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cafe.daum.net/wkD(소설 짱) 작가 : 짱! (wotnr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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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환상적인 교실이었다.
그녀는 할말을 잃었다. 칙칙하고 어둡기만 하던 교실이
여느 레스토랑 못지 않게 붉은 빛이 화사하게 도는 실내로 바뀌어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두명의 요리사들과 깨끗한 제복을 갖춰입은 여자들...
무슨 고급 레스토랑에 온 느낌이었다. 칙칙한 책상에 깨끗한 식탁보를 깔려 있고
그 위에 자그마한 꽃병들이 쭉~~ 놓여있었으며, 테이블에 맞게 준비되어 있는
고급 접시들과 식기들이 여학생들의 눈길을 끌었다.
" 어..어떻게 된거야?"
" 그러게?"
" 무슨 깜짝쇼인가봐~~"
" 야 실장!! 너네 엄마가 우리 고생한다고 준비하신거 아니냐?"
" 아니야..아침까지만 해도 그런말 없었는데"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들이 어지러웠다. 그러자 곁에 있던 성현이 진이를 툭툭 찌르며
소곤댔다.
" 언니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해?"
" 글쎄.....내 눈에 맛있는 음식밖에 안보이는데...배고파 죽겠어. 먹으면 안되나?"
" 짐작가는거 없어?"
" 없어"
성현과 속닥이는 진이에게 다가오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여느 사람들과 달리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커다란 모자를 쓴 폼이 꼭 마술사 같았다.
야리꼬리한 옷을 입은 느끼한 남자가 다가오자 진이는 뒤로 물러섰다. 허나 뒤쪽에 걸린 책
상이 더이상 그녀에게 물러설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남자를 피해 허리를 뒤로
젓히며 소리를 질러댔다.
" 뭐..뭐야. 아까는 살찐 졸라맨이 치근대더니....우~~씨!!"
" 최진양??"
" 에?? "
남자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진이의 눈동자는 동그랗게 치켜떠졌다.
진이의 입에서 다른 외침이 들릴새도 없이 남자의 손이 그녀의 뒤통수 쪽으로 향하더니
이내 다시 제 자리를 찾은 그의 손엔 장미꽃 한송이가 들려져 있었다.
" 생일을 축하합니다...사랑하는 최진양"
" 와~~~ 방금 그거 마술이었지? 캡짱이다~~~"
" 그러게...언니 좋겠다~~"
남자의 입에서 생일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그제서야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는지
저마다 아이들의 입에서 축하의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진이는 마술사를 야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성현이 진이의 곁으로 다가가 방정맞게
소리쳤다.
" 어머..어머. 언니! 준휘오빠가 준비한건가 보다..아까전 그 졸라맨 상필이 오빠도.."
" 준휘가 누구예요? 언니? 와...대단하다.."
" 언니 축하해요..좋겠다.."
아이들의 축하에 진이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는건
정말 처음이었다. 늘 그녀는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때문에 그녀의 생일날에도
그 아이들은 축하의 한마디조차도 건네기 힘들어 숨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한살 어린 반 아이들이었으니 진이의 존재가 오죽 부담스러웠겠는가...
진이는 아이들의 축하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자 앞쪽에서 붉은 제복을
입은 여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 식사하시겠습니까?"
" 예"
진이의 대답에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다. 이유인즉, 3단 케익이 여자들에 의해 모습을 드러
내고 그에 이어 각자의 테이블에 먹음직스런 고급 음식들이 준비되어 갔기 때문이다.
운동회를 잠시 접고 식사를 하러온 아이들에게 준비된 음식은 금상첨화나 다름 없었다.
맛있는 냄새가 교실을 진동하고 여기저기서 새어나가는 빛을 막기 위해 막아두었던 창문에
서 종이가 떼어져 나갔다.
그러자 진이네반 아이들의 함성에 놀라 달여온 다른반 아이들이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그녀들의 식사를 부러운듯 구경했다.
" 케익을 자르셔야지요"
" 아.예"
달리 해줄말이 없었다. 케익을 자르라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 있겠는가...
케익에 촛불이 꽂아지고 반 아들이 진이를 빙 둘러싼 가운데 생일 축하곡이 울려퍼졌다.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언니...생일 축하 합니다...."
반의 분위기가 아이들로 하여금 진이에 대한 거부감을 삭혀주었덧 탓일까...스스럼 없이
사랑하는 우리 언니란 말을 읊어대는 아이들덕에 눈물이 핑 돌려 했다.
" 생일 축하해..언니~~~~ 좀 있다가 주려 했는데 지금 줘야지.."
성현이 선물을 주며 웃어보였다. 말없이 선물을 받아든 진이는 케익으로 시선을 돌렸다.
" 불을 꺼주세요"
" 후~~~"
" 와~~~~~~~~~~~!!!!! 생일 축하해요~~"
아이들의 함성에 밖에서 구경하던 다른 반 아이들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 그러자 조금전
그 마술사가 진이의 곁으로 와 빠른 손동작으로 장미꽃 한다발을 만들어내었고 그걸 그녀의
품에 안겨주었다.
"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와...정말 신기하다"
마술사의 행동에 여기저기선 탄성이 새어나오자 그는 손짓으로 아이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쳐...
긴장한 아이들의 눈동자가 마술사의 손짓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듯 시선을 집중했다.
진이가 피할 사이도 없이 또한번 마술사의 손이 그녀의 뒤쪽으로 향하더니 제자리도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것도 없었다.
" 에이...뭐야..실패한거예요?"
" 실수한거죠? 아저씨?"
" 5월의 탄생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이들의 야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이에게 묻는 마술사의 눈가에는 의미모를 웃음이
걸려있었다. 놀란 진이가 넋나간 눈빛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러자 마술사는
그녀의 눈앞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꼭 쥐고 있던 주먹을 활짝 펴보였다.
진이의 눈앞에는 신비한 녹색빛이 예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마술사가 손을 폄과 동시에
그의 손에서 떨어진 황금빛과 녹색빛....
목걸이었다. 녹색빛 보석이 밝힌 팬던트...
" 5월의 탄생석은 에메랄드라고 합니다. 옛부터 에메랄드를 가지고 있으면 사랑이 변치 않는
다하여 연인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받았다죠.두분 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기를 기도드릴께요"
마술사는 그녀의 목에 그 목걸이를 걸어주고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외침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새어나올만 했는데도 왠지 모르게 삭막한 정적이 흘렀
다. 허나 그 정적은 얼마가지 못했다.
" 짝짝짝"
박수소리에 모든 소리가 묻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 하하하...준휘오빠 진짜로 멋지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만 잔뜩 보내놓고 오빤 안타날 생
각인가?"
성현이 투덜대자 그제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진이는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 이...이인간이 미쳤나..."
" 어머..언닌 무슨 소릴 그렇게 해? 준휘오빠 짧은 시간안에 이 모든걸 처리하느라 힘좀 들었
겠구만.."
성현이 투덜대는 사이 진이는 케익을 자르고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미 그녀의 반 복도는
이 상황을 눈요기 하러온 다른 반 학생들에 의해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
의 부러운듯한 시선은 진이가 한몸에 받고 있었다.
드디어 맛있는 음식을 시식하게된 아이들의 입에선 저마다 탄성과 감탄사가 흘러나오고
여기저기서 연신 생일축하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 언니. 나중에 오빠한테 감사하다는 말이나 해라"
" 감사? 감사좋아하시네..."
진이는 배알이 꼬였다. 사실 상필이 나타났을때 적지 않게 놀랐다. 그리고 교실로 들어선
그녀는 뒤로 까무라칠뻔했다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건 목걸이까지 타인의 손에 의해
전해준 준휘에게 모든걸 돈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실망감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해주면..여느 여자처럼 아양이나 떨며 좋아할줄 알았나 보지?
나쁜자식...돈 좀 있다고 이래도 되는거야? 끝까지 얼굴한번..전화한번 안한단
말이지? 어디..두고보자...
음식을 먹으며 이를 갈았다. 솔직히 기대를 한것도 아니었지만 이런식으로
넘어가려는 준휘의 태도에 심한 반감을 느꼈다. 여느 여자들에게 했던 방법을
그녀에게도 써먹으려 하는것일까?
저녁내내 통화하며 가지고 싶은것을 말해달라고 졸라댈때만해도 아이같은 그의
모습에 웃음이 떠날줄 몰랐다.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정작 중요할때 전화한통
없는 그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아이들이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성현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그녀가 식사를 마치길 기다렸다는듯 또다시 마술사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붉은 제복을 입은 여자와 함께 무언가를 들고 양쪽으로 찢어졌다.
플랭카드....
마술사와 여자는 길다란 플랭카드를 펼치려 양쪽으로 갈라진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 최진! because..앞으로 튀어라!'
because는 한성여고 앞에 있는 자그마한 커피숍이었다. 학생들이 이용하기에 부담없는
곳으로 여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인 커피숍...
늘 그 곳앞에서 차를 주차시켜놓고 기다리던 준휘였으므로 진이는 예감한것이다.
그가 학교앞으로 왔음을..
앞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진이는 모든걸 팽게치고 교실을 벗어났다. 허나 그 메시지를
보고 뛰쳐나간건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 언니~~ 같이가~~~"
뒤쪽에서 소리를 치는 성현과 반아이들..그리고 그녀들의 식사를 지켜보던 다른반 아이들까
지 학교 건물을 빠져나가는 대 소동이 일어난것이다.
진이는 준휘가 그곳에 있다는 생각에...그리고 다른 이들은 이 모든 이벤트를 준비한 그 누군
가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 누가 이 여자들을 말릴것인가...
푸른빛이 도는 촌스런 체육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너도나도 할것없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학교 건물 한동을 깡그리 비운채 운동장을 내달렸다.
빠른 길로 가기 위해선 운동장을 가로 질러 가는 길밖에 없었으므로..
교무실에서 이 난동에 선생들 마저도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또한 타 건물 학생들도 이 사태를 지켜보며 무슨 구경거리가 있나하고 빠져나가는
사람도 적지 않게 있었다.
진이를 뒤따라 넓은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여학생들의 자아낸 풍경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경쟁을 하며 뛰어서 운동장 한가운데 이는 먼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에도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교문을 빠져나온 진이는 다시한번 입을 벌일수밖에 없었다.
학교 앞에 설치된 무대..
그곳에는 ' 최진! 생일 축하 이벤트'라고 쓰여진 커다란 플랭카드가 바람에 멋드러지게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무대에는 드럼과 기타를 들고 있는 밴드부가 서있었다.
진이는 교문을 나서자 마자 플랭카드에 휘날리는 자신의 이름과 무대를 바라보며 달리던
발걸음을 딱! 멈추었다. 그러자 뒤따르던 아이들도 한꺼번에 멈춰서는 바람에 발길에
채이고 밟힌 학생들도 생겨났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진이에겐 그 모든 상황이 비칠리 만무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건.....마이크를 잡고 있는 준휘의 모습이었다.
그의 커다란 키가 거의 압도적으로 무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흰색 봄쟈켓과 하얀 면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위대해 보인단 말인가..
이건 필히 신의 장난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허나 그렇게 인정하기엔 진이의 눈에 비친 준휘의 모습은 정말 멋있어 보였다.
오~~~ 왓따다~~~정말~~
저녀석이 저렇게 멋있었어?
그때 뒤쪽에서 들려오는 탄성에 진이는 고개를 돌렸다.
" 앗!!!! 한성대 밴드부다!!! 어떻게 된거야??? "
" 한성대 밴드부??"
진이가 뒤쪽에서 들려오는 발음을 따라 읊었다. 그러자 정면쪽에서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준휘의 목소리...
" 자~~ 전부 차렷!!! 열중~~~쉬엇!!"
그의 낮은 목소리에 너나 할것없이 아이들이 일제히 차렷 자세를 취했다.
" 모두들 50보 앞으로 전진하세요..."
준휘의 말에 여자아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진이를 제치고 달려갔다. 어느새 진이는
그자리에 멀뚱멀뚱 선채 아이들의 제일 끝으로 쳐졌다.
무대를 둘러싼 한성여고 학생들...
이미 준휘의 앞에는 한성여고 여학생들의 3/1이 모여 있었다.
설마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생각은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에 진이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하지만 그 불안함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으니....
가운데 있는 준휘를 중심으로 양쪽 옆으로 늘어선 두명의 남자....기타를 든채
눈앞에 있는 여학생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곤 뭐라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여학생들이 가운데 길을 탁 터주었다.
진이는 그 길 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유난히도 무거운 발걸음이
그녀를 더디게 만들고 있었다. 참다 못한 준휘는 무대에서 뛰어내려 그녀에게 다가가
덥석 들쳐메었다. 마치 쌀푸대를 들쳐매듯..그렇게...
" 앗!! 뭐하는 짓이야!! 이놈아!! 안 내려놔? 응??"
" 왜 이렇게 늦어? 너 때문에 노래까지 준비한 내 성의를 봐서라도 재깍재깍
자리를 차지해야 할것 아냐?
" 뭐야??"
" 와~~~~~~"
" 멋져요~~ 오빠~~~~~"
뭐야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진이와는 달리 주위의 여학생들은 최진이란
여자에게 감히 그런 태도를 보일수 있는 준휘에게 새삼 감동을 한 모양이었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와 함께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중앙 터진 길을 통해
그녀를 맨앞으로 데리고 온 그는 훌쩍 무대로 올라 손짓을 했다.
그러자 드럼과 준비된 악기들이 한번 세차게 하늘을 울렸다.
" 안녕하십니까...한성대 밴드부 리더 박진영입니다"
" 안녕하세요...서준현입니다"
양쪽에서 기타를 들고 있는 남자 둘이 인사를 해보였지만 여학생들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물론 한성대 밴드부의 인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바였지만 지금 그들앞에
있는 한성대 밴드부보단 하얀 옷을 입고 중앙에 서있는 준휘의 존재가 더 호기심을
자극한 탓이다.
" 오빠~~ 오빤 이름이 뭐예요??"
" 이름이????"
" 알려줘요~~~"
" 첨 보는 사람이다...한성대 밴드부에선 첨 보는 사람인데..새로운 보컬인가요?"
아마도 한성대 밴드부의 광팬이었나 보다. 그 인원정보까지 전부 파악하고 있는걸 보면..
정말 대단했다. 준휘의 존재는 앞에 모인 여학생들에게 굉장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몇몇 여학생들이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학교앞에서 기다리는 그를
못알아볼리 있겠는가? 물론 차안에서 진이를 기다렸다지만 몇번 내려선적 있던 그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 앗~~~!!! 진이 언니 남자 친구다!!! 맞지? 맞지? 애들아!!"
" 어머..정말? 정말이야!!"
아이들의 말에 준휘에게 모였던 시선이 진이에게로 향하고 그런 그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 눈앞에 있는 준휘를 눈이 빠져라 바라보는 그녀였다.
남자친구란 그녀들의 발상은 준휘와 진이에게 있어 그리 중요한 일이 못되었다.
준휘는 지금 현재 진이에게 창피함을 무릎쓰고 모든걸 보여주려 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런 그를 새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와~~ 정말 진이 언니 남자친구야? 그래?"
옆 아이들에게 묻는 여자아이가 경이로운듯 준휘를 바라보았고 진이의 노려보는 시선을
느끼며 그가 입을 열었다.
" 한성대....장.............준휘입니다. 밴드부는 아니고요..그냥 오늘 진이 생일 축하를
위해 잠시 빌었습니다.."
준휘가 웃자 이미 뒤로 넘어간 애들이 생겨났다. 드디어 음악소리가 요란 스러운 공간을
가르기 시작했다. 드럼과..기타...무대위에 있는 모든 악기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며
멋진 음색을 만들었다.
시작되는 공연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하늘을 타고 흐르는 준휘의 목소리는 기대한것 이상이었다.
운명이 날 너에게 준 거야. 내 초라한 모습 그대로...
널 위해서 떠나야 하는데 이렇게 바라보기만 해..
그늘지던 날 보이긴 싫었어..너의 미소가 가려지지 않게 나 돌아서봐..
멀리 가지 못했지. 혹시 니가 날 부르는지
나 또 다시 우연을 기대한 채 니가 세상에 있는 동안..
운명이 날 너에게 준거야. 내 초라한 모습 그대로
널 위해서 떠나야 하는데..이렇게 바라보기만 해..
맑은 공기를 타고 흐르는 선율과 낮은듯한 그의 목소리가 진이의 전신을 휘감으며
야릇한 감정을 자아냈다. 늘 짓궂던 준휘가, 노래를 부르는 지금 이순간만은
유난히도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를 좀더 자세히 듣기 위해 눈을 감았다.
음악의 간주가 삽입된 부분에서 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준휘는
그녀의 눈이 감기자 마른침을 꿀꺽 삼켜야 했다.
좀전부터 그를 바라보고 있는 진이의 눈빛에 꼭 껴안고 가볍게 스치는 뽀뽀가
아닌 키스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눈을 감는 모습에 마이크를 잡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결국 한순간 미쳤다 할만큼 이성을 잃어버린 준휘였다.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무대에서 내려와 버린 후였다.
간주가 끝나고 노래가 들어가야 했지만 더이상 노래를 부를수가 없었다.
다만 눈을 감고 잠들어있는듯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안에 잠재 되어 있던 욕구를
모두 분출해 버리고 말았다.
주변에 있던 여학생들은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란듯 작은 외침을 터쳐냈고 그 외침에 놀란
진이가 눈을 떴다. 허나 그 눈은 다시 감기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들이밀어진 준휘의 얼굴과 따뜻한 입술을 느끼며 떳던 눈을 다시금 감아버리는
진이...밴드부는 준휘의 노래와는 상관없이 계속 연주를 했지만 이미 여학생들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 가있었다.
앞쪽에서 보여지는 두사람의 진한 키스신에 뒤쪽에서 폴짝폴짝 뛰어 그것을 바라보려 애쓰
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였으며 그나마 앞에 있는 여학생들은 마른침을 삼키기에 이르렀다.
정말 미성년자 관람불가를 외쳐야 할정도로 진한 키스신이었다.
진이는 처음하는 키스에 온 정신을 빼앗겨 버린듯 했다. 밀고 들어오는 준휘의 혀가 마술을
부린듯 온몸의 힘을 빼가버리고 흐르고 있던 피마저 송두리째 뽑아가버린것이다.
아이들의 함성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숨도 못쉴정도로 진한 키스를 퍼붓고 있는 준휘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
- 사랑해....
환청일까...
그에게서 들려오는 한마디....
정말...환청일까...
아니야. 미쳤어. 최진. 이놈에겐 잘난 서유리가 있잖아.
그녀는 준휘에게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를 한사코 부정했다.
그래도 심장의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입술위를 부드럽게 오가는 준휘의 입술과 혀를 느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러기는 준휘도 마찬가지였다. 흔한 키스신 하나에 그토록 이성을 잃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는 한마디가
무엇인지 몰랐다. 무슨 말인가를 해주고 싶은데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입술을 떼고 다른 이들의 시선을 느끼며 준휘는 흐물거리는 그녀를 어깨에 들쳐
메었다.
" 최진..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자"
" 자..잠깐..나도 다리가 있어. 걸어서..."
" 잔 소리마!!"
사실 그녀도 걸을수없는 상태였다. 두 사람은 결국 진한 키스로 인해 잔뜩 흥분한 상태로
그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때 저쪽에서 준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장준휘!~~~~~ 야~~ 이놈아~~~"
상필이었다. 기절한 상태에서 정신을 차린 상필이 껌정 고무옷에 쪽팔린줄 모르고 그의 앞까
지 헐레벌덕 달여왔다. 그러더니 진이를 들쳐맨 그의 앞에 오른손을 내밀며
무언갈 간절히 바라는 눈빛으로 말을 했다.
" 약속대로..줘야지"
" 아..그래"
준휘는 자신의 쟈켓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조그많게 접은 쪽지를 상필의 손의 쥐어주었다.
그러자 그는 그 쪽지가 자신의 심장이라도 된것마냥 소중히 가슴쪽으로 가지고 가며
감싸쥐었다. 그 모습이 흡사 거지가 500원짜리 동전을 주은것 마냥 너무도 간절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내었다.
사람들이 숨죽인 가운데 준휘는 진이를 차에 태웠다. 쪽팔려서 더이상 머무를수가 없었던
탓이다.
준휘가 차에 시동을 걸자 갑작스런 외침이 뒤따랐다.
" 안돼~~~~~~~~~~~~~~~!!! 언닌 100m 결승에도 나가야 하고..앞으로 400m도..."
성현이 손으로 꼽으며 그녀가 나가야할 경기를 하나하나 세어나갔다. 그러나 준휘의
차는 이미 후진하고 있었다.
" 앗!! 오빠! 차 멈춰!! 우리 운동회 아직 안끝났단 말이야..어서!!!"
이미 준휘의 차는 그곳을 벗어나고 있었다. 서행으로 보도를 빠져나가는 그의 산타페..
성현은 그모습을 바라보며 욕을 읊어내었다.
" 벌받을 거라고!! 언니 데리고 가면 우리반 꼴지 한단 말이야!! 얼른 데리고와!~~~~"
" 후후..그렇게 말한다고 올놈이 아니다..저놈은.."
성현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예리한 눈을 반짝이며 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좀전에 받은
쪽지를 떨리는 손길로 조심스레 펴보는 상필이 눈에 보였다.
" 지금 뭐라고 했어요?"
" 후후..그렇게 소리쳐도 올놈이 아니라고...."
상필은 조그맣게 접어진 종이를 한번씩 펴낼때마다 넘치는 희열감을 감추지 못했다.
허나, 종이를 완벽하게 핀 상필의 반응은............
" 헉!!!"
모든 여학생들의 눈이 영화같은 준휘와 진이의 깜짝이벤트에서 졸라맨 상필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작은 종이 쪽지를 든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자 무대에서 내려온 진영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살며시 쪽지를 바라보았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상필의 반응과는 달리 진영은 웃음을 참지 못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 풋....푸하하하하!!!!"
도대체 쪽지에 무슨 내용이 적혔길래...
성현은 슬금슬금 곁으로 다가가 쪽지를 넘어 보았다. 물론 키가 작아 발꿈치를 들어야
보였지만 말이다.
- 한혜선. xxx-xxxx-xxxx
그녀의 반응은 고래를 갸웃거리는거였다.
상필과 진영의 상반된 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듯 영문모를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궁금증에 하나둘씩 그의 손에 들린 쪽지를 바라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졸지에 상필은 괴상한 옷을 걸친채 수십명이나 되는 여학생들에게 둘러쌓여야
했다.
허나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할수가 없었다. 종이 쪽지를 핀 순간 조금전 케익을 들고
들어가 전교생앞에서 개창피를 당했던 상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젠 최면이고 뭐고 지키고 싶은 마음 ...눈꼽만큼도 없었다.
준휘의 차가 사라지기 전에 붙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신호가 걸려 머뭇거리던
준휘의 산타페가 서서히 출발하려 했다.
그러자 급한김에 후다닥 몸을 날려 달리며 소리를 내질렀다.
" 장준휘!!! 이 개자식!!! 거기 멈춰~~~~~~~"
상필의 외침을 들은 성현은 조금전 그가 중얼거렸던 한마디를 여지없이 해주었다.
" 그런다고 저사람이 설 사람인가? 안그래?"
상필이 그런 성현의 말에 한마디 반박이라도 해줄줄 알았다. 허나 진영의 웃음소리가
하늘을 울리는 가운데 상필은 절망적인 목소리로 준휘를 불러대며 중얼거렸다.
" 나쁜..사기군!!! 한혜선이 아니라...장혜선이란 말이다...천하에 둘도 없는 사기꾼아.."
그랬다. 준휘가 알아온 전화번호는 동명이인의 것이었다. 그것도 이름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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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afe.daum.net/wkD(소설 짱) 작가 : 짱! (wotnr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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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돌아다닌 두사람...
8시가 되어서야 진이의 집앞에 도착한 준휘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돌발적인 키스 이후 아무일 없는듯 웃고 떠들며 오락실과 영화관을 오가던
두사람은 그제서야 낮의 일이 생각난듯 어색한 침묵을 유지했다.
왜..헤어질때가 되니까 다시금 생각이 나는건지...
" 오늘...고마워..."
어색한 침묵을 무마하고 차에서 내려서기 위해 꺼낸 말이 고작 고맙단 말이라니..
진이는 스스로 자신의 가슴을 내리치며 바보라고 소리쳤다.
어떻게 고마운 정도로 끝낸단 말인가...
그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의 메시를 들었으며, 처음으로 값비싼
목걸이를 선물로 받았고, 또한...........처음으로 키스를 나누었다.
헌데 어떻게 고맙단 한마디로 그녀의 마음을 표현한단 말인가..
물론 후에 있었던 그의 키스는 그녀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던 느낌에 지금까지도 심장이 뛰는듯 했다.
" 고맙긴..."
오늘따라 차분하게 들리는 준휘의 목소리가 그녀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들었다.
" 아냐..정말 고마워"
" 화..안났지?"
" 뭘?"
" 음..아까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키스했잖아"
" 아...아니..그게....."
아무렇지 않은듯 말을 꺼내는 준휘와는 달리 진이는 얼굴일 빨갛게 달아오르며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런 그녀가 준휘에겐 너무도 귀여워 보였다.
키스 한번에 얼굴을 붉히는 여자라....준휘는 처음 접해보는 스타일이었다.
늘 거침없고 개방적인 여자들만 보아온 터라 최진이란 여자는 그에게 있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반응하나에, 그리고 웃음 하나에도 무척이나 긴장하게 만드는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 야..이정도면 나도 사귀어볼만 하지 않냐?"
" 뭐?"
" 나도 오늘 체면따위 모두 버리고 그 많은 여학생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잖아. 이정도면
사람이 나다니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사랑한다고 소리지른 그 미친놈보다 한수 위이지 않
겠냐? 게다가..완벽한 마무리 까지..후후"
" 뭐야. 그럼 그것때문에 그런 엉뚱한 짓을 했단 말이야?"
진이의 눈썹이 치켜올라가며 반문했다. 자존심 상했다. 적어도 그 키스는 준휘의 돌발적인
행동에서 비롯된거이긴 했지만 그 이유가 그 미친놈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기 위함이
었나니.........
" 아니....그런게 아니라..."
" 됐어!!!"
그녀가 내려서려 했다. 그러자 준휘는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채며 제지했다.
그에게 붙들린 손목에 통증을 느끼며 획 돌아서던 진이는 뜻밖의 가슴설레이는
말을 듣고 말았다.
" 진심이었어....정말...진심이었어.."
할말을 잃었다. 그 진심이란 의미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것일까....
" 못 믿겠다면 ....."
" 아니..아냐. 믿어!! 믿어!! 그러니까...얼굴 좀 치워..부담스러워"
" 믿을거지? 정말?"
" 그래..정말로 믿어.."
" 아참. 너한테 줄 선물이 있는데 깜박했다"
" 또?"
진이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준휘는 뒷좌석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곤 고이 포장된
약간은 큼지막한 상자를 들고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 뭐..뭐야? 이게?"
" 음..그냥..그거는 내손으로 직접 전해주고 싶어서...풀어봐. 맞을지 모르겠네...그냥 대충
짐작으로 산건데.."
맞을지 모르겠다고..짐작으로 산거라고? 도대체 뭐야?
궁금증에 진이는 선물꾸러미를 조심스레 풀었다. 그러자 검은 상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안의 내용물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진이....
상자안에 보이는 까맣고 화려한 그 무엇의 정체를 가늠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 이...이거....."
말을 더듬으며 진이가 검지손가락으로 들어올린건 속옷세트였다.
B컵은 될듯한 까만 레이스 브레이지어와 팬티...야하기 그지없는 속옷세트...
" 네가 졸라맨을 좋아해서...상필이를 그렇게 보내긴 했지만 네 나이도 있는데
그런 속옷은...좀..."
" 퍽"
" 변태!!!"
" 야!! 잠깐..때리지 말고 내 말..좀.."
" 퍽!!"
" 변태!!!"
" 최진~~ 잠깐..야...우~~ 아파~~"
준휘의 과장된 엄살에 진이가 들었던 주먹을 부르르 떨며 내렸다. 하지만 가슴팍을 움켜쥐고
허리를 못피는 그를 바라보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걸 숙지한듯 넌시시 물었다.
" 많이...아퍼?"
" 응.."
" 미..미안..."
" 그..그럼 이젠 안때릴꺼지?"
" 그래.."
" 후후..."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아무렇지 않다는듯 허리를 피며 웃는 그를 보고 다시한번 속았다는걸
알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그런다고 다시 때리기도 뭐하고..
" 이제부턴 그런 압박붕대로 가리고 다닐 필요 없어. 이유야 어쨌든 넌 여자니까...굳이 숨길
필요가 뭐가 있어? 애써 남자인척..강한척 하지마. 아무리 그래도 넌 여자야..알지?"
" 누가 뭐래?"
" 그런데 왜 그렇게 가슴을 꽁꽁 싸매고 다니냐?"
" 그..그건.................습관이 되어서 그래"
" 습관?"
" 예전에.......그러니까 나...사고만 치고 다닐때...늘 싸우면 가슴이...걸리적 거렸거든.
단단하게 묵어두는 편이 활동하기 편했어...그래서................."
" 그래서 지금도 싸울것을 대비해 그렇게 다닌다 하진 않겠지?"
" 그런건 아니지만..그래도 혹시나.."
" 후후.....혹시나란 없어. 학교도 복학했고..그일에도 손을 떼었으면 이젠 네 그 습관도
고쳐...."
" 뭐야...그런 말을 하는 의미가?"
" 그냥 보기 안쓰러워서 그래..그렇게 하고도 숨을 쉬고 다니는 네가 존경스럽다"
준휘의 말에 올라간 눈썹을 진정시키며 애써 가슴에 담고 있던 한마디를 꺼냈다.
" 암튼..오늘 정말 고마웠어. 태어나 이런 생일 맞아보긴 처음이야"
" 그래? 휴~~~~~~~다행이다..."
" 뭐가?"
" 그런게 있어....."
준휘는 진이의 그 한마디에 목까지 차오르는 뿌듯함을 애써 감추어야 했다.
이젠 죽어도 그를 잊지는 못할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찾아 떠난다 하더라도
그녀의 스무번째 생일을 잊지못할 추억거리로 만들어주었으니 적어도 장준휘란 이름
세글자만은 그녀의 머릿속에 꽉 들어차 절대로 떨쳐내지 못하리라...
뿌듯하군..정말....후후
속으로 웃어보이며 그녀를 곁눈질 했다.
진이는 무언가 고심하고 있는듯 속옷을 만지작 거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그리곤 드디어 결심한듯....말문을 열었다.
" 저기...."
" 응?"
" 고맙다고...."
하려는 말은 그게 아닌듯 싶은데 고맙단말로 대신해 버렸다. 준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었다.
" 고마워할것 없어. 나중에 다 받을꺼야?"
" 응?"
" 내 생일날...너한테 주었던..속옷..키스..다 받을거라고..."
" 응...그래"
별 의미 없이 대답했다. 농담이려니 하며....
서둘러 시계를 바라보던 진이는 소리를 질렀다.
" 앗..........8시가 넘었잖아!!! 큰일이다"
" 설마 오늘 생일인데 현이가 널 잡아먹겠냐?"
" 현이?"
또한번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순간 준휘는 흠짓하며 자신의 실수를 돌이켜보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 우리 오빨..알아?"
" 아..아니. 당연히 모르지..다만 유리에게 들었을 뿐이야.."
" 유리?"
그럴듯한 변명이었다. 유리란 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차문을 여는 진이였다.
" 일단.........난 오늘 여기서 들어가봐야 겠어.."
" 그래..."
진이가 내리자 준휘 또한 같이 내려섰다.
쇼핑백을 들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가 한바탕 웃었다.
" 야...내일 너랑 나 신문에 안나려나 모르겠다. 그 폼으로 돌아다녔으니...."
그러고 보니 하루종일 학교 체육복을 입고 거리를 쓸었다. 얼마나 우스웠겠는가....
허나 진이는 웃고 있었다. 오락실에서 둘이 싸워가며 철권을 했고, 펀치 기계를 멋드러지게
눕히는 그녀를 보며 준휘가 응원도 해줬으며, 영화관에서 슬픈 영화를 보며 배꼽빠져라 웃던
그녀와 함께 웃어주었다. 더이상 할말이 뭐가 있겠는가...얼마전 그녀가 말한대로 체육복을
입고 돌아다녔던 한순간의 쪽팔림은 스치는 사람들에게 잠깐 기억되는것으로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웃어주던 준휘와의 시간은 평생 잊을수 없는 추억거리였다.
그래서 그녀는 웃을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속마음을 준휘가 알까....
" 어서 들어가라. 늦었다"
" 응"
진이가 돌아섰다. 그러나 준휘는 무심코...정말 무심코 그녀를 다시한번 불러세웠다.
" 진이야...."
" 응?"
그녀가 돌아섰다. 하지만 자신이 왜 그녀를 돌려세웠는지...이유를 몰랐다.
왜...그녀를 돌려 세운 것일까...
결국 준휘는 해답을 찾아내었다. 돌아서는 그녀를 한번 안아주고 싶었다. 그냥 헤어지는게
아쉬웠던 것이다.
" 한번...안아봐도 될까??"
느닷없는 그의 요구에 진이는 할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따윈 상관없다는듯 다가와
진이를 으스러지게 안아보는 준휘였다.
준휘는 자신의 품속에 안겨있는 진이를 느끼며 생각했다. 유리보다 10cm가량 큰키였으나
그의 품안에 들어와있는 어깨는 그녀보다 가냘펐다. 힘은 유리와 비교가 안될정도로
세었으나 마음만은 그녀보다 약하고 섬세했다. 여느 여자들과 같이 토라지진 않았지만
대신 과격하게 화를 냈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보다는 맵디매운 떡복이를
즐겨먹는 진이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점점 익숙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뭐지? 이............기분은???
가슴쪽에서 치고 올라오는 따스한 기운이 그를 당황케 만들었다. 품안에 있는 진이가
꿈틀거릴때마다 이 오묘한 기운은 준휘의 심장을 거칠게 자극했다.
그러나 그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 아..나 숨막혀.."
진이가 그의 품속에서 겨우겨우 꺼낸 말이었다. 순간 깜짝 놀라며 팔에 가했던 힘을
풀어 느슨하게 만들었다.
" 됐어?"
" 응"
" 미안....미처 생각못했어...."
" 뭘..?"
네가........여느 여자들보다 연약하단 사실...미처 생각못했어..
준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는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여자를 안고 있다는 부담감이 없었다. 평소 다른 여자들과
유희를 즐길때 그는 그녀들과 대면을 해야 하는 내일이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왔었다.
끈질긴 여자들의 근성이 하룻밤의 유희를 영원한 사랑의 약속으로 이해할까봐 그게 두려웠
던 것이다. 허나 진이에게선 그런 부담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내여자가 아니니까....다른 꽃을 찾아 떠날 나비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여자가 아니라 그 부담감이 덜한 거라고...
하지만 품속에 있는 진이의 생각은 달랐다. 왠지모를 따스함이 이남자다 싶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입술을 훔치고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준 사람...그간 몇명의
남자를 사귀어는 보았지만 감히 그녀가 무서워 곁으로 접근하는것조차 망설이던
멍청이들 뿐이었다. 허나 그는 달랐다. 먼저 다가서서 그녀를 알고자 했으며, 화를 내면
보복할줄도 알았다.
한마디로 그녀가 기면 그는 날아서 진이의 위에 머물렀던 것이다.
어느 누가 이런 명언을 주절거렸던가...기는놈 위에 나는놈이 있다고...
정말 그녀와 준휘를 보고 한소리가 아닐까 의심이 될정도로 딱 들어맞는 속담이었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 그녀는 준휘의 팔에 다시 힘이 들어가는걸 느꼈다.
그리곤 그의 품속으로 더욱 그녀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알지못하는 희열감...하지만 그런 희열과 흥분도 잠시뿐이었다.
준휘의 한마디에 의해 그녀는 다시한번 그 속담을 머릿속에 되새겼고, 그의 허리를 움켜쥐고
있던 손을 축 늘어트릴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굳어버렸다. 완전히 돌이 되어 버린 느낌.....
" 저기...나...모레가 생일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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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03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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