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joins.com/article/155/3990155.html?ctg=1201
“미국도 정착까지 100년 … 서두르는 건 포퓰리즘”
고려대는 올해 고3 학생이 치르는 2011학년도 입시에서 전체 모집 정원의 절반을 입학사정관제로 뽑는다. 지난해 23.5%(886명)에서 55.6%(2320명)로 확대한 것이다. 지방의 한 대학은 지난해 ‘0’명이던 사정관 전형 선발인원을 올해는 500명대로 늘렸다.
이처럼 입학사정관 전형이 대입의 이슈가 되고 있다. 올해는 전국 200개 4년제 대학이 전체 입학정원(37만여 명) 열 명 중 한 명을 사정관제로 뽑는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우수 운영 대학에 예산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히자 사정관제 도입 경쟁에 불이 붙은 것이다.
하지만 수험생과 학부모는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지난해 9월 설문 조사(학부모 418명)에 따르면 사정관제 실시에 부정적인 학부모의 31.8%는 “자의적인 평가가 우려된다”며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고2 자녀를 둔 임모(46)씨는 “대학들은 잠재력이나 재능, 발전 가능성 같은 추상적인 기준만 말한다”며 “성적이 우수한 아이는 떨어지고, 뒤처지는 아이가 붙는다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불안은 사교육 ‘풍선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교육개발원 조사에서 학부모 열 명 중 일곱은 자녀가 사정관제 전형을 준비하면 사교육 기관을 활용하겠다고 했다. 한 고교진학담당교사는 “대학의 추진 속도가 빨라 고교의 준비가 부족하다 보니 그 틈새를 사교육이 파고들고 있다”며 “대학과 고교 간 협력체제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객관성·전문성 갖췄나=2006, 2007학년도에 대학들은 통합논술을 도입했다. 그러나 교수 한 명이 수백 명 이상을 채점해 공정성 논란이 거셌다. 결국 대부분의 대학은 논술시험을 축소하거나 폐지했다. 사정관 전형도 비슷한 길을 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선 전문성이 문제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학년도 사정관 전형을 실시한 47개 대학의 전임 사정관 344명 중 24%는 지난해 8월 이후 채용됐다. 네 명 중 한 명이 입시 전형 한 달 전에 ‘급채용’된 것이다. 344명 중 정규직은 73명(21.2%)에 불과했다. 변수연 한동대 입학사정관은 “2010학년도 입시에서 500명의 서류를 보고 면접도 100명을 하느라 파김치가 됐었다”고 토로했다.
중앙대 이성호(교육학) 교수는 “미국에서도 정착되는 데 100년이 걸린 제도를 정부가 조급히 추진하는 것은 일종의 ‘교육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라고 지적했다. 가톨릭대 성기선(교육학) 교수는 “속도전에 집착하다 입시 비리라도 터지면 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제 과속”
서울대·연세대·KAIST 등 “추진 너무 빨라” 교과부에 의견 제출
본지‘40개 대학 평가서’입수
정부가 2009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도입한 입학사정관제와 관련해 너무 빨리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이 제도를 직접 운영해온 주요 대학들에서 제기됐다. 이런 지적은 전국 40개 대학이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에 제출한 ‘2009학년도 대학입학사정관제 지원사업 집행결과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해당 보고서는 각 대학의 입학본부(입학처)가 지난해 6월 30일 교과부에 제출한 것으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권영길 의원실이 입수해 28일 공개했다.
서울대·연세대 등 주요 대학들은 보고서에서 사교육비 증가 등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입학사정관제의 추진 속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대는 “입학사정관제는 장기적 검토가 필수적이나 (교과부가) 단기적 실적 위주의 가시적 사업 결과를 요구해 장기적 사업 실행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연세대도 “현재의 입학사정관제 추진 속도가 과도해 사회 구성원의 인식으로는 이를 완전히 수용하기에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과도한 확대와 전형 방법 준비 부족은 입시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사태와 또 다른 형태의 사교육비 증가 요인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KAIST는 “오랫동안 학생을 지도해온 교사의 평가와 입시 결과가 상이함으로써 (수험생들이) KAIST 입학 전형에 불신을 보이고 있다”며 “아예 ‘될 대로 되라’는 방임적 태도와, KAIST는 면접만 잘 보면 된다는 생각하에 면접 대비 학원에 다니는 두 가지 극단적 입시 준비 유형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했다. KAIST는 입학사정관이 개인 심층 면접·토의식 단체 면접 등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도입했었다.
고려대도 ▶입학사정관의 전문성 부족 ▶대학의 제도 악용 가능성 ▶사교육 컨설팅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고려대는 “이로 인해 일부 교사와 학부모가 냉담한 반응을 보여 입학사정관제 연착륙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입학사정관제와 관련한 예산은 2007년 20억원에서 올해 350억원으로 열 배 이상 늘었으며, 2009학년도에 4555명에 불과하던 입학사정관제 선발 인원도 2011학년도 입시 때는 전체 대입 정원의 10% 선인 3만7628명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은 지난해 12월 ‘중앙일보-한국교육개발원 교육포럼’에서 “대학별로 2010학년도 사정관제 전형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따져 볼 것”이라며 “올해 전형에서 공정성 시비를 일으키는 대학은 정부 지원 대상에서 퇴출시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