두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일 한 권씩 읽으니 열흘이면 책 전체를 완독하게 된다. 100일이면 『자비도량참법』 전권을 10번 읽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7년 동안 지장기도를 하고 있으며 얼마 전부터는 사경까지 곁들이고 있다.
『자비도량참법』 수행은 매번 할 때마다 느끼는 바가 사뭇 다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흐르는 물은 항상 가득하지 않고 맹렬한 불도 늘 타는 것이 아니며 해는 떴다가 어느덧 지고 보름달도 찼다가 기우나니, 부귀하고 영화로운 이도 덧없음이 이보다 더하리.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부처님께 예배하여라”라는 부분이다. 인간은 늘 만족하며 살 수 없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보다 기대치가 높다보니 늘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욕심이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고 기대치를 조금만 낮게 잡으면 만족하며 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자비도량참법』을 읽으며 항상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남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럴 때면 더없이 마음이 평온해진다. 내 마음이 평화로워지니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늘 웃는 낯으로 따뜻한 말을 해줄 수 있다. 또 진심으로 환자분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약을 지어주니 그분들의 쾌유도 빠른 듯하다.
『자비도량참법』을 통해 지장기도를 하며 겪은 좋은 일들과 신비한 경험은 숱하게 많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새벽에 지장기도를 마친 후 왠지 기분이 이상하여 출근하는 아들에게 몸조심하라고 각별히 일렀다. 그날 퇴근해서 귀가한 아들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침 출근길에 잘 나가던 차가 고속도로 중간에서 갑자기 서더란다. 당황한 아들이 차에서 내려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차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속도로에서 서 있다가 다시 차를 타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시동이 걸렸다. 그렇게 얼마쯤 달리다 아들은 끔찍한 사고현장을 보게 되었다. 불과 몇 킬로미터 앞에서 17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아들이 갑자기 서버린 차를 살펴보느라 도로 중간에서 지체하고 있을 사이 그처럼 어마어마한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만약 그날 잘 달리던 차가 아무 이유 없이 서버리지 않았다면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아들은 그 모든 일이 엄마의 기도 덕분이라며, 여태까지 그런 엄마의 신행 생활을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해 연말에 받은 자신의 성과급에서 3백만 원을 내가 다니는 절에 보시했다. 지금껏 내가 신행 생활하는 데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50년 동안 불교를 접하며 이런저런 수행을 해 보았지만 내게는 지장기도만큼 맞는 것이 없었다. 지장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가정의 평화는 물론 내 마음의 평화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항상 문제는 가까운 사람과의 사이에서 생긴다.
멀리 있는 사람과는 나쁜 인연이 생길 리 없다. 형제나 부모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면 그보다 먼 타인과의 좋은 관계는 바랄 수 없는 일이다. 더 많은 불자들이 지장보살님의 가피로 마음의 안정과 가정의 평화를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리|한재희
출처: 월간 불교와 문화 (www.buddhistculture.co.kr) 2007년 12월호에서 옮김
50.
지장경 독송이 주는 영험
전라북도 전주 중화산 2동 계명거사
달빛은 다정하고 밤 하늘엔 소근대는 푸른 별의 대화가 가득합니다.
어쩐지 잠이 올 것 같지 않고 내 주위의 소소한 일상과 상념들로 머릿속이 혼란스럽습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가진 이루지 못하는 욕망을 간파하시고 일체가 괴로움이라 설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번뇌요, 우리가 떨치기 힘든 망상인가 봅니다.
6남매 고이 길러놓고, 행여 잘못될세라 하얀 밤 뒤척이시며 잠 못 이루시던 내 어머니, 이젠 세수 93세로 모든 기력 쇠진하고 정신마저 혼미하여, 이승과의 이별을 가까이 두신 내 어머니, 천수를 다 하시는 그 날까지 혹 병마라도 침입하여 온갖 고통과 근심으로 생을 마감하시면 그 안타까움 어찌할까?
지금 이 순간도 외롭고 쓸쓸한 노인 요양병원 침대에서 아픔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음과 한숨으로 하루하루 지겨운 시간을 견뎌내시는 우리 장모님,
힘든 회사 생활에 지쳐 건강까지 해쳐가며 버텨보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 중등학교 교원 임용고시에 도전해 보겠다는 큰 아들의 꿈,
우리 부부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갑작스런 병마의 침투와 수술, 그리고 저철했던 치유과정......
이렇게 끝없이 꼬리를 물고 밀려오는 온갖 고통과 괴로움 등 세상만사가 왜 이렇게 아픔과 시련으로 얼룩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참 좋은 우리 절’ 덕명불 보살님의 안내로 지장경 독송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내용인가 싶어 목차를 훝어 보니 부록편에 지장경 독송 영험록이 실려 있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고 처음엔 황당하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미 어지러운 마음과 몸을 어딘가에 의지해 보고 싶은 기대감에 사로잡혀 독송해 보기로 마음먹고 우선 독송하기 전 수행과정을 정성스럽게 해야겠다 싶어 먼저 시방에 두루하시는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음 간절한 서원 발원과 정구업 진언 세 번, 오방 내외 안위제신 진언 세 번, 개경게, 개법장진언, 신묘장구 대다라니 세 번, 참회게 참회진언, 발사홍서원, 발원이 귀명례 삼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독송 후 지장경 독송, 이런 순서로 매일매일 기도에 정진하였습니다. 신심의 의지를 곧게 세우기 위해 아주 특별한 사정을 제외하고는 지장경 독송에 몰입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독송이 156회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기적일까요?
부처님은 대자비로 몸을 삼으시니 병자에겐 어진 의원 되시고, 길 잃은 자에겐 바른 길 가르쳐 주시어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이익할 것임을 가르쳐 주셨음에 부처님의 가피가 이 미천한 몸에도 내리셨나 봅니다.
올 해 세수 93세의 어머니가 감기 한 번 걸리시지 않고, 2층 계단을 오르내리시며, 건강하고 근심 걱정없이 하루 하루를 즐겁게 보내시고 계시며
사경을 몇 차례나 넘기셨던 장모님께서도 지금은 아픔의 고통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가족들을 맞고, 주위 환자분들에겐 덕담과 위로의 말을 전해주시며
큰 아들 역시 별 어려움없이 임용고시 합격의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 또한 치료 경과가 좋아 지금은 생기를 되찾고, 건강한 삶의 일상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든 일들이 부처님의 크신 자비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불자가 쓴 지장경 독송 영험록을 읽고 내가 또다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동안 나의 고뇌와 아픔을 따뜻이 녹여주신 부처님의 자비와 지장경에 다시 한 번 감사의 큰 절 올리옵고, 불법을 깨닫는 일에 게으름 멀리하고 뒤늦게 만난 소중한 인연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부디 다른 불자들께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생의 영원한 지침이 되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과 각자가 지닌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장경 독송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발원해 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지장보살
출처 : 대한불교 조계종 참좋은 우리절(I Love Buddha) 글쓴이 : 익명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