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족보가 있다면서요?"
"글쎄요, 금시초문인데요? 방치되지 않고 우성학적으로 보호해야 할 동물에 대해서는 족보가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꽃에 족보가 있다는 말은 처음인데요? 동물의 경우도 일정한 수명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고 조건등이 아주 까다로운 것 같던데요."
"그럼, 식물을 분류할 때 '과', '속', '목' 등으로 분류하는거는요, 그건-."
"그건 식물을 생태학적으로 특징적으로 분류하는 것일 뿐, 그것을 족보로 여기기에는 무리가 있죠."
"그렇긴 하겠네요, 꽃에 족보가 있으면 예를 들어 '민들레' 시조는 '들레민'인데 2,500대 손으로 이어지면서 '민들레'가 됐고-, 호호, 영 안맞는데요?"
고운식물원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잔디광장을 들어서면서 이야기를 훔쳐듣다 킥킥대며 혼자 웃었다.
'맞아, 꽃이 족보가 있다면 얼마나 헛갈릴까, 이 장미는 조상대대로 영국에서 살다가 갑오경장 이후에 한국으로 건너 와 어쩌구저쩌구, 여기 고운식물원에 있는 장미는 갑오경장 때 건너 온 조상의 몇백대 자손으로 천리포수목원 장미와 형제지간인데 형인 고운식물원 장미가 에버랜드 장미와 결혼해서 두 딸을 보았고 첫 딸은 시집 가서 아들 하나만 두었는데 그 아들들이 성장해서 현재 제주도에 가 있고 둘째 딸은 팔자가 사나워 결혼하자마자 이혼해서 애가 없는 바람에 혼자 사는데 이러쿵저러쿵-.'
혼자 히히덕거리는 것도 한계였다.
훑고 올라오느라 숨이 턱에 찬다.
잔디 카펫을 넓디넓게 깔아 놓은 광장은 경사가 져있는 고급 야외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중앙에는 공연무대도 갖추어져 있었다.
여름의 꼬리를 물고 들어 와 부는 바람은 제법 넉넉한 가을을 닮아있었다.
너른 잔디, 시원한 갈바람은 씩씩거리며 올라 온 열기를 식혀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분위기에 제대로 어울리는 것은 역시 운치있는 담배 한 가치 피워 무는 것이 제 격이었다.
덥다고 벗어 어깨에 걸친 청상의를 들어 주머니를 뒤졌다.
'운치있는 담배-, 운치있-.'
그런데-, 어랍쇼, 없다.
담배가 없다.
아니 운치가 없다.
어느 틈엔지 주인의 속박이 싫어 자유를 찾아 간 모양이었다.
허허벌판에 담배가게가 있을리는 만무.
'젠장, 이럴 때 하필-.'
하지만 다행이었다.
담배 피우는 꽃향기 식구들이 눈에 띄는 고마움이라니-.
그 간에 얼굴을 익혔으니 사정이야기를 하면 몇가치 얻어 피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 안에서 너스레를 죽어라 떨었으니 동냥해 주겠지.
담배가게만 보이면 냉큼 사서 갚아 주면 될 일이었다.
먼저 제1목표, 청(청매화)선생에게 4가치를 빌렸다.
'다 가져가라'는 고마운 뜻을 전해 준 청선생이지만 될 법한 일이 아닌 것을-.
제2목표인 꼬(꼬마바보)선생에게 3가치.
'얻은 떡이 두레반'이다.
'기념사진도 찍고 잠시 쉬어간다'는 화(화니)선생의 전달이 있고 또 한 번의 모델이 되었다.
한 5분쯤 쉬었을까?
"꽃을 보니 좋으시죠? 주관찰로를 따라 오면서 보신 꽃만으로도 오늘 보람은 있으실겁니다. 이제부터는 두 팀으로 나누겠습니다. 오른쪽 길이 보이시죠?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고운식물원을 한 눈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고운식물원의 백미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치가 그만이죠, 전망대까지 올라 가실 분들 한 팀, 그리고 자유자재로 쉬실 분들 한 팀, 쉬시는 분들이나 전망대에 오르시는 분들이나 11시 30분까지는 고운식당에 도착하셔야 합니다. 자 그럼-."
각자 원하는대로 실시하라는 화선생의 안내였다.
나야 물으나마나 잔류팀인 것을-.
담배 한 가치 피울 수있는 여유로운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마침, 잔디광장 중턱에 나무 한 그루, 밑에 너른 바위가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는 그만이었다.
먼저 자리한 식구들이 옹기종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미리 선점하고 여유롭게 담배 연기를 '폭폭' 내뿜는 폭(폭포약수)선생이 반갑게 맞이한다.
덕분에 턱하니 자리를 차지했으니 투철한 의무감으로 자리값을 해야했다.
그 동안에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잠시 대기, 관망하는 자세도 필요하건만 입이 방정이었다.
"닠네임때문에 머리 아픈데 이름으로 할 수 없을까요? 폭선생은 어디 폭간가요?"
주책을 부렸더니 웃음으로 해서 화제가 돌아온다.
버스 좌석이 한계인지라 남어지 꽃향기 식구들을 자신의 승합차로 인솔하고 온 화선생의 친구분이 명함을 건네준다.
"저 파주에서 카페를 하는 윤도영입니다. 파주에 오시면 한 번 들리세요."
"아-,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어디 윤씨신지요."
"'파평' 윤씹니다."
"와아-, 그러시군요, 제 내자가 '파평' 윤씹니다. 더더욱 반갑습니다."
화제는 제대로 순조롭게 연결이 되었다.
"복타셨네요, '파평' 윤씨는 여자가 독한 면이 있거든요."
'아니, 이건 뭔 말이지? 여자가 독하면 남편인 나는 작살 난다는 말인데 복을 탔다니-, 나 참, 처음 본 사람이 너무하는군.'
생각이 이쯤 달아 올랐을 때 윤선생, 집에 있는 내 식구 파평 윤씨를 저울에 올려놓는다.
"'파평' 윤씨 문중에 있는 남자들은 무능력하기 짝이 없어요, 하지만 '파평' 윤씨 여자들은 능력있고 지독해요, 성격이 외골질 정도로 강하기 때문에 살림 잘하고 손해 안 보고 남편만 생각한다 할까요? 우리 문중에서는 독하다고 이야기하지만 '파평' 윤씨 여자를 들이는 남자는 복많다 그러죠."
'아하-, 그런 뜻이라면-.', 들어보니 틀리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도 아내가 애지중지 남편이라고 먹여살리지 않더냐, 후후.
칭찬인 바에야 더 하라고 부추키고 싶었지만 윤선생, 얼추얼추 막음을 한다.
과년한 딸이다.
나이가 아비와 비슷한 딸을 눈 앞에 둔 셈, 어쨌거나-, 우리 편이 금방 다수가 되었으니 화제는 당연히 '한산' 이씨로 옮아온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여섯 사람 중에 두 사람이 '한산' 이씨인데 '일러 무삼하리오'.
후후, '한산' 이씨 가문이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가문이 된다.
"저는 '김해' 김씨거든요? '김해' 김씨는 많다 보니 동성동본인데도 결혼하는 사람도 있더라니까요."
'한산' 이씨의 너스레를 듣고 있던 민(민비)선생의 일갈이다.
'히히, 민선생인 줄 알았더니 김선생이네, 이렇게 닠네임과 이름이 헛갈리니 원-.'
웃고 말 일만은 아니었다.
참견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큰 병 아니더냐.
"다른 문중에 주기 아까울 정도로 좋은 사람이 많아서겠죠."
"그럴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호호."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면서 '먹어 양반 유지하기'를 위해 고운식당을 향한다.
고운식당은 버스가 멎었던 주차장 근거리에 있었다.
지금까지 올라 온 주관찰로와 반대편 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 더 용이했을 뿐더러 다시 꽃을 관찰 할 수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주관찰로를 올라오면서 수차례에 걸쳐 망신을 당했으니 내려가는 길은 혼자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여타 양반들과 거리를 두었다.
이 꽃 저 꽃을 혼자 관찰하고 오두방정을 떨어도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단 한가지, 발이 아픈 것이 관건이었다.
아들 놈 운동화를 신고 온 덕에 발가락을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경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적지 않은 길을 힘 주며 걷다 보면 두 발이 뒤틀리는 것처럼 경직이 되고 여간해서 풀리지 않는 괴로움이었다.
그렇더라도 올라왔으니 내려가야 정상으로 되돌려지지 않더냐.
'이것도 몸이라고 젠장-.'
마침, 관리인 한 분이 스쿠터를 타고 내려온다.
'그래, 저걸 좀 얻어 타고 내려가자, 히히, 역시 난 윤선생 말대로 파평 윤씨를 아내로 둔 덕분에 복탄 놈은 틀림없구만-.'
그렇다고 대뜸 '같이 타고 가자' 고 단도직입적으로 요구조건을 내세울 수는 없지 않더냐.
무슨 일이든지 절차가 있는 법이어늘-.
"저-, 잠깐만요, 고운식물원은 처음인데 말로만 듣던 것보다 실제로 보니 기막히군요."
칭찬을 하는 데야 뭐라 말할까, 마음씨 좋게 생긴 관리인, 기분좋은 표정이 만면에 가득.
그렇다고 바로 '좀 타고 갑시다' 할 수는 없었다.
좀 더 확실한 반응을 보아야 했다.
"여기 4,500여종의 수목이 있잖아요? 그거 관리하려면 이름을 전부 알아야 할 것 아닌가요? 그걸 아는 분이 누구에요?"
엉뚱한 질문으로 여겼던지 슬금 웃는 관리인이다.
"후후, 한 사람이 그걸 다 알 수 있나요? 종류 별로 학자들이 있어요, 워낙 넓고 종류가 많아서 한 사람이 관리한다는 건 불가능하죠."
이쯤에서 '아-, 그렇겠군요, 그렇겠어요, 저-, 실례지만 저 밑에까지 신세 좀 지면 안 될까요?' 한마디 하려는데 여유를 주지 않는 예의 관리인, 다시 출발 할 자세다.
위기 상황 도래, 바로 궁금증을 잇대어야만 했다.
"조성하는데 상당히 힘이 들었겠어요, 여기는 그냥 야산이었을 것 아닌가요?"
"예, 그렇죠, 처음에 매우 힘들었죠, 지금은 시행 착오로 외래종이 많이 상하는 바람에 4,500여종이지만 1990년, 처음에는 5,700여종이 있었죠, 관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렇겠어요, 아무래도 경제적 어려움도 있죠?"
"그럼요, 외래종 같은 경우는 지구 곳곳을 뒤져 때론 비싼 돈으로 사오기도 하고-."
"실례가 안 된다면-, 이 식물원을 조성하는데 얼마나 들었을까요?"
"그건 이루 말할 수없고 말씀드리기가-, 이렇게 비교하시면 될 거에요, 곳곳에 보이는 조각상만 해도 한 작품에 1억이 넘는 것도 많아요, 1년에 드는 인건비만 해도 약 6억원이 들죠."
"그렇군요, 그 많은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있으면 유지하는데 많은 힘이 들텐데요, 따로 수익 사업을 하시나요?"
"아닙니다. 전혀 없습니다."
"그럼 관람자들이 내는 관람료가 전부겠네요?"
"그거 얼마나 되겠어요, 그것도 일년 사시사철 관람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봄부터 가을-, 3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진데요, 적자죠 뭐."
"그렇겠군요, 그런데도 이렇게 보존을 잘해 놓은 것을 보면 주인되는 분은 정말 투철한 환경주의자 아니라면 수목을 진정 사랑하시는 분이군요."
그 많은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적자만 난다면 고운식물원의 유지도 문제가 될 것 같은 우려도 들었다.
고운식물원 주인의 순수성과 투철함을 들어 이야기했지만 보통 미스테리가 아니었다.
어쨌던지-, 이쯤됐으면 스쿠터 뒷자리는 내 자리였다.
긴 시간을 인터뷰하듯 한 다음에야 어렵지 않을 것이-.
다음은 정리 단계다.
"말씀 잘들었습니다. 친절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저-, 혹시, 고운식당 쪽으로 내려가시나요?"
"예."
"그렇군요, 잘됐네요, 저-, 스쿠터 뒷자리 신세 좀 져도 될까요?"
"이런-, 이게 힘이 없어요, 저 하나 변변히 태우지도 못하는 스쿠터에요, 미안합니다. 저-, 그럼-, 슈웅~."
제깐에는 글을 올리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만 보면 또 고칠 곳이 나타나곤 한답니다. 아직도 손 볼 곳이 많긴 하군요, 하지만 손만 보다 보면 한이 없을 것이-, ^^, 그냥 지나치기로 했답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격려 말씀, 일기장에 꼭꼭 눌러 적고 있답니다.
벌써 상당히 오래되어 많이 잊었는데.... 이호규님은 메모를 해서 보관해 두셨나 봅니다??? 정말 기억력 좋으시네요~~ 그리고 필력도 대단하시구요. 몸의 내공을 모두 글에다 쏟아 놓으셔서 몸이 약해?지는것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건강하게 지내세요. 절대로 무리 하시지 말구요... 그래야 모든 분들이 많이 즐거운 시간
길에 핀 꽃한송이가 새롭게 느끼게 된계기가.................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만큼의 정열과..........그만큼의 적자속에서.......꽃을 사랑 하고 가꾼다는것??? 아마 마음을 가꾸는 일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족보를 따져 들수 밖에 없겠는데요.......호규님이 아니면 어찌 알겠는 지요^^
첫댓글 내일아침 다시 와서 읽어 볼께요..편안한 밤되소서!
아........... 궁금증이 풀렸네요..........무슨얘기 했을까?? 되게 궁금했는데.........사람은 왼쪽 ..오른쪽 뇌의 운동이 다르다구 그러던데...아마 상황의 설명으로 보아 꽃 외우는 머리보다는 더 유익한 뇌가 회전을 하나봐요..전 이것도 저것도 안되던데.........그나 저나...사진속의 펜들 부럽당.......역시 재미 짱
당신은 멋쟁이십니다! ! !
제깐에는 글을 올리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만 보면 또 고칠 곳이 나타나곤 한답니다. 아직도 손 볼 곳이 많긴 하군요, 하지만 손만 보다 보면 한이 없을 것이-, ^^, 그냥 지나치기로 했답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격려 말씀, 일기장에 꼭꼭 눌러 적고 있답니다.
그동안 꼬리글 올리지 못해 미안함 금치못합니다. 항상 세상을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는 모습이 글속에 배여있네요. 섬세하고, 재미있게 계속이어가고 있어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는데요. 언제나 건강하십시오.
민비님 ! 오~오랜 만일쎄! 참,반가와요. 민비님도 드디어, 한페이지에 등장인물로 출현을.......
다시한번 읽었어요.기분좋은 아침! 기분좋은 사람, 기분좋은 만남, 기분좋은 하루되소서!, 이호규님을 생각하면 행복하답니다.
벌써 상당히 오래되어 많이 잊었는데.... 이호규님은 메모를 해서 보관해 두셨나 봅니다??? 정말 기억력 좋으시네요~~ 그리고 필력도 대단하시구요. 몸의 내공을 모두 글에다 쏟아 놓으셔서 몸이 약해?지는것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건강하게 지내세요. 절대로 무리 하시지 말구요... 그래야 모든 분들이 많이 즐거운 시간
이호규님의 여성에대한 건강한 사고가 간간히 돗보였답니다....자랑스러운 아내를 두셔서 더 힘이나는것도 같고... 자원의 보고에 담아둔 사연은 날마다 뛰여 나오려 할터인데...힘이 드실것 같습니다. 또 기다린다고 하면 죄송스럽기까지...건강하시길~*
길에 핀 꽃한송이가 새롭게 느끼게 된계기가.................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만큼의 정열과..........그만큼의 적자속에서.......꽃을 사랑 하고 가꾼다는것??? 아마 마음을 가꾸는 일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족보를 따져 들수 밖에 없겠는데요.......호규님이 아니면 어찌 알겠는 지요^^
포즈 또한 재미 있으십니다 !!!!!!내가 이꽃집에 전입해 오기전에는 길가에 피고지는 꽃들에 애환을 전혀 몰랐습니다 헌데 지금은 싱겡이 꽃 까지도 눈여겨 바라 볼줄이야 .......훌륭하신 짝궁께서 건강은 특별히 챙겨 주시리라.......우리들의 기쁨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