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적한 시골.
파를 수확하던 인색한 늙은이에게 거지가 다가와서 적선(積善)을 구했다.
인색한 늙은이는 한번도 남을 도와 준 적이 없었다.
이 늙은이는 한푼도 주지 않다가 하도 구걸을 하기에 파 한뿌리를 건네주고 쫒아버렸다.
이 인색한 한 노파가 죽어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모두 불구덩이 속에서 아우성을 치며 괴로워 했다.
그 인색한 노파에게도 수호천사가 있었는데 그 노파를 구해주고 싶어 하느님께 가서 사정을 했다.
“주님, 저 노파가 인색하게는 살았지만 그래도 좋은 일을 조금이라도 하지 않았을가요?"
그러자 하느님은 그 수호천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 그러면 저 노파가 생전에 착한 일 한 것을 찾아 보거라.
하나라도 찾는다면 그 선행으로 저 노파를 지옥 불의 형벌에서 그를 구해 주어라."
수호천사는 지옥불의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는 그 노파에게로 갔다.
“여인이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다. 생전에 착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보라.”
노파가 아무리 기억해 봐도 생전에 남에게 베푼 일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없어요...”
풀 죽은 모습으로 대답하던 노파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듯 큰 소리로 말했다.
“아! 있어요!! 있어!! 옛날에 지나가는 거지에게 파 한 뿌리를 거저 준 적이 있어요."
수호천사는 하느님께 생전에 노파가 거지에게 파 한 뿌리를 동냥해준 적 있었다 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하느님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그 때 거지에게 준 그 파뿌리로 저 노파를 지옥 불에서 건져내 보자.”
수호천사는 그 노파에게 파 한 뿌리를 내려주며 그 파뿌리를 잡고 올라 오게 하였다.
노파는 그 파 뿌리를 잡고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지옥 불에 빠져 고통받던 다른 사람들이 노파가 파뿌리를 잡고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달려들어 위로 올라가는 노파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의 무게 때문에 파가 끊어질 것을 염려한 노파는 소리 소리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놓아라, 이 나쁜놈들아!! 이건 내 파야. 너희들께 아니란 말야. 빨리 놔!!”
그렇게 심하게 발버둥을 치자 노파가 쥐고 있던 파 뿌리는 뚝!! 하며 중간이 끊어져 버렸다.
노파를 잘라진 파뿌리를 움켜쥔채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옛날 국민학교 도덕(道德)책에 있던 이야기 일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 뭔가 개운치 않았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이야기는
"도스토옙스키"(Dostoyevsky)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에 나오는 이야기 였다.
성년이 되고 나서도 저 이야기는 내게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조물주는 과연 저 노파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파 한뿌리에 매달렸을 때 저 노파는 어떻게 행동을 해야 주물주의 마음에 들었을까?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어느 날 아침.
부처님이 극락에 있는 연못가를 혼자 산책을 하고 있었다.
연못 안에는 하얀 연꽃이 가득 피어 있었고,
가운데의 금색의 꽃심에서는 은은한 향이 사방으로 흘러 넘치고 있었다.
부처님은 그 연못가에서 문득 수면에 덮고있는 연잎 사이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극락의 연못 아래는 바로 지옥이어서 수정처럼 맑은 물을 통해서
처참한 지옥의 광경이 마치 확대경으로 들여다 보듯 뚜렷하게 보였다.
그 지옥의 밑바닥에 "칸다타"(かんだた)라는 남자가 다른 죄인과 함께 괴로워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칸다타"는 사람을 죽이고 집에 불을 붙이는 둥 여러 가지 악행을 일삼은 대 도적이었지만
그래도 단 하나 좋은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칸다타"가 남의 물건을 훔쳐메고 나무숲 속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거미 한 마리가 발아래에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순간 "칸다타"는 깜작 놀라 자신도 모르게 디딛던 발을 옆으로 옮겼다.
결과적으로 그 거미를 죽이지 않고 살려 준 것이였다.
부처님은 이 "칸다타"가 거미를 살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내었다.
그래서 그 보답으로 이 사나이를 지옥에서 살려 내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마침 곁에는 연잎 위에서 극락의 거미 한 마리가 아름다운 은색의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부처님은 그 거미실을 가만히 손으로 거두어 연잎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지옥의 밑바닥으로 내렸다.
불지옥에서 괴로워 하던 "칸다타"는 하늘로부터 은색의 거미줄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칸다타"는 그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기뻐하였다.
그 실에 매달려서 끝까지 올라가면 지옥으로부터 빠져 나갈 수 것임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칸다타"는 그 거미줄을 꽉 잡고 열심히 위로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오르던 "칸다타"는 힘이 들어 잠깐 쉬며 아득히 눈밑을 내려다 보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었던 "불의 연못"은 한참 저 아래에 작게 보였다.
그리고 무서운 "바늘산"도 발 밑 저 아래에 아주 작은 물건처럼 보였다.
"칸다타"는 양손을 거미줄로 묶은 채 지옥을 내려다 보며 좋아서 웃어댔다.
그런데 자세히 내려다 보니 거미줄의 밑쪽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거미줄을 잡고 올라 오는 것이였다.
"칸다타"는 이것을 보고 겁이 덜컥 났다.
놀라고 무서워서 잠시 그저 바보같은 큰 입을 열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자신 한명만 매달려도 위태로운 가늘고 가는 거미줄이지 않는가.
저렇게 많은 사람이 매달리면 그 무게를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까?
거미줄이 끊어져 버린다면 여기까지 올라온 나도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겠는가.
빨리 어떻게 조치를 안하면 거미줄은 끊어 질 것이 틀림없었다.
"칸다타"는 거미줄을 단단히 잡고 흔들면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이놈들아 이 거미줄은 나를 위한거야. 너희들은 이 거미줄과 아무 상관이 없잖아. 내려 가. 빨리 내려 가."
그 순간이였다.
지금까지 견디고 있던 거미줄이 위에서 부터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
"칸다타" 역시 바람을 일으키며 뱅글뱅글 돌며 어둠의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쳐 버리고 말았다.
연잎 끝에는 극락의 거미줄이 가늘게 빛나며,
달도 별도 없는 지옥의 하늘에 짧게 드리워져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아쿠타가와 료노스케" (芥川龍之介)라는 사람의 "거미줄"(蜘蛛の糸) 이라는 이야기다.
"파 한뿌리"가 "거미줄"로 바뀌었을 뿐 그 내용과 결과는 모두 같았다.
신(神)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저 불지옥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남에게 양보를 해야 할까?
이것은 위기상황에서 남을 도와주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절대 절명의 최악의 상황에서 유일한 탈출구를 남에게 양보할수 있을까?
또 그렇게 양보해야만 할까?
애초에 그런 심성을 가지고 살았다면 아마도 지옥에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옥의 그 불구덩이속에서 괴로워 하는 사이에 살아 온 삶을 반성할 여유가 있을까?
70이 넘은 내게 아직도 풀지못하는 수수께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