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한 상건님의 논문입니다.
논문은 저자 한 상건 선생님으로 부터 직접 허락을 받고 올리게 되었습니다.
논문 게제는 진작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저의 게으름 때문입니다.
독자께서는 익히 알다시피 구운몽은 본래 유불선 3교사상이 혼재 되어있습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유불선의 정의는,
儒는 본래 人事로서 人倫를 다룬 敎이며
佛은 본래 心事로서 修心를 다룬 敎이며
仙은 본래 造化로서 長生不死를 다룬 敎입니다.
이 중 한 상건 선생님은 이 중 불교적 세계관에서 또 윤회사상이란 관점으로 구운몽을 해석하고 있으로 여기에 큰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구운몽은 우리가 학창시절 교과 과정으로 익히 배워 알고 있는 바 이므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학술적으로 불교의 윤회 사상이란 것은 어떤 특정 종교가 주장하는 일개의 사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永生을 추구하는 서양판 仙道인 기독교의 성경에서 윤회 사상을 찾을 수 있으며, 유교 역시 단지 현실 세계의 도덕을 우선시하여 윤회를 언급하지 않을 뿐이며, 선도는 인간 세상에 대하여 더 이상 윤회가 없는 초월적 존재인 神仙이 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이는 자신의 증조부가 자신으로 환생하였다고 합니다.
불교 사상에서 말하는 윤회 사상을 일개의 종교철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전생을 알고 싶다면 현생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구운몽에 나타난 불교의 윤회 사상
I.서론
1.연구의 목적
2.연구의 방법
II. 예비적 고찰
1.김만중의 인식세계
가. 사상 관
나. 불교 관
2.불교의 윤회 사상
가,육도 윤회설
나.업과 삼세업보설
다.연기법
III. <구운몽>에 나타난 불교의 윤회 사상
a.환이 일어나는 연유
가. 성진과 팔선녀의 만남
나. 사후의 중간단계
다. 양 소유로 태어남
b.환에서 깨어남
라. 성진으로의 다시, 깨어남과 육관대사의 가르침
IV. 결론
■참고문헌
I.서론
1.연구의 목적
구운몽은 환몽구조로 된 복잡한 심리의 전개와 시공간이동으로 이어진 고전소설의 백미이다. 대체로, 유, 불, 선이 함께 공존하던 당시의 시대적인 패러다임처럼, 작품 내에서도, 삼교의 사상이 여러 공간과 시간대에 공존하며 등장인물의 모습과 개성 속에 다양한 세계를 나타나고 있는데, 당시 조선의 지배적인 이념이었던 유교의 가르침 또한, 전편을 관류하고 있음도 분명하나,작품의 현실-꿈-현실이라는, 환몽구조의 밑바탕에는 전생 내생 후생의 삼생을 바탕으로한 불교의 윤회 사상이 깔려 있음을 볼 수 있다. 본고는 그러한 구운몽의 작품적 특성이 불교의 윤회 사상으로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를 조명해보고자한다.
2.연구의 방법
한 개인이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 중에서 깊은 상관관계를 낳는 것이 사상과 종교의 영향이 매우 크다 할때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저작인 서포만필에서 그와 관련된 서술을 찾아보고,작품에서 불교적 세계관인 윤회 사상의 배경이 되는 육도윤회설, 삼세업보설과 연기법에 대한 개념을 알아보고 성진이 꿈이라는 상징을 통해 어떻게 윤회에 들고 그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가를 특히, 윤회설의 근거인 연기관을 통해 작품에 나타난 불교적 윤회사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II. 예비적 고찰
2.김만중의 인식 세계
가. 사상관
성리학은 17세기 조선의 중후반 당대 지식인들의 보편적 사상 기반이었다. 성리학은 주자에 의해 완성된 이래 고려를 지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성리학에 대한 연구가 동아시아 최고 수준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주자가 제시했던 문제를 바라보며 성리학을 발전시켰던 조선 중기 학자들의 생동감은 점차 문제의식보다는 이념적 성향을 보이면서 경직되면서 교조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서포 김만중은 원래의 문제의식을 회복하고자 성리학을 구성하고 있는 원천에 대해 해체적 분석과 반성적 종합을 지향했다
당대 지성계 일부에서는 주자학의 절대적 우위성을 강조한 나머지 다른 사상체계에 대해서 매우 편협한 태도를 보였다. 주자를 근거로 불교나 도교를 이단으로 배격해 사상적 순결을 과시했지만, 정작 주자가 불교에서 배운 바가 있음은 도외시 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불교적 요소를 유학에 첨가하여 성리학을 이룩하고도 그 사실을 감춘 송대 이학자들을 매우 날카롭게 비판했다.그의 저서 서포만필에서는성리학을 불교유학 즉 선유(先儒)라고 명명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성리학과 불교의 유사한 부분들을 많이 지적한다.1)
“불교서의 요지는 진공묘유 [ 眞空妙有 ] 라는 넉자에 있고. 진공은 유의 공이라는 말과 차이가 없고, 묘유는 공의 유라는 말과 차이가 없으니, 이는 주염계의 무극이 태극이라는 말과 서로 흡사하다”2)
무조건적인 불교의 배척이 아닌, 비교와 사유의 대상으로서 불교를 바라보는 서포 김만중의 태도는 성리학과 불교의 비교를 통해서 각각의 존재 가치를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태도이다.
이것은 당시 성리학이 위상의 높이만큼이나 배타적인 주자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포 김만중이 살았던 17세기의 지식인은 거의 전부 정주학을 사상적 토대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대체적인 사상의 경향은 어디까지나 정주학의 완성자들에 대한 공경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의 지적이라 할수 있겠다
나 불교관
서포의 증조부는 당대 예학의 종장이며 율곡 이이의 제자인 사계 김장생이고. 종조부는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등의 신독재 김집이고, 조부는 허주 김반이다. 이러한 가통을 이은 김만중 역시 촉망받는 유학자이자 정치관료였다 그의 성리학적 소양은 단순한 경전의 암송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이어진 삶의 문제에 대한 세계관의 문제로의 귀결이다
“격물 두 글자에서는 실제로 그것이 이치를 궁구한다는 뜻이 있음을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평소에 우둔하고 침체함을 한탄하였는데,...생략 나는 15~6세 때에 비로서 책을 읽고 격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마음속에 오락가락한 지가 30년이 넘었는데 요즘 사실에 따라서 노력을 해보는 경우로 이를 추구해보고 바로 이 학설이 적당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략:”3)
서포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여러차례 유학자에게 불교가 기여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이렇게도 얘기한다.
“한창려가 주공 공자에게 터득한 바가 어찌 동파만 같지 못하겠는가마는 조주에서의 애처러운 호소가 크게 사람들을 불만시킨 것은,생각건대 불교에 대한 학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주로 유배되어 의기소침해 진 것을 본다면, 그의 감정은 오직 말초신경에만 있었음을 알 만하다.그러나 진양에 봉명 사신으로 나갔을 때는 의기가 확립되고 높이 빼어나서 참으로 맹자의 양기를 얻음이 있었으나, 또한 아마도 태전i)의 감화의 영향력을 받지 않음이 없었을 것이다.“4)
유학자로서 불교를 용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일 수 없었던 당대 조류속에서 서포 김만중은 선으로 마음을 닦는 것이 성리학으로 마음닦는 것과 깨우침은 같지만 쓰임에서는 전혀 다르다는 주자의 불교에 대한 비판을 인용하면서, 오히려 선과 성리학의 상동성에 지적한다.
“주자는 ”이 마음을 깨우치는 것은 같지만 도가 다르다. 우리 유자들은 이 마음을 깨우쳐 허다한 도리를 관조하는데,불씬는 공허하게 깨우치기만 하고 여기에 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이제 그 거울가는 법을 가르치는 스승은 거울을 갈아 상자에 붙여 둘 뿐이지만, 이들 배우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의관을 정제하고... 생략,,, 그 사용하는 방법은 정녕 같지 않을 것이다. 어찌 사용하는 바가 같지 않다고 해서 그 스승된 바를 기피하겠는가?5)
선과 성리학이 각각 쓰임에 있어 다르다는 주자의 주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마음을 닦는데 큰 도움이 되는 불교를 스승으로 못 삼을 것은 무엇이냐면 반문하는 것은 불교를 배척하는 주자의 의도와는 다른 것이다6)
성리학은 처음부터 유교와 불교, 두 사상의 장점을 취하여 성립된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그는 당대에 불교에 친화적이라는 점을 비판받았고, 이에 대해 그의 종손 북헌 김춘택은 서포만필서에서 해명을 따로 하고 있다. 서포 김만중은 당대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전환을 마련하기 위해서 먼저 기존의 사고틀을 해체 분석하여, 새로운 틀을 구상할 수 있는 자체의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했다. 그것은 감추어진 것을 드러낼 것을 필요로 한다. 그는 재래의 사상체계가 단일한 성격으로 성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사상적 원천에 관한 해체적 작업을 산문이나 소설을 통하여 시도하며, 유학과 불교를 배타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다7)
2.불교의 윤회 사상
불교에선 몸과 마음과 입으로인한 행위의 원인과 과보로서 육도를 따라서 생사를 반복한다고 한다 그러한 원인을 업이라하고 삼세 업보설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속에는 법이라는 원리가 있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바, 연기법이라고 한다.
1.육도 윤회설8)
생명이 있는 것은 여섯 가지의 세상에 번갈아 태어나고 죽어 간다는 것으로 이를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한다. 육도 중 첫째는 지옥도(地獄道)로서 가장 고통이 심한 세상이다. 지옥에 태어난 이들은 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다. 둘째는 아귀도(餓鬼道)이다. 지옥보다는 육체적인 고통을 덜 받으나 반면에 굶주림의 고통을 심하게 받는다. 셋째는 축생도(畜生道)로서, 네 발 달린 짐승을 비롯하여 새·고기·벌레·뱀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넷째는 아수라도(阿修羅道)이다. 노여움이 가득찬 세상으로서, 남의 잘못을 철저하게 따지고 들추고 규탄하는 사람은 이 세계에 태어나게 된다. 다섯째는 인간이 사는 인도(人道)이고, 여섯째는 행복이 두루 갖추어진 하늘 세계의 천도(天道)이다. 곧 인간은 현세에서 저지른 업에 따라 죽은 뒤에 다시 여섯 세계 중의 한 곳에서 내세를 누리며, 다시 그 내세에 사는 동안 저지른 업에 따라 내내세에 태어나는 윤회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윤회의 여섯 세상에는 절대적인 영원이란 없다. 수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지옥에서 다시 인간도로, 천국에서 아귀도로 몸을 바꾸어서 태어난다. 곧 육도의 세계에서 유한의 생을 번갈아 유지한다는 것이 불교의 윤회관이다. 이 윤회는 철저하게 스스로 지은 대로 받는다는 자업자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스스로 착한 일을 하였으면 착한 결과를 받고, 악한 일을 하였으면 악한 결과를 받는(善因善果惡因惡果) 자기책임적인 것이다.
자기가 지은 바를 회피할 수도 없고 누가 대신 받을 수도 없다. 오직 자기가 지은 업의 결과에 따라서 다른 세계로의 향상(向上)과 향하(向下)가 가능할 뿐이므로,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자율적인 의지와 실천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는 윤리도덕적인 측면, 즉 권선징악적인 차원에서 특히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권선징악을 넘어선 해탈의 차원에서 이 윤회설이 강조되었다. 윤회한다는 것은 결국 괴로움이므로 영원히 윤회에서 벗어나는 열반이나 극락의 왕생 등을 보다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한 생에서 다음 생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데 대한 관심보다, 현실의 삶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깊이 다스려서 언제나 고요한 열반의 세계나 불국토(佛國土)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점검하도록 하는 데 치중하였다.
2. 업과 삼세 업보 설 9)
불교에서는 "선업(善業)에는 즐거운 보(善報)가 따르고 악업에는 괴로운 보(惡報)가 따른다." 고 설한다. 업(業)과 보(報)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으므로 그들의 성질 또한 동일성(同一性)을 띠게 될 것은 물론이다. 즉 업인(業因)이 선(善)이면 과보(果報)도 선(善)이고, 악(惡)이면 과보(果報)도 악(惡)의 성질을 띠게 된다는 말이다. 경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흑보(黑業)에는 흑보(黑報)가 백업(白業)에는 백보(白報)가, 흑백업(黑白業)에는 흑백보(黑白報)가 따르고, 불흑불백업(不黑不白業)에는 보가 없다."<중아함 卷27 달
범행경)불흑불백(不黑不白)의 업이란 의지가 작용된 것이 아니므로 보가 없다고 할 것은 물론이다.왜 그러냐면 불교에서는 인간의 의지적 작용만을 업으로 보고 있으므로 "의지가 작용되지 않은 업(不故作業)은 보를 받지 않는 것이다."<중아함 卷3 사경>
불교의 업설은 삼세업보설(三世業報說)로 전개된다. 문제의 현상을 분석해 보면, ① 현재 업인이 있는데, 그 과보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와, ② 과보(果報)는 있는데 그 업인(業因)이 현재 발견되지 않을 경우의 둘로 갈라진다. 이러한 두 경우를 업설에 의해 합리적으로 설명한다면, ①의 경우는 그 과보가 현세의 이후에 즉 내세에 있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②의 경우는 그 업인이 현세의 이전에 즉 숙세(宿世)에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석존은 다음과 같이 설하고 계신다. "만일 고의로 업을 지음이 있으면 반드시 그 보를 받나니, 현세에 받을 때도 있고 내세(來世)에 받을 때도 있다."<중아함 卷3 思經>
3. 연기법10)
연기와 법은 불교의 근본적인 특징으로서의 법인설(法印說)로부터 연기설이 생긴 것이므로, 연기설은 불교의 근본설이며, 연기를 법 자체라고도 한다. 원시 경전 속에서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든가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나(佛)를 본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 법칙은 부처의 출현과는 관계없이 법(法)으로 결정되어 있는 차연성(此緣性:이것에 연유하는 것, 相依性)의 것이다. 연기설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그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그것이 멸한다.”라는 불설(佛說)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말의 뜻은 조건에 의하여 생기는 현상의 법은 그 조건을 없앰으로써 모두 멸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원시 경전에는 여러 형식의 연기설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적인 경향이 인정된다. 그것은 우리의 생존이 노(老)ㆍ병(病)ㆍ사(死) 등의 고뇌로 번민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왜 이러한 고뇌가 나타나는가를 탐구하며, 나아가 우리의 생존의 근저에 존재하는 인생의 진실상(眞實相)에 관한 무명(無明, avidyā)을 발견하고, 그 고뇌의 근본 조건인 무명을 멸하는 것에 의해, 고뇌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여러 형식의 연기설 가운데에서 가장 완성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12연기설이다. 그것은 1)무명(無明), 2)행(行 : 形成力), 3)식(識 : 識別作用), 4)명색(名色 : 명칭과 형태), 5)육입(六入 : 6개의 영역), 6)촉(觸 : 접촉), 7)수(受 : 感受), 8)애(愛 : 妄執), 9)취(取 : 집착), 10)유(有 : 생존 일반), 11)생(生), 12)노사(老死)의 12개의 항목이 각각 순서에 따라, 바로 전향을 기초로 하는 관계를 서술한 것이다. 결국 '무명이 있기 때문에 노사가 있다'(順觀)고도 할 수 있고, '무명이 없다면 노사도 없다'(逆觀)” 라는 에 대한 순역의 고찰은 생로병사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의 핵심이다.
III. . <구운몽>에 나타난 불교적 세계관
1.불교의 윤회사상
불교의 교설은 크게 실상론과 연기설이다. 실상론이 공의 관점을 통해 진리를 가르친것이라면, 연기설은 법,즉 연기법을 말함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러한 연기설과 실상론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닌 연기가 곧 공이고 공이 연기인 원융무애의 경지를 말한다. 나와 세계에 대한 관계성의 실체를 설명한 것이 연기설이라면 그 연기한 내용의 실체는 공이며 무아라는 것이 불교의 정론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치에 어두운 것을 불교에서는 무명이라고 하고 그로인해 생,사의 무한한 되풀이가 된다는 가르침이,바로 윤회 사상이다 작품내의 구운몽이라는 몽의 풀이도 환이라는 말과 같으면서 진리로서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서 현실에 대한 미망을 꿈이라, 통칭할 때, 그 미망의 연기적 상태는 곧, 윤회로 이어지는 직접적 요인이 된다하겠다 작품에서는 현실의 성진과 다시 양소유로의 꿈속 현현과 다시 성진의 깨어나 돌아오는 허구적 서사이지만, 불교적 윤회의 연기적 관점으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삼생이 전개되는 것이라 놓고 볼때 구운몽이라는 작품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작가는 작품 내에서 불교적 세계관의 특징인 윤회사상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찾아보고자 한다.11)
a 환이 일어나는 연유
가. 성진과 팔선녀의 산문 밖 외출과 만남
팔선녀들은 위부인의 심부름으로 선문(仙門)을 나와 육관대사를 문안하고 연화봉을 승유(勝遊)하기로 하는데, 자아와 대상이 분리되지 않았던 신성한 공간과 시간은 자아의 대상에 대한 집착으로 장차 환이나 꿈으로 이어지는 원인으로서 작용하게 된다.아래는 자연경관과 자신들의 모습에 취하여 외물에 이끌려가는 대목을 묘사하고있다.
“서로 손을 이끌고 천천히 걸어올라 폭포에 나아가 흐름을 보고 물을 쫓아 내려가 돌다리 위에 쉬니 이때는 바로 춘삼월이었다. 화초는 만발하고 구름과 안개는 자욱한데 봄새 “소리에 춘흥이 호탕하고 물색이 사람을 붙잡는 듯하여, 팔선녀가 자연 몸과 마음이 산란하고 춘흥이 일어나 차마 떠나지 못하여 편안히 웃고 말하며 돌다리에 걸터 앉아 경치를 희롱하니, 낭낭한 웃음은 물소리에 어울리고 아름답고 고운 얼굴은 물 가운데 비치어 완전히 한 폭의 미인도라 하면 미인도를 잘 그린 주방(周昉)의 손 아래에 갓 나온 듯하였다. 온갖 희롱하며 떠날 줄 모르더니, 중략”
성진은 용왕의 문안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팔선녀를 석교위에 만나면서
길을 지나는 문제에 대해 서로 수작하며 마찬가지로 장차 있을 환의 원인을 마음속에
새기게 되는 직접적 작용을 만들어가게 되는 육진 경계중 색과 냄새의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데 성진의 산문밖으로의 이동은 각각 청정한 공간과 시간에서 세속지향의 공간과 시간으로 이행하는 모티브로 작용한다
“성진이 감히 사양치 못하여 석 잔 술을 먹은 후에 용왕께 하직하고 수궁에서 떠나 연화봉을 행하였다. 연화산 아래에 당도하니 취기가 크게 일어나 갑자기 생각하여 말하였다. 생략 가사를 벗어 모래 위에 놓고 손으로 맑은 물을 쥐어 얼굴을 씻는데, 문득 기이한 향내가 바람결에 진동하니 마음이 자연 호탕하였다. 성진이 이상히 여겨 말하였다. “이 향내는 예사로운 초목의 향내가 아니다. 이 산 중에 무슨 기이한 것이 있는가?”하고, 다시 의관을 정제하고 길을 찾아 올라가니, 이때 팔선녀가 돌다리 위에 않다 있었다. 성진이 육환장을 놓고 합장하여 재배하고 말하였다. 중략 각각 하나씩 손에 쥐고 성진을 서로 돌아보고 웃으며 바람을 타고 공중을 향해 갔다. 성진이 홀로 돌다리 위에서 눈을 들어보니 팔선녀는 간 곳이 없었다.”
아래 구절은 술을 마신 성진이 시냇가에서 세수를 하다가 여자의 향기를
맡고 석교 위에서 팔선녀를 만나 그 모습을 보고 그 목소리에 반했다가는
돌아와서 망념에 의한 환상을 보는 장면을 연상한다. 이렇게 형성된 육진 을 계기로 하여 느낌[受] → 갈애[愛] → 집착[取] → 존재[有] → 태어남
[生]이라는 12연기의 중심 과정이 진행되며 그 귀결이 양소유로의 환생이다.12)
“성진이 돌아와 밤에 혼자 빈방에 누우니 팔선녀의 말소리가 귀에 쟁쟁하고 얼굴 빛은 눈에 아른거려 앞에 앉아 있는 듯, 옆에서 당기는 듯 마음이 황홀하여 진정치 못하다가 문득 생각하였다. 남자로 태어나서 어려서는 공자와 맹자의 글을 읽고, 자라서는 요순 같은 임금을 섬겨, 나가면 백만 대군을 거느려 적진에 횡행하고, 들어서는 백관(百官)을 장악하는 재상이 되어 몸에는 비단 두루마기를 입고, 허리에는 황금으로 만든 도장을 차고, 임금을 섬기고 백성을 달래며, 눈에는 아리따운 미색을 희롱하고, 귀에는 좋은 풍류 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당대에 자랑하고 공명을 후세에 전하면 그것이야말로 진실로 대장부의 일일 텐데 슬프다, 우리 불가는 다만 한 바리때 밥과 한 잔 정화수요, 수삼 권 경문과 백팔염주일 따름이요, 그 도가 허무하고 그 덕이 사라져 없어지니, 가령 도통한 들 넋이 한번 불꽃 속에 흩어지면 뉘 한낱 성진이 세상에 났던 줄을 알리오.’이럭저럭 잠을 이루지 못하여 밤이 이미 깊었다, 눈을 감으면 팔선녀가 앞에 앉았고 눈을 떠보면 문득 간 데가 없었다. ”
불교에선 신구의 삼업을 청정하게 지키는것이 곧 계행과 심법을 지킨다고한다
육관대사는 성진의 계행과 심계를 어기는 것에 대한 꾸짖음을 통해서 이러한 구도의 잘못됨을 질책하며 이미 지은 업에 대해서 다시 경각심을 일깨우며 스스로가 스스로 지은바를 받는 자업자득의 원리에 대해서 암시하게 되는데 이것은 후에 윤회 혹은 꿈으로 응보하게 되는 원인으로 전개된다.
“사형은 주무십니까? 사부께서 부르십니다.”성진이 크게 놀라 동자를 따라 바삐 들어가니 대사가 모든 제자를 거느려 있는데 촛불이 대낮 같았다. 대사가 크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성진아, 네 죄를 아느냐?"”성진이 크게 놀라 신을 벗고 뜰에 나려 엎드려 말하였다. “소자가 사부를 섬긴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조금도 불순불공한 일이 없었으니 죄를 알지 못하겠습니다.”대사가 크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네 용궁에 가 술을 먹었으니 그 죄도 있거니와 오가다 돌다리 위에서 팔선녀와 함께 언어를 희롱하고 꽃 꺾어 주었으니 그 죄 어찌하며, 돌아온 후 선녀를 그리워하여 불가의 경계는 전혀 잊고 인간 부귀를 생각하니 그러하고서 공부를 어찌 하겠느냐,네 죄13)가 중하여 이곳에 있지 못할 것이니, 네 가고자 하는 데로 가거라.”
나. 사후의 중간단계
죽음이후 저승으로 끌려온 대목이다. 즉 불교에선 중음단계로서 다시 생을 받을 때가지
머무는 장소이기도 하다. 구운몽에서 성진에서 다시 소유로 소유에서 다시 성진으로의
사이에 있는 불교적 관점은 연기적으로 반본 환원의 구조로 현현(顯現)과 은복(隱伏)의 논리 속에 전개 됨을 알 수 있다 성진은 다시 소유에 은복하고 소유에 은복된 성진은 다시 새로운 업을 은복하면서 다시 성진으로서 환원시에 현현한다 14)
"성진이 눈물을 흘리고 마지 못하여 부처와 대사께 하직하고 사형(師兄)과 사제(師弟)를 이별하고,사자(使者)를 따라 수만 리를 행하여 음혼관(陰魂關) 망향대(望鄕臺)를 지나 풍도에 들어가니 문을 지키는 군졸이 말하였다.“이 죄인은 어떤 죄인이요?”황건역사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육관대사의 명으로 이 죄인을 잡아왔노라.”귀졸(鬼卒)이 대문을 열자, 역사(力士)가 성진을 데리고 삼라전(森羅殿)에 들어가 염라대왕께 뵈니 대왕이 말하였다.
“화상(和尙)이 몸은 비록 연화봉에 매였으나, 화상 이름은 지장왕(地藏王) 향안(香案)에 있어 신통한 도술로 천하 중생을 건질까 하였는데, 이제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느냐?”
성진이 크게 부끄러워하며 고하여 말하였다.
“소승이 사리가 밝지 못하여 사부께 죄를 짓고 왔으니, 원컨대 대왕은 처분하십시오.”
한참 후에 또 황건역사가 여덟 죄인을 거느리고 들어오자, 성진이 잠깐 눈을 들어 보니 남악산 팔선녀였다. 염라대왕이 또 팔션녀에게 물었다.
“남악산 아름다운 경치가 어떠하기에 버리고 이런 데 왔느냐?”선녀 등이 부끄러움을 머금고 대답해 말하였다. “첩 등이 위부인 낭랑의 명을 받아 육관대사께 문안하고 돌아오는 길에 성진 화상을 만나 문답한 말씀이 있었는데 대사가, 첩 등이 좋은 경계를 더럽게 하였다 하여 위부인께 넘겨 첩 등을 잡아 보냈습니다. 첩 등의 괴로움과 즐거움이 다 대왕의 손에 매였으니, 원컨대 좋은 땅을 점지해 주십시오”.염라대왕이 즉시 지장왕(地藏王)께 보고하고 사자(使者) 아홉 사람을 명하여 성진과 팔선녀를 이끌고 인간 세상으로 보냈다. "
다. 양 소유와 팔 부인으로의 환생
성진과 팔선녀는 중음과정을 거쳐 다시 양소유와 여덦 부인으로 만나고, 세속에서의
부귀영화를 이어가는 첫대목으로,구아 구아!하는 양소유의 출생과 처음에는 전생으로서 얼마간의 기억을 갖고살아가나 점점 연화봉을 잊어가면서 전생의 욕망이 현생으로 현현한다.
“이 땅은 곧 당나라 회남도(淮南道) 수주(秀州) 고을이요, 이 집은 양처사의 집이다. 처사는 너의 부친이요, 부인 유씨는 네 모친이다. 네 전생의 연분으로 이 집 자식이 되었으니 너는 네 때를 잃지 말고 급히 들어가라.” 성진이 들어가며 보니 처사는 갈건(葛巾)을 쓰고 학창의(鶴氅衣)를 입고 화로에서 약을 다리고 있었다. 부인이 이제 막 신음하자, 사자가 성진을 재촉하여 뒤에서 밀쳤다. 성진이 땅에 업어지니 정신이 아득하여 천지가 뒤집어지는 듯하였다. 급히 소리쳐 말하였다.
“나 살려! 나 살려!” (求兒! 求兒!)
그러나, 소리가 목구멍 속에 있어 능히 말을 이루지 못하고 어린 아이의 울음 소리만 나왔다. 부인이 이에 아기를 낳으니 남자였다. 성진이 다만 오히려 연화봉에서 놀던 마음이 역력하더니 점점 자라 부모를 알아 본 후로 전생 일을 아득히 생각지 못하였다.”
이후 인생의 모든 부귀와 욕락을 누리다가 세속의 무상을 느끼고 신성지향으로서 심리변이를 나타내는 만년의 양소유는 승상이라는 높은 직위와 부귀영화 속에서 팔선녀의 화현인 팔부인들과
종남산에 올라 퉁소를 부는 이 대목은 불교의 제행무상속에서 과거의 한평생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본래 모습과 해후하게 되는 장면의 출발점이자 다시, 연화봉의 선방에서의 저녁 한 날로의 회귀 직전의 장면이면서, 꿈꾸기 전과는 다른 성진으로의 돌아옴이다
작품속에서는양소유의 시간은 한 평생이지만, 성진 수행자의 저녁녘의 백일몽이다.
"천하에 세 가지 도가 있으니 유도(儒道)․선도(仙道)․불도(彿道)라오. 유도는 윤리와 기강을 밝히고 사업을 귀하게 여겨 이름을 죽은 후에 전할 따름이요, 선도는 허망하니 족히 구할 것 아닌데, 오직 불도는 내 근래에 꿈을 꾸면 항상 부들 방석 위에서 참선하는 것이 불가에 반드시 인연이 있는 것 같소. 내 장차 장자방(張子房)이 적송자(赤松子)를 좇은 것같이 하여 남해를 건너 관음(觀音)께 뵈고,의대(義臺)에 올라 문수보살(文殊菩薩)에 예불하여, 불생 불멸의 도를 얻고자 하나, 다만 그대들과 함께 반평생을 서로 따르다가 장차 멀리 이별하려 하니 자연 비창한 마음이 퉁소 소리에 나타났던 것이오." 여러 낭자도 다 남악 선녀로서 세속의 인연이 장차 다한 가운데 승상의 말씀을 들으니 어찌 감동치 아니하겠는가? "상공이 번화한 중에 이 마음이 있으니 분명 하늘의 뜻입니다. 첩 등 여덟 사람이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예불하여 상공을 기다릴 것이니, 상공은 밝은 스승을 얻어 큰 도를 깨달은 후에 첩 등을 가르치십시오." 승상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우리 아홉 사람의 마음이 서로 맞으니 무슨 근심이 있겠소."
여러 낭자가 술을 내어와 작별하려 할 때, 문득 지팡막대 끄는 소리가 난간 밖에서 나 여러 사람이 다 의심하였다. 한참 후에 한 노승이 나타났는데 눈썹은 한 자나 길고 눈은 물결 같아 얼굴과 동정(動靜)이 보통의 중은 아니었다.
라. 성진으로의 다시, 깨어남과 육관대사의 가르침
양소유로서의 승상이 말년에 무상고(無常苦)를 느끼고 노승을 만나니 바로, 성진으로서의
스승인 육관대사이다 수행자로서의 일념의 망념에 의해서 12연기의 순관에 의해서 꿈이라는
환생체험을 끝마치고 다시 자신의 현실자리인 연화봉 아래의 성진으로 깨어나는 과정이다
승상이 멍한 채로 말하였다. "십육 세 이전은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십육 세 후는 벼슬하여 임금을 섬겨 분주하여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때 사부를 좇아 십 년을 놀았겠습니까?"노승이 웃으며 말하였다. "승상이 오히려 꿈을 깨닫지 못하였소.승상이 말하였다. "사부께서 저를 깨닫게 하시겠습니까?"노승이 말하였다. "이 어렵지 않다." 하고, 막대기를 들어 난간을 치니, 문득 흰 구름이 일어나 사면에 두루 껴 지척을 분간치 못하였다.승상이 크게 불러 말하였다."사부는 바른 도리로 가르치지 아니하시고 어찌 환술(幻術)로 희롱하십니까?" 말을 마치지 못하여 구름이 걷히며 노승과 두 부인 육 낭자는 간 데 없었다. 승상이 크게 놀라 자세히 보니 누대 궁궐은 간 데 없고, 몸은 홀로 작은 암자 가운데 앉아 있었다. 손으로 머리를 만지니 새로 깎은 흔적이 송송하고 백팔염주가 목에 걸려 있으니 다시는 대승상 위의는 없고 불과 연화 도장의 성진 소화상(小和尙)이었다.다시 생각하되, '당초 일념 그르침을 사부(師傅)가 경계하려 하여 인간 세상에 나가 부귀 영화와 남녀 정욕을 한번 알게 하신 게구나.
그런데,여기서 그의 양소유로서의 체험에 대해 꿈임을 자각했다하나 현실의 성진과 꿈으로서의 양소유를 둘로 보는것에 대해 육관대사의 마지막 일구는 호접몽과 금강경의 사구게로 성진에게 가려있는 마지막 미망을 깨트린다 이로서 성진은 꿈꾸기전의 성진이 아니고 꿈속의 성진도 아니나 그 모든 성진의 다른 모습이 연기에 의해 일어났으며 그 실체로서의 존재에 대한 집착과 존재에 대한 허망에 떨어지지않는, 연기법의 실상15)을 물으며 도대체 윤회하는 자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마지막 금강경 사구게는 미망 체험, 혹은 윤회 체험을 통해 꿈의 실상을 깨닫고 새롭게 태어나는 성진과 팔선녀의 마지막 귀결점은 여섯가지 비유의 꿈과 환과 거품과 그림자와 이슬과 번갯불을 관한다는 육관대사의 이명인 육여대사의 경지로의 귀결이다.
“네 승흉하여 갔다가 흥진하여 돌아왔으니 내 무슨 간예함이 있으리오?”네 또 이르되 “인세에 윤회할 것을 꿈을 꾸었다‘하니 이는 인세와 꿈을 다르다 함이니 네 오히려 꿈을 채 깨지 못하였도다. 장주가 꿈에 나비 되었다가 나비 장주가 되니”,어느 것이 거짓 것이요 어느 것이 참된 것인 줄 분변치 못하나니, 어제 성진과 소유가 어느 것은 정말 꿈이요 어느 것은 꿈이 아니뇨“?16)
일체유위법(體有僞法)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 (如露亦如電)응작여시관 (應作如是觀)
IV. 결론
구운몽은 유불선 삼교의 사상이 작품내에서 공존하고 있다. 본고는 특히 불교적 관점인
윤회 사상을 중심으로 작품의 주제와 주인공의 꿈을 이해하고자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작품에 대한 이해에서 윤회가 일어나는 원인을 불교의 근본가르침인 연기설이라 보고
연기적 관점에서 꿈과 깨어남을 12연기의 순관과 역관의 관점에 주안점을 두고 풀어보았다 작품내에서 성진이 비록 한 날에 일어나는 짧은 시간내의 사건이라하여도
작품의 전체 줄거리에서 연기적 사실을 허구로서 빚어낸 환몽구조는 마치 전생과 내생과 후생으로 이어지는 삼생업보설과 같은 이미지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구운몽은 단순히 통속적인 윤회사상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작가는 서사적 허구로서 이 작품을 묘사했으나 충분히 윤회사상을 빚대서 불교의 진의를 담는대 성공했다고 유추할수 있었다 왜냐하면 처음 꿈으로 상징되던 윤회의 근본은 결국 금강경 사구게의 가르침처럼 꿈과 같고 환과 같은 실체 없음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부정이란 사실, 인생은 허무하다거나 허망하다는 통속적인 결론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다시, 깨어난 현실에서 꾸는 꿈을 한 번 더 깨야한다는 함의를 담는다 불교의 진의가 윤회에서의 벗어남이라면 윤회의 마당은 바로 이 순간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연기의 순관과 역관을 통해서 꿈과 현실이란 그 근본은 하나이면서도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연기의 실상을 작품으로 형상화 시킨 것이라 보인다.
1) 설성경 (구운몽의 통시적연구,2007,P50)
2) 홍인표 역주, (서포만필 일지사 ,1987 ,P160)
3) 김만중 저, 홍인표 역주 (서포만필, 일지사,1987p,104)
4) 김만중 저, 홍인표 역주 (서포만필, 일지사,1987p243,)
5) 김만중 저, 홍인표 역주 (서포만필, 일지사,1987p,265)
6) 설성경 (구운몽의 통시적연구,2007P,39)
7) 설성경 (구운몽의 통시적연구,2007P,49)
8) 한국 민족대백과 사전 참조
9) 서재영의 기초교리 강좌 http://www.buruna.org/main.htm 참조
10) 철학사전철학사전편찬위원회 외 30인|중원문화 |2009. 참조
11) 유병환 (구운몽의 불교사상과 소설미학,1998.P13참조)
12) 구름이강옥 논문 <구운몽>에서 의 의미와 주제 참조
13) 육관대사가 수행자 성진에게 죄라고한 연유에 대해 관련해서 -윤회와 환의 원인으로서 육진에 탐착하는 것에 대한 금강경의 제 10품의 육조혜능의 주석 -색(色)을 보고 색에 집착하고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는 것은 곧 미(迷)한 사 람이요, 색을 보되 색을 여의어서 색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내는 것은 깨달은 사람이다.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는 것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고, 색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내는 것은 하늘에 구름이 없어서 해와 달이 널리 비추는 것과 같다. 색에 머물러 내는 마음은 즉 망념(妄念)이요, 색에 머물지 않고 내는 마음은 즉 참다운 지혜이다. 망념이 일어나면 어두워지고, 참다운 지혜가 비추 면 즉 밝아진다. 밝으면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어두우면 곧 육진(六塵; 육식(六識)으로 지각하는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이 다투어 일 어난다.이 구절은 ..금강경..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에 대한 육조 혜능의 주석
14) 유병환 (구운몽의 불교사상과 소설미학 ,1998. 170쪽 )
15) 衆因緣生法 我說卽是無 亦爲示假名 亦是中道義 (中論 관사제품 제 18송)
16) 김병국 역주 (구운몽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7,553쪽)0
■참고문헌
유병환 구운몽의 불교사상과 소설미학 국학자료원 1998
김병국 역주 구운몽 서울대 출판문화원 2007
배영희 구운몽에 내포된 역학사상탐구 2004
정규복외 김만중 문학연구 국학자료원 1993
정길수 구운몽 다시읽기 돌베게 2010
설성경 구운몽의 통시적 연구 새문사 2007
정규복 구운몽 연구보고사 2010
금강경 오가해 도피안사 2009
논문 이강옥 논문 <구운몽>에서 구름의 의미와 주제
참고자료
서재영의 기초교리 강좌 http://www.buruna.org/main.htm 참조
철학사전철학사전편찬위원회 외 30인|중원문화 |200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