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저에게 건강을 허락하여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이 각오를 하여 봅니다.
될수 있는지 저도 의심 스럽지만
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백두대간을 머리에 새겨왔고
이제 그 장도에 오를까 합니다.
백두대간 종주리본은
"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 " 로 정하고자 하면서
D-dey는
" 2004.6.19. " 입니다.
저를 사랑하여 주시는 회원님들께 격려 부탁드리고 많은 조언주시었으면 합니다.
1. 첫날
2004.6.18.20:00경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계곡 매표소 앞에 도착하였다.
내일(6.19.) 지리산 일일종주를 위하여 미리 도착하여 쉬고 일찍 일어나 출발하려는 계획!
그러나 도착과 동시에 장대같은 비가 그치지 않고 쏟아져 마음이 착잡하다. 매표소앞 식당에서 산채정식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인근 민박을 정하였다. 비는 그칠 것으로 생각하고 배낭을 다시 점검하고 잠자리를 청하였으나 비소리는 더욱 거세진다. 답답하여 겨우잡히는 T.V채널이 태풍의 북상이다. 디엔무태풍!
알람에 마추어 03:30 기상하였으나 비는 나를 외면하고 쏟아져 이미 마음으로는 산행포기다. 다시 누워 날새기를 기다렸다. 아침은 산행준비로 마련한 빵으로 때우고 비속으로 차를 몰았다.
지리산관광순환도로로 삼신봉터널을 지나 청학동을 둘러보고 삼성단을 구경하고 태풍이 지나가고 비가 그칠까하는 생각에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다가 하동-화계장터-구례-성삼재-정치령-운봉-지리산 I.C로하여 청주로 왔다.
지리산 1일종주 성공을 기원하며 백두대간 첫구간을 시작하였다
전날인 6.25.20시경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매표소 앞에 도착하여 용궁산장에 숙소를 마련하고 1박을 청하였다. 장마가 시작되었고 일기예보는 청주에서 출발하여 올 때부터 조심이었다. 이곳에 도착하면서 빗방울은 오락가락하였고, 우중 산행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일정을 늦출 수는 없어 부랴부랴 이곳에 왔다. 모든 것은 나의 하느님께 맡기기로 하였다.
뜻밖의 희소식 !
장마전선이 북상을 멈추고 남하하고 있다. 가슴이 뛰었다
일찍 잠을 청하고자 누웠으나 설레임에 잠이 오지를 않았다. 산장 밖에 비뿌림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밤 3시가 다되어 잠자리에서 일어나 오지 않는 잠 청하느니 산행을 하기로 하고, 짐을 대충 정리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끊으며 시간을 보니 3시 45분이다.
손을 흔들어 주는 아내의 격려을 받으며 "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는 매표소를 떠나 백두대간의 첫 발을 디뎠다. 그런데 잠을 설친 탓인지 생가보다 발걸음이 무거웠고 배낭짐도 힘겨웠으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아! 1일종주를 목표로 하는데...
04:14. 칼바위! 30여분 걸렸다.
조금더 걸으니 날은 밝지도 않았는데 이곳의 새는 벌써 잠에서 깨었는가 보다. 청주의 백화산, 상당산성의 새는 4시 반이 넘어야 노래를 하는데......
조금을 더 올라가니 앞서 출발한 산객(매표소 출발시각 3시기재) 5명을 따라 잡았고, 조금더 가서 마저 5명도 따라 잡았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솟았고 새소리는 더욱 현란하여 졌다. 장마끝에 새벽을 찬미하는 소리인가!
05:12 천왕봉 중턱의 법계사가 눈앞에 와 다았다. 발아래 구름이 잠자고 있고 그 위로 동쪽멀리 태양이 솟는다. 쾌청! 쾌청! 장관! 장관이다.
공기는 맑아 시야는 멀리까지 보이고, 목욕을 하고 또하고 비누로 닦고 또 닦았으면 산이 이렇게 깨끗하랴 (장마끝이라서) 법계사 앞 생수로 수통을 채우고 천왕봉을 향하여 올려뛰었다. 가끔 뒤돌아보니 하늘은 맑고, 산아래는 양털같은 구름으로 잠을 재우고, 여기저기 산봉우리만 보이는 그 위에 태양은 높이 솟아 아~ !
천왕봉을 오르면 내가 태어나 제일 좋은 것을 구경하랴, 발걸음은 더욱 빨리 위로 치달았다
06:50 해발 1,915 미터! 천왕봉! "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 ! "
잠잠이 사방으로 흰구름이 산아래 가득한데
그 위로 점점이 솟은 것이 누구의 봉우리 이련가 !
뚜렷한 봉우리는 반야봉이요
저멀리 가름가름 내가 가야할 노고단이다
가까이 연하봉, 춧대봉도 뚜렸하다
두어라 내 오늘 너희들을 다아 밟아주마 !
내 기필코 백두산까지 가리다 !
제석봉을 뒤로하고 장터목산장에 이르러 걸음을 재촉하니, 내 자신이 너무 서둘렀나 ? 자만에 빠졌던가 ?
천왕봉 위에서 바라보이던 그 장관은 없어지고 산아래 잠자던 구름이 모두가 일시에 일어나 이산 저산 모든 산을 덮어 나간다.
아~ ! 아깝다 !
연하봉에 이르러, 촛대봉에 이르러 숨을 돌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성삼재를 물어 1일종주 산행을 한다하니 모두가 하나같이 벽소령대피소 쯤에서 1박을 하고 가란다. 어려울까 쉬울까 자신이 서지를 않는다 몇년전 노고단에서 중산리까지 1박 2일 종주시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하였고 여기저기 지리산 곳곳에 땅을 얼마나 샀던가 !
영신봉 ! 해발 1,652 미터
천왕봉에서 이곳까지는 떨어지는 빗물 모두가 앞뒤좌우로 흘러서 낙동강으로 간다, 그러나 이곳 영신봉을 지나면서 대간능선 우측은 낙동강수요, 대간능선 좌축으로는 섬진강수이다. 즉, 이곳 영신봉이 섬진강과 낙동강을 가르는 낙남정맥의 시발점이다
(이 중요한 대목에 팔공산에서의 지난 대통령기 대회때 시험문제가 나왔고 우리팀 이관구사령관이 잘 맞추어 준 일이 생각났다)
일산에서 왔다는 이내학씨를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청주가 고향인 그는 공무원인 부모를 떠나 지금의 일산에서 살고 있고, 장마소식으로 친구들과 지리산동행이 깨지고, 혼자서 와 산행중이었다. 함께 이야기 장단을 마추어 가며 칠선봉을 지나 한참을 가다 쉬니, 마주 교행하던 학생들이 조금 앞에 우물이 있슴을 알려주며 격려하여 주었다. 덕평봉 아래 선비샘이다 . 더운 몸을 식히며 세수도 하고, 수통에 물도 채우고 쉬노라니 60 이 되었다는 사람이 지리산 종주를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하고 있었다. 성삼재에서 와 천왕봉까지 갔다가 백무동으로 하산한단다. 나도 지리산 1일 종주를 하고 있다고 하니 벽소령대피소가 중간지점이고 가능하다며 격려를 하여 주었다. 그는 종종 지리산 1일종주를 한다고 한다, 물한병을 들고 점심은 대피소에서 해결하며 종주시간은 12시간 내지 13시간이란다. 부러웠다.
12:20경 벽소령에 도착하여 준비한 빵등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걸음을 재촉하엿다. 형제봉을 지나 뒤돌아보니 지나온 능선길에 잠깐 구름이 비껴가고 있어 얼른 사진 한 장 찰칵 !
동행하던 이내학씨가 발에 쥐가 나고 통증이 있어 힘들어 했다. 도울 능력도 안되고, 도울수도 없으려니와 좀 쉬었다가 올 것을 권하고 끝까지 오면 성삼재에서 기다리기로하고 나먼저 빨리 걸음을 옮겼다
연하천산장을 지나면서 나도 발이 아프고 무거운 배낭짐에 가슴이 눌려옴을 느꼈다.
말이 지리산 1일종주이지 사실은 100 % 자신하지는 못하여 만약을 대비하여 침낭이며 잠잘 것과 비상식량, 장마비에 대비하여 우모복까지 단단히 준비한 터라 배낭이 족히 15키로는 되었다. 더구나 지리산 길은 돌이 많아 발바닥과 발고락, 특히 발톱에 피로와 통증이 심하게 오기 쉽다, 명선봉을 지나가며 토끼봉을 지나며 속도는 점점느리고 몸은 지쳐만 갔다. 화개재에서도 쉬고, 삼도봉에 이르러 몸을 팽개치고 쉬었다.
삼도봉 !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동구조물로 삼도경계표시를 하여 놓았다. 쉬노라니 홀가분이 따라온 사람이 있어 이내학씨에 대하여 물어보니 뱀사골산장에서 쉬도록 안내를 하여 주었고, 그도 뱀사골산장에서 일박하기로 하였다 한다. 나의 안부를 전하여 줄 것을 부탁하고 산행을 계속하였다
반야봉을 들릴까하니 시간이 오후 5시라서 남은 3시간 가지고는 어려웠다, 또한 구름이 모든 산을 가리고 있어 반야봉 그 자체도 볼수 없을 것이고 미련은 있지만 그냥 스쳐가기로 하였다. 전에 종주할때 가보았고, 실은 구름에 가려 천왕봉도 내가 지난온 이후 한번도 구름밖을 나오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임걸령, 돼지령을 어떻게 지났는지..... 쉬고 또 쉬고 ..... 노고단에 이르니 시간은 오후 7시가 지나고 있었다. 해는 서산에 많이 남아 있겠지마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날은 이미 어둠이 찾아들고 있다. 노고단에서 능선은 서쪽으로하여 북으로 휘어져 나가고 있는데 높은 곳이 종석대려니 하고 걸음을 빨리하였다,
아뿔사 !
백두대간 길에 안내리본이 없고 출입할 만한 장소는 모두가 출입금지표시다. 이 능선이려니 하는 통밥으로 그냥 접어들어 숲을 한참가니 몇개의 리본이 눈에 뛴다. 맞긴 맞는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쉬자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길이 없다, 이쪽옆으로 저쪽옆으로 살펴보아도 길이 뚝 끊어졌다. 뒤 돌아 나와도 다른 길은 없는데....
어둠은 짙는데 여기서 마칠까하다가 다시 바위 앞에 이르러 위험을 무릎쓰고 바위를 타고 오르니 그곳에 길이 있다, 길은 길이되 대간종주길 치고는 너무나 협소하여 눈으로는 식별이 안되고 발로 휘져서 나가야만 했다.
법계사 입구에서 갈아입은 반바지는 여기서 아랫도리를 모두 훌치게 하였고 비에 마르지 않은 숲은 바지마저 적셨다, 전조등 불빛에 길안내를 받아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는 지쳐만 갔다. 힘겹게 하산을 하는데 갑자기 커다란 건물이 앞에 선다.
짜아잔 ! 성삼재휴게소 !
지리산 1일종주 성공 !
시간은 오후 8시 40분, 총 산행시간 17시간(정확히는 16시간 55분)에 걸쳐 완주에 성공하였다.
생후 52년 3개월만이다. (음력 1952.3.1.생 양력 1952.3.26.생)
결코 내 나이 적은 나이는 아니다.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
축하한다 !
자축하며 즐거움을 흠뻑 맛보았다.
이래서 나는 산에 간다.
6.26.07:21. 정 원
축하드립니다.
안전산행하시고요
건강유의하시고요
부럽습니다 와~~~~우
6.26.09:05 유병천
회장님 화이팅!!!
도명산에서 유병천
6.26.10:17. 김학영
잠시 쉬어가세요
오늘 못가면 낼가고
청산에 홀로가는 이가 뭐가 급하리오
두고두고 가면 될 걸.....
6.26.16:34. 정 원
계획대로 잘 가는 거지유
지리산 일일종주 성공하세요
즐거운 산행하시구요
6.26.20:52. 유병천
청주는 한줄기 소나기가 오네요
오늘 수고하셨네요
편히 쉬세요
3. 백두대간 제 2 구간 ( 성삼재 ~ 만복대 ~ 여원재 )
2004.6.27.06:50 ~ 16:20 ( 9시간 30분 ) 산행거리 21.6 Km
오늘은 날씨가 좋으려니 하고 성삼재에 도착하니 어제와 날씨는 변함이 없이 같고 산은 구름에 가려 제모습이 없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아 연속산행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고맙고 고마웠다.
등산화를 조여매고 출발하려니 젊은 사람이 출발하고 있어 동행합시다 하고 함께 출발 ! 혹 백두대간 종주산행 아닌가 싶어 물었더니 지리산 서부능선을 산행코자한단다. 지리산 서부능선에 대하여 물으니 성삼재 ~ 만복대 ~ 정령치 ~ 고리봉 ~ 세걸산 ~ 바래봉 ~ 인월리 코스로 백두대간과 같지가 않았다. 나와는 고리봉까지만 같은 코스였다. 산행시간은 모두 10시간 정도인데 그 젊은이는 걸음이 상당히 빨랐다. 작은고리봉 못미쳐 먼저 보내고 내 발걸음에 마추어 뒤로 쳐져갔다. 산행은 자기의 호흡법과 자기의 걸음걸이 대로 가는 것이 기초다.
작은고리봉에 이르러 뒤를 보니 노고단, 종석대, 성삼재, 시암재가 구름에 벗겨지는 듯 장관스럽게 눈을 뜨게한다. 카메라에 몇방 잡으려고 실강이를 하다가 장난구름으로 인하여 포기하고 갈길이나 간다. 아뿔사 ! 분명한 곳에서 방심하다가 길을 잘못들었다. 발밑까지 구름에 가려 이길 이려니 하고 가다가 보니, 구름의 농락에 빠진 것을 늦게 알고 작은 고리봉으로 원위치 한 것이 40 여분 넘짓 시간을 낭비하고 묘봉치를 지나 만복대로 향하다
이제는 구름이 걷히는 듯 싶게 저 멀리 만복대가 보이고 그리로 난 능선이 내마음을 충분히 흥분시키리만큼 길 그려놓은 그림이다. 걸음도 가볍게 상쾌한 기분으로 단숨에 내달아 만복대에 이르니 5~6명의 등산객이 비박을 하고 일어나 산행을 준비하고 있고 뒤돌아보니 빗겨가는 구름사이로 달려온 길이 능선으로 이어져 너무나 보기 좋았다. 일기 좋은 날은 어제 산행한 지리산 능선길이 한눈에 들어와 이곳에서의 경치가 선경을 이룬다 하는데 들려오는 이야기려니 하고 갈길을 간다
만복대를 뒤로하고 1시간 못미쳐 가다가 보니 정령치가 나오가 그곳 휴게소에서 시원한 깐포도를 하나 사먹으니 고맙기 그지없는 것이 갈증을 피하는 내 목이다
정령치는 삼한시절 마한의 정장군이 진한, 변한의 침략을 방어한데서 그 지명이 유래한다고 쓰여 있지만, 무심하게 조금을 더 걸으니 고리봉에 이르렀다. 이곳 고리봉에서 세걸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백두대간 길은 아니나 지리산 서부능선으로 인월리까지 이어지느데 지리산의 북면과 능선이 뚜렷이 보이고 산객은 신선이 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는데 앞에 말한 바와 같이 구름이 이리날고 저리뛰는 바람에 그렇겠지하고 고기리방향 백두대간길을 재촉하였다.
고기리까지는 내리막길로만 이어지는데 어제의 장시간 산행으로 발의 피로가 덜풀렸는지 내리딛기가 발가락이 아픈게 어려웠다. 1시간여를 어렵게 내려오니 고기삼거리로 포장도로가 나타나며 식당이 안내를 한다 시간 12:30경 식당에 들려 공기밥 2개에 비빔밥을 시켜 허기를 잔뜩채우니 그래도 배부른 놈이 좋다 ! 도로를따라 논밭사이로 가재마을로 접어드는데 농부가 가는지 건달이 가는지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의 길은 아닌듯 싶게 마을 속으로 들어간다. 모르겠다 싶게 마을 구판장이 보이기에 들어가 아이스크림 하나 집어들고, 수통에 물을 채우고 나오는데 우물치고는 상당히 큰 샘이 치장되어 있는데 "노치샘"이라고 씌어있고 이정표까지 세워져있다 여원재가 6.6 Km요 정령치까지가 6 Km다. 이곳마을의 해발높이는 550 m. 채웠던 수통을 다시 비우고 노치샘 물로 갈아채우고 물맛을 보니 오래살기에 참좋았다.
오늘 갈길이 아직도 6.6 Km나 남았는데 3시간이 넘을 듯 다시금 오르막길이 계속이어지고 내리막길보다는 발딛기가 편하다. 10여명의 학생들과 마주쳐 지나가고 좋은 쉼터에 이르러 진안에 산다는 젊은이를 만나 인사를 나누니 29살의 이재관이라고 하는데 대한산악연맹 등산학교 59기로 혼자서 숙식을 하여가며 대간길을 자세히 메모하고 간단다. 매일 산행을 하며 가다쉬고, 가다자고..... 젊은 그대 ! 잠깨워 오라 ! 부럽다 ! 부러워 ! 52년을 넘게 살어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여 그냥 갈길이나 가그라.........
오르면 내릴 것이요 내리면 오를 것이 대간가는 길인데 오른다고 힘들어하지 말고 내려간다고 쉬워하지 말자 ! 가고 또 가면 그 길이 나올 것이니... 그러나 힘에지쳐 가는 나그네 분명히 이산을 넘어지나면 여원재이려니 하는 통밥이 3번이나 얼그러져서야 오후 4 시 20분경 여원재에 이르렀다. 오늘 산행시간 9시간 30분. 제2구간도 예정대로 무사히 마쳤다.
7.3. 여원재에 도착한 것이 .6:30 경이었다. 어제가 어머님 기일이라서 제사후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고 알람에 마추어 03:00 경에 눈을 떳으나 45분을 더 누워 있다가 일어나 청주의 집에서 출발한 것이 정확히 04:00. 이곳 산행에 앞서 출발지에 리본을 달고, 기원하기를 장마비야 물럿거라 !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야 무사하거라 !
그러나 출발초부터 풀잎과 나무숲에 맺힌 빗물이 바지에 스쳐 흠뻑젖고 적당한 묘지의 공터가 나와 그곳에서 우비복으로 갈아 입었다 이곳의 지형은 해발 480 m 에서 시작하여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있고 저지대이며 가까운 고향의 뒷동산 같아 정겹기는 하였지만 이름도 거창한 백두대간종주를 목표로하는 그런 능선길은 아니었다.
09:00 경 두시간 넘짓 걸어 해발 847 m의 고남산에 이르러 아침식사를 하고 있자니 장마구름이 걷히는 듯 싶어 사방이 깨끗하고 정겨움이 찾아왔으며 이곳 정상 아래에는 통신시설이 크게 들어서 있고, 대략의 지형지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도 잠시뿐 태풍 민들래와 장마의 영향은 산행을 걱정스럽게 하였다.
산행을 재촉하기로 하고 통신소를 걸어 내려가니 리본이 여기저기 많이 달려 있으나 길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통안재, 유치재를 거쳐 매요마을 한복판을 거쳐 유치재에 도착하니 지루함이 앞섰다. 앞서 언급함과 같이 기대에 찬 백두대간 산행을 실감하지 못하였고 , 마주친 동네아주머니가 일터에서 나온듯 한 차림으로 혼자 가느냐 날씨가 선선하여 산행하기가 좋겠다 고 격려하여 주어 좀은 창피하고(나도 농사짓던 경험이 있어 나와 같은 차림의 사람은 농부에게는 좀 그랬다) 한편으로는 아주머니에게 감사하였다.
12:00경 88고속도로와 마주쳤다 . 사치재다 , 출발한 여원재까지가 10.4 Km요, 복성이재까지가 9.6 Km다. 돌아가는 길이 0.1 Km의 이정표를 따라 고속도로 우측으로 조금 발을 옮기니 지하통로가 있고, 고속도로를 무사히 통과하여 갈 수가 있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88고속도로 통과 방법이 잘 안내되어 있지 않아 혼선을 빗고 있다.
1) 유치재에서 사치마을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로 우회하는 방법이 일반적으로 안내되어 있고
2) 그외는 위험하지만 고속도로 위로 그냥 넘어가는 방법이다 (사고시 누구의 책임 ? )
그러나 사치재에 이르러 위 이정표를 자세히 보면 " 돌아가는 길 0.1 Km " 를 잘 살펴 진행하면 되는데 지시방향 우측으로 잘 살펴보면 길은 있으나 많이 지나간 흔적이 아니고 리본도 없어 판단하기가 나쁘다. 지하통로 입구쪽에 리본을 5개정도 붙여 놓고 산행을 계속하였다. 고속도로를 뒤로하고(자세히는 밑으로 하고) 숲풀 뻑뻑한 오르막길을 숨가쁘게 오르는데 한줄기 비가 뿌리고 지나가서 안내책자에 표시된 공터에 이르러 1시간전 갈아 입었던 평복을 다시 우비복으로 갈아 입었다. 공터로 표시된 지점이지만 헬기장이었고 이곳에서는 지리산 휴게소가 눈에 띄었고 저멀리 고남산이 보였다. 첫구간인 지리산능선은 구름에 가려 하루종일 보이지를 않는다
식수가 모자라는 듯 하였는데 새막이재에 이르러 길이 아닌 곳에 리본이 붙어 있어 살펴보니 맑은 샘물이 있어 수통에 채우고 계속 걸었다. 전날 어머님 기일이라서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였더니 다리에 힘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아막성터를 지나 어럽게 복성이재에 도착하니 오후 3시 15분, 이곳은 포장된 2차선 도로로 많은 차량이 이곳을 오고가고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중재로 향하는데 이정표가 12.1Km를 가리킨다. 멀리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쏟아진다. 판초우의를 꺼내 입고 앞을 가릴수 없는 숲, 억새풀, 싸리나무, 철쭉이 키높이로 뻑뻑이 들어서 있는 데다가 비에 젖고 구름에 가려 어둡고 전진이 어렵다. 오늘 구간 처음부터 이런 힘겨운 코스였으나 갈수록 더 심하였다.
철쭉으로 유명한 해발 919.8 m의 봉화산에 이르니 비가 그치고 지나온 능선길 멀리 흰 구름이 맴돌고 있는 고남산이 보인다. 흐뭇하다. 이도 잠시 멀리에 먹구름이 감돌고 천둥번개가 친다.
조금을 내려와 임도를 지나고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비구름은 내가 걷는 능선길 앞뒤로 나를 희롱한다. 능선길은 바위능선이 이어지는데 번개빛에 좌우를 살펴보니 깊이가 보이지 않는 구렁속 위에 내가 있는 것이다. 무서움을 덜랴 나도 천둥번개와 같이 소리쳐 내달은들 오는 두려움에 소름이 끼친다. 얼마를 달리고 얼마를 달렸는지 재가 하나 나오는데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종주길 못지 않게 나있다. 몇발짝을 더 진행하여 가다가 의심스러워 잠시 생각하니 봉화산을 지나 임도가 있었는데 그곳이 목적지였던 중재가 아닌 듯 싶기도 하고 , 혹 더가면 백운산이 아닌가 하는 잘못된 판단이 서고, 지나온 바위 능선위 높았던 곳이 월경산이 아닌가 하는 여러가지 생각에 판단이 서지를 않는다 . 비구름은 내 주변을 모두 가려 겨우 발아래가 보일 듯 숲속은 칠흑이다. 다시 우측길로 되돌아와 여기서 하산을 하니 내리막길은 깍아지른 질흙 길이요, 겨울에 쌓인 눈길보다 더 미끄럽다. 내려오기를 몇시간 (30-40 여분) 임도가 나오고 농로가 나와도 민가는 보이지 않는다. 걷고 또 걸어 민가를 찾아 물어보니 대안리란다. 지도를 보니 중재, 중재부락이 아니다. 저녁 7시가 지나고 있었다 .
힘들고 힘든 하루였다 . 그래도 기분은 좋은데 아마 산행의 맛은 그 힘든 그 자체도 즐기는 것인가보다. 함양까지 내려와 여관에 머물다
( 태풍 민들래의 영향으로 밤새도록 비가 많이 왔고 7.4.도 이곳은 비가 계속 쏟아지고 있어, 이틀째 산행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청주로 돌아왔다 )
오늘도 휴대폰 메일 주신분께 감사합니다.
7.3. 오전 9:15 신근수
태풍 온다니까 조심하세요
식사 꼭 챙기시고
기운도 내시구요
7.3. 오전 9:55 민양식
장마비에는
대통령기 이론 공부한 것
그대로 안전산행 부탁해요
오늘 못가면 내일
7.3. 오전 10:54. 김학영
오늘도 무사히
그리고
내일도 무사히
늘 하루같이
늘 건강한 모습으로
청산을 홀로가는 나그네라네 !
7.5. 오후 7:37. 유병천
회장님 !!
건강은 괜찮으시죠 ?
대간길 항상 주님이 함께 하실겁니다.
화이팅 !1
알람에 마추어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세수와 간단한 준비를 하고 청주 집에서 출발한 시각이 3시30분경. 중부, 경부, 대진고속도로로하여 서상 I.C.경유, 지난번 하산한 지점인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 농로에 도착한 시각이 5시 30분 경이다. 차에서 내려 준비후 산행을 출발한 시간이 5시 55분 !
백두대간 진입로까지 올라가기 위하여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비온지 오래였고 땅에도 빗물이 빠져있어 걷기가 좋았고 가파르기는하나 어렵지 않았다. 지난번 하산할 때의 어려움은 기후차이라 생각하였고 산행에 일기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일깨우는 경험산행이 되었다. 06:35경 지난번 하산하였던 백두대간에 진입하였다. 진입하는데 40여분 소요 ! 무난하였고, 기분이 좋았다.
산은 좌우로 갈참나무 숲으로 가득 찼으며 중재까지 계속하여 가도 월경산을 어딘지 모르게 스쳐지났으며 묘지와 사태지역을 지나 8시 55분경에 중재에 이르렀다 광대치라고 여겼던 곳에서 2시간 15분이 걸렸는데 시간상으로보아 산행거리는 4Km 이상은 되었고 그렇다면 지난번 하산한 지점이 광대치가 아니고 어디쯤이 광대치였는지는 짐작이 갔다
그러나 저러나 이정표는 해발 650m, 영취산 8.2 Km이다. 조금을 걸어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중재마을이 눈아래 들어오는데 대간코스 지척까지 전답이 있고 포장된 농로가 중재바로 앞까지 올라와있다.(중재에서는 포장된 도로가 보이지 않음) 장마로 얼룩졌던 기후라 아직도 습도가 많았고, 바람이 없어 후덥지근하였고, 그러나 지금까지의 산행중 날씨는 제일 좋은 날씨였지만 시야는 좋지않았다. 어렵지 않게 11:00경 오늘의 최고봉인 백운산에 이르렀다. 해발 1278.6 m, 시루봉을 향하여 사진 한 장, 앞뒤 능선을 향하여 각 사진을 찍고 영취산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12:00 경 영취산 400 m 전방지점인 선바위고개에 이르렀고, 잠시 숨을 돌린후 12:20경 영취산(해발 1076 m)에 도착하였다. 이정표는 오늘 목적지인 육십령이 11.8 Km, 깃대봉이 7,5 Km이다. 이곳 백두대간인 영취산은 서쪽으로 호남금남정맥의 시발점이며 지금까지 좌로는 섬진강지류이었으나 이곳을 지나면서부터는 금강지류를 형성한다. 오른쪽으로는 아직까지 낙동강수이다. 영취산은 낙동강, 금강, 섬진강의 발원지인 삼파수를 이루고 있는 의미있는 지점이다.
식수가 떨어져 백운산을 지나서 만난 부산사람(남,57세)을 먼저 보내고 나는 수통에 식수를 보충코자 약 500m지점 아래인 무룡고개로 내려왔다. 무룡고개는 호남금남정맥으로 좌로는 섬진강 우로는 금강의 분수령인데 우측에 휴게소가 있고 샘터가 있다. 이름하여 무룡궁이다. 이곳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고 물맛을 보니 역시 자연생수답게 시원하고 좋다. 손도 씻고, 얼굴도 적신다음 돌아설까하였는데 물 좋은김에 걸터앉아 준비한 찰떡으로 점심요기를 하고 잠시 쉬노라니바라보이는 무룡궁물에 생각이 멎었다.
무룡궁 생수여 흘러서 어디로 갈꺼나
주촌마을 주논개생가를 훔쳐보고 오동저수지를 거쳐갈꺼나
용담댐 큰물에 이르러 산천자태를 그림자 담아 뽐내다가
대청댐으로 갈꺼나
충청사람 좋은인심 다 살펴보고 흘러흘러 낙화암인들 어떻고
금강하구, 서해바다에 이르러 흘러온 길 자랑을 할꺼냐
무룡궁 맑은 물아
가지를 말고, 흐르지를 말지어다
일단 인간사 어지러운 세상에 이르르면
더러운 인간들이 오염에 때를 묻혀
너의 맑은 자태, 흔적없이 더러워지나니......
무룡궁 淸明水(청명수)야 그냥 이곳에 머물러 있어
너를 낳은 영취산을 그림삼아 있다가
백두대간 홀로가는 나그네를 보거든
마른 목이나 시원스레 흠뻑적셔 주려무나 !
너무 많이 쉬었나 보다. 다시 영취산을 올라 산행을 시작하니 오후 1시 30분이다
앞서보낸 부산사람을 따라잡으랴 걸음을 재촉하니 산길이 좋아 걷기가 참 좋았다 이곳은 대간길을 잘 가꾸는 것인지 대간길따라 제초작업도하였고, 훼손된 길도 보수하여 제법 정비가 잘 되어있었다. 길따라, 산따라, 자연을 따라 무엇을 따라잡으랴 ! 가다가보니 왼쪽으로 오동저수지가 보이고, 주촌마을이 보이고 논개생가가 보이는 듯하다. 주논개는 무룡궁수를 마시고자라 절개가 곧았는가, 북바위에 이르러 주촌마을을 내려다보고 학교다닐적 자주 암송하던 논개시가 생각난다.
아 강낭콩 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논개는 이곳(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에서 나고 경남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에 묻혀 아픈 이야기를 전하여주는데 누가 이를 알랴 ! 내가 서있는 이곳 북바위(지도나 안내책자등에는 표기가 없슴)에서 논개생가가 지척에 보이고(오동저수지 위쪽으로 생각하면) 지도상으로 보면 논개의 무덤도 그 반대편에 보일터인데 숲이 가려 보이지를 않는다. 다만 백두대간 이 북바위를 두고 생가와 묘가 전북과 경남으로 갈려있으나 도상거리 5,25 Km이다.
전망좋은 북바위를 뒤로하고 한 10 여분을 가니 풀숲이 나오고 길고 긴 육십령터널을 지나 대진고속도를 오고가는 챠량행렬이 보이고 전망이 확트인다. 반갑게 깃대봉도 눈앞에 가까이 보여 이리 둘러보랴 저리 살펴보랴 바쁘다. 좌측의 오동터널도 보이고 걸음이 늦어진다. 오후 4시 40경 깃대봉(해발 1014.8 m)에 오르니 전망은 더욱 좋다. 다음에 가야할 남덕유산이 보이고, 서봉이 보이고, 할미봉이 보이고, 그아래 오늘 목적지인 육십령이 내다 보이는데 시간개념이 없다면 여기 깃대봉에서 그냥 누워 잠이나 청하였으면 좋겠다. 한참을 서성이면서 사방을 관망하다가 발걸음을 육십령으로 향하였다. 조금을 내려가 대간길 아닌듯 싶게 계곡으로 빠지는듯 하더니 물좋은 생수가 있어 수통을 채우고 걸음도 가볍게 육십령에 도달하였다 오후 5시 45분
육십령은 옛적에 사람 60명이 모여야 이 고개를 넘게하였다는 유래말이 있고 오늘 산행은 생각보다 2시간 정도는 앞서 도착하였다. 늘 그렇게 오늘도 산행을 마치고 나니 기쁘고 즐거웠다. 다음 구간의 시발점이 육십령에서 할미봉이 절경이라는데 기대를 하면서 청주로 돌아왔다.
6. 백두대간 제 5 구간 ( 육십령 ~ 남덕유산 ~ 동엽령 ~ 백암봉 ~ 지봉 ~ 갈미봉~ 신풍령 )
이날 육십령에 도착한 것이 05:00경이었다. 비소식은 내일까지 계속 장맛비였으나 그래도 남부지방은 개일듯한 뉴앙스가 있었고 대진고속도로를 따라 이곳 가까이 오자 고속도로위에는 빗물이 없이 말라있어 기대하여 보았다. 그러나 도착하니 비가 소리쳐 내리고 차에서 내릴 엄두가 나지를 안는다. 아내는 뒷좌석에 누워자고 나도 운전석을 펴고 누워 이궁리 저궁리 .............
06:00경 인기척에 밖을 보니 7~8명 정도가 입산을 한다. 일기는 좋지 않았으나 용기를 얻어 서둘러 산행을 시작하였다.
07:00 경 할미봉 (해발 1026 미터) 가파르게 올라왔으나 시야가 좋지않고 안개구름이 나와함께 놀고있어 사진마저 찍고싶지 않다.
09:30 경 서봉 (해발 1492 m ) 일명 장수덕유산, 계속하여 일기는 좋지 않았고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르막에서 야생화 사진 2장, 서봉정상 사진 1장 ! 이곳 서봉은 할미봉과 함께 오늘 산행의 진미로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다고 하여 지난번 산행을 마치면서 기대를 모았던 곳인데 ........ 안내책자에 신풍령까지 약 15시간 45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안내되어 있어 대간을 종주한다는 의미와 속보로 시간이나 단축하여 볼까하는 생각에 뛰는 걸음이다.
10:00 경 남덕유산 (해발 1507 m) 그래도 오늘 산행중 최고봉이어서 사진은 찍어야 겠다. 이정표는 쓰러져 내마음과 같네 .... 영각사에서 올라오는 부부일행과 만났다. 함께 동행할 것을 부탁받았으나 산행목적지를 말하여 주고 먼저 가기로 하엿다. 복숭아 하나를 주기에 받아 맛있게 먹었다. 평소에 산행을 즐기는 부부로 오늘은 이산, 내일은 저산 . 이렇게 산행을 한다고 한다. 일기가 맑았으면 육십령에서부터 산행계획이었으나 일기가 고르지 않아 영각사에서 묵었다한다. 어제는 무슨산에서 산행을 하였고 오늘 백련사쪽으로 하산하며, 내일도 산행을 한단다. (이부부는 우천관계로 12:30 경 삿갓재대피소에서 황점방향으로 하산하였슴) 이곳에서의 이정표는 육십령이 8.8 Km, 삿갓재대피소 4.3 Km
월성재에 오르니 시간은 볼것도 없이 비가 쏟아져 판초우의를 걸치고 걸었고, 12:00 경 삿갓대피소에 이르러 비가 그친다, 대피소 안으로 들어갈까도 생각하였으나 행색이 물건넌 생쥐라 스스로 불쌍타 ! 비젖은 걸터막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 아무렇게나 먹고 있으려니 남덕유산에서 만난 부부가 도착한다. 비는 다시 쏟아지는데 그야말로 장대비다. 다시 갈길을 재촉하고 비에 젖어 오가는 산꾼들이 오늘따라 많아 그래도 위로는 되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는 하나 지난번 산행보다 좋았던 것은 길이 트여 있어 걷기가 무난하였다
무룡산에 올랐으나 메모를 할 수가 없었고 중간쯤에서 하산하기로 하고 발길을 재촉하는데
오후 3시쯤 동엽령에 도착, 잔뜩낀 비구름 사이로 서쪽하늘이 트이어 온다. 반가왔다. 판초우의를 걷고 중도하차 없이 목적지를 향하여 가벼운 걸음을 재었다
백암봉을 향하여 걸음을 올려채는데 뒤로 언뜻언뜻 보이는 대간능선과 저멀리 마을, 그뒤에 보이는 산! 산 ! 산! 거울속에 비추인듯 너무나 깨끗하였다, 사진에 담으랴할까하면 다시 구름에 가렸지만 .......
16:00 경, 백암봉(송계삼거리)에 이르러 목적지인 신풍령령까지의 이정표는 없고 송계사, 송계매표소까지의 거리가 6.6Km.... 신풍령은 이보다 더 멀리라고 생각하고 해지기전 (저녁 8시까지)에 도착이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뛰랴 달리랴다, 횡경재 못미쳐 마주오는 대간팀을 만나 신풍령을 물으니 힘들게 안내하였다. 횡경재를 지나 지봉안부에 이르니 송계삼거리에서 이곳까지가 4.2 Km, 이곳에서 신풍령까지가 6.6 Km ! 시간은 오후 5시 30 분이다
서두르며 가는 길에 언듯언듯 구름사이로 햇살이 멀리 산과 마을을 비춰 참 좋은 산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은 시간에 쫓끼지만 다음에 다시와서 이산 구경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고 해발 1302 m 지봉에 올라 잠시 사방을 들러보아도 서둘러야 했고, 대봉(해발 1263 m)에서도 서들러야 했다, 뒷산(지봉)도 높았고, 이산(대봉)도 높고, 앞산(갈미봉, 해발 1210 m)
은 더 높았다. 대봉을 오르기전 안부에서의 시간은 오후 6시 15분, 목적지까지가 5.6 Km가 남았었는데 ...... 대봉을 가파르게 내려와 다시 어렵게 갈미봉을 오르고보니 또 앞산이 멀리보이고 내리고 오르는 길이 계속하여 가파르고 깊고 높다. 숲이라 일찍 어둡기 마련이고 전조등 불을 비추며 힘들게 도착한 것이 오후 8시 20경이었다. 시간은 충분히 재었지만 일기관계로 출발을 늦은게 착오였다. 등산은, 대간종주는 밝아서 시작하고 어둡기전 하산이 계획이었고 목적이었는데 계속하여 일기와 조화를 못이룬다,
신풍령은 그 고개이름이 빼재 또는 秀嶺(수령)이라고 불리우고 있으며 위치상으로는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과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과의 경계지역이며 경상도에서 전라도의 관문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쉽게 말하면 이 고개를 관통하면 바로 무주구천동이 있고 대전 통영고속도로 이전에는 교통량이 상당히 많았으나 지금은 구천동을 찾는 관광객들의 통행로로 교통량이 한가하다. 산행을 위하여 이곳에 08:00경 도착하였으나 구천동 방향 북쪽으로 잘못 진입하여 대간길을 늦게 찾았고, 손수건을 놓쳤다가 다시 찾느라고 시간을 1시간정도 소비하였다.
지금까지의 산행과는 달리 비걱정은 없었고 다만 구름떼는 여전하였다. 1시간 30 분를 걸으니 해발 1254 m의 삼봉산에 이르렀다. 정상 표지석이 있고,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의 시인가, 오늘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의 고독함을 달램인가, 아니면 이곳에 진달래가 유명해서인가 , 표지석 1m 앞 작은 철판에 시귀가 새겨진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진달래 밭에서
너만 생각하였다.
연 초록빛 새순이 돋아나면
온 몸에 전율이 인다는
眞眞이
이제 너만 그리워하기로
사나이 눈감고 맹세를 하고
죽어서도 못 잊을
저 그리운 대간의 품속으로
우리는 간다.
끊어 괴로운 인연이라면
구태여 끊어 무엇하랴.
온산에 불이 났네.
진달래는 왜이리
지천으로 피어서
지천으로 피어서
한참을 쉬었다가 발을 몇 발짝 옮겨 돌아가니 전망이 너무 좋아 사방을 둘러보며 바위에 걸터앉아 아침식사로 준비한 밥을 먹었다. 그러자니 구름이 아래위로 휘젓서 가며 이쪽마을 저쪽마을이 천국의 예고편을 보여주는 듯 구름아래 눈아래 펼쳐졌다 감추어졌다 하는데 내가 바로 신선인듯한 착각에 빠졌다. 오늘 산행은 혼자라서 너무 좋은데 느긋하게 충분히 즐기며 하자. 신선의 걸음을 흉내내랴 팔자걸음으로 걸어보고, 이 산주인 토끼가 되어 팔짝팔짝 뛰어도 보고, 하느님께서 놓친 천사의 흉내도 내랴,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요, 술이 없고 안주가 없고 속세에 사랑하는 이는 없어도 나는 이대로가 좋아라 이대로가 너무 좋아라 !
아뿔사 ! 좋기는 너무나 좋은데 나를 시샘인가 삼봉산 높은데서 내가 떨어져 내리는데, 떨어져도 너무나 떨어져 내린다. 그렇게 떨어지기를 시간 반은 더 떨어져 소사고개에 이르렀다. 이곳은 그래도 고지대인지 고랭지 농사, 배추를 많이 경작하고 있었다.
떨어져 내려왔으면 오르지를 말지언데 삼봉산에서 까맣게 보이던 앞산으로만 자꾸 기어오른다.
오르는 것도 왠만큼 올라야 하는데 끝없이 올린다. 지끔까지 산이야 무서울께 없었는데 날은 덥지, 습도는 높지, 바람은 없지, 어제가 초복이라서 몸 좋으라고 먹은 삼계탕의 효험도 없다,
생마구라 터지는 소리가 절로나고, 이놈의 산, 숲이 우거지고 가지가 무성하면 무엇하냐, 너희들은 교과서 구경도 못하였느냐 , 공부를 안했는지 탄소동화작용도 아니하느냐. 산소량 절대부족에 숨이 막히고, 주저앉아 질식사하기 딱 마춤이다. 열발짝을 못옮겨 쉬고 이마가 터졌는지 더운 생수가 솟고, 비 맞은데 없어도 옷은 젖어 가랭이 다 스치고, 애고! 애고! 백두대간아 나살려라 !
어렵게 어렵게 해발 1248.7 m 삼도봉에 이르렀다. 두번째 같은 이름의 삼도봉이다. 첫번째는 지리산의 삼도봉으로 해발 1,499 m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와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이고, 이곳 삼도봉은 전라북도, 경상북도 경상남도와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이다. 일명 초점산이라고 부기하여 표지석이 있다. 여기서부터 백두대간 오른쪽은 경상남도가 끝나고 경상북도의 시작이며, 왼쪽은 여전히 전라북도이다.
멀리 지나온 삼봉산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데 앞을 보니 가야할 대덕산이 육중하게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복중 무더운 날씨라 그런지 어떻게 할까 약간의 망설임도 인다. 그래도 가야한다. 더위에 찌드는 숲을 헤치며 간신히 숨을 몰아쉬고 걸음을 멈춰도 보고하며 오늘의 최고봉인 대덕산 해발 1290 m를 올라서니 헬기장 넓은 곳 분명하지 않은 북쪽 위치에 대덕산 정상표지석이 있고, 서쪽 위치에 오늘 처음으로 유일한 이정표를 만났는데 지나온 소사고개가 5 Km 요, 가야할 853고지가 6.5 Km이다 오늘 산행부터는 출발지에서부터 목적지까지 이정표가 계속되어 있지가 않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쉴 틈도 없이 걸음을 재어 가는데 앞서 삼봉산에서 떨어진 것 보다도 더욱 심하게 대덕산에서 덕산재로 급강하 ! 삼봉산도 어렵게 올랐지만 실은 삼도봉, 대덕산을 더 힘들게 올랐다, 그런데 정상에서 그 떨어짐이 더위에 지쳐 그런지 상상을 초월한다. 오늘의 대명사는 오르고 또 올라도 정상이 멀었고 내리고 또 내려도 바닥까지 내려와 지지 않았다. 이곳 하산길에 맛좋은 샘물이 있어 그런대로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위로를 삼았다.
덕산재에 닿으니 해발 640 m로 표기, 650 m나 하강한 셈이다. 힘에 지쳐 그곳 대덕산 산삼장에 들려 사먹을 것을 찾으니 장사는 하지 않고 남은 것(?)이라하며 사이다 한 병을 그냥 준다. 미안하여 돈을 주려하여도 받지 않아 고마움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오늘의 목적지인 삼도봉터널(부항령)을 물어보고 길을 재촉하였다.
덕산재에 오후 2시 30분에 도착하여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 시각은 오후 3시는 되었는데도 더위를 먹었는지 점심 생각이 나지를 않아 굶었다. 땀을 흘리고 또 흘리며 힘에 지쳐 쉬고 가며, 가고 쉬며 힘들게 힘들게 부항령에 도착하니 오후 6시 10분. 그곳 아래 양쪽으로 2차선 도로가 보이고 삼도봉터널이 나있다. 부항령 대간길에서 2~3분정도 내려서면 도로에 이르는데 대간 종주구간은 여기서 끊는 것이 좋다
8. 백두대간 제 7 구간 (부항령 ~ 1030 ~ 1171 ~ 삼도봉 ~ 화주봉 ~ 우두령 )
2004. 7. 22. 07:00 ~ 17:00 ( 산행시간 10 시간 )
삼도봉터널에 도착한 것이 7시 직전이다. 일기도 좋아보이고, 기분도 좋아 삼도봉터널 위 까지 리본 3개를 매어달았다. 어제 지치고 고생한 일이 있어 출발부터 조심하며 컨디션 조절에 힘쓰기로 마음다짐을 하였다. 천천히 발을 옮기며 몸을 풀기로하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잘 되지를 않았고 처음부터 한발짝이 힘겹게 느껴진다. 한시간 넘짓 갔을까 바위가 나타나고 사방이 트여있는데 구름이 오고가는 사이로 육중하고 거창한 산이 시야 전체를 꽉잡는다. 스스로 놀라 사진아라도 찍을까 하는 욕심에 우선 요기를 하기로 하고 도시락을 펴 먹으며 산 전체가 구름에 벗겨 나기를 엿보았다. 전체를 이으면 어떠한 산인지 알수 있을 듯한데 카메라에 잡을 기회는 없다. 아침식사를 마치면서 배낭을 질머지면서 느끼기를 전부터 들어온 말이 생각이 났다. "큰 산은 함부로 자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제 이 말의 뜻을 알겠다. 구름이 몰려와 자기(산)를 덮지 않으면 스스로 구름을 만들어 자기를 덮는다. 아 ! 나도 나의 모습을 함부로 들어내지 않는 그런 산이 되어야 겠다. 깨달은 바다.
1030봉에 올라 목을 축이고 내려서려는데 앞산이 트이면서 그 위용에 놀랍다 저멀리 1170 봉이 내앞에서 까마득히 있는데 그곳에서 우측으로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리만큼 시야를 막아 병풍처럼 앞에 놓여있다. 지도를 펴고 자침판을 놓아 정치를 하니 보나마나 내가 가야할 산이다. (1030고지에서 바라본 1170고지와 삼도봉의 능선이 한눈에 보이는 경관이었슴) 오늘 산행 출발전과는 달리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어제의 기후 못지않게 습도가 높고 바람이 없고 높은 온도로 몸은 쉽게 지쳤으며 이런상태에서 가야할 산에 기가죽는다. 가도가도 끝이 없고, 가도가도 제대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더위에 지쳐가는 몸을 이끌고 어렵게 1170봉에 이르니 온 길도 아득한데 가야할 삼도봉은 보이지 않는댜 (전에 삼도봉을 두번 산행하여 익히 알고 있던터라서 삼도봉이 눈에 들어올줄 알았슴)
12시가 넘는데 오늘도 더위에 시달려 점심 생각이 나지를 않아 어제에 이어 두번째 점심을 굶었다, 연거퍼 물로 목을 축이며 힘든 다리를 부축하여 가고 가니, 지루한 나머지에 무주에서 스키장을 개설하려한 곳인지, 능선에서 좌측으로 많이 훼손된 곳을 지나며 또다시 오르니 삼도봉이 멀리 한눈에 들어온다. 힘을 얻어 발길을 재촉하니 무주쪽에서 잘 관리한 산길에 이정표가 삼도봉을 가리키고 있었고 눈에 익은 민주지산이 나를 환영하면서 좌측에 우뚝 솟았고, 석기봉도 나를 반겨 삼도봉에 이르니 오후 1시가 훨씬 넘었다.
삼도봉 !
대간종주 중 3번째 같은 이름의 삼도봉이다. 그러나 6구간에서 설명한 두 삼도봉과는 달리 이 삼도봉은 3개도의 경계지점 이외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경계지점이라는데 의의도 있다. 과거 지역감정이 대립되었던 그런 과거사를 생각하기는 곤란하지만 이곳에는 전국 어느 산을 가나 볼수 있는 정상표시가 아니라 삼도화합탑이라하여 그 규모는 대도시의 대공원 구조물 못지 않게 정상에 큰 표지탑이 있다. 세마리의 거북이 등 위에 3마리의 용이 각 3도의 경계선을 응시하며 여위주를 바쳐 이고 있는 형상이며, 각 도의 방향으로 충청북도 영동군, 전라북도 무주군, 경상북도 금릉군(현 김천시로 흡수통합된 옛군의 명칭)이 명기되어 있고 각 군수의 짧은 말 한마디가 새겨있다. 이곳부터는 능선 우측으로는 경상북도이나 능선 좌측으로는 전라북도의 끝이고 충청북도가 시작된다.
삼도봉 ! 해발 1172 m의 이곳에 이르러 사람들이 야호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쉬고 있으려니 젊은 부부가 올라오고 , 또 젊은 사람 두엇이 올라오고, 또 한 어르신은 몸도 가볍게 뛰어서 올라온다. 내가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 보다가 한 100 m 쯤 내려 갔을까 정상에서의 그 어르신이 어느새 뛰어 내려와 갈림길 쉼터에 내려와 일행을 맞아 쉬고 있었고, 그분들께 길을 묻고 샘물이 어디 있는가를 물었다. 실은 오늘 일정이 늦어졌고 늦어진만큼 식수가 부족하였다. 그런데 그 어른이 일행들과 함께 얼린 감식초를 나누어 드시며 나에게도 주어 마셨다. 아 ! 참 시원하였다 . 모든 갈증이 싹 가시고, 지금까지의 피로가 싹 풀린다. 대화중 연세를 물으니 75세 ! 놀랍다. 일행들도 다 나보다는 나이가 많았지만 이어른은 아까 정상에서 야호를 연호하면서 뛰어오른 분이신데 얼마나 건강하신건가 ! 예의를 표하고 나의 갈길을 알린 다음 걸음을 재촉하였다.
삼도봉에서부터 밀목재까지는 이정표가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대간길을 따라 보수가 되어있는데다 제초작업도 하여 놓아 걷기가 편하고, 걸음을 빨리 할 수가 있었다. 밀목재에는 우두령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있데 거리표시는 되어있지 않다. 1111봉을 거쳐 1175봉에 이르며 뒤를 바라보니 돌아온 길이 너무나 멀리 뒤에 뻗어 있어 나 자신에게도 경탄하엿다. 1175봉에서부터는 암릉길 낭떨어지인데 로프에 매달려 하산하여야 했다. 위험하였다. 쉬면서 다시 1207 m의 화주봉에 올랐고 우두령까지 내려오는 길은 힘에지쳐 멀고도 지루하였다. 오후 5시경 우두령에 도착하니 한 중년 부부가 길가다가 그곳 그늘에 쉬며 무엇을 먹고 있었는데 나를 기다렸던 사람마냥 반가왔고 냉수 한 모금을 청하면서 오늘 산행을 마쳤다.
9. 백두대간 제 8 구간 ( 우두령 ~ 황악산 ~ 궤방령 ~ 눌의산 ~ 추풍령 )
2004. 7. 24. 06:45 ~ 17:45 ( 산행시간 11시간 )
삼복 더위에 오늘은 얼마나 더울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두령 출발지점에 리본을 달며 하느님께 기원할수 밖에 없다. 약간의 바람기를 안고 얼마쯤 가니 앞뒤 전망이 밝고 사방이 확트여 온다. 멀리 저멀리까지 시야가 좋고 지난번 산행지도 눈에 들어오고 김천시도 눈에 들어오며, 확실히는 모르지만 구미의 금오산으로 짐작되는 산이 멀리 구름위에 가름거린다. 8시 33분경 1030 봉에 오르니 누군가가 조그마하게 여정봉이라고 표시하였고 우측으로 폐초소가 들어온다. 걸음을 재촉하여 걸으니 이리저리 구경하기 좋았다. 30 여분을 치달아 내려 바람재에 이르니 다시 오르막길, 시원한 바람이 제법 불어주어 숨막힘도 없이 제법 좋다. 9시 30분경 형제봉에 이르러 조금을 더 가는데 황악산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을 만나 잠시 담소를 하고, 이야기중 대간종주 일행 4명이 앞서 갔다하여 컨디션 좋겠다 따라잡기로 하였다.
가볍게 1111봉의 황악산에 오르니 추풍령~김천간 고속도로, 경부철도, 일반국도 등이 들판에 자로잰 듯 시원하였고, 차량과 열차의 행렬이 정겹다. 이어서 내려가는데 직지사를 통하여 왕래하는 등산객들을 여럿만났고, 등산로 보수작업이 한참이다. 궤방령을 향하여 가는 길은 끝없는 하향길로 간단치가 않다, 여시골산으로 여겨지는 곳에 4명의 대간종팀이 쉬고 있어 만났다. 젊은 일행으로 용산구청팀인데 한달에 한번 비박으로 종주를 하는데 일행중 힘든 사람이 있어 좀 힘들은 것 같다. 열심히 하도록 격려을 하고 앞장을 서는데 바로 목장근처 대관정 파는 곳에 흘러내리는 물이 있어 식수를 보충하고 물에 점심을 말아 먹었다. 그사이 용산구청팀이 힘들게 쫓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다가가 육포를 하나 건네 주었더니 고맙게 받아가졌고 서로 사진 한 장씩을 찍었다. 리본도 서로 교환하였는데 내리본에 대하여 칭찬을 받으니 좋았다. 그들은 지쳐 그곳에 있는 식당으로 향하였는데, 계속하여 산행을 하였으면 하고 빌었다.
12시경 궤방령을 지났는데 궤방령은 표식이 없고 도계표시만이 있다. 오후 2시 50분경 가성산에 오르니 영동산악회에서 표지석을 하여 놓았고 이어 장군봉을 향하는데 장군봉 직전에서 부산과 천안에서 각각 와서 단독종주를 하는 젊은이 2명을 만났다. 여정이 같아 함께 가는 길인데 식수가 없다 하여, 조금 남은 물을 건네니 맛있게 나누어 먹는다. 또 쉬는 김에 리본을 다는데 내 리본을 눈여겨 보고 왔는지 " 아 ! 아저씨" 하면서 다시 반기며 리본의 뜻도 좋고 순수하게 이름, 전화번호도 없이 그렇다고 상업성도 없어 좋았다며 칭찬을 받았고 오늘은 리본에 대하여 두번씩이나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3시 30경 눌의산에 오르니 추풍령이 한눈에 들어온다. 막판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길고 힘겹다.
오후 5시경 추풍령 고속도로 굴다리를 거쳐, 철길을 거쳐, 추풍령표석앞에 서니 감격이 무량한데 기대와는 달리 추풍령자체는 초라하다. 추풍령은 해발 232 m로 백두대간중 최저지대이며, 그러나 경부선철로로는 최고지대여서 이곳 사람들의 열차새치기 추억이 많은 곳이다.
표석우측으로 공사인부의 초소막이 설치되어 있어 더욱 초라하여 보였으나 표석 아래 쓰인 추풍령노래 글은 그런대로 내마음을 달랬다.
구름도 자고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구비마다 한 많은 사연
흘러간 그세월을 뒤돌아 보는
주름진 그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모습 흐렸구나 추풍령 고개
10. 백두대간 제 9 구간 (추풍령 ~ 금산 ~ 사기점고개 ~ 작점고개 ~ 용문산 ~ 국수봉 ~ 큰재)
2004. 7. 28. 06 : 00 ~ 15 : 20 (산행시간 9시간 20 분)
추풍령비가 있는 곳에서 출발한 것이 아침 6시이다. 추풍령고개 콧노래를 부르며 더위도 잊은 채 마음은 즐거웠다. 추풍령비 맞은편 쪽으로 새로이 도로가 나고 있으며 그 절개지 좌측산으로 올랐다. 20 여분을 올랐을까 물론 이산을 오르기전 이산이 금산이라는 것을 알았고 반은 절개되어 훼손된 것은 전부터 고속도로 등을 이용, 추풍령을 지날적마다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산 정상에 올라서니 아뿔사다 말로는 형언하기가 어렵다. 추풍령고개가 해발 232 m라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이곳 남산은 해발 384 m이다. 그런데 이곳 채석장은 그 넓이를 시야로 짐작하기 어렵고 정상에서부터 그 밑은 추풍령고개보다 더 파고 내려가 있다. 위에 서서 낭떠러지를 바라보니 현기증이 나고 인간의 능력(?)에도 놀라왔다.
본래 하느님께서는 이세상을 창조하시고 참 좋아하셨단다. 참 좋은 나머지 사람을 만들어 놓았고......... 그런데 사람을 만든 그 자체는 전능전재하신 하느님도 실수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하느님의 뜻을 누가알랴마는 이 지구의 대자연을 볼 때 지구는 분명 인간을 잘못만난 것이 인간으로 말미암아 이 지구는 훼손되고 오염되어 망하여 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곳 금산은 그 석질이 매우 견고하여 70년대 경부고속도로 공사시부터 채석장이 들어섰고 최근에는 철로에 까는 돌로 납품이 되고 있다고 한다. 절개되지 않은 부분은 개인 소유인데 이도 채석허가를 위하여 업자들이 매도하기를 바라고 있다는데, 원래 산주가 처음부터 개발을 반대하고 완강히 거절하고 있다고 한단다 . 산주의 의지가 꺽이면 .............. 주여 ! 우리의 이 백두대간을 보존케하여 주소서 !
통신중계소가 있는 모함산은 추풍령 어디서나 우뚝 서있어 잘 보인다. 모함산을 바라보며 사기점고개를 지나 모함산을 올라가는 콘크리이트 포장도로를 건너 산 하나를 넘고 다시 이 포장도로로 내려와 도로를 따라 걷다가 빗겨 산으로 접어들면 이어 작점고개가 나온다. 이 작점고개는 영동과 김천의 경계지역으로 휴게소가 신축중에 있더라. 오늘의 산행코스는 내내 지루하고 대간이라기보다는 고향동네 뒷산같은 느낌이다. 낮은 산길에 좌우로 지척에 마을이 보이고 마을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도 지척에서 들린다.
안내책자에 표기된 해발 710 m의 용문산에 올랐지만 정상표시는 없고 헬기장이며, 둘러보아도 경관이 막혀있다. 몇발짝 옮기니 쉴만한 바위가 있어 잠시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하늘 시원한데 이곳 대간길은 왜이리 더운가. 이 더위에 지치는 것은 당연사이지만 그런데로 국수봉에 이르니 오늘 처음에야 정상표석이 보인다. 정상 표석을 향하여 사진 한 장 찍고 큰재에 이른 것이 오후 3시 20분, 백두대간 마루금 위에 폐분교가 있고 민가가 있다 시간이 많이 남아 더 진행할수도 있었겠지만 더위에 무리인 듯 싶다.
큰재에서의 출발이 06 : 20 경이었다, 폐교인 옥산초 안성분교 좌측으로 대간길이 이어졌고 우측 폐교내 잡초가 무성하였고 잣나무가 몇그루 있는데 잣이 많이 열려있었다. 처음보는 잣나무 열매라 신기하였고 듣기로 청솔모등의 피해로 잣이 열릴사이가 없다고 하는데 아무쪼록 아무런 피해가 없이 잘 익었으면 하고 폐교를 뒤로하였다.
오늘도 폭염은 계속되는가 보다. 출발한지 30 ~ 40 여분이 지났을까 작은 도로가 개설된 곳에 대간 길이 끊기고 길로 내려서 좌우로 둘러보아도 길표지 리본이 없다. 짐작컨대 맞은편 능선길로 올라 진행하면 길을 찾겠다 하고 무심코 올랐다가 대간길을 찾지 못하고 1시간 30여분은 헤맨다음 목장(이영도목장) 진입로로하여 빠져나오니 리본이 눈에 띄인다. 살펴보니 길 맞은편 올라간 능선 바로 옆이다. 이럴때 상당히 지치고 허망하다. 늦은만큼 길을 재촉하다
이곳 대간길은 특색이 없는 것이 특색이다. 동네 뒷산도 아니요. 동네 야산도 아니다. 무심코 지루하게 걷는다마는 산 맛은 그래도 오르고 내려야 , 아니면 해발이라도 높아 전망이 있어야하는데 맥이 없다. 대간 종주자에 의하여 개터재로 표시된 곳을 지났고, 임도보다 큰 규모의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 있는 곳에 이르렀다. 이곳 도로를 개설한 사람들이 대간길을 끊는 것이 죄스러웠는지 도로 위로 동물 통행로 같이 다리를 놓아 주었고, 다리 양측으로는 " 국토가 숨쉬는 곳 ! 여기는 백두대간 " 이라고 크게 썼다. 내려가 살펴보니 대간 종주자의 표시에 의하여 여기가 윗왕실임을 알수가 있다. 백두대간을 사랑하는 이여 ! 백두대간을 보존하려는 당신의 뜻에 함께 합니다.
윗왕실에서 약 1시간을 왔을까 초라하기는 하지만 오늘의 최고봉인 백학산(해발 615 m)에 올랐다. 정상 표지석은 있으나 전망은 없다. 땀에 찌든 몸으로 백학산을 내려와 임도가 나타나는데 좌측 한발짝 사이로 맑은 물이 보기좋게 흐른다. 배낭을 던져버리고 윗통을 벗어재끼고 얼굴이며, 팔뚝겨드랑이며 시원스레 물을 적시고 수통에 물도 갈아채우고 산을 벗하는이여 ! 이보다 더 좋으냐 !
그 좋은 물도 뒤로 한 채 길 가는 외로운 나그네는 다시 더위에 찌들고 길에 지치고 가기는 가는데 어떻게 가는지 밭길을 지나 민가가 있는듯도 하고 짐작컨데 개머리재다. 산은 산인데 산이 아닌 길을 겨우 리본 꼬리표에 의하여 지루하고 또 지루한 길을 가는데 한 참을 가는데 이제 정말로 지친다. 2차선의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오고 금강, 낙동강 분수령이라고 쓰여 있는데 지명은 없다. 여기가 오늘의 목적지인 신의터재려니 하고 도우미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신의터재는 고개 표지석이 크게 있단다. 아마 지기재인가보다.
할수 없지 않는가 몸이 지친 것은 나의 탓이요, 갈 길은 신의터재인데 또 가야지 산을 오르고 또 내리고 하여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치지 않는 법인데,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런데...... 다리 어깨 무릎 팔 안 지친데가 없이 또 갔다. 산도 아니요 백두대간은 더욱 아닌듯 싶다. 힘겹게 신의터재에 도착한 것이 17: 20 !
신의터재 !
이곳에 도착하니 고개를 거창하게 잘도 꾸며 놓았다. 빌어먹을 우선 걸터 앉아나보자 !
와 ! 비석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신의터재 표지석이요, 또 하나는 의병장 김준신의 유적비이다
신의터재 표지석에는 이곳이 해발 280 m 임을 표시하였고 그 뒤에 새기기를
" 신의터재 내력
임난 이전에는 신은현 (新恩峴)이라 불리었고 임란 때 義士 金俊臣이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으로 상주진에서 많은 왜병을 도륙하고 임진 4월 25일 장렬하게 순절한 사실이 있은 후부터 신의터재라 불리었으나 일제 때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어산재로 불리게 되었고 문민정부 수립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정기를 되찾고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교육의 장으로 삼고저 옛이름인 신의터재로 다시 고치다 . 1996년 12월 상주시장 "
또 하나의 비석은
"義士節谷金先生俊臣遺跡碑"라고 써서 세웠으며 그 비석 뒤에는 김준신에 대한 많은 공적 글이 새겨져 있다.
어제는 중북 다음날이었다. 그래서 대단히 더웠는데 오늘은 이곳을 오는데 전국 피서지에 몇백만 인파가 몰렸느니 ..... 한다. 그런데 이 찌는 삼복 더위에 나는 간다. 어디로 산으로.....
그러나 오늘은 출발부터 바람끼는 있어 좋다. 이곳 백두대간 길도 어제와 같이 지루함만을 더하고 산세가 없는가 싶다. 까짓것 가고 또 가면 못마치랴. 사람은 오기도 있는 것인데......
1시간 30분을 걸어 무지개산 밑에 이르렀고(07:30) 또 걷고 걸어 조금은 올라가니 해발 538 m의 윤지미산이다. 이름이 좋다. 어떤 뜻인지는 몰라도 나는 크면서 김지미는 들어 알고 있다. 그늘이 좋아 좀 쉬고 있으려니 청주에서 온 꾼들이 열댓명 맞은편에소 올라온다. 나와 대화한 사람은 나와 같은 아파트에 거주한단다 (나는 402동인데 201동에 살고 있다함) 참으로 반갑다. 그들은 백두대간을 충북구간부터 시작하였고 긴 시간을 잡지 않고 짧게짧게 끊어 즐긴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 너무 오래 쉬었다며 그들에게 좋은 산행을 하도록 덕담을 하고 그 윤지미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의외로 가파랐다.
윤지미산에 10:00경, 화령재에 11:00 경에 도착하였다. 화령재는 그 비석은 오래되어 방치된 듯 하지만 이곳에 이정표가 있어 반가왔다. 출발지점인 신의터재까지 11.6 Km 봉황산까지는 4.3 Km이다 화령재를 뒤로하면서 지루한 산행은 계속 되었다.
복중 산행은 무리인가 더위에 속도가 나지를 않는다. 물론 이곳 구간이 산세가 없어 더욱 사람을 지치게 하였지만 시작한 대간길을 건너 뛸수는 없었다. 참고 가려니 갑자기 앞에 가파른 길이 나오고 이것이나마 한번 힘을 내보자하며 잠시 생각에 논스톱으로 하였다. 바로 산불초소가 나오고 전망이 확 트이며 기분전환이 되었다. 지도정치를 하며 저 코앞의 산이 봉황산이고 .... 봉황산까지도 기분좋게 올라채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봉황산은 해발 740.8 m로 정상표지석이 있고 삼각점이 있는데 표지석과 삼각점이 지면에서 떠 있어 설치 당시보다 많이 훼손되어 있슴을 알수가 있었다, 전망은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첩첩산중의 산세가 좋은 것은 알수가 있었다. 계속 진행하니 내리막길은 의외로 가파름을 느끼고 길었다. 이따금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 비재인 것은 알았지만 좀 멀었다.
비재는 새로 도로를 낸지 얼마되지 않은듯 2차선 포장도로이며 도로개설로 맞은편 대간길이 높아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것을 약 5 m 높이의 넓은 철계단을 설치하여 주어 쉽게 오를 수가있다. 이도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리본을 달았다.
비재에서 갈령삼거리 방향으로 접어 들며 쉽게 가려니 하는 생각은 금물이다. 항상 마무리 산행은 지치기 마련인데다 산은 쉽게 그날의 목적지를 내어주지 않는다. 비재를 지나는 초엽부터 숨쉴틈없이 가파르고 땀은 분수가 솟는 듯 갈증을 독촉하고 남은 물이라곤 식염수 뿐인데 갈증에도 불구하고 마시고 싶은 생각이 전혀없다. 오르며 내리기를 몇번하고 갈증에 지쳐 지도를 보고, 한 곳을 찾아 이르니 사방으로 물이 빠지지 않을 듯한 늪과 같은 지형상에 언듯 보아도 물이 있을 듯 싶다. 이름하여 천지라고도 부르는가보다. 배낭을 내리고 수통을 꺼내 물을 찾으니 물고였던 흔적은 있으나 메말라 있다. 아무도 모르리라 물찾는 목마른 나그네의 갈길을 .... 더욱 힘이 빠지고 할수 없이 배낭의 식염수를 꺼내 마시고 갔다.
지도를 보니 갈령삼거리 40 분, 그곳에서 갈령까지는 20분, 목적지까지는 1시간 거리다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지친 몸이 1시간 거리가 우습지않다. 암릉, 암봉을 오르고 내리며, 돌고 갈령삼거리가 보이지 않고 혹 다른 길이 있었는가 의심하며 어렵게 갈령삼거리에 이르렀다. 백두대간 형제봉 가는길과 갈령으로 내려가는 길의 삼거리인데 종주자들의 리본이 현란스럽게 매어 달려있고 넓었다. 쉬는 듯 다시 대간길을 벗어나 갈령쪽으로 향하는데 지쳐 죽더라도 경치는 좋다. 쓰러진들 구경은 하자 뒤돌아보니 멀리 속리산 천황봉이 암벽사이로 위용을 자랑하고 지척에서 형제봉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웃기지마라 네가 손짓하여 부른들 오늘은 내가 지쳐 갈 몸이 아니요, 다음에 내가 와서 너를 흠뻑 사랑하여 주마 ! 갈령길 내려오는 길은 쉽지 않다 가파르고 석모래에 미끄러지기 쉽다. 특히 지친 몸은 조심 !
13. 백두대간 제 12 구간 ( 갈령삼거리 ~ 형제봉 ~ 천황봉 ~ 문장대 ~ 밤티재 ~ 늘재)
2004. 8. 7. 06 : 00 ~ 17 : 00 ( 산행시간 11시간 )
갈령에서 06:00 경 출발하였다. 이날은 우리 청암산악회 직전회장이신 김학영(충북산악연맹 이사)씨가 동행하여 주셨다. 수년전 백두대간을 종주하신 분으로 출발부터 힘이 되어주셨다. 갈령삼거리인 백두대간에 진입한 것이 06:30 경이었으며 08: 00 경 형제봉에 도착하였고, 출발부터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척에 온갖 바위들을 누르고 높이 솟은 속리산 천황봉이 보였으나 다가서기는 쉽지 않았다. 오늘따라 대간종주자들이 여럿보인다. 피앗재에서 출발하였다는 청주의 젊은이는 혼자서 화령재를 오늘 목적지로 하여 가는데 형제봉에서 만나 반가운 인사를 하였다. 형제봉을 지나 피앗재에 이르자 서울에서 36명이 단체로 왔다하며, 03;00경 밤티재에서 출발하였고 오늘의 목적지는 비재라는데 천황봉 가기전까지 이들을 스쳐 만나면서 인사를 나누니 서로 위로가 되었다. 나이는 나와 같거나 많아 보였다. 피앗재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으나 천황봉, 형제봉 표시는 제대로 있었고 만수동 표시가 서쪽이 아닌 반대방향의 동쪽을 가리키고 있어 바로 잡아놓았다. 누구인가 무심코 장난삼아 이정표를 이렇게 하여 놓았는가 본데 대간종주자들이 지친 나머지 이를 잘못보고 이곳을 탈출시 그 사람은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산을 오르기전 상식은 갖추어야 ......
김학영씨와 이런 이야기 저런 대화를 나누고, 뒤돌아 전망을 하니 대목리며 만수동 등 눈에 익은 마을이 눈에 들어와 정겹고 어느덧 천황봉에 이르렀다. 시계는 11:00 경이다. 젊은 부부도 보이고 천안에서 왔다는 젊은이 두명이 힘차게 올라온다,
속리산 천황봉은 해발 1058 m이다. 이곳에 여러번 와 보았지만 대간 종주로서 와보니 더욱 의미가 있어보였고 정겹다. 지난 6.1. 한남금북정맥 종주의 일환으로 이곳에 왔을 때 18일째 대간종주하는 사람을 만난 기억이 되살아 난다. 이곳은 한남금북정맥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대간 오른쪽은 낙동강, 왼쪽은 금강과 분수령을 이루었으나 이곳 천황봉을 지나면서 왼쪽은 금강이 아닌 (남)한강과의 분수령이 된다. 따라서 이곳 천황봉은 낙동강 금강 한강의 삼파수 지점이다 정상표지석 이면에는 조선시대 삼대명수인 삼파수, 달천수, 도천수(?) 중의 하나인 삼파수라고 표현하였는데 무슨 뜻인지 연구과제이다. 멀리 거쳐 올라온 형제봉까지 백두대간이 이어져 보이고, 삼가저수지(금강지류)와 우측으로의 뻗은 능선인 한남금북정맥이 이어져 보인다. 물론 북쪽으로는 멀리 문장대를 비롯하여 가야할 대간길이 바위들과 어울어져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천황석문을 지나고, 비로봉을 지나고, 입석대를 바라보며, 경업대를 바라보며, 신선대에 이른 시간은 12:00 경이다. 속리산 전체는 바위들이 많으며 문장대 등 그 이름들이 많다. 어느것 하나 작은 것이 없으며, 어느것 하나 보잘 것 없는 것이 없다. 이곳 바위들은 각이 지거나 모난 것이 없고 모두가 곡선형을 이루며, 어머니의 품같이 부드러운 느낌을 주나 그 규모가 장엄하여 감히 안기기에는 두렵다, 그런 바위가 포개져 쌓여 있고 그 하나하나가 태고의 전설을 안고 있다.
신선대에서는 노부부가 잔치국수를 시켜 먹으려 하고 있어 인사를 나누니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있는 중이란다. 오늘 나의 목적지인 늘재에서 출발하였고, 오늘 나의 출발지였던 갈령까지가 목적지란다. 반가왔다, 얼마나 행복한가 ? 부부가 함께하니 ..... 그들 부부에게 건강과 즐거운 산행이 되도록 인사를 나누고 문장대로 향하여 도착하니 12:30 경
문장대휴게소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13:00 경 출발, 문장대에 잠시 올라 전망하며 가야할 길을 그려보며 대간길을 찾아갔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쉴 틈도없이 암릉구간이다 암릉구간도 단순한 바위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쪼개져 갈라지고 ,포개진 바위 틈을 비집고 지나고, 피하여 지나고, 개구멍빠지듯 나와서는 있는 힘 다하여 잡고 올라서서 내리고, 로프에 매달려 2시간 이상을 내려왔다. 하산길도 이런데 앞서 만난 사람들은 이 길을 어떻게 올랐을까 ? 위험구간임에 틀림이 없다. 틈틈이 뒤돌아 본 문장대 등 바위군들은 말하여 장관이요, 누가 속세를 가르려 저리 바위만 골라 쌓았을까 ?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 내가 본래 속된 인간일지라 속세를 가른 뜻도 모른채, 저곳을 겁없이 지나온 나 자신이 두렵고 부끄럽다.
밤티재에 이르니 도로 재개설작업으로 대간길은 뚝 끊겨지고 맞은편까지 가는데 20 여분이 소요되고 햇볕이 따갑고 싫었다. 2시간에 걸쳐 897 고지를 바라보며 오르고 한참을 내려오니 오늘 목적지인 늘재에 도착하였다. 17:00 경
14. 백두대간 제13구간 ( 늘재 ~ 청화산 ~ 조항산 ~ 대야산 ~ 버리미기재 )
2004. 8. 14. 06:00 ~ 17:00 ( 산행시간 11시간 )
오늘 산행은 청암산악회 부회장이신 민양식(2003,2004 대통령기대회 2년 연속참가, 장려상수상) 재무 유병천, 총무 정원씨가 각 동행하여 주었다, 지원산행으로 처음부터 참 고마웠다. 늘재 출발지점에 백두대간 및 그곳 유래비를 설치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글쎄 좋은 기념이 돌런지는 모르겠다. 30여분을 오르니 산 중턱에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도 설치되어 있었다. 백두대간임을 표시하면서...... 그런데 문제는 청화산을 가는 이곳까지 등산로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등산로를 훼손하면서 누군가가 오르기 좋게 임시 흙계단식으로 다듬었는데 비(碑)의 뒤에 국회의원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비의 설치기념식 때 그들이 왔었던 것 같다. 끌쎄 .... 아마 비가 한번 오고나면 이곳 길이 많이 패여 나갈 것은 뻔할 것 같다.
청화산에 오른 것이 1시간 30 여분이 지난 7시 30경, 시야는 그렇게 좋지 않았으나 멀리 서쪽방향으로 속리산자락과 백악산이 눈에 들어오고, 동쪽방향으로는 시루봉이 눈에 들어왔다. 시루봉은 지리산의 청학동과 가평 어디엔가 있다는 판미동과 함께 유교사회의 이상향으로르 일컬어지는 우복동이라고 한다는데 이런 생각으로 바라보니 시루봉이 새삼스러웠다.
갓바위재로 향하는 길은 암릉 전망바위등이 있어 조망이 싱그러우며 좌측으로 의상저수지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조항산을 오르는 암릉구간은 어느산 못지않게 전망이 확트이며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결 또한 시원하다. 가까이 대야산뿐만 아니라 멀리 희양산까지 다 보인다. 사방이 산 ! 산이요, 바위산들이 솟구쳐 었어 산행길이 한결같이 좋다
고모령을 내려서니 이정표가 나타나고 약 10 미터 아래 석간수인 고모샘이 있어 그래잖아도 땀으로 얼룩지고 목마른 터에 식수를 보충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이곳에 이르며 우측으로 석산, 광산인가 본데 너무나 많이 훼손되어 있어 보존과 개발이 어떻게 상존할 수가 있을까 생각되었다. 특히 고모령을 지나 오르면서는 둔덕산으로 이어지는 바위 경관이 너무나 좋았는데 광산으로 훼손된 부분이 흠으로 안타까왔다. 오늘 산행에서 평소 익혀 들어온 마귀할멈통시바위를 볼량이었는데 그곳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에서 찾으니 저 멀리 있는 듯 싶어 다음에 확인하기로 기약하고 점심식사를 한후 밀재를 향하여 길을 재촉하였다.
평소 대야산 등산을 즐겨왔었고, 그때마다 밀재를 경유하여 하산하곤 하였는데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그 밀재에서 남쪽이며 별볼일 없을 것으로 생각하여왔다. 그런데 오늘 이 길을 가며 보니 생각보다 경관이 뛰어나고 854봉, 849봉이 이어져 있을 뿐만아니라 집채바위등 암릉과 바위가 어우러져 너무나 좋았다. 집채바위를 지나 밀재로 내려서는데 밀재에서 낮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안보아도 안다. 오늘 저녁 용추계곡에서 모임하기로 한 친구들(남용우, 이기섭)이 대야산 등정후 이곳에 도착하여 있는가보다. 멀리서 소리를 지르며 내달아 만나니 친구로서의 감회가 새롭다. 먼저 하산하여 용추골식당에 있기를 바라며 대야산을 향하여 걸음걸음......
이곳 밀재에서 나머지 구간인 버리미기재까지는 여러번 다닌 길이라 익히 알고 등산을 하니 정겹다. 그러나 몇 년전까지만 하여도 몰랐던 등산로가 상상외로 훼손되어 흙이라곤 다 없어지고 등산로에는 오직 바위만이 드러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코스도 말이 아니었고 ........ 이날 산행후 용추골 식당에서 친구들과 부부모임이 있어 일박하고 다음날인 8.15. 친구들과 잠시 용추폭포까지 왔엇는데 입산하는 등산객 수는 헤아릴수 없이 많아 한마디로 개미군단이었으며, 나자신이 표현하기를 " 오늘은 대야산이 무너지는 날이다 " 라고까지 하였다. 귀가길에 주차장을 가보니 등산객을 태워온 관광버스로 그 큰 주차장이 꽉찻으며 지금까지 어디가도 이렇게 관광버스가 들어선 것을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백두대간보호법의 내용은 몰라도 그 제정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대야산 정상을 오르는 길에 소낙비를 만나 판초우의를 뒤집어 썼으나 바람으로 무용지물이 되었고 비를 피하랴 바람을 피하랴 바위 위에서 실강이를 하다가 구름속에서 잘못 방향을 잃어 헤메다가 자침판을 꺼내보니 북쪽아닌 남쪽(올라온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다시 방향을 찾아 정상에 도달하니 예상보다 한 시간은 소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여러번 다녀 길을 익혀 알고 있는 곳인데 비, 바람, 구름 속에서는 '헤매더라' 이다.
대야산 정상에서의 하산길은 상당히 위험하다, 낭떠러지 벼랑에 로프가 매어져 있고 그야말로 대롱대롱 매달려 하산이다. 초보자, 팔의 힘에 온몸을 맡길 수 없는 등산객은 이코스 삼가할 것이다. 그래도 마음이 놓인 것은 로프가 상당히 견고한 것으로 설치되어 있어 안심하고 로프를 잡았다. 지라산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로프설치 상태는 제일 좋았다. 나는 이 로프설치가 각 지역 산악구조대원들이 설치한 것을 알고 있다. 고마웠다. 촛대봉을 오르고 곰넘이봉을 오르면서도 로프에 매달려야 하였는데 계속 로프의 상태는 최고였다. 촛대봉을 지나면서는 힘에 지쳤는지 동행하여주는 유병천, 정원씨를 따라잡기가 힘겨웠다. 역시 나이차는 못속이나 젊은 그대들이 부럽다. 이렇게 하산하는 길에 촛대봉에서는 옛동료 직원이었던 검찰청의 신동운을 만났다. 백두대간 한다는 말은 여러번 들었는데 산에서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 대관령까지 갔으며 오늘 산행은 땜빵산행이란다.
버리미기재에 도착한 것이 오후 5시, 오늘 산행은 예상보다 많이 늦었다. 그러나 기쁨은 세배이다. 늘 다닌 산이라서 좋은 표현은 못했지만 대야산 코스는 어느산 못지 않다.
15. 백두대간 제 14 구간 ( 버리미기재 ~ 장성봉 ~ 은티재 ~ 희양산 ~ 백화산 ~ 이화령 )
2004. 8. 18. 05:30 ~ 18:40 ( 산행시간 13 시간 10 분 )
오늘 산행은 구간이 좀 길고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아 일찍 출발하기로 한 것이 새벽 5시 30 분 경이다. 출발하면서 일기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태풍의 영향은 좀 늦을 것으로 오늘 저녁 또는 밤부터 비가 올 예보였고, 집에서 나와 하늘은 구름은 끼어있었지만 대체로 별이 보이듯 맑았다. 어제 저녁 비가뿌려 기온은 많이 낮아졌고 산행하기 좋은 듯도 하다. 출발시 숲에 묻은 빗방울에 젖을까 싶어 우비복을 입었으나 길이 넓고 좋아 출발 30 분 후 넓은 바위에 걸터앉아 반바지로 갈아 입었다.
1시간넘게 걸어 장성봉에 도착하였고, 오르막에 약간 더위를 느꼈으나 선선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구름이 걷치지 않고 점점 더 끼더니 9 시경 악휘봉삼거리에 이르러 빗방울이 떨어지고 걱정스러웠다. 이곳까지 오면서 등산화가 풀잎에 스쳐 젖지 않도록 신경을 써 왔는데 빗방울이 거세져 판초의와 우비(바지)복으로 갈아 입을까 하다가 그냥 비에 맞기로 하고 배낭카바만 씌웠다. 시원하고 좋았으며 오히려 걸음은 빨랐다.
은티재에 이르고, 구왕봉을 향하여도 비구름에 좌우산천 볼것이 없어 편하였다. 길만 찾아 가면 된다. 11 : 20 경 구왕봉에 올라서니 비구름 사이로 희양산이 천상같이 아름답다, 그도 아주 잠시일뿐 구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쉬지도 않고 지름티재에 도착한 것이 11 : 40 경.
희양산 산행록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희양산과 봉암사 주변인 이곳은 출입금지구역으로 곳곳에 경상북도지사, 문경시장, 봉암사주지, 소방서장등의 이름으로 출입금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너절하고, 스님들이 정진수행하며 도량을 펴는 곳이라하여 출입을 금지할 뿐만아니라 예상되는 진입로는 삼팔선의 철책을 방불케 할 정도로 끈으로 가리고 나무로 방책을 만들어 가리었다. 평상시 특히, 휴일에 이곳에 와보면 스님들이 무리지어 이곳저곳에서 등산객을 주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쨋거나 오늘은 비가오고 있고, 이리 살피고 저리 살펴도 망보는 사람 없다. 행운(?)일까 그래도 살필건 살피고 죄많은 사람인양 방책선에 개구멍을 내고 후닥닥 대간길로 진입하는데, 몰래 진입을 하였으면 그냥 가지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된다.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의 심정이 아니다. 죄지어 쫏겨가는 물에 빠진 새앙쥐다. 그래도 스님들 성불하기를 빌었다. 이 길을 가고,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야 분명히 자기 소유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하여 이 길을 갈 권리는 없다.(?) 이 길은 분명 이 길을 막는 자들의 소유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주 먼 옛날 옛적부터 말이다(?) 그들은 이곳 봉암사의 스님이 되어 성불하고자 수행을 하며.....
나의 가치관은 이렇다. 내가 되고자 함에는 누구 하나라도 되는 나로 인하여 피해가 있어서는 아니되는 것, 돈을 벌되 남에게 손해 주지마라. 배불리 먹되 이로 인하여 배고파하는 사람이 없게하라. 노래를 불러도 누가 시끄러워하지 않게하라. 자기의 권리주장에 앞서 나는 남을 위한 의무이행을 다하였는가, 나는 선문도량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법문에는 분명 무소유에 대한 법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이곳 희양산도 무소유의 법문에서 깨달아 백두대간을 가는 자에게 돌려주라, 베풀어 봉사하라, 나를 희생하여 득도하라. 세상사 다 부질없는것. 희양산은 창조주이신 오직 그 분의 것일진데, 누구나 다 이곳에서는 자유롭게하라.
뒤돌아보고 가다가 리본을 꺼내 나무가지에 매어 달았다. 아주 높이, 이곳은 백두대간인데 이를 알리는 리본 하나 없다. 나는 약 15년전 이라고하자, 이곳에 다녀 간 경험이 있어 길이 어렴풋이 생각나 낯설지 않아 다행이다. 이곳에 내가 달은 리본은 특히 많다. 성불하지 못하는 스님이 계시면 분명 나의 이 리본 제거작업에 땀좀 흘리실거다.
20 여분쯤 지나면 커다란 바위군을 지나게 되는데, 이렇다, 얹힌 바위가 있는가 하면, 받치는 바위가 어우러져 있고, 눌린 바위 위에는 기지를 부리는 바위도 있다. 큰 바위는 있는데 작은 바위는 없다(?) 곡선형의 둥구런 바위는 있는데 모난 바위는 없다. 그러면서도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를 위협하거나 무섭게하지 않고 부드럽게 감싸준다. 너는 알리라 ! 내마음을 ..... 청산에 홀로가는 마음을.......
산을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아니 바위 절벽이고, 틈새로 이어지고 가냘프지만 그래도 줄은 있어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가는데 내려보면 아래가 까마득하고, 올려다보면 위가 바위로 하늘에 맞닿아 있다. 비는 오는데 현기증이 난다. 메달려가는 오르막을 다 올랐는데 그 곳에도 나무로 막아놓고 길이 아님을 표시하였다. 다 무시하고 옛추억을 더듬어 희양산 정상에 올라 바위 위를 이리 저리 거닐어 보았다, 희양산은 참 좋은 바위산이다. 구름에 잠깐 앞산 구왕봉이 보이는데 선경이다. 개구멍 출입이 11:48 경, 정상에서의 시각은 12:36 지름티재에서 정상까지 48분이 소요되었다. 좋다 !
희양산은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 오라온 길도 그랬고, 정상도 내가 살던 고향의 멍석깔아 놓은 마당같았고, 이만봉에 올라서 뒤돌아 본 희양산의 뒷모습도 아래부터 정상까지 바위로 치솟아 있다. 뿐만아니라 그 자태도 모나지 않고 부드럽고 웅장하다
희양산을 뒤로하며 걸음을 내달아 조금 내려오니 성벽터가 보이고, 누구의 보고(寶庫)이련가. 이곳도 막았고 옆으로 길이 난듯 한데 대간표시 하나 없다 무시하고 막은 길로 몇발짝 가니 옆길과 이어져 있다. 비는 오고, 구름은 사방을 가려 적막한데, 멀리서 천둥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희양산 진입시부터 이정표도 없고, 정상표시도 없었으며, 리본 하나 없는 이길이 대간길인가. 의아하면서 다른 길 없으니 맞는다는 확신 하나로 길을 갔다.
배너미평전에 이르렀다. 직전부터 사방에 리본이 산만하게 붙어 있고 넓다. 이곳에서 시루봉으로도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어 더욱 그렇다. 아예 능선으로 오르던지 대간표시 리본을 찾아 가야 한다
이만봉에 올랐는데 뒤로 지척에 희양산이 제 모습을 잠시 드러내었는데, 그 경관이 너무나 황홀하였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20 분, 백화산까지, 이화령까지 소요시간을 예측하여보고, 서들러야 했다. 이곳에서부터는 연풍면소재 분지리를 끼고 좌로 한바퀴 도는 것이 백두대간이다. 혹 어둡거나 위험하면 익히 알고 있는 분지리로 내려빼면 된다. 그러나 다음산행에 착오가 생기면 안되므로 산악마라토너가 됐다. 사실은 9시부터 비를 맞았으니 5시간 20 분째 비를 맞고 있는 것이다. 머리끝에서 등산화까지 물속과 진배없다. 아직은 한기가 없으나 체온이 떨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앞섰다. 오르막길은 모르되 내리막길은 속보, 뜀걸음으로 체온의 저하를 막기로하였다. 그러면서 시간을 단축하고, 혹 야간산행이 되면 전조등으로도 어렵고 기온의 급강하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981봉 직전에 뇌정산과 백화산 이정표가 있는데 981봉이 백화산으로 알았다. 이때 시간이 3시 20 분, 예측시간과는 상당히 빠르다고 생각하였는데 한참을 가다가 구름에 빗겨 보이는 저만치 높은 봉우리가 있는데 백화산은 981봉이 아니라 분명 저 봉우리 높은 산이다 . 조바심이 난다. 정상표시가 있는 백화산에 이른 것이 4시 30분. 비가 오지 않는다면 어두워도 상관없지만 시간은 초읽기로 목적지 6시까지 도착하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좋으면 해지는 시각까지 괞찬겠지만 ...... 황학산을 지났는지 모르게 내려 닫는데 억새밭이 이어지고 반바지가 스치고 비에 젖어 사태구니가 쓰라리다. 지루하게 달려가는데 화장지에 가려 넣은 휴대폰은 성가시게 자꾸 울린다. 젖지 않게 조심스레 꺼내 받으며 이화령에 도착한 것이 날이 어둡기전 6시 40분이다. 총산행시간 13시간 10분, 그중 비맞은 시간이 9 시간 40 분이다. 춥지는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백화산이 1063.5고지인데
수안보에 있는 여관에 들려 씻고 나니 밑이 쓰려 혼났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움직이니 견디기가 어렵게 살가죽이 더욱 쓰렸고 부르텄다.
이화령에서 출발한 시간이 06:30 경으로 일기는 구름이 잔뜩끼어 전망을 보기는 어렵다. 이곳까지 올때 괴산지역으로는 비온 흔적이 없었는데 이화령 너머 문경쪽으로는 비가 많이 온듯 싶다. 산행거리도 짧고하여 여유를 가지고 산행하기로 하였다. 구름이 주위를 맴돌았지만 덥지 않아 좋았다.
이화령에서부터의 이곳 산행은 바위가 가파르고 위험구간이 많아 초보자에게는 상당한 주위를 요구하는 구간이다. 기히 설치된 로프에 의지하여야 하고 이런 로프의 설치가 없으면 초보자가 아니라도 산행이 어려운 구간이다. 오늘은 구름이 많이 끼어 그렇지 경치가 아름답고 전망이 좋다.
1시간 넘짓 걸어 조령샘에 이르러 목을 축이고 오늘의 최고봉이 조령산(해발 1026 m)에 올랐다. 정상 표지석이 있고 고 지현옥을 추모하는 추모목 (내용은 " 故 지현옥 산악인을 추모하며" )이 서원대학교 산악부에 의하여 세워져 있었다. 등산을 하며 산악인들로부터 익혀들은 산악인이다 에베르스트 원정등반중 실종된...... 잠시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었고
오늘 산행은 구름속의 연속으로 전망이 어렵웠지만 바위를 타는 기분은 즐거웠다. 그러면서도 신선암봉에 이르러서는 전망 할 수 없슴이 아쉬어 날이 개이지 않으려나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좋은 산인데 바위 이름따라 경관이 뛰어나고 신선이 뛰노는 그런 경관의 연속인데 .....
그러나 보이는 바위와 밧줄과 스릴을 만끽하면서 조령까지 갔다. 조령 못미쳐 그래도 가까운 곳은 구름이 벗겨주어 즐길 수가 있었다.
12가 넘어 조령에 도착하였다. 조령샘에 식수를 보충하고 서울에서 온 대간종주자를 만나 점심식사를 같이 하였다. 식사겸 인사후 그를 먼저 보내고 삼관문등를 둘러본후 출발하였다.
이곳 조령은 문경새재라고도 불리우며 역사적 군사적으로 보면 요새이다 자연적으로 백두대간이 천연 성벽을 이루고 마패봉을 거쳐 북암문, 동암문등에 인공성벽이 있으며......
우리가 일기예보를 들어보면 영남지방이라는 표현을 들을 수가 있다 . 이 조령의 남쪽지방을 일컫는 말이다. 참고로 대관령 동쪽지방을 영동지방(혹은 관동)이라하고, 그 서쪽을 영서지방(혹은 관서)이라고 한다. 산을 좋아하면서 알았지만 비구름도 이러한 영(嶺)을 함부로 넘지 못하여 이영을 비롯 대간을 사이에 두고 일기가 틀리다. 하물며 사람은 더욱 못넘었는지 언어, 풍속이 다르다. 그외 지방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제천의 의림지 서쪽을 호서지방, 즉 우리 충청도를 말하고 있으며 나는 호서인에 속한다. 김제의 벽골제 이남을 호남지방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마패봉에 이르렀는데 하늘은 안보이지만 산에 구름이 걷혀 그런대로 사방을 둘러볼수가 있었다. 쉬엄쉬업 즐거움을 느끼며 산행을 하니 흐린 날에도 기분이 좋다. 북암문 흔적이 뚜렷하고, 동암문 흔적도 뚜렷하다 이곳은 각각 이곳 대간중 낮은 재로서 그길에 성을 축조하고 문을 만들어 지키었는가 보다. 등산로가 사방으로 뚜렷하다. 부봉가는 갈림길에 이르러 백두대간가는 길을 잊고 부봉으로 잘못 접어들었고, 바위가 너무나 좋아 로프를 타고 가다가 보니 좀 멀리 갔다. 늦게서야 깨닫고 되돌아 부봉넘어까지 되돌아오니 시간은 1시간 반은 족히 낭비한 것 같다.
이화령에서 부봉 전까지의 바위는 모진 바위인데 부봉에서부터의 바위는 속리산, 희양산바위와 같이 곡선형의 부드러운 바위이다. 시간은 늦었지만 바위가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늘재에 이르렀다. 시각은 오후 6시 30 분, 앞산인 포암산 바위산이 아름답다. 하늘재의 문경쪽은 포장이 된듯 싶은데 그 반대편인 충주, 미륵사지 쪽으로는 비포장일뿐만이 아니라 차량이 통제되기도 하는가보다. 아마 미륵사지등의 역사적 유물의 보존책일까 ?
하늘재는 조령, 이화령 이전에는 영남을 관통하는 길목이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조령이 개척되면서 그 관문역을 잃었다 하며, 근세에 이르러 이화령으로 도로가 나면서부터는 이화령이 영남의 관문역할을 한다. 그렇듯이 오늘 산행구간은 영남을 오고가는 역사적으로의 관문지역이다.
수안보에 와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인 8.22. 새벽 5시경 산행을 계속하기 위하여 하늘재에 이르니 비가 뿌려지고 있어 산행을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하엿다.
17. 백두대간 제 16 구간 ( 하늘재 ~ 포암산 ~ 대미산 ~ 황장산 ~ 벌재 )
2004. 8. 25. 05:10 ~ 18:30 산행시간 13 시간 20 분
오늘은 날씨가 좋으려나 보다. 산행 시작후 20 여분이 지나 새벽 05:30경에야 땅이 보이고 날이 밝아온다. 해가 많이 짧아 졌다. 처음 대간을 시작하던 6.26. 은 새벽 04:30경에 날이 밝았는데 해뜨는 시간이 한시간이나 늦어 졌다. 하늘재에서부터 지금 오르고 있는 포암산을 비롯하여 앞산 뒷산 좌우산이 뚜렷이 밝아온다. 보면 볼수록 짙푸른 산의 색깔이 천연의 맛을 더하여주며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참으로 오랜만에 맑은 날의 대자연, 산을 본다,
포암산을 오르는 길 역시 대단히 가파르다. 포암산은 전체가 바위산이다 .산 역시 바위와 어울어져 있어야 경관이 좋고 산맛이 난다. 오르고 멀리 보이는 경치가 맑은 아침에 너무 상쾌하다. 산아래 깔린 구름은 너무나 잔잔하다. 카메라에 이 좋은 산을 잡아볼까 망서리며 포암산에 오르기를 2시간이 넘은 7시 20 분경, 예정시간 보다 무려 1시간 20 여분을 더 소비하였다. 하늘재까지의 거리는 이정표상 1.3 Km이다
아침부터 시간을 너무 소비하면 안될지 싶어 깨우치고 발걸음을 재촉하기로 하였다. 포암산을 지나면서는 바위산이 멀어지고 능선길이 완만하게 이어진다. 멀리 봉우리가 보이지만 육중한 능선 양옆으로는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고 우측 가까이로는 문경에서 동로로 이어지는 포장길이 나무 틈새로 이따끔 보인다. 하나의 봉우리를 향하여 이러한 능선은 길게 늘어져 오르고 그런대로 걸음이 빨라질수 밖에 없다. 몇군대 전망이 확트인 곳이 있어 뒤돌아 보면 감회가 깊고 다시 앞으로 내딛기가 편하였다. 어디쯤에서인가 위치를 확인하려 하니 휴대한 지도가 없다
허탈하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가게 됐다.
허탈함에 어디쯤 이르렀을때 제천시에서 세운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특이하다 대미산방향에 백두산이라 표기하고 작은 글씨로 대미산을 부기하였고, 반대로 포암산방향에 지리산이라 표기하고 포암산을 부기하였다. 포암산 2.2 Km, 대미산 7.9 Km, 이정표에 의하면 하늘재에서 대미산까지 12.2 Km이다 .(하늘재에서 포암산 1.3.Km) 11:00경 꽤나 높은 곳에 이르렀는데 (등산후 확인한 결과 1062봉으로 추정) 정상포시가 없다. 대미산으로 추측을 하였고, 완만하게 내달아 부리기재(11:30)로 표기된 곳에 이르니 대미산 방향의 이정표가 있다.
12:00 경 해발 1115 m의 대미산이다. 오늘의 최고봉이다. 사방이 확트여 있지만 대미산 자체는 별미가 없다. 식사시간을 늦추고 조금을 더가니 삼거리가 나오고 앞서와 같이 제천시에서 세운 배두대간 이정표가 나온다. 황장산 6.3 Km, 대미산 0.8Km, 그 옆에 문경시에셔 세운 이정표 하나는 문수봉 0.8 Km이다. 일전에 문수봉을 다녀와 대강 이곳의 위치를 짐작하다.
이곳을 지나면서부터는 길게 급하게 내리막길이고 낙엽송지대의 연속이다 비탈진 한 지점에 평택여산회에서 세운 백두대간 중간지점 안내표지판이 있다.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734.65 Km로 표기하였고 이곳에서 지리산, 진부령이 각 367.325Km로 중간지점이다 그렇다면 목표산행의 반을 걷고 있는 것이다. 정확도야 잘 모르겠지만 대간을 가는 나로서는 퍽 의미있었고, 지금까지 온 길과 가야할 길을 예측하며 많은 생각으로 한참을 갔다, 평택여산회에 감사하고 많은 발전을 기원하였다.
이곳 길은 능선길 가운데로 벌목을 하였었나 능선길 한 가운데 고목이 없고 시야가 트여 멀리까지 보인다 그런 길을 시원하게 내달아 가게되며, 그러나 좌우는 숲에 막혀 전망이 없다. 가고 가니 오후 2시 반경 차갓재에 이르르고 곧 작은 차갓재를 지나면서 황장산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바위산이 나오고 능선길이 좁다. 그러나 바위위에 올라서면 전망이 좋아 피로함을 잊게한다 깍아지른 바위를 로프에 매달려 간신히 오르고 낭떨어지 바위을 로프에 매달려 돌아 오르니 전망이 너무나 좋고 황장산이 일품이다. 몇발짝을 더 가니 정상 표지석이 있고 전망하기는 좋지 않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이정표에 벌재까지는 3시간 10분이 안내되어 있다. 잘못하면 어둠길에 떨어지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아침 등산시 전조등에 건전지가 모두 소모된 것을 확인한 터라 다리가 아프더라도 뛰어야 겠다는 생각이다. 황장산을 내려가는 코스도 일품이다. 현기증이 날이만큼 바위벼랑위는 좁은, 아니 겨우 발을 내 딛을 능선으로 가는데 위험은 모르겟고 스릴 만점이다.
시간은 초읽기로 뛰어야 했고, 지도가 없으니 위치 확인은 활 수가 없으며, 잠시 쉬어 남은 건전지를 확인하여 전조등을 켜니 전혀 불이 켜지지 않는다. 대가 표시 리본만을 따라 빨리 가는 것이 최선이다. 황장산에서 벌재까지는 봉우리가 몇개 나오지만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발끝이 아프기도 하고, 무릎 관절이 조심스럽다. 서두른 탓인지 벌재에 도착하니 오후 6시 30 분이다. 황장산에서 이곳 까지 2시간 반 ! 이정표의 3시간 10 분보다 무려 40분이나 단축하였다. 오늘 산행도 무사히 잘 마치니 기분이 좋고 감사하다.
18. 백두대간 제 17 구간 ( 벌재 ~ 문봉재 ~ 저수령 ~ 촛대봉 ~ 묘적봉 ~ 도솔봉 ~ 죽령 )
초등학교 동문회의 일로 벌재에 도착한 것이 8.28. 토요일 오후 4시경이다 . 산행구간이 좀 긴 듯하고 남는 시간이 아까와 저수령까지만 간단히 하고 다음날 죽령까지 가기로 하였다.
벌재에서 좀 가파르게 1시간 30 여분을 오르니 문복대 정상에 올랐다. 일명 문봉재라고도 하며
지난번 구간인 황장산이 보이고 사위가 잘 보였다. 문봉재를 지나 조금 오르는 듯 하다가 계속하여 완만한 내리막길로 이어지면서 저수령휴게소, 소백산목장 등이 보였고 죽령에서부터 온다는 대간종주자 3명을 만났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저수령에 도착하니 오후 6시 30 분, 도로는 비교적 잘 포장되어 있고 대간종주를 하는 부부가 텐트를 설치하고 있었고 저수령휴게소에 들리니 그곳에도 대간을 종주하는 젊은이 4명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각각 단독종주하는 사람들로 일정이 같아 함께 가는 것이라 하며 내일 죽령에 도착하면 15일 연속종주하는 것이고 일부는 일단 하산한단다. 좋은 산행이 되도록 빌고 식사후 경상도 방향으로 조금 내려와 숙박을 청하였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새벽 5시경 저수령에 도착하니 전날 텐트를 설치한 부부는 일찍 출발하엿는가 보다. 전조등에 의지하여 약 30여분을 오르니 촛대봉에 도착하였다. 정상표지석이 사진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둘러보고 먼동이 트여옮을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전망이 좋은 1053봉인듯 한 곳에 이르렀는데 잠시 관망을 하고 있으려니 저수령에서 출발하였다 하면서 쫓아 다가왔다. 나를 따라 온 것으로 보아 상당히 걸음이 빠른가 보다 아침식사를 한다기에 동행할까 하다가 먼저 출밯하였고 걸음이 쳐지지 않도록 하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디쯤 왔을가 단양유황온천 이정표도 작게 나무에 붙여놓은 것도 있다. 전에 서너번 다녀간 적이 있어 산행이 일찍 끝나면 그곳에 들려 씻고 가야겠다 멀리 높은 산이 시야에 잘 들어 왔고 지도정치를 하니 도솔봉인듯 하다 걸음을 재면 송전탑을 지나 묘적령, 묘적봉을 당도하는데 한남금북정맥 종주팀으로부터 휴대폰 메시지가 떳다, 반가왔다, 안사장, 재무, 총무가 함께하는가보다. 메시지를 나누면서 어는덧 도솔봉에 가가와 오고 정상넘어로는 안개구름이 오락가락하는데 그사이 철계단이 까마득히 보인다 다가가 오르니 사방이 확 트이고 풍기읍이 고속도로가 뻗어나가 시원하여 보였으며 소백산이 구름을 먹음은채 죽령에서 부터 뻗은 길이 보였다. 멀리서 조망하기는 처음이지만 조망하기에 참 좋았다.
12시가 좀 안되어 도솔봉 정상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경관이 너무나 좋았다. 소백산이 잘 보이는 듯하여 다시 사진에 담으려니 그래도 날씨가 뿌여 잘 잡혀오지 않는다. 조금 있으려니 10여명의 대간종주팀이 올라오고 꽤 많은 등산객이 보인다. 가평에서 왔다는 일행이 산진을 찍고 있어 나도 그들을 사진에 담고 인사를 하니 작년 엘부르즈 원정대에 함께하였던 천원군청 직원의 소식도 들었다. 참 반가왔다.
도솔봉 정상에서의 조망은 참으로 아름답고 추억에 남을 만 하다. 무엇보다도 소백산 전체를 보려면 이 도솔봉이 최고인듯 싶다. 아쉬운 여운을 남겨 놓은채 바위를 맴돌아 내려와 오르면서 하산길에 접어 들었고 생가보다는 훨씬 빠르게 죽령에 도착하였다. 오후 2시 30 분경. 총 산행시간 9시간 반, 어제 산행시간과 합치면 12시간 이다.
죽령에 이르러 그곳을 살펴보고 유황온천에 가서 씻고, 상선암에 들렷다가 청주로 왔다.
19. 백두대간 제18 구간 (죽령 ~ 소벡산 ~ 고치령 )
2004, 9, 4, 05:30 ~ 15:30 ( 산행시간 10 시간 )
산행거리 : 25.6 Km ( 죽령-11.5-비로봉-3.1-국망봉-8.3-마당치-2.7-고치령 )
오늘은 소백산을 오른다. 오늘 구간은 2003.1.12. 백두산악회를 따라 함께한 사실이 있다. 그전 2회를 비롯하여 오늘 소백산은 네번째 가는 것인데 오늘도 소백산에 대하여 기대가 큰 것은 소백산 정상에서 한번도 그 주위를 조망한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늘 비구름에 가려 그냥 정상 비로봉에 올라갔다가 온 것 뿐이었다.
출발은 05:30. 아직 먼동이 터오지 않아 어두워 전조등에 의지하며 출발하였다. 그러나 소백산 길은 천문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포장도로로 이어지고 차량이 올라갈 수가 있는 정도의 길이라서 숲에 가린 어두운 길은 아니었다. 백두대간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한여름의 시작이었지만 벌써 가을인가 싶다, 차에서 내려 출발시 약간 서늘함이 싫었다. 그러나 조금 걸어 몸은 달아 오르고 어두움이 가시기 시작하여 전조등도 거두었다.
한시간 넘짓 06:37 경 중계소가 앞에 나타난다. 그 앞을 좌측으로 접어들어 돌아서 간다. 날은 이미 밝아 앞뒤산이 뚜렷하여 지고 멀리 비로봉 정상이 보인다. 다시 말하여 구름은 낀 날씨이나 정상에 감도는 구름은 없다. 얼마나 좋은가.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니 자연히 걸음도 가볍고 빨랐다. 07:23 경 천문대에 도착하여 둘러보며 왼쪽 길로 접어들어 그곳 에서 아침식사로 준비하여 온 떡을 먹고 다시 출발하였다.
소백산 대피소가 눈에 들어오고 그위로 조성된 대간길을 따라 비로봉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 도착지인 고치령에서 출발하였다는 대간 종주팀들을 만났고 비로봉 올라가는 길에 그들의 일행이 보인다. 스쳐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09:11 경 드디어 가려진 것이 없는 정상에 도착하였다. 좀 뿌였치만 지난번 구간이었던 도솔봉 정상이 보이고 가야할 국망봉이 보이고 풍기읍이 내려다 보이고 중앙고속도로가 기다란 엿가락처럼 뻗혀있고, 그 위 1439.5 봉우리에 내가 서있다. 비로봉이라 쓰인 정상 표지석도 아름답다.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 솟았네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시공을 초월하였다면 이 대자연에 저 주목이 있는 것 같이 놀다가고 쉬었다가 갔으면 좋으련만 한 20 여분을 머물다가 그래도 뒤돌아보면 아쉬워 사진 한 장 더 찍고, 멀어져가는 비로봉 정상을 내가 안타까와, 언제 다시오랴 약속도 없이 발걸음이 못내 무겁다. 저 지난해 겨울, 눈보라에 휘말려 앞도 못보고, 추위에 오금 한 번 펴지도 못한채, 지은 죄 속죄함도 없이 고개 숙여 이곳을 지났는데 오늘 차마 지나감은 더욱 죄스럽다, 그래도 가는 길이 백두대간이라 조금은 용서받음인지 이 길이 나에게도 열려주었네.
10 : 53 국망봉에 이르렀다. 바위를 뒤로하고 표지석이 앞을 가렸는데 지나간 옛전설이 못내 가슴을 에워싼다. 작은 동전 몇닢을 잃어도 개운치 못한데, 나라 잃은 마의태자 이 국망봉에 그 설움 천년을 넘겨 새겼네.
국망봉을 지나 상월봉을 바라보며 좌우 조망이 너무 좋아 이리도 구경하고 저리도 구경하다가 어느덧 늦은맥이를 지나고 형제봉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이따금 보이는데 좌우 숲에 가려 볼것 없이 길만을 찾아 앞을 찾아 나갔다.
마당치에 거의 다 이르러 한 젊은이가 무거운듯한 커다란 나무몽둥이를 주어들고 마주온다. 인사를 하며 물으니 오다가 5m 전방쯤에 한 짐승이 고라니인가 잡아 먹는 것을 목격하고 무서워 나무몽둥이를 집어들고 오는 중이란다. 작년 겨울 이곳에 멧돼지 떼를 본 일이 있기도 하다. 그 젊은이에게 호랑이등 육식동물은 멸종된지 오래이고 무엇을 잘못 보았을 것이다며 안심을 시켜 주고 무사한 산행이 되도록 빌며 서로 뒤로하였다. 지금까지의 산과는 달리 이곳의 산에는 대간길에 짐승의 대변이 많이 놓여 있으며 그 량도 많다.
예정시간 보다도 상당히 빨리 오후 3시 30 분경 고치령에 닿았다. 2003. 1. 산행시 똑같은 구간을 종주하였는데 몹시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오늘 산행은 별로 힘들음이 없어 나의 체력이 상당히 좋아 졌구나 하고 새삼 대견스러웠다.
20. 백두대간 제 19 구간 (고치령 ~ 마구령 ~ 갈곶산 ~ 선달산 ~ 박달령 ~ 옥돌봉 ~ 도래기재)
2004. 9. 5. 04:50 ~ 15:50 (산행시간 11 시간 )
산행거리 : 26.9 Km ( 고치령-3,2-미내치-4.8-마구령-4.9-갈곶산-2.9-선달산-5.3-박달령- 3.1-옥돌봉-2.7-도래기재)
고치령은 비포장도로로 차량접근이 어려웠었다. 2003. 1.에는 내린 눈이 녹지 않아 멀리 좌석리까지 걸어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정상 500미터 정도가 포장이 되 있지 않았고, 나머지는 마을에서부터 포장도로로 이어져 접근이 쉽다. 그래도 버스의 접근은 쉽지않다.
고치령에는 산신각이 있다. 또 박달령에도, 산신각은 옛날부터 산생활을 하여 왔던 주민들이 짐승들로부터, 특히 호환이 두려워 이를 막아 달라고 빌고 모시던 신성한 곳으로 알고 있다. 아랫녁에는 없던 이곳 산악지대의 유물인가보다. 04:50 경 전조등을 들고 산신각을 지나 산행을 시작하였다. 고치령엣부터 1Km마다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고 또 중요지점에 이정표가 있어 나의 위치 파악이 쉬웠다.
한시간 넘짓 걸어 미내치에 이르렀고, 08:00 경 마구령에 도달하였다. 마구령도 비포장도로로차량접근이 쉽지 않은듯싶다. 그러나 소형차량은 쉽게 넘나든다.
날이 밝고 아무리 가도 이정표 외에는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나타나지를 않는다. 길은 바위나 돌이 없어 걷기는 좋은데 특이한 점이 없고 숲속으로 사방이 막혀 끝내는 북으로 북으로 가는 감각으로 방향감각이 없다. 오늘 구간은 처음부터 동쪽 진행방향이다. 그런데 지도 정치를 몇번에 걸쳐 하고 동서남북을 구분하였는데도 북쪽으로만 가는 느낌이다.
10:00 경 갈곶산에 이르렀다. 남쪽으로는 부석사를 이루고 있는 봉황산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여 위치를 파악하고 선달산으로 향하엿다. 이곳 갈곶산에 오면서 대간 좌측으로는 대간길 보다도 산당히 높은 산 능선이 뻗혀 있으나 그것도 숲속으로 언듯언듯 보일뿐 궁굼하였는데 이곳에 와 보니 제일 높은 이 선달산이고 대간길은 그 선달산으로도 뻗어 있는 것이다.
갈곶산을 내려가 늦은목이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르고 가파른 선달산으로 향하던중 중간지점에서 쉬고있는 부부산악인 4명을 만나고 이어 또 한명이 산행을 즐긴다. 인사를 나누고 오르고 한참을 올라 11:30 경 오늘의 최고봉인 선달산에 올랐다. 이곳역시 1236 m라 표기되어 있으나 전망할 수는 없었다. 먼저 도착한 다른 일행이 있어 인사를 나누니 나보다 먼저 고치령을 출발하여 온 일행이다. 이들을 뒤로하고 나의 갈길을 간다, 이곳 선달산부터는 길 왼쪽으로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으로 강원도가 박달령까지 이어진다. 신갈나무 고목이 즐비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박달령에 이르니 공터가 넓고 차량접근이 가능한 듯 싶다. 간이화장실이 있고 산령각이 있고 이곳부터는 대간길 훼손부위를 많이 보수하여 놓아 길 아낌이가 있음을 알게 되고 고마워 하며 옥돌봉을 향하였다.
오후 3시경 옥돌봉에 이르렀고 정상표지석은 잘 하여 놓았는데 전망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오늘의 목적지인 도래기재에 이르르면서 숲은 좋았으나 오늘 하루는 그냥 대간 길만 종주한 외에 특이한 점이 없다, 오후 3시 50 경 산행을 마칠 수가 있었다.
청주로 오는 길은 영월군 하동면 방향으로 계곡물이 깨끗하고 김삿갓 기념 유적지와 계곡을 즐길 수 있다.
청주에서 도래기재까지는 약 200 Km이다. 새벽에 이곳까지 오는 길은 밤안개가 자욱하여 힘들었다. 산행예정시간이 12시간 넘게 나와 서두르기로 한 것인데 06:30 경 산행 출발을 하니 오늘은 걸음을 좀 재촉하기로 하였다. 어떻든 아침 일찍부터는 날씨가 예상외로 좋았다. 벌써 가을이 깊었는가 싶게 기온은 서늘함을 느끼었다.
아침 8 시 50 경 해발 1345.7 Km의 구룡산에 올랐다. 출발지점의 해발이 770m인 점을 고려하면 375미터나 오른 것인데 길이 순탄하여 그리 힘든지 몰랐다. 정상은 헬기장이고 별 볼품이 없었으나 사방이 확트이고 전망할 수가 있어 좋았다. 지도정치를 하니 가야할 태백산을 가리킬 수 있었고 뒤돌아 멀리 흐릿하게 소백산도 보인다. 준비한 찰떡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자니 전투기가 머리위를 스치며 소음이 귀를 짼다. 이곳 구룡산을 올라오기전 폭발음으로 간이 서늘하게 놀라기도 하였다.
고직령, 곰넘이재, 신선봉을 가늠하고 출발하였으나 고직령은 모르게 스쳐 지났고, 11:20 경 신선봉에 올랐다. 신선봉은 정상에 묘 1기가 있는데, 그 뒤로가 길인듯 싶게 잘나있어 진입하니 리본이 없는 것이 느껴졌고, 그래도 의심을 품고 조금 더 가니 길이 흐릿하여 진다. 곧 깨닫고 묘까지 되돌아오니 20 여분 시간을 낭비하였다 이곳에 올라온 길 바로 우측으로 리본이 많이 붙어 있으나 정상 표시가 없어 신선봉인지가 의심스럽고 일방 봉우리인듯 싶게 착각하기 쉽다. 확인하니 묘 아래 이정표가 있고, 대간길이 나 있다. 대간길은 북쪽을 향하다가 이곳에서 갑자기 남동쪽을 향한다. 주의할 필요가 있다.
12:30 경 차돌배기라고 표기된 곳에 이르렀는데 각화산가는 길과의 삼거리이고, 이곳에서 대간길은 북쪽으로 향한다, 이정표에는 곰넘이재 6Km, 태빅산 10 Km 이다. 지도를 펴 깃대기봉을 짐작하고 30여분을 더 가는데 구룡산에서부터 계속 숲에 가려 길 외에는 보이는게 없는데 전투기는 머리위를 스쳐 소음을 내지르다가 폭탄인지 무엇인지 내뿜는듯 작열하는 소리에 두번이나 놀랐다. 종합하여 보면 태백이 고향인 직원이 이곳은 군사지역으로 조심하거나 산행을 금하는 것이 좋다고 한 말이 기억이 났고, 안내책자에 서북쪽이 군사 통제구역이고 전투기 괴음과 총소리에 당황하지 말라고 읽은 기억이 되살아 나 그런대로 안심을 하고 마음가짐을 다시 하면서 갔다. 꼭 전시에 나를 발견한 전투기가 나를 찾지는 못하고 선회하는 착각에 빠졌다.
오후 1시가 넘어 깃대기봉에 이르렀으나 표시외에는 봉우리가 없다. 태백산을 4Km 가리키고 있어 좀 늦었지만 그곳에 가서 식사를 하리라면서 걸음을 재촉하는데 쉽게 정상이 나오지 않고 갑자기 안개구름이 어디서인가서 부터 숲속으로 퍼지고 시야를 가린다. 조금을 가니 처음으로 주목이 있는 곳에 동쪽으로 바위가 있고 전망이 좋을 듯한데 잔뜩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볼수가 없었다. 이럴때가 낭패인 것이 숲에 가려 전망을 전혀 할수가 없다가 산에 오르면 무언가는 보아야 하는데 ........
조금을 더 가다가 콧물이 흐르고 추워 상의를 겨울 긴 옷으로 갈아 입었다. 얼마쯤 힘차게 갔니하단이 보이고, 이어 천제단, 장군봉이 나타났으나 가까이서도 사진에 잘 잡히지 않게 짙은 안개구름에 가려져 있고 날씨는 몹시 추웠다.
천제단과 장군봉에는 무속인들이 차고 앉아 내가 그 안으로 들어 갈수는 없었고 무엇을 비는 지는 몰라도 어려운 시기에 다만 국태민안이라도 한마디 빌어주었으면 하였다.
천제단 한쪽에는 태빅산 표시석이 거대하게 세워져 있으며 다른 한 편에는 이런 글귀도 있는데
긴하늘 바로지나 자연속에 들어서니
그제야 알고보니 절정에 올랐구나
한덩이 흰해는 머리위에 나직하고
사방 뭇 산들은 눈앞에 떨어지네
몸이 구름 쫓아가니 내가 학을 탄 것인가
길이 벼랑에 걸렸으니 하늘 오르는 사다리인 듯
비와서 만 골짜기 물이 휘몰려 넘치니
구비쳐도는 오십천을 건널 일이 걱정이다 - 안 축 -
참 좋은 글인듯 한데, 이글 외에는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볼수가 없어 막힌 머리에 채워지는 것이 없다. 몇년전 겨울 이곳에 와서의 상황과 같았다. 이곳 정상에서의 전망이 그리 좋다는데 짙은 안개구름이 나마저 가리니 실망만 컸다. 주목 군락지를 지나 빨리 하산하는 수 밖에 없었다. 길인듯 잊어버리지 않게 잘 살펴 내려오는 수 밖에 없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이나마도 고맙게 생각한다 오후 5시 40분이 넘고 있었다.
22. 백두대간 제 21 구간 ( 화방재 ~ 함백산 ~ 금대봉 ~ 비단봉 ~ 천의봉 ~ 삼수령 )
2004, 9. 17.(금요일) 09:00 ~ 18:00 (산행시간 9 시간)
영월에서 사북, 싸리재 방향으로 길을 잘못들어 화방재에 도착이 늦었다. 산행에정시간이 8 시간 30분 내지 9시간 정도로, 9시에 출발하여도 되리라 화방재에 있는 휴게소에 차를 주차하고 서들러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행길은 별 특이함이 없이 걷기는 좋았다. 날씨도 좋았고 시야도 넓었다. 1시간 30 여분을 걸어 군부대시설물을 빗겨 지나고 만항재에 이르렀다. 만항재 휴게소는 좀 한가하여 보였으며 이를 뒤로하고 산행은 지체하지 않았다.
조금을 더 걸으니 함백산이 뚜렷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정상에 있는 시설물들이 식별되었다. 함백산 오르는길 우측으로는 광업소로 보이는 커다란 건축물이 보이고 그리로 난 길은 아스팔트포장이 되어 있었다. 뿐만아니라 백두대간을 타고 이곳까지 오는 곳곳은 여러모의 길이 어지럽게 나 있어 미관이 없었다. 산림훼손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태백 함백은 예로부터 여러가지 광산촌문화가 형성되었던 곳으로 그러려니 할 수 밖에 ..... 오늘 산행구간중 은대봉, 금대봉, 비단봉 등의 명칭도 탄광촌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싶다. 한편 대간 가는길의 이정표인지 전 구간을 통하여 길안내 방향표시는 잘되어 있었다. 또한 곳곳에는 등산로 정비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11:50 경 드디어 함백산 정상에 올랐다. 이곳은 해발 1572.9 m로 높이로는 태빅산 1566.7 m 보다 높다. 정상에는 너덜지대와 같이 돌이 산적하여 있고 그 위에 정상표지석이 정상을 자랑하고 있다. 정상 바로 아래 우측으로는 통신중계탑이 거창(?)하게 자리하고 있고 그곳까지 포장된 차도가 이어져 왔고, 북쪽 아래로도 헬기장이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함백산은 미관이 없고 인위적으로 훼손된 느낌이다. 그러나 사방으로 전망하기는 참으로 좋았다. 택백산이 보이고 오늘 가야할 산들이 보이며 그 주면까지 조망하기 참 좋았다.
함백산에서 점심을 하고 길을 재촉하니 곧 주목보호지역이 나타나고 이곳에서는 단풍의 초기단계에 나뭇잎이 물들고 있었다. 얼마를 지나 전망대에 이르니 고한소재지가 서쪽방향으로 한눈에 맑게 들어왔다. 잠시 조망을 즐기다가 사거리 안부쯤 왔을까 단독종주하는 나이든 분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며 잠시 대화를 하며 연세를 물으니 이틀후면 67년 6개월이 된단다. 건강한 이분의 모습이 부러워 주재에 과찬을 하였더니 하시는 말씀이 시중에 있으면 숲속의 향기가 그리워 일이 잘 잡히지 않는다며 한마디로 자신이 미쳤다고 한다. 동감이다. 매트리스에 침낭까지 ... 금대봉쯤 가서 비박할 예정이란다.
14:20 경 해발 1268의 싸리재에 이르러 아침에 이곳을 차로 지나갔슴을 생각하였다. 걸음을 재촉하니 14:55경 해발 1418.1m의 금대봉에 이르렀다. 이름이 좋아 금대봉이지 전망할 수는 없었으며 표지석과 함께 옆에는 흰 말목에 양강발원봉이라 표기가 되었고 한쪽으로는 " 이 봉을 양강 발원봉이라 함은 북동으로는 한강, 남동으로는 낙동강이 비롯하여 흐름이다 " 라고 쓰여 있어 생각에 의미가 있다하여 의미봉이라 하였다. 진정으로 이곳이 우리의 민족의 젖줄인 양강의 발원지라 ! 많은 오감이 작동을 한다.
15:30 쯤으로 기억이 된다 대간길에는 검용소라하여 한강발원지가 1.3 Km로 안내되고 있다. 오늘 출발시부터 꼭 가겠다고 다짐을 하였는데, 왕복 2.6 Km ! 1시간 30여분이 소요될 것 같아 망서렸다. 목적지까지 3시간 넘짓 걸린다 생각하니 다녀오면 어두우리라하여 포기하고 길을 가니 사뭇 섭섭하다. 미련이 앞서고 후회스럽고 그렇다.
지루한 길을 시간에 쫓겨 16:30경 비단봉에 오르며 뒤로하니 조망이 뛰어나다. 멀리 아스라이 함백산이 보이고 그 멀리 태빅산도 보인다. 좀 쉬는듯 하다가 다시 정상을 내려오는데 숲이 없고 이산 저산이 모두 고랭지채소밭으로 무지무시하게 개발이 되었다. 앞산 정상를 바라보며 대간길을 가름하니 이 채소밭을 어떻게 지나가나 ? 밭 주위로 대간길은 막혀있고 앞서 종주한 사람들의 리본표시도 사라져있다. 이길이 맞을까하며 고랭지 채소밭 사이로 난 농로길을 따라 저산봉우리로 가면 되겟지 하는 단순 생각으로 길을 가고 그래도 전봇대에 리본을 달아 나갔다. 우연히 맞았다 고랭지 채소밭을 한참 헤매고 짐작한 산의정상에 도착하니 이곳이 매봉산 천의봉이다. 정상은 초라하나마 누군가가 큰 수박만한 돌에 배봉산이라 써서 갔다가 놓아 이곳이 매봉산인줄 알게 하였다. 이곳을 내려 하산하는 길도 채소밭에 길이 막혀 대간길을 찾아 내려오기는 쉽지 않았다.
18: 00 경 언뜻 나타난 도로에 이르니 이곳이 피재이다. 안내 책자들에 피재라 하여 그런줄로만 알았는데 피재 보다는 삼수령이라하여 그 표시가 더욱 새삼스럽게 의미가 있다.
커다란 삼수령 비석에는
" 이 고개의 이름은 큰피재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길은 태백시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낙동강, 한강, 오십천의 삼대강이 발원하고 민족의 시원인 태백산을 상징하는 삼수령이기도 하다. 태백에서 분출되는 낙동강은 남으로 흘러 영남 곡창의 질펀한 풍요를 점지하고 공업입국의 공도들을 자리잡게 했다. 한강 역시 동북서로 물길을 만들면서 한민족의 수부를 일깨우고 부국의 기틀인 경인지역을 일으켜 세웠다. 오십천도 동으로 흘러 동해안시대를 창출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 의미는 삼강의 연원인 태백을 찾는 이에게 삼수령의 상쾌한 휴식을 삼가 권하며 이 비를 세원다 (1992. 9. 25. 태백시장) " 라고 쓰여 있네.
또 한편에는 삼수령 탑이 세워져 있는데
빗물의 운명
하늘이 열리고 우주가 재편된 아득한 옛날
옥황상제의 명으로 빗물 한가족이 대지로 내려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굳게 약속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 빗물 한가족은 한반도의 등마루인
이곳 삼수령으로 내려오면서
아빠는 낙동강으로
엄마는 한강으로
아들은 오십천강으로 헤어지는 운명이 되었다.
한반도 그 어느곳에 내려도 행복했으리라
이곳에서 헤어져 바다에 가서 만날 수 밖에 없는
빗물가족의 기구한 운명을
이곳 삼수령만이 전해주고 있다.
삼수령에 이르러 날이 어두워 졌는데도 갈 길을 잊고 한참을 생각에 잠재웠다.
문득 생각하니 이곳 어딘가가 낙동정맥의 시발점인데 그곳이 어디였는가 싶다. 삼수령의 의미를 새기면 이곳 삼수령이 맞을 것이고, 지도상으로보면 천의봉 아래 어디쯤에서 구봉산으로 이어니지는 능선이 있었을 것인데, 고랭지 채소밭을 헤매며 지나오다가 미쳐 살펴보지 못하였다.
영신봉, 영취산, 속리산에서 각 시작되는 낙남정맥, 호남금남정맥, 한남금북정맥의 표시가 있는데 그것도 자랑스럽게, 이곳은 배추뿌리 흩어진 채소밭 밖에는 그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잘 못 보았나 ? 어떻든 그 길고 긴 낙동강의 분수령은 여기 이 지점에서 끝나다. 앞으로는 좌 한강수요, 우 오십천이다.
23. 백두대간 제 22 구간 ( 피재 ~ 푯대봉 ~ 구부시령 ~ 덕항산 ~ 큰재 ~ 황장산 ~ 댓재 )
2004. 9. 18.(토) 07:30 ~ 18:30 (산행시간 11시간)
엇저녁 태백시에 들어와 숙소를 정한후 일찍자고 알람에 마추어 오늘 새벽 5시에 기상을 하였다. 일어나자마자 산행준비를 하고 출발할까하는데 밖이 수상하여 창문을 여니 밖은 비가 부슬부슬 ! 실망이 크다. 비가 나리는 것을 보고 이 새벽에 출발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할수 없이 다시 침대에 누워 생각에 망서리다가 한시간쯔음 다시 창밖을 보니 비나리는 구름속으로 파란하늘이 조금 보인다. 준비후 후다닥 빡을 나와 출발 !
피재(삼수령)에 도착하니 07:30 경인데 비는 그친듯 싶었다. 조금을 걸으니 비가 제법 온다. 아 ! 오늘 산행도 궂은 비에 젖는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3시간쯤 걸어 건의령이 나오고 조금을 더 걸어 오르니 표대봉이다. 신발은 젖어 질퍽이는데 비는 그치는 듯 싶다 오후 1시가 가까와 구부시령에 이르니 비는 완전히 그쳤다. 비옷, 판초우의를 벗어 걸어 널고, 젖은 양말도 벗어 새로운 양말로 갈아 신고 점심을 하면서 쉬었다. 대간 좌측으로는 하늘에 구름이 끼어 있지만 멀리 산이 뚜렷이 보여 좋았으나 대간 우측으로는 동해쪽으로위도 구름이요 밑으로도 구름이 틈이 없다. 다만 우측은 경사가 심하다 못해 깍아지른 절벽임을 알수가 있었다.
짐을 챙겨 다시 걸으니 신갈나무에 붙은 노루궁뎅이버섯이 여럿 눈에 뛴다. 보이는 대로 하나둘 채취를 하니 한봉지 가득하다. 이러면서 가는데 문득 솟은 산위에 이르니 덕항산이란다. 멀리 삼척시가 훤히 내다보이고 그곳 산불감시초소에 올라 사방을 주시하니 참 좋았다. 깍아지른 산아래 절벽 밑으로 육지와 동해가 저아래로 보인다. 덕항산 그 차체는 볼품이 없다. 그곳을 지나 몇발짝 걸으니 오른쪽 밑으로가 심상치 않게 내려다보인다. 간담히 서늘하게 저아래 저 깊은 곳에서 백두대간 이 길은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 우측은 다만 평범한 정도의 일반적인 산악인데.....
말하여 환선굴로 유명한 유원지이다. 등산객들도 제법 많다. 수십길 높이의 철계단을 피솟아 올라와 덕항산까지 갔다가 지암재에서 환선굴방향으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대간길 위에서 내려다 본 우측 아래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감사에 젖을 사이도 없이 지암재를 지나 대간길을 간다. 다시 구름이 일더니 비가 오기시작한다.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 구름이 앞뒤를 가리는 가운데 앞에서는 노루가 뛴다.
비는 오락가락 반기는 이 없는 산중에
노루도 날보고 줄행랑을 놓는데,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
무엇을 찾으려 정함도 없이
안개구름 속만 가리키며 가는가 !
그런가 싶은데 갚자기 구름이 걷히면서 좌측으로 끝없는 고랭지채소밭이 나타나고 그림같은 마을이 나타난다. 말하여 지도를 살펴보니 귀네미골 같다. 시야가 좋은 잠시 전망을 하며 지형을 눈에 익혀 둔다. 구름은 다시 앞을 가리고 짐작코 가는데 이쪽 밭길이 길인지 저쪽 밭길이 대간인지 길표시 리본도 있다 없다 분간이 서지를 안는다. 한참을 헤메며 밭 한가운데 높은 언덕인듯한 곳에 머무니 멀리 구름이 개여 있고 대간꾼으로 보이는 산악인이 판초우의를 뒤집어 쓴채 길을 간다. 야호하며 부르니 대답을 하고서로가 길을 확인하여 쫓으니 그들도 길을 잃고 2시간을 헤맸단다.
그러면서 겨우 큰재를 찾아 나아갔는데 시간은 오후 5시가 넘고 있었고 날은 곧 어두워지려나 보다. 다시 마음속으로 무장을 하고 판초우의도 벗어 정리하고 뛸 자세로 걸었다. 한시간을 더 가니 초라하게 황장산이라는 표지석이 나오는데 시간이 6시가 넘는댜. 황장산에서 달려 내리니 오후 6시 30분경 댓재에 이르렀다. 태백, 정선에서 삼척을 넘는 고개인데 삼척 동해쪽은 깊고 태백, 정선은 지대가 완반하며 높다. 이 고개는 바람이 세어 넘어질듯한 자세다 한여름에도 더위를 식히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한밤을 익힌단다.
새벽을 찾아 이곳까지 오면서 항상 걱정이듯이 날씨가 좋으려나이다. 댓재에 다 이르러도 안개가 자욱한 것이 일기를 가름할 수가 없었다. 댓재에 이르자 예상밖으로 날씨는 좋았다. 구름은 끼어있었지만 동해 멀리 구름사이로 햇볕이 쏟아지고 멀리까지 시야가 좋았다.
출발지인 이곳의 두타산산신각을 둘러보고 몇발짝 옮기니 발아래 삼척, 동해가 보기좋게 내려다 보이고 여기저기 산속에서는 상스러운 구름이 피어나듯 장관이다. 한참을 내려다보며 즐기다가 발을 옮기고 여유를 즐겼다. 길은 제초작업을 하여 발을 옮기가가 좋았고 일기는 상쾌하다.
멀리 두타산 정상 구름이 걷히듯 가리듯 숨바꼭질하듯 하는 사이 1243봉에 이르러 누구의 묘이런가 대간길을 막아서는 듯 보기좋게(?) 자리하였으나 좀그랬다. 아무쪼록 그 후손들은 잘되었는지 묻고싶다. 그런생각도 잠시 12:20 경 두타산 정상에 올랐는데 갑자기 구름이 몰아쳐오고 시야는 밝지를 못하다. 두타산 정상 표지석은 모양새 있었으나 그 앞이 명당(?)인지라 묘지가 1234봉 묘 못지않게 크다. 그런대로 둘러보며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려도 구름은 동해쪽에서 쉬지않고 넘어와 시야를 좀처럼 내놓지 않는다. 날씨가 좋으면 사방으로 조망하기가 그지없다고 들었는데 그러려니하고 한참만에야 아쉬움 뒤로하고 발걸음을 쟀다.
그래도 잠시 빗겨가는 구름사이로 시야는 좋아 이곳에서의 사방경관이 좋음을 알수 있었다. 그러나 그 좋다는 무릉계곡을 내려다 볼수는 없었다. 청옥산에 이르러 시간을 보니 12시가 넘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며 지도정치를 하고 예정시간을 체크하여 보니 산행속도가 너무 늦은 것을 알았다. 아무리 빨리걸어도 해가 질듯한 ........
서둘러 달리는 길에 그래도 바위 절벽이 나타나고 구름이 빗겨 놓은 고적대가 나타나는데 걸음을 빨리할 수는 없었다. 볼수록 이곳 고적대 가는 길은 참 좋네. 그러면서 고적대에 이른 것이 13:35 경인데 그래도 그위 바위에 올라 여유를 챙겼다. 바위가 무너져 내릴듯 포개져 쌓였고 아래로 절벽을 이뤄낸 경치야 산맛중 최고다.
고적대를 뒤로하고 갈미봉을 향하여 걸음을 빨리하였어도 14:40 이되었다. 될수 있으면 야간산행을 하지 말하야 한다. 걸음은 뛰었다. 이 구간은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고 머뭇거려서는 안되는 구간이다. 지리산 구간을 제외하고는 아마도 두번째 정도 길다. 어디를 달리는지 모르게 뛰는데 임도인지 대간에 접하여 나오고 군 장교가 사병 2명을 대동하고 지도를 펴 놓고 지형정찰을 한다. 나를 보고 안되었는지 원하면 백복령까지 태워다가 주겠단다. 감사하지만 대간종주하는 것으로 그냥 가겠다하였더니 아무리 빨라도 4시간이상 걸린단다. 시간은 오후 5시에 가까와 가고 있었는데... 어쩌나 ?
상월산인지 무슨 봉우리는 지났는데 표식은 없다. 오후 6시 ! 어두워진다. 그런데도 전망 좋은 곳이 있어 둘러보고 또 달음질 치는데 안개구름이 몰려와 길을 덮는다. 6시 반 ! 랜턴을 준비하여 밝히고 길을 살핀다. 구름에 가려 코앞 길 밖에는 아무것도 없고 시야가 너무나 좁다. 7시 ! 칠흑같이 어둡고 사방은 너무나 조용하다. 지형의 특색이 있거나 이정표가 있어야 위치 확인이 되는데 아무리 해도 앞으로 난 길밖에는 아무것도 모르겟네 ! 7시 반 ! 뛰어 달리니 멀리서 차량소리가 들린다, 백복령이 가까왔나 ? 그런데 아무리가도 차소리는 더 멀어질뿐 백복령은 없다. 8시 ! 차 지나는 소리가 우측 길옆에서 가까이 들리더니 갑자기 앞에 도로가 확 나온다. 백복령이다. 그러나 백복령 표지는 없다.
오늘 산행시간은 모두 13시간이 소요되었다. 처음 출발지에서부터 너무 여유있게 행보를 시작한 것이, 아니 어쩌면 오랫만의 맑은 날씨의 산행에 도취되어 가야할 길의 시간 개념을 잊어버린 것이 오늘 산행의 무리였다. 너무나 긴 거리를 청옥산에서부터 무리하게 뛴 것이 체력낭비를 갖어 왔고, 다리가 많이 아팠다. 다행인 것은 백복령에서 임계면 가까이에 백복령산장이 있어 쉽게 숙소를 찾아 가 숙소를 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잘 씻고 푹 자고 다음날 여유있게 일어났다.
백복령에서 삽당령 구간은 짧다기에 어제 무리함도 있어 푹자고 일어나 식당에서 아침식사까지 하고 늦으막하게 아침 7시 반경 삽당령을 출발, 산행을 시작하였다. 대간은 자병산으로 이어지는 것이나 이곳은 석산이 개발되고 있어 폭파위험 경고문이 길을 가로막고 대간표지리본은 달리 안내되고 있었다. 짙은 아침안개구름으로 잠시 숲을 나와 자병산 석산도로에 이르렀으나 한치 앞이 안보여 안내리본을 찾을 수가 없었다 30여분을 헤매고 있을 때 안개구름이 걷혀 겨우 철탑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 나가니 길은 순탄하고 좋았다. 아침 안개구름이 걷히고 나니 날은 맑고 상쾌하였다. 석산에 그것도 상당히 파헤쳐져 장관인 자병산이 우측으로 보이고, 좀 인간문화가 대자연을 허물다니 한편 안좋았다. 이런 생각과는 달리 길 우측으로는 카르스트지형으로 자세히 눈여겨 불소 밖에 없었다.
카르스트지형 !
안내지도에는 이곳 대간길이 두길로 표시되어 있어 의아하게 생각하였는데 오늘서야 카르스트지형이 무엇인지 알수가 있었다. 대간 정맥을 종주하는 산악인들은 그 뜻을 이야기하면서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하여 산 스스로가 물을 가르고 마루금을 이룬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곳에서는 그 山自分水嶺이라는 말이 맞지가 않는다. 즉 산이 꺼져 주저앉은듯 움푹패여 들어가 물없는 웅덩이 형으로 그러나 그 규모는 대단히 커 한참을 둘려 살펴보아야 비가와 물이 채여도 빠져 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곳에는 빗물이 떨어져도 어느쪽으로도 흘러가지 않고 땅속으로 그냥 스민다. 그러면서도 이런 지형이 계속 이어진다. 따라서 대간마루금은 외길이 아니라 이 분지 양쪽끝의 그것이다. 어떻든 땅이 꺼진듯 대단하다
10:00 경 생계령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이곳을 조금 올라 전망좋은 곳이 나오고 아마 022봉같다. 카르스트지형은 끝나는 듯 싶다. 헬기장 안내문이 보이고 백두대간의 정의를 적은 안내문이 나오는데 이렇게 쓰여있다.
백두대간과 석병산
백두대간이란 우리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산줄기로서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의 물줄기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진 산줄기를 말한다. 1600 여 Km에 달하는 백두대간은 백두산을 뿌리로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한개의 정간, 13갱의 정맥으로 갈라진다. 마치 나무의 뿌리와 가지, 줄기가 펼쳐지는 것과 같다. 백두대간과 13개의 정맥들은 우리나라의 산중기뿐만아니라 물줄기를 구분짓는다. 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는 모두 14개이다. 이것들은 10갱의 큰 강을 가늠하는 울타리들이다.
석병산의 높이는 1055미터이며 백두대간이 지나는 하나의 산줄기로 웅장함과 화려함이 겸비된 산이다
석병산이 얼마남지 않았나보다 한시간쯤을 더 가니 오후 1시 50 분경 바위가 나타나고 석병산이려니 하고 올라서니 그 넘어 규모를 헤아리고 어렵게 큰 바위산이 보인다. 날카로은 바위로 웅장함이 말할수 없음이요 솟은듯 박힌듯 하며 어떤 조화인지 수려함이 장관이다. 한참을 매료되어 이리보고 저리 사진을 찍으나 다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 지체할 수는 없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하여 가니 뒤로 저만치 석병산이 다아 나타나는데 신선인들 다시 돌아가 석병산에 자리틀고 놀고지고싶다. 한참을 뒤돌아보고 또돌아보고 그러면서 두리봉을 언제 니났는가 가는데 숨은듯 두꺼비가 뛰는듯 한 바위가 멀리나타나보인다. 상당히 부드러운듯한 형상이다. 그냥 복두꺼비 바위라하자 !
오늘은 날씨도 좋고 좋은 볼꺼리도 봤다 생각하는데 어느덧 삽당령에 이르고 시간은 오후 4 시 20 분 ! 이곳에서는 임계가 가깝겠지만 특전미사도 할 겸 강릉으로 향하엿다.
26. 백두대간 제 25 구간 ( 삽당령 ~화란봉 ~ 닭목재 ~ 고루포기산 ~ 능경봉 ~ 대관령 )
2004. 9. 26. 06:00 ~ 17;00 (산행시간 11 시간 ) 산행거리 25. 5 Km
날씨는 괞찮은 듯 하였다. 잡목 숲에 길은 뚜렸하였지만 별 특이함이 없이 산행은 계속되었다. 지도를 보면서 자형을 익혀 갈려고 하였지만 지도상의 석두봉을 언제 지났는지 10시가 넘어 가파른 길을 한참 올라 가고 있는데 부부가 산행을 하며 쉬고 있어 보니 화란봉이란다. 11시가 다 되었다. 지도를 꺼내 다시 보니 닭목령이 가까왔고 그 부부가 하는 말이 3, 40분이면 닭목령까지 갈수 있단다. 인사를 한후 발을 몇발짝 옮기니 시야가 좋게 트이고 닭목령이 보기좋게 내려다보이는 길로 내려오게 되는데 멀리 대관령 넘어까지 목장용지도 보인다. 지금까지의 지루함을 달래가며 닭목령을 향하여 즐기고 가기에 충분하였다.
11:40 경 닭목령에 도착, 포장도로로 길이 좋았고 이정표, 백두대간 안내표지판도 뚜렸이 잘 설치되어 있다. 지나온 삽당령까지가 13.5 Km이고 능경봉까지가 10.2 Km이다 다시 숨을 고루고 나서 길을 따라 가다가 목장용지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30여분을 올라간다. 그렇게 가다가 산길로 접어드는데 왕산제1쉼터라고 표시하여 놓았고 왕산제2쉼터까지는 2 Km로 표시하여 놓았다.
2Km 간격으로 쉼터를 하여 놓아 왕산면에서 이곳을 안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것 같다. 관계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3시간 가까이 올라가 왕산고루포기쉼터로 표기된 곳에 이르렀는데 해발 1238 m !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이 고루포기산 정상이다. 쉼터로 표기하지 말고 정상표시를 하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정상에서 조금을 걸어 내려오니 또 다른 이정표가 나오는데 아마 왕산면의 관할이 아닌듯 싶다 왕산면은 고루포기 산에서 그 경계가 끝나고 .....하여 왕산고루포기쉼터라고 정상에 크게 영역표시를 한 듯 싶다. 어쨌거나 그곳에서부터 하산을 하는데 갑자기 안개구름이 앞을 휘젔고 전망이 가린다.
고루포기산을 1Km 쯤 내려와 대관령을 한 눈에 바라볼수 있는 전망대인가본데, 혹시라도 전망이 트일까 서서 망서려보았는데 멀리 차소리만 왕왕들려오고 안개구름이 추우리만큼 점점 더 짙어진다. 능경봉으로 이어지는 대간길 바로 밑으로는 신 영동고속도로가 터널을 내고 지나가고 있었으며 내일 모래 추석을 기다려 가는 차의 행렬이련가 차 소리는 더욱 소리가 높다. 그런대로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 16:40 경 능경봉 정상에 다다랐다. 구름에 휘말려 정상을 잘 볼수는 없었지만 대관령까지1.8 Km가 남았고 이곳은 사람들이 제법 많이 올라오는 곳인가보다.
대관령까지 내려가는 길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길 정비작업이 한창이다 35분을 걸어내려가 비석이 있고 이곳까지 올라오는 길이 나 있어 차량도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식사도 하고 있고 그곳에서는 약수를 받을 수 있겠끔 시설도 잘하여 놓았다. 빈병에 약수를 채우고 있는데 그곳행락인이 묻길래 삽당령에서 오는 길이라 하였더니 믿지를 않는다.
그곳에 있는 능경봉 안내문은 이렇다.
능경봉은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와 강릉시 왕산면 사이의 백두대간에 위치한 해발 1123m의 고산이다. 백두대간은 설악산(1708)과 오대산(1563) 황병산(1407)을 일으키고 대관령에서 몸을 다소 낮췄다가 남쪽으로 뻗어 능경봉과 고루포기산(1238)을 이룬다. 산정에 영천이 있어 기우제를 지냈고 이봉에서 맑은 날엔 울릉도가 보인다고 한다.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겨울에는 무릎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는 곳이나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눈 덮인 겨울산을 즐길수 있는 곳이다. 대관령 줄기는 다른 산에 비해 산행거리가 비교적 짧고, 대관령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수시로 볼 수 있어 북쪽의 선자령과 함께 각광받는 등산로이다. 능경봉산행 들머리는 해발 850 m가 넘는 대관령 고개마루인 대관령(하)휴게서에서 출발하여 능경봉을 돌아오는 코스와 도암면 횡계리 오목골에서 출발하여 고루포기산을 경유 능경봉을 지나 대관령(하)휴게소로 하산하는 방법이 있다. 대관령(하)휴게소에서 약 700 m를 오르면 약수터를 만나게 되는데 99년 동계아시안게임을 개최하기에 앞서 대회를 치를만큼 풍족한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러자 횡계지방 주민들이 이곳 약수터에서 기설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 샘터에서 받아온 정결한 물을 제사에 사용하였다.
약 5분들 걸어 내려오니 대관령(하)휴게소에 이르렀는데 위령탑이며 대단한 규모의 시설물이 있으나 안개구름이 시야를 가려 잘 보이지 않고 바람이 센대다가 비가 오는듯 싶어 제대로 볼수가 없었다. 휴게소는 폐쇄되어 쓸쓸하였고 과거 이곳으로 달리던 차량은 기억에도 사라진 듯하다.
27. 백두대간 제 26 구간 ( 대관령 ~ 선자령 ~ 곤신봉 ~ 매봉 ~ 소황병산 ~ 노인봉 ~ 진고개 )
2004. 10. 16. 06:40 ~ 15:20 ( 산행시간 8시간 40분 )
지난번 구간종주시 이곳에 도착하여 내려왔을 때는 짙은 구름안개와 바람, 그리고 추위로 자세히 살필수도 없어 이곳을 부랴부랴 빠져나갔지만, 오늘 이곳에 도착하니 날씨는 맑고, 대충보아도 전망이 뚜렷한게 참 좋은 느낌을 준다. 얼마나 큰 것인지 표현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이 풍력발전단말기이다. 아침 이른 시간이지만 바람에 힘을 얻어 그 큰 날개가 힘차게 돈다. 얼마마한 전력을 생산하는지는 내가 알바 아니지만 보기는 좋다. 그외 고속도로기념비등이 보이고...... 이러한 것들을 뒤로하면서 등산로를 찾아 길을 갔다. 대관령국사성황당 입구 표지석을 돌아
대관령은 이미 조령구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영동과 영서를 구별하는 령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하다보면 태백에 접어들면서부터 동고서저(東高西低)라 했나 이는 백두대간 저 멀리 동해바다나 영서지방 멀리서 이곳 백두대간을 바라보고 한 말인듯, 이곳 백두대간 마루금에서보면 동쪽은 그 경사가 급하다 못해 깍아지른 절벽의 연속이요 서쪽으로는 산은 많되 높낮이로는 보편적이다. 따라서 종주 안내에는 동쪽으로의 탈출은 절대 금하고 있다. 막상 이곳을 접어들면서 느낀 것은 동에서 서로 바람이 불거나, 서에서 동으로 바람이 불거나 또한 구름이 가거나 이곳에서는 그 기세를 백두대간 마루금을 넘지 못한다. 동에서 구름이 바람을 안고 급히 넘어오다가도 서쪽으로 볼아가지 못하고 또한 반대로도 그렇다. 백두개간을 종주하면서 아마 누구나가 느끼는 영동과 영서의 일기상황이다.
위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통신중계소가 있는 지역을 지나고 나무도 없는 목장지 목초생산이 끝난 허허벌판을 시원스레 밟아가며 이색적인 구간을 지나간다. 말로만 듣던 이곳을 나도 처음 지나가는지라 한눈에 다 보여도 몸을 한바퀴돌아 또보고, 또보고 그래 좋은듯 지나간다.
08:30 경 선자령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해발 1157m 사방 멀리 잘 보인다. 선자령 정상 표시도 잘하여 놓았지만 저 멀리 저 멀리까지 잘 보여 좋앗다. 북서쪽 아득히 저 멀리에는 대관령에서 있던 풍력발전단말기가 4개나 서있고 잘돌아간다. 오늘 저 곳을 지나려나 10여분을 장관에 취해 둘러봄에 좋음을 뒤로하고 앞으로 앞으로 갔다.
09:40 경 이리걷고 저리걸으며 즐거운 걸음이 곤신봉에 이르렀다. 의아스럽게 이곳에까지 차를몰고와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삼양목장 입구에 입장료를 내면 차를 몰아 이곳까지 온단다. 참 즐기기가 좊을 듯 싶다. 그러나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 마냥 즐거움을 찾겠느냐. 이런 생각도 잠시 갑자기 동해에서 검은 구름이 몰아쳐 오더니 사방을 검게 죽이고 이어 비가 뿌린다. 얼른 판초의를 입었지만 심상치 않다. 한치 앞이 안보인다 길을 따라 가기는 가는데 멀리서 목초생산하는 장비소리는 들리는데... 삼거리가 나왔는데 ..... 어떻게 방향을 잡아 가야 할지 목막한데 그 구름속을 뚫고 차량도 지나간다. 아무렇게나 길을 찾아 나가는데 수대의 차량이 서있다. 머뭇거리며 몇발짝을 더 옮기는데 꺼붕한 구조물에 전망대 쉼터라고 써 놓았다. 비는 멎어 판초의를 걷고 조그만 그 쉼터로 들어가 좀 쉬었다가기를 청하니 반갑게 맞았다.
커피를 한 잔 시키고 그 안에 리본들이 모아져 있어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 리본을 하나 주고 가려니 40은 넘으듯한 여주인이 그냥 가느냐고 묻는다. 정붙이고 갈수는 없지 않느냐 되물으며 그곳을 나와 가려니 그곳 밖에 아무렇게나 시가 한편 쓰여 있다.
귀떼기청봉
나는 설악 상상봉에 가보지 못했네
이 산 밑에 나서 마흔을 넘기고도
한 해에 수천명씩 올라가는 그 곳을
나는 여태 가보지 못했네
그곳에서 세상이 훨씬 잘 보인다지만
일생을 걸어도
오로지 못할 산 하나는 있어야 겟기에
마음속 깊은 곳 대청봉 묻어놓고
나는 날마다 귀떼기청봉쯤만 바라보네
위 시를 읽어보고 어둠을 가르며 갈길을 가려니 바위와 같이 큰 커다란 돌에
"日出壯觀 茫茫大海 希望의 展望台 해발 1140 m " 라고 쓰여 있다. 일컬어 이곳이 동해전망대라는 곳이다 그런데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를 누가 시비라도 하는가 지리산 출발부터 이곳까지 오면서 왜 나에게 좋은 날씨는 그렇게도 없는가보다 이곳 전망대가 좋기로서니 나는 보아서 안된단 말인가 ! 원망은 원망을 낳는다고 잠시 잊고 그냥 갈길을 간다 목장이 좋은지 더 넓은지 나는 알길 없다 ! 가고 가면 이 구간도 끝낼 것이요 내가 가는 이 지점이 어딘지 신경쓰지 말자 ! 네멋대로 하거라 인지 비는 또 뿌리네 ! 판초의를 또 걸치고 한 30여분 가다가 벗고 맞은편에서 오는 대간종주자들과 빗겨 인사를 하고 매봉을 지났는지, 소황병산 어디인지 알지 못하였고 오후 2시가되면서 멀리 앞에 노인봉이 보이고 노인봉산장에 들려 막걸리라도 먹으랴 하렸더니 관광객이 즐비하여 포기하고 노인봉을 오르니 추위에 떨며 많은 인파가 식사를 한다. 서쪽 능선을 따라 1시간 20여분쯤 가니 진고개가 나오고 오후 3시 20분이네 !
28. 백두대간 제 27 구간 ( 진고개~동대산~두루봉~신배령~만월봉~응복산~약수산~구룡령 )
진고개에서 동대산까지는 자연휴식년제로 출입금지구간이다. 진입을 못할까 두려워 날이 밝기전에 진고개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다. 작은 램프에 의지하여 길을 찾아 오르는데 상당히 가파르고 길의 훼손이 심한듯하다. 자연휴식년제 ! 글쎄 무슨 뜻인지 모를바는 아니지만 무조건 통제하면서 산을 방치하는 것보다는 훼손된 등산로를 정비하고 입장료를 받았으면 한다.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들의 등산에 대한 욕심은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내가 지금 이 길을 접어 들었듯이........ 통제만 하였지 하나도 복원 정비하지 않았다 !
시간은 오전 7시 10분, 1시간 10 여분만에 동대산에 이르렀다. 해발 1433.5 m 동피골야영장에서 오르는 길과 내가 올라온 진고개 방향 그리고 두루봉가는 길과의 삼거리 길이다. 이곳에도 진고개방향 1,7 Km 구간은 2003.1.1. ~ 2005.12.31.까지 3년간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다. 어찌하였거나 가파른 길 올라오느라 나그네의 몸은 땀으로 얼룩지고 날은 밝았지만 몰아치는 구름에 가려 시야는 좋지 않다. 좀더 시간이 흐르면 괜찮겠지 하면서 대간나그네 길을 가네 !
이곳은 오대산이라고 한다. 오대산은 5개의 산에 둘러쌓여 부르는 이름인데 동대산이 그 하나요 지금 내가 향하고 있는 두루봉(해발 1421.9 m)이 그 둘이요. 대간길에 빗겨나가지만 상왕봉(해발 1491 m) 이 그 셋이요, 비로봉(해발 1563.4 m)이 그 넷이요, 호령봉(해발 1561 m)이 그
다섯이다. 그러나 흔히들 비로봉을 오대산이라고 한다. 이곳은 게방산(해발 1577.4 m)을 포함하여 해발 1500 m의 산 군락으로 상당히 높으며 묵고묵은 신갈나무가 괴목을 이루며 그 형상이 먹구렁이를 닮았는가 하면 멧돼지형상을 하였고 산신령의 신비스런 지팡이의 모습으로 별천지는 별천지이지만 실로 별천지를 간다고 생각이 든다.
08:20 경 앞에 하얀 것이, 바위만한 것이 눈에 띄는데 바위는 바위다. 우리가 흔히 차돌은 많이 보아왔는데 좀 커야 축구공 정도요 주먹만한 것 이외는 본일이 없다. 그런데 이것은 커다란 바위다. 이름하여 큰차돌배기 지역으로 이정표가 있고 해발 1230 m이다. 동대산까지가 2.7 Km요, 두루봉까지가 3.9 Km이다. 산세는 완만하게 이어지며 봉우리 같지 않은데 이정표가 있고 두루봉이다. 10 : 15 경
잡목숲을 지나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면서 산행에 어려움 없이 가는데, 상당히 오래된 이정표가 쓰러지지 않고 기웃뚱 서 있고 이름하여 신배령이네 ! 두루봉까지가 2.5 Km, 응복산까지가 4.8 Km이다. 날씨관계로 아직 시야는 멀리 확보되지 않지만 앞에는 높은산이 즐비하게 버티고 서 있다. 걷고 걸어 완만하게 계속 이어 오르는 길을 가는데 뒤로 시야가 트이고 전망이 좋다. 한숨을 돌려 조망한 후 몇발짝 옮기니 응복산이다. 떨어져 나간 이정표를 주어드니 목적지인 구룡령까지가 6.7 Km이다. 시간은 오후 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고 아직도 3시간 이상은 더 가야 한다. 응복산 정상에서도 전망은 좋아 온 길을 뒤돌아 보며 동대산은 안 보이고 왼 쪽 저기가 두루봉 오른쪽 저 높은 곳이 계방산. 그 사이에 있는 비로봉 이렇게 집어보았다.
응복산에서 약수산까지 가면서 시야가 너무 밝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온 길을 재고 그러면서 갔다. 사람이 저 먼 거리를 어떻게 걸어 왔을까 ! 아득한 저 멀리 내가 걸어 온길이 까마득하게 숨박꼭질하듯 어른거리네 ! 약수산에 이른 것이 오후 4시 20여분, 이제까지 걸어온 길의 전망을 약수산 뒤로 묻어두고 내려오는데 여러 인부들이 등산로를 정비하고 있다. 정당한 보수를 받고 하는 작업이겠지만 고마웠고, 이런 작업을 하게 한 당국에도 이길을 가는 산객으로서 너무나 고마왔다. 멀리 차소리가 요란하고 이어 구룡령으로 이어 달리는 관광차량이 즐비하다. 때 늦은 단풍철이지만 설악산 관광왔다가 한계령이 막혔는가 지금은 이곳 구룡령으로 넘나든단다.
오후 5시경 구룡령에 이르렀는데 우선 휴게소에 틈없이 관광차량이 가득하다. 구룔령은 그 새로난 도로 위로 대단위 규모의 동물통행로가 나 있어 생태계보존에 심혈을 많이 기울인 듯하다
첫댓글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의 장도에 경의를 표하며,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참고로 산행정보난에 대간과 관련된 내용을 올려 드립니다.
와~~~우..굉장합니다..화이팅!!!
화이팅~~~~~~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참 멋진 종주계획이네요...안전산행..그리고 계획된 바 이루시길 박수 보태며 작은 힘이 되었음하네요...^^*
저두 이 다음에 여건이 되면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 리본을 따라 가볼거유~ 잘 붙여놔유~~ㅎㅎ
부럽군요!!!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다녀오시길....저도 언제가 여건이 되면 꼭 해보고 싶은 것중에 하나입니다.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 글귀가 멋있는것 같으면서 왠지 쓸쓸해 보이네요. 동반자가 있으면 조으련만 울회장님 홀로 보내기가 넘 아쉽고. 그래두 잘할것은 당연지사지 만. 나두가고싶은대.시간이 없어서아쉽다 . 우리회장님! 화이팅..... 다음에 저갈때 잘가르쳐 주세유? 건강한 모습으로 담에 봐유
멍석바위님도 참!!! 회장님께서는 홀가분히 출발해서 현지에서 조달할 계획이신걸^^....저도 바랑하나 짊어지고 만행하는 스님처럼 그렇게 폼나게 한번 가보고 싶은데...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그 용기 부럽군요. 일정이 맞을때 나도 가끔 동참 할께요.
회장님. 화이팅 하세요!! 지두 마음이 굴뚝 같은데....
그리고 일정표를 그때그때 카페에 올려주세요 시간되면 따라가보려구요
와우~~ 마음이 함께 따라 갑니다....
안전산행하시고 성공하시길 마음으로나마 기원 드립니다..^*^..화이팅!~~~
저한테 지리산 이미지 약도가있는데 혹시 도움이 되지않을까요?...
부럽습니다.....가끔은 동참해보고 싶은데 될까 모르겠네요~~~꼭..이루세요....!!!!
비오는데는 위험해유. 아무도없는데 청산에 홀로간다는것이 잘했씨유. 다음에 가면돼지뭐
우와~~~~~ 대단하십니다 정말부럽고.. 찬사를 거듭거듭보냄니다. 울회장님 화이팅! 계속해서 산행후기 부탁해유
이제 주중도 하세요? 그럼 지금은 어디에 가고있나요?
대단히 고생 하셨습니다.한편 부럽기도 하구요.앞으로도 건투를 빕니다.
왜 카메라.리본[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잔치국수. 얘기는 없나유?
초목이 우거진 푸른산, 벽산 , 청산에 살어리랏다. 작가님이 동행하시는지요 청산에 홀로가는 나그네 설악의 하늘벽 움직이려는 감동의 물결 환희의 태양 떠오릅니다.
시작하셨다는 소식 마치셨다는 얘기 모두들었습니다 인쇄해서 구간별로 꼼꼼히 다시 읽어 보려합니다 희양산 갔을때 꼬리표 보았습니다 뭉클합니다 언젠가 뒤이어 꼭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