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를 통해 보는 일본 문화, 일본 문화를 통해 보는 서브컬처
서평자 - 백지홍
발행사항 - 478 호(2020-02-28)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청구기호 : 306.0953-19-2
서명 :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편·저자 : 우노 츠네히로
발행사항 : 워크라이프(2018-12 )
목차
머리말
1강 서브컬처의 계절과 그 마지막
오타쿠를 통해 고찰하는 일본 사회
서브컬처와 전후 사회
서브컬처 시대의 도래
캘리포니안 이데올로기의 등장
서브컬처 시대의 종언
지금 서브컬처적인 사고를 경유하는 의미
‘오타쿠’와 ‘가와이이’의 전후 일본
20세기 사회를 만든 자동차와 영상
전후 일본의 유형성숙성이 투영된 오타쿠 문화
2강 ‘주간 소년 점프’의 끝나지 않는 일상
전후 일본과 남성성의 문제
아톰의 명제
무늬만 성장, 토너먼트 배틀 형식
1990년대 중반에 터져 나온 토너먼트 배틀 형식에 대한 의구심
3강 ‘점프’의 재생과 소년 만화의 끝
키바야시 신과 ‘매거진’의 역습
지하철 선반 위의 ‘점프’, 라면 가게의 ‘매거진’, 만화연구부의 ‘선데이’
‘바람의 검심’과 역사의 끝
‘은혼’과 전후 일본
‘원피스’, 세로 성장 대신 가로 확장
‘유희왕’, 카드 게임적 가치관의 도입
‘죠죠의 기묘한 모험’ ‘데스 노트’, ‘힘겨루기’에서 ‘지혜 겨루기’로
‘헌터×헌터’, 제로년대 ‘점프’의 총결산
4강 보론: 소년 만화의 여러 문제
‘바쿠만.’의 나나미네 군은 정말로 ‘악’인가?
다카하시 루미코와 방황하는 남성성
5강 보우야 하루미치는 어째서 졸업할 수 없나---최고의 남자와 새로운 멋의 미래
‘크로우즈’와 양키 만화의 멋
보우야 하루미치는 졸업할 수 없다
‘이니셜D’, 성장에서 모라토리엄의 즐거움으로
소년 만화는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
6강 ‘철인 28호’에서 ‘마징가Z’로---전후 로봇 애니메이션은 무엇을 그려 왔나
전후 일본에서 기형적인 진화를 이룬 탈것으로서의 로봇
‘철인 28호’, 남자아이가 밀리터리에서 본 꿈
‘마징가Z’, 탈것으로서의 로봇과 성장 욕구
장난감과 로봇 애니메이션의 밀월 관계
7강 토미노 요시유키와 리얼로봇 애니메이션의 시대
로봇 애니메이션에 리얼리즘을 도입한 ‘무적초인 잠보트3’
로봇의 의미를 바꾼 ‘기동전사 건담’
‘삼각관계의 BGM’으로서의 최종 전쟁,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건담’ 이후의 로봇 애니메이션, ‘장갑기병 보톰즈’ ‘성전사 단바인’
8강 우주세기와 어른이 되지 못한 뉴타입
‘격분한 젊은이’ 카미유가 맞이한 충격적인 결말, ‘기동전사 Z건담’
성장 이야기를 굳이 드러내놓고 부정한 ‘기동전사 건담 샤아의 역습’
9강 전후 로봇 애니메이션의 ‘마지막’의 시작
로봇의 의미가 탈취된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전후 로봇 애니메이션의 총결산 ‘신세기 에반게리온’
1990년대 중반, 임계점에 도달한 로봇 애니메이션
10강 이카리 신지와 히이로 유이의 1995년
로봇 애니메이션을 새로 쓴 1995년의 ‘신기동전기 건담W’
‘세인트 세이야’에서 ‘사무라이 트루퍼’, 그리고 ‘건담W’로
11강 ‘세계의 마지막’은 얼마나 소비되었나---‘우주전함 야마토’와 오컬트 붐
냉전하의 리얼리티와 ‘우주전함 야마토’가 그린 것
‘SF의 의미’가 빠져 버린 마츠모토 레이지의 애니메이션과 1차 애니메이션 붐
SF 대신 부상한 오컬트라는 모티프
12강 교실에 ‘전생 전사’들이 있던 시절---오컬트 붐과 오타쿠적 상상력
츠노다 지로와 서브컬처로서의 ‘심령’
1980년대 오컬트 붐 절정기와 ‘나의 지구를 지켜줘’
‘핵전쟁 이후의 미래’를 모티프로 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북두의 권’
초능력 묘사와 종말감을 더한 ‘아키라’
13강 러브코미디와 가공 연대기의 갈림길에서---‘완전 자살 매뉴얼’과 지하철 사린 사건
1980년대 러브코미디의 공기와 ‘변덕쟁이 오렌지 로드’
1980년대 말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과 과거 최대의 오타쿠 때리기
‘완전 자살 메뉴얼’ ‘끝나지 않는 일상을 살아라’로 보는 1980년대의 시대정신
세계 여러 종교와 서브컬처의 도구를 섞은 옴 진리교
옴 진리교의 폭주와 ‘세계가 아니라 자신을 바꾼다’ 사상의 패배
지하철 사린 사건, <신세기 에반게리온>, 윈도우의 1995년
14강 나데시코와 우테나---3차 애니메이션 붐의 풍경
‘기동전함 나데시코’와 ‘소녀 혁명 우테나’---3차 애니메이션 붐의 쌍벽
애니메이션으로 근대문학적인 내면을 그리려 한 ‘소녀 혁명 우테나’
15강 세카이계와 ‘기동전사 V건담’의 속박---전후 애니메이션이 그린 남성성
‘결말에서 아스카에게 차이지 않는 에바’로서의 세카이계 작품군
전후 애니메이션의 자기 파괴로서의 ‘기동전사 V건담’
16강 세카이계에서 일상계로---‘스즈미야 하루히’와 오타쿠적 상상력의 변질
스즈미야 하루히의 본심
프레 ‘스즈미야 하루히’로서의 ‘린다 린다 린다’
‘러키☆스타’, 새로운 타입의 오타쿠의 자화상
이상화된 일상을 그린 ‘케이온!’
17강 지진 재해 후의 상상력과 애니메이션의 미래
오타쿠의 캐주얼화와 ‘전차남’의 히트
‘마크로스’의 광경을 현실로 만들어버린 동일본 대지진
‘현실 = 아이돌’이 ‘허구 = 애니메이션’을 추월했다
‘세계의 마지막’이 끝난 후 애니메이션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
18강 일본식 아이돌의 성립과 노래 방송의 시대
아이돌은 일본에만 있다고?
1970년대 초창기의 아이돌들---캔디즈, 핑크레이디, 야마구치 모모에
1980년대 아이돌 붐 전성기---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코이즈미 쿄코
19강 카도카와 세 자매와 오냥코클럽
사이토 유키, 미나미노 요코, 아사카 유이를 세상에 배출한 ‘스케반 형사’
‘TV 아이돌’에 대한 카운터였던 카도카와 영화와 야쿠시마루 히로코, 하라다 토모요
오냥코클럽의 충격과 아이돌 붐의 종언
1990년대, 확장되는 아이돌 업계
20강 ‘미디어 아이돌’에서 ‘라이브 아이돌’로---정보 환경의 변화와 AKB48의 브레이크
가요적 접근을 부활시킨 모닝구무스메
퍼퓸은 지방 아이돌이었다
AKB48은 어떻게 브레이크 할 수 있었나
21강 AKB48은 ‘전후 일본’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브레이크 시기의 AKB를 상징하는 ‘큰 목소리 다이아몬드’ ‘리버’
돔 콘서트와 마에다 아츠코의 졸업으로 맞이한 첫 클라이맥스
‘하극상의 AKB’를 체현한 사시하라 리노와 ‘사랑하는 포춘 쿠키’
‘라이브 아이돌’에서 ‘미디어 아이돌’로 돌아간 AKB
브레이크 이후의 AKB를 가로막는 ‘전후 일본의 연예계’라는 벽
AKB에 의해 활성화 된 2010년대 아이돌 업계
케야키자카46 ‘사일런트 머조리티’에 담긴 대중 비판의 의도
마지막 강 문화의 노스텔지어화와 삼차원화하는 상상력
정보에서 체험, 커뮤니케이션으로
삼국지로 생각하는 현대 J-POP의 세력도
노스텔지어화하는 음악·영상 산업
컴퓨터로 ‘세계를 바꾸는’ 일이 다시 가능해졌다
‘실제로 변형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디자이너들
허구의 두 역할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에서 끊어지지 않고 계승되던 미래 지향
마치며
서평자 - 백지홍 (<미술세계> 전 편집장)
서평 - 서브컬처를 통해 보는 일본 문화, 일본 문화를 통해 보는 서브컬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제 4관왕에 오르며 전 세계 문화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일찍이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같은 명감독을 배출하며 서구 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미친 바 있는 일본 역시 〈기생충〉의 성공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인들은 궁금해 한다. 문화 콘텐츠 강국 일본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1970~80년대, 미국에 이어 2인자 자리를 공고히 한 일본이 영화, 문학, J-Pop, 애니메이션, 만화, 비디오게임 등의 분야에서 이룩한 성취는 지금까지 세계 문화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 홍보에 등장한 캐릭터들을 전 세계인이 알아본다는 것은 그 저력을 방증한다. 한국 역시 다방면에서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의 안방을 차지한 것은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을 차용한 방송들이었고, K-Pop의 뿌리 중 일부는 일본 아이돌 문화에 뻗어 있다. 미술관에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후로 성장기를 보낸 작가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비디오게임을 차용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으니, 소위 ‘순수예술’ 분야 역시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다. 다시 질문하자. 일본 대중문화의 특성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찌하여 과거와 같은 힘을 보여주지 못하는가.
우노 츠네히로의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이하 『서브컬처 강의록』)은 그러한 궁금증을 풀어갈 실마리를 제공한다. 교토 세이카대학교에서 2016년 4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강의 내용을 정리한 『서브컬처 강의록』은 ‘허구 세계의 분석은 현실 세계의 이해로 이어진다’는 시선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애니메이션과 아이돌, 그리고 그러한 콘텐츠가 제작되고 호응받은 사회적 기반을 탐구한다. 여기서 잠시, 왜 ‘서브컬처’인가. 서브컬처(subculture, 하위문화)는 엘리트 문화와 대비되는 대중문화 중에서도 보다 소수집단이 향유하는 문화다. 특히 TV 등 미디어의 보급, 베이비부머 세대의 등장, 소비사회의 안착이 맞물린 20세기 후반에 서브컬처는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문화로서 성격을 띠게 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타쿠’ 문화는 일본의 대표적인 서브컬처다. 만화, 애니메이션, 비디오게임, 아이돌 문화는 일본의 주류 문화에 녹아들었지만, 그 뿌리를 살펴보면 비주류 감성과 시선을 찾을 수 있다. 주류 문화의 바깥에서 탄생하는 서브컬처는 관습적으로 용인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을 드러내고 사회 이해와 변화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노 츠네히로는 그러한 단초들을 모아 ‘전후 일본(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의 일본)’을 살펴본다.
몸만 커버린 12세 아이. 우노 츠네히로는 전후 일본이 군사력이 거세된 상황에서 경제력만 커지고, 시민사회는 성장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실질적인 성장을 이룩하지 못 한다’라는 특성을 일본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이른바 ‘소년만화’에서 읽어낸다. 『드래곤볼』로 대표되는 소년만화는 스포츠, 격투에서 점차 강한 적과 싸워 나가는 이야기로 이뤄져 있고, ‘성장’은 중요한 테마다. 그러나 우노 츠네히로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새로운 상대가 등장하는 토너먼트가 반복될 뿐 등장인물들의 인간적인 성장이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히 인기 만화의 연재를 늘리기 위한 상술에 대한 저자의 과도한 의미 부여일지도 모르지만, 경제력만 비대해지는 일본이라는 평가와 만화 주인공들의 모습은 기묘할 만큼 중첩된다.
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일본을 대표하는 또 다른 콘텐츠 ‘로봇 만화/애니메이션’에 대한 해석이다. 일본 최초의 국민 로봇 만화 〈철완 아톰〉(1952 연재 시작, 1963 애니메이션 방영)에는 고전 SF에서 만날 수 있는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로봇이 등장한다. 그러나 일본 서브컬처에 자리잡은 로봇은, 인간 형태의 ‘탈 것’이다. 〈철인 28호〉(1956 연재 시작, 1963 애니메이션 방영)는 리모컨으로 움직이는 병기로 조종간을 잡는 사람에 따라 선/악이 갈리게 된다. 〈마징가Z〉(1972)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이 ‘탑승’하여 조종하는 확장된 신체로서 로봇이 등장하는데, “마징가Z를 쓰면,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다”라는 대사는 〈철인 28호〉의 테마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주인공은 정의의 편에 서서 로봇을 조종하고 승리를 이끈다. 우노 츠네히로는 이를 “악의 편에서 전쟁을 일으켜 패배했지만, 기술적으로 뛰어났던 일본”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가능했을 “강하고 멋진 일본”에 대한 판타지로 보았다. 또한, “자동차와 유사한 방식으로 조종되는 로봇을 타고 악과 싸운다”는 것은 소년이 어른이 된다는 성장 욕구를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 로봇은 패전국 소년들의 꿈을 이뤄주는 매체였던 것이다. 현실에서 사회변혁 운동의 힘이 약화되고 소비사회가 자리 잡자, 로봇만화도 변화한다. 〈기동전사 건담〉(1979) 시리즈는 소년이 아버지가 만든 로봇을 조종한다는 점을 공유하지만 작중 로봇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양산되는 ‘물건’이며, 롤 모델로서의 아버지나, 선악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소년의 ‘자아탐구’라는 측면이 강화된다. 시리즈의 엔딩 격인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1988)에 이르러 주인공들은 감상자와 함께 나이를 먹어 29세, 34세가 되었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로봇을 타고 어른이 되는 서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