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관광 결합된 문화예술 콘텐츠 내놓을 것"[아트피플] 연극인 양태훈 극단 얼·아리 대표 조선대 재학 중 ‘맥극회’서 연극에 입문 30년째 활동 펼쳐 1993년 지역 최초 순수 창작 극단 창단 작·연출 맡아 주도 "실험적인 작품 시도…우리만의 특색있는 무대 선보일 터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2020년 9월호 제88호=정채경 기자)독특한 소재의 연극을 최근 관람했다. 이오네스코의 ‘수업’이라는 무대를 준비하면서 여러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배역을 따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한 배우가 혼자서 연기할 수 있다고 외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러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연극이 사라지는 기상천외한 상황이 벌어진다.
올해 제34회 광주연극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극단 얼·아리의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다’는 파격적인 이름만큼 신선하다. 혼자 할 수 없는 연극의 특성과 함께 공연의 끝이 삶의 시작임을 알리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이 삶의 본질을 깨닫게 해 인상적이다. 연극이지만 연극이 아닌 것 같은, 연극과 현실을 넘나들며 반전을 안겨준다.
이처럼 독특한 무대 뒤에는 작·연출가 양태훈 극단 얼·아리 대표가 있다.
양 대표는 지역에서 최초로 순수 창작극을 시도한 극단 얼·아리를 이끌어오며 그동안 열악한 창작 환경 속에서 꾸준히 작품을 쓰고, 공연을 올려왔다.
그가 올해 광주연극제에서 작·연출을 맡은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다’는 지난해 김경숙 작, 양태훈 연출의 ‘그래도 따뜻했던’에 이어 2년 연속 최우수 작품상을 받게 됐다. 이번 수상으로 극단 얼·아리는 9월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제38회 대한민국연극제 본선 무대에 선다.
양 대표는 지난 2013년 광주연극제에서 최우수상과 연출상을 받은 ‘우렁각시’의 작·연출, 이듬해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인 대상 등 3관왕을 거머쥔 ‘발톱을 깎아도’의 총 기획을 맡은 장본인이다. 이 상 수상을 계기로 1998년 이후 16년 만에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광주연극계의 경사였다.
30년째 연극판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영광 출신으로 학창시절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해 영화감독이 되는 꿈을 품었다고 한다. 조선대에 입학해 대학 재학 중 연극동아리 ‘맥극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 뒤 양 대표는 고(故) 윤영선(서울 얼아리), 박홍렬(사진작가)씨와 함께 극단 얼·아리를 창단하게 된다. 이후 김종필(극단 연인), 고 김은광(극단 행복한사람들), 양정인씨가 합류해 활동을 시작한다.
1993년 창단 당시 극단은 연극만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미술·문학·음악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덤볐다. 무대를 본 이들은 ‘이게 연극인가’라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연극 속 연극 혹은 독특한 형식의 무대를 구성해서다. 이는 점차 얼·아리 만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최보엽·김데레사·류진화·류미씨 등이 활발하게 연극 활동을 함께 했던 단원들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창단 멤버들은 각각 극단을 새롭게 꾸리거나 배우로 활동을 펼쳐나갔고, 그러다 점차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얼·아리는 양태훈 대표를 비롯해 양정인·김경숙·이선미씨 등 중견배우들로 꾸려져 있다. 순수창작극을 지향, 꾸준히 무대에 올리며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양 대표는 지난해 광주연극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뒤 올해 전국대회를 앞두고 있는 등 2013~2014년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부담이 크다며 웃었다.
학창시절 꿈이던 영화감독과 현재 연극인으로서의 차이점은 "영화감독은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을 하는데, 연극은 한정적인 공간에서 작품을 진행해야 하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연극을 꿈꾼다는 그는 지난 2018년에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타이틀의 1인 연극을 기획, 대본없이 참여 관객 10명과 대화하면서 대사를 완성해 가는 독특한 무대를 선보였다. 관객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관객 입에 맞는 대사를 공연 중에 완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난해에는 극장이 아닌 게스트하우스의 방 7개를 무대로 삼은 연극 ‘어쩌면 스무 개의 이야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관광객이 호텔 객실을 돌아다니면서 극에 참여하는 뉴욕의 필수 관광코스인 ‘슬립 노 모어’를 착안, 공연과 숙박, 양림동 투어까지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상품을 기획해 호응을 얻었다.
그는 이처럼 실험적인 무대를 올리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실험적인 공연을 기획하는 것은 배우들이 표현하고, 관객이 받아들이는 연극의 고정관념을 벗어나고 싶어서죠. 새로운 형태의 연극을 시도해 우리만의 특색있는 무대를 보여주는 거예요. 사람들이 우리 무대인지 몰라도 연극을 본 뒤 ‘얼·아리 것 같은데?’라고 느낄 때 뿌듯해요. 그만큼 우리의 특징이 작품에 깃들어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이와 함께 작품을 선보일 때 중요하게 여기는 점으로 ‘공감’을 꼽았다.
"실험적인 형식으로 선보이되 작품을 쓸 때, 혹은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출할 때 ‘공감’을 중시하죠. 울고 웃기 위해서는 공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에요. 세상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첫 번째 단계가 공감이라는 생각입니다."
의도한 메시지가 관객들에 잘 전달될 때 뿌듯하다. 또 여러 사람들이 작품 속 여러 상황, 감정 등을 여러 방향으로 추측하고, 이해하며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걸 볼 때 행복하다고 한다. 아울러 작품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작품을 통해 한 가지 현상을 다양하게 생각해보고, 각자 느낀 것을 이야기하며 몰랐던 부분을 깨달을 때라고 했다.
"의도한 메시지가 관객들에 잘 전달되는 것을 봤을 때 뿌듯하죠. 특히 여러 사람들이 작품 속 여러 상황과 감정 등을 다방면으로 추측하고, 이해하며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걸 볼 때 행복하죠."
한가지 현상을 다양하게 생각해보고, 각자 느낀 것을 이야기하며 몰랐던 부분을 깨달아 가는 게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묘미여서다.
이같은 생각을 근간으로 양 대표는 올해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지난 7월 양림동 살림문화재단에서 ‘어쩌면 뷰티풀 라이프’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지난해 선보인 ‘어쩌면 스무 개의 이야기’의 연장선상의 작품이다. 장소특정적, 이머시브(immersive), 스토리텔링 형식의 극단 얼·아리의 ‘어쩌면~’ 시리즈로 마련됐으며, 올해 공연은 지난해 관객들의 스토리텔링이 작품의 소재가 돼 새로운 창작 연극이 됐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는 극단 깍지의 창작극 ‘어머니와 그’의 작·연출을 맡아 오는 9월10~12일 예술극장 통 무대에 올리기 위해 비지땀을 쏟고 있다. 민중미술가 이상호 작가와 5·18 최초 희생자인 고(故) 김경철씨의 어머니 임금단씨의 실화를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인 데다 이 작가의 대표작과 신작 그림이 등장할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여기다 뮤지컬 ‘빛골아리랑’을 연극으로 각색한 ‘그 날, 오월 아리랑’을 10월6~8일 광주문예회관 무대에, 용아 박용철을 소재로 한 어린이 연극을 10월 중 광산문화원 무대에 각각 올릴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 광주를 대표할 수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일방적인 공연이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는 무대를 기획하고 싶어요. 작품에 지역성이 녹아들어 광주에 대해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하죠.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도 다시금 생각나는 작품이었으면 합니다. ‘어쩌면 스무 개의 이야기’와 ‘어쩌면 뷰티풀 라이프’처럼 연극과 관광 등 다양한 분야를 결합, 공연 콘텐츠를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는 아트상품을 내놓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