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희 도로테아, 서울 대교구 구로 2동 본당.
“병든 열심으로 살던 나”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의 증언을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와 영광 영원히 받으소서!
저는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교회를 다니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의 소개로
학교 앞 성공회에서 성가대를 뽑는데 오디션을 보았고 합격하여 성공회를 다니게 되었으며
그때 받은 세레명이 도로테아입니다.
제 남편은 저와 함께 찬양을 하는 기타리스트이고 저희 부부 사이에는 네 명의 딸이 있습니다.
저의 큰 딸과 둘째 딸 이후 셋째와 막내를 9년에 한번씩 늦동이를 낳고
큰딸과 막내딸은 20년이나 차이가 납니다.
가톨릭 집안에 시집와서도 저는 선뜻 성당을 다니지 않았으나 똑같은 꿈을 이틀 연속 꾸고 난 후,
저 혼자 성당을 찾아가 둘째 아이를 업고 큰 아이는 손을 잡고 데리고 다니며 교리를 받고
대구 대신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20대 후반이었고 그 이후 성가대, 제대회, 레지오 등
여러 단체 활동을 했지만 무늬만 신자인 미저리적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30대 초반에 남편이 서울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개신교 신자인 저희 큰 딸 담임선생님이 권해준 책을 읽고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성당에 성령 기도회라는 공동체가 있는 것도 몰랐는데
어느 날 성령 기도회 회장님과 봉사자들이 저를 찾아와 찬양 봉사를 할 수 있겠냐고 부탁을 하러 오셨고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제 남편이 기타를 좀 치는데 같이 해도 되냐고 했더니
그분들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다고 너무나 좋아하셨고
그 때 부터 성령쇄신 봉사회에서 찬양을 하며 오랜 세월 사도로 살아왔습니다.
2018년 삼성산 성지 공동체 철야에 봉사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신부님이 부임해 오셨는데
그것이 저는 아버지의 섭리라고 확실히 믿습니다.
전에 제가 2017년쯤 유럽 봉사회 초청으로 봉사를 하러 가게 되었을 때,
그곳 회장님이 내맡김 영성에 대해 언급을 했고 그분도 아직 회원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제 가슴에서는 이 단체에 대해 알고 싶었고 끌렸으며
신부님이 삼성산 성지에 부임해 오시기 전 네이버 검색을 하고
“마리아처럼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라는 카페에 누구의 권유도 없었지만 바로 가입을 하였습니다.
제가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알기 전,
저희 부부는 정말 열심히 봉사 생활을 했기에 제 자신이 정말 신앙이 좋은 신자인 줄 알았습니다.
직장을 다니던 남편은 기도회가 있는 날이면 출장을 갔다가도
시간이 부족 하면 비행기를 타고 와서 기도회에 참석을 했고
철야 기도 전에는 시간이 없으면 저녁은 굶어도 항상 깨끗이 목욕을 하고 무대에 올라가고
아주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지 않고서는 빠지는 일도 없어 개근상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매일 미사, 성체조배, 묵주기도, 염경기도 등
할 수 있는 모든 신심 생활에 도움 되는 일은 거의 빠지지 않고 하였고
교도소, 알콜 사목 센터, 노숙자 급식소와 지방 세미나와 피정 등
거의 모든 생활을 하느님 일에만 전념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저에게 아버지 일은 언제나 최우선이었고 전적으로 봉사에만 전념하면서 살았는데도
제 마음속에는 늘 두려움과 불안과 걱정 근심이 항상 남아 있었습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알기 전 저의 신앙 생활은 아버지께 내맡기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그러면서도 매일 열심히 기도하고 매일 미사하고 봉사 생활에만 전념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봉사를 시작하기 전 저의 상황은 봉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떤 강렬한 요구에 의해 제 몸을 던지고 제 인생을 걸기로 작정하고 선택했으나
내맡김의 삶이 무엇인 줄 모르고 열심했던 제 신앙은 ‘성실한 신앙인’이라고 스스로 안위하는
외적 행위에 불과했다는 것을 거내영에 가입 후 알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삼성산 성지에 부임해 오시고 나서 우연한 기회에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본으로 된 책과
“딸랑 이거 하나를” 두 권의 책을 신부님에게 선물로 받고는 집에 가지고 와서 단숨에 읽었고
제 남편은 창화살 책을 세 번이나 읽었습니다.
외적 신앙에 치우쳐 사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열심히 믿으면
구원의 조건을 충족하는 줄 알고 착각에 빠져 있을 때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참으로 제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신앙의 외적 행위 외적 활동은 신앙의 한 부분인 것을 알게 되었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전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하느님의 뜻대로가 아닌 제 뜻만을 앞세우며 아버지를 사랑해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하느님은 사랑받기에 합당한 분이시고 저에게 사랑을 요구하지 않으셔도
그 존재만으로도 사랑받기에 너무나 충분하고 합당하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아버지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많았고
그러나 아버지는 절대로 사랑을 나눠 가지고 싶어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마음과 목숨과 정성을(마.목.정) 다해 그분만을 사랑해 드려야 하는 분이며
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을 찾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목정"이 어디에 있는 무신 정자의 이름이냐고요?
아니, 블써 잊으셨단 말입니꺄?
아이고~~~ 그 마목저엉~~ 마목저엉~~~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만을 싸랑할 것을 굳게 다짐했던
그 "마목정"을 말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22,37)> 지도사제 10.08.11
창화살 책을 읽고 제가 얼마나 안주하면서
묵은 땅을 갈아엎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면서
저는 매일 같이 무형의 성전을 드나들며
하루에 몇 차례씩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고
“사랑하는 주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이 성가를 시작으로
능구 삼개월을 봉헌 하기도 했지만
하루 종일 화살기도 성가를 부르면서 제 삶이 전부가 능구가 되었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 에페소서1:4~6 >
제가 아버지를 택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저를 택하셨고
그런 하느님이 저를 당신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하시는데
저는 하느님이 제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병든 열심을 살았었습니다.
극한의 정성을 보이며 철야기도, 단식기도, 매일 미사, 묵주기도, 염경기도 등
수없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하느님께서 제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바라며
금욕적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신 적도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으니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뜻을 이루며 살자고 하시는 의도이셨음을 몰랐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오직 아버지의 뜻을 살고 그 뜻대로 가자고 하시는 것이고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는 어떤 법칙이나 보상이 아닌 사랑의 관계로서 함께하자는
가족 간의 관계 같은 것임을 거내영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거내영을 알기 전 저희는 가족기도를 일주일에 한 번 하였습니다.
큰 딸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기도를 하던 중
저희 큰 딸이 기도 중에 대학에 가고 싶은데
자기는 대학에 갈 형편이 안돼서 너무 속상하다고 기도하는 것을 옆에서 들으면서
부모인 제 마음은 너무나 아팠고 기도가 끝났을 때
저희 부부가 큰 딸에게 아빠 엄마가 하느님 일을 하기 위해
어려움을 감수하게 된 것을 이해하느냐고 묻자 이해한다고 했고,
그럼 엄마와 함께 단식기도를 하자고 하고,
삼일 단식 기도를 하고 난 후 미술학원 원장을 하던 본당 형제님과 면담을 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늦었지만 한번 노력해 보자고 하면서
입시 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학원비가 비싸니 자기가 아는 원장에게 사정 얘기를 해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후 전화를 하셔서 입시학원 원장이 저희 딸을 가르쳐 주겠다고 연락이 왔고
늦게 미술 공부를 하면서 수능 준비를 하였습니다.
저희 딸이 수능 시험을 마치고 입학원서를 네 군데 학교에 제출하였는데
한 군데 학교에서 원서를 접수하고 손을 빼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합격 여부와는 상관없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전철역까지 걸어갔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봉사를 하러 나갔을 때 어느 분이 저에게 찾아와
딸이 이번에 시험 봤느냐고 물어보면서 아직 합격자 발표도 나지 않았는데
저희 딸 입학금을 자기가 내주겠다고 하고 가다가 말고 다시 돌아서서
4년 치 등록금을 자기가 모두 내주겠다고 하면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가시고 난 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는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를 아시는 분이셨기에
모든 것을 아시고 미리 준비해 놓으셨다가 그때에 맞춰
우리가 감당할 수도 없으리 만치 완전한 주도권을 가지고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저희들을 이끌어 가시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희는 대학 입학금을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고 어쩌면 내맡김이라는 단어를 그때는 몰랐지만
매일 아버지께 맡기고 살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에 이끌리는 대로 이끌려 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주가 되어 봉사를 하러 나가서 찬양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중
그분이 또 다시 저를 부르면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흰 봉투 하나를 내밀면서 자기가 이 돈을 가지고 있으면 쓸 것 같아서 미리 가지고 왔으니까
입학금 나오면 내라고 주었습니다.
사실 그때도 합격자 발표자 나지 않았을 때이고 합격여부를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삼백만 원이 들어 있었고,
며칠 후 학원에서 저희 딸이 합격했다고 축하한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입학원서를 내면서 감사기도를 드리고 울었던 그 학교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섭리는 이미 모든 것을 예정해 놓고 계셨습니다.
저희도 너무 기뻐서 학교에 전화해서 합격 한것을 확인하고
교무과에 전화해서 입학금이 얼마인지 묻자 2,977,000원이라고 하였고
이 모든 것이 아버지가 하시는 일임을 믿고 감사하며 기쁨의 찬미와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저는 이런 수없이 크고 작은 많은 체험들을 경험했지만
제 삶에 있어서 저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제가 원하는 대로 무엇을 가지느냐 가지지 않느냐의 문제가
저의 신앙에 성숙을 이루어 가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모른는 체
열심히만 믿으면 되는 줄 알았고 제 필요만 채우기를 바라는 이기적이며 기복적인 신앙인으로 살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자부할 때는 내려놓음을 통해 비우고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살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단히 노력하면서 우월감만 키워나갔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비우는 것이라기 보다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으로 채우는 것이었고 하느님 사랑을 채우는 것으로
하느님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고,
아버지께 매달려서 아버지가 모든 것을 이끌어가시며 선택하는 것이며,
아버지의 두 손을 잡고 있기에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아버지가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채우시는 중심에 계시기에 제 필요를 스스로 채우려 할 필요가 없이
완전히 내맡겨 드려야 하는데 그것을 몰라서 제 필요를 채우기 위해 치성을 드리며 열심을 살았습니다.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기 이전에 저는 제 필요를 채워주실 때는 행복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거내영을 알고 난 후의 저는
하느님이 제 청을 들어주시지 않든 들어 주시든 하느님 때문에 행복하고
하느님만 있으면 그 나머지는 덤으로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내맡긴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ㅣ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 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한 번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겨드렸으면 그것으로 그만 끝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주시든지 우리는 그저 물 위에 떠있는 낙엽처럼,
부는 바람처럼 그저 하느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하느님 뜻에 그냥 내맡겨드려야 한다.>
지도사제 09.12.20
제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는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지 모르고 야속한 마음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아버지께 무조건 내맡겨 드리고 나면 아버지께서 제게 선한 동기를 가지고
사랑의 마음으로 귀한 것을 허락하시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오래 전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매하였는데 금리가 오르고 원리금 상환을 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부담을 갖게되어 아파트를 매도하기 위해 부동산에 내놓았습니다.
저희 아파트가 사는 곳은 교통이 좋고 전철역도 가까우며 인프라가 좋아서 빨리 팔릴 줄 알았지만
또 다시 금리가 오르고 아파트 값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겹치며
저의 생각과는 달리 아파트가 팔리지 않고 경제적으로 모든 상황들이
제가 원하지 않는 위기 상황으로 흘러갔고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상황이 더욱 나빠질수록 저는 더욱 아버지께 내맡겨 드리며 화살기도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동안 제 자신이 얼마나 아버지 뜻에 합당하게 살지 못했는지를 들여 다 볼 수 있게 되면서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는 법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었고, 고난의 시간들을 통해
아버지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경험과 함께 성숙이 있음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제힘과 노력으로 할 때는 모두가 힘들어지고 아픈 상황이 만들어지기만 할 뿐이지만
고난을 통해 결국은 제 삶의 끝에 하느님이 무엇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가,
저를 어디까지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알게 되었고,
어떠한 위험이나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아버지는 저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제게 닥친 어려움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가 청하는 것을 들어 주시는 것만이 꼭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안전을 추구한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 한 분만을 바라보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릴 때
그것만으로 안전하고 충분히 채워질 수 있기에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아도 되고
제 삶에 있어서 망하느냐 망하지 않느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렇게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살던 제가
아버지께 완전히 맡겨드리며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성모님이 수태고지를 받으실 때 하느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특별한 선택을 받았지만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에 노출되는 부담을 함께 받는 것임을 깊이 인식하게 되면서
은총과 고난은 패키지로 오기에 아버지께 내맡겨드리는 것만이
신앙의 최고의 정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닥친 이 어려움들을 통하여 저는 아버지가 저와 더욱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고
저와 소통하며 사랑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매 순간 아버지를 놓치지 않고 교통할 수 있는 것이 화살기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살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기 위해 다가오심에 대한 반응이고,
자발성을 가지고 하느님 아버지를 제 안으로 품게 되는 뜨거운 사랑가였습니다.
저는 하루에 묵주기도 백단, 성체조배, 염경기도 등 참 많이 기도했고
은근히 그것을 자랑하기도 했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았고
저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꼭 필요했습니다.
저는 기도를 저의 청원을 위한 수단이요 목적으로만 여겼고
제 뜻대로 기도하면서 제가 원하는 대로 제 생각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좋지 않은 결과를 갖게 되면 속상해하고 자책하곤 했지만
아버지 뜻을 저버린, 사랑 없는 믿음은 아무리 많이 기도해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발만 급하여 잘못된 길을 갈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통해 화살기도를 알게 되었고
화살기도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살게 만들어 주는 길잡이가 되었고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 왜 탁월한 영성인가?를 깊이 인식하게 되면서
화살기도가 저를 아버지의 사랑 안으로 깊숙이 데려다주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사랑을 통해 자기의 정체성을 선언하시고 설명하시며 경험하도록 하시는데
저는 “얼마나 더하면 제 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는 마음으로
떼를 쓰는 기도를 드렸을 뿐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화살기도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저를 만들어 가시는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고
제가 어디쯤 있는지 방향을 맞춰, 가는 길을 잘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주었고
화살기도로 매일의 일상과 함께 도전하면서 나아갈 때 제가 바라는 것들을 얻기보다는
제게 닥친 모든 문제들을 통해 아버지가 저를 만들어 가는 작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알기 전 저의 기도는 무작정 빌고 빌어서
얼마나 더하면 제 기도를 들어 주실까 하는 태도로 제 필요를 채우는 데에만 목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허락하신 모든 문제와 상황들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어렵고 힘들어도 그것이 저를 만들어 간다는 사실이며
그 목적을 이루기까지 아버지 하느님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시는 분이심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기고 화살기도를 하며 아버지께 집중 몰입하였지만
여전히 집은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제 상황은 더욱 나빠지면서 벼랑 끝까지 저를 몰고 갔습니다.
부동산 경기는 계속해서 꽁꽁 얼어 붙었으나 간간히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고
계약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계약을 어기는 일이 몇 번 생기고 될듯하면서 안되는 상황들을 접하면서
그럴 때마다 더욱 아버지께 집중 몰입하고 내맡겨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계속해서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를 더욱 간절히 바치면서 화살기도를 바쳤습니다.
저의 상황은 더욱 악순환이 계속되었고 이제는 벼랑 끝까지 왔다고 생각이 되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날짜가 정해진 바로 전날 기적같이 집이 팔렸습니다.
이것은 정말 인간의 힘이나 계획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각본이었고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일이었으며
내맡김의 영성이 얼마나 대단한 영성이며 믿음을 살게 되는 줄 분명히 깨닫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요즘 매일 저녁 남편과 함께 성경을 읽는데
한 장을 가지고 일주일간 읽으면서 말씀대로 삶에서 얼만큼 적용하였는지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일주일 지나면 다음 장을 읽고 말씀과 화살기도가 함께할 때 영적으로 풍성한 자양분을 얻게 되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삶이 되는 삶”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제 뜻의 삶은 저를 가로막고 있어 굴욕과 모욕 앞에 서지 않기 위해 방어하고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인정받으려 애쓰고 살게 하며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죽도록 사랑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면서
내맡기지 못하고 지는 십자가는 고난이며 고통이고 무거운 짐이었지만
아버지께 내맡겨 드리고 기꺼이 지는 십자가는 부활이요 구원이며 “소유”가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기려면 죽음의 두려움에서 죽어야 하고,
망하는 것이 두려우면 망하는 두려움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 곧 완전한 위탁이며 내맡김의 삶이고
두려움은 내가 노력해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 인생에서 마주치는 고난과 고통을 통해 내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가 저를 놓지 않고 원하는 자리까지 기어코 데리고 가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참 순종의 삶이 무엇인 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뜻이라는 커다란 자아의 돌덩이는 불순종을 살게 하고,
아버지께 내맡겨 드리지 못하도록 방어벽을 세워 놓았지만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저의 자아의 큰 돌덩이를 치워준 사랑의 도구이고
이번 어려움을 통해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알게 되고 살게해 주신 아버지께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물질과 세상 권세에 눌려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제가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면서
이젠 제 삶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증거 하게 되었고
화살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뜻이 제 뜻을 누르고 굴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온 마음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니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의 관리를 받게 되었고
그 사랑의 관리를 받는 귀한 터전인 무형의 성전은 아버지 사랑의 기운을 받는 영적 공간이며,
댓글을 통해 진실한 마음을 토해내고 신부님의 다양한 교육과 지도를 통해
영적으로 충분한 거름을 채워 싱싱하고 건강한 나무처럼 성장하고
날마다 구원을 완성해 나가게 되어 무형의 성전과 댓글은 곧 저의 생명이고
거내영과 지도 신부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아버지께 내맡겨 드리지 않았을 때는 외부요인에 의해 이끌려 살아왔지만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아가니 제 삶의 주체이신 아버지의 의를 따라 살아갈 수 있게 되면서
저의 삶은 아버지 중심의 삶으로 바뀌게 되었고 저는 이제 아버지의 청지기입니다.
아버지를 죽도록 사랑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에 삶을 살지 못하며 내맡기지 못한 제 믿음은
참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지식 없는 믿음이었지만
거내영을 통해 저는 이제 “땅을 밟는 천국 생활”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께 이 한 몸 죽기까지 제 혼을 다 불태워 사랑을 바쳐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내맡겨 드리오니 이끌어주시고,
저희가 당신만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첫댓글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 이 한 몸 죽기까지 제 혼을 다 불태워 사랑을 바쳐드립니다.>
아멘 아멘 아멘!!!
오~~
나의 사랑, 나의 아버지,
거룩하신 나의 님이시여!
한 영혼의 사랑고백을 통하여 너무 너무 기쁘시지요?
변화되어 가는 식구님들의 나눔을 보면서 너무 너무 감사하고 사랑하여 눈물이 납니다.
사랑하는 청연님의 진솔한 고백이 너무 너무 감동이며, 성당에 열심히 다니고 봉사한다고 다니는 영혼들의 대표적인 삶들이지요.
어제나 그제나 지금도 열심히 산다는 인물들의 공통점이 본인들에게서 바라시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모른채 본인의 뜻대로 열심히 봉사만 하면 되는줄 알고 있는 영혼들이 한둘이 아닌 우리 교회 구성원 들이지 아닐런지요.
이제는 교회의 안일한 가르침에서 깨어나야하고 교회 지도자들과 사제님들이 깨어나서 올바르게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는 참목자들이 되어야 함을 다시금 느끼며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다 어디로 빠지는지 다시금 깨닫는 아침입니다.
열심히 종교인으로 살아왔던 제 삶과 청연님의 삶이 오버랩 되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저 보다 더~ 열심히 봉사하고 어려움중에서 아버지의 기쁨이
되시고자 많은 시간들이 모여 모여 아버지의 은혜로 <거내영> 이란 방주에 태우시기까지 님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낍니다.
지금도 깨어나지 못하고 사는 많은 영혼들에게 큰 울림이 되어, 진정 회개하는 삶으로 이끌어 주시어 먼저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깨닫고 따르는, 많은 참된 신앙인들이 태어 났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청연님,
고맙고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청연의 모든 것을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이 아침 청연님의 거룩한 증언으로 아침을 열게 해주는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오직 아버지의 뜻을 살고 그 뜻대로 가자고 하시는 것이고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는 어떤 법칙이나 보상이 아닌 사랑의 관계로서 함께하자는
가족 간의 관계 같은 것임을 거내영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는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지 모르고 야속한 마음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아버지께 무조건 내맡겨 드리고 나면 아버지께서 제게 선한 동기를 가지고
사랑의 마음으로 귀한 것을 허락하시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제힘과 노력으로 할 때는 모두가 힘들어지고 아픈 상황이 만들어지기만 할 뿐이지만
고난을 통해 결국은 제 삶의 끝에 하느님이 무엇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가,
저를 어디까지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알게 되었고,
어떠한 위험이나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아버지는 저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제게 닥친 어려움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가 청하는 것을 들어 주시는 것만이 꼭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멘!
거룩한 내맡김이 어떤 것인지 체험으로 알려주신 청연님 감사합니다.
저도 어떤 상황에서도 아버지께 초집중하여 맡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청연과 <딸랑2>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화살기도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저를 만들어 가시는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고
제가 어디쯤 있는지 방향을 맞춰,
가는 길을 잘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주었고
화살기도로 매일의 일상과 함께 도전하면서 나아갈 때
제가 바라는 것들을 얻기보다는 제게 닥친 모든 문제들을 통해
아버지가 저를 만들어 가는 작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
< 이제 저는 제 인생에서 마주치는 고난과 고통을 통해
내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가 저를 놓지 않고
원하는 자리까지 기어코 데리고 가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참 순종의 삶이 무엇인 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멘, 아멘~!!!
사랑하는 청연님,
거룩한 증언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길고 길었던 신앙의 여정에서
거내영으로 참진리를 얻고 진리의 삶을 살고 계신 것을 축하+축복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발에 땀이 나도록
많은 신앙활동을 하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청연님의 증언이 큰 외침과 울림이 될 것입니다.
거내영이 아니었다면
아버지께서 진심으로 저희에게 주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가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모른채
끝없는 욕구를 신앙이라는 허울로 위장하며 살지 않았을런지요...
아무리 부족함이 많고 어둠에 싸여있을지라도
자녀들을 빛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아버지만 바라보게 하는
거내영으로 그 누구라도 진리의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심에
엎드려 감사드릴 뿐입니다.
한순간이라도 내 뜻에 안주하고픈 본능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하시고
더 깊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초대하시니
기쁘고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내 뜻에 속지않고 아버지의 뜻을 바로보게 해 주는
거내영을 통하여 끊임없이 영적으로 성장하며
개별적인 '나'라는 존재는 점점 옅어지고
아버지와 함께 하는 나가 되어가니 그 은총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ㅜㅜ
사랑하는 아버지,
거내영으로 늘 이끌어주셔서 감사감사합니다.
청연과 <딸랑 2> 증언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화살기도로 매일의 일상과 함께 도전하면서 나아갈 때 제가 바라는 것들을 얻기보다는
제게 닥친 모든 문제들을 통해 아버지가 저를 만들어 가는 작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멘,아멘!
사랑하는 청연님,
거룩한 증언글을 참으로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저는 하느님아버지를 제가 원하는걸 이루어주시는 분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제가 원하지 않는 것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저의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으로 좋고 싫은 것을 구분해 놓고
왜 원하지 않는것을 주시냐고 대들기도 했지요.
거내영을 받아들이고 화살기도를 함께 하면서
제가 싫다고 발버둥쳤던 것들이 저의 삶의 여정에서
꼭 필요했던 과정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지요.
일어났던 모든 것들이 저를 위한 최상의 선물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게 좋은 것만이 축복이 아니라
고통으로 느껴지는 것도 축복임을 깨달아갑니다.
청연님의 증언글이 제게 큰 울림을 줍니다.
선배님들의 따라쟁이 되어 아버지께 더욱더 내맡기도록 화살기도에 집중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청연과 <딸랑2> 증언의 모든 것을 통하여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제 인생에서 마주치는 고난과 고통을 통해 내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가 저를 놓지 않고 원하는 자리까지 기어코 데리고 가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참 순종의 삶이 무엇인 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뜻이라는 커다란 자아의 돌덩이는 불순종을 살게 하고,
아버지께 내맡겨 드리지 못하도록 방어벽을 세워 놓았지만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저의 자아의 큰 돌덩이를 치워준 사랑의 도구이고
이번 어려움을 통해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알게 되고 살게해 주신 아버지께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사랑하는 청연님,
귀한 증언 은혜로이 잘 보았습니다.
축복을 주신 부분도 눈물나고
고통의신비로 성화되심에도 감사와 공감으로 눈물 훔쳤답니다.
예전에 하내영인 제게 어두운 영혼의 도와달라(제 귀엔 살려달라는 느낌)는 요청에 도움주게 이끄신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
저는 그분을 전혀 모르고
그분을 잘 아는 주변의 신자들은 바빠서
그 집에 방문할 시간이 없다고 했던 기억요.
왜 바쁜가 들어보니
미사참여에 십자가의길 해야되고,본당 신심단체활동,주방일들까지
너무 바쁘다는 겁니다.
그 모든 것의 액기스 아버지기도 하나로 슬림화되어
타인을 도울 시간이 충분했던
그때의 묵상이 떠오릅니다.
거내영을 만나지 못했다면
성당선배신자분들 처럼 저도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감사뿐입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신앙의 참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확신합니다.
아버지,사랑합니다.
청연과 <딸랑2 증언>의 모~든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이제 저는 제 인생에서 마주치는 고난과 고통을 통해
내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가 저를 놓지 않고
원하는 자리까지 기어코 데리고 가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참 순종의 삶이 무엇인 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청연님,
거룩한 증언글로 머물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찬양을 통해 드리는 기도를 더 좋아하신다는 아버지께
천상의 목소리로 올려드리니 그 기쁨 제게도 전달이 됩니다.
매번 메마르고 서툰 저에게
찬양은 더 빠르게 더 깊게 아버지께로 닿게 하시니
그 수고에 늘 감사했어요.
아버지를 향한 발걸음에 가득한 땀방울은
아버지께 위로이고 위안이고 기쁨입니다.
무수히 많은 일들속에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기에 부족함이 많은 저희들이지만
오늘도 아버지를 향해 부르고 또 부르는 화살기도로 살아갑니다.
고난과 고통을 통해 내적 성숙의 과정을 건너
참 순종의 삶으로 이끄시는 아버지따라 묵묵히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청연과 < 딸랑2증언 >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 찬미 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 이 한 몸 죽기까지 제 혼을 다 불태워
사랑을 바쳐드립니다.>
아멘아멘!!
사랑하는 청연님,
진솔하고 솔직한 님의 증언에 감동이며 감동입니다.
거내영 아버지 사랑이 아니시면 어찌 이 거룩한 공간 안에서
아버지 사랑이야기로 꽃을 피울 수 있겠는지요.
그래요 저도 님처럼 그 많은 봉사와 외적 신심생활이 전부 인줄
알고 살았지만 한 순간도 잊지 않으시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다가 거내영으로 초대해주신 너무나 고마우신 아버지께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청연님,
그 기나긴 고난의 시간을 잘 견디어 내신 님께 감사와 사랑 드립니다.
이제 사나 죽으나 아버지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는 일만 남았네요.
부족하지만 더더 아버지 이끄심에 내어드리며
아버지만 사랑해 드리시게요.
님과 함께여서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거내영>과 청연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