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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명산트레킹후기 스크랩 2019년 01월31일 ~ 02월03일(4일) 다낭(베트남), 카이딘왕릉 / 후에성 - 05
정상고집(배연희) 추천 0 조회 167 19.02.18 15:5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9년 01월31일 ~ 02월03일(4일)

장소 : 다낭(베트남)

제 1일차 0131일 : 대성당 / 바나힐 ( 아들 과 함께한 여행 )


제 2일차 0201일 : 하이반고개 / 투득왕릉 / 카이딘왕릉 / 후에성 /티엔무 사원 / 한강유람


카이딘 황제는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12마지막 왕으로 31세인 1916년 왕위에 올라 192511월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보호령 시절(1858~1955)이라 실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1920년부터 10년에 걸쳐 축조된 왕릉은 베트남과 프랑스 양식이 뒤섞여 응우옌 왕조의 왕릉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입구에서 계단을 올라 중앙에 이르면 공덕비와 무덤을 지키는 문무관, 기마, 코끼리 상이 있다. 안에는 벽과 제단이 도자기와 유리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계성전 옥좌에 앉은 황제 등신상은 생전 모습을 청동으로 조각한 뒤 금박을 입힌 것이라고 한다. 시신은 계성전 지하 14미터에 안치되어 있다.


후에성

옛 이름은 푸쑤언(Ph? Xu?n, 富春)이다. 이전부터 응우옌 가문의 주 본거지였고, 1802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완조)의 수도였다. 프랑스의 식민지배 시기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중부(안남)의 수도였고[2] 이전에 수도 기능을 하던 구시가지 외에 신시가지가 생겨나는 등 발전했다.

베트남 공화국 시대에는 직할시이자 베트남 군사분계선에서 고작 100km 떨어져 있는 최북단 접경도시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MACV(주월미군사령부)와 남베트남군의 1사단 본부가 위치한 곳이었고, 1968년 구정 공세 때는 베트콩과 월맹군이 1개월간이나 시를 장악하여 저항했다. 주로 전투는 북쪽의 왕궁이 있는 구시가지에서 진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남베트남의 학자, 지식인, 정치인, 공무원을 포함한 민간인들이 살해당했으며 미군이 시내 대부분을 탈환했을 때에도 겹겹으로 방어선을 만들면서 결사항전했기에 미 해군의 함포사격까지 동원해야 했다. 이때의 함포사격으로 황제가 머물던 서양식 궁전 건중루를 비롯한 후에 왕궁의 여러 건물들이 파괴되었고 90년대부터 베트남 정부에서 복원 공사를 진행 중에 있다. 결국 미 해병대의 치열한 혈전을 치른 끝에 월맹군이 물러나게 되고 1973년 이후 미군이 철수하고 남베트님과의 휴전협정이 파기되면서 북베트남이 다시 점령하게 된다. 이 후에 전투는 풀 메탈 재킷의 후반부와 라이징 스톰 2: 베트남의 'Hue City' 맵,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의 망명자(The Defector)미션에서 다루고 있다.다만 블랙옵스에서는 1972년의 춘계 대공세에서야 나와야할 59식 전차(T-54)가 대놓고 나오며 90년대에서야 쓰인 드래곤 브레스탄이 나오는등 시간을 달리는 무기들이 나와 고증오류쪽으로는 욕을 좀 먹었다.


시내는 흐엉강(S?ng H??ng 또는 H??ng Giang/香江/Perfume River)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펼쳐져 있으며, 서울처럼 북쪽이 구시가, 남쪽이 신시가이다. 구시가를 이루는 후에 성(Kinh th?nh Hu?, 京城化)은 바둑판처럼 구획되어 있으며, 후에 성 안의 후에 황궁(Ho?ng th?nh Hu?, 皇城化)과 더불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그 외에도 많은 역사적 기념물과 건축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인구는 약 34만 명이다.

왕궁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보니 외국인 관광객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다만 베트남 전쟁 때 여기가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최전방이었기 때문에 미군의 폭격에 의해 후에 왕궁은 많은 피해를 입어 소실된 부분이 많다. 다만 마지막 황제였던 바오다이가 20세기 중반 가까이 이곳에서 황제로서 살았다는 것을 보았을때, 조금은 의외.... 후에에서 베트남 전통 왕실건축을 보고 싶다면 황궁보다는 응우옌 왕조의 4대 황제인 뜨득 황제의 능을 구경하길 바란다. 보존이 잘되어 있으며, 뜨득 황제가 직접 건설을 지휘하고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웅장한 사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가장 인근 대도시라고 할수 있는 다낭(100km정도 거리)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다낭은 남부의 호치민 시와 비슷한 느낌이 나고..도시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후에는 수도인 북부 하노이의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감성이 물씬 풍겨난다.

삼국지에도 등장하는 도시후한 최남단인 일남(日南)군 일대에 속했다. 교주 소속.

폴란드볼에선 브라질공하고 엮인다. 브라질공의 웃음소리가 후에후에후에후헿!!이기 때문

베트남 사람들에게 '훼'라고 해야 잘 알아듣는다. 후에에 공항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는 직항은 없으며, 다낭으로 갔다가 버스, 기차 등을 이용해 이동하는 경우가 많으며, 하노이나 호치민 관광 후 베트남 국내선을 이용해 이동할 수도 있다. 황궁의 경우 반나절 정도면 왠만큼 둘러볼 수 있으며, 2014년 기준으로 우리 돈 5천 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흐엉강을 따라 보트를 타고 내려가면서, 강 주위에 있는 황릉들과 사원들을 내려서 관람할 수 있으나 오후 5시 정도에 문을 닫는 곳이 있으므로 오전부터 나서야 왠만큼 볼 수 있다. 뜨득 황제의 능의 경우 위에서 기술한 대로 단순한 능을 떠나 생전에 왕의 궁전으로도 기능했기 때문에 여러 시설들이 있는 편이라 관람에 시간이 살짝 걸린다. 티엔 무 사원에는 후에의 상징 중 하나인 7층탑이 있으며, 틱꽝득 스님이 생전에 머무르셨고, 사이공으로 소신공양을 하러 갈 때의 차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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