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편성이 의무화된 범교과 교육 요소 관련 법령 정비 방향
해마다 2~3월 신학기가 되면, 각종 법령에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는 범교과 교육 요소들은 교육과정 및 평가계획을 작성해야 하는 전국의 모든 학교들로 하여금 몸살을 앓게 만든다. 예컨대 세월호 사건 이후로 ‘안전’이 강조되며 ‘7대 안전교육 표준안’ 51시간(교육부고시 2016-90, 생활/교통/폭력・신변/약물・사이버/재난/직업/응급으로 구성)을 교육과정에 반영하라는 지침이 내려오면, 그것을 억지로 교과 교육과정에 우겨 넣느라 교과 간 갈등이 빚어지고 교육과정계획서에 이러한 내용들을 어떻게 반영했는가를 전시하기 위해 학생을 만날 준비를 할 시간에 수십 페이지 짜리 서류 작업에 매몰되게 되는 식이다. 당연히 그러한 교육에 내실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역사 교사인 필자의 경우에도 오랜 핑퐁 끝에 생뚱맞은 ‘폭발물 안전’을 배당 받아(그나마 ‘오토바이 안전’ 보다는 나았다) ‘의열단 진도 나갈 때 가르치라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 본 기억이 있다.
이렇듯 사회적 요구가 생겨날 때마다 전체적 기획이나 체계 없이 땜질식으로 범교과 교육 요소들을 교육과정에 집어넣으라고 법령 등으로 강제하는 경우는 나날이 늘어났으며(<표1>), 현재 법으로만도 학교체육진흥법 등 15개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교육 하나 하나 자체의 의미를 따지면 다 필요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요구들을 모두 받아내야 하는 학교의 입장을 따져 보면, 개별적 합리성이 전체으로는 부조리가 될 수도 있다.
<표1> 2016학년도 초·중·고등학교 학교교육과정 반영 요소(경기도교육청의 경우)
급기야 이러한 법령 등으로부터 파생되는 각종 지침들의 요구는 다음 시도교육감협의회 자료에 나오는 바처럼 물리적으로도 더는 담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표2>). 이러한 각종 법령 및 교육부‧교육청 등지에서 요구하는 교육과정 편성 의무화 범교과 교육 시간은 일단 과다하다. 초등보다 훨씬 적은 중등의 경우에도 연간 212.3시간, 학기 당 6단위가 넘는 시간을 가르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국어나 수학 같은 주지 교과도 학기당 4~5단위 이수), 1년간 학생이 수강하는 총 시수가 1153시간 정도임을 감안하면 전체 수업 시간의 1/5에 육박하는 시간을 이러한 특별 교육에 할애하는 꼴이 된다.
게다가 이러한 범교과 학습 요소들은 학교 교과 교육과정과 중복되는 요소가 많은데다 지나치게 세부적이다(시수나 시기까지 특정). 그런 까닭에 전체적 교과 교육과정까지 어그러지게 만드는 동시에 교사의 효과적 교육활동 운영 재량권은 물론 학생들의 교육권까지 침해한다. 단적으로 21세기에 부합하는 미래 핵심 역량 중 하나로 소통과 협력과 자치를 강조하고 있으나, 정작 ‘자치 활동’(창의적 체험활동 중 한 영역) 시간은 1학기에 몇시간 편성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법령 등이 교육 목표와 교육과정 시간 편제의 불일치를 유발하는 모순된 상황을 낳고 있는 것이다.
<표2> 학교급당 법령이 요구하는 범교과 교육 시간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대비 비율
당연히 이러한 과다한 교육이 내실 있게 운영되기는 힘들다. 학생의 발달 단계에 맞거나 내용이 심화되는 계열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가령 고3 대상의 교통 안전 교육의 비현실성) 매년 들어야 하는 교육이라 해마다 중복된 내용을 듣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외부 강사를 초빙할 경우 학교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거나(가령 흡연자가 없는 학교에서 흡연 경험을 전제로 하는 강의 등), 정치적으로 편향되거나 과도한 내용의 연수로 민원이나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학교 교사들이 이러한 교육을 수행하는 것도 전문성 등에서 한계가 있다. 교사들은 이미 많은 다른 의무 연수들로 인해 여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며, 적절한 연수 컨텐츠도 구하기 힘들다. 보다 근원적으로 몇몇 주제들은 학교에서 수행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의문이 드는 것도 있다. 결국 이런 교육들은 형식적으로 ‘보고용’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학교의 과중한 행정 업무 또한 유발한다. 이미 교과 교육과정으로 편성된 내용까지도 별도로 외부기관의뢰, 계획수립, 운영, 결과 보고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며, 강사를 초빙할 경우에는 더 복잡한 절차 –공고, 채용, 성폭력조회, 정산 등- 를 밟아야 한다.
즉 이러한 법령 개입 형태의 범교과 교육은 법령과 교수요목의 분리로 학교 교육이 왜곡되고, 보고 비용이 발생하는 동시에 교육의 형식화, 부실화를 초래하게 되는 ‘낮은 효과, 높은 비용의 교육 구조’의 전형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교육과정에 강제하는 교육 내용이 포함된 각종 법률에 대한 정비가 시급한 이유이다.
이러한 각종 법률안들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표3>과 <표4>).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관련법의 정리가 필요하다. <표>에서 살펴볼 수 있듯 많은 내용들이 여러 법에 분산되어 중복 반영되어 있다. 단,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여론에 편승하여 만들어져 보편성이 떨어지고 학교에 많은 부조리를 양산하는 아래의 법률안들은 보다 강력한 정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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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학교체육교육진흥법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은 2011년 10월 정부가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도입하였다. 이듬해 교육부는 학교별 교육여건의 격차, 내용 중복, 교육과정 자율성 저해와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을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이루어지는 스포츠 활동으로 폭넓게 규정하며 교육과정 개정고시를 통해 전 학교에 도입을 강행하였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스포츠클럽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게중에는 강제로 공을 차는 학생도 나타나고, 비전문가인 일반교사가 스포츠클럽을 알차게 운영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스포츠클럽보다는 체육수업이 활성화 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정규 교육과정 안으로 들어온 학교스포츠 클럽을 없애고 학교스포츠 클럽시수 만큼 체육수업시수를 늘리되, 스포츠클럽은 방과후 개인 활동으로 장려하는 방향 전환의 모색이 필요하다.
나. 인성교육법
인성교육법은 2015년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성교육을 통해서 범국민적 차원의 인성운동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의도에서 만들어진 법으로, 교육은 물론 철학과 심리학과 같은 기초 학문들의 소양이 종합적으로 발현되어 나타나는 ‘인성’을 법률로 ‘진흥’ 하겠다는 세계 최초(?)의 시도였다. 게다가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인실련) 같은 보수성향 단체들이 소정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영어성적처럼 인성을 ‘공인’할 수 있는 독점적인 인정권 부여 여부로 많은 논란을 빚기도 했던 법안이다.
인성교육법에서 사용하는 "인성교육"과 “핵심가치”, “핵심역량”은 학교교육과정에서 모든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항(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의사소통능력이나 갈등해결능력 등)인 전형적인 옥상옥 법령이다. 사실 총체적 교육 활동 구현의 결과가 인성의 함양이고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상의 ‘인격의 도야’이다. 따라서 별도의 법령으로 인성교육을 강제할 이유가 없으므로 전면 폐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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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각 법률에서 요구하는 각 범교과 주제들을 교과 내로 포섭하는 것 -정규 교과에 교수요목으로 반영하고, 교과서에 관련 내용을 서술하고 교육하는 것, 그리고 입법 이전에 교육과정에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 도 필요하다. 가령 장애인식개선 교육은 국어, 사회, 도덕, 기술가정, 체육 등에 반영 가능하다.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거나(가령 학교폭력 예방교육이나 체험활동 안전교육 등) 훈련의 성격이 강하여 주기적으로 몸에 체득해야 하는 내용들만(가령 소방대피훈련 등) 별도 교육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정규 교과로 편성되어야 창의적 체험활동의 왜곡과 범교과 주제 학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학생의 발달단계에 맞게 교육내용이 편성되고 학교급별로 연계된 교육을 할 수 있으며, 평가가 뒤따라 학생들도 보다 열의를 가지고 배우게 된다. 또한 각 법령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 정규교과에 편성되면 당연히 교육활동이 진행되기 때문에 별도의 계획을 세우거나 실시결과를 보고할 필요도 없어진다.
동시에 우리나라 교육과정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시수 위주의 이수 시스템이 하루빨리 개선되어 ‘컨텐츠’가 아니라 시수 계산을 위한 ‘계산기’로 준비되는 범교과 학습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학생이 진로교육을 내실 있게 받으면 되는 것이지 진로시간의 시수가 학기당 17시간인지 18시간인지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듯이, 범교과 교육 역시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지 '몇 시간 했느냐'가 주를 이루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법령 제정 이유가 법적 강제를 통해서라도 확실한 교육 효과를 보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디테일한 측면에 유념해야 한다.
보다 근원적으로 사회적으로 필요한 범교과 주제들은 교통안전교육 처럼 지역사회에 있는 전문 유관 기관이나 평생교육 시설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는 방향, 전문 유관 기관이 운영하는 앱이나 싸이트 등을 통해 이수를 인정 받게 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학교의 범교과 주제들은 실상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것들이 많다. 따라서 보다 실효성 있는 교육을 위해서라면 가족 단위의 연수와 그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가령 우대권 제공 등)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