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흔들리는 초상
황주석 제2시집
여는 글 / 황주석 … 4
구도에 이르는 되새김질과 자아 성찰 / 심종숙 … 7
제1부 빛과 어둠은 사랑이다
치유 / 24
일심一心 / 25
운명의 운율 / 26
빛과 어둠은 사랑이다 / 27
삶의 물음표 / 28
밀주 / 30
삭풍 / 31
물의 추억 / 32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33
생동의 봄 / 34
문자 피싱 / 36
AI의 동행 / 38
핏줄의 여명 / 39
꿈과 현실 사이 / 40
홍수련紅水蓮 / 41
술의 찬가 / 42
광고의 욕망 / 43
혹독한 인생 독백 / 44
삶 / 46
제2부 잎새야 새처럼 날아라
가을 단상 / 48
능소화 / 49
생일 / 50
잎새야 새처럼 날아라 / 51
한 번 더 피는 꽃 / 52
찔레꽃 피는 길 / 53
내리사랑 / 54
가을이 커가는 소리 / 55
가을 맛 / 56
사랑꾼 / 57
깊은 밤, 연민 / 58
세월아, 아느냐? / 59
짝사랑 / 60
가을은 가고 / 61
야속하니 보고 싶다 / 62
사랑의 간극間極 / 63
아버지, 어머니 또 만나요 / 64
내 부모 별나라 가신 후 / 65
꿈속의 사유 / 66
사랑아 사랑아 / 67
가을, 그대가 떠나도 / 68
누옥연가陋屋戀歌 / 69
환상 아닌, 사랑이야 / 70
꽃들의 노래 / 71
미친 사랑 / 72
이슬꽃 피는 밤 / 74
제3부 흔들리는 초상
인류의 치부, 쓰레기장 / 76
시각의 차 / 77
적응 / 78
신호등 / 79
다시, 한 번만 / 80
흔들리는 초상 / 81
순응하는 아픔 / 82
가위바위보 / 83
행복의 부호 / 84
5% / 85
오늘 / 86
시민의 지팡이 / 87
별을 치는 심산유곡 / 88
은둔자, 얼음가시 바람 / 89
한가위 / 90
어둠에 피는 무지개 / 91
불타는 단풍 / 92
생명의 부호, 씨앗 / 93
유전자 코드 / 94
거친 고독 / 95
기다리는 정조貞操 / 96
빛들의 광란 / 97
포용의 시대 / 98
천하장사 가족 / 99
둥지 / 100
제4부 세월아 청춘아 더디 가자
원점 / 102
노을의 회한 / 103
세월아 청춘아 더디 가자 / 105
진실을 말해요 / 106
최고의 날 / 107
어차피 인생이란 / 108
안녕安寜 / 109
마음의 힘 / 110
춘화지교春花之交 / 111
철든 진갑 / 112
욕실 풍경 / 113
아버지와 아들 / 114
풍요의 계절, 가을 / 115
하루 동안에 / 116
혼자는 외로워 / 117
얼과 정체성 / 118
아프다오 / 120
전역하던 날 / 121
그녀의 낌새 / 122
수선화 / 123
청춘 / 124
풍경 /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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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개>
프로필
황주석 제2시집
아호 :진여眞如
연합TV시문학 자문위원 단장
기독교 장로회 목사
선진문학창작대학 수료
시와수상문학작가회 회원
대지문학작가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서울종로 문인협회원 회원
문예세상 시, 수필 연재
연합경제TV 시. 수필 연재
청소년신문 문학산책 연재
새한일보 문학산책 연재
대한민국지식포럼 시인대학 수료
(사)문학그룹샘문 이사
(사)샘문학(구, 샘터문학) 이사
(사)샘문그룹문인협회 이사
(사)한용운문학 편집위원
(주)한국문학 편집위원
(사)도서출판샘문(샘문시선) 회원
이정록문학관 회원
<수상>
한용운문학상(중견, 수필)
선진문학 시 등단
현대시편 동시 등단
문학과 예술 수필 등단
문예세상 시, 평론 등단
대한민국자랑스런시문학공헌대상(7회)
세종대왕문학상
IWS방송문화예술대상
대지문학 죄우수상
김우종작품상
<표창>
실내건축 공헌부문상
(국회의원 홍문표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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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봄이 온다는 것은 참 아름답습니다. 철없는 새싹이 돋아 커 가면서 벌과 나비를 사귀고 바람과 삼각관계를 이루어 만물을 애태우는 꽃으로 피어납니다. 수없이 흔들리며 결국엔 열매를 맺습니다. 종자의 유전자를 바람에 실어서 온 산천에 흩뿌리며 온전히 비워 버린 가벼운 수풀이 되어 또 한 번 대지를 살찌웁니다.
식물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으나 최소한 저에게 만큼은 좋은 스승입니다. 시를 짓는 이가 시인이요. 시는 현실을 벗어나서도 충분히 숨을 쉽니다. 식물과 대화하고 동물의 아픔을 읽을 수가 있으며 신과 함께 세상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진솔하고 순수의 영혼을 그나마 좀 더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저는 문학인으로써 요즘 문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신문학헌장문”을 접하며 다짐을 해봅니다. 헌장문 일부를 인용해봅니다.
“사람이 되어서 시인이 되자. 문학이 인간에게 어떤 역활을 하는지 또한 주는 감동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작품을 출산하고 매체를 통해서 보여주고 이를 인간이 향유할 때 비로소 본질을 찾을 수가 있다”라고 지율 이정록 교수는 신헌장문을 지어 공표하였습니다.
꿈속에서 꿈을 꿉니다. 현실에서도 꿈을 꿉니다. 꿈이 꿈일까요? 현실도 꿈일까요? 꿈을 꾼 사람과 꿈을 기억해서 생각하는 이는 같은 사람입니다. 60이 넘은 나이에 사고의 깊이를 갖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아도 힘을 얻을 대상이 있었습니다. 회갑이 지나고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 역대 박정희 대통령님과 노무현 대통령님의 훌륭하심을 본 받으심이 마땅하다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부모님의 훌륭하신 인격은 저와 자식들에게 살아 숨쉬고 계십니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나를 찾아 삼라만상을 성찰하고 삶을 회상하며 애별리고의 아픔을 눈물로 달래어 우울증 마저 잊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바뀌게 되니 삶의 모든 것이 숨쉬는 것에서부터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동 변환이 되었지요. 마음은 기적을 만들어 주는 놀라운 일도 선물하였고 마음의 부자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행복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언어의 씨앗을 함께 뿌리며 문장의 뜨락을 꾸미고 있지요. 인생의 봄날은 마음을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음에 말을 걸 때마다 꽃잎은 미소를 지으며 속내를 향긋이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운명이란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10여 년의 세월 속에서 부모님과 형제의 애별리고 슬픔에 빠져 죽어가다가 겨우 이렇게 회생하였습니다.
추억 속에 그때 그 순간에 사랑을 덮어 드리고 작가로 믿음 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훗날에 제가 세상에 잊혀져 가더라도 나의 동반자와 자식들과 약한 자와 보편적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민초들은 나처럼 아프고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을 여기에 부족한 글로나마 남겨서 위로를 드려봅니다. 이제부터는 멋짐의 모범이 되고자 합니다.
끝으로 본 시집이 출간되기까지 영감을 주시고 지도편달을 해주시고 감수를 해주신 샘문시선 이정록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 지인, 저를 아시는 모든 문인 여러분께도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늘 긍정의 마인드로 즐겁고 행복하게 사시고 건강하시라는 말씀 올립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2023. 12. 24.
눈 쌓이는 새벽 서재에서
眞如 황주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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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설>
구도에 이르는 되새김질과 자아 성찰
- 심종숙(시인, 교수,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황주석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흔들리는 초상은 제1부 빛과 어둠은 사랑이다, 제2부 잎새야 새처럼 날아라, 제3부 사랑의 간극, 제4부 사랑아 사랑아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에게 삶이란 사랑을 이루어 가는 과정인 것 같다. 그러기에 시인의 시편들은 기다림, 고독, 그리움, 꿈과 현실 사이, 세상과 자아와의 길항 등이 주조를 이룬다. 사랑은 남녀 간의 에로스의 사랑, 관계적인 필리아의 사랑, 헌신적인 아가페의 사랑이 있다. 시인은 보통의 한국 사회의 남성들이 겪는 경험들에서 이러한 다양한 유의 사랑을 경험하는 가운데 그의 시를 생출하고 있다.
시인에 의하면 사랑은 빛으로도 어둠으로도 드러낼 수 있는 그 무엇이라고 한다. 사랑은 빛과 어둠의 양면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시인은 인식하는 듯하다. 이 의미는 사랑이 빛만의 세게도 아니고 어둠만의 세계도 아니며 양자를 포함하는 세계라는 걸 말한다.
사랑은 존재적이면서도 실천적인 행동이다. 시인은 이 사회에서 부딪쳤던 현실에서 어둠을 직면하고 빛으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어둠이 어둠만으로 있지 않고 옮겨가서 빛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사랑의 여정이라는 것을 시인은 시편들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비움으로만이 얻어진다는 것을 시인은 깨달은 듯하다. 무욕과 비움은 「누옥연가」에서 보여준바 다시 사랑의 표상인 시인의 오래된 집으로 향한다. 욕망이 강할 때 집은 멀어지고 사람들과도 이해관계나 비끄러짐으로 인해 상처받기도 하였으나 욕망을 비우고 무욕에 들어가고자 할 때 모든 존재와는 비끄러지지 않고 화해와 자비심의 도량이 생겨나고 그 마음은 오래된 누옥에 자신의 몸을 누인다.
황주석 시인의 흔들리는 초상은 그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흔들리는 자아상을 바라보는 시인은 내면을 응시하면서 고요히 지켜봐 온 결과 그 결실을 시로 생출하게 되었다. 존재가 지니는 근원적인 고독은 존재가 지니는 불완전성에서 오기 때문에 시인은 이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충만 된 꿈과 희망을 찾고자 하는데 그것은 현실의 결핍을 메우려는 처절한 몸짓이며 일생을 통하여 행해져 온 것임을 그의 시는 보여주고 있다. 일심으로 그것을 추구하는 시인은 그 과정에서 불화했던 존재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상처를 시로 표현하고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치유하고 있다. 존재의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이동하는 시인의 자아는 항구하게 운동하고 있다. 변화 속에서 이어지는 시의 집은 계속하여 만들어지고 비워진 영혼은 가벼워지고 있다. 그에게 고독의 짐이 가져다준 결실은 무엇인가 하면 언어의 집이다. 그는 그만큼 자신의 마음을 단속하여 인내와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있고자 하였다.
나의 마음
내 안에서 착하게
바깥세상 튀어나와
보고 알고 듣고 알고
멋대로 돌아칠까
염려되오
나의 사랑
내 속에서 참된 사랑
넓은 세상 몰래 나와
자유롭게 쏘다니다
진실함을 잊을까
걱정되오
나의 마음
나의 사랑
속에 모습 밖에 모습
언제까지 한결같이
언제 봐도 하나같이
한마음으로 살아가리
「일심 一心」 전문
시인은 시를 쓰면서 어떻게 마음을 지켜온 것일까? 시인은 자기 멋대로 방만해지거나 아집과 아만심을 휘두를까, 걱정이고 자유롭게 쏘다니다 진실함을 잊을까 걱정이다. 또 안과 밖이 언제나 한결같이 한마음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만용은 자만심이 극대화되어 생기는 심리적 현상이다. 자기를 남보다 못하게 여기는 마음은 겸손이고 겸허이다. 이는 만용과 반대이다. 세상에 묻혀 살다가 진실함을 잊어버리고 기만과 위선의 가면을 쓰게 될까봐 걱정이다. 진실함 앞에서는 자기기만의 가면을 벗게 된다. 스스로 기만에 빠져 끝없이 거짓과 위선, 변명과 허위, 허영과 허세에 물드는 것을 시인은 경계한다. 참다운 존재에 닿으려면 진실한 존재일 때 그것이 가능하다. 자기기만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실과 함께한 용감한 사람이다. 그리고 안과 바깥은 모습이 혼연일체가 되고 언제나 한결같은 한마음으로 살아가고자 시인은 다짐한다.
이 시는 3연으로 구성되어 있고 표리부동한 삶의 자세를 견지하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을 담은 시로서 시인의 의지를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삭풍」에는 삶의 돌부리나 복병을 겨울의 매서운 바람에 비유하여 시인은 긴 인생길에서 삭풍과 같은 현실, 시인을 울게 하거나 상처 나게 했던 삶을 성찰하였다.
우리 집 창문 틈에
그가 숨어있다네
이불 가린 틈 사이로
비밀 전사처럼 찾아오네
차갑고 음산한 기운이
우리 집 창틈에 숨어있다네
가을바람 단풍 바람은
붉게 물들어서 보이지만
비밀스러운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떠도네
때로는 정체를 드러내기도 하는
하얀 눈보라 휘몰아오는
흰 유령 같은 칼바람
칠흑 속에서 옷을 벗기는 칼 치는 소리
나목들이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
겨울밤 유령의 소리
「삭풍」 전문
이 시에서 「삭풍」은 그, 비밀 전사, 유령으로 비유하여 집을 공격하는 대상이다. 집은 그에게 안온함과 사랑, 추억을 간직하고 자신을 성장하게 해준 거처였다. 이 집을 노략질하는 삭풍은 시인에게 집이 주는 평화와 사랑을 방해하는 어떤 것이다.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하면서 간난신고를 겪어온 시인은 더욱 이 평화와 사랑이 머문 집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 시는 시인의 심리상태를 잘 나타내어 주며 시인은 집을 지키기 위해서 일생을 바쳐온 삶을 투영하고 있다.
추억이 흔들린다
잔잔하던 물결 속에
파동이 일어 멀미 하나 보다
부모님과 함께하던 순간
넘쳐 넘쳐서 사라지네
낙엽이 바람 잃어버리고 떠내려가듯
힘없이 멀어져만 간다
보내기 싫은 모습
아쉬움과 안타까움, 가득히 남긴 채
동화책 속에 주인공들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억 속으로
깨끗이 비워지려 하네
보고 싶을수록 점점 더 멀어져
놓아주기 싫은데
잡으려 하면 할수록 흔들리네
나마저 추억에 업힌 채로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세월 속 티끌처럼 생각조차 잊어버릴까?
「흔들리는 초상」 전문
시집의 제목이자 주제 詩인 「흔들리는 초상」에서, 시인은 자신 삶의 경험을 되새김질하는 과정에서 조부모, 부모와 함께했던 가족사를 되돌아보면서 흔들리는 자아의 초상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는 “추억이 흔들린다”라고 하는 것이다. 흔들리기에 파동이 일어 멀미하나 보다고 생각하였다. 가족사를 되새김질해 보면 누구나 시인이 느끼는 이런 감정들이 일어나곤 한다. 그러나 그 가족은 나의 집이고 유년이며 아련하고 슬플 수도, 그리울 수도 있으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바라볼수록 덧칠되고 있는 자신의 흔들리는 초상이다. 집은 곧 둥지이며 집에 관한 시편들로는 「유전자 코드」, 「아버지와 아들」, 「천하장사 가족」, 「전역하던 날」, 「누옥」, 「내 부모 가신 후」 등이다. 「둥지」에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집이 교회당이나 사원과 같은 영의 집으로 확장되고 있다. 집이나 교회당과 같은 둥지에 인간들은 모여서 불을 밝히거나 죄지은 인간들이 무슨 일을 더 하려고 욕망한다고 시인은 비판한다.
햇빛 달빛 별빛을 가려서
깜빡이며 불 밝히는 공간
하늘을 가려 땅을 가려
비바람을 막으니 집이다
타인의 영혼을 만나보는 곳
하나님을 만나서 찬양의
기도를 드리는 교회당
하늘과 지구 왜 가릴까!
이렇게도 보기 좋은데
죄지은 인간들은 또
무슨 일을 더 하려나 보다
「둥지」 전문
이 시에서 집이나 둥지는 비바람, 더위와 추위,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붕을 만들지만 시인에게 지붕은 하늘과 지구를 가리는 것에 지나지 않고 그렇게 가려놓고 인간들은 무슨 죄를 지으려는가 추정하고 있다. 부모가 만들어 준 평화와 사랑의 장막인 집, 그리고 성장하여, 한 사랑의 여인과 집을 만들고 가장이 된 그는 이 집을 지키기 위하여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혼신을 다해 온 것이다. 이 시 한 편으로도 시인 황주석이 지키고 잃지 않으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또 그 집에는 그 옛날 당국의 심한 통제로 삶의 애환을 풀어주는 농주나 정월이나 보름에 기운을 복돋워 주고 잔칫날에 흥을 돋워 주었던 술도 몰래 빚었던 추억을 소환한다.
먹다 남은 식은 밥
먹지 못하는 밥
버리면은 죄를 받는다며
누룩곰팡이 거미줄로 동여 감아
아랫목 구들장에 목화솜 이불 덮어
버섯꽃을 활짝 피웠지
기다리는 세월 더디게도 갔지만
흐르는 세월에 바람처럼 물처럼
부글부글 소리 내어 통곡하더라
상큼한 술내 즐거운 향
한방이 가득 찰 때 사카린 퐁당 던져 넣고
새끼손가락으로 맛을 보시면
눈웃음 속에서 주름꽃이 피셨지
할매가 건네주신
박 바가지 품에서 요요히 유혹하는 그녀와
한바탕 질탕하게 입맞춤을 하고 나면
족히 한나절 몽롱했었지
「밀주」 전문
술은 우리네 이웃들에게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하고 흉금을 털어놓게도 하며 잔치에 흥을 돋워 주고 농사철에는 농부들의 수고를 위로해 주었다. 이 시는 시를 표현하는 솜씨를 잘 보여주는 시편이라고 생각한다. “기다리는 세월 더디게도 갔지만/흐르는 세월에 바람처럼 물처럼/부글부글 소리 내어 통곡하더라”는 가난한 이웃들이 해마다 수확 철의 희망을 안고 어려움을 견디는 농번기의 고난을 노래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그 속에서 뜻대로 안 되어 어려웠던 때의 마음을 술이 익어가는 변화에 비유하였다.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소리 내어 통곡함으로써 마음의 고통을 승화시키듯이 술은 익으면서 승화된다. 고통의 나날을 위로하고 달래주며 이웃끼리 닫았던 마음을 열어주어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게 하는 묘약 같은 술은 시인에게 “유혹하는 그녀”로 한바탕 사랑의 입맞춤을 하고 몽롱한 환희에 젖게 하는 여인이 되었다. 밥 → 누룩곰팡이, 버섯꽃 → 술 → 여인으로 변화하는 시상의 전개는 읽는 이로 하여금 밀주를 담아 먹던 술 익는 마을의 농촌을 생각하게 한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집 집마다 밀주를 담아 이웃들과 나누어 먹고 삶의 어려움을 극복했던 우리네 이웃 공동체가 시인은 그리운 것이다.
이 시는 그 시절로 우리들을 데려간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에 삭막해지고 자본주의의 전횡이 가져온 물신 만연의 풍조가 인간성 상실을 가져오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시대에 시인은 공동체를 소환하려 하였다. 술 익는 마을의 정겨움은 우리가 잃었던 소중한 것이 있었던 시절이었고 시인은 그것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가난하였지만 이웃과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공동체에서 자랐던 생명감은 바로 사랑이었다.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 곳이다. 마지막 연에 보여주는 이성 간의 에로스적 애로티시즘은 시인이 표현하는 생의 청춘이나 환희이다. 인간이 성숙하여, 한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되어 이루는 집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전형에서 인간의 생명과 탄생으로 확장된다. 이런 유의 시편은 「능소화」, 「홍수련紅水蓮」, 「수선화」, 「누옥연가」 등의 계열이며 시인의 시선이 꽃에 집중되는 이유는 꽃이 여성, 생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빗물에 갇힌 늪에 참된
물만 삼키고
개구리밥 먹고사는
연못 속에 유일한 물의 꽃
황토물 수없이 되새김질
물 맑은 호숫가에
여름 하늘 연잎 가득한
그림자 바람결에 수줍어라
깨끗한 핏물 취하고
곧은 핏줄 맥 따라
피어나는 홍수련,
연못녀를 사랑하는 윤슬
깊은 산속 응달 저수지에
연잎에 그렁그렁한 물방울
꽃구경 몰려와 미끄럼 탄다
「홍수련紅水蓮」 전문
이 시에서는 연못의 물을 먹고 자란 청초한 홍수련과 연못의 물결, 물방울은 홍수련을 사랑하는 사물들이다. 연꽃이 고여있는 연못의 더러운 물을 먹고 자라도 청초한 꽃을 피우듯이 세상의 오탁 속에서도 “황토물 수없이 되새김질”하고 “참된 물”로 걸러서 먹고 자란 홍수련꽃에서 시인은 인간이 도달해야 할 이상을 감득한 것 같다. “깨끗한 핏물 취하고/ 곧은 핏줄 맥 따라/피어나는 홍수련”으로 상찬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붉은 연꽃은 불교적으로 만다라화로 흰 연꽃인 만수 사화와 더불어 부처가 법을 설파할 때 내리는 법우法雨였다. 법우는 곧 부처의 자비이다. 황토물을 되새김질하는 홍수련은 곧 시인이 시를 추구하는 길의 모습을 비유하였다. 시의 도라 하지 않았던가! 시를 쓰면서 자신의 인격을 도야해 나가는 길, 무상도無上道에 이르는 길, 선서善逝에 이르는 길은 바로 황토물을 수없이 되새김질하여 참된 물(감로수)을 먹고 피어나는 연꽃처럼 인간이 변화되는 길이다. 즉 해탈과 무아로서 부처가 되는 길이다. 이는 자연의 이치와 불법의 이치에 순응, 즉 따라서 살아가는 것에서 가능해지는 경지이다. “깨끗한 핏물 취하고/ 곧은 핏줄 맥을 따라/ 피어나는 홍수련”은 바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심오하게 수행하는 길이다. 청초하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꽃을 통해 무아 즉 니르바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암유하는 시구절이다. 이로써 영롱해진 시인의 영혼은 「이슬꽃 피는 밤」에서 천상의 이미지들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큰 별 하나 반짝반짝
어두운 밤하늘에
어느새 그려보는
사랑스러운 얼굴
작은 별들 찾아와
은하수 물결 하늘에 수를 놓고
구름 쫓아 흘러가는 별
애타는 마음 그지없어라
빛을 잃은 흰 구름
캄캄한 밤에 밝아오는
새벽하늘 임을 찾아서
영롱한 이슬꽃 물고
별을 그린다
「이슬꽃 피는 밤」 전문
이 詩에서 임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어떤 이상으로 도달코자 하는 대상일 것이다. 새벽하늘에 영롱한 이슬꽃을 물고 임을 찾아 별을 그리는 것이 시인의 이상일까? 임을 찾아가는 데에 영롱한 이슬꽃을 물고 가야 하는 이유는 영롱한 이슬이 그 길의 자량資糧이 되기 때문이다. 완전한 깨끗함, 순수함은 바로 정청의 경지라 했으니 청정함은 곧 높은 덕의 경지이고 임을 찾아갈 때 그 청정함이 임을 찾아갈 수 있게 하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은 지고의 이상으로 그 이상을 동경하고 도달하는 데에 이슬의 청정함이 요구된다. 여기에는 「순응의 아픔」에서도 이미 말했듯이 불법을 따르고 순응하는 것은 지난한 수행의 과정이 동반될 것이 노정 되어 있다. 「풍경」은 이 길을 가고 있는 시인 자신을 산사의 풍경에 비유하고 있는 절창의 시편이 아닐 수 없다.
천만겁의 세월
눈 비바람 맞으며
외지고 황량한 곳
삭아져 가는 낡은 누각
치켜올린 처마 밑에
넋 놓고 매달려
바람 따라 종을 쳐
온 산야에 메아리친다
벗을 수 없는 운명
구곡간장이 녹아내리는
안타까움으로
바람, 한 줌 쥐어 종을 친다
억겁의 세월 지르밟으며
자연의 섭리와 순리를
불립문자에 의지하며
바람 따라 살아서 종 울린다
「풍경」 전문
참다운 도를 구하는 길은 자연의 섭리와 순리에 의지하며 우주의 생명 바람을 따라 살아 울리는 풍경이 보여준다. 이 시는 미적 형상화 면에서나 심오한 불교사상을 담은 면에서나 깊은 세계를 축조하고 있다. 사원의 처마 끝에 달려있는 풍경은 자기로서가 아니라 완전히 자기를 비우고 바람의 힘에 맡겨 울리는 사물이다. 이렇듯 구도하는 인간은 자신을 완전히 비워낼 때 완덕에 이르고 영혼의 집에 이른다. 황주석 시인이 이르고자 하는 세계는 생명이라는 거대한 사랑의 대화합에 세계이다. 여기에서는 만상동귀의 존엄한 생명이 우주를 자재하고 있으며 그 법의 이치에 자신을 순응시킴으로서 도에 이르고자 한다. 그는 바로 그 집을 동경하면서 세밀하게 언어의 집을 끝없는 되새김질과 성찰을 통하여 지어가고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제2시집의 <흔들리는 초상> 출간을 축하드리며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 받으시기 바라며 앞으로 더욱더 정진하셔서 문운 창대하시기를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