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의 色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을 말합니다.
반야심경의 空이란!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표현한 가르침입니다.
공을 이해하고 체험하면 무아(無我)를 알게되는데,
금강경의 무 아상, 무 인상, 무 중생상, 무 수자상을 증득하게 되어 견성하게 되며 불법의 상당한 경지에 이릅니다.
견성이 성불이라고 주장하지만,
견성이 공부의 시작이며 물러남이 없는 불퇴전 보살입니다.
예수도 견성한 보살에 불과하며,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닙니다.
불법을 공부하게되면, 예수가 40여일을 광야에서 물만 마시고 단식하게되듯 대 결정심을 거치게되는데 생사의 강을 건너게 됩니다.
공성空性이 바로 자성自性 견성을 친견하게 되는것이지요.
금강경에 황하사수 모래알같이 보시한 공덕보다
空 한자를 이해하는 공덕이 더 크다는 말씀입니다.
공에 대한 깨달음은
인간이 가지는 위대한 최상승의 법이기도 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공을 이해 하게 될 때,
가장 건강한 정신세계가 펼쳐지게되고, 다툼이 없는
온전한 평화가 오게 될 것입니다.
공를 이해하면 다툴래야 다툴수 없게되고 모든 갈등이 사라지게 됩니다.
개인적인 모든 번뇌의 고통은 집착이라는 소유욕으로부터 갈등하게됩니다.
삶에 부딪치는 모든 갈등은
공으로서만 풀수있고 공으로서 해결됩니다.
부모.남편.아내.자녀.친구.이웃
일상에서 만나고 이야기하는 모든것을
< 공에서 보고 공에서 듣고 이해하라 >는 말입니다.
공를 이해하는 수행공부에는
유식.무식.학자.비학자 낫놓고 기역자도 몰라도 됩니다.
오히려 논문쓰기를 좋아하는 유식한 학자들이 공성을 증득하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어려운게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공성에 다가 가려면
생각이라는 망상을 멈춰야 하는데,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일목요연하게 짜집기 하는게 논문이니까, 생각을 멈출수가 없게되는 이치입니다.
예를 들자면
파리란 놈은 임금님의 두상에 똥도 싸보고, 임금님의 수라상에 임금님보다 먼저 맛나는 음식을 맛 볼 수 있고 세상 그 어디에도 제일 먼저 앉아 볼 수 있지만, 벌겋게 달구어진 화로에는 절대로 앉아 볼 수 가 없는것과 같이 유식한 학자들은 결코 생각을 멈출수가 없게되는 이치입니다.
예수가 공성을 체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각이라는 분별과 망상에서 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와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게 바로 생각을 멈추라는 진리입니다.
일체는 연기법에 의하여 존재하며
일체의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벗어나서
무애자재(無碍自在)의 경지를 체득하자!
마하반야바라밀
나무 석가모니불 _()_
덕운 이주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