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하나의 이야기를 만화와 소설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읽는다. '코믹 노블'이라는 새로운 형식
을 창조한 장수진 작가의 첫번째 단행본.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인을 대신해 대리모로 살아가는
한 여성이 언젠가부터 자궁 안에 착상한 아이가 역류해 위에서 소화하게 된다는 내용의 표제작
「아이 먹는 여자」를 비롯, 그녀의 만화에는 잃어버린 자, 소외받는 자, 약한자들에 대한 담담하
면서도 물기 어린 시선이 가득하다.
만화의 컷과 컷 사이에는 숨겨진 시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숨겨진 의미를 찾아 연속적인 시간
의 흐름으로 완성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만화는 정지된 컷을 연결하여 만든 그림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신인 작가 장수진은 만화의 이러한 매체적 특성에 착안해 '코믹 노블'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만들어냈다.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하나의 완성된 만화가 있다. 독자들은 먼저 이 만화를 보며 이야기를 이해
한다. 그렇게 한 편의 만화를 모두 보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오른쪽의 소설을 읽으며 작
가가 컷과 컷 사이에 숨겨두었던 진실을 이해한다. 혹은 한 페이지씩 번갈아가며 읽어도 좋다.
소설까지 모두 읽고 나면 여러분은 냉랭하고 무표정한 주인공들의 얼굴 뒤로 그들이 짊어져야
했던 슬픔, 고뇌 그리고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소개
장수진 - 1979년생.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입학해 늦깍이로 만화를 시작했다. 글은 잘
쓰지만, 그림은 그렇지 못하다는 평을 듣고 졸업 후 1년간 집안에 틀어박혀 그림 연습에만 매진
했다. 이후 단편만화를 시작했으나 그림만으론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어 만화
와 산문형식을 결합한 독특한 구성의 '코믹 노블'이란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2003년 서울애
니메이션센터 제작 지원 단편만화 공모전에서 '아이 먹는 여자'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같은 해
에 제 1회 대한민국 창작만화공모전에서 출판만화 대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현재 격주간 만화잡
지 '영챔프'에 매월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저자의 말
…하지만 눈을 들어 창문을 보면, 유리문 너머로 가득해진 달이, 왼쪽 창문에서 오른쪽 창문으로
기울어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혼자는 아니었던 셈이지요.
홀로 밤을 새고 새벽을 맞다 까무룩 잠이 들면 꿈속에서도 소망했습니다. 그러다 눈을 뜨고 누군
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 보다 이
내 포기하고 맙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도무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2003년 초여름, 이 시리게 싱싱한 계절이 다시는 내게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
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밖으로 나섭니다. 깜박거리는 신호등 앞에서 사람들은 달립니다. 파
란불은 이내 사라지고 다시 빨간불. 건너지 못한 저는, 사실 갈 곳도 없었으면서 초조해집니다.
그러다 파란불. …집으로 돌아옵니다.
낯익은 골목과 몇 번인가 마주쳤던 사람들. 돌아오는 길 내내 돋아나던 잡념과 하늘의 구름. 과
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누군가 제게 했던 말처럼 뜬구름 잡는 일일까…
저는 겨우 스물 다섯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을.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쿵, 쿵, 쿵, 가슴 속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닙니다. 간혹 만나서 차라도 한 잔 하고 싶어질 만큼 좋
은 이도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과연 내 속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오기나 한걸까요. 꽁꽁 감싸두고 침묵으로 일관해온 빈곤한
마음에 누가 둥지를 틀 수 있었을까요. 지금껏 해온 내 이야기들이 허상처럼 부유합니다.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저는 이제 스물 여섯입니다.
그리고 다시 초여름. 좀더 조심스레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2004.5 장수진
독자리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책 | 황준철 님 | 2004-07-31
'코믹 노블'이라. 처음 들어보는 합성어지만 코믹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기에 왠지 낯설지가 않
고 오히려 친근감이 더 들게된다. 코믹 노블 즉, 만화와 소설을 적절하게 저자 스타일대로 구성
한 이 책은 여느 책들과는 달리 개성과 독창성이 곳곳에 묻어난다. 책 구성형식을 보면 한쪽 면
에는 만화를 그리고 다른 쪽면에는 이야기들을 곁들여주어 독자들로 하여금 읽어 나가게 만들
어 준다.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만큼 위험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먼저 저자의 새로운 실험적인 발상에 독자로써 박수를 보내고 싶으며, 다음에는 어떤 색다른 형
식의 이야기가 탄생될지 벌써 궁금해짐은 왜일까. 7편의 이야기들은 장맛비처럼 약간 우울한 면
들이 엿보이긴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건져낼 수 있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으
면 할 것이다. 섬세하게 그려진 만화도 마음에 들었지만 저자의 글 다루는 맛 또한 마음에 쏘옥
드는 부분이었다. 책 내용을 좀더 심층적으로 이해하긴 위해선 적어도 두 번 이상은 읽어야만
이 이 책의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무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즈음 코믹 노블이라
는 색다른 장르의 이 책으로 신선함을 맛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