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김 준 선
반딧불이는 어두워지면 풀숲에서 꽁무니에 불을 켜고 날아다니던 신비롭고 친근한 정서적인 곤충이다. 잡으려고 발돋움을 하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잘 잡히지 않고 작은 나의키를 훌쩍 넘어 날아가 버리곤 했다. 옛날 공해가 없던 내 어린 시절에는 흔하게 볼 수있었던 곤충이지만 지금은 농약이나 공해 등 환경오염 때문에 보기 힘든 곤충이 되어버려서 아련히 추억으로 남아있는 곤충이기도하다. 1982년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되었고 2002년에 재 지정되기도 했다. 그들도 귀하고 소중한 우리가 지켜 주어야할 작은 존재들이다.1997년부터 전북 무주군에서는 반딧불이 축제를 해오고 있는데 올해로 25년 차가 되었지만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로 축제가 중단되고 있다. 무주는 공해가 심하지 않고 산이 많아 깨끗한 환경인 것같다.
반딧불이를 개똥벌레나 소똥벌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야행성인 그들의 밤의 화려한 변신과 달리 낮에는 개똥이나 소똥 속에 숨어있기도 해서 붙여진 또 다른 낯선 얼굴과 이름이다.
밤과 낮의 다른 모습인가. 신비하고 예쁜 모습의 그들이 똥 속에 숨어 있다가 나온다는 게 영 어울리지 않고 색다른 느낌이다. 개똥벌레라는 이름은 들었지만 그것이 반딧불이 인줄은 몰랐는데 이외였다. 믿기지 않아 반딧불이 전문가에게 문의 해보았더니 그렇다고 한다.
밤에 꽁무니에 불을 켜고 날아다니는 신비한 모습과 낮에 똥 속에 숨어있는 모습은 너무 다른 두 얼굴의 곤충이다. 힘이 없는 그들은 똥 속에 몸을 숨기는 것이 가장 안전한 은신처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낸 삶의 지혜다. 사람들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소똥개똥이 반딧불이가 느끼기에는 좀 다를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켜고 다니는 불이 더럽다고 생각되지는 않다. 정서적이고 예쁘고 신비스러운 곤충이라는 선입견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딧불이의 일생은 알 –애벌레-성충인데 5-6월경에 알로 태어난다. 알에서 애벌레로 깨어나는 기간이20여일이고 애벌레가 되면 본능적으로 물가를 찾아간다. 애벌레일 때는 다슬기 달팽이 등이 주요 먹이 감이고 많이 먹는다. 반딧불이는 육식성곤충이다. 자기 몸보다 큰 다슬기를 날카로운 턱으로 제압해서 먹는다. 다음해 5월까지는 동면에 들어간다.
어두운 땅속에서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다 그렇지만 반딧불이의 짧은 생애도 그 작은 곤충의 치열한 삶이 많이 힘들 것이라 짐작된다.
개체수가 줄어들고 환경이 이들이 살아가기 어려워지자 용인E랜드에서는 20년 전부터 반딧불이를 인공사육 하고 있다. 사육사들은 반딧불이의 일생을 영상에 담아 방송프로에 보여주었다. 6-7월은 산란철이고 알은 육안으로 잘 안보일 정도로 작다. 사육사들이 인공적으로 만든 이끼위에 모래알보다 작은 알을 200_300여개를 산란한다. 알은 20여일 후 검은 점무늬가 생기고 동그란 모습으로 변화한다. 알껍데기를 깨고 애벌레로 나온다. 매일 수많은 반딧불이가 부화되고 있는데 번식과 생존율을 높이고 鍾의 보존을 위해 사육사들은 애벌레 기간 동안 잘 먹여 키운다. 애벌레시절의 반딧불이는 아주 못 생겼다. 반딧불이가 못 생겼다는 게 좀 안 믿어 지기도하다. 성충이 되었을 때와 너무 다른 모습인 것같다. 그 또한 상상했던 반딧불이 와는 다른 모습이다. 예쁘고 순한 곤충 같은데 살아남아야하고 생의 주기에 따라야하는 자연의 법칙을 지켜내며 일생을 마쳐야하기에 그들의 삶에 충실하고 열심히 살다가는 것같다. 몸집이 커져서 더 클 수없게 되었을 때 탈피를 한다. 애벌레의 마지막과정 탈피를 하는 모습은 상당히 고통스러워보였다. 성충이 되기 위한 탈바꿈을 하는 것이다.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는 과정을 용화라 하고 번데기에서 껍질을 깨고 날개 있는 성충으로 변하는 마지막 단계를 우화라고 한다. 사람들도 살아가면서 우화를 꿈꾸기도 한다.
지금의 나를 벗어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고 변화하고 싶은 꿈을 원하고 있지만 사람에게도 우화는 쉽지 않다. 바라고 꿈꾸는데 까지 밖에 못가지만 늘 우화를 소망하고 기다려본다.
반딧불이의 신비로운 꽁무니의 불빛은 몸속의 발광물질을 사용 암컷은 한 개의 마디에서 불빛이 수컷은 두 개의 마디에서 불빛이 나와서 수컷의 불빛이 더 밝고 화려하다.
그들은 불빛으로 교감하면서 서로의 짝을 찾는다. 텔레파시라고 해야 할까.
사람에게도 그런 교감을 하는 불빛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구감소를 줄이고 가장 큰 걱정거리인 결혼걱정을 안 할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반딧불이의 빛은 뜨겁지 않은 차가운 불이다. 반딧불이의 몸속 끝마디에 루시페린이라는 화학물질이 산소와 결합 그것이 불빛이 된다. 반딧불이는 발광패턴이 종류마다 조금씩 다르다. 반딧불이의 성체는 이슬만 먹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성체로 살아가는 기간은 10-15일 정도에 불과하다. 이기간 동안에 불빛을 켜고 다니면서 사랑을 찾고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 그들의 생애에 마지막 과정을 마친 반딧불이는 짧은 생을 마감한다. 짧은 그들의 생애는 끝났지만 알에서 깨어난 그들의 후손들이 또다시 대를 이어나간다. 이 작은 곤충들의 삶의 과정에 감동을 받는다.
자연의 법칙이 정확하고 변함없어 놀랍다. 눈에도 잘 안 보인다는 그 작은 알들이 깨어나서 대를 이어나가는 게 대견하고 경이롭다. 반딧불이는 알이나 애벌레 때도 꽁무니에서 약하게 빛이 난다는데. 어릴 때는 적으로부터의 자기를 지키는 방어수단 이라한다. 애틋하고 신비로운 1년을 인내해온 반딧불이의 일생은 산란을 끝으로 생을 마감한다. 대를 이어놓고 떠난다. 그들의 불빛은 세상의 어떤 빛 보다 정서적이고 경이로운 빛이다
꽁무니에 불을 달고 다니는 것은 그들의 짧은 생애에 가장 빛나는 마지막을 불태우고 그들의種을 이어가는 똑똑한 방법이다. 그래서 찬란하고 아름답다.
오래전 어릴 때 이후 한 번도 반딧불이를 본 일이 없어서 언제가면 반딧불이를 많이 볼 수있냐고 축제 책임자에게 물었더니 6월초에 오라고 한다. 많은 반딧불이 들이 그들 생애의 마지막 활동을 하며 그들의 생애를 화려하게 끝내기 직전이 아닐까싶다.
그들을 직접 한번 만나보고 싶다. 반딧불이를 만나게 되면 옛 고향 속으로 오래전의 그때로 다시 한 번 되돌아가는 시간이 될 것같아서다. 그래서 설렘과 기대로 기다려진다.
반딧불이를 생각하면 螢雪之功(형설지공)의 고사를 떠올린다. 중국 진나라 때 차윤은 등불을 켤 돈이 없어서 명주주머니에다 반딧불이를 모아 담아서 그 불로 책을 읽었다. 또 손강이라는 사람은 불을 밝힐 수 없는 가난 때문에 눈 내린 달밤에 눈이 반사되는 빛으로 책을 읽고 공부를 해서 두 사람은 높은 벼슬에 올랐다고 한다. 실제로 책을 읽을 수있을지 반딧불이 사육사들이 실험을 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불빛으로는 책을 읽을 수 없었고 투명한 그릇에 한꺼번에 200마리정도를 담아 그 밑에 책을 가까이 놓았더니 희미하게나마 글자를 식별할 수가 있었다. 명주주머니에 많이 담겨진 불빛도 아마도 희미하게는 보였을 것도 같다. 두 사람은 반딧불이의 불빛이나 눈빛이 아니더라도 강한 학구열 (學究熱))과 근면과 성실로 성공했으리라 짐작된다. 그 정도의 노력이면 못 이루어낼 일이 없었을 것이다.
반딧불이의 도움으로 공부를 해서 성공했다면 작은 반딧불이가 큰 역할을 해낸 것이다.