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 YOUR ESSAYLIFE
언양에세이포럼
22기-12차시
일시: 2024년 5월 7일(화) 3시00분
목록
순서 | 제 목 | 작 가 | 편수 | 합평 담당 |
1 | 잠매(潛寐) | 김순향 | 4 | 박희자 |
2 | 머그잔과 ‘커피 칸타타’ | 이경자 | 4 | 배정순 |
3 | 슬기로운 주방생활 | 김선애 | 4 | 예수백 |
4 | 장애인 바리스타 | 김인옥 | 3 | 이혜경 |
5 |
합평순서/권춘애 김순향 김선애 김연희 김인옥 민창현
박동조 박희자 배정순 예수백 이경자 이혜경
1. 잠매(潛寐) /김순향4
1, 휴대폰 소리에 잠을 깼다. 시고모님이 위중하셔서 며칠 전 뵙고 온 터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어서 내종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야! 엄마 이제 안 되겠다.”
2. 며칠 전에 갔을 때만 해도 우리 내외를 알아보고 웃으시더니, 오늘은 눈을 꼭 감은 채 의식이 없었다. 입을 벌리고 혀가 작은 원통으로 목젖 가까이에 도르르 말려있었다. 몰아쉬는 숨으로 아직 생존해 있음을 알렸다. 두 손을 꼭 잡아보니 부드럽고 따뜻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3. 부모도 아닌 시집 고모님의 환후에 친정 조카며느리가 저리도 애달파 하는 걸 이해 못 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열아홉에 청상이 되어 유복녀 하나만 데리고 살아온 분에겐, 친정 맏조카는 든든한 자식이었다. 어렵고 힘들 때면 우리 내외를 불러서 의논하고 중지를 모아 해결했다. 더구나 아버지를 일찍 여윈 종손 편이 되어 집안의 얽히고설킨 묵은 매듭까지도 함께 풀어주시던 그 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랴!
4. 일찍 친정 부모와 사별한 내게, 어버이 역할을 해 준 당신은 내 삶의 기둥이었다. 출근해야 하는데 갑자기 도우미가 못 오는 날, 아이 둘을 맡길 데가 없어 동동거리다 “고모님!” 하고 부르면 빛의 속도로 와 주셨다. 별미며 갖은 반찬을 싸와서 냉장고를 가득 채워주셨고, 난감한 일이 있을 때마다 원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주셨다. 서로를 품고 반세기를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내 손을 놓아버리셨다. 잠든 듯 편안한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5. 고모님의 결혼생활은 매우 짧았다. 삼 개월 신혼 기간도 신랑이 외지에서 대학을 다녔으니, 부부가 함께 보낸 날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짧은 신혼 기간임에도 두 분의 애틋한 금슬은 주변 사람들에게 시샘과 부러움이 되어 마을을 누볐다.
6. 새신랑은 틈만 나면 기차를 타고 경주로 왔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안강읍에 도착해서 산등성이를 넘고 내를 건넜다. 매서운 바람을 안고 십 리 가까운 길을 걸어 집으로 왔으니,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갔다.
7. 고모부는 추운 겨울날, 희부연 새벽이 되면 아내를 위해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물독을 채웠다. 뒤란에 있는 장작을 정지문 가까이 옮겨놓았고,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 곁에서 밥솥에 불을 때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시고모님은 그런 남편의 사랑을 구순이 넘어도 잊지 않았다. 짧았지만 행복했던 신혼을 회억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웃음 가득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8.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고모부는 징집되어 전쟁터로 갔다. 전쟁이 치열해진다는 얘기를 듣고 새댁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른 새벽 정화수를 떠 놓고 애오라지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비는 것이 고작이지만 간간이 엿들은 어른들의 얘기로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고, 지아비 걱정으로 날밤을 새웠다.
9. 진달래꽃이 한창인 봄날, 열아홉 살 새댁은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혼례를 치른 지 꼭 석 달 사흘이 되는 날이었다. 새댁은 생을 포기하려고 식음을 전폐했다. 시부모는 자식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몸져누운 앳된 며느리가 아들 뒤를 따를까봐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곁에서 노심초사했다.
10. 중환자가 되어 손끝조차 움직이지 않던 고모님에게 태기가 전해졌다. 새 생명은 목숨 줄을 놓으려던 어미에게 강한 삶의 의지를 심어주었다. 미음을 시작으로 밥을 챙겨 먹으며 태아를 지키기 위해 건강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눈물겨웠다.
11. 전쟁터에서 아들을 잃은 시부는 엄동설한에도 사랑채 북쪽 툇마루에 앉아서 보냈다. 안강전투로 많은 학도병이 목숨을 잃은 어래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들을 그리워했다. 얼마나 가슴에 열이 났으면 한겨울에도 바깥 잠을 청했을까! 툇마루 벽에 기대서 잠이든 시부의 모습을 훔쳐본 고모님은 자기 심지가 강해져야 시부모도 자기도 기막힌 세월을 살아 낼 수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어렵고 힘든 일을 당차게 해내느라 당신의 유순했던 성품이 남자처럼 괄괄해지더라고 말씀하셨다.
12. 다음 해 고모님은 유복녀를 낳았다. 대를 이을 아들을 기대했던 어른들의 낙담을 알기에 산후 조리한다고 방에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출산 다음 날부터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서 대식구의 식사를 챙겼다. 누워서 먼저 간 남편 생각과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고생이 덜하더라고 했다.
13. 시고모님은 남편의 한 점 혈육이 얼마나 소중했을까만, 십리 가까운 읍내의 초등학교를 혼자서 통학하게 했다. 유복녀가 어떤 시련이 닥쳐도 헤쳐 가도록 엄하고 강하게 훈육했다. 덕분에 그녀는 사내대장부 못지않은 믿음직한 여장부가 되었고, 홀어머니가 편안한 말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14. 동작동 31번지, 고모부께서 잠들어 있는 국립묘지이다. 매년 현충일이면 당신이 찾아왔던 곳을, 아흔 해의 소풍을 끝내고 먼저 간 지아비를 찾아 천 리 길을 달려갔다.
15. 현충원에서는 이미 두 분이 합장 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놓고 기다렸다. 고모부 추모비를 중심으로 왼쪽은 고모부, 오른쪽은 고모님 유택이다. 가운데 터널을 뚫어 두 분이 서로 왕래하실 수 있도록 작업을 해 놓았다. 고작 삼 개월 부부 연으로, 시댁을 위해 칠십여 년 뼈를 깎는 세월을 살다 온, 아내를 맞이하는 고모부 마음을 헤아려 본다. 아마도 장하고 고맙다고 엎드려 큰절이라도 하시지 않을는지! 오매불망 그리던 두 분이 함께하게 되었으니 이제 쓸쓸하지 않으시리라.
16.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 질부인 제게 긴 세월 친정어머니의 정을 베풀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두 분이 함께 잠매*하시니 외롭지 않으시겠죠. 이제 삭정이 같았던 삶은 잊어버리고 고모부님과 함께 평안히 영면하소서! 고모님의 큰 사랑, 잊지 않을게요.”
* 지하에 숨어 잔다는 뜻, 죽음을 이르는 말.
2. 머그잔과 커피 칸타타 /이경자4
1. 나는 아침이면 머그잔에 커피를 타서 마신다. 오래 전 스위스에 여행가서 사 온 머그잔에 오늘도 커피를 가득 타서 조금씩 마시며 바흐의 ‘커피 칸타타’곡을 듣는다.
2. 챙챙 거리는 챔발로 소리와 플릇의 맑은 소리가 같이 어울러 지는 가운데 곧이어 조수미의 아리아곡이 울려 퍼진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는 아침에 딱 듣기 좋은 곡이다. 축 처져 있는 몸과 마음을 타이트하게 추스리고 가쁜 하게 한다.
“아, 커피 맛은 기가 막히죠. 수천 번의 키스보다 더 달콤하고 맛 좋은 포도주 보다 더 부드럽죠. 커피, 커피, 난 커피를 마셔야 해요. 내게 즐거움을 주려거든, 아! 커피 한잔을 채워 줘요!”라는 가사 내용도 마음에 와 닿는다.
3.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200 여곡 이상의 칸타타를 작곡했다. 대부분 종교적인 행사를 위한 곡을 만들었으나 이 곡은 종교적인 주제와 관계없는 세속적인 곡으로 일명 ‘커피 칸타타’라는 곡을 썼다. 쓰고 달콤한 커피를 마시면서 이 곡을 들을 때면 가끔씩 머그잔에 대한 추억에 빠진다.
4. 오랫동안 일을 하다 나이 육십이 넘어서 처음으로 외국 여행을 갔다. 여행의 묘미는 가는 곳곳에서 그 나라의 특징적인 물건을 사 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잘 몰랐다. 차츰 하나의 물건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것이 머그잔이었다. 집에 있는 갖가지 형태와 문양이 새겨진 머그잔을 볼 때마다 그 때의 추억과 아울러 또 다른 감정에 잠기기도 한다.
5. 내가 어쩌다 머그잔에 꽂혔는지 그 마음을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머그잔과 커피는 마냥 즐거운 추억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시절 아침 마다 큰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타서 마셨다. 아침 일찍부터 빈속에 많은 커피를 마셨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이런 행동이 반복되었다.
6. 바흐는 커피 마시는 즐거움이 얼마나 컸으면 종교적인 곡 외에, ‘커피 칸타타’라는 곡을 작곡했을까. 나에게 커피는 오로지 깨어있기 위함이었고 아침부터 밤 12시 너머까지도 정신을 곧추세우기 위해 마셨다. 내가 커피를 마시는 것인지, 커피가 나를 마시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커피는 향기롭고 달콤하고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잠이 오지 않게 하는 각성제에 불과했다.
7. 내가 여행을 갈 때마다 기를 쓰고 머그잔을 사 갖고 온 것은, 머그잔에 대한 쓰디쓴 기억이 오히려 나에게 위안이 된 물건으로 환원된 것이 아닌가싶다. 어쩌면 머그잔과 커피는 내 젊음과 맞바꾸었는지 모른다. 머그잔은 그 때 그 힘든 과정을 함께 보낸 것에 대한 연민의 결정체가 아니었나 싶다.
8. 인생의 힘듦과 쓴 맛을 아는 사람은 그 뒤에 오는 삶의 단맛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지 않겠나싶다. 고전적인 챔발로와, 플룻 소리가 어울려 조수미의 리릭 콜로라투라의 화려한 소리가 온 거실에 울려 퍼진다.
'수천 번의 키스보다 더 달콤하고, 맛 좋은 포도주 보다 더 부드러운, 커피, 커피, 커피’ 하며...
9. 이제야 바흐의 커피 칸타타 속에 실린 뜻을 조금은 알 수 있다. 나의 삶 전체를 같이 한 머그잔과 커피, 커피, 커피와 함께.
3. 슬기로운 주방생활 /김선애4
1. 오랜만에 지인과 만나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식당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자리마다 키오스크가 있어 간편하게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잠시 기다리니 서빙해주는 로봇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왔다. 우리는 편리하게 음식을 받아서 먹을 수 있고, 업주는 인건비도 절약되는 효과가 있다. 다 먹은 후에는 사람이 와서 식탁을 치워야 하는 수고는 있었다. 이렇게 해도 주방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요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의 손이 가야지만 음식이 완성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2. 오늘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점점 편리하게 생활을 하고 있어 좋다. 발명품의 대부분이 상상력으로 시작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꿈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방은 다른 것에 비하면 아직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물론, 편리하게 요리를 할 수 있는 제품이 많긴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가장 획기적인 발전이 되어야 할 곳이 주방이다. 우선 요리를 하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메뉴가 결정되면 시장이나 마트에 직접 가던지 쇼핑몰에 주문을 해야 한다. 재료가 다 갖춰진 후에는 본격적인 요리과정을 거쳐야 완성이 되어 먹을 수 있다. 음식을 먹은 후에는 뒤처리도 만만치 않다.
3. 옛날 주부들은 요리를 하려면 정말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불을 때며 요리하고, 우물이 없는 경우에는 물을 길어 와야 했다. 외식은 거의 할 수 없는 시절이어서 삼시세끼 음식을 해야 했다. 또, 대가족이 같이 사는 경우가 많아서 하루 종일 부엌에서 살다시피 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몸이 남아나질 않았던 것 같다.
4. 청소의 경우를 보자. 빗자루와 먼지떨이, 걸레로 하던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허리통증, 무릎 관절염 등으로 고생을 했다. 그 후 전기의 힘을 빌린 청소기로 손쉽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지만 전기 줄이 딸려서 불편함을 느꼈다. 다음은 전기 줄을 없애고 충전해서 쓸 수 있는 제품이 나오자 인기가 제법 오래 갔다. 드디어 로봇청소기가 등장해서 청소로부터 해방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5. 빨래는 더욱 혁신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옛날에는 빨래터에서 쪼그리고 앉아 비비고, 방망이로 두드리며 빨래를 했다. 삶는 빨래는 별도로 손이 많이 가야 했다. 추운 겨울에는 꽁꽁 얼어있는 얼음을 깨고 맨손으로 빨래를 했다. 고무장갑이 나오기 전까지 손은 거칠어져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전히 여인들은 손목, 허리, 무릎통증을 달고 살아야 했다. 다행히 세탁기가 발명되어서 편리하게 빨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수동세탁기, 반자동세탁기, 전자동세탁기, 드럼세탁기를 거쳐 건조기까지 발전을 했다. 여러 가지 세탁코스가 있어서 거기에 맞춰서 세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요즘은 세탁기와 건조기를 합친 제품이 나와 드디어 가장 편하게 빨래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6. 우리 집은 세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 청소는 휴대폰에 있는 앱으로 청소를 할 수 없는 제외구역을 설정한 후 로봇청소기를 작동시키면 구석구석 깨끗하게 쓸고 닦아준다. 내가 제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최애의 제품이다. 빨래는 세탁기를 돌린 후 건조기에 넣으면 손쉽게 완성이 된다. 주방에서는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고 국이나 찌개는 가스레인지에서 한다. 반찬이나 일품요리는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오븐, 그릴, 에어프라이어 등을 이용해서 만든다.
7. 청소와 빨래는 별로 손이 가지 않고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집안일 중에 당연히 주방일이 가장 많다. 음식을 만들려면 다듬고, 씻고, 데치고, 자르고, 무치고, 끓이고, 볶고, 굽고, 튀기고, 찌고 등 각종 요리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 요리가 완성되면 식탁에 먹기 좋게 놓은 후에 먹을 수 있다. 다 먹은 후에는 식탁을 치우고 남은 반찬은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는다. 설거지를 하려면 씽크대에 그릇을 옮겨야 한다. 물론 명절이나 행사 때 씻을 그릇이 많다면 식기세척기에 넣어서 돌린다.
8. 바깥에서 경제활동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편리하게 해야지만 몸이 피곤하지 않다.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 있다. 그건 인건비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내가 버는 수입을 다 주어도 모자란다. 가정경제에 어느 정도의 보탬이 되는 수준에서 해야 한다. 수입이 아주 많은 경우를 빼고는 대부분의 가정사정이 그럴 것이다.
9. 어서 빨리 슬기로운 주방생활이 돼야 할 텐데 아직 먼 것 같다. 아직까지는 기본 한 두 시간 이상을 주방에서 보내야 한다. 물론 외식을 하거나 음식을 배달해서 먹거나 밀키트 제품을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손으로 클릭만 하면 음식을 만들어 주는 로봇 같은 기계를 발명한다면 주방에서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음식 맛은 손끝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더욱 편리한 제품이 나와서 짧은 시간 안에 요리를 할 수 있는 날이 곧 왔으면 좋겠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
4. 장애인 바리스타/김인옥3
1. 며칠 전의 일이다. 시내에 나가 몇 가지 볼일을 보느라 돌아다녔더니 다리도 무겁고 목도 몹시 말랐다. 가로수 잎은 아직 고운 연둣빛인데 갑자기 찾아온 초여름 날씨 탓에 쉽게 지쳐버렸다.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서니 달콤 쌉싸래한 커피향이 저 먼저 달려 나와 반겨주었다.
2. 생애 처음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카페인에 약한 체질이라 향기만 맡거나, 한 모금 얻어 마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오늘은 큰맘 먹고 한 잔을 통째로 마셔보기로 했다. 갈증을 달래기엔 그만한 게 없지 않은가.
3. 쓴 커피 안주엔 달달한 케익이 제격이다. 에너지 소비를 과하게 했으니 당 충전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진열장을 보니 유난히 먹음직스러워보이는 케익 조각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름을 몰라 주문하기가 난감했다. 이름표가 붙어있긴 했는데 한글은 없고 불어 같은 외국어로만 적혀있었다. 엉터리 발음으로 창피당하는 것 보다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문하는 방법을 택했다.
4. “이것도 하나 주세요.”
주문을 받은 종업원 아가씨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말을 하세요.”
나는 재차 케익 조각을 가리키며 ‘이것도 커피랑 같이 달라’고 청했다. 그런데 아가씨는 여전히 같은 말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되풀이할 뿐이었다. 자존심까지 구겨가며 불어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실토해도 소용없었다.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5. 그 순간 읍사무소에서 무시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따라 민원인이 많아서 무인 민원발급기 앞에 섰다. 사용 방법을 숙지하느라 머뭇거리자 어떤 아주머니가 어디선가 톡 튀어나와서 서류를 대신 떼어주었었다. 아마도 무인 발급기 사용이 서툰 노인들을 위해 고용된 임시직원 같았다. 그녀는 그녀의 밥벌이를 하는 것이었겠지만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워낙 손이 재빨라서 말을 꺼낼 겨를조차 없었다. 하기야 민적거리다가 민원인이 밀리기 십상이니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긴 했다.
6. ‘이름을 모르면 먹을 자격도 없단 말이지? 머리 허연 할매라고 니도 나를 무시하는 거냐? 오냐 맛 좀 봐라.’
지배인이라도 불러 건방진 종업원 교육 좀 제대로 시키라고 말할 요량으로 가슴에 달고 있는 명찰을 보았다. ‘장애인’. 처음엔 성이 ‘장’이고 이름이 ‘애인’인줄 알았다. 그러나 ‘장애인 바리스타’라고 쓰인 명찰을 끝까지 읽는 순간, 머릿속에서 ‘띵’ 하는 소리가 났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게 어쩐지 수상하기는 했다. 그녀는 아마도 약한 자폐장애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사용하는 계산기에는 ‘이것’이라는 메뉴가 없을 터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녀는 단지 자신의 일을 매뉴얼대로 충실히 하려 했을 뿐이었다. 케익을 눈으로 보기만 해도 이름을 훤하게 아는 사람들이야 어느 나라 말로 적혀있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문제는 나의 무식에 있지 않은가.
7. 결국 어색한 미소로 감정을 얼버무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한 잔 받아들고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나야말로 자격지심장애자가 아닌가. 무식한 노인이라고 무시할 것이라는 지레짐작만으로 마음이 꼬인 나머지 화부터 내고 말았다. 비단 이번 일 뿐이었을까. 좁은 소견으로 사람과 세상을 보고 좁은 잣대로 재단하느라 수많은 오해와 편견으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8.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눈먼 소년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다. 그는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청소년들과 겨룬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여러 차례 입상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피아노소품을 작곡했는데 그 중에는 가을풍경도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느냐고 묻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소리로 들어 느낀다고 하며 행복하게 웃는다.
9.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지난 며칠 동안 여러 TV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장애인의 모습을 비춰주었었다.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스포츠 선수로, 화가로, 작가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스스로 장애를 인정하는 태도부터가 당당하고 멋있었다. 그들의 정신은 누구보다 강하고 건강해 보였다. 오히려 신체의 장애를 가진 그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장애를 가진 이들이 더 심각한 장애인이 아닐까.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다.
10. 우리나라 국민의 5%가 장애인이고, 장애의 90% 이상이 사고나 병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라고 한다. 그것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장애는 ‘너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그들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설 수 있도록 여건이나 시설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것을 내 경험으로 깨달았다. 상대방의 태도를 이해하려는 약간의 노력만 했어도 그런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장애인 바리스타를 만나 실수를 하긴 했지만, 장애인이 당당히 직장인으로 선 모습을 보는 것은 신선한 기쁨이었다. 읍사무소에서 지적장애인 취급을 받았을 때의 일을 생각해보면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주는 것 또한 그들이 사회에 적응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장애와 비장애는 차이일 뿐 그로 인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11. 장애자에 대한 사회적 시설이나 인식이 더 많이 개선되어 내가 만난 바리스타처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