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평상심이 도니라.
조주선사(趙州禪師)가 마조선사(馬祖禪)께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如何是道) 마조선사가 답(答)하시길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니라. 또한, 향하여 나가는 것을, 필요합니(師云還假趣向不)까? 남전선사가 말씀 하시기를 향하여 나가고자 하면 곧 어긋나니(泉云擬向卽乖)라.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도를 압니까?(師云 不擬 如何知是道) 남전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도란 알고 알지 못하는 것에, 속해 있지 아니하니(泉云 道不屬知不知) 안다는 것은 잘못된 깨달음이요,( 知是妄覺) 알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라(不知是無記) 만약 향하여 나아가지 않는 도를 통달하면(若是眞達不擬之道) 마치 저 허공과 같아서(猶如太虛) 시원하게 텅 비어있나니(廓然虛豁) 어찌 가히 구태어 시비하겠느(豈可强是非耶)냐? 조주선사가 이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았(師於言下大悟)다. 조주선사는 마조선사의 평상심이 도라는 법문을 듣고 바로 깨달았다. 마조선사의 법을 이는 조주선사는 그래서 가풍이 평상심이 도라는 가풍선풍(家風禪風)을 일으켰다. 밥 먹었으면 밥그릇 씻어라. 가 조주 도이다. 목마르면 끽다거(喫茶去)가 조주선사의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다. 평상 일상을 떠나서 따로 도를 찾지 말라, 이다. 도(道)라는 것은 인위조작(人爲造作)이 없는 마음이란 뜻이다. 삼조승찬(三祖僧璨) 대사는 신심명(信心銘) 첫 구절(句節)에서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至道無難)다. 오직 간택(揀擇)을 꺼릴 뿐이라,(唯嫌揀擇)했다. 여기서 간택(揀擇)은 취사선택(取捨選擇)을 말한다. 인위적(人爲的)으로 밉다, 곱다, 좋다, 싫다, 나누고 따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분별(分別)하고 따지는 마음은 평상심(平常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평상심은 확고부동(確固不動)한 참된 마음 진여심(眞如心)을 말한다. 조작(造作)이 없고, 시비(是非)가 없고, 취(取)하고 버리(捨)는 것도 없고 단멸(斷滅)도 영원(常)함도 없고, 범부(凡夫)다 부처(聖)다, 하는 마음도 없는 것이 평상심(平常心)이다. 마조선사가 평상심도에 대하여 법문을 아주 자세하게 말씀하셨다. 도는 수행을 하지 않는다. 다만 염오(染汚) 되지만 않으면 된다. 무엇을 염오(染汚)라 하는가? 생사심(生死心)이 있어서 조작하여 나아가는 것이 모두 염오(染汚)다. 만약 곧, 바로 도를 알고자 한다면 평상심이 도이다. 무엇을 평상심이라 하는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가 없고 단상이 없고 범부와 성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기를 범부의 행동도 아니며 성현의 행동도 아닌 것이, 보살의 행이니라, 라고 하였다,(祖云 道不用修 但莫染汚 何爲染汚 但有生死心 造作趣向 皆是染汚 若欲直會其道 平常心是道 何謂平常心 無造作 無是非 無取捨 無斷常 無凡聖 故 經云 非凡夫行 非聖賢行 是菩薩行) 마조선사의 평상심도는 유위(有爲) 무위(無爲)에도 머물지 말라는 말씀이다. 평상심(平常心)이 즉불즉심(卽佛卽心)으로 이어지는 여여(如如)한 마음의 작용이다. 중국 조사선(祖師禪)의 특징(特徵)이고, 생활선(生活禪) 생활불교(生活佛敎)의 극치(極致)라 할 수 있다. 중국 조사선(祖師禪)은 화엄경(華嚴經)의 성기(性起) 사상(思想)을 기반(基盤)한 성종(性宗) 사상(思想)이다. 성종(性宗)은 즉심즉불(卽心卽佛) 사상(思想)으로 일체개진(一切皆眞)이다. 삼라만상 모든 것이, 다 참(眞) 이고, 진리(眞理) 진여(眞如)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 이대로가 불성작용(佛性作用)의 현창(顯彰)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