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HCNEWS - 2024-06-20 - 뉴스홈
한여름 더위가 사람 잡겠다는 말을 어른들이 그냥 하는 말로 들었다. 여름이 어떻게 사람을 잡을까! 옛 어른들의 말은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살아 가면서 느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덥고,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잇따라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할 수 있어 찜통 더위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에 따라서 생각도 가지가지 다르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사람도 있고, 반면에 추워 죽겠다는 사람도 있으며,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 순간 느낌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사소한 것들에 의해서 표현하는 방법이 다 다르 듯이 더위를 이기는 방법도 개인에 따라 다르다. 진해에 사는 친구 숙이가 찜통더위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전화가 왔다. 그냥 저냥 그런대로 지내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면서 서로 위로와 건강을 잘 챙기며 지내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무더운 날씨에 고향 세미실에 살고 계시는 100세 친척할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할머니는 아들5명과 딸2명을 훌륭하게 키워 모두 결혼을 시켜 잘 살고 있다. 안부 전화도 드리지 못하고 생각만 하면서 지내왔다.
7월 27일 오후 5시 28분에 전화벨이 울렸다. 서울 번동에 사는 할머니의 큰아들 이름이 떴다. 우리와 촌수를 따져 큰 아제라 불렀다. 자주 전화를 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보면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들 때가 있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혹시 할머니의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안 좋은 소식이면 어떻게 하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마음을 안정시켰다. “여보세요 잘 지내고 있냐? 몇일전에 고향 새미실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왔다. 가까운 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진찰을 한 결과가 ㅇㅇ라는 병명이 나왔는데 모두 놀랐다. 100세의 연세에 이런 병에 걸릴 수도 있구나 해서 가족들이 모두 비상 상태였다. 또 통증이 심할 때는 응급실에 실려 가서 응급처치를 하고 주사를 맞고 나면, 평소에는 마을 회관에서 별탈없이 잘 지낸다는 말을 하였다. 언제 돌아 가실지 모르니 너의 동생하고 한번 뵙고 오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머리속이 하얗게 되었다. “네. 아제 죽전에 살고 있는 동생추자 하고 한번 다녀오자고 의논을 해볼 게요. 아제도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연세가 들면 아무도 모르게 주무시다가 돌아 가는 일도 있으며, 한방에 같이 잠을 자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평생 큰 병없이 할머니는 살아왔다. 할머니는 젊을 때부터 소화가 잘 안되면 소다가루를 먹었다. 위장이 안 좋은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다.
직장을 다니는 동생 추자는 일주일을 바쁘게 보내고 있다. 시집 간 딸 손주 손녀들이 태어나 틈만 나면 돌봐 주느라 쉴 날이 없었다. 큰 아제의 통화내용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동생도 깜짝 놀랐다. 당장에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합천 가는 표를 예매하도록 했다. 서울에서 합천은 동생 아들이 예매를 하고, 합천에서 서울남부터미널에 오는 것은 우리 둘째아들이 예매를 하였다. 빠르게 표를 구하려고 분담을 시켰다. 예매하는 방법도 배워야 하지만 이런 때라도 엄마들을 위해 마음을 써주는 것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마음으로 여겼다. 금방 문자가 동시에 왔다. 예약이 되었다며 사진으로 보내주었다. 7월 29~30일 토, 일요일이었다. 시간은 토요일 오후 5시 출발이라 넉넉하였다. 미리 가방을 싸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순간 예감이 좋지 않았다. 동생은 일요일날 교회에 참석을 하고 가는 게 마음이 편안하다며 예약을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두 아들에게 예약 취소를 하라고 하였다. 수수료를 떼고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다고 하였다. 다시 또 7월 31일 월요일~8월1일 화요일 예약을 빨리 해야 한다고 했다. 둘이 분담을 나누어서 예약을 했다며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합천 가는 첫차는 오전 7시 50분 출발. 아들에게 고맙고 수고했다는 문자를 보내주었다. 한시름 놓였다. 그동안 할머니는 별일 없이 잘 지내시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러고 나니 입술에 열이 나서 물집이 송송 맺히면서 생살을 찔러 엄청 아팠다. 조금 신경을 쓰면 꼭 입술이 부풀어, 사람들은 지난 밤에 남편이 뽀를 많이 해주어서 그렇다며 우스개 소리도 하였다. 지금도 남편이 살아 있다면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을 것이다. 후시딘을 바르고 전날 밤에 챙겨 놓은 가방에 넣어둔 잠옷, 기초화장품, 안약, 충전기, 빨강색 손 지갑, 노란 우산이 그려진 목수건 등 다시 꺼냈다. 방안에 늘어놓고 쳐다보았다. 할 수없이 제자리에 다시 챙겨 놓았다. 할머니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할머니와 고향에 대한 상념에 젖어본다.
할머니!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울컥한다. 아직도 내 나이가 몇 살 때 어머니가 돌아 가셨는지 정확하게 모른다. 4살 차이 동생은 어머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행복한 기억보다는 늘 초조하고 슬픈 기억들만 가득하다. 산골생활은 어린시절을 슬픔으로 보냈다. 어머니 돌아 가신 후 할아버지가 우리를 돌봐 주었다. 궁핍한 생활은 벗어 나질 못했다. 새어머니를 맞이한 아버지는 ㅇㅇ에서 공직 생활을 하며 떨어져 살았다. 우리의 생활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는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냈다. 그 화는 힘듦과 슬픔이 다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가 더 힘들어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집과 가까이 살고 있는 친척 할머니는 어린 우리들을 엄마처럼 돌봐 주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기억을 해본다. 할아버지는 수시로 할머니 집에 가서 온 갖 것 들을 가져오게 했다는 표현 보다는 얻어 오라는 뜻이 맞을 것 같았다. 집도 넉넉하지 않지만 그래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내가 가서 모깃소리만 하게 말을 하면 금방 챙겨 주었다. 성냥개비 서너 개, 보리쌀 한 주먹, 간장 한 종지, 된장 한 숟갈, 무 한 개 , 김치 한 포기, 깨소금, 고추가루 등이 떨어 질 때마다 달려가서 달라고 하였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며 마음씨 고운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난다. 젊은 나이에 할머니는 무명치마 한복을 입으면 날씬하고 비녀머리에 얼굴은 갸름한 편이었다. 동지 섣달 긴긴밤에 베틀 위에 낱줄들을 갈라 늘여 졸음을 참으며, 베를 짜는 할머니 곁에 앉아 졸음이 오면, 베를 짜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 잠이 들곤 하였다. 부지런하고 솜씨가 좋았다. 특히 유과를 잘 만들었다. 유과는 찹쌀가루에 술을 넣고 반죽하여 찐 다음 꽈리가 일도록 저어서 모양을 만들어 건조를 시킨 후 기름에 지져 낸 다음 조청이나 꿀을 입혀 다시 쌀 튀밥을 잘게 부셔 묻힌 것이다. 유과의 종류와 여러가지 모양에 따라 강정류, 산자류, 빙사과류, 감사과류, 연사과류 중에서 할머니는 빙사과류를 색색이 물을 드려 쌓아 올리는 기술은 보통 아니었다. 할머니의 솜씨는 마술사가 요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설에는 엿을 만들고 남은 엿밥을 숨겨 두었다가 내가 가면 대접에 담아 주었다. 춥다고 하면 아궁이 앞에 앉혀 놓고 맛있게 먹으라며 불쌍한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웃었다. 쪼그리고 앉아 먹는 모습이 안스러운지 머리를 쓰다듬을 때 엄마처럼 느껴졌다. 그 맛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아궁이 속 불은 빨갛게 타고 있으며 무쇠 솥안에서 달콤한 냄새가 났다. 할머니는 우리가 굶을 까 가끔 집에 와서 무엇이 있는지 살펴 보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불쌍한 것들이 할아버지하고 사는 것은 힘든 일이라 나와 동생을 애처로이 바라보았다. 어린 마음에 많이 먹고 싶어도 조금씩 먹으며 하루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다.
내가 시집 갈 때 예단 이불을 만들어 주던 일. 덕환이 언니집에 가서 목화를 사서 합천 읍에 솜틀집에서 솜을 틀었다.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이불감을 끊어 준비해갔다. 할머니와 함께 이불을 만들었다. 빨강 바탕에 봉황이 그려진 이불감은 볼수록 아름다웠다. 가게 주인은 따님이 시집을 가느냐 하며 물어보아도 할머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무명실로 이불깃을 꿰매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하고 아팠다. 가게주인은 아가씨가 야무지게 바느질을 잘 한다고 칭찬도 해주었다. 만든 이불과 요를 나누어 큰 보자기로 쌌다. 교통이 불편 하여 머리에 이고 할머니와 나는 황강을 건너가는데 정말 아찔하였다. 할머니는 앞서가며 내 뒤를 꼭 따라 건너야 한다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리가 자꾸만 물에 둥둥 떠니 떠내려 갈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유행가 가사처럼 물을 건너 산을 넘어 할머니집으로 왔다. 시집을 가서 이불을 볼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가끔 고향에 가서 황강을 보면 그때의 아찔함이 느껴졌다. 이제는 다 변하고 다리가 이어지고 교통이 편리해 완전 바뀌었다. 내 맘 속에만 자리잡은 옛날 기억만 남아있다.
아이들을 키우고, 시집살이를 하다 보니 할머니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아이들이 자라고 조금의 여유가 생겨 할머니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봄이면 할머니 집 뒤 안 장독대가 있고, 언덕에 빨갛게 피는 꽃을 시골에서는 연지꽃이라 불렀다. 할머니는 그 꽃을 꺾어서 주둥이가 넓은 병에 꽂아 놓았다. 그 꽃을 보면서 무척 좋아했다. 집 뒤 안의 꽃이 지금 얼마나 예쁜지 보라고 했다. 한창 피는 꽃은 정말 예쁘고 탐스러웠다. 할머니도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분이라 생각이 들었다.
빨리 만나고 싶은 간절함은 이루어졌다. 예약된 표를 보면서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마음으로 잠을 청해보지만 눈이 말똥말똥 할머니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일찍 눈을 떠니 오전 4시 50분이었다. 얼른 일어나 세수를 하였다. 화장품을 꺼냈다. 먼저 기능 에센스, 수액, 유액, 썬 크림, 영양 크림 클래식, 블록 알렉스 커버 톤 업 등을 발라도 더운 날씨라 화장이 얼굴에 스며 들지 않았다. 머리 손질을 하고, 꽃무늬 나시 원피스에, 빨강색 반팔 가디건을 입었다. 벌써 땀이 나고 더웠다. 여행용 가방에 넣고 올챙이 무늬가 있는 칠부 냉장고 바지, 충전기, 주황색 타올, 회색양말, 화장품, 양산, 줄무늬 티셔츠 등 챙겨 넣고 검정색 정장 구두를 신었다. 현관문을 닫고 역을 향해 가는데 마음은 벌써 할머니 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동생이 먼저 와서 언니 하고 손을 흔들었다. 동생은 주황색 블라우스에 하늘하늘 한 여름바지를 입었다. 화장도 예쁘게 하였다. 07:50분 합천 가는 버스를 탔다. 좌석 번호는 13-14였다. 중간에 앉아 가니 안정감이 있었다. 어머나! 버스 안에는 개인별 망사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1명의 좌석도 옆 사람이 볼 수 없게 망사 커튼으로 가리고, 좌석이 두 개 있는 것은 중간에 치면 서로 얼굴을 볼 수가 없게 만들어 놓았다. 동생도 한번 커튼을 쳐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너무 어색하고 답답하여 금방 걷어서 묶어 버렸다. “언니 이상해 이렇게 변하다니”하고 우리도 의자를 뒤로 빼고 누워 보자 했다. 누워 보니 치과 의자에 누워 의사를 기다리는 것 같아 얼른 일어났다. 신기하다. 얼마나 버스를 오랫동안 타지 않았나 하고 서로 쳐다보면서 웃었다.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변할 줄이야 …
추풍령 휴게소에서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마침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나오는 젊은 남자가 서있었다. 동생이 기념사진을 찍어 달라며 부탁을 하였다. 남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내 카폰으로 사진을 연속으로 찍었다. 사진을 보니 눈 감고, 햇빛에 찡그리고, 반쯤 웃고, 여러 가지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저 고맙다고 했다. 커튼을 걷고 차창 밖을 보니 초록의 산과 들이 영화 촬영을 하는 듯 지나갔다. 햇빛은 풀잎들을 졸게 만들어 놓고 웃고 있었다.
(다음편에 계속)
14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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