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 불교철학07 육조단경 2
견성콘서트 10부 - 육조단경 2강(0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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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는 삼신 얘기가 나오는데요.
[6. 선지식으로 하여금 자신의 3신불을 보게 할 것이다. “자신의 색신에 있는 ‘청정법신불清淨法身佛’에 귀의합니다. 자신의 색신에 있는 ‘천백억화신불千百億化身佛’에 귀의합니다. 자신의 색신에 있는 ‘당래원만보신불當來圓滿報身佛’에 귀의합니다.” (이상을 3번 부른다) 색신은 집이니 귀의함을 말할 수 없다. 앞의 3신은 자신의 ‘법성法性’에 있는 것이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미혹하여 보지 못하고 밖으로 3가지 여래를 찾고 자신의 색신 가운데 있는 3가지 성품의 부처를 보지 못한다.
令善知識見自三身佛 於自色身歸依(衣)清淨法身佛 於自色身歸依(衣)千百億化身佛 於自色身歸依(衣)當來圓滿報身佛 (已上三唱) 色身是舍宅 不可言歸 向者三身在自法性 世人盡有 爲迷(名)不見 外覓三如來 不見自色身中三性佛 善知識.]
이 그림 하나는 꼭 그려 두고 하겠습니다. 이 참나의 세계 여기가 돈오의 세계입니다. 에고의 세계 여기는 점수의 세계고요. 이거 꼭 유념하시고요. 그런데 이 참나와 에고 관련해서 제가 그때 지난번 견성 콘서트에서 설명 드린 적이 있는데, 삼신(三身) 기억하십니까? 거기 나오죠. ①법신(法身), 우주에는 부처님의 몸이 세 개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대승불교에서 정립이 된 겁니다. 법신. ②보신(報身)은 인과응보에서 보(報)자죠. 예 업보의 적용을 받는다는 겁니다. 법, 진리 자체라는 얘기고요. 여기는 진리, 진리에는 우주의 모든 법이 포함됩니다. 만법이라고 하죠. 모든 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우주에서 우주의 돌아가는 모든 거, 만유인력법칙 뭐든지 그걸 다 포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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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연기법으로 설명되는 법을 갖고 있는 몸과 연기법이 실제 펼쳐져서 인과응보가 펼쳐진 인과응보의 적용을 받는 몸이 있고, ③화신(化身) 변화가 돼 가지고 우리 몸에서 실제 우리가 몸으로 오셔서 만져볼 수 있는 몸을 화신이라고 합니다. 자 그렇게 되면 법신 보신 화신이 어떻게 되냐면 법신은 참나가 법신이고, 보신은요? 참나와 에고를 합쳐서 보신입니다. 이 에고가 사람들 눈앞에 나툴 때 화신이라고 합니다. 이해되시죠. 만약에 보신은 일종의 그래서 영계의 몸이에요. 영계에 계실 때는 보신, 우리 물질계 오시면 화신 그럽니다. 예. 같은 거의 안팎이에요. 그러니까 업보를 가지고 있죠. 돌아가셨더라도 업보는 있잖아요. 현상계에 안 계시더라도 업보를 가지고, 찬란한 부처님의 몸을 가지고 계시다가 올 때는 찬란하게 못 오시겠죠. 인도면 인도인으로 오셔야 되고, 한국에 태어나시면 한국인으로 오셔야 되고, 우리나라에 석가모니 후신(後身)이라고 불리는 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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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계세요. 아시나요? 예. “내가 석가다” 하신 정도로 돼 가지고 석가의 후신이라고 비문에 아예 새겨지신 분이 있어요. 진묵스님(震默大師, 1562-1633)이, 진묵대사가 조선에서 제일 가는 고승인데 이분은요 태어날 때부터 석가가 오는 꿈을 꾸고 낳고 절에 가서 나한한테 뭐 바치는 소임이었는데 주지 꿈에 나타나서 나한이 도저히 부처님한테 못 받겠다고 해 가지고 소임을 바꿔주고 이런 분이에요. 그래서 평소에도 계실 때 거기 제자들한테 그림자, 자기 그림자를 보면서 “석가의 그림자 보이냐?” 이렇게 얘기하실 정도로 그래서 이분이 우리나라 원효(元曉, 617-686), 아까 이제 원효랑 보조 스님(知訥, 1158-1210)이 제일 쌍벽을 이루는 중요 역할을 하셨지만, 제일 고승으로 치기는 원효랑 진묵 두 분입니다. 그러니까 절에서도 8지보살 치는 분들이에요. 그러니까 8지보살이면요 8단이죠, 바둑으로 치면. 그러니까 참나 찾은 정도가 아니라 에고가 닦인 정도가 그 정도라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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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고승으로 칩니다. 이것도 알아두시고요. 아무튼 그런 분들도 참나라는 청정 자체라 무형이죠. 그런데 보신은요 자기 공부한 만큼 결과물을 갖고 있는 몸이고 그게 우리 눈앞에 보였을 때 화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 여기서 인제 예상할 수 있지 않나요. 6조 스님은요 에고의 세계는 얘기를 안 하시죠, 지금 계속. 이분은요 이분도 결국은 돈오점수예요. 에고 닦아야 되는데, 그 뭐죠, 지속적으로 닦아야 되는 에고에 대해서는 얘기를 지금 안 하시겠다는 거예요. 왜냐? 닦는 거 신경도 쓰지 마라는 거예요. 왜요? 기독교 같으면 여러분이 만약에 선행을 베풀면 그건 성령의 열매 아닌가요. 즉 성령만 정확히 잡으면 열매는 나오게 되어 있지 않나요. 열매를 얼마나 걷었냐가 1지 2지 3지라고 치면 성령만 정확히 알면 되지 않나요. 부처도 그래요. 우리 참나 안에, 보십시오, 만법이 들어있다는 게 참나 안에 육바라밀의 법이 들어 있어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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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 지혜의 모든 선법이 여기 다 들어 있어요, 참나 안에. 참나만 정확히 잡으면 우리 에고는요 정화 안 될 리가 없겠죠, 참나대로만 살면. 예수님처럼 하느님 뜻대로만 살면 끝나요. 에고가 닦인다는 얘기는 할 필요도 없다고요, 하느님 뜻대로만 살면. 6조 대사는 지금 계속 이런 식으로 설법을 하고 계세요. 에고를 얘기하면 점수(漸修)로 빠지니까 점수가 싫어서가 아니라 점수에 집착하지 말라는 겁니다. 결국은 에고가 닦이는 것도 근원은 이 참나의 힘으로 참나가 광명해서 닦이는데 에고 가지고 물고 늘어지지 마라는 겁니다. 저도 항상 그 주장을 합니다. 에고 가지고 하지 마시라고요. 무조건 모른다 하시라는 이유가 그냥 참나 만나시라고요. 참나한테는요 지혜와 능력이 다 있어요. 자 내가 뭔가 습관을, 제가 내일부터 아침 4시에 일어나기로 했어요. 4시에 못 일어나죠, 에고가. 자기 습기 때문에 못 일어나요. 그때 에고를 자책합니다. “왜 너는 그렇게 생겨 먹었냐?” 하는데 에고는요 애초에 습관을 개조할 힘이 없어요. 참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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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하셔야죠, 더 깨어 있으시려고 하시려면. 깨어 계시면 자동으로 원하시는 게 일어나요. 근데 에고는 인과관계 속에 존재하는데 한 번도 그런 원인을 짓지 않은 에고한테 갑자기 결과물 내라고 하면 공부 안 한 애한테 합격하라고 하면 죽죠. 죽어요, 진짜로 그러면. 그러니까 그 힘을 가지고 있는 참나한테 의존해야 됩니다. 그러면요 에고가 안 하던 공부도 하고 싶어지고 할 수가 있게 돼요. 참나는 할 수 있어요. 참나는 원래 청정하고 고요하고 알아차리고 있고 지혜로우니까요. 이 참나에만 의존하는 법을 얘기하니까 자, 6조라면 어떻게 얘기할까요? 법신은 참나니까 괜찮아요. 보신는요? 에고 차원에까지 관련된 문제인데 6조는 뭘 얘기를 하냐면요 에고가 좋은 업보를 쌓는 게 보신입니다. 에고가요 지금 선한 생각하는 게, 지금 깨어있는 게 보신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왜 그러냐면요 지금 선하기만 하면 여러분은 좋은 선업을 쌓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6조대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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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런 식이에요. 지금 한 생각 선하십니까? 지금. 지금 마음이 일어난 생각이 선하십니까? 깨어 하시는 겁니까? 그것만 체크하는 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나중에 부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6조는요 계속 “지금 이 순간”만 얘기하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서 벗어난 얘기는 잘 안 해요. 그건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물이니까. 지금 깨어 계신가요? 지금 깨어 있으면 보신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부처만큼 원만한, 원래 원만보신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원만하지는 않죠. 지금 깨어 계시면 나중에 결국에는 원만보신이 이루어집니다. 자 그리고 화신은 변화의 몸이라는 데 초점을 둬서 부처는 석가모니가 자기 몸을요 이렇게 만들었다가 이렇게 만들었다가 하는 게 천백억 화신이거든요. 그럼 천백억 화신이 결국 어디서 일어나나요? 결국 참나의 힘으로 이것도 일어나요. 결국 참나가 그럼 바꾸는 것 중에 우리가 알만한 게 뭐가 있나요? 좋은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요. 나쁜 생각을 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이것도 변화죠 참나가 일으키는 그 생각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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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한 변화도 그것도 화신 아니냐? 해서 6조는 여러분이 알 만한 것, 참나로만 오로지 몰아버립니다. 6조는 뭐든 설법이래요. 아미타불 얘기하면 아미타불도 참나다. 6조대사 이게 방식이에요. 6조대사의 이 지도 방식이 다 참나에다 갖다 붙이는 방식입니다. 육조단경이 다 그런 책이에요. 불교의 모든 사홍서원(四弘誓願) 세우는 거 다 끌어다가 그게 다 참나다. 참회는 참나 깨어있는 거다. 깨어 있어야 죄 안 짓는 게 진짜 참나다. 그래서 다 참나로 몰아가기 때문에 삼신도 결국은 다 참나 작용이다. 그렇죠. 참나의 작용들이죠. 참나의 힘이 없다면 어떻게 보신이 만들어지고 화신이만 들어집니까. 이걸 얘기한 겁니다. 여러분 깨어 있기만 하면 참나 안에는 무궁한 힘이 있어서 참나대로만 살아가면 에고는 어떻게 되나요? 아무 생각 안 해도 계속 깨어 있기만 하면 에고는 보신을 만들어야지 화신을 만들어야지 안 해도 이렇게만 살아가면 당연히 만들어진다는 게 6조대사의 설법이에요. 이걸 오해하셔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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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들이 이걸 오해하셔서 참나만 깨치면 이게 다 된다고? 그러면 이 참나는 12지? 또 이렇게 자꾸 이렇게 오해를 합니다. 이미 견성만 하면 무조건 다 됐단 말이냐? 오해하시는 거예요. 견성만 하고 열심히 하시라는 얘기죠. 열심히 하란 얘기를 잘 안 들으시는 거예요. 뒤에, 견성하신 뒤에 열심히 살으시라고요. 그럼 당연히 된다고요. 당연히 되는 것은 신경도 쓰지 마라. 고시생한테 오늘 하루 열심히 공부해라. 오늘 하루도 길어요. 지금 이 순간 공부해라. 지금 이 순간 공부하고 있는 게 보신이라는 거예요. 그럼 합격의 결과는 당연히 온다. 요 얘기를 해주는 겁니다. 요걸 잘 못 읽으시면은 이게 아주 오해의 여지가 너무 많아요.
[6. 선지식으로 하여금 자신의 3신불을 보게 할 것이다. “자신의 색신에 있는 ‘청정법신불清淨法身佛’에 귀의합니다. 자신의 색신에 있는 ‘천백억화신불千百億化身佛’에 귀의합니다. 자신의 색신에 있는 ‘당래원만보신불當來圓滿報身佛’에 귀의합니다.” (이상을 3번 부른다) 색신은 집이니 귀의함을 말할 수 없다. 앞의 3신은 자신의 ‘법성法性’에 있는 것이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미혹하여 보지 못하고 밖으로 3가지 여래를 찾고 자신의 색신 가운데 있는 3가지 성품의 부처를 보지 못한다.
令善知識見自三身佛 於自色身歸依(衣)清淨法身佛 於自色身歸依(衣)千百億化身佛 於自色身歸依(衣)當來圓滿報身佛 (已上三唱) 色身是舍宅 不可言歸 向者三身在自法性 世人盡有 爲迷(名)不見 外覓三如來 不見自色身中三性佛 善知識(‘당래원만보신불當來圓滿報身佛’은 마땅히 선법이 원만해질 보신불이란 의미이니, 지금은 원만하지 않다는 것임. 지금 이 순간 늘 ‘선법’만을 생각하면서 산다면, 반드시 장래에는 원만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임. 뿌린 대로 거두는 연기법, 인과법 안에서 선법이 장차 원만해질 것임을 말한 것! 혜능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중시하니, 이 순간 찰나 찰나 선법만 생각하면 나가면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는 것을 설명한 것, 돈오는 부처가 되는 고속도로에 진입한 것임. 아직 화신ㆍ보신, 지혜ㆍ자비를 온전히 구족한 ‘과위果位의 법신’은 아님. 잠재성을 갖춘 ‘인위因位의 법신’임)]
자 선지식이여 자신의 삼신불을 봐라. 자신의 색신은 육신이에요. 자신의 몸뚱이에 있는 청정법신불(當來圓滿報身佛)에 귀의합니다. 색신에 있는 천백억 화신불에 귀의합니다. 색신에 있는 당래원만보신불에 귀의합니다. 이렇게 세 번 불러라. 여기 이제 삼신불에 귀의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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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십시오. 이 앞에 당래(當來)라는 말이 있죠. 깨어있으면 이미 보신이라고 했는데 여기 당래라는 말을 쓴 것부터가요 그 어느 6조대사도 우리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래는요 마땅히 장차 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원만하지 않다는 얘기예요. 당래원만보신불은 이대로만 가면 마땅히 원만해질 보신불이라는 겁니다. 즉 6조대사는 뭔가요? 점수예요. 이해되십니까. 점수 사상을 얘기하는 겁니다, 지금. 마땅히 장래에 이루어질 원만보신불에 귀의합니다 예요. 지금은 원만하지 않아요. 단 지금 깨어있어서 선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보신이라는 겁니다. 이대로만 가면 당연히 원만해져요. 신경도 쓰지 마시라는 겁니다. 지금 깨어서 육바라밀 하고 계신가요? 6조대사 설법이 이상한 게 아니에요. 저희 홍익학장에서 제가 승급 구단, 구급구단체계를 얘기하면서도요 오신 분들한테는 그래요. 그런 건 신경도 쓰지 마시고 지금 모른다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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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신가와 지금 사단대로 살고 계신가만 보시라 그래요. 지금 이 순간. 그러면 그 결과는 당연히 옵니다. 6조대사랑 똑같은 식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기 때문에 잘 알아요, 이렇게 설법하는 그 심정을. 이걸 오해해 가지고 그럼 그 얘기를 듣고 “그럼 이미 난 부처란 말인가.” 아니 이렇게 이해하시면 큰일 나요. 이해되시죠. 이 오해 때문에요 지금 천 년간 불교가 시끄럽고 하기 때문에 제가 말씀 계속 당부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만이라도 그렇게 정확히 보시라고요. 색신은 내 육신이에요. 이건 집이에요. 삼신이 사는 집이니까 귀의할 수가 없고 내 안에 있는 고귀한 이 세 가지한테 귀의하는데 결국엔 이 세 개는요 자신의 자성, 법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갖고 있다는 겁니다, 삼신을 다. 참나를 갖고 계시잖아요. 삼신도 이미 다 갖춰졌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원래 이게 말이 안 되죠. 부처님처럼 지혜와 자비가 충만해야 원만보신이고 원만이라는 말을 빼면 말이 되지만 혜능대사 말이 좀 안 되는 부분이 원만이라는 말이 붙으면 말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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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래원만보신불이라고 하는 거고요. 천백억 화신도 천백억으로 몸을 나툴 수 있을 때 우주 천백억 군데 동시에 나타날 때 천백억 화신이에요. 그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그렇죠. 그런데 우리 마음이 천백억으로 변화하고 있는 거죠. 내 마음 변화도 변화다라고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6조는 그거 변화시키는 거나 몸뚱이 변화시키는 같은 원리다. 고로 우리 자성, 참나 자체가 이미 화신도 있다. 약간 억지 같지만 이렇게 얘기하실 수 있는 근거가 있죠. 모든 게 참나의 작용이니까. 여러분 이미 참나를 알았다면 삼신도 갖춘 거다, 이미 사실은. 이 얘기를 지금 6조는 하는 겁니다. 이렇게 6조는요 한 번 깨치면 안에다가, 뭐죠, 여러분이 고시 하나만 합격하면 자격증을 다 주시겠다는 이런 발상입니다. 의사 자격증도 주고. 거기 다 있지 않냐? 그런다고 그걸 다 쓸 수 있는 건 아니죠. 그 정도의 내가, 참나가 가지고 있는 참나 하나 각성 하에 딸려오는 자격증이 어마어마하다는 겁니다. 육바라밀도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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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도 만들 수 있죠. 조금 있으면 계정혜가 나옵니다. 삼학도 잘하죠. 자 이걸 모두 자성에다 거는 게 6조식 방식입니다. 자기 안에 다 있는데 못 보고 밖에서 이 세 여래를 찾아다가, 밖으로 본다는 게 뭡니까? 절에 가면 ①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불상이 있죠. ②원만보신불 노사나불 불상이 있죠. ③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 불상이 있죠. 세 개가 있어요. 그러면 내 밖에 그게 있는 줄 아는 건 잘못됐다는 겁니다. 그 삼신이 원래 내 안에 있다. 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7. 무엇을 이름하여 ‘청정법신불清淨法身佛’이라고 하는가? 선지식이여, 세상 사람들은 자성이 본래 스스로 청정하여, ‘만법’이 자성에 있다. 그러므로 일체의 악한 일을 생각하면 곧 악에 의지하여 행하며, 일체의 선한 일을 생각하면 선한 행위를 닦는다.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이 모두 자성에 있으니, 자성은 늘 청정함을 알라. 해와 달이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에 덮여 있으면 위는 밝으나 아래는 어두워서 해와 달과 별을 똑똑히 볼 수 없다. 그러나 홀연히 지혜의 바람이 불어서 구름과 안개를 흩어지게 하면, 삼라만상(해ㆍ달ㆍ별)이 일시에 모두 드러난다.
何名清淨[法]身佛 善知識 世人性本自淨 萬法在自性(姓) 思量一切[惡]事即行依(衣)惡 思量一切善事便修於善行 知如是一切法盡在自性(姓) 自性(姓)常清淨 日月常明(名) 只爲雲覆蓋上明(名)下暗 不能了見日月星(西)辰 忽遇惠風吹散卷盡雲霧 萬像森(參)羅 一時皆現.]
그래서 삼신은 청정법신불을 먼저 설명해 줘요. 이 법신이라는 건 진리를 다 갖추고 있다는 걸 6조는 강조합니다.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만법이 자성에 있다. 만법이 다 들어있어요. 여러분 참나만 찾으면 육바라밀이 그냥 나와야 돼요, 원래. 만법이 다 있기 때문에. 온갖 선한 법이 다 있어요. 그러므로 일체의 악한 일을 행하면 악에 의지하여 행하며 선한 일을 생각하면 선한 행위를 당한다. 즉 악한 일마저도 거기 다 법이 있다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내 안에 있는 대로 법을 가지고 악도요 내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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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해요. 내가 원래 화내고 분노할 수 있는 이런 법은 참나에 원래 있는 거죠. 있으니까 그것 가지고 우리가 악한 일도 하지 애초에 우리가 화낼 수 없었다면, 프로그램이, 악한 일을 할 수가 없죠. 즉 악한 일도요 우리 에고로 벌이는 일이지만 그게 참나한테 받은 것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우리 참나 안에는 온갖 법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악법도 가지고 있다는 건 아니고요. 우리가 악용을 했을 때 악법이 되지만 원천 기술은 참나 안에 다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체의 법이 모두 자성에 있으니 자성은 늘 청정하다. 거기에 악이 있는 건 아닌데 에고가 잘못 쓴다 하더라도 잘못 쓰는 그 법은 참나 안에 다 있다는 겁니다. 해와 달이 항상 밝으나 구름에 덮여 있으면 위는 밝으나 아래는 어두워서 해와 달이 안 보이다가, 별이, 홀연히 바람이 불어서 구름이 싹 사라지면요 한꺼번에 해와 달이 별이 한꺼번에 삼라만상이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참나를 깨치고 나면요 우리 안에 이런 진리의 법이 있다는 게 한 번에 다 드러날 거다. 그런데 아까 이 얘기도 어차피 뭐냐면 단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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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친 분은 가능합니다. 이게 잘 안 되면요 지금 이 진리의 법이 있다는 것까지 알면은 단수가 얼마나 되나요? 제 강의 들으셨으면 알 텐데. 참나 안에 육바라밀이 있다까지 하면 1단이죠. 1지보살인데 참나는 텅 비어 고요하다까지만 하면 1급이고 1주보살이고요. 그런데 지금 보조 스님 얘기하는 건 바로 이 경지를 말하죠. 단박에 1지까지도 원래 가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깨치면 바로 1지가 가야 되는데 안 되니까. 9급 8급 7급 6급 5급 4급 1급 1단 이렇게 해서 올라가면 점(漸)이죠. 이건 사람한테 달려있는 문제지 법에는요, 진리에, 자 이걸 오해하지 마시라는 게 그러면 아니 어차피 돈점(頓漸)이 있다는 얘기 아닙니까, 점차(漸次)가. 왜 그럼 굳이 이렇게 돈점을 따집니까? 이것 때문에 그래요. 한 방에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참나는 원래 퍼펙트한데 인간이 이걸 하나씩 이해 가능한 것뿐이잖아요. 그런데 혹시 오해하실까봐 그래요. 인간이 하나씩 만들어 간다고 오해할까봐요. 내가 참나를 하나씩 만들어 간다고. 그게 아니라는 얘기를 하려고 돈(頓)이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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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박에도 원래 가능한 거라고. 원래 온전하게 있는 겁니다. 즉 모양이 온전히 만들어져서 모래사장이 감춰져 있으면요 모래를 털기만 하면 온전한 게 나오는 거죠. 그거랑 모래를 모아서 우리가 뭔가를 만드는 거랑은 다른 얘기죠. 이해되시나요? 사람 얼굴이 있다고 치죠. 사람 얼굴 동상이, 조각상이 모래밭에 감춰져 있는 걸 우리가 모래를 털어내는 게 점차(漸次)라는 겁니다. 모래만 다 털어지면 드러나는데 이렇게 이해를 해야지 돈점(頓漸)을 같이 붙여야 오히려 실상이 설명이 잘 되죠. 혹시 이렇게 자기가 얼굴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면 큰일 난다는 얘기입니다. 그건 절대 돈(頓)이 될 수가 없죠. 그래서 돈이라는 말을 중시하는 이유가 원래 퍼펙트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래요. 단박에도 가능하다는 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원래 다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찾기만 하시라는 겁니다. 찾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라는 겁니다. 이해되시죠.
[8. 무엇을 이름하여 ‘천백억화신불千百億化身佛’’이라고 하는가? 생각하지 않으면 자성은 공적하나, 생각을 일으키면 스스로 변화한다. 악한 법을 생각하면 지옥으로 변화하며, 선한 법을 생각하면 천당으로 변화한다. 독하고 해로우면 축생으로 변화하며, 자비로우면 보살로 변화한다. 지혜로우면 위의 경계로 변화하며, 어리석으면 아래의 지역으로 변화한다. 자성이 변화를 일으킴이 심히 많으나, 미혹한 사람들이 스스로 알고 보지 못한다. 한 생각이 선하면 지혜가 생겨나니, 이것을 ‘자성화신自性化身’이라고 이름한다.
何名爲千百億化身佛 不思量性即空寂 思量即是自化 思量惡法化爲地獄 思量善法化爲天堂 毒害化爲畜生 慈悲化爲菩薩 智惠化爲上界 愚癡化爲下方 自性(姓)變化甚多(名) 迷人自不知見 一念善知惠即生 [此名自性化身].]
천백억 화신불은요 생각하지 않으면 자성이 텅 비어 있으나 생각을 일으키면 스스로 변화한다. 즉 한 생각이 변화하는 것도 화신이라는 겁니다. 악한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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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어떻게 되나요? 지옥으로 변하고요, 상황이. 선한 법을 생각하면 내가 처한 상황이 천당으로 변해버려요. 내가 남한테 독하고 해롭게 굴면 축생으로 변해버리고요. 자비로우면 보살로 변해버리고. 지혜로우면요 저 위 세계 천상계 태어나고 어리석으면 아래 세계 지옥 같은 데 태어나고요. 자성이 변화를 일으킴이 심히 많아 사람들은 못 보고 있다. 지금 우리도 이미 화신을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천백억 화신까지는 아니어도 한 생각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사는 세계가 바뀌고 내 마음 상태가 바뀌어요. 그렇죠. 내 몸이 바뀌고 여러분 몸에 이미 화신이, 여러분도 화신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6조는요 이런 식이에요. 결과를 안 봐요. 씨앗만 봐요, 원인만. 여러분은 이미 그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인만 잘 키우세요. 결과는 신경도 쓰지 마세요.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학원 강사세요. 걱정도 하지 마세요. 합격은 신경, 지금 내 학원에서 합격 불합격 얘기도 하지 마라. 오로지 깨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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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자. 이렇게 얘기하시는 설법인데 이 말을 듣고 누가 “내가 합격했단 말인가?” 이렇게 오해하시는 분이 있으니까 지금 논쟁이 나오는 겁니다. 지금 계속 같은 얘기만 하죠.
[9. 무엇을 ‘원만보신불圓滿報身佛’이라고 이름하는가? 하나의 등불은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하나의 지혜는 만년의 어리석음을 멸한다. 앞을 생각하지 말고 늘 뒤를 생각하라. 늘 뒷생각이 선한 것을 이름하여 ‘보신報身’이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 깨어서 선한 생각을 하면, 과거의 모든 악업을 무너뜨린다. 업보를 바꾸는 몸이니 보신이다.) 한 생각의 악이 천년의 선한 마음을 그치게 하며, 한 생각의 선이 천년의 악을 멸한다.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뒷생각이 선한 것을 이름하여 ‘보신’이라고 한다.
[何名圓滿報身佛] 一燈能除千年闇 一智能滅萬年愚 莫思向前常思於後 常後念善名爲報身 一念惡報却千年善止(心) 一念善報却千年惡滅 無始(常)已來 後念善名爲報身.]
원만보신불도 보세요. 하나의 등불이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하나의 지혜가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앤다. 만 년간 만약에 그 캄캄했던 동굴이 있다고 치죠. 제가 가서 라이트 하나 켜면요 만년의 어둠이라고 천천히 물러가나요? 내가 그래도 만년 쌓인 어둠인데 이게 한 방에 없어질 수는 없다. 이렇지 않아요. 가서 불 켜면 그냥 없어져요. 피라미드 가서 불 켜면 그냥 없어지지 그래도 내가 수천 년 내공의 어둠이다. 이런 얘기를 안 합니다. 즉 이 얘기는 뭐냐면 여러분이 지금 여러분 안에 어마어마한 업보가 있더라도 여러분이 지금 깨어서 선한 생각 한 번만 하시면 업보는 그 제동이 걸리죠. 다 없어진다는 게 아닙니다. 제동이 걸려요. 이제 더 악업은, 악업은 이제 무너져 가기 시작해요. 악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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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상한가 친 거죠. 이제 내리막길을 걸어요, 악업이. 이 포인트에서 선한 생각 한 번이. 이해되십니까? 이것도 이미 보신이죠. 원만한 보신은 아니더라도 한 생각 선한 게 이미 보신이라는 겁니다. 6조는 거기를 주목해요. 여러분은 이미 보신을 갖고 있다. 이루었다. 보통 영업 잘하시는 분이 아니시죠. 그러니까 이 법이 지금 천년 넘게 지구에 퍼진 겁니다. 이해되시죠. 그런데 이제 혹시 거기서 오해하신 분들이 나온 거죠. 팸플릿만 너무 붙잡고 이렇게 너무 “여기서 된다고 했어요. 뭐 이렇게 해주세요.” 실물은 팸플릿하고 좀 다를 수 있고, 이 말을 오해하실 수도 있죠.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잘 들어야 돼요, 그 행간까지. 그러면 다 이 말입니다. 하나의 지혜가 만년에, 만 년간 어리석었는데요. 알았어요. 어느 날, 아 불은 뜨겁구나. 손을 넣으면 안 되겠구나. 그 뒤로 손을 안 넣었어요. 그 뒤로 자꾸 손을 넣어보던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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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생각 지혜가 생기면 안 해요, 하던 짓을. 무지도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이게 보신이에요. 업보를 바꿔버리는 것. 그런데 이건 누가 바꿔요? 에고가 한 생각한 것 같지만요 한 생각했다고 바뀌는 그런 공식은 에고한테 없죠. 참나가 하는 거예요. 참나가 갖고 있던 공식대로 에고를 변형하고 있는 거기 때문에 결국 근원은 참나다. 여러분들은 참나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석가모니만 이게 있는 게 아니고 여러분도 보신과 화신이 다 있다. 이렇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뭔 얘기를 하냐면요 과거의 어떤 생각도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지금. 자 앞을 생각하지 말고 과거에요 앞전 일을 생각하지 말고 뒤를 생각하라. 지금만 생각하라는 겁니다. 지금. 늘 뒷생각이 선한 것이 보신이다. 지금 한 생각 착한 게 보신이에요. 앞에 있었던 악업을 바로 무너뜨려 버리니까요. 한 생각의 악이 천년의 선한 마음을 그치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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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갚는다고 안 했습니다, 그치게 하고 한 생각의 선이 천년의 악을 멸한다. 그런데 만약에 다 멸해지면 뭐가 될까요? 원만보신불이 되죠. 그런데 다 멸하지 못하니까 당래원만보신불이라고 하는 겁니다. 장차 원만해질 보신불.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뒷생각이 선한 것을 보신이라고 한다. 아무튼 무수한 과거부터 생긴 그 업을요 지금 한 생각이 착하면 무너뜨리기 시작해요. 그것만, 무너뜨린다는 그것만 이해하시라는 겁니다.
[10. ‘법신法身’을 따라 생각하는 것이 ‘화신化身’이며, 생각 생각이 선한 것을 ‘보신報身’이다. 스스로 깨달아 스스로 닦음을 ‘귀의歸依’라고 이름한다. 가죽과 살은 ‘색신’으로 집이니 귀의할 수 없다. 다만 3신을 깨달으면 큰 뜻을 알 것이다.
從法身思量即是化身 念念善即是報身 自悟自修即名歸依(衣)也 皮肉是色身是舍宅不在歸依也 但悟三身 即識大意(億)(① ‘법신’은 만법을 갖춘 청정한 참나이며, ② ‘화신’은 생각에 따라 마음ㆍ몸ㆍ세계의 변화를 일으키는 참나의 작용이며, ③ ‘보신’은 선한 생각으로 악업을 막는 인과응보를 일으키는 참나의 작용이다. 이 3가지는 모두 참나에 갖추어져 있다. 참나ㆍ자성을 깨치면 3신을 모두 얻게 된다. 대승불교의 3신관과는 별도의 설법이다. 대승불교는 ‘만법구족萬法具足의 청정법신’ 즉 ‘과위果位의 법신’에 바탕을 두되, 천백억 곳에 색신을 나툴 수 있을 때 ‘천백억화신’이라고 하며, 온갖 선업을 모두 갖추어 악업을 완전히 틀어막을 때 ‘원만보신’이라고 한다.)]
법신을 따라 생각하는 게 화신이요. 진리대로 생각하는 게 화신이고요. 생각을 하면 진리가 펼쳐지겠죠, 내 마음에서. 화신이요. 생각생각 선한 것이 보신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하시죠.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요 자성 하나에다가 이렇게 갖다 붙여버려요. 이게 본래 불교 이론은 아닙니다, 전혀. 거기서 6조 대사가 찾아낸 거죠. “결국 삼신의 핵심은 참나 아냐? 근데 우리가 참나 찾았으면 삼신도 다 찾은 거 아니야, 이미.” 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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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대사는요 씨앗, 나무, 결국 나무가 아니라 씨앗을 중시하세요. “씨앗 갖췄으면 나무도 다 이미 있는 거지.”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겁니다. 이걸 나무로 착각하시면 안 됩니다. 자 결국은요 제가 쓴 걸 한번 보시죠. 결국은요 법신은 만법을 갖춘 청정한 참나고요. 화신은 생각에 따라 마음과 몸, 세계를 변화시키는 참나의 작용이고요. 보신은 선한 생각으로 악업을 막는 인과응보를 일으키는 참나의 작용이에요. 6조대사는 이걸 본 겁니다. 이 세 가지는 참나의 힘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참나만 깨치면 삼신을 모두 얻는다는 겁니다, 씨앗 상태에서는. 대승불교 삼신관과는 별도의 설법입니다. 대승불교는요 만법을 갖춰야 법신이죠.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이 불지의 진짜로 이르러서 보신과 화신을 완벽히 갖출 때 진짜로 진리의 몸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때 진리가 다 구현됐기 때문에요.
[* 혜능은 ‘씨앗’(인위因位의 법신)을 중시하고 대승은 ‘나무’(과위果位의 법신)를 중시한다. (23 참조, 참나는 부처의 깨달음을 이루는 씨앗)혜능은 ‘원인’[1주~1지보살의 경지]을 보고 부처를 설명하고 대승은 ‘결과’[10지를 초월한 불지佛地의 경지]를 놓고 부처를 설명한다. 혜능의 모든 설법이 그러하다. 혜능이 제시한 ‘씨앗’의 ‘돈오’(1주~1지보살)을 ‘결과’의 ‘돈오’(불지)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씨앗’은 ‘절대계’(열반)의 차원이며 ‘결과’는 ‘현상계’(5온)의 차원을 아우른다. 절대계는 ‘연기법’을 초월한 세계라 ‘돈수頓修’가 가능하나, 현상계는 ‘연기법’의 세계라 ‘돈수頓修’가 불가능하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자 6조 대사가 말한 이 1지의 법신을 무슨 법신이라고 하냐면요, 이 법신을, 6조 대사가 말한 것은 씨앗 인(因)자 써서, 원래 대승불교 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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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因位)의 법신이라고 그래요. 그러면 12지보살이, 1지가 아니라 12지보살이 갖는 법신은요 과위, 열매 과(果)자 써서 과위(果位)의 법신이에요. 이 두 개가 본래 하나라는 겁니다. “씨앗이나 나무나 이미 하나다”라는 사상이 불교 사상이에요.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 이해되시죠. 6조대사는 이 원리에서 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인위의 법신을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건 과위의 법신이에요. 그런데 육조단경을 읽고 이 법신을 과위법신이라고 주장하게 되면 이건 구경(究竟)견성을 말하는 거다. 여러분은 공부할 길이 없어질 겁니다. 그럼 갑자기 견성을 했는데 여러분한테 욕바라밀까지 다 하기를 요구한다면, 원만법신을, 갑자기 원만보신을 여러분한테 요구한다면요 아무도 감당할 사람 없을 겁니다. 여러분 견성을 하실 수 있지만 원만보신은 안 나와요, 지금. 6조도 뭐라고 했냐면 당래원만보신불이라고 한 사항을 “당신이 견성한 게 구경견성이냐?” 이걸 바로 물어보면요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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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요 과위의 법신을 말하기 때문에 그 법신은 원만보신을 이미 이루어야 되고 천백억 화신을 이미 나툴 수 있어야 돼요. 천백억 군데 동시에 나타날 수 있어야 천백억 화신이에요. 그렇죠. 우리나라 원효대사가요 동시에 여러 군데 나타나고 한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아까 그 5조대사만 신기한 거 있는 게 아니고요. 원효대사의 그 일화를 찾아보면 별의별 게 다 있어요. 그래서 8지보살 대우를 받는 겁니다. 동시에 화신을요 동시에 여러 군데 나타내고 한 그런 그 이야기들이 전해 와요. 그러니까 그 정도 분이에요. 그런데 견성 하나 했다 못했다 가지고 원효대사를 재단할 그런 실력이 안 돼요, 지금. 그런데 지금 한국 불교에서 원효대사를 다 이해할 만한 지금 이해의 틀이 있냐? 저는 그게 다 의문이라고 봅니다. 그럼 이런 걸 대승불교를 통해서나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런 인위의 법신, 과위의 법신을 통달해서 봐야 이해가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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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것도 함 또 더 나아갈게요 온갖 선업으로 악을 다 막으면 원만보신이고 천백억 군데 색신을 나툴 수 있을 때 화신이라고 합니다. 혜능은 씨앗 인위의 법신을 중시하고 대승은 나무, 과위의 법신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달라지는 겁니다. 그 23번 가면요 혜능대사가 실제로 얘기한 게 나와요. 어떤 식으로 설명하는지 제가 보여드릴게요. 돈오점수예요, 혜능은 사실은. 그래서 그걸 확실히 얘기한 부분이 나옵니다. 부처를 설명하고요 대승은 결과를 중시하여 부처를 설명합니다. 예. 혜능의 모든 설법이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돈오는 1주도 돈오가 있고 1지도 돈오인데 육바라밀까지 알면 만법, 내 안에 진리, 참나에 만법이 있다는 걸 알면 1지예요. 그래서 1지부터 법신이라고 합니다. 1주는 법신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해요. 참나에 텅 비고 알아차린다는 것만 알아요, 1주는. 자 그래서 씨앗은 절대계 차원의 얘기고 결과는 현상계 차원까지 다 아우르기 때문에 혼동해서 얘기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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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절대계는 연기법을 초월한 세계라 돈수가 가능하나 현상계는 연기법의 세계이기 때문에 돈수가 불가능합니다. 원인을 지은 만큼 결과를 받기 때문에요.
[* 혜능은 단박에 ‘돈오’를 이루고 현상계 차원의 ‘결과’를 모두 내려놓고 오직 ‘자성의 공덕’(자성의 지혜와 방편, 자성의 법신ㆍ보신ㆍ화신, 자성의 계정혜, 자성의 6바라밀)을 드러내 펼치는 삶을 사는 것에만 집중하자는 주의이다. 현상계의 계제와 등급도 모두 내려놓고, 오직 지금 이 순간 ‘참나’ 그대로 ‘부처’로서 사는가? 이것에만 집중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결과’를 내려놓고 오직 ‘과정’에만 집중하는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삶이다. 사실은 이렇게 ‘과정’에만 집중하여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때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돈오’로 끝이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돈오’ 이후 늘 ‘부처’로 살면서 ‘모르는 마음’으로 살되, ‘닦음 없는 닦음’(무수지수無修之修, 5온을 쓰되 5온을 초월)으로 무한하게 향상하자는 것이다! 모든 계제와 등급을 잊고 오직 ‘부처로 살아가기’에만 집중하자는 것이다. (교외별전敎外別傳, 10지 체계를 중시하는 경전의 가르침과 구별되는 심법).]
혜능은 단박에 돈오를 이루고 현상계 차원의 결과를 모두 내려놓고 오직 자성의 공덕만 믿고. 자성의 공동만 의지해서 살아가자고 주장하는 겁니다. 자성 안에는요 지혜와 방편도 들어있고 삼신도 들어있고 계정혜도 들어있고 육바라밀도 들어있거든요. 현상계의 계제와 등급도 모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지금 이 순간 참나 그대로 부처로 사는가만 보자는 겁니다. 이것에만 집중하자는 거고, 결과를 내려놓고 오직 과정에만 집중하니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삶을 살자는 겁니다. 선사들이 향상일로라고 그래요, 이것을. 끝없이 향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돈오했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스님들이 많이 계세요. 뭔가 잘못돼 있습니다. 제가 “5분 몰입의 기술” 책 썼는데 그 5분 몰입의 기술의 핵심이 이거예요. “결과는 신경 쓰지 말고 과정에만, 과정을 즐기십시오.” 같은 얘기를 지금 6조 대사가 한 겁니다. 돈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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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라는 게 아니라 돈오 이후 늘 부처로 살면서 모르는 마음으로 살되 닦음 없는 닦음을 써서 무한하게 향상하자는 거고, 그래서 모든 계급이나 계제를 잊어버리자는 겁니다. 예. 그냥 부처로 살자는 거예요, 6조가 말하는 건. 그래서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고 합니다. 경전에서는 9급 9단 체계를 얘기하는데 6조는 그런 거 신경도 쓰지 말고 그냥 단박 깨쳐서 부처로 살자고 얘기하기 때문에 교외(敎外), 경전 외에 별도로 전해온다는 거지만 경전이랑 딱 맞아야 됩니다. 이해되시나요? 나는 실력, 바둑, “나는 바둑을 즐길 거야. 그냥 등급 상관 없어”라고 하셔도 그분은 몇 급이거나 몇 단이겠죠, 실제로는. 이해되십니까? 그거예요. 보조 스님은 여기까지 본 거예요. 6조 얘기를 감동해서 받아왔지만 보조는요 육조단경을 보고 깨친 뒤에 화엄경을 갖다가 봐가지고 화엄경에서 유사 구절을 찾아내요. 교종에도 이게 있을 것이다. 교외별전이라고 하지만 교종에서 올라가는 방식과 이 6조의 방식이 틀릴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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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치니까 뭔 얘기가 나오냐면? 10신보살이 아까 1주보살될 때 자기 안에 부동지불(不動地佛)이 있다는 것, 영원한 부처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라는 구절을 찾아내서 두 번째 깨침을 얻어요. 그래서 6조와 화엄경을 합쳐요. 선교(禪敎)일치를 주장해요. 선종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거나 교종에서 급수를 밟아 올라가는 건 사실은 이쪽에서 보면, 참나 차원에서 보면 6조 말이 맞고 에고 차원에서 보면 대승 말이 맞다는 걸 주장해요. 그래서 보조 스님이 엄청난 이야기를 한 겁니다. 6조랑 화엄경을 합친 거예요. 그래서 주장한 게, 만든 게 조계종이에요. 우리나라 그 기원이요. 이거 이해하시면 단순히 돈오 받아와 가지고 연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 국내파로서 해외파도 아니고 국내파로서 두 개를 합쳐 가지고 만든 거예요. 자 이거 원효도 국내파고요. 그니까 해외파만 해외에서 뭐 배워와야 어디 외국에서 박사학위라도 받아와야 대우받는 이런 풍조를 좀 내려놓으셔야 됩니다. 제가 뭐 외국에 안 나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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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아니고. 이상하게 끌리네요, 이런 분들한테는.
[* 보조 지눌의 수심결修心訣
이 청정하고 텅 비어 고요한 마음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의 ‘탁월하게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며, 또한 중생의 뿌리가 되는 ‘깨달아 아는 본성’(覺性)이니, 이 본성 자리만 깨닫고 지킬 수 있다면 앉은 자리에서 움직일 필요도 없이 그대로 해탈할 것이며, 이것에 어리석어 등진다면 여섯 가지 세계를 돌고 돌면서 끝없는 세월을 윤회할 것이다.
而此淸淨空寂之心 是三世諸佛 勝淨明心 亦是衆生本源覺性 悟此而守之者 坐一如而不動解脫 迷此而背之者 往六趣而長劫輪廻.]
보조지눌도 또 한번 보세요. 보조지눌이 돈오점수만 얘기했다고 하는데 한번 보세요, 실제로. 이 청정하고 텅 비어 고요한 마음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의 탁월하고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며 중생의 뿌리가 되는 깨달아 알아차리는 본성이니 이 자리만 지킨다면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움직일 필요도 해탈할 수 있다. 보조도 이렇게 한 번씩 세게 지를 때가 있어요. 참나만 찾으면 끝이 아니냐. 보조도 이 마음이에요. 참나만 제대로 밝히면 끝 아니냐.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게 안 되니까 점차 걸리는 것뿐이에요. 핵심은 간단합니다. 6조나 보조는 다 뭘 얘기하냐면 이거 한 놈만 잘 밝히면 게임 끝이다. 이겁니다. 이 얘기를 좀 더 해볼게요. 이거를 이제, 요게 좋겠죠. 지금 여러분 육조단경에 대해서 꽤 깊이 파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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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육조단경을 전체를 할 기회가 있으면 또 제가 한번 또 해 드리겠습니다만. 이 참나에서, 이것도 가능하겠죠, 부처님이 계정혜, 계율 잘 지키고 선정 들고 지혜, 삼학이라고 하죠. 지혜를 이루어야 부처된다 했는데 계정혜도 근원은 참나에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6조의 논리를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6조는요 계정혜도 참나에다가 연결해야 직성이 풀리실 분이죠. 에고가 죄 안 짓는 걸 계율이고요. 에고가 고요한 걸 선정이고 에고가 개념이라도 하나 더 아는 걸 혜라고 합니다. 제법은 무아구나 제행은 무상하구나 이게 혜입니다. 그런데 그 아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참나는요 원래 육바라밀이 들어있는 자리니까 지계바라밀이 들어있죠. 원래 유혹이 안 돼요, 악에. 참나는 원래 고요해요. 참나는 원래 알아차리고 있잖아요. 간단한 얘기입니다. 6조는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계정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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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만 얻으면 원래 되는 거다. 무조건 참나 깔때기. 뭐 요즘 나꼼수 깔때기죠. 6조는 참나 깔때기의 달인입니다. 무조건 거기다가 집어넣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이걸 사람들이 오해하게 되기도 하는 거죠. 이 얘기 한번 들어보세요.
[11. ‘자성’의 마음자리를 ‘지혜’(자성혜自性慧, 참나의 빛)로 관조하여 안팎이 투철히 밝아 자신의 ‘본심’을 알아야 한다. 만약 ‘본심’을 알면 이것이 ‘해탈’이다. (혜능은 본심을 정확히 아는 것을 해탈로 보고 있음. 정확히 말하면 해탈의 씨앗임.) 해탈을 얻었다면 이것이 ‘반야삼매’(진여삼매, 정혜쌍운定慧雙運)이며, 반야삼매를 깨달으면 이것이 ‘무념無念’이다. 어떤 것을 ‘무념’이라고 이름하는가? ‘무념법無念法’은 일체의 법을 보되 일체의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일체처에 두루하되 일체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늘 자성을 청정하게 하면서, ‘여섯 도적’(오감五感과 의식意識)으로 하여금 ‘6가지 문’(6가지 인식기관)으로 달려 나가게 하고, ‘6가지 티끌’(6가지 인식대상)을 떠나지도 않으며 오염되지도 않아서 오고 감에 자유자재하니, 이것이 ‘반야삼매般若三昧’이며 ‘자재해탈自在解脫’이며 ‘무념행無念行’이다. (현상계를 절대로 떠나지 않되[방편-윤회], 현상계에 물들지도 않는다[반야-열반]. 보살행의 핵심) 온갖 사물을 생각하지 않아서 늘 생각을 끊으려고 하지 마라. 이것은 ‘법에 결박당함’이니, 바로 ‘치우친 견해’이다. ‘무념법無念法’을 깨달으면, ‘만법萬法’에 남김없이 통하니(만법의 뿌리에 곧장 도달함,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중용), 무념법을 깨달으면 여러 부처의 경계를 보며, 무념법을 깨달으면 ‘부처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
自性心地 以智惠觀照 內外明(名)徹識自本心 若識本心即是解脫 既得解脫即是般若三昧 悟般若三昧即是無念 何名無念 無念法者 見一切法不著一切法 遍一切處不著一切處 常淨自性 使六賊從六門走出 於六塵中不離不染 來去自由 即是般若三昧自在解脫名無念行 莫百物不思 常(當)令念絕 即是法縛(傳) 即名邊見 悟無念法者 萬法盡通 悟無念法者 見諸佛境界 悟無念頓法者至佛位地.]
자성의 마음자리에는 이미 지혜가 있어요, 알아차림이. 그게 안팎으로 투철히 밝아서 자신의 본심을 정확히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셔야 돼요. 이 참나만 알면 그게 해탈이에요. 또 이 얘기 듣고 “아, 그럼 부처인가? 12지?” 가시지 마시고 참나 알았다는 게 이미 해탈이에요. 여러분 참나, 지금 이름 모르시죠. 바로 해탈해 드릴게요. 이름 모르시죠. 거기 뭔 걱정이 있습니까? 해탈이세요. 그 마음으로 그냥 살아가세요, 죽을 때까지. 무한향상을 하실 겁니다. 왜 향상할 수밖에 없을까요? 집에 갔어요. 와이프가 또 어디 갔다 왔냐고 주말에 화를 내요. 인욕바라밀을 하고 참나를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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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이 밀려오고 머리가 또랑또랑해지면서 인욕, 화가 참아지고 보시바라밀 자연스럽게 설거지를, 가서 설거지를 했어요. 뭐 말도 필요 없죠. 이렇게 자연스럽게 했더니, 가정이 되게 일촉축발로 가다가 가정이... 이거 한번 겪으셨죠. 내가 또 뭐 했네 하지 마세요. 내가 어제 해 이걸 했다니까 이러지 마시고, 또 내려놓음 모른다 하고 또 모르는. 나날이 실력이 안 늘까요? 참나는 늘 참나일 뿐이라고 얘기했죠. 에고는 실력이 점점 늘어요. 이게 무한향상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신경 쓰지 마시라는 거예요, 계제에 절대. 나는 이미 완성됐다 하고 살아가시라는 거예요. 이미 부처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부처는요 성장할 수가 없어요. 절대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참나는. 참나를 찾고 살아가시는 분은요 그냥 지금 이 순간부터 그냥 지상천국이 펼쳐진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날마다 좋은 날이 돼 버린다. 하지만 에고 차원에서 보면 계제가 날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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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겠죠. 저 사람이 지난번 만났을 때는 1단이었는데 요즘 보니까 2단이 하는 걸 하네. 10년 뒤에 만났더니 막 8단이 하는 걸 해요. 원효대사나 하는 걸 해요. 본인은 몰라요. 8년간 참나로 살았을 뿐. 10년간 참나로 살았을 뿐. 실력이 무조건 늘게 돼 있어요, 참나로 사시면. 예, 이 부분을 주목하시라는 겁니다. 이게 해탈이라는 얘기입니다. 혜능은 본심만 알면 해탈이라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해탈의 씨앗이에요. 아직 원만하지는 않기 때문에 사실은. 하지만 6조는 그것도 신경 쓰지 마라. 해탈을 얻었다면 이건 반야삼매다. 대승기신론에서 말한 진여삼매나 지혜쌍운이라고 하는 건데요. 반야삼매만 얻으면 이게 무념이다. 텅 비어. 그 자리에는 생각도 없어요. 알아차릴 뿐이지. 이 어떤 걸 무념이라고 하나? 무념은요 일체법, 현상계의 모든 존재가 생각 감정 오감을 만나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버리질 않아요. 인연을 버리지 않아요. 집착만 버리지. 대승은 그래요. 소승은요? 인연 자체를 버리려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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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대소승이 갈립니다. 생각 감정 오감을 버리려고 그래요. 그것만 버리면 내가 자유로울 텐데. 대승은요? 있건 없고 신경도 안 써요. 그놈도 본래 공하다고 알아요. 그놈도 다 참나 작용이에요. 그러니까 버리질 않듯 집착도 안 해요. 그러니까 일체법을 집착하지 않으면 일체처에 두루 하되. 오만 데 다녀요. 윤회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단 내가 윤회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늘 참나로 살아가요. 늘 자성을 청정하게 하면서 육적(六賊), 오감 의식을 다 쓰고 여섯 가지 기관 눈 코 귀 입 혀 몸 마음을 다 써요. 그러면서 여섯 가지 티끌, 인식 대상입니다.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 개념 이런 것들을 떠나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다, 별짓을 다 해요. 하지만 청정해요. 늘 모르는 마음으로 살아요. 이것이 반야삼매고 자재해탈이고 무념행이다. 여러분 지금 바로 하실 수 있어요. 이거 한참에, 한참 닦아야 되는 게 아니에요. 지금 모른다 하시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시면 돼요. 모른다 하시면서 제 소리 들리는 거, 보이는 것, 지금 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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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촉 오는 거를 거부하지도 집착하지도 않고 그냥 살아가시는 거. 그럼 이 순간 보신, 좋은 업을 지으신 거고, 이 순간 화신, 지금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신 겁니다. 이 순간 깨어 계시기 때문에. 이걸 다 어디서 하나요? 참나가 하니까 법신을 지금 찾으신 겁니다. 이겁니다, 6조의 맛은. 온갖 사물을 생각하지 않아서 늘 끊으려고 하지 마라. 생각 없애려고 하지 마라. 만약에 없애면요 어떻게 되나요? 그거는 법에 결박당한, 법에 집착하는 거기 때문에, 구속받는 거기 때문에 치우친 견해이고 무념법만 깨달으면, 그런 생각 감정 오감을 버리려고도 안 하는 상태에 들어가면요 만법을 남김없이 통달하여 중용에 나오는 희노애락만 초월하면 천하의 뿌리에 도달한다는 그 얘기입니다. 무념법 깨달으면 그냥 부처자리다. 이해되시죠. 생각을 만약에 억지로 끊으면요 그거는 불교에서 어디냐면 생각 없는 무의식의 세계에 태어나요. 이것입니다. 생각 없는 세계에 태어나 버려요. 이거 끊어서도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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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을 수도 없지만. 왜냐하면 거기서도 영원히 있을 수는 없어요. 다시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게 불교의 대승 이론이에요.
[* 대승기신론
만약 중생이 능히 ‘무념無念’을 관찰할 수 있으면, ‘부처의 지혜’를 향하게 될 것이다. 若有衆生能觀無念者 則爲向佛智故.]
대승기신론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제가 육조단경은 대승기신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그랬죠. 강조하는 건 금강경인데 이론적 근거는 다 대승기신론에서 가져와요. 그러면서 교외별전이라고 주장하는 게 그 교가 교랑 완전히 척지는 게 아니에요. 경전에 안 써져 있는 오히려 화엄경이나 대승경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심법이라고 보시는 게 맞아요. 교외별전이라는 말은 경전에, 학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그것. 뭐 이런 의미지 학원 공부랑 배치된다는 게 아니에요. 학교 공부랑, 학원 공부로 치면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는 그것. 그렇다고 해서 학교 교과과정이랑 다른 걸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거죠, 오히려. 오히려 계제를 빨리 올리는 비법이라고 보시면 맞아요. 육조단경은요, 오히려 이렇게 하면 금방 합격한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요 얘기 한번 이거 스토리가 있으니까 한번 들어보세요.
[12. “제자가 알기로는 달마대사가 양무제를 교화할 때, 달마에게 묻기를 ‘짐이 일생동안 절을 짓고 보시하고 공양하였으니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달마조사께서 대답하시길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제가 불쾌하게 여겨서 달마대사를 경계 밖으로 내쫓았다고 합니다. 이 말을 잘 모르겠습니다. 청컨대 화상께서는 설명해주십시오.” 6조께서 말씀하시길 “진실로 공덕이 없다. 사군使君은 달마대사의 말을 의심하지 마라. 무제가 사특한 도에 집착하여 올바른 법을 알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군이 묻기를 “왜 공덕이 없습니까?”라고 하였다. 화상께서 말씀하시길 “절을 짓고 보시하고 공양하는 것은 단지 ‘복福’을 쌓는 것이다. ‘복’(에고의 공덕, 유위有爲의 공덕, 비록 복을 받더라도 에고가 증장하여 무지와 아집이 그대로임)을 가지고 ‘공덕功德’(참나의 공덕, 무위無爲의 공덕, 참나의 공덕이 드러나면 무지와 아집이 정화되어 지혜와 자비로 변화함)으로 여기지 마라. ‘공덕’은 ‘법신法身’(만법구족萬法具足의 청정신淸淨身, 6바라밀의 공덕을 갖추고 있음)에 있는 것이지, ‘복전福田’(복을 산출하는 밭, 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나 승려)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공덕은 오로지 참나의 작용일 뿐이다.) 자신의 ‘법성法性’에 공덕이 있다. 평이하고 곧은 것이 ‘덕德’이다. 안으로 불성을 보고 밖으로 공경을 행하라. 만약 일체의 사람을 가볍게 보고 ‘나에 대한 집착’(아상我相)을 끊지 못한다면, 공덕이 없어 자성이 허망하며 법신에는 공덕이 없다. 생각 생각마다 ‘덕德’으로 평등한(자타일여自他一如) ‘직심直心’을 행한다면, ‘덕’이 가볍지 않을 것이다. 늘 공경함을 행하여, 스스로 자신의 ‘몸’(말ㆍ행동)을 닦는 것이 바로 ‘공功’이며, 스스로 ‘마음’(생각ㆍ감정)을 닦는 것이 바로 ‘덕德’이다. ‘공덕’은 자신의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복’과 ‘공덕’은 별개이니, 무제는 올바른 원리를 알지 못한 것이다. 달마조사에게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弟子見說 達磨大師化(代)梁武帝(諦) 問達磨 朕一生已(未)來造寺布施供養 有{有}功德否 達磨答言 並無功德 武帝惆悵 遂遣達磨出境 未審此言 請和尚說 六祖言實無功德 使君{朕}勿疑達磨大師言 武帝著邪道不識正法 使君問 何以無功德 和尚言 造寺布施供養只是修福 不可將福以爲功德 [功德]在法身 非在於福田 自法性有功德 平直是德 [內見]佛性 外行恭敬 若輕一切人 吾(悟)我不斷 即自無功德 自性虛妄 法身無功德 念念德行平等直(眞)心 德即不輕 常行於敬 自修身即功 自修{身}心即德 功德自心作 福與功德別 武帝不識正理 非祖大師有過.]
이거, 이 얘기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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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제가요 절 짓고 엄청 공덕을 베풀었다가 벽암록 제1칙에 나오죠. 달마대사가 오니까 나 좀 잘나지 않아? 나 대단하지 않아? 이랬다가 달마한테 까인 이야기. 그 얘기를 들면서 사군(使君)이라는 제자가 물어본 겁니다. 달마가 양무제 교화할 때 달마한테 양무제가요 “짐이 일생 동안 절을 짓고 보시하고 공양했으니까 공덕이 있죠?”라고 했더니, 달마가 “전혀 공덕이 없는데요”라고 한 겁니다. 그러니까 무제가 불쾌해서 달마를 쫓아내 버렸습니다. 죽였다는 설도 있고요. 이 말을 잘 모르겠습니다. 화상(和尚) 난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왜 공덕이 없다는 겁니까? 절 짓고 공양하고 그렇게 중들 먹여 살리고 다 했는데 왜 없다는 겁니까? 6조가 진실로 공덕이 없다. 사군, 제자 이름입니다. 너는 달마 말 의심하지 마라. 무제는 사특한 도에 집착하여 올바른 법을 몰랐다. 왜 공덕이 없다는 겁니까? 절을 짓고 보시하고 공양하는 건 단지 복을 쌓는 것이다. 이건 포인트를 쌓는 거예요. 죽은 뒤에 천국 갈 수 있는 포인트는 쌓은 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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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천국도 우습게보죠. 왜냐? 거기 있다가 포인트 다 하면 내려와야 돼요, 다시. 포인트까지만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포인트가 쌓은 만큼 천국에 있다가 잃으면 태어났다가 그 뭐죠? 마이너스 쓰면 지옥으로 내려갔다가 그거 갚으면 다시 올라왔다가 이 구조입니다. 불교에서 보는 세계관은. 그러니까 포인트 쌓는 데 집착한, 애초에 집착해봤자 영원한 게 없다는 겁니다. 결국 바로 참나를 깨쳐야만 끝난다는 얘기를 하고 싶겠죠, 6조는. 참나를 바로 깨쳐야만 포인트를 초월해서 죄를 안 짓게 돼야지 근원적으로 끝없이. 죄성이 있다면 천국에 있다가도 언젠가 내려와야 되는 거 아니냐 이거죠, 다시 죄가 발동한다면.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과 공덕을 나눠 봐요. 복은요? 에고가 쌓는 포인트. 공덕은요? 참나의 작용, 참나가 육바라밀을 펼치는 작용. 그냥 참나에, 이것을 갖다가 노자(老子)식 표현으로 하면 노자는요 에고가 쌓는 복은 노자는 유위(有爲)라고 그래요, 에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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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는요 무위(無爲). 무위를 해야지 유위 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계속 노자가 합니다. 노자 도덕경(道德經) 보시면요 천하를 유위로 다스리려고 하면 반드시 망친다. 내가 경영 잘하지 하는 거 보이려고 천하 다스렸다가는 반드시 망친다. 천하는 무위로 다스려라 하는 게요 참나대로만 하라는 겁니다. 신하를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릴 때 참나대로만 하라는 거지 “내가 좀 잘 다스리지 않냐? 니들 저기 오바마보다 내가 낫지 않냐?” 이런 생각을 자꾸 하면 유위의 세계에 빠져버려서 가지고 있는 포인트마저 까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복을 쌓는 것은요 에고의 공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것은요 에고 포인트가 아무리 올라가도 무지랑 아집이 그대로 있어요. 참나를 몰라요. 언제든지 금방 무너질 태세라는 겁니다. 그런데 공덕, 참나의 작용을 한 사람은 부처가 돼 버려요. 지혜와 자비가 늘기 때문에 밑으로 떨어질 수가 없어요. 이해되시죠. 그러니까 진짜 공덕을 쌓으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 공덕은 어디서 나오느냐? 법신에서. 만법을 갖고 있는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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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걸 다 갖추고 있는 법신이 하는 거지 에고가 하는 거 아니다. 복전(福田)에 답이 있는 게 아니다, 공덕은. 복전은요 부처님이에요. 그러니까 복밭, 거기다 빌면 복을 포인트를 쌓아주시는 분, 내가 잘하면 나한테 포인트를 주시는 분, 부처나 고승들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모시는 분들, 그분이 복밭이 아니고 진짜 복밭은 참나에 있다. 참나대로만 살면 우리는 복을 짓게 돼 있다. 이거 보시면 이해되시지 않나요? 바리새파들이 왜 예수님한테 욕을 먹었는지? 바리새파들은 에고의 공덕을 막 쌓고 있었던 거예요. 포인트 이대로만 쌓으면 나 그대로 하늘이다. 천국행 뭐 거의 맡아 놨다. 이러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야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그랬거든요. 그런 포인트는 하느님이 쳐주지 않는다. 너네들이 쌓은 포인트는 세상에서 이미 보상을 받았다. 양반 대우, 그러니까 계율 잘 지켜서 양반 대우 받으면서 기득권을 누렸잖아요. 이미 너희는 포인트 다 썼다. 사실은 받은 만큼 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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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게 남한테 선행을 하고 대가를 안 바라면 그건 아버지가 줄 거다. 그런데 그것도 참나대로 하라고 하죠. 예수님이 뭐라고 하세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이게 보시바라밀의 극치죠. 왼손으로 남한테 주면서 오른손이 몰라요. 그 일을 내가 했다고 생각을 안 해요. 이게 성령대로 한 겁니다. 참나의 공덕이에요. 예수님이랑 지금 불교랑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를 부딪치면요 오히려 서로가 더 잘 이해돼요. 이게 신기하죠. 이게 진리의 힘이라고 봐요, 저는. 둘 다 진리대로 하신 분이라 이게 만나지. 에고대로 했으면 만날 리가 없어요. 서로 이론이 정확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아주 세밀한 데까지. 자 고 얘기 이제 쭉 또 있고요. 자 그다음 13번으로 바로 가죠.
[13. 만약 ‘무생돈법’(태어난 적이 없는 참나를 곧장 깨닫는 법)을 깨닫는다면 ‘서방정토’를 찰나에 볼 것이요, ‘돈교대승’(참나를 곧장 깨닫게 하는 대승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다면 ‘염불’을 하여도 왕생의 길이 멀 것이니 어떻게 도달하겠는가?
若悟無生頓法 見西方只在剎那 不悟頓教大乘 念佛往生路遙 如何得達.]
만약 무생돈법만. 태어난 적이 없는 참나를 곧장 깨닫는 법이 무생돈법입니다. 무생한 돈법을 바로 깨치면 거기가 서방정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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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가 극락세계다. 염불하는 사람한테 이건 하는 얘기입니다. 또 참나 깔때기입니다. 참나만 깨치면 거기가 서방정토다. 극락세계 따로 생각하지 마라. 만약에 너가 참나, 돈교, 대승 같은 얘기입니다. 같은 걸 다르게 쓴 거예요. 단박 깨치는 그 대승불교의 핵심을 너가 모른다면 염불 아무리 해 봐라 왕생 하나. 참나를 모른다면 왕생을 할 수가 없다. 참나를 안 사람은 이미 참나가 극락이다. 서방정토를 간 건 아니죠. 그런데 참나면 이미 극락이다. 근데 참나 모르면 극락도 못 간다. 거기 아미타불 근처에도 못 간다. 거기는 1주보살 이상이 가거든요, 아미타불은. 그러니까 이게 대승이론이랑 정확히 맞는 얘기예요. 대승불교 원래 이론이 아미타불 염불하시죠. 무량수경이나 아미타경에 세게 쏘는 경에는요 염불 한 번만 이름 외도 간다고 돼 있어요. 그런데 실제 대승불교 이론에서는 안 그래요. 아미타불 거기 가려면 1주보살 이상이 돼야 돼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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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가 내 안에 흘러야 돼요. 그래야 거기를 갈 수가 있어요. 이것도 좀 더 많이 양보한 이론이고 대승기신론은 이걸 택해요. 그런데 원 이론은요 8지보살 이상이라야 가요. 극락세계를 갈 내가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요. 원래는 부처님들이 사는 색구경천의 세계 가려면 나도 8지보살 이상은 해야 돼요. 8지보살이 색자재경지예요. 8지보살 이상이면 보신과 화신에서 자유가 와요. 이 보신과 화신을 만들어서 거길 가는 겁니다, 색구경천에. 예수님이 그 영생은 뭐죠? 영적인 몸을 얻어서 하느님 왕국에 들어간다는 그런 이론이 불교에도 있어요. 그 이론에 맞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름만 외면 거기 가게 해주겠다고 하는 것은요 공부하라고 좀 이게 그냥 쏘는 겁니다. 그런데 결국 거기서도 1주보살 이상 돼야 가요, 사실은. 대승기신론에는 그렇게 쓰여 있어요. 그런데 지금 같은 얘기입니다. 무생돈법 알아야 왕생한다, 사실은. 그러면 이게 1주보살 이상 해야 간다는 얘기죠. 그냥 염불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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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게 아니라. 그러면 별거 아니고요 염불하실 때 깨어 있으시면 그게 1주예요. 알아차림이 늘 흐르면 염불하시다가. 그래야 뭔 효과가 나죠. 아미타불이 얼굴이라도 보죠. 그래야.
[14. 무엇을 ‘점차’와 ‘단박’이라고 하는가? ‘법法’은 한 가지일 뿐이나, ‘앎’(見)이 더디고 빠를 뿐이다. 앎이 더디면 ‘점차’이며, 앎이 빠르면 ‘단박’이다. ‘법’에는 점차와 단박이 없으나, ‘사람’에는 예리함과 둔함이 있다. 그러므로 점차와 단박이라고 이름한다. 何名(以)漸頓 法即一種 見有遲疾 見遲即漸 見疾即頓 法無漸頓 人有利鈍 故名漸頓.]
자 14번 뭐가 점차 단박이냐? 같은 얘기 한 번 더 합니다. 법은 진리는 한 가지다. 삶이 더디고 빠를 뿐이다. 예리한 사람은 빨리 알고요. 둔한 사람은 천천히 안다.
[15. “화상이여, 제자는 옥천사(신수대사의 거처)에서 왔습니다. 신수대사가 있는 곳에서는 깨달음에 계합하지 못했는데, 화상의 설법을 듣고 곧장 ‘본심’에 계합했습니다. 원컨대 화상께서는 자비로움으로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시길 “네가 그곳에서 왔다면 응당 첩자(세작細作)이로구나!”라고 하였다. 지성이 말하길 “말하기 전에는 그렇습니다만, 말하였으니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육조께서 말씀하시길 “번뇌가 보리라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和尚 弟子從玉泉寺來 秀師處不得(德)契悟 聞和尚說 便契本心 和尚慈悲願當敎(散)示 惠能大師曰 汝從彼(被)來應是細作 志誠曰 未說時即是 說{乃}了不(即)是六祖言 煩惱即是菩提亦復如是.]
자 15번 재미있습니다. 신수대사가요 첩자를 보내요. “야 너 가가지고 혜능이 뭐라고 하지 좀 들어와라.” 그리고 너, 이 말이 그다음 말이 되게 재미있어요. 원문인데 “빨리 와서 나로 하여금 의심케 하지 마라. 갔다 빨리 와라. 내가 의심할 거다, 너 늦게 오면.” 인제 이렇게 하고 보냈어요. 원문 말이 되게 재미있는데, 그래서 와요. 근데 와서 얘기 듣다가 뿅 가요. 이래야 재미있죠. 육조단경은 주인공은 6조니까. 뿅 가가지고 저 사실 옥천사서에서 왔거든요. 신수대사 있는 데예요. 신수대사가 있는 곳에서는 깨달음에 내가 참나를 못 찾았는데 여기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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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얘기 들으니까 바로 참나를 깨쳤습니다. 좀 더 가르쳐 주세요. 그러니까 혜능이, 진리를 좀 더 가르쳐 달라고 하니까 혜능이 뭐라고 하냐면요 바로 상황을 이용해서 설법을 해요. 너가 거기서 왔으면 첩자네. 세작이라고 하죠. 너 세작이네. 그러니까 말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만 말했으니까 아니죠. 그러니까 번뇌가 보리라는 것도 이렇다. 번뇌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면 보리다. 참나의 작용일 뿐이다. 이렇게 해서 설법을 해 줘요.
[대사께서 지성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들으니 그대의 선사께서 사람들을 가르칠 때, 오직 ‘계戒ㆍ정定ㆍ혜慧’(3학)을 전한다고 들었다. 그대의 화상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계정혜’를 가르치는가? 나를 위해 말해보라”라고 하였다. 지성이 말하길 “신수화상은 ‘계정혜’에 대해 말하길 ① 일체의 악惡을 행하지 않는 것이 ‘계戒’이며, ② 일체의 선善을 받들어 행하는 것이 ‘혜慧’이며, ③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정定’이라고 하고, 이것을 ‘계정혜’라고 이름한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혜능께서 대답하시길 “이 설법은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혜능이 이해하는 바는 또한 다르다”라고 하였다. 지성이 무엇이 다르냐고 묻자, 혜능께서 대답하시길 “앎에는 더디고 빠름이 있다”라고 하였다. 지성이 화상이 이해하는 ‘계정혜’를 설명해주시길 청하였다. 대사께서 말씀하시길 “그대는 나의 설명을 듣고 나의 견처를 보라. ① 마음자리에 그릇됨이 없음이 ‘자성계自性戒’이다. ② 마음자리에 어지러움이 없음이 ‘자성정自性定’이다. ③ 마음자리에 어리석음이 없음이 ‘자성혜自性慧’이다”라고 하였다. 혜능대사가 말씀하시길 “그대의 ‘계정혜’는 작은 근기의 여러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고, 나의 ‘계정혜’는 상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다. 자성을 깨달으면(자성의 계정혜를 갖춤) 또한 ‘계정혜’를 세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참나의 계정혜가 절로 드러남. 계정혜라는 형상도 필요 없음) 지성이 말하길 “청컨대 대사께서 말씀하신 ‘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하였다. 대사께서 말씀하시길 “‘자성’에는 그릇됨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다. 생각 생각마다 ‘반야’로 관조하여 늘 ‘법상法相’을 떠났는데 무엇을 세우겠는가? ‘자성’을 단박에 닦으라. 형상을 세우면 점차가 된다. 그래서 세우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성이 예배하고 조계산을 떠나지 않고서, 문인이 되어 대사의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大師謂志誠曰 吾聞汝(與)禪師教人唯傳戒定惠 汝(與)和尚教人戒定惠如何 當爲吾說 志誠(城)曰 秀和尚言戒定惠 諸惡不作名爲戒 諸善奉行名爲惠 自淨其意名爲定 此即名爲戒定惠 彼作如是說 不知和尚所見如何 惠能和尚答曰 此說不可思議 惠能所見又別 志誠(城)問何以別 惠能答曰 見有遲疾 志城請和尚說所見戒定惠 大師言 {如}汝聽吾(悟)說 看吾(悟)所見處 心地無{疑}非自性戒 心地無亂是自性定 心地無癡自性{是}惠 能大師言 汝戒定惠勸小根諸人 吾戒定惠勸上[根]人 得悟(吾)自[性] 亦不立戒定惠 志誠(城)言 請大師說不立如何 大師言 自性(姓)無非無亂無癡 念念般若觀照 常(當)離法相 有何可立 自性(姓)頓修 立有漸 此所(契)以不立志誠禮拜 便不離漕溪山 即爲門人 不離大師左右.]
[* 과거칠불통게過去七佛通揭
일체의 악惡을 행하지 말며, 일체의 선善을 받들어 행하라.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정화해라. 오직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그다음에 좀 더 물어봐요. 그래서 대사께서 지성(志誠)에게 그 사람이 지성인데요. 6조대사 대단하죠. 이제 첩자를 이용해서 정보를 캐네요. 신수가 어떻게 가르치데? 이제 선사께서 사람들을 가르칠 때 계정혜만 가르친다고 들었다. 그런데 신수는 안 봐도 알겠죠. 지금 에고의 계정혜를 가르치고 있겠죠. 그거 한번 얘기해 봐라, 나를 위해서. 그러니까 바로 얘기를 해요. 신수는요 악을 안 하는 게 계(戒)요 선을 하는 게 혜(慧)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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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정화하는 게 정(定)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6조도 뭐라고 할 수 없는 말이에요. 그게 뒤에 보세요. 과거칠불통게를 가지고 얘기한 거예요. 제악막작(諸惡莫作) 일체의 악을 하지 말고, 중선봉행(衆善奉行) 일체의 선은 하고, 자정기의(自淨其意) 자기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니까요 신수대사 가르친 게 잘못됐다고 오해하시면 안 돼요. 신수대사는 참나로 바로 가게 하는 법을 강조 안 하고 에고를 갖다 자꾸 닦게 하려고 한 것뿐이에요. 방편상 일반인이 참나를 바로 모르니까 에고부터 훈련시키자는 입장을 취한 것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계정혜를 설명하니까 혜능도 거기다가 욕을 할 수가 없죠. 과거칠불통게인데요. 법구경에 있는 얘기인데. 참 그 설법은 불가사의하다. 좋은 얘기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뭐가 다르냐고 하니까 앎에는 더디고 빠름이 있다. 즉 돈점(頓漸)이 있다는 겁니다. 자기는 돈법(頓法)이고 신수는 좀 점법(漸法)이다. 신수는 에고를 닦고 있고 나는 참나로 바로 들어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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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뚫고 바로 태양을 보게 하는 비법이다. 설명해 달라고 하니 내 설명 듣고 나의 견처(見處)를 한번 보라. 참나에는 원래 그릇됨이 없다. 그러니까 지혜요. 자성혜요. 이 용어도 알아두세요. 자성계(自性戒)요 자성이 원래 계율을 지키고 있고요. 마음자리에는 원래 어지러움이 없으니 자성정(自性定)이요. 마음자리에는 원래 어리석음이 무지가 없으니 자성혜(自性慧)다. 원래 다 알아차리고 있고, 거기에는 어떠한 유혹도 없고, 거기에는 어떠한 그릇됨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다. 그대의 계정혜는, 잘못됐다고 안 합니다, 작은 근기, 하근기들한테 맞고 나의 가르침은 상근기한테 맞다. 곧 참나를 알똥말똥한 사람한테 내 얘기가 맞다. 예. 그렇게 하면서, 하지만 깨닫고 나면 계정혜란 말도 필요 없다. 6조 대사는 대단해요. 계정혜란 말도 하지 마라는 거예요. 그냥 참나대로 살아라. 그러면 계정혜는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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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1단 얘기입니다. 1주보살은 이런 얘기 못 해요. 1주보살이 참나대로 못 살아요. 아직 법신을 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성이 말합니다. 청컨대 세우지 마라는 건 또 뭔 얘기인가요? 자성에는 원래 그릇됨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니까 생각 생각마다 그냥 반야로 관조하며, 즉 모르는 마음으로 깨어있는 상태로 그냥 살아갈 뿐인데 무슨 따로 계정혜니 하는 말도 필요가 있겠냐? 거기에. 그러니까 자성을 단박에 닦아라. 형상을 세우면 점차(漸次)가 된다. 계정혜라는 걸 생각하면요 “계율을 먼저 닦나? 선정을 먼저 할까?” 이런 생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럼 점차(漸次)가 공부가 점법(漸法)이 돼 버리니까 아예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깨어서 그냥 가라. 지성이 예배하고 조계산을 떠나지 않고서 문인이 되어 대사의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확실히 이제 이쪽에 확실히 가버렸죠. 뭐 이런 일이 많겠죠. 석가모니 숫타니파타 봐도 이래요. 다른 브라만 힌두교 스승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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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요. 열 몇 명씩 보내면 결론은 다 이렇죠. 석가모니 말 듣고 깨쳐서 이제 석가모니의 충실한 제자가 되고 아라한이 되었다. 뭐 이렇게 끝나요, 다. 그러니까 육조단경도 그런 형식을 취한 겁니다. 자 보조 스님이 6조 스님한테 감동했다는 게 이걸 그대로 취해요.
[* 수심결
① ‘자기 본성의 선정⋅지혜’(自性定慧)를 닦는 자는 ‘단박에 깨닫는 문’이니, 닦음이 없는 닦음을 써서 두 개의 ‘고요함’을 함께 활용하여 스스로 자신의 본성을 닦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성하는 사람이다. ② 그리고 ‘대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지혜’(隨相門定慧)를 닦는 자는 깨닫기 전의 ‘점진적으로 닦는 문’의 열등한 근기이니, 대상에 따라 다스리는 공부를 활용하여, 마음 마음마다 의심을 끊고 고요함에 집착해서 닦는 자이다. 그러므로 이 두 문의 수행은 ‘단박’과 ‘점차’가 다르니 서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修自性定慧者 此是頓門 用無功之功 竝運雙寂 自修自性 自成佛道者也 修隨相門定慧者 此是未悟前漸門劣機 用對治之功 心心斷惑 取靜爲行者 而此二門所行 頓漸各異 不可參亂也.]
수심결에 가면, 보세요. 자성정혜(自性定慧)라고 하죠. 자신의 본성엔 이미 정혜(定慧), 고요함과 알아차림이 있으니 이건 단박에 깨닫는 문이고 닦음이 없는 닦음을 써서. 이 사람은요 이미 그냥 그대로만 살면 돼요. 그러니까 닦음 없는 닦음이에요. 이게 보조 스님이 생각한 점수(漸修)예요. 왜 보조 스님이 틀렸겠어요? 이해되세요. 이걸 점수라고 생각한 겁니다. 닦음 없는 닦음. 깨친 사람도 계속 닦아야 된다는 얘기를 한 것뿐이에요. 이것, 이 한 말 때문에, 깨친 사람도 닦아야 된다는 말 때문에 “어! 내가 알기로는 6조의 깨침은 불지인데 왜 뭘 닦는다는 얘기야?” 해가지고 보조가 지금 격하된 겁니다. 수심결을 안 봐요. 경허(鏡虛, 1849-1912), 만공(滿空, 1871-1946) 한암(漢巖, 1876-1951) 다 수심결을 보고 견성하셨는데 지금 안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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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결을. 제 번역본 말고 번역본이 몇 개 안 돼요. 법정 스님 것이랑 제 것이랑 어떤 교수분 하나만, 거의. 제가 번역할 때도 그랬어요. 없었어요. 이렇게 됐습니다. 예전에 스님들이 다 보던 필독서가 수심결이 격하된 거예요. 점수(漸修)를 얘기했다고. 좀 편집을 좀... 너무 세게 얘기했나? 오늘. 아무튼 대상을 따르는 문(門), 그런데 에고의 정혜는요 대상을 따르는 문의 정혜라는 게 있어요. 즉 선정 따로 있고 지혜 따로 있는 거예요. 상을 세워서 닦는 것, 이거는 점진적으로 담는 점수(漸修)의 문이에요. 참나 모르는 사람들이 닦는 것. 열등한 근기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것도요 대상에 따라 마음이 어지러우면 고요하게 해야 되고요 어리석으면 책을 보게 해야죠. 이것도 안 쓸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두 수행은 근기가 다른 문이니까 혼동하면 절대 안 된다. 보조 스님 정확히 알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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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를요 존경해서 자기 송광사 뒷산을 조계산으로 바꾼 분이에요. 그러니까 그걸 알아주셔야 돼요. 오히려 6조의 이론이 치우칠까 봐 화엄경 이론을 합쳐가지고 더 원만하게 만든 겁니다.
[16. 대사께서 말씀하시길 “그대들 문인들은 잘 있어라. 내가 게송 하나를 남길 것이니 자성진불해탈송自性眞佛解脫頌이라 이름한다. 후대의 미혹한 사람들이 이 게송의 뜻을 들으면 자신의 마음, 자신의 본성의 참된 부처를 볼 것이다. 그대들에게 이 게송을 주면서, 내가 그대들과 이별하노라. 게송은 다음과 같다.
大師言 汝等門人好住 吾留一頌 名自性眞佛解脫頌 後代迷{人} 聞(門)此頌意 {意}即見自心自性眞佛 與汝此頌 吾共汝別 頌曰.]
자 이제 마지막입니다. 대사가요 문인들아 잘 있어라. 마지막 가시는 장면입니다. 내가 게송 하나 남겨줄게. 자성진불해탈송인데 이걸 보면은 자신의 부처를 알 거다. 이별하노라 하고 요거를 읽고 이제 돌아가세요. 돌아가시는데 이제 마지막 이제 게송입니다. 내용이 긴데 제가 이제 이걸 굳이 쓴 거는요 여기는 밀교까지 나와요. 그러니까 6조 대사가 점수에 정말 잘 아시는 분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렇게 “단박 깨치면 바로 부처니까 그때부터는 닦을 필요도 없다.” 이렇게 얘기하신 분이 아니라는 거를 잘 드러내니까, 눌러도 안 되네, 그거 한번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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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의 청정한 본성은 ‘참된 부처’이다.
사특한 견해의 3가지 독(탐진치貪瞋癡)이 ‘참된 마구니’이다.
사특한 견해의 사람은 마구니가 집에 있다.
바른 견해의 사람은 부처가 지나가리라.
자성 가운데 사특한 견해가 3가지 독을 낳으니 마왕이 집에 와서 머문다.
바른 견해가 스스로 3독심을 없애면
마구니가 변하여 부처를 이루니 참되어 거짓이 없다.
‘화신化身’과 ‘보신報身’과 ‘정신淨身’ 이 3가지 몸은 본래 하나의 몸이다.
(참나의 3가지 작용이다)
만약 몸속에서 ‘스스로 보는 자’(알아차리는 자, 자성)를 찾는다면
부처의 깨달음(보리)을 이루는 ‘씨앗’이다.
(천백억으로 변화하는 ‘화신’과 선법으로 원만해진 ‘보신’이 이루어질 때
청정한 ‘법신’도 온전해짐. 천백억화신 나투는 ‘성소작지成所作智’와
만법을 갖춘 청정한 ‘대원경지大圓鏡智’는 궁극의 부처의 경지.
이 경지가 부처의 깨달음 즉 ‘부처의 돈오’임.
1주~1지의 돈오는 이러한 돈오의 씨앗임. 3신의 핵심인 ‘자성’을 찾았기에)
본래의 ‘화신’(5온의 변화)을 따라
‘청정한 본성’(3신과 만법을 갖춘 과위果位의 법신)이 생겨나니,
‘청정한 본성’은 늘 ‘화신’ 가운데 있다.
(천백억으로 변화하는 화신은 의성신意成身의 나툼,
법신은 5온의 변화하는 몸인 의성신意成身을
온전히 갖출 때 온전해지니, 법신은 절대로 5온의 변화를 떠나지 않음
밀교적 내용으로 ‘금강신金剛身’을 온전히 갖출 때 ‘금강심金剛心’도 온전해짐)
‘자성’(법신)이 ‘화신’(5온의 변화)으로 하여금 올바른 길을 걷게 하니
마땅히 원만해져서 참으로 다함이 없다.
(온갖 선한 공덕이 갖추어져 원만한 보신이 이루어짐)
‘성욕’(쿤달리니, 원기元氣)의 본래 몸은 ‘청정한 몸의 씨앗’이 된다.
(‘성에너지’는 화신과 보신을 두루 갖춘 ‘과위果位의 법신’의 씨앗이 됨)
성욕(화신의 바탕)을 버리고는 ‘청정한 자성의 몸’(과위의 법신)도 없다.
자성 가운데 5가지 욕망을 떠나면 찰나에 자성을 보니 이것이 ‘참됨’이다.
금생에 ‘돈교문頓敎門’을 깨달으면 눈앞에 세존을 볼 것이나,
만약 수행을 하여 부처를 찾는다고 말하면
어느 곳에서 ‘참됨’을 구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부처는 본래 완벽)
만약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이 있다면
‘참됨’이 있음이 바로 부처를 이루는 ‘씨앗’이다.
스스로에게서 ‘참됨’을 구하지 않고 밖에서 ‘부처’를 찾으면
가서 찾는 이가 모두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다.
‘돈교법문頓敎法門’을 이제 남겼으니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고 마땅히 스스로를 닦아야 한다.
이제 세간의 도를 배우는 이들에게 알리노니
이것에 의지하지 않으면 크게 아득할 뿐이다.
眞如淨性是眞佛 邪見三毒是眞魔(摩) 邪見之人魔(摩)在舍
正見之(知)人佛則過 性中(衆)邪見三毒生 即是魔(摩)王來住舍
正見自除(忽則)三毒心(生) 魔(摩)變成佛眞無假 化身報身及淨身
三身元本是一身 若向身中覓自見 即是[成]佛菩提因
本從化(花)身生淨性 淨性常在化(花)中 性使化(花)行正道
當來圓(員)滿眞無窮 婬性本身清淨因 除即婬無淨性身
性中但自離五(吾)欲 見性剎那即是眞 今生若悟(吾)頓教門
悟即眼前見世(性)尊 若欲修行云覓佛 不知何處欲求眞
若能身中自有眞 有眞即是成佛因 自不求眞外覓佛
去覓總是大癡人 頓教法門今已留(者是西流) 救(求)度世人須自修
今報(保)世間學道者 不依(於)此是大悠悠.]
진여의 청정한 본성은 참된 부처니까 삼독, 탐진치는 마구니고 참나는 부처니까 삼독에 빠지면 탐진치에 빠지면 마구니가 집에 와 있는 거고, 탐진치만 벗으면 참나만 깨치면 부처가 지나가리라. 이게 부처가 들른다는 겁니다, 그 집에. 보십시오. 계정혜가요 참나의 계정혜는요, 자 보세요, 참나의 계정혜는 뭘 상대하는 걸까요? 계율은 탐욕을 상대한 거고, 선정은요 탐진(貪瞋) 성냄이죠. 지혜는요 치(痴) 어리석음을 상대한 겁니다. 탐진치를 잡는 건 계정혜예요. 그런데 참나를 깨쳐버리면 어리석지 않죠, 원래. 탐욕을 안 내죠. 성내질 않아요, 거기는. 참나 깨치면 탐진치가 그냥 날아간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해되시죠. 그런데 탐진치에 빠지면 마구니, 참나 깨치면 부처, 이렇게 지금 내 마음의 순식간에 왔다 갔다 한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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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치 돌아가는 구조 보세요. 치가 어리석음이거든요. 무지예요. 무지하니까요 남의 걸 탐욕을 내요. 탐욕을 내도 내 뜻대로 안 되니까 성이 나요. 그러면 더 무지해져요. 그럼 더 탐욕. 이게 악순환입니다. 무지, 아주 그냥 마구니로 가는 악순환이 일어나는데 선순환은요? 지혜로우니까 계율 잘 지키고, 선정 늘 고요하고. 이 세 개가요 탐진치를 다 잡아요. 선순환이 계속 일어나기만 하면 부처가 되기 때문에 선순환을 일으키라는 얘기만 하는 겁니다, 6조는. 그냥 참나 깨치면 그냥 삼독이 사라진다. 이 말을 또 듣고 “참나 깨치면 삼독이 사라지면 그냥 부처네. 12지네.” 이렇게 이해하지 마세요. 지금 마음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지금 모른다 하시면 삼독이 거기 없어요. 그런데 한 생각이 일어나면 다시 삼독이 일어나요. 마음에서 계속 천국과 지옥이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부처와 마구니가. 그래서 바른 견해가 삼독을 없애면요 마구니가 그대로 부처가 돼 버려요. 자 이제 마지막입니다. 아까 삼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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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셔야 됩니다. 화신(化身) 보신(報身) 정신(淨身) 청정한 법신, 이 세 가지 몸이 본래 하나다. 참나 작용이잖아요. 마지막 가실 때는 자기가 공부한 걸 좀 담으려고 했나 봐요. 말이 약간 어려워집니다. 근데 대개 알아야 돼요. 육조단경의 핵심이 어디 있는지를. 만약 몸속에 스스로 보는 자, 스스로 알아차리는 자를 스스로 보는 자라고 했어요. 이 표현도 재미있죠. 자견(自見), 스스로 보는 놈을 찾아내면 그놈이 부처의 깨달음을 이루는 씨앗이라고 했죠. 돈오점수(頓悟漸修) 사상입니다. 이해되세요. 부처라고 안 했어요. 참나를 찾으면 부처로의 깨달음을 이루는 씨앗이라고 했어요. 원인 인(因)자를 씁니다. 그러니까 자 이 말은요 부처가 되려면 이거예요. 아까 ①원만보신, 선, 육바라밀을 우주에서 제일 끝내주게 해야 되고요 ②천백억 군데 몸(화신)을 나퉈야 되고 ③이걸 지탱하는 그 뿌리로서의 법신이 갖춰져야 돼요. 이 세 개가 된 게 부처의 깨달음입니다. 저게 과위(果位)의 법신이에요. 이걸 다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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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신을 얻는 인(因)이, 씨앗이 된다는 얘기를 한 겁니다. 씨앗이다. 그렇죠. 그러니까 본래의 화신은. 그런데 이다음 얘기가 아주 이거는 대단한 얘기입니다. 이게 밀교 얘기예요, 사실은. 본래의 화신(化身)을 따라 청정한 본성이 생겨난. 이게 좀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참나가 화신 때문에 생겨난대요. 뭔 말일까요? 이겁니다. 인위(因位)의 법신은 원래 있는 거지만, 보십시오, 에너지, 마음과 에너지를 모아야 만들어지는 게 보신(報身), 화신(化身)이에요. 이것은 세상에 몸을 만들어 나툴 수도 있어야 되고, 천국 가서 사는 몸은 영계, 우리가 절의 부처님 황금색으로 만들어 놓은 게 보신(報身)이에요. 화신(化身)으로 만들면 인도분으로 만들어야죠. 그렇죠. 보신을 만드니까 원만한 덕을 상징하는 황금빛 불상을 만드는 거예요. 그 몸으로 우주 법계에 계시다는 거예요. 색구경천(色究竟天)에. 극락세계에. 그러니까 이거(보신)랑 이거(화신), 즉 보신은 나타나면 화신이고 사라지면 보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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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한 세트인데, 이 몸(보신)이 이 화신의 변화가 있어야만 법신이 생겨난다는 얘기예요. 이 법신은 과위(果位)의 법신입니다. 이걸 할 수 있는 법신. 이걸 못하는 법신과 하는 법신은 틀려요. 8지 이상은 지구에 더 이상 안 옵니다. 대승불교 이론이 그래요. 7지 8지 이상은 안 와요. 이걸 만들었기 때문에 지구에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어서 색구경천에 가서 거기 태어나서 거기서 부처로서 살면서 온 우주에 자기가 필요하면 가가지고 화신을 나퉈요. 슈퍼맨 같은 분이 되세요, 8지 이상은. 지구에 더 이상 안 옵니다. 그래서 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걸 할 수 있어야만 진짜 법신이다. 법신이 만들어진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원래 있다고 얘기하시던 분이 갑자기 화신을 따라 본성이, 청정한 본성이 생겨나니 청정한 본성은 늘 화신 가운데 있다. 절대 오온을 떠나는 법이 없다. “현상계를 떠나는 법이 없기 때문에 현상계에서 끝내주는 몸을 만들어야만 진정한 부처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요거 이상한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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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육조단경을 지금 이렇게 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이해하기가 어려운 얘기입니다. 이 부분이 어려워요. 그다음에 그러면 사실 보세요. 이 보신과 화신을 만들려면요 에너지 몸을 만들어야 돼요. 그래서 티벳 밀교에서는 이걸 만들려고 호흡법을 합니다. 뜸모수행이라고 배꼽불 수행을 해요. 그래서 무지개몸이라고 그래요, 저걸. 무지개몸을 만들어야 된다고 달라이 라마나 린포체들 강의 들으면 무조건 저 얘기가 나와요. 삼신(三身)을 다 갖춰야 부처고 그걸 갖추려면 뜸모수행, 티벳 밀교수행을 해야 된다.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바로 이 얘기가 나오죠. 마땅히 원만해져서 참으로 다함이 없다. 즉 원만보신이 만들어져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진짜 법신이다. 지금 자기가, 자기가 했던 얘기를 다시 뒤집는 얘기예요. 내가 예전에는 계속 그것만 하라고 했는데, 결과를 가시기 전에는요 “이걸 만들어야 한다.” 이 얘기를 하고 가는 겁니다. 그 하는 법까지 가르쳐줘요. 성욕의 본래 몸은 청정한 몸의 씨앗이 된다. 이거 이상한 얘기죠. 성욕이요, 성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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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법신의 씨앗이다. 밀교 수행을 배꼽에다 불 일으켜서 시작하거든요. 왜 여기다 불을 일으킬까요? 여기가 성욕의 쿤달리니 에너지가 있는 곳이에요. 여기에다가 불을 일으키면서 티벳 밀교수행이 다 일어나요. 그 얘기를 합니다. 자, 보십시오. 의수단전(意守丹田) 하라는 거예요. 정신, 부처가, 단전은 성(性)에너지인데 부처가 성에너지를 만나야만 보신과 화신이 갖춰져요. 그걸 잘한 양반만이 지구를 벗어나서 색구경천에 갈 수 있습니다. 제 기존 강의들도 참고해 보시면 될 거예요. 지금 설명 자세히는 못 드리고. 그다음 또 얘기가 나와요. 성욕을 버리고는 청정한 자성의 몸도 없다. 황당하죠. 갑자기 가시기 전에 이 양반이 좀 너무 솔로 생활을 오래 하셔서 좀 마음이 흔들리셨나? 오해할 수도 있는 이상한 얘기를 하시죠. 이거 유명한 얘기입니다, 이 얘기가. 성에너지에 강조를 하고 가신 거예요. 자성 가운데 다섯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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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만 떠난다면 찰나의 자성을 보니 이것이 ‘참됨’이다. 다시 돈오 얘기를 하십니다. 금생에 돈교(頓敎)를 깨치면 눈앞에 세존을 바로 볼 거다. 여러분 지금 바로 보실 수 있어요. 알아차림이 부처예요. 만약 수행을 해서 부처를 찾는다고 하면. 그러니까 이분은 계속 지금 다시 강조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에너지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에너지 수행을 하는 이유도 결국은, 성에너지도요 참나를 더 돋보이게 하는 존재지 참나가 핵심이라는 얘기를 다시 하시는 겁니다. 수행해서 뭐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 마라. 참나를 드러낼 뿐이다. 우리가 에너지가 많으면 참나가 성에너지를 갖다가 잘 정화시키면 참나가 더 드러날 뿐이에요. 참나가 강해지는 게 아니에요. 나한테 있어서 참나가 강해지는 거지. 이해되시나요? 에고한테 참나가 더 강해지는 거예요. 참나는 원래 절대계 차원이기 때문에 강해지고 약해지고 말할 수가 없어요. 불생불멸(不生不滅) 생멸도 없고. 하지만 나한테 느껴지는 참나는 강해질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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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의 작용이 예전에는 보신과 화신을 못 나퉜는데 어느 날 천백억 화신을 나툴 수 있게 되고, 선업을 꽉 차게, 선업이 내 안에서 터져 나오게 만들 수 있어요. 이건 에고는 거들 뿐이지 사실은 참나가 하는 겁니다. 이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수행을 해서 얻는다고 생각하지 마라. 수행해서 네가 만드는 게, 에고가 만드는 게 아니다. 원래 갖고 있는 잠재성을 드러내는 것뿐입니다. 에고는 길을 치워드려서 참나가 더 쉽게 나오게 한 것뿐입니다. 어느 곳에서 참됨을 구해야 할지 모르는 거다, 그런 말 하는 사람은. 만약에 몸 가운데 참됨이 있다면, 만약에 몸 가운데 알아차리는 자, 지금 1급이나 1단의 실력이죠. 참나가 형형(炯炯)하게 드러났다면 그 자리가 바로 부처를 이루는 씨앗이다. 원인이라는 얘기를 합니다, 결과가 아니라. 결과물은 아까 방금 얘기했죠. 이런 결과물을 얻어야 된다, 너희가. 스스로 참됨을 안 찾고 밖에서 부처를 찾으면 그건 어리석은 사람이다. 내가 돈교법(頓敎法) 단박에 참나 찾는 법을 가르쳐 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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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고 마땅히 스스로를 닦아야 된다. 자리이타(自利利他)를 하라는 겁니다. 홍익인간도 하고 너도 닦고. 이제 세간의 도를 배우는 이들에게 알리노니 이것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아득해서 길을 못 찾을 거다. 자, 마지막에 제가 해놓은 선문답이 밀교선문답입니다. 같은 얘기예요. 자, 보십시오. 여기 우리, 부처는 우리 머리에 있다면 우리 단전은 성에너지죠. 성에너지가 있어요. 성에너지를 찾아야 이 부처도 진짜 온전해진다, 법신도. 이게 기발한 발상입니다. 이게 티벳 밀교에서 하는 모든 것도 이거예요. 티벳 밀교에서는요 여기서 불이 타올라야 되고 위에서 버터가 떨어져야 돼요. 요 두 개가 만나면서 불사의 몸, 제가 아까 말한, 티벳에서는 환신(幻身)이라고 그래요. 보신(報身), 보신과 저 화신(化身)을 합쳐 환신(幻身)이라고 합니다, 합쳐서. 무지개몸, 참나로 인해 존재하는 환상의 몸이 만들어져요. 이 몸을 만든 사람만이 지구를 떠나요. 다시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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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온다는 말 하고 가신 분들은 이걸 만들어서 극락세계 태어나신 분들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7지 8지는 돼야 돼요. 그래서 실제 아미타불 세계에 진짜로 실력으로 가실 수 있는 분은요 사실은 7지나 8지예요. 그렇게 아시면 돼요. 어떤 경전에 따라서 빠르면 5지부터도 가능합니다. 능가경 같은 데 보면 5지부터도 가능한데 거기서도 8지가 돼야 온전해진다 그래요, 그 환신이. 그런데 이 만드는 법을 이렇게 하시면, 보십시오. 위에서는 액체가 녹아내리기 위해서는 여기서 불이 타올라야 되는데, 불이 타야 액체가 녹거든요. 그러니까 처음에 이 성에너지를 불을 태워야 돼요. 여기에는 한의학에서도 여기는 신간동기(腎間動氣)라고 약동하는 기운이 신장 사이에 있어요. 그래서 이게 지금 태극이죠, 크게는. 즉 여기는 불의 세계고 여기는 물의 세계인데, 신장(腎臟), 물을 맡은 신장이 불로 타오르기 시작하면요 이게 기화돼가지고 구름이 돼서 올라갔다가 비가 돼서 내려옵니다, 액체가. 이렇게 해서 돌고 돌면서 우리 몸 안에서 계속 에너지가 강해지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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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구경천에 갈 의성신(意成身)이 만들어집니다. 초기부터 이거는 불교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의성신, 생각으로 만든 몸이라는 걸, 그걸 환신(幻身)이라고 하는데 요놈이 만들어져요. 이게 보신(報身)이고 요놈이 천백억 화신, 나투면 화신(化身)이 됩니다. 저게 화신이죠. 생각으로 만드는 몸이에요. 그러니까 6조는 생각으로 우리가 몸만 만드는 게 아니라 지금 내 육신도 변화를 시키고 있잖아요. 이미 화신이 있다, 우리한테는. 그걸 끝내주게 하면 이렇게 돼요. 자 이 원리를 지금 6조는요 성욕이 없으면 부처도 못 만들어진다라고 나오고요. 어떤 화두에서는 이 얘기를 합니다. 이거 아는 분들이 남긴 선문답은 이래요. “북극성을 보려면 남극성을 바라보라”고 그래요. 같은 얘기입니다. 진짜 법신을 찾으려면 남극성을 바라봐라. 북극성을 보려고 남극을 바라본다. 이런 선문답도 있어요. 그리고 방금 운문 스님이 운문 스님이 이걸 하셨나 봐요. 밀교적인 화두가 많아요, 이분은. 그 중 대표적인 겁니다.
[* 벽암록碧巖錄
운문雲門스님께서 설법하셨다.
“‘옛 부처’가 ‘돌기둥’과 더불어 사귀었다. 이것은 어떠한 경지인가?”
대중이 말이 없자, 스스로 대신하여 말하였다.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
擧 雲門垂語云 古佛與露柱相交 是第機機 衆無語 自代云 南山雲北山下雨.]
옛 부처가, 고불(古佛)이. 우리 참나는요 예전부터 부처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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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이예요. 여러분이 모르셔도 고불이예요. 돌기둥, 대웅전 법당 앞에는요, 법당이 이렇게 있으면 법당 앞에는 이슬 받는 기둥이라고 노주(露柱)라고 있어요. 요놈이 남자의 성기를 상징합니다, 성에너지를. “부처랑 노주, 돌기둥이 서로 사귀면 어떤 경지지?” 그걸 누가 답하겠어요? 부처가 노주랑 사귀면, 정신을 단전에다가 모아서 ,우리 몸 안에 있는 신장(腎臟) 에너지를 자극시켜서 불을 일으키면 어떻게 되지? 아무도 답을 못 하죠. 그러니까 “남산에서 구름이 이니 북산에서 비가 온다” 이 말을 한 겁니다. 이해되세요. 저게 티벳 밀교가 하는 비법입니다. 불을, 뜸모수행이라는 게 배꼽에서 불을 일으켜서 정수리에서 버터가 녹아내리게 만드는 비법이에요. 이걸 자꾸 하시면, 이건 밀교예요, 법륜을 굴린다 그래요. 내 몸 안에서 진리의 수레바퀴가 돌면서 보신과 화신이 만들어집니다. 즉 6조 스님은요, 삼신이 있다고 쳐도, 지금 결론을 내릴게요. 삼신(三身)이 있다고 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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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은 사실은 참나의 힘으로 일어나니까 인위(因位)의 법신, 무조건 당신들 안에 있는 씨앗의 참나를 무조건 시간도 안 걸린다. 단박에 찾아라. 좀 걸리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에 파고 들어가면 무조건 만나게 돼 있다. 찾아낼 수 있다. 거기까지 가르치시다가 가시기 전에는, 그 뒤에 “무한향상하라” 할 때 “뭘 할까요?”를 가르쳐주고 간 겁니다. 그 뒤에 돈오하신 분들이 이제 제자들 중에 돈오자들이 많잖아요. 뭘 닦아라까지 얘기를 해주고 가십니다. 어떻게 할 거냐? 보신을 원만하게 만들고, 화신을 천백억 군데 나툴 수 있게 만들어야죠. 그래야 법신도 진짜 법신이 돼요. 그러니까 성욕에 답이 있다. 성에너지, 한의학에서는 당연히 단전이죠, 성욕이라고 하면. 신장(腎臟)에 답이 있다, 신장 기운에. 그것을 찾아내면 이거 다 만들 수 있다. 그때 진짜 법신이 탄생한다. 이거는 센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법신이 탄생한다는 생(生)자를 붙여 썼어요. 그거 원문 보시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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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 뭐죠, 본종화신, 위에서 5번째 원문, 한문 중에 5번째요. 본종화신(本從化身) 본래 화신을 따라서, 뭐죠, 생정성(生淨性) 청정한 본성이 생겨난다고까지 얘기했어요. 이거는 다른 얘기를 하는 겁니다, 지금. 본인이 항상 얘기하던 법신이 아니에요. 과위(果位)의 법신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때 진짜 법신이 탄생한다. 그러니까 어디를 향해 가라까지 얘기해 주고 가신 겁니다. 그러니까 6조 대사는 단박 깨치는 가르침만 얘기한 게 아니라 점수법도 친절하게 다 해 놨어요. 포인트를 돈오에 뒀을 뿐이지. 보조 스님은 여기서 이 핵심을 취한 다음에 화엄경에 있는, 이 화엄경에서 이걸 닦아가는 과정과 합쳐가지고 더 회통불교(會通佛敎)를 만든 겁니다. 우리나라 성격이요 되게 원만하지 않으면 싫어해요. 회통불교를 만든 겁니다, 한국불교는. 그런데 지금 와가지고 갑자기 간화선 제일주의가 되고, 간화선 누구한테, 미국 일본에서 요즘 같으면, 뭐죠, 예전 같으면 일본 미국 이렇게 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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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산다고 생각했던 나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이걸 배워왔다는 겁니다. 거기에 되게 그걸 강조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애초에 없다는 겁니다. 6조 이상의 스님이 우리나라에도 이미 다 계셨기 때문에. 원효도 8지보살 소리 듣는 분이면 원효는 진짜 이거 하던 분이에요. 그런 분들이 남긴 가르침도 같이 봐야만 됩니다. 그래서 보조 스님은 그걸 다 같이 본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불교에 그 성격은 회통불교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쪽으로 더 밝히시면 좋을 것 같고, 거기에 육조단경에 대한 오해도 말끔히 씻으시고 간화선, 화두를 해야지 뭘 해야지 하지 마시고 그냥 단박에 깨치세요, 참나를. 모른다 하면 그냥 참나입니다. 그다음은요? 참나로 사세요. 부처처럼 사시면서 예 이걸 다 갖추시면 금강승(金剛乘)까지도 포괄합니다. 소승 대승 금강승. 지구상에 존재하는 불교의 모든 걸 다 포괄하는 회통불교가 나옵니다. 육조단경이 인제 그런 데 도움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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