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뜻이면(약 4장 13-17절) 240407 주일설교
존 베일리(신학자), “도로 주행 시 조명이 가장 절실한 곳은 분기점이다.”
우리가 구할 중요한 기도제목 분별력을 구하는 것. 혼란스럽고 복잡한 시대에 더욱 그렇다.
솔로몬이 젊은 시절왕 된 후, 성전 건축 전 기브온 산당에 1천번제 후, 그날 밤 꿈에 G 음성 “솔로몬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주님의 질문에 어떻게 답 하겠는가?
솔은 아직 경험이 부족 G께 지혜, 즉 분별력을 구했다. 왕상3:7-9 “나의 G L여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아이라 출입 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 없고,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 오리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은 이 기도로 주님께 칭찬 받고서 G은 분별력과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주셨다.
G의 뜻 – 제임스 C. 패티, <스텝 바이 스텝> 중에서
성경에 ‘G의 뜻’은 G의 계획, G의 명령. 신학자들은 G의 두 가지 뜻, G의 ‘작정적인 뜻(decretive will, 법령, 계획)과 ‘명령적인 뜻’(preceptive will, 교훈, 명령)이다(Hodge, 1865).
G의 ‘작정적인 뜻’ 세계를 주관하시는 G의 통치 아래 일어나는 모든 것. G의 ‘명령적인 뜻’은 부르시거나 어떤 일의 명하시는 G의 지침. 성경 ‘G의 뜻’두가지 의미 혼동 쉽다.
계획으로서의 G의 뜻 : 바울은 엡1장 5절 G의 주권적인 계획에 대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X안에 성도들은 자신이 태초 전 구원 받기로 선택되었음을 알고 위로 받을 수 있다. 그러한 선택은 G의 주권적인 계획 가운데 G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
약 4장 15절 야고보는 자신을 과신 자기 계획을 위해 살지 말고(예, ‘어떤 도시에 가서 그곳에서 살며 돈 벌 것’)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야고보는 계획 자체를 비판 않는다. G의 계획을 고려 않는 것 비판. 자기 계획으로 결정 말라고 한다.
G의 주권적 섭리와 계획은 어떤 결정 할 때 우리를 지켜주는 보호 난간과 같다. 자녀들에 대한 그분의 섭리, 참 목자이신 G은 능력의 지팡이로 우리를 영원한 삶으로 이끄신다.
명령으로서의 하나님의 뜻 : ‘G의 뜻’은 이미 드러난 G의 법칙 내지 명령우로 사용. G께서 원하시거나 혹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는 의미로서의 ‘G의 뜻’이다.
마 6:10절 J께서 기도를 가르치시는 장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의 핵심은 J께서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G의 주권적인 계획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이 G의 명령에 순종하게 해 달라는 것. 마치 천사들과 공중의 권세들이 하늘에서 G의 명령에 순종처럼 말이다.
J은 G의 계획과 명령의 심오한 의미에 대해 알려주셨는데, J의 가르치심 중 혼합된 의미로 자주 사용. 요 4:34절 주님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G은 J께 세상에서 우리 죄위해 죽으라는 사명을 주셨다. J께서 사명을 온전히 깨닫고 계셨고, 구절에서는 그 사명에 더욱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G의 계획으로서 뜻과 명령으로서의 뜻이 동시에 나타나는 장면.
G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그분의 주권적 계획과 명령이 담겨있는 성경을 통해서 하신다. G의 뜻이 인간의 언어로 성경 통해 드러나기 때문. 말씀을 떠나서 단지 상황과 환경과 같은 것으로 G의 인도하심 받고자 함은 어리석은 신앙이다.
버려진 “주의 뜻” - 채영삼 교수(백석신학대학원 신약학)
13~15절, 야고보는 세상 속에 ‘두 마음’으로 비지니스를 하고 생활하는 신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허점을 꼬집는다. 그것은 세상의 영역에서는 G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 하는 습관이다. 그들은 그들이 장사 하는 일, 사업차가 멀리 가서 거기 거하며 물건을 사고 팔며 이익을 올리는 등의 모든 계획들에는 마치 G이 전혀 관련 없으신 분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15절의 “주의 뜻이면”(주께서 원하시면, 호 큐리오스 뗄레세이)이라는 표현이 너무도 결정적이다. 그들의 생각이나 마음속에는 “주의 뜻”이 없다. 어디에 가서 장사할지, 얼마나 머물지, 무엇을 팔지, 얼마나 어떻게 이익을 남길지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하지만, “주께서 원하시면”이라는 항목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야고보는 이미 앞선 본문에서 “주의 뜻”을 천명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따라”(불레쎄이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약1:18). 세상 속에서 비지니스를 하는 그 믿는 성도들 자신이 곧 “주의 뜻”이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났고, 그들 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심긴 말씀”이 자라고 있다. 자신이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시고 그 한가운데 심으신 살았고 영원한 말씀의 씨앗들인 셈이다. 그런데 그들이 “주의 뜻”이라는 항목을 뺀 채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들은 단지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사는 셈이다. 자신들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셈.
‘주의 뜻’은 이미 그들을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신 것’이었다. 그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신 것이었다(약2:5).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얻고 잃는 것과 상관없이 낮은 가운데도 ‘자기의 높음을 자랑할 만한 것’이 항상 그 믿음 가운데 차고 넘치는 것이다(약1:9). 오히려 그들은 그들 속에 심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부패와 혼돈의 세상 속에서 말을 다스리고, 긍휼을 베풀고, 정결함을 지켜(약1:26-27), 끝내 인내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자들(약5:7; 11), 예비된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자들이다(약1:12) 그런데 야고보 성도들 중에 그들의 정체성과 본질에 속한 이 부요함과 존귀함을 일은 채, 세상에서 조금 이익 얻는 것을(13절, 케르데소멘) 자랑하고, 그렇게 세월을 허송하려는 자들이 있었다.
야고보에게 이것은 당치도 않은 일. 어떻게 영원하신 G의 말씀, “살았고 영영히 서는 그 말씀”통해 영적 생명 받고, 말씀이 심령에 심긴 G의 백성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 결국이 “잠시 나타났다가 조금 후 금방 사라져버리는 안개”(14절)와 같은 길을 갈 수 있을가?
도대체 무엇이 이익인가? 주의 말씀대로,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케르테세이)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이익인가?(마16:26) 이는 전혀 계산 못하는 어리석은 상인, 자기 자신의 생명을 잠시 있다가 사라질 안개와 맞바꾸는, 정말 이익을 남길 줄 모르는 무능력한 장사꾼일 뿐. 그는 영원한 것을 순간적, ‘찰나’적인 것과 맞바꾸는 장사꾼,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 넘겨준 ‘에서’의 길, 밭에 감추인 보화 얻기 위해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파는 대신, 그 보화를 담보로 곧 없어질 것들을 긁어모으는데 정신없는, 세상 얻고자 영원한 생명을 맞바꾸려는 자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나 실상 계산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사업가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어리석은 계산하게 될까?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현실의 유혹에 이끌려,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세적인 마음,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두 마음”의 심령이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현세주의적 태도가 있다. 현세주의적 신앙은 ‘지금, 여기’에서 소위 약발이 먹히는 신앙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신앙이다. 이런 현세주의적 신앙이 반드시 잊어버리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종말과 이웃이다.
잊어버린 심판과 이웃 이들은 종말을 잊는다. 그들 자신을 포함해서 이 세상이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라는 사실을 잊는다(14절). 장차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잊는다(약5:1). 그리고 이웃을 잊는다. 가난한 이웃에게 긍휼과 선을 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나질 않는다(17절). 도리어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쪽 에 서고, 그렇게 해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상태에 이른다(약5:4). 현세적인 신앙은 종말을 잊고, 이웃을 잊는다. 치명적이다.
그뿐 아니다. 그들은 도리어 허탄한 자랑에 빠진다. 그것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랑”으로 번역된 단어 ‘알라조네이아’는 우쭐대다라는 뜻이다.
야고보는 정말 자랑해야 할 것은,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받은 그 영적 지위, 그 “높음”이다(약1:9). 또한 우리로 하여금 심판 때에 그 심판을 이기게 하고도 남는 주의 “긍휼”, 곧 주의 긍휼을 따라 우리가 베풀고 행한 그 “긍휼”이라고 했다(2:13). 그것은 정말 자랑할 만한 것이다. 또 정말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이다(약3:13-14).
부한 형제는 그들의 교만 가운데서 헛된 재물 자랑, 성공 자랑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해야 한다(약1:10) 즉, 세상에서 얻은 이 모든 것들이 모두 풀의 꽃처럼 사라져도, 그래서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아 낮을 대로 낮아져도 차고 넘치는 주의 긍휼과 그 넘치는 하늘의 복, 장차 얻을 “인내의 열매” 그리고 자신에게 약속된 “생명의 면류관”으로 인해 자랑해야 한다(롬 5:23; 살전 2:9; 빌 2:16).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복음의 목적으로 삼으면 그 성도와 교회는 망하게 되어 있다. 예수님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수단으로 해서 얻는 ‘복’이 더 가치 있는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가치관의 혼돈을 가져온다. 예수 믿고 성공하고 복을 받아도, 그 신자의 가치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두 마음’(약1:7)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항상 시험이 끊이지 않고, 항상 시기와 다툼과 분쟁 속에서, 그리고 세속의 더러움 속에서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세속적인 신자가 세상에서 사업을 해서 성공해도, 그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된다. 그는 종말의 심판을 잊은 채 살아갈 위험에 놓인다. 그는 마땅히 행해야 하는 선을 잊어버린다. 그의 시야에서 종말과 이웃이 사라지고, 이익을 남길 것만 남는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뜻에 따라 G이 움직여 주셔야만 하는 사람으로 변한다.
약 교회 곧 신자들? G께서 “자신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신 사람들이라는 복음을 선포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께서 창조하시는 새로운 세상, 새 하늘과 새 땅을 알리는 “첫 열매”(아파르케, 약1:18)로 이 땅에 존재한다. 믿음은 있지만 세속적인 비지니스인들은 결국 ‘새 창조의 첫 번째 열매’에 합당한 열매들을 산출하는 일에 실패한다. “주의 뜻이면”(16절)이라는 결정적인 조건을 그들의 생각과 계획에서 배제한 어리석음은, 다가오는 종말에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시는 새로운 세상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에 실패하게 하는 것이다(Wall, 221) 그들은 결국 인내의 열매를 맺지 못할 것(약5:7, 14) 결국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데도 실패할 것(1:12) 인내에 실패했기 때문. 두 마음으로 살았고 결국을 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첫째, 혹 G을 배제한 인생 계획 수정. G 없는 미래를 준비한다면 당장 멈추시라. 그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 함 같다. G 없는 인생의 설계는 기초부터 잘못된 엉터리다.
동로마 제국에서는 황제가 즉위식 할 때 관례를 지켰다고. 새로 즉위하는 황제에게 멋지게 깎은 여러 대리석을 보여주면, 황제는 그 중에 하나를 자신의 묘비로 선택해야 했다. 황제가 즉위하면서부터 먼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게 했던 것.
혹시 여러분은 자신을 의지하는 가운데 세상적인 기쁨만을 추구하며 미래에 대한 화려한 기대만을 가지고 인생을 계획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G의 자리를 내어드리고 겸손하게 인생을 바라보라. “주의 뜻”을 고려하라. 15절.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안개와 같은 인생을 의미 있게 살 있을 것.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창 13장에 A과 롯의 이야기. 하루는 A이 자기 조카 롯을 불러 “롯, 우리 서로 다투지 말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 무슨 말입니까? 나는 하나님을 선택했기에 좌든 우든 상관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만 하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G만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조카 롯 위해서 모든 것을 양보했다. 그러나 롯은 삼촌 A에게 전혀 양보 않고, 소돔과 고모라 쪽 택했다.
어떤 랍비는 롯의 선택을 “Lot chooses money over morality!”(롯 도덕보다 돈 선택!) 롯의 평가 돈과 재물. 롯이 선택한 요단 평지는 물이 풍부하고 푸른 풀밭이 널려 있었습니다.
중동지방에 살기 좋은 한 가지 조건 충족되면 물이 있으면 된다. 여리고 비롯한 모든 도시들이 물을 중심. 롯이 요단 골짜기는 에덴동산 같았고 애굽 땅과 같았다.
창 13장 10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L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L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에덴동산은 네 강물이 흐르는 곳. 낙원. 애굽 땅은 풍부한 나일 강물이 있는 곳. 농사든 목축이든 나일 강물 때문에 잘 된다. 롯은 요단 골짜기를 바라보고 반했다. ‘바로 저곳이다!’
롯이 선택한 땅은 너무나 큰 함정이 있었는데, 소돔성. 창 13:13. “소돔 사람은 L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소돔성은 성적으로 너무나 타락한 곳이었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욕보이는 곳. 동성애를 뜻하는 Sodomy라는 말이 여기에서 생겨났다.
아마도 롯은 ‘난 저런 도시에 살아도 절대 타락 않을 자신 있어! 이웃 사람들은 내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꺼야!’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안타깝게도 롯은 영안이 어두웠다. 흥미롭게도 그의 이름 ‘롯’은 ‘가리다’ ‘덮다’ ‘어둡다’에서 유래. 즉 롯은 ‘영적 까막눈’인 셈. 선택맹’(Choice Blindness). 문맹은 글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색맹은 색깔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선택맹은 선택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그 결과 잘못된 것도 모르고 계속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마릴린 먼로와 콜린 타운센트 -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 희대의 여배우. 그의 할리우드 동기생 중 콜린 타운센트 여배우가 있었다. 먼로는 전 세계인이 다 아는 유명인이지만 콜린 타운센트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둘 다 은막에 데뷔하며 스타가 되겠다는 야망을 불태웠는데 콜린 타운센트는 중간에 J을 만났다. 그 후 영적 세계를 알게 되니까 자신이 생각했던 게 시시해 보였고 마침내 은막을 떠납니다. 목사와 결혼하고 나중에는 선교지로 갑니다. 먼로는 승승장구 대스타가 된다. 결혼도 여러 번 하고, 수많은 스캔들이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두 여인 때 먼로가 말 했다. “난 처음 배우가 됐을 때 무슨 짓을 하든 어떤 희생이 따르든 스타가 되려고 결심. 그 꿈을 성취했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잃어. 내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 같아. 콜린! 당신은 참 행복해 보이네!” 먼로는 겉으로 화려했지만 속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냈고, 마지막에 약물로 자살. 육체파의 말로가 슬프다. 롯도 마찬가지 육체파 온통 육신적 데만 관심 가졌던 사람이다.
클라이드 발라드(미 워싱턴 주 하원의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젊은 시절 반항하며 지냈다.누구하고나 싸우기를 좋아하던 그는 음주운전으로 감옥 가고,죽을 뻔한 교통사고를 내기도 했다.그의 아버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에게“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J C를 아는 것이다”라고 유언했습니다.
한때 앰뷸런스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던 그는 매사에 자신만만했으나 어느 날 큰 화재로 피땀 흘려 이룩한 모든 것 불 타탔을때 그의 건물이 불타는 것 보면서 아버지의 유언은 생각 G이 그에게 원하심은 그의 소유가 아니고 하나님과 그 자신과의 교제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사업을 아들에게 맡기고 정치가로 변신 주지사 조찬기도회 설립, 30명 상원의원들과 정부 각료들 모아 성경공부.마 6:33 “너희는 먼저 그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주님의 말씀을 가장 좋아한다 “성공은 내가 누군가가 되고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느냐 보다 나의 주님이신 J C를 아는 것에 있음을 발견했다”
G의 주권 인정은 G앞에 나 자신을 겸손하게 내어 드리는 것. 내 삶에 어떤 부분은 G께 드리고, 그 외의 다른 부분은 나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나의 모든 인생의 전 영역에서 그 분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 뜻이면, 주님이 허락하시면, 이것이 우리 삶의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범사에 그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가짐과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 분의 손 안에 있르나 교만 버리고, 허탄한 자랑마라. 그것은 악한 것. 겸손히 주님의 뜻 구하라. 주님의 뜻 안에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주님이 허락하시는 참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주의 뜻이면, 주님이 허락하시면, 이라고 말하는 것은 G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고백. “주님 뜻이면 내가 이것을 하고, 주님이 허락하시면 내가 저것을 하고,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내가 이러이러 하리라” 이 태도로 G의 주권 인정하시기를.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말하면서 “주님 뜻이면”을 말했다. 행 18:20-21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G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고전 4장 19절 “주께서 허락하시면”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바울은 언제나 G의 주권을 인정 G의 뜻에 따라 자신의 계획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본문의 야고보가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은 “주님 뜻이면” 말을 공식처럼 무의미하게 입술로만 끊임없이 반복. 인생의 모든 일에 대한 G의 섭리와 G의 계획을 진심 인정하는 것.
“주님 뜻이면”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것이 여러분의 삶의 모토가 되기 바랍니다.
둘째 G의 뜻을 행하라. 17절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G의 주권 인정 ㅎ의 뜻을 아는 자의 의무는 행함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G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이 뭔지 안다면 실천하라. 내 삶에서 G의 뜻을 행하는 것.
그러면 G의 뜻은? 설교 서두에 ‘계획으로서의 G의 뜻’과 ‘명령으로서의 G의 뜻’을 언급했다. G의 뜻은 우리가 발견 못하도록 꼭꼭 감춰두고, 보물찾기 하듯 숨겨둔 그런 것이 아니다. G은 이미 성경 통해 말씀. G의 뜻이 뭔지 분명하게 가르쳐주심. G의 뜻 성경에 있다.
유머 - 한 청년 자매가 단기 선교여행 두고 고민. 좋은 기회라 생각되됐지만, 현실적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선교 여행을 가는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침에 눈을 떠서 시계를 봤는데 7시 5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선교 여행 출국 날짜가 7월 5일인데 정확히 그 시간에 눈을 떴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인이구나!
만약 G의 뜻이라면 얼마든지 알람 맞춰놓고 G의 뜻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을 겁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김종기 명예이사장. 1995년 6월, 외아들이 학교폭력 피해자로 고통 견디다 못해 스스로 세상 등졌다. 비통함과 죄책감, 미안함, 후회가 범벅 정상적으로 살 수 없는 지경 될 뻔 나름 열심, G이 이러실 수 없다면서 교회도 안 가고 많이 힘들어 했다.
이후 기도만으로 안 되는 문제라며, 슬픔과 분노를 뒤로 1995년 11월, 사재 털어청소년 폭력예방재단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학교폭력예방과 치료를 목적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활동하며 UN경제사회이사회에서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았다. <빛과 소금> 인터뷰에서 그는 이 일이 아니었으면 술 많이 마시거나, 염세주의자가 되거나, 한국을 떠나거나 그랬을 텐데, 이 일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면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청예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투명하고 전문적인 모델로 신뢰받기까지 힘들었지만, G께 감사할 뿐이죠. 심지어 G이 이 일을 시키려고 내 아들을 데려 가셨나 하는 생각을 중반 정도부터 했습니다. 남을 존중하고 질서를 지키는 어른들 늘어나야 아이들이 본받는다. 우리 사회가 더불어 건강해지기 위해 있는 자들, 배운 자들, 사회에서 주목 받는 사람들이 옳은 일에 관심을 갖고 약자를 도와야 하는데 그들이(즉 가진 자들, 배운 자들, 사회에서 주목 받는 사람들 더 안 하거든요. 진정 행복하시 다면그 행복의 뿌리는 뭡니까?”
우리를 향한 G의 뜻과 인도하심을 바르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할 일은 삶에서 G의 주권을 인정 성경 통해 명하신 G 의 뜻을 행하는 것. 그 외에 것에 대해서 G이 허락하신 자유 G의 뜻 안에서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다. G께서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 그 길에 조금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불안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G을 향한 확신 중 살아가는 것.
G의 뜻 G 뜻 알면서도 무시함 죄다. G이 뭐가 옳은지 말씀하셨고 또 그것을 행할 힘을 주심에 따라 G이 가르쳐주신 말씀을 그분이 주신 능력으로 실천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질문. 여러분 G이 계십니까? 이 자리에서 직접 G이 없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말로 그렇게 않지만, 삶으로 할 수 있다. G 계시다지만, G 안 계심 처럼 살 수 있다.
지금 이 곳에 얼마나 많은 무신론자가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그 호칭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산다면 여러분은 실제적인 무신론자입니다.
G의 말씀으로 무엇이 올바른 일인지 알았다면 G의 말씀 따르라. 삶에서 G의 주권 인정하시고, F의 뜻을 행하십시오.
법무법인 ‘소명’ 대표 전재중 변호사. 서울대 법대 다닐 때 G밖에 몰랐다. 기독교 단체 IVF에서 말씀으로 훈련 받으며 버스에서도 대담하게 말씀 전했다. 목사가 어울린다는 말도 자주 들어 성직자 아닌 법조인 되었다. 군법무관 거쳐 1989년부터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지만 마음이 몹시 부대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음주 문화나 윤리적 기독교와 상지되는 일들이 제법. 보람보다 G께 소명 받지 않고 자의적으로 선택한 길이었다는 자책감이 더 컸다.
그러다가 일본 유학 중 소명 발견 1999년 법조계에서 G의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를 몇몇 법률가들과 고민 CLF(Christian Lawyers Fellowship)을 창립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독 법률가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법무법인 ‘소명’을 세웠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서 상당수의 법조인이 소명 발견 이 길을 왔다기보다, 그냥 공부 잘해서 온 것, 자신의 우수함을 증명할 신화 만들기 위해 온 것, G의 영광보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게 된다는 자성과 함께 고백 했다. “주께서 땅에서 저희를 섬기셨듯이, 이제 저희도 이 법률직에서 주님의 손과 발되어 어려운 이웃들 섬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죠. 자기 신화 만들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눈앞의 이익이나 승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기를 간구합니다.”
앞장 선 전재중 변호사에게 G 사 43:19-20의 말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터툴리안 초대교회 당시 이교도들은 X인들을 “Christiani” 아닌 “Chrestiani”라 불렀다. 물론 두 단어는 거의 비슷하나 비슷하다는 이유 말고 혼동 이유. Christiani는 “X인”을 의미, Chrestiani는 “온유” 뜻 헬 비롯. 즉 터툴리안은 X인들이 J을 믿는 사람들로 알려지기 전부터 온유한 사람들로 알려졌었고 온유는 사람들을 X에게로 이끌었다.
1986년 11월 미 애리조나 주에 보석상 스미스는 우연히 수석 전시회에 들렀다가 15달러짜리 가격표가 돌멩이 보고 깜짝 놀랐다. 보통 돌멩이 아닌 사파이어 원석. 주인에게 “이것이 정말 15달러냐”고 묻자 주인은 비싸다는 말인 줄 알고 5달러를 더 깎아 줬다.
그는 두말없이 10달러에 사 원석 가공해 목걸이와 팔지, 반지 등 제품들을 만들어 팔았다. 원석 한 덩어리로 그가 번 돈 자그마치 228만 달러다. 보석의 가치를 몰랐던 사람에게 원석은 기껏해야 10달러짜리지만,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228만 달러짜리 보물이었다.
파스칼, “사람은 천사가 될 만큼 거룩하고 경건할 수도 있지만, 그 어떤 악마보다도 더 사악한 존재로 타락할 수도 있다.”
천사와 악마,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다. 오늘날, 매일 어떤 결정을 내리며 살아가고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내린 결정에 의해 좌우되므로 우리의 순간의 선택과 결정은 매우 중요하다.
“주님의 뜻이면”을 앞세워 G의 선한 일에 힘쓰는 성도들 되길 바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