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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카 절기
<단락 1> 하누카 절기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중간기에 일어나게 됩니다. 가톨릭에서 이 기간을 중간시대 또는 침묵기 (암흑기)라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간기에 하나님의 사람, 유다 마카비 형제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누카는 다니엘서 7장-12장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성취되어진 절기입니다. 전도서 1장 9절에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말씀하며, 전도서 3장 15절에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지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 일이며,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예언적 그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반복되어지는 사건들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우리에게 거울로 삼아 본보기가 되게 하기 위함이며, 말세에 미혹당하거나 넘어지지 않기 위함입니다 (고전 10:11-12). 참고로 성경 에스더는 부림절을 배경으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인류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에서 적그리스도는 하만처럼 유대인을 죽이려고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유대인들은 예슈아를 믿지 않은 것에 대한 회개가 일어날 것이며 (대속죄일), 적그리스도는 하만처럼 심판을 받게 되어집니다. 그리고 열방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 때, 교회는 유대인과 한 새 사람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반유대주의, 대체신학, 헬라의 가르침 가운데 있는 이들은 에스더의 이야기를 두려워하며 싫어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역사는 남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가 되어야 하며, 하나님 나라의 역사입니다.
1. 단 8:8 숫염소 (헬라제국)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 (왕)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하누카에 대한 예언은 다니엘서 7장과 8장에 나와 있습니다. 숫염소는 헬라제국을 말하며, 큰 뿔은 알렉산더 왕을 말합니다. 그리고 현저한 뿔 넷은 알렉산더 왕이 죽고 난 이후 4명의 군대장관을 말하며, 이들은 알렉산더 왕이 차지하였던 땅과 권력을 분배받게 됩니다. 알렉산더 왕이 살아있을 때, 그는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는 정복한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하나의 언어와 문화와 종교를 믿게 하였고, 헬라의 철학을 가르치게 됩니다. 헬라의 가르침이란? 사람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는 이성을 통해 합리적인 것과 불합리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인간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며, 하나님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단은 인간의 입장 (헬라사상)을 선택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고, 선한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죄란 무엇을 말합니까? 내가 주인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내 생각, 내 감정, 내 뜻이 주님의 생각, 감정, 뜻보다 중요시 생각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고전 3:1). 그러나 우리가 예슈아를 왕과 주인으로 영접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영접이란? ’예슈아는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는 예슈아의 종이 되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롬 14:7-9).
1) 슥 9:13 ...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용사의 칼 (진리의 검)을 들고 일어나 헬라의 영 (인본주의)과 영적전쟁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단순히 미래의 어느 날 우릴 이 세상으로부터 건져내는 차원이 아니라, 지금 현재 시간 속에서 좁은 문, 좁은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모든 것의 결정권을 넘겨드리며, 이러한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 결과 진정한 평안함과 자유함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부인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생명과 강함이 우리 안에 생기게 됩니다.
(1) 단 8:9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쪽과 동쪽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11.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작은 뿔 하나는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이며, 이 이름의 의미는 ‘내가 신이다’ 입니다. ‘안티오코스’도 알렉산더 왕과 같이 헬라의 가르침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안티오코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예를 들면, 안식과 할례와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지 말며, 토라를 공부하지 말며, 성전에서 우상숭배를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안티오쿠스’가 금한 내용들을 지금의 교회가 대부분 지키고 있습니다. 교회는 ‘안티오코스’의 명령 (헬라 가르침)을 듣지 말아야 하며, 예슈아의 이름으로 끊어내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다니엘 7장과 8장에 나와있습니다.
(2) 단 7:24 그 열 뿔은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25. 그가 (적그리스도)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끔찍한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24절에 적그리스도는 열 뿔을 다스리게 되는데, 이는 10개의 무슬림 국가가 연합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적그리스도는 무슬림 국가들의 원수였던 이스라엘을 핍박하는데 앞장 설 것입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통치 기간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일 것이라’ 말씀합니다. 이는 3년 반, 1260일, 42개월로 환산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5절은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은 적그리스도에게 42개월 (3년 반) 동안 큰 권세를 허락하심으로 온 세계가 의를 선택할 것인지 불의를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3) 계 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열방의 많은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보고 놀라고 두려워함으로 그를 경배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적그리스도에게 이러한 큰 권세를 주셨을까요? 그것은 성경의 역사를 패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 때에 바로에게 큰 권세를 허락하셔서 온 땅에서 제일 강력한 자로 세우셨습니다 (출 9:16). 그리고 하나님은 BC 586년도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과 BC 721년도 앗수르의 왕 산헤립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이스라엘을 정결케하고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예를 들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어질때까지 어머니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형 에서와 씨름하였고,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얻어내기 위하여 씨름하였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권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씨름하였고, 삼촌 라반으로부터 신부를 얻기 위하여 20년 동안 씨름하였고, 하나님의 천사와 얍복 강에서 밤이 새도록 씨름하였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영적전쟁하게 된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의 유업으로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영적전쟁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 교회와 성도들은 42개월의 극심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천년 왕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말씀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정부가 나타나면, 예슈아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매매를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데 가치와 목적을 두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때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재정 원칙대로 살아가는 믿음의 삶을 예행 연습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재정 원칙으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재정 훈련은 시간이 요구되며, 반복적인 연습을 통하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실수와 실패가 있을지라도 성공할 때까지 끊임없는 반복을 통하여 훈련해야 합니다 (성화의 삶). 그리고 진짜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멈추게 되어졌을 때 실패인 것입니다. 학개 2장 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합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며, 재물과 권세도 하나님께 있고, 만물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의 손에 사람을 크게 하는 것과 강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 28:18). 하지만 어떤 이는 한번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으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착각하며, 너무 쉽게 세상과 타협합니다. 그 결과 거룩한 속성을 잃어버리게 되며, 평범한 삶 (히 : 홀 : 평범함)을 살게 됩니다.
<단락 2> 2. 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 (예루샬라임)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예슈아 당시 유대인들은 다니엘서의 예언은 이미 200년 전에 하누카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진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슈아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날에 다니엘 선지자가 말한 멸망의 가증한 것이 또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멸망의 가증한 것은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슥 12:2-3, 슥 14:1-2), 그는 거룩한 곳 (예루샬라임 성전)에 앉아 기적과 이사를 일으키며, 세상 나라들이 원하는 평안과 안전을 약속하는 거짓 평화조약을 맺을 것이며 (살전 5:3-4), 많은 이들을 미혹케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누카의 역사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분별하지 못하며 예슈아의 재림을 준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어서 예슈아께서 말씀하십니다.
1) 마 24:20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예슈아께서 제자들에게 도망하는 일이 겨울 (하누카 기간)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안티오쿠스의 군대와 맞서 싸우는 것을 거절하고 순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년간의 투쟁 끝에 ‘유다 마카비’가 이끄는 혁명군은 마침내 예루살렘을 장악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들은 성전에 들어가 성전 안의 제우스 신상과 제단을 제거하여 정화하였고,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하게 됩니다. 성전이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하누카의 뜻은 ‘봉헌’이며, 이 날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교회)를 봉헌하고, 세워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전이 되었다’ 라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누카 절기 때에 하나님의 성전을 가정, 직장, 교회에서 세워나기기 위해 어떠한 결단을 해야 할 것인지 기도하고 묵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마카비 형제가 예루샬라임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성전을 밝히는 일곱 촛대의 기름이 하루치 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성전에서 사용하는 성유를 만들려면 8일이 걸립니다. 그래서 마카비 형제는 어쩔수 없이 하루 만이라도 성전의 불을 켜기 위해 메노라 촛대 위에 불을 붙이게 됩니다. 그런데 하루치 기름은 기적적으로 8일간이나 성전을 밝히게 됩니다. 그래서 하누카를 일명 ‘빛의 축제’ 라고도 부릅니다.
빛 되신 예슈아께서 이 땅 가운데 오신 이유는 어두움이 뭔지, 죄가 무엇인지, 나의 절망의 상태를 알려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경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을 소경 (어두움)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빛과 어두움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슈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이 시작된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세상과 구별되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방법인 것입니다.
(1) 사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예루샬라임 성전에 임한 빛으로 모든 어두움을 내어 쫓고,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진리가 예루샬라임의 왕이신 예슈아를 통하여 전 세계 가운데 제공될 것입니다. 물론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입니다. 그러나 천년왕국 시대가 시작되면, 세상의 빛은 예루샬라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까지 날마다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켜야 하며,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질서와 빛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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