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7번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데이비드 진먼, 지휘
RCA 88697 50650 2
진먼의 말러 사이클은 상당히 완만한 속도로 발매되고 있으나, 녹음 시기로 따지자면 진먼도 게르기예프 못지않게 속전속결 스타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교향곡 1~3번은 2006년 2월부터 3월까지 한 달이 채 못 되는 기간에 녹음되었고, 5번과 6번도 대략 한 달(2007년 4월과 5월) 사이에 녹음되었다. 그러던 그가 오랜 침묵 끝에 7번을 녹음한 것은 2008년 9월의 일이었다. 그가,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기다려야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지휘자 자신이 모든 면에서 만전을 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이 신보가 진먼의 의향을 완벽하게 구현한 것인지는 솔직히 말해 좀 의심스럽다.
1악장 첫머리를 듣다 보면 연주의 스케일이 확장되었다는 인상을 받기 쉬우며, 따라서 진먼이 (이전 녹음들에 비해 그리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던) 5번으로 되돌아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진먼 자신은 실내악적 접근방식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어떤 세부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각 성부에 독자적인 음색을 부여해 선명한 대비감을 이끌어내는 데 거의 성공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거의’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은, 녹음이 이 음반에서 적지 않은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녹음에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위감이 매우 뚜렷하며 (특히 3악장에서) 원근감을 절묘하게 살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2악장 첫머리에서 대단히 명쾌하지만 자신감이 지나친 호른 수석과 이를 받아 연주하는 3호른의 경우처럼, 대비가 지나쳐 과유불급이라는 인상을 주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곡 전반에 걸친 과도한 잔향은 1악장에서 해석에 대해 오해를 유발하는 수준을 넘어 3악장이나 5악장(팀파니 독주는 상당히 불분명하며, 특히 첫머리의 독주부에서 그렇다)에서는 곡의 짜임새에 분명히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정 성부가 나머지를 뒤덮어 버리거나, 성부간 상호 간섭으로 전체적인 인상이 애매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현상이 진먼이 원한 바가 아니었으리라는 점은, 모든 성부가 대단한 민첩함을 보여주면서 더할 나위 없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3악장을 들어보면 분명해진다. 그런데 녹음은, 앞서 언급한 잔향 외에도 저음현을 지나치게 부각해 밸런스를 무너뜨림으로써 각 성부 사이에 벌어지는 멋진 숨바꼭질의 흥을 깨고 있다(다행히도 5악장의 밸런스는 적절한 편이다). 아마도 ‘그림자처럼’(Schattenhaft)라는 지시어에 대한 지휘자와 녹음 기술진의 해석이 서로 달랐던 모양이다.
녹음 문제는 이쯤 해두자. 연주 자체의 수준은 어떠한가?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진먼이 1악장만큼은 더 낭만적으로 해석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그가 루바토나 레가토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마음껏 활용해 흐드러진 관능미를 과시한 다른 해석들(대표적으로 번스타인)에 비하면 기술적으로는 매우 뛰어남에도 표정 자체는 어딘지 약간 어정쩡해 보인다. 그러나 4악장에서는 이런 태도가 유려하고 담백한 연주를 빚어내고 있으며, 2악장과 3악장에서는 현악기군을 위시해 각 성부가 명민하고 재치 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어 상당히 만족스럽다(녹음의 영향을 배제하면 그렇다는 뜻이다). 피날레는 리듬이나 균형감, 다이내믹 대비 면에서 보면 매우 탁월하나, 금관이 지나치게 부드럽다는 (또 피콜로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만을 제기할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뛰어난 축에 속하는 연주임은 분명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로 미루어 보건대 진먼은 분명히 더 높은 수준도 보여줄 수 있는 지휘자이다. 아마도 다음에 나올 8번이야말로 그의 능력과 우리의 운을 시험할 결정적인 지점이 될 것이다.
첫댓글 요즘 말러사이클중 그래도 진먼이 제일 기대가 되고 반복해서 듣고 싶은 음반들입니다. 노트는 사이클 진행이 너무 더뎌 아쉽고 게르기에프는 그냥 수집하는 의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도리안님 이번 주에 오실 때는 코다 좀 듬뿍 들고 오서요.^^
라 무지카 말씀이죠? 몇 권 없는데... 하여튼 오신다니 남는 건 다 들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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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세요. 어차피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