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삼협(長江三峽) 크루즈 여행
쓰촨(四川)성 첸두(成都) 민(岷)강, 청의(靑衣)강, 대도하(大渡河) 세 강의 어우러진 곳
낙산(樂山) 강안에 조성된 뤼샨따포(낙산대불:樂山大佛)
좌불상(坐佛像)으로 높이 71m, 머리 높이만 14.7m. 세계에서 재일 큰 불상 - 당(唐:8세기)나라 때 90년에 걸쳐 조성
아시아에서 가장 길고,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길다는 양쯔지양(揚子江)은 중국 사람들은 보통 장지양(長江)이라 부른다. 길이는 6,300km, 유역은 동서로 약 3,200km, 남북으로는 970km가 넘게 뻗어 있다는데 12개의 성(省)과 지역을 가로지른다고 하며 수많은 지류(支流)를 이루어 양자강이 적시는 광활한 하류지역은 중국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중국 사람들은 삼(三)이라는 숫자를 매우 좋아해서 무엇이든 셋으로 묶는 경향이 있는데 이 양자강으로 이루어지는 절경(絶景)의 협곡(峽谷)들을 셋씩 묶어 자랑한다.
쓰촨성(四川省) 충칭(重慶) 부근의 만주(万州)에서 시작하는 2박 3일짜리 크루즈 여행은 장강삼협(長江三峽)인 구당협(瞿塘峽), 무협(巫峽), 서릉협(西陵峽), 또 소삼협(小三峽)인 용문협(龍門峽), 파분협(巴雰峽), 적취협(滴翠峽), 그리고 소소삼협(小小三峽)이라 이름 붙인 삼장협(三掌峽), 진왕협(秦王峽), 장탄협(長灘峽)의 절경들을 모두 둘러볼 수 있는데 보통 삼협댐 부근 우한(武漢)에 이르러 여행이 끝난다. 여행객은 200여 명으로 대부분 중국 사람들이고 외국인은 나를 포함하여 10명도 채 안되었는데 크루즈 배는 3층짜리로 그럴싸해 보이지만 시설은 별로였다. 패키지 여행비는 1.730위안(우리 돈 32만 원 정도). 선실에서 2박을 한다.
좁고 깎아지른 천하절경 구당협(瞿塘峽)은 협곡의 길이가 8km 정도인데 깎아지른 기암괴석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구당협 풍경은 중국 10위안(元)화폐 뒷면에 그려져 있다.
이 구당협을 빠져나가면 중국 무술의 한 파(派)인 무당파(武當派)의 고향 무산(巫山)이 나타나고, 이곳에는 대영하(大寧河)라는 장강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나타나며 이 대영하 지류를 따라 들어가면 용문협(龍門峽), 파분협(巴雰峽), 적취협(滴翠峽)이라는 좁은 협곡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소삼협(小三峽)이고, 또 적취협(滴翠峽)에서 다시 오른쪽 지류인 마도하(馬渡河)를 따라 들어가면 삼장협(三掌峽), 진왕협(秦王峽), 장탄협(長灘峽)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소소삼협(小小三峽)으로 이곳의 경치가 오히려 압권이다.
이곳은 경치도 절경이지만 춘추전국시대 삼국지의 무대가 되었던 지역으로 가는 곳마다 당시의 흔적들이 수없이 많다. 예를 들면 후한(後漢)의 공손술(公孫述)이 쌓고 유비(劉備)가 마지막 숨을 거둔 백제성(白帝城), 장비(張飛)의 묘, 제갈공명이 별을 보고 점을 쳤다는 관성정(觀星亭), 새와 쥐들도 다니기 어려웠다는 촉나라로 가는 길 촉도(蜀道).....
![](https://t1.daumcdn.net/cfile/cafe/19296E3F51124CD206)
촉도(蜀道)의 옛 길과 새로 시멘트로 만드는 연결부분
무산(巫山) 앞에서 소삼협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작은 유람선으로 갈아타고 대영하(大寧河)를 거슬러 올라간다. 머리를 젖혀야 쳐다보이는 기기묘묘한 형상들의 산과 절벽은 까마득히 하늘에 닿았고, 몇 시간을 가도 가도 인적이 없는 협곡인데 이따금 강가 바위틈에 황금빛 원숭이가 뛰어 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마침 대학교수인 듯 영어를 잘하는 50대의 중국인이 있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 천험(天險)의 계곡 속 까마득하게 쳐다보이는 절벽 중간에 동굴이 보이는데 이 동굴 속에 1500여 년 전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나무로 만든 관과 인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 소삼협 마지막 협곡인 적취협(滴翠峽)이 가까운 곳에 이르면 강가 바위절벽아래 나무가 우거진 틈새에 정자각이 있고 나가채(羅家寨)라는 글씨가 보이는데 그 곳에서 누군가 피리를 구슬프게 부는 소리가 협곡을 울려서 사람들이 뱃전에 몰려나와 귀를 기울인다. 깎아지른 절벽 가운데의 강가 작은 언덕, 수 십 리를 가도 인적이 끊긴 이곳에....
또 이 부근에는 강 10여m 위 바위 절벽을 따라 나무와 밧줄로 엮어 매단 다리 모양의 길이 보이는데 4~5km는 족히 되겠다. 새와 쥐들도 다니기 어려웠다는 이른바 삼국시대 촉(蜀)나라로 가는 촉도(蜀道)이다. 수많은 군사들이 목숨을 걸고 이동했을 이 길... 그 옛날 어떻게 이처럼 절벽에 밧줄을 매달아 길(棧道)을 만들고 또 그 위로 다니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간에 무너져 내린 곳도 보였는데 맨 끝 부분에 오자 정부 사업인지 처음부터 시멘트로 다시 만들고 있었다. 절벽 밑에 배를 대고 시멘트를 비벼서 올리고... 참 대단하다 싶고, 이것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려나 보다 생각된다.
소삼협을 지나 대창고진(大昌古鎭)에 들렀는데 이곳은 근처에 있던 1000여 년 전의 옛 진(鎭)의 모습으로 삼협댐을 막으면서 수몰될 형편이 되자 이곳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재현하여 놓은 모습이 어쩐지 어설프고, 기념품 가게와 간단한 요기꺼리를 파는 가게만 을씨년스럽게 벌어져 있다. 이곳 거리에서 중국 두부를 맛보았는데 먹을 만했다.
다음 날 배에서 눈을 뜨자 배는 소삼협(小三峽)을 도로 내려오다가 소소삼협(小小三峽)이 시작되는 마도하(馬渡河) 입구에서 내려 다시 노를 젓는 10인승 기다란 용선(龍船)으로 옮겨 타고 소소삼협 협곡 속으로 들어간다. 중간에 잠깐 노를 젓기는 했지만 모터가 달려있어 제법 빠르게 달린다.
이곳 경관은 정말 기가 막힌데 20여 분 달리다가 대석곡(大石谷)이라는 곳에서 배를 내리란다. 이곳에는 자그마한 공연장도 있고, 집도 몇 채 있다. 이곳에서는 거의 맞붙을 것 같이 좁고 까마득히 높은 바위협곡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길이 없어 물 위에 놓은 부교(浮橋)를 따라 들어가다가 다시 계단을 놓은 절벽을 올라가 절벽 중간쯤 아슬아슬한 조도(鳥道)를 걷는 코스인데 정말 스릴 넘치고, 경치가 기막히다. 나이 먹은 10여 명은 결국 부교 중간에서 포기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조도를 돌아 나오면 다시 선착장 부근으로 나오게 되는데 공연장에서는 관광객에게 소박한 고전극(古傳劇)을 보여주었다.
돌아오는 용선에서 어쭙잖은 영어를 구사하는 화학선생이라는 뚱뚱한 50대의 중국인은 한국, 일본은 모두 중국이 뿌리라며 침을 튀긴다. 얼빠진 국수주의자 같으니라구...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곳의 물빛은 양쯔강 원류의 흙탕물이 아니라 너무도 푸르고 맑아서 돌아오는 길에 이태리어로‘산타루치아’를 불렀더니 그 멍청한 그 중국 화학교사 놈 돼지 멱따는 소리로 따라 부른다. 중국어로....
밤에 지나쳤을 무협(巫峽)은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대시인 굴원(屈原)의 고향이고, 바로 근처의 향계하(香溪河) 부근은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의 고향이다. 한나라 원제(기원전 1세기)의 궁녀였던 왕소군은 월(越)나라 출신의 서시(西施), 춘추전국시대의 초선(貂嬋), 당 현종의 왕비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중국 고대 4대(四大) 미녀로 꼽히는데 서시는 침어(沈魚), 왕소군은 낙안(落雁), 초선은 폐월(閉月), 양귀비는 수화(羞花)라고 칭송하였다.
이들의 미모를 두고 이야기꾼들은
침어(沈魚) - 서시(西施)의 미모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에 가라앉았다는 뜻.
낙안(落雁) - 왕소군(王昭君)의 미모에 날아가던 기러기가 날개 짓을 잊고 땅에 떨어졌다.
폐월(閉月) - 초선(貂嬋)의 미모에 달이 부끄러워 구름사이로 숨었다.
수화(羞花) - 양귀비(楊貴妃)의 미모에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라고 칭송했다.
부연(敷衍)하면 서시(西施)는 춘추전국시대 월(越)나라의 저라산(苧蘿山)기슭 농가에서 태어났는데 본명은 이광(夷光). 오(吳)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천하절색 서시를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쳤는데 서시는 평소 가슴앓이가 있어 도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서시는 길을 걸으면서도 가슴 통증으로 미간을 찌푸리고는 했는데 사람들은 그것도 매력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마을의 못생긴 처녀가 자기도 서시의 흉내를 내느라 미간을 찌푸리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기겁을 하고 외면했는데 여기에서 서시빈목(西施矉目)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고 한다.
왕소군(王昭君)은 한(漢)나라 출신으로 재색을 겸비하였는데 한의 원제(元帝)는 변방의 흉노가 세력이 커져 공주와 결혼하겠다고 보내라고 압력을 넣자 궁녀였던 왕소군을 흉노왕 호한야(呼韓邪)에게 보내 달랜다. 흉노로 가면서 왕소군이 슬픔에 젖어 하늘의 기러기를 쳐다보자 기러기가 날개 짓을 잊고 땅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초선(貂嬋)은 춘추전국시대 사람으로 삼국지(三國志)에서 동탁(董卓)과 여포(呂布)를 이간질시키기 위해 미인계(美人計)로 쓴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의 미인이라는 경성지모(傾城之貌),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모두 초선을 두고 생긴 말이다.
양귀비(楊貴妃)는 당 현종의 며느리이자 황후로 현종이 양귀비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아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나라가 망하고 양귀비는 죽는다.
그 밖에 한 명을 더 꼽는데 작장중무(作掌中舞)라 칭송받던 조비연(趙飛燕)이 있다.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황후인 조비연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날씬한 여인으로 꼽힌다. 본명은 조의주(趙宜主). 춤출 때 나르는 제비와 같다하여 비연(飛燕)이라 불렸는데 후원에서 춤을 추다가 연못으로 떨어지려하자 성제가 붙잡았는데 손바닥 위에서 춤을 계속 추었다고 하여 작장중무(作掌中舞)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조비연은 동생 합덕(合德)까지 제2 황후가 되어 영화를 누렸으나 성제가 죽자 황후에서 서인(庶人)으로 강등 되는 등 비참한 말로를 걷다가 두 명 모두 자살한다.
또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시(詩)와 술(酒)과 달(月)을 너무나 사랑했던 천재시인 이태백(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의 고향이 이곳인지 만주(万州)부근에서는 '시선이백지향(詩仙李白之鄕)’이라는 표지글도 보였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왕족으로 시인이자 정객(政客)이기도 했던 굴원(屈原)은 수많은 명시를 남겨 두보(杜甫), 낙천(樂天) 등과 비견되는 대 시인인데 정적(政敵)들로부터 모함을 당해 여러 번 유배를 가게 되고 결국 유배지에서 돌을 끌어안고 강물(멱라수:汨羅水)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대시인의 결백과 시재(詩才)를 아낀 수많은 백성들은 수십 척의 용선을 타고 시체를 찾았으며, 또 시신이 물고기에 훼손될까봐 작은 떡을 만들어 물에 뿌렸다고 한다. 매년 5월 5일 강물에 떡을 뿌리고 용선(龍船) 경주를 하는 풍습은 굴원의 죽은 날을 애도하여 생겨난 풍습이라고 하며 단오(端午)의 기원이라고 한다. 이백, 굴원과 왕소군의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찾아가 그들의 체취를 느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저녁에 옆 선실에서 누가 부는지 플륫으로 위모레스크, 토셀리의 세레나데를 연주한다.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분위기 탓인가 아름답게 들린다. <끝>
![](https://t1.daumcdn.net/cfile/cafe/1118474151124D852F)
교원 출신으로 남편과 함께 중국을 여행 중인 프랑스인 노부부와 한 컷
부인이 대만에서 대학을 다녀 중국어가 능통하다.
첫댓글 아~~, 내가 다시 봐도 너무 길다.... 끝까지 읽어 줄 사람이 있을까?? 다 읽으신 분께는 상을 드려야 되겠다.
에~~ 상품은.... 나중에 생각해 보자...^^
상. 주지 않으셔도 다 읽습니다 ^^ 공짜 여행인데ㅎㅎㅎ그런데 .. 읽을때는 푹 빠져서 읽는데 나중에 기억을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독후감 써오라면 그때는 어떨까요?? 저는 아침 4시면 일어납니다 ..너무 무지런 한가ㅎㅎㅎ
잘 읽고 사진도 잘 보구요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
ㅋㅋㅋ무지런하시면 안됩니다. 부지러하신건 좋습니다. ㅋㅋㅋ
옛날 중국어 배울 때 가끔 이야기거리가 되던 장면이 사진으로 보니 다시 그때가 떠오르네요 중국은 무한의 나라인것같아요 배워도 배워도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으니까요 잘 보고 옛친구도 떠올려보고 좋으네요 늘 건강하시고 핻복하세요~~~
제 중국 이야기도 무한입니다. 중국 이야기하라면 끝도 밑도 없습니다. ^^
여행의 낭만님 ..국어 사전에 부지런 이 = 무지런으로 바꾸어졌습니다. 언제부터냐구요 ??? 2013년 2월 6일 부터입니다ㅎㅎ
꼭 찾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