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김재산(金在珊) - 민족의 제물이 되어
8. 마산과 양산교회를 개척
1 1957년도 제1차 전도 발령을 받고, 나는 문원양 씨와 함께 마산으로 가게 되었다. 도착 첫날 그의 친척 집에 유숙하기를 청했으나 거절을 당하고, 서로 상의를 해서 밤중에 각각 헤어지게 되었다. 나는 마음이 인도하는 대로 발길을 옮겼다.
2 구마산 어느 뒷길을 걷다가 20세가량의 처녀를 만나 그녀의 집으로 인도되었다. 매우 가난한 집이었다. 끼니를 이을 수 없을 정도였다. 식구가 11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가난한 그 집의 식구들과 더불어 살면서 전도를 했다. 하지만 도무지 전도가 되지 않았다.
3 그런데 하루는 그곳에 박승규 씨가 개척 전도를 나와서 자기네 큰 집이 있는데 그리로 가자고 해서 그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고생을 하면서 전도를 다녔지만 모든 이들이 귀밖으로 들었다. 교회를 찾아가서 말씀을 전하면 처음에는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네 교회에서 말씀을 좀 해 달라고 하면서도, 우리 교회의 말씀이 조금이라도 비치면 어느 교회의 신앙이냐고 다그쳐 묻는 것이었다.
4 하루는 아침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마음으로 가고 싶은 산이 하나 보여졌다. 손에 물도 마르기 전에 산을 향하여 달려갔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고 밭길을 지나서 한 우물이 있는 곳에 이르니 예쁜 여성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산으로 가는 길을 물으면서 말을 걸게 되었다.
5 그녀의 말은 자기는 성덕도를 나가는데 아직 미혼이라고 했다. 성덕도의 경전이 보고 싶다고 하고는 처녀의 인도를 받아 그의 집을 같이 가게 되었다. 딸만 3형제가 있는 집안이었으며 양아들은 철학가라고 했다. 농사를 짓는 집인데 집 안은 양반집 같고 가품이 단정하고 깨끗했다. 그 집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나를 만나기 전에 어떤 몽시를 받은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6 그런데 이상한 꿈을 꾼 것이 있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하얀 옷을 입은 천사가 자기 집에 와서는 자기를 시집보낸다고 하면서 분홍 옷을 입혀주더라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역시 하나님이 역사를 하셨구나 생각하고 나의 처소로 인도하여 박승규 씨를 나의 딸이라고 소개하고는 서로 이야기들을 나누게 했다.
7 나이도 서로 비슷하니까 성덕도와 우리 교회의 이야기들을 하면서 사이가 매우 가까워졌다. 그 처녀는 하루에 한 번씩 찾아와서는 기도도 하고 사람들을 데려오기도 하였다.
8 한번은 한 여고생이 전도가 되어서 왔는데 자기 학교에서 매우 수재로 알려진 학생이었다. 이 학생이 똑똑하니까 주위에 머리 좋은 많은 남녀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희들끼리 모여서 집회를 갖고 하더니 30여 명이 모이게 되었다. 이들이 똑똑한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이들 속에 끼고 싶은 학생들이 점점 더 모여들게 되었다. 이들은 또 학교에서 서로 모여 교실에서 원리말씀도 하고 토론도 했다.
9 이렇게 하여 전학교 안에 소문이 나고, 교회에 나오는 학생들이 70여 명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학교의 선생들과 학부모들 사이가 통일교회 때문에 발칵 뒤집히게 되었다. 부모가 반대하고 선생이 말려도 학생들은 자꾸만 몰려들었다. 나중에는 학교의 교감 선생을 비롯하여 여러 선생들이 통일교회에 무엇이 있기에 학생들이 모여드는가 하고 예배가 있는 날 스스로들 찾아와 보곤 하였다.
10 당시에 이진태 씨가 군대 생활을 하면서 일요일과 수요일에 와서 말씀을 해주곤 했다. 체계를 세워서 원리강의를 하자 많은 학생들이 감명을 받고 모여들었다. 나중에는 유치원 건물로 사용하던 곳에 세로 얻어서 공민학교를 개설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3년 세월이 흘러 교회는 자리를 잡아가고 후임자로 신미식 씨가 오게 되면서, 나는 또 양산교회로 개척을 나가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의 마산 시절에 결혼을 하셨다.
11 양산에서는 읍내에 방을 하나 얻어서 교회를 시작했다. 여기에서도 교회를 세우고 약 3년을 지나게 되었다. 한 포기 한 포기 심어놓으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직접 거두심을 날이 갈수록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또 하늘은 자꾸만 서울로 가라는 역사를 하여 나는 서울로 옮기게 되었다.
첫댓글 하늘부모님 천지인 참부모님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