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종편
내가 상경한 이래 특기할 사항이 있다면 사는 곳마다 감나무 심은 일이다. 그 감나무들은 지금은 다 고목이 되었다. 처음 이문동 18평 짜리 축대집에 살 때는 배나무 묘목 심었지만, 그 뒤 이문동 40평 짜리 집에 감나무 심었고, 삼성동에 살 때는 앞마당 뒷마당에 감나무 심었고, 그뒤 한강 상류 토평 아파트와 수지 광교산 아래 아파트 1층에 살 때도 마당에 감나무 심었다.
그 중 20년간 소유했던 삼성동 집에선 원도 한도 없이 나무와 꽃을 심어보았다. 중국인들이 아무리 정원을 잘 가꾸어놓아도 그 나무가 없으면 쳐주지 않는다는 백송까지 심었다. 그 백송은 지금 고목이 되어 솔방울 가득 달고 있다. 앞마당 뒷마당 감나무도 가을이면 멋진 풍경이다. 가지 늘어지게 빨간 홍시 매달아 골목을 지나가는 봉은초등학교 병아리처럼 귀여운 꼬마들이 갈 길 멈추고 눈요기 한다.
계단 위로 비스듬히 누운 자두나무는 7월이면 새콤달콤한 자두가 열려 3층 살던 일본 부인이 부러워했고, 거목이 된 백목련 자목련은 나와 동갑내기 2층 정치인 부인이 목련 시를 썼다. 바위 옆 홍매는 분재처럼 잘 자라 창 밖을 내다볼때마다 운치있었고, 장미 아취 위 봉오리 만개한 백장미는 뜰을 향기로 덮었다. 같은 빌라에 미국서 의사하던 연상의 숙녀가 살았다. 미국서는 마당에 잔디가 우거지면 벌금이 나온다고 한다. 그는 우리 정원 잔디를 자기가 깍아주겠다고 자청하곤 했다. 가든 파티 밤엔 먼저 내 손 잡고 스탭 밟았고, 그때 K대 음대 교수 김모는 이태리 가곡을 불렀다.
땅엔 수많은 화초를 심었다. 글라디오라스 수선화 물망초 자주달개비 붓꽃 매발톱꽃 등 다 기억하기 어렵다. 나중에는 함부러 땅을 파면 곁의 구근들이 나오곤 했다. 가을이면 국화 향기 맡았고, 담 위엔 청포도 넝쿨 올렸고, 담 너머엔 무궁화 심었고, 바위 옆엔 영산홍 심었다. 뒷뜰엔 체리 심었고, 금낭화 박하 우산나물까지 심었다. 심지어 강남 한복판 땅에 탱자나무도 심었다. 가을이면 노란 탱자향을 맛보기도 했다. 나무에 달린 노란 탱자는 내 어린 시절 진주 배건너 초등학교 탱자나무 울타리 생각나게 했다.
첫댓글 복숭아나무가 안 보이군요
그거 집안에 심는거 아니라는 설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